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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골든아워 #06 표창이고 뭐고 죽고 나면 다 소용없어요 | 살아가는 힘이 되는 책 2018-10-25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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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워』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 서한

 


 

 

 

연구실 창밖으로 한여름 장대비가 쏟아졌다. 창문을 조금 열자 빗소리가 거셌다. 바람의 방향으로 빗물이 크게 들이치지는 않아 창을 그대로 열어두었다. 아스팔트를 난타하는 빗소리가 방 안의 답답한 공기를 날려버릴 것 같았다. 피로한 몸을 의자에 깊숙이 앉혔다. 책상 위에 결재 서류들과 내 앞으로 온 편지 뭉치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나는 서류철을 옆으로 밀어두고 편지들을 뒤적였다. 강원도지사가 보내온 서한이 눈에 띄었다. 고급스러운 흰 봉투 겉면에 흑색 경필 명조체로 내 소속과 이름이 박혀 있었다. 나는 봉투를 뜯지 않은 채 그것을 멀거니 보았다. 흑백의 명확한 대비가 한 달 전 영결식장의 국화 화환들을 연상시켰다.

 

 

 

 

 

 

지난 717, 세월호 수색 작업을 마치고 복귀하던 강원 소방항공대의 AS365가 추락했다. 헬리콥터는 광주광역시 한복판으로 낙하해 바닥과 충돌하여 검은 잔해로만 남았다. 정성철, 박인돈 기장과 항공정비사 안병국, 항공구조구급사 신영룡, 항공구조사 이은교 등 다섯 명의 소방대원 전원이 목숨을 잃었다. 강원 소방항공대에는 조종술이 뛰어난 고참 기장들이 많았고, 험준한 산악 지형에서도 산등성이와 계곡을 누비며 환자를 구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았다.

나는 그들을 2011년 소방항공대 워크숍에서 처음 만났다. 모두가 적극적이었고 토론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그중 박인돈은 20여 년 가까이 육군항공대에서 비행하며 4,000시간 이상의 비행시간을 쌓은 베테랑이었다. 나는 그와 구조구급 비행에 대해 구체적으로 의견을 나누던 때를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랬던 그들이 죽었다. 그 죽음을 알았을 때, 배 속 창자가 끊어질 듯 우는 것 같았다. 정성철, 박인돈은 AS365가 속절없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던 마지막까지도, 헬리콥터가 사람 없는 인도 화단에 추락하도록 조종간을 놓지 않았다고 들었다.

세월호 침몰 후 석 달이 지난 시점에 벌어진 이 참상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세월호 침몰 당시, 항공 지원을 통해 생존자 구조와 수색이 가장 필요했던 시점은 사고 당일이었다. 그때 헬리콥터들의 사고 해역 영공 진입을 막았던 정부가, 사고 발생 후 석 달이나 지난 시점에 강원도의 AS365와 소방 항공대원들을 전라도 앞바다까지 보낸 까닭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AS365는 대부분 육상에서의 구조 업무에 투입된다. 해상용 기체에 장착되는 플로트 장비가 있을 리 만무했다. 언론에서는 대원들이 자원해서 수색에 나섰다고 했다.
 
자원이라. 참으로 그럴듯한 말이다. 나는 그 말의 출처가 궁금했다. 그 단어를 곱씹으며 조직 구성원으로서 자원의 의미를 더듬었다. 윗선으로부터 내려오는 위험한 업무 투입 명령은 조직 안에서 때로 자원의 탈을 썼고, 그것은 스스로의 의지조차 강요하는 것이었다. 제 몸에 폭탄을 달고 적진으로 뛰어드는 일이 전쟁터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죽은 다섯 명의 대원들이 진정 자원해 나선 비행이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추락 원인은 며칠이 지나도록 알려지지 않았다.

사고 닷새 후 열린 영결식은 강원도장()으로 치러졌다. 찍어다 박은 듯한 흰 국화 화환들이 분향대 양옆으로 늘어섰고, 제각기 다른 부서와 이름들이 적힌 검은 리본들은 아래로 처져 있었다. 리본 속 이름들 중 얼마만큼이 이 죽음을 이해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꽃으로 둘러싸여 있는 다섯 명의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뒤늦게 남쪽 바다까지 비행해 내려가야 했던 이유와, 헬리콥터가 추락한 원인을 저들은 알고 있을 것인가. 죽은 이들은 침묵했고, 살아 있는 누구도 그것을 말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순백의 봉투를 열어 강원도지사가 보내온 서한을 펼쳤다. 최고급 한지의 단단하고 부드러운 결이 손끝에 전해왔다. ‘안녕하십니까로 말문을 연 서한은 기계의 힘을 빌려 공업적으로 생산해낸 글이었다. 나는 의자에 몸을 파묻고 제일 위에서부터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지난 717일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내고자 자신들의 고귀한 생명을 바친 강원도소방본부 소속 소방대원들의 희생 앞에 애통한 심정으로 슬픔을 함께 해주신 데 대해 강원도청 전 공직자를 대신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로 시작된 글은 중간에 이르러, ‘창졸지간에 아들, 남편, 약혼자, 아빠를 잃은 유족들과 동료 공직자에게도 더없는 큰 힘과 위로가 되었습니다로 이어지고 있었다. 잠시 읽기를 멈추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여전히 비가 세차게 내렸다. 시신이 되고 만 환자를 영안실로 보낼 때 엄습하는 차고 축축한 기운이 안으로 스며들었다.
 
서한 말미에는 무더운 날씨에도 경건하고 엄숙하게 강원도장을 치를 수 있도록 뜨거운 마음을 모아주신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강원도지사까지 반듯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마지막 도지사의 서명은 친필인지 아닌지 분명하지 않았다. 발신일의 한 곳은 비어 있었다. ‘20148월 일.’ 나는 앞의 빈 공간을 응시했다. 아마 도지사는 이 서한을 보낼 때 날짜가 비어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환자들을 구조하여 병원으로 날아오는 소방대원들과 의료진은, 언제나 환자들과 함께 사선을 넘나든다. 소방항공대의 한 기장이 내뱉었던, ‘표창이고 뭐고 죽고 나면 다 소용없어요라는 말과 편지 속의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내고자 자신들의 고귀한 생명을 바친이라는 글귀가 머릿속에서 얽혀 들어갔다.

 

 

 

 

하늘을 나는 항공기, 특히 회전익 기체는 언젠가는 반드시 떨어진다. 문제는 시점과 확률일 것이다. 내가 하는 일 자체가 주위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만나본 적도 없고 선악조차 알 수 없는 이름 모를 타인을 구하려 나서는 일이다. 나는 왜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이 짓을 강요해야 하는가. 몸이 한없는 바닥 아래로 끌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동료들이 두말 않고 위험을 무릅쓰고 나서고 있는 것도, 노골적으로 내 일을 꺾어버리려는 이들의 저항을 버텨나가는 것도 지긋지긋했다. 나는 구토감을 느끼면서 창밖을 한참 멍하게 바라보았다. 몹시 피곤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자러 가고 싶었으나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골든아워 1

이국종 저
흐름출판 | 2018년 10월

 

골든아워 2

이국종 저
흐름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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