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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과 사회를 지배하는 우연 | 책을 읽다 2023-03-20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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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

슈테판 클라인 저/유영미 역
포레스트북스 | 2023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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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운명인가, 하고 생각할 때가 없지는 않지만, 대체로는 운명이라는 게 있다는 걸 잘 믿지는 않는다. 혼동하지 않아야 할 것은 여기서 운명을 믿지 않는다는 게 본성(nature)’이라는 게 없다고 생각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란 점이다. 나는 일단 모든 게 정해져 있다는 식의 사고를 배격한다.

 


 

 

슈테판 클라인의 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은 바로 그런 운명이란 게 존재해서 우리의 삶과 사회를 조직하고 있다는 생각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누군가를 운명처럼 만났다든가, 어떤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것을 운명으로 생각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우리의 뇌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연관을 짓고, 인과 관계를 만들었을 때의 진화상의 잇점이 있기 때문에 운명이라는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연에 의미를 만들고,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그 운명의 바탕에는 우연이라는 과학이 있다.

 

세상은 우연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운명이라고 부르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우연이다. 우연은 포괄적인 시각에서 보았을 때, 즉 통계적인 시각에서 파악했을 때 그것들의 법칙성이 드러날 뿐이다. 그것 자체로는 예측할 수 없다. 가장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면, 지금 책상 앞에 이리저리 쓸리고 있는 100원 짜리 동전 하나를 던졌을 때 앞면이 나올지, 뒷면이 나올지 나는 정확히예측할 수 없다. 다만 확률이 1/2이라는 것만 대충알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그것을 위로 던졌을 아래로 떨어진다는 것을 거의 100%의 확률로 예측할 수 있는데, 그것은 물리의 법칙이지만, 그것이 어디에 정확히 떨어질 지는 수많은 우연이 가담해서 결정될 뿐이다. 우리는 수많은 우연 속에서 살아간다.

 

우연은 불확실함을 의미한다. 사실 그래서 우리는 우연을 제거하고, 어떤 규칙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슈테판 클라인은 우연을 통해서만 세상에 새로운 것이 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새로운 것이 세상에 등장해서 우세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역시 행운이 따라야 하며, 또 어떤 계획이 필요하지만, 거기에도 우연적 요소가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은 우연에 의존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 즉 우연으로 가득찬 삶, 사회를 이해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슈테판 클라인은 우연의 존재를 잘 파악하고, 잘 이해하며, 잘 이용해야만 불확실한 세상을 조금 더 잘 살아갈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안전에 대한 확신보다는 우연히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안전 시설을 확충하고, 더 신경쓰며, 안전에 대해 생각하고 조심할 수 있다. 선택 상황에 있을 때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모든 것을 다 고려해서 선택한다는 것은 운명론적 사고다. 불확실한 우연의 세계에서는 단순한 레시피에 따라 빠르고 확실하게 결정하는 것이 나을 때가 많다. 모든 것을 생각해서 결정하다가는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잡할수록 단순하게 생각하고, 결정하라는 것은 단지 그냥 빨리 결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기준을 정한 후에 그것이 의미 있다고 판단한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결정했을 때 더 나은 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나는 다 읽고도 이 책이 신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인터넷 서점의 책 안내를 보니 17년 만에 재출간되었다고 한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은, 이 책에서 하는 얘기가 17년이라는 시간과는 그다지 상관없다는 의미다. 운명이라는 생각과 우연의 세계에 대한 태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의미가 있다. 세상에 대한 불안과 허무를 벗어날 방법이 있다면, 동전을 던졌을 때 앞면이 나올 것을 기대했다 뒷면이 나오면 실망하는 운명적 태도가 아니라, 앞면이 나올 가능성과 뒷면이 나올 가능성은 같지만, 그중 어느 것이 나올 지는 늘 우연적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태도에서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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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 | 한줄평 2023-03-19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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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우연에 열린 마음 갖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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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과학자의 10년 독서의 결과 | 책을 읽다 2023-03-1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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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호기심 많은 로맨틱 과학자의 독서 기행

이원식 저
미들하우스 | 2023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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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여러 가지를 의식하고 궁금증이 든다. 우선은 과학자’. 이 양반은 과학자라는 얘기인데, 무엇을 전공했을까? 그런데 로맨틱의 의미는 무얼까? 그러니까 로맨틱 과학자는 도대체 어떤 과학자일까? 과학자니까 호기심이 많다는 것은 당연히 인정할 만한데(실상을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독서 기행이라니. 이 양반의 독서의 범위는 어떻게 될까? 과학자이니 과학에 대한 독서일까? 그런 너무 뻔하니 인문학 분야의 독서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이런 궁금증, 내지는 의문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다.

우선 저자 이원식 씨는 삼성전자가 별 볼 일 없는(?) 회사일 때 입사해서 세계적 기업이 되는 과정을 함께 하고 부사장으로 퇴임하였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연구하는, 그런 과학자와는 조금 결이 다른 셈이다. 따지자면 공학자이고, 기업가라고 해야 더 어울릴 듯하지만, 과학자라는 게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과학자라는 호칭을 그렇게 좁게만 볼 이유도 없으니 크게 잘못된 것도 아니다. ‘로맨틱 과학자(Romantic Scientist)’라는 건 SNS 계정에서의 별명이다. 하지만 그는 romantic낭만적이라는 번역된 말의 뜻으로 쓴 건 아니고 본래 유럽에서 쓰였던 대로 인본주의적이라는 뜻으로 썼다. 하지만 낭만적 과학자라는 해석도 싫어하지는 않는단다. 그렇다면 그의 독서도 대략은 해결이 된다. 물론 과학에 대한 책도 있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퇴직 후 10년 동안의 독서와 독서에 따르는 과학과 사회에 대한 생각을 글로 남겼다.

 


 

 

그의 독서는 말 그대로 광범위하다. 어쩌면 책 한 권에 다 담는 것이 좀 무리란 생각도 든다. 책은 우주와 지구, 생명에 대한 글, 인류 문명의 역사에 대한 글, 그리고 인생 경험과 독서, 사유에 바탕을 둔 과거와 미래에 대한 저자의 생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어쩌면 조금은 통일성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해가 되는 것은 저자가 이 책이 자신의 마지막 책이란 생각으로 썼다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읽고 공부한 것을 정리하고 있고, 소중한 경험을 고백하고 있고, 또 자신이 가진 생각을 드러내고 있기도 한 것이다. 말하자면 이 지면을 무척이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사실 과학 쪽의 설명에는 그다지 특색이 없어 보인다. 충실하게, 그것도 주로는 (영어로 된) 서적을 통해 각 분야의 기본적인 내용을 공부했고, 그것들의 의미를 파악했다. 보편적인 과학 교양서에서 보는 내용이고, 다만 그의 개인적인 소회가 조금 눈에 띨 뿐이다. 하지만 그의 역사와 사회, 미래에 대한 생각을 드러내는 부분이 오히려 재밌다(?).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실례되는 표현일 지도 모르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다고 할 수 밖에 없는데, 그건 그냥 지당한얘기만 하고 있지 않아서 그렇다. 어떤 부분의 진보 쪽의 시각인 듯 하지만, 또 다른 쪽으로 보면 그렇지 않고. 그렇다고 딱히 꼴보수는 아닌 인식이고, 제안도 아니다. 저자의 날 것 같은 생각과 오랫동안 벼려온 생각이 섞여 있는 듯한 느낌인데, 그의 (교육 제도, 경제 체제, 통치 체제, 남북통일, 전쟁에 관한) 제안들은 의미 있게 생각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만(그 생각들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얼마나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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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손더스의 러시아 소설 읽기, 그리고 소설 쓰기 | 책을 읽다 2023-03-17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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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조지 손더스 저/정영목 역
어크로스 | 2023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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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손더스의 장편소설 바르도의 링컨(약간의 과장만 섞으면) 충격적인 소설이었다. 내 딴에는 (길지는 않지만) 꽤 정성 들여 감상평을 적었었다. “기록을 찾아내 얽어낸 수고로움도 그렇고, 유령의 목소리들을 엮어 놓은 세심함 모두 새로운 양식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고, 그런 형식과 내용이 모두 생()의 이편과 저편에 대한 질문을 하도록 한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질문을 던지게 하는 작품은 좋은 작품이다.”라고 요약한 것은 꽤나 객관성을 지키려고 애를 쓴 흔적이다. 오히려 오랜만에 죽음을 생각하며 다시 몸서리쳐졌다.”라는 중간의 느낌이 내 진짜 감상이었다.

 

그의 단편은 실험적이었다(1210에 실린). 익숙하지 않은 구성이었다는 것보다는 여러 편의 단편들이 다 다른 실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던 것 같다. 다른 단편소설들보다 읽는 시간이 훨씬 더 걸렸고, 읽고는 이게 뭐지?”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난해하다기보다는 좀 걸리적거리게 하면서 시간을 지체시켜 생각해보도록 한다고 해야 할까? 그 과정에 의미를 두는 소설들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여겼다(고 적혀 있다). “현실적이지 않으면서도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라고도 적었다.

 

바르도의 링컨이나 1210의 작가 소개에는 모두 그가 시러큐스 대학에서 문학창작을 가르친다고 되어 있다. 소설을 읽을 때도 조금 궁금하긴 했다(아니 예전부터 좀 궁금하긴 했다. 대학의 문예창작과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가르칠까?”). 읽고 쓰고 평하고, 다시 읽고 쓰고 평하고. 이런 과정이 반복될까? 무엇을 읽고(고전으로 알려진 소설만, 형편 없는 소설도?), 쓰는 건 얼마나 쓸까? 평가를 하는데 그것은 무엇에 대한 평가일까? 세계관? 기법? 구성? 문체? 조지 손더스의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를 펼치게 된 데에는 그의 소설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과 함께 그런 궁금증도 한몫했다. 수백 명의 지원자 가운데 겨우 6명만 선발하는 시러큐스 대학 문예창작 석사 과정에서, 이미 뛰어난 역량을 가진 예비 작가들에게 조지 손더스는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놀라운 것은(책을 펼치기 전에도 알고는 있었지만), 그가 텍스트로 선택한 게 19세기 러시아 소설가들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안톤 체호프, 이반 투르게네프, 레프 톨스토이, 니콜라이 고골. 이들의 작품 7편을 가지고, 읽고, 그 작품의 속살과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혀 사실주의 소설가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은 조지 손더스가 사실주의의 정점에 있었던 러시아 소설가들의 소설을 텍스트로 삼는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우면서도 시사적이다. 소설의 기본에는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일단은 그렇게 시작하든지, 혹은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라든지 하는.

 

조지 손더스는 자신이 진행하는 소설 창작 강의의 일부를(혹은 그것을 확장 버전을) 글로 옮겨 놓았다. 말하자면 어떻게 하면 소설을 잘 쓸 수 있을지에 대한 탐구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견해에 동의를 한다면 그것으로 의미 있는 일이며, 교수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므로 역시 의미 있다고 여긴다. 조지 손더스는 학생들로 하여금(확장되어 독자들로 하여금) 소설에 관하여, 즉 읽고 쓰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데 있어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는 글쓰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냥 한 문장이 필요할 뿐이라고도 한다. 그게 있다면 그것을 고치는 과정만 거치면 된다. 물론 그 한 문장이 쉽지 않으며, 또 자신의 문장을 끝도 없이 고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그래서 아무나 작가가 되지 않는다. 물론 책 한 권 냈다고 작가라고 할 수도 없다).

 

대학 1, 2학년 즈음 미학 강의를 듣기 위해 수강 신청을 했었다. 첫 강의에서 예술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들었다. 그것을 접하기 전과 접한 후 어떤 관계와의 거리가 달라졌다면 그것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그 강의는 결국 듣지 않았다. 예술에 관해 그 정도 알면 되겠다 생각했던 것 같다(지금 생각해보면 강의였는지, 책이었는지 헷갈린다). 조지 손더스도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다. 소설이 마음의 상태에 점진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점. 그게 소설이 하는 일이고, 그래서 가치가 있다고 한다. 그는 일곱 편의 러시아 단편을 읽으며 그 얘기를 좀 길게 하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 소설이, 소설의 구성이, 소설의 표현이 그 소설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나를 변화시키고, 세상과 나의 관계를, 거리를 변화시키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비오는 날 연못에서 수영”(이게 원제다. 그리고 이 제목은 톨스토이와 체호프가 함께 한 경험에서 따왔다)을 하듯 소설 속에서 어린아이가 되어 아무 생각없이, 거침없이 훌훌 옷을 내던져도 어느샌가 세상과 나의 관계가 달라지기를 바란다. 소설가는 그렇게 써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소설을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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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하나의 문장이 필요할 뿐" | 책을 읽으며 2023-03-16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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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초고에 나에게는 느슨하고 너절한 텍스트라는 벽돌(방울? 구획?)이 몇 개 있을 것이다. 수정을 하면서 그 벽돌들은... 나아지기 시작한다. 곧 벽돌 하나가 제대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그 벽돌을 끝까지 쭉 통과하는 동안 바늘이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가끔 마음에 떠오르는 말은 좋아, 이건 정말이지 부정할 수 없어라고 할 때의 그 부정할 수 없음이다. 이는 합리적인 독자라면 누구나 이 이야기를 좋아하고 이야기가 끝나는 지점에서도 여전히 나와 함께 있을 거라고 느낀다는 뜻이다.

(중략)

글이 잘 써질 때는 지적, 분석적 사고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처음 이 방법을 발견했을 때 나는 무척 자유로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나는 걱정할 필요가 없고, 결정할 필요가 없고, 그냥 그 자리에서 매번 새롭게 내 이야기를 읽으면서 계측기를 지켜보다 행 단위에서 (장난을 하듯이) 고칠 마음만 먹고 있으면 그만이었다. 고친 게 틀렸다면 다음에 읽을 때 되돌려 놓을 기회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언젠가 누군가 무한한 시간이 주어지면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식의 퇴고가 바로 내게 그렇게 느껴진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큰 결정은 필요 없다. 이야기는 자기 나름의 의지를 가지고 있고, 그 의지를 내가 느끼게 해준다. 그것을 그냥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이 잘되고, 이야기는 나의 최초의 비전을 뛰어넘는다.“

- 조지 손더스,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에서, 182-183)

 

그래서 이렇게 쓴다.

 

이 방법은 초고의 압제를 전복한다. 초고가 좋든 말든 누가 상관하는가? 그건 좋을 필요가 없다. 그냥 있기만 하면 된다, 당신이 퇴고할 수 있도록. 당신에게는 이야기를 시작할 아이디어가 필요하지 않다. 그냥 하나의 문장이 필요할 뿐이다. 그 문장은 어디서 오나? 어디에서든. 특별할 필요는 없다. 당신이 계속 반응하면서 시간이 흐르는 동안 특별한 문장이 될 것이다. 그 문장에 반응하고, 이어 평범함이나 너저분함 가운데 일부를 벗겨내기를 바라면서 문장을 바꾸는 것이... 글쓰기다. 그게 글쓰기의 전부이며 또는 전부여야 한다.” (185)

 

그렇다. 일단 무언가를 써야, 결국 써진다.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조지 손더스 저/정영목 역
어크로스 | 2023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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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추가로 주어진 삶의 시간은 어디에서 왔을까? | 책을 읽다 2023-03-15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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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리는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을까

스티븐 존슨 저/강주헌 역
한국경제신문사(한경비피)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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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그래프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하나는 출생 시 기대수명의 변화를 나타낸 그래프이고, 또 하나는 아동 사망률의 추이를 나타낸 그래프이다. 앞의 그래프는 20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30세를 조금 넘는 출생 시 기대수명이 80세 가까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렇게 증가한 우리의 평균 수명이 최대 수명이 증가한 것이라기보다는 아동이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비율이 증가하였기 때문이라는 걸 아동 사망률 추이 그래프가 알려준다. 우리는 겨우 100, 혹은 그것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추가로 2만 시간이라는 추가 시간을 갖게 되었다. 감염지도,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등 탁월한 저서의 저자 스티븐 존슨은 이 2만 시가이라는 추가 시간이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졌을까에 대해 추적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추적은 단순하지 않다. 그리고 흔히 생각하는 것과도 조금 결이 다르다. 이를테면 항생제를 이야기하면서 플레밍이나 혹은 또 다른 과학자의 영웅적 활약, 내지는 페니실린과 항생제의 놀라운 효과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빼놓을 순 없지만, 그것과 함께 페니실린이라는 약이 정말 인류의 수명을 증가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데에는 플로리와 체인이라는 연구자와 더불어 미국의 연구 조직과의 관계, 정부의 지원 등이 한 데 어우러졌기 때문이라고 쓴다. 즉 네트워크가 항생제가 인류의 기대 수명을 증가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시작부터 그렇다. 기대수명의 증가라는 극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기대수명의 측정이라는 과제를 수행한 연구자를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존 그란트의 런던 시민들의 사인(死因)에 관한 도표(소책자), 토머스 매큐언의 인구 증가에 관한 연구 등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지목하고 있다. 즉 이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또 인식시켰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연구의 중요성이 받아들여지는 과정 자체가 진보였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스티븐 존슨이 우리를 지금까지 살 수 있도록 한”, 즉 기대수명을 증가시킨 결정적인 발전을 가져온 것으로 지목하고 있는 것은, 앞의 기대수명에 대한 인식과 함께 이를 바탕으로 천연두의 박멸을 가져온 백신, 콜레라를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데이터와 전염병학(여기서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역학(epidemiology)가 맞을 것 같다), 우유와 수돗물을 안전하게 마실 수 있도록 한 저온살균과 염소 소독, 의약품에 관해 약물 규제와 검사를 가능하도록 한 이중맹검법, 세균감염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킨 항생제, 안전하게 자동차를 탈 수 있게 한 안전벨트, 기아로부터 인류를 구원한 화학비료다. 이중맹검법이라든가, 안전벨트 같은 것을 지목하는 것만으로도 스티븐 존슨이 얼마나 이 문제를 광범위하게 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앞서도 얘기했듯이 그는 특히 네트워크를 갖오한다. 이와 관련해서 예를 들자면 저온살균법을 통해 우리가 오염되지 않은 우유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이 방법을 개발한 파스퇴르 덕이라고 하는 것은 참 쉬운 해답이라는 것이다. 물론 파스퇴르라는 과학자의 놀라운 연구가 중요한 것은 맞지만, 그의 저온살균법이 바로 적용되고 널리 퍼지지 않았던 것을 보면 파스퇴르만을 지목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저온살균법을 보급시키고 인식시키는 데는 스레터의 사회적 개입, 포목상이던 로버트 밀험 하틀리의 노력, 레슬리의 투쟁 등이,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없을 정도로 함께 작용했던 것이다. 백신 역시 마찬가지로 제너만을 지목하고 영웅시 했을 때 놓치는 것이 너무도 많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많은 것이 변했고, 또 사고도 달라졌다고 본다. 아무리 과학이 우리가 기대야할 것이라는 얘기를 여러 차례 했었다(과학이라는 말이 정치에 오염되면서 진영 용어가 된 게 참 우습고, 개탄스럽다). 이 책에서 스티븐 존슨이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명확한 데이터를 가지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과학적 노력을 하고, 또 그것의 효과를 정확하고 투명하게 검증한 후 적용시키기 위한 국가, 사회, 국제 기구의 노력이 있을 때 우리 삶의 조건을 바꾸어 더 건강하고, 오래 살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는 것이다. 여전히 우리는 과학을 이해하고 이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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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 그들이 이어지는 방식 | 책을 읽다 2023-03-13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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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에이미와 이저벨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저/정연희 역
문학동네 | 2016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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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동부 뉴잉글랜드 지역의 작은 마을 셜리폴스에는 삼십대 초반의 엄마와 열여섯 살 딸이 산다. 그들의 이름은 이저벨과 에이미. 어느 해 여름, 그들에게는 거센 감정의 폭풍이 몰아쳤다. 그해 여름 그들에게 닥친 사건과 그에 따른 갈등은 펼쳐진 오래전부터 유전(流傳)되어 온 것이기도 하고, 그들에게서 느닷없이 펼쳐진 막연한 안개 속 같은 것이기도 했다. 갈등의 끝에는 화해가 오고, 아픔을 겪어야 성장한다고 하지만, 과연 누구에게나 그런 갈등과 아픔이 필요한지는 모르겠다. 그런 갈등과 아픔을 미화시키기 위한 위로는 아닌지.

 

작은 읍내 같은 마을이고, 그 좁은 공간에서 엄마와 딸의 생활을 중심으로, 학교, 공장 사무실 등에서 벌어지는 작은 커뮤니티의 이야기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이 삶의 우여곡절은 커뮤니티의 크기와는 상관없다. 흔하디 흔해 보이는, 홀로 딸을 키운 엄마와 사춘기에 접어든 딸 사이의 갈등은 오히려 시시해 보이지만, 그게 엄마와 딸에게 이어진 운명의 고리 같은 것이 걸려 있다면 그것은 결코 시시한 이야기가 아니다. 거기에 성(), 그것도 정상적이지 않은, 선생과 제자 사이의 관계가 끼어들고(제자는 사랑이라고 생각했으나, 선생은 그러지 않았다), 어른들의 불륜이 있다. 사랑의 감정과 신분 상승의 욕구가 얽혀 어떤 것이 진짜인지 모르는 상황도 있으며, 십대 소녀의 우정도 그려진다. 이런 굵직한 갈등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지만, 전개는 어수선하지 않다. 그게 작가의 능력이다.

 
 

이 소설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첫 장편소설이다. 이 작가의 능력은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품 올리브 키터리지으로 증명되는데(나는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지 않았다). 그게 어떤 작품인지 모르지만 이 작품으로도 충분히 작가적 능력은 인정받았지 않았나 싶다. 좁은 지역에, 길지 않은 시간 속에 여러 부류의 개성 있는 인물들을 섞어 놓고,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화해를 다루면서,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중심을 굳건히 하면서도 이른바 조연들의 몫도 충분히 챙긴다. 주연들의 활약이 조연의 배경을 통해 빛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전개는 잔잔히 이어지다, 갑자기 휘몰아치면서, 독자의 감정마저 격하게 만들며 책장을 급하게 넘기도록 하더니 어느새 결말이 이른다. 결말은 너무 갑작스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질질 끌어가지도 않는다. 절정의 순간을 지나 차분히 마음을 정리하다보면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음을 알게 된다.

 

소설에서 딸(에이미)는 엄마(이저벨)검은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여긴다. 어디서나 존재하는 굵지도 얇지도 않은 그 선은 정체가 없는, 단지 느낌뿐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게 운명 같은 것, 대물림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엄마는 그것을 부정하고 싶었고, 물려주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엄마를 원했던 딸은, 격정적인 십대의 여름을 보내며 성숙해지고,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럼으로써 에 대한 언급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들이 비슷한 운명을 겪고 있다는 것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들이 연결되는 방식은 그런 것이다. 누구에게도 보이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는 것.

 

소설의 끝에 후회에 대해 이야기한다. 후회하지 않는 삶이 어디 있으랴. 주로는 무엇을 할 걸, 무엇을 하지 말 걸, 그런 것이다. 그러나 후회가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간다는 보장은 없다. 후회는 반복되기 마련인데, 그래서 난 후회란 참 무책임하단 생각해 왔다. 후회할 일을 절대로 않겠다는, 이를 앙다문 다짐!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며 그런 절대로 후회하지 않으려 그리 애쓸 필요가 있을까 싶어진다. 그건 또 과거에 대한 왜곡이 되는 건 아닐까? 적당히 후회도 하며 살아가련다. 후회가 아니라고 거듭거듭 강조했던 것을 조금은 후회한다고 하리라. 다만 될 수 있으면 빨리 후회를 추억으로 전환시키리라. 그리 되었을 때 삶이 좀 너그러워지고, 멀리 보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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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학자부터 '장티푸스 메리'까지... 알차게 담은 '세균열전' | 세균에 사람 있다 2023-03-13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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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책에 대한 서평입니다. 

 

세균학자부터 '장티푸스 메리'까지... 알차게 담은 '세균열전'

고관수 의과대학 교수가 지은 <세균과 사람>

- 박균호

 

1962년에 출간돼 저자 아베 코노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모래의 여자>라는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주인공은 잿빛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모래땅으로 희귀 곤충채집을 떠난다. 그러나 그는 원치 않게 모랫구멍에서 평생 모래를 퍼내야 하는 운명에 빠진다. 처음에는 온갖 방법을 사용해서 탈출을 시도했지만 결국 자신과 함께 모래를 퍼내야 하는 여인과의 동거와 적응을 통해서 탈출할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고 모랫구멍에 감금되는 것을 선택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생명체가 발붙일 수 없을 만큼 끊임없이 유동하는 모래 위에서 생존할 수 있는 곤충이라면 그에 걸맞은 강한 적응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며, 강한 적응력은 곧 많은 변종이 있음을 뜻한다는 것을 주인공은 알고 있었다. 그는 새로운 곤충을 찾아 곤충 도감에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기기 위해 모래땅으로 스스로 찾아 들어갔다.

그러나 주인공은 곤충 도감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영광은커녕 죽을 때까지 모래를 위로 퍼 올려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황금 같은 휴가를 모래땅에서 기꺼이 허비할 만큼 과학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것은 이토록 영광스러운 것이다. 

세균학 영웅들의 노력과 성과를 다룬 책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고관수 선생이 쓴 첫 책 <세균과 사람>은 동물에게만 한정되었던 '학명 짓기' 사냥이 세균에게도 적용되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신종 세균을 발견하고 언젠가는 자신이 발견한 세균의 중요성을 밝혀지기를 기대한 학자 즉 세균학 영웅들의 노력과 성과 그리고 숨은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세균과 사람>'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지하철에서 편하게 읽을 수 있을 만큼 쉬운 책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문가를 위한 어렵기만 한 책은 아닌 것이 저자가 친절하게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봄 직한 '유명한' 세균을 주로 다뤘고 새로운 세균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많아서 교양과 책을 읽는 즐거움을 고루 갖춘 책이다. 

 

 

'자신이 이름 붙인 세균에 감염되어 죽다', ' 순한 양으로 생각했는데 호랑이였다', ' 경성 제국 대학 총장이 발견한 세균', ' 시골의사에서 세균학의 황금시대를 연 영웅으로', '파트퇴르의 이름을 가질 뻔했던 세균' 등 이 책의 소제목만 훑어보기만 해도 의과대학에서 강의하는 학자라기보다는 세균에 대해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의 면모가 더 도드라진다.

아울러 '읽고 쓰다'라는 동사의 주어로 삼아도 전혀 무리가 없을 만큼 저자 고관수 선생은 내가 알기로 웬만한 사람은 흉내도 낼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분야의 많은 책을 읽고 독후감을 남긴다. 따라서 세균학에 대한 강의보다는 세균학을 독자와 함께 읽어나간다는 의도를 가지고 이 책을 쓴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세균학이라기보다는 세균 열전(列傳)이라고 해도 무방한 책이다. 

흥미로운 세균 에피소드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세균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지만, 특히 내 이목을 끝 것은 '장질부사'였다. 나이 지긋한 사람은 장질부사라고 불렀던 이 말은 장티푸스를 가리키는 말이다. <상록수>의 저자 심훈, 고종의 후궁 엄귀비, 동양화가 김기창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장티푸스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걸리면 약도 없다고 해서 '염병'이라고 불렀던 그 병이다. 장티푸스와 관련한 세균학자들의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전염병과 관련해서 역사상 가장 큰 비난을 받은 사람 중의 한 명인 '장티푸스 메리'라는 인물 이야기가 놀랍다.

10대의 나이로 미국 부잣집에서 요리사로 일했던 그녀는 건강한 겉보기와는 달리 장 속에서는 장티푸스균이 살고 있었다. 장 속의 장티푸스는 소변이나 대변을 거쳐 그녀의 손으로 이동했고 다시 그녀가 만든 요리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녀는 결국 당시 전염병 퇴치사로 불렸던 뉴욕시 보건 당국에 의해서 추적되었고 강제로 입원당했다.

3년간의 강제 입원을 마치고 요리와 관련된 일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사회로 나왔다. 그러나 결국 생활고를 못 이기고 몰래 요리사로 취업하기에 이른다. 그녀가 일하는 직장에서 장티푸스 환자가 나왔고 다시 체포된 그녀는 1938년에 다시 병원에 수감되어 죽을 때까지 23년간 바깥세상을 구경하지 못했다. 

메리 맬런이라는 본명 대신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인'으로 지목당하고 '장티푸스 메리'라는 오명으로 기억되는 그녀는 사실 유일한 보균자가 아니었다. 말하자면 그녀는 장티푸스 창궐이라는 비상사태에 대한 책임을 질 '본보기'였던 것이다. 특히 이민 여성이라는 사회적 약자 신분은 그녀에게 '악녀'라는 오명을 뒤집어씌우기 편리한 존재로 만들었다. 말하자면 현대판 마녀사냥인 셈이다. 

세균 이야기를 하는데 페스트가 빠질 수 없다. 많은 사람이 페스트가 쥐를 통해서 인간에게 전달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정확히는 쥐에 기생하는 벼룩에서 전달되는 질병이다. 어쨌든 페스트균 발견이라는 전쟁에 참전한 일본인 기타자토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기타자토에 대한 일본인의 평가는 그가 2024년 새로이 발행되는 1000엔짜리 지폐의 인물 주인공이라는 사실만으로 가늠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나라는 1397년에 태어난 세종대왕부터 1545년에 태어난 충무공 이순신까지 겨우 150년 사이에 조선의 유교 질서 속에서 살아간 인물들만 화폐의 인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분들도 훌륭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지폐에 실릴만한 위대한 과학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방증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세균과 사람>은 세균을 통해서 본 인간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흥미롭게 이야기하는 교양서로도 충분히 읽힐 수 있다. 저자는 많은 책을 읽는 만큼 많은 다양한 독자의 기호에 맞는 요소를 이 책의 곳곳에 배치했다.

 

세균과 사람

고관수 저
사람의무늬 | 2023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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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판 오 분 전'이 '개(犬)'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고? | 책을 읽으며 2023-03-12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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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호의 역사 컬렉터, 탐정이 되다에서 마지막 장 <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의 해발 구천 미터>는 결식 아동 조사서에서 이야기 타래를 풀어간다. 그리고 끝에는 우리말 속의 가난과 궁핍의 흔적을 덧붙이고 있다. 잘 몰랐던 것도 있어 기록해 본다.

 

첫 번째는 식사하셨습니까?”. 요샌 흔한 인사말이고 별 의도도 없어 보이지만 그날그날의 끼니 여부로 인사말을 전했던 궁핍했던 시절의 흔적이다.

 

다음은 찢어지게 가난하다란 말이다. 여기엔 생략된 단어가 있다. 바로 똥구멍’. 초근목피로 연명해야만 했던 시절,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으면 탄닌 성분 때문에 변비가 생겼다. 이 말은 거기서 나왔다.

 

정말 알지 못했던 것은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른다는 말도 지독한 가난에서 비롯된 말이라는 것이다. 어떤 부부가 유랑을 하다 어느 부잣집에서 공짜로 나눠진 죽을 먹다 옆의 남편이 죽은 죽도 모르고 남편이 남긴 죽까지 다 먹은 후에야 죽어 있는 남편을 보고 오열을 했던 사연이 이 말에 담겨 있다고 한다.

 

마지막은 개판이라는 말이다. 나는 여기의 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짐나 그게 아니란다. 여기에는 한국전쟁의 아픈 역사가 베어 있단다. 이 내용은 옮겨 본다.

 

피란살이로 밥 한 끼 먹기조차 힘들었던 전쟁 당시, 피란민 수용소에서는 거대한 솥에 밥을 지어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 밥을 먹기 전 외치는 말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개판 오 분 전!“이다. 밥이 거의 다 되어 5분 후에 솥뚜껑을 열겠으니 준비하라는 뜻이다. 개판(開板)’솥뚜껑()을 열겠다()’는 소리다. 그런데 굶주린 상태의 피란민들은 이 소리를 들으면 배식을 놓칠세라 급히 달려들었기 땜누에 밥솥 주변은 온통 난장판이 되곤 했다.”

 


 

 

(* 이런 설명이 옳지 않다는 얘기도 있다.)

 

 

역사 컬렉터, 탐정이 되다

박건호 저
휴머니스트 | 2023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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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적인 기록에서 가장 공적인 역사를 이끌어내다 | 책을 읽다 2023-03-1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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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역사 컬렉터, 탐정이 되다

박건호 저
휴머니스트 | 2023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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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컬렉터를 자처하는 박건호의 두 번째 책이다. 사실 매우 재미있고, 의미있게 읽은 그의 첫 번째 책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에서 아쉬웠던 점 하나가 있다면 집요함이었다. 예를 들면, 한 통의 편지에서 주인공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까지는 추적했지만, 그가 나중에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금세 포기해버리는 것 같았다(내 느낌이다). 아무래도 미시사 같은 것을 연구하는 역사가는 아니기 때문에 문헌을 찾아 파헤치는 작업까지는 하지 못했을 것이라 이해한다. 다만 조금 아쉬웠을 따름이다.

 

그런데 그 아쉬움을 저자도 느꼈던 것일까? 역사 컬렉터, 탐정이 되다에서는 제목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탐정처럼 자료 너머의 진실을 몇 꺼풀씩 벗겨내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상상력이 중심이었던 게 전작이었다면 여기서는 훨씬 근거에 기반을 두고 개인의 삶을 추적하고 있는 셈이다.

 


 

 

편지나 사진, 유언장 등과 같은 가장 사적인 자료에서 가장 공적인 역사를 이끌어내며, 미시사와 거시사를 통합시키는 작업은 여전하다. 사람이 태어나면 그 순간부터 시대의 자식의 된다고 하면서, 역사와는 무관할 것 같은 개인의 삶이 역사적 상황과 너무나도 굳건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박건호의 책을 읽으며 다시 깨닫는다. 그리고 역사 속 그 상황에서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무력했던 개인도 이해하게 되는데, 창씨개명이나 징용에 끌려가면서(혹은 자원하면서) 유언장에 아내에게 국방헌금을 내라고 한 것 등이 그 흔적들이다. 그들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으랴! (다만 그 역사적 비극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을 소개한다. 윤석중의 <먼 길>이라는 동시다.

 

아기가 잠드는 걸 보고 가려고

아빠는 머리맡에 앉아 계시고,

아빠가 가시는 걸 보고 자려고

아기는 말똥말똥 잠을 안 자고.

 

알고 있던 동시다. 젊은 아빠와 아가의 평온한 이별 장면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동시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 동시가 징용 가는 아빠가 모티브라는 것이다. 윤석중 작가 자신이 1939년 징용 통지를 받고 아내와 2살짜리 아들을 두고 떠나야 했다고 한다. 이제 이 동시가 달리 읽힐 수 밖에 없다.

 

역사를 이끌어 나가겠다는 생각를 했던 적이 있었다.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그 길에 서겠다는, 젊었을 적의 각오는 희미해졌다. 나의 삶, 가족의 삶 하나 제대로 건사하는 게 쉽지 않아는 걸 깨달으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박건호의 책을 읽으며 지금 내가 남기는 기록 하나하나가 역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은 막중해지는 느낌이 든다. 나의 삶이 시대의 흔적, 기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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