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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주소가 말해주는 것들 | 책을 읽다 2022-01-11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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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주소 이야기

디어드라 마스크 저/연아람 역
민음사 | 2021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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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는 어쩌면 공기처럼 여겨지는지도 모른다. 반드시 필요한데 처음부터 있어 왔던 것으로 말이다.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언뜻 생각하면 그게 없더라도 큰 불편이 있겠냐 싶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주소가 없는 생활이 이만저만 불편하지 않을 거란 걸 금방 깨닫는다. 하다못해 앱으로 치킨을 주문하는데 어디로 배달해달라고 할 것인가.

 

물론 주소가 치킨 주문하는 데 쓰기 위해 만들어진 건 아니다. 좀 더 진지하게 봐서 길을 찾거나 우편물을 제대로 받기 위해 발명된 것도 아니다. 안톤 탄트너에 따르면 주소, 즉 번지의 탄생은 계몽 시대에 있었던, 체제와 계급에 집착했던 18세기에 일어난 가장 의미 있는 혁신 중 하다이다(디어드라 마스크의 주소 이야기, 150). 번지가 매겨진 주소는 세금을 매기기 위해, 청년들을 군대에 징집하기 위해, 범죄자를 찾아내 감옥에 가두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그러니까 국가가 사람들을 쉽게 찾아내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 주소다.

 

그러나 그렇게 발명된 주소는 현대인의 삶에 필수불가결한 것이 되었다. 주소가 없으면 우편물을 주고받지 못하고, 배달 음식을 시켜먹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취직 자체가 되지 않는다. 거의 모든 기업은 지원서에 지원자의 주소를 적도록 하지만, 주소가 없는 사람들, 즉 노숙자에겐 그게 없어 취직을 하지 못한다(그래서 어떤 사람은 노숙자들에게 주소를 주는 운동을 하거나, 또 어떤 사람은 기업의 지원서에 주소란을 없애는 운동을 한다). 주소가 제대로 되어 있지만 응급 상황에서 앰뷸런스가 엉뚱한 곳에서 환자를 찾게 된다. 주소가 없으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소개하는 데도 매우 불편해진다. 주소는 반드시 필요하다.

 

주소는 그저 반드시 필요한 것만이 아니다.

주소는 권력이다. 주소는 국가와 지역의 형성 과정을 반영한다. 주소를 어떻게 부여하느냐는 국가와 사회의 권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준다. 나치 시대에 이전에 붙여졌던 유대인을 나타내는 거리 이름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주소는 또한 집단 기억의 핵심이다. 주소는 사회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미국의 어떤 집단은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의 장군들의 이름을 거리 이름에 붙였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닫고 우려하는 이들은 그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바꾸고자 끊임없이 청원을 넣고, 연설을 하고, 활동을 한다. 나치 시대의 이름 역시 마찬가지다.

 

주소 체계는 또한 세계에 대한 인식 체계를 반영한다. 디어드라 마스크는 서양의 주소 체계와 일본과 한국의 주소 체계를 비교한다. 일본의 주소 체계는 거리 중심이 아니라 블록 중심이다. 이는 일본 문자의 특징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도시계획가 셸던의 설명이고, 디어드라 마스크도 그럴듯하게 받아들인다. 더불어 한국의 주소 체계에 대해서도 한마디 한다. 우리는 일제 강점기 이후 일본의 블록 중심의 주소 체계를 썼다. 우리가 새로운 주소 체계를 쓰기 시작한 것이 2011년의 일이었다. 디어드라 마스크는 한글의 체계가 선적이면서 블록의 특징을 모두 가진, 즉 이중적인 특성을 지녔다고 하면서(한글의 우수성에 대해서는 그녀도 인정하고 있다), 새로운 주소 체계에 저항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문자도 역시 블록으로 인식되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개인적인 생각으론, 겨우 10년 만에 이제는 거리 중심의 주소 체계가 정착되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의 인식은 아직 지금 내가 있는 건물의 주소를 어떤 거리에 있다고 인식하는 게 아니라 어떤 구획에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본다).

 

뉴욕 맨해튼의 주소에서 보듯이 주소는 돈이기도 하다. 영국의 연구에 따르더라도 주소의 거리 이름에 따라 주택 가격이 차이가 난다(‘레인으로 끝나는 거리 이름이 스트리트로 끝나는 주소보다 비싸다. 이나 프린스라는 이름이 붙은 주소의 건물이 이나 프린세스라는 이름이 붙은 주소의 건물보다 값이 나간다). 뉴욕에는 주소의 이름을 돈으로 살 수 있다. 고급 주택을 짓고 뭔가 있어 보이는 주소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걸 가장 잘 이용한 게 트럼프였다고 한다(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 주택사업자였던 시절 얘기다). 그러나 그렇게 있어 보이는 주소는 앰뷸런스가 쉽게 찾지 못하는 주소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주소 이야기가 다채로울 것이란 건 좀 기대했다. 그러나 주소가 이처럼 여러 가지 점에서 중요한 문제라는 건 전혀 상상도 못했다.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주소는 단순히 건물을 구별 짓는 번호가 아니다. 그 사회의 역사와 현재를 반영하는 체계이며, 사람들의 의식까지도 반영하고 결정한다.

당신의 주소는 어떻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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