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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골든아워 #05 석해균 선장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았다 | 살아가는 힘이 되는 책 2018-10-25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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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워』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 아덴만 여명 작전

 


 

 

떨어지는 칼날은 잡지 않는 법이다. 석 선장은 무겁게 떨어지는 칼날이었다. 환자의 상태가 극도로 나쁠 때 의사들은 섣불리 나서지 않는다. 환자가 살아나도 공은 제 몫이 되지 않고, 환자가 명을 달리하면 그 책임은 마지막까지 환자를 붙들고 있던 의사가 오롯이 져야 한다. 그것이 이 바닥의 오랜 진리다. 석 선장이 살 가능성은 희박했고, 최악의 경우 내가 져야 할 책임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복잡한 경로를 거쳐 왕립술탄카부스병원 ICU에 도착해 환자를 처음 보았다. 환자는 의식이 없었다. 팔과 다리 여러 곳에 관통 손상이 있었고, 골절된 부분은 아직 총탄이 박혀 있는 채로 임시 봉합해둔 상태였다. 무엇보다도 치명적인 탄공이 복부에만 세 곳이나 있었으며 총알이 박힌 구멍에서는 고름이 흘러나왔다. 몸통 전체가 시뻘건 벽돌처럼 보였고 부패된 사체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다. 혈액검사 지표는 한국에서 받은 결과보다도 더 나빠져서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나는 오만에 도착하자마자 맞닥뜨린 위기 상황에서 교과서적인 원칙을 계속 생각하려고 애썼다. 주위 분위기에 잘못 휩쓸리는 순간 환자는 허무하게 생명을 잃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 또한 갈 길을 잃는다. 나는 끊임없이 원칙을 생각했다.
 
나는 이제 결정해야 했다. 눈앞의 선택지는 둘뿐이었다. 이곳에서 죽기를 기다리든지, 아니면 큰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한국으로 이송해 큰 수술 판을 벌이는 것이다. 어차피 끝날 판이라면 모든 걸 다 걸고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환자를 이송하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지 가늠하기조차 힘들었다. 두개골이 욱신거렸다. 무사히 살아서 한국에 도착하더라도 남아 있는 수술들의 부담은 크다. 수술이 잘 끝난다고 해도 환자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고,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상황이 최악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나는 다시 교과서적인 치료 원칙들을 입으로 중얼거렸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죽어가는 선장의 숨을 붙여 데리고 돌아가야 하므로 에어 앰뷸런스가 필요했다. 그러나 에어 앰뷸런스는 쉽게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찾는다고 해도 기체가 환자를 싣고 하늘을 날아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은 몹시 복잡하다. 정부 부처가 협의하여 이 일에 대해 입장을 정리하는 데는 아득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이미 여러 정부 부처가 얽혀들어 시간만 보내고 정작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공중에 떠버리는 상황을 수없이 보아왔다. 그때 내게 분명했던 것은, 석 선장을 데리고 돌아가려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것과 그 어디에도 책임을 져줄 존재가 없다라는 사실이었다.

 

 

 

 

 

어차피 이 오만행의 책임은 내게 있었으므로 어떻게든 이 상황을 돌파하는 장본인도 나여야 했다. 직접 에어 앰뷸런스를 보내줄 수 있는 항공사 레가(Rega)와 접촉했다. 나는 머리를 두드리며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집중해보려 애썼다. 수많은 생각들을 걷어냈을 때 남는 것은 하나였다. ‘에어 앰뷸런스가 없으면 석 선장의 생환은 불가능하다.’ 내가 사인한 팩스를 레가에 보내려는데 김지영과 김후재가 막아섰다. 김후재가 내 팔을 잡았다.

교수님, 이건 아닙니다. 이렇게까지 하시는 건 아니지요. 이건 교수님이 책임질 사안이 아닙니다.
 
김지영이 내 손에서 서류뭉치를 낚아채 그대로 찢어버렸다. 서류는 김지영의 손에서 여러 차례 잘게 찢겨나갔다. 종이다발이 찢겨나가는 소리가 호텔 로비까지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찢겨 나간 서류에는 에어 앰뷸런스 사용 금액 ‘US $380,000’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4억 원이 훌쩍 넘는 돈이었다. 나는 그 액수의 무게가 얼마큼인지 생각하지 않았다. 난 항공사로부터 다시 서류를 받아서 그들 모르게 사인했고, 그대로 보냈다. 돌이킬 수 없었다
    
환자를 이렇게라도 데리고 가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나쁘면 그 책임을 다 교수님께 씌우려 할 겁니다. 지금이라도 빠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정경원은 웬만하면 이렇게 얘기할 사람이 아니다. 나와 달리 정의롭고 굳건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할 정도라면, 상황이 심각하기는 심각했다. 나는 그에게 되물었다.
 
당신이 보기에 석 선장이 얼마나 버틸 것 같아?
 
— …….
 
정부 부처 간에 차분하게 조율해서 비행기를 띄울 시점까지 석 선장이 살아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정경원은 계속 말이 없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김후재에게 물었다.
 
그럼 삼호해운에서 몇 시간 이내에 앰뷸런스 비행기를 끌어올 가능성이 있나요?
 
김후재는 삼호해운 본사의 내부 사정을 빤히 알았다. 회사는 그럴 만한 여력이 없었다. 김후재 역시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대답 없는 둘에게 말했다.
 
어차피 우리가 사막 한복판까지 오게 된 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꼬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끌고 갈 수밖에 없어요. 만약 최악으로 깨진다고 하더라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에어 앰뷸런스를 못 구해서 선장이 여기에서 죽어도 내가 엿 먹는 건 마찬가집니다. 계약서는 이미 보냈고, 돌이킬 수 없어요. 이제 에어 앰뷸런스를 타고 돌아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에요.

그때 김지영이 갑자기 전화기를 들고 나타났다.
 
교수님, 허 위원님과 전화 연결됐어요. 여기 사정을 얘기하고 도와달라고 했어요. 곧 다시 전화 주신댔어요.
 
오만 현지 시간으로 밤 11, 한국은 새벽 4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김지영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김지영은 한국을 떠나기 전에 허 위원이, 혹시 위기가 닥치면 본인에게 연락을 달라고 당부했다고 했다. 허 위원은 내게도 같은 말을 했으나 나는 흘려들었고, 거기까지 예상한 허 위원이 김지영에게 다시 언질해둔 모양이었다. 나는 허 위원이 고마웠다.

    
김지영의 말대로 곧 허 위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빠르고 짧지만 아주 명확한 어투로 말을 전했다. 그 통화가 끝나고 10분도 채 되지 않아 김지영의 전화벨이 울렸다. 통화하는 김지영의 목소리가 떨렸다. 전화기를 건네받자 굵은 저음의 힘 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청와대 정무수석이라고 했다. 한국은 이른 새벽일 텐데 그의 목소리는 잠기지 않았다. 이미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전화한 것 같았다. 그는 말을 이었다.
 
환자를 치료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무엇이든 좋으니 말씀해주세요. 제가 책임지고 해결하겠습니다.
 
책임해결’. 그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청와대 정무수석이 책임지고 해결해준다는 말을 내게 하고 있었다. 나는 필요한 것들에 대해 요점만 간단히 정리해 전했다. 환자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 국내 이송이 불가피하다는 것, 의료 장비가 갖춰진 에어 앰뷸런스 동원이 시급하나 관계 기관 결정이 늦어져 내가 자의적으로 서명했다는 것 등이었다.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그는 환자에게 희망이 있는지를 물었다. 환자를 무리하게 국내로 이송해오다 사망할 경우 발생할 문제에 대해서도 걱정하는 것 같았다. 나는 답을 망설이지 않았다. 오만에 온 이래 계속 생각하던 말이었다.
 
그나마 지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어 조금만 더 늦으면 정말 돌아가지 못합니다.
 
정무수석은 내게 모든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테니 걱정 말고 환자만 살려서 오라고 했다. ‘상황 통제.’ 그는 다섯 개 정부 부처가 얽혀 있고 두 개 민간기관이 각기 다른 소리를 내고 있는 이 아수라장을 통제하겠다고 했다. 나는 도대체 이 상황이 어떻게 정리될지 알 수 없었으나, 연막탄 속 같던 조금 전보다는 시야가 확보되는 듯했다

 

 

 

 

 

 

 

 


 

 

 

 

 

골든아워 1

이국종 저
흐름출판 | 2018년 10월

 

골든아워 2

이국종 저
흐름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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