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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만든 세계에 대한 인식은 세상을 경외롭게 인식하게 한다 | 책을 읽다 2022-05-1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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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연이 만든 세계

션 B. 캐럴 저/장호연 역
코쿤북스 | 2022년 04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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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모노는 프랑수아 자코브와 함께 대장균에서 유전자 조절 메커니즘인 오페론(operon)을 발견한 공로로 196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또한 1970년 자신이 개척한 분자생물학에 기초한 생명관을 피력한 우연과 필연을 내놓았다. 이 책은 제임스 왓슨의 이중나선과 함께 과학 서적으로는 이례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물론 그 깊이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있다. 재미는 그 반대이지만) 최소한 2000년대 초반까지 대학생 필독서였다. 30년 전에 우연과 필연을 읽으며 과학자가 이렇게 철학적 깊이가 있을 수 있는가 놀랐었다. 그의 짝꿍(?)인 프랑수아 자코브도 그 못지않게 철학적 깊이가 있는 책을 내놓았는데, 그게 프랑스 과학자의 전통, 혹은 능력인가 싶기도 했다.

 

우연과 필연에서 모노는 우연이야말로 생물의 모든 혁신과 창조의 유일한 원천이라고 결론내렸다. 그 우연의 결과를 우리는 필연으로 읽는다. 그는 생물의 세계에서 창조자의 계획과 개입을 완전히 무시했다. 다윈이 자연선택설로 우연적인 진화의 경로를 밝힌 이후, 그 바탕에 분자생물학이라는 단단한 근거를 세운 셈이었다.

 


 

 

이보-디보(Evo-Devo) 분야를 개척한 것으로 유명한 진화생물학자 션 B. 캐럴은 모노의 우연과 필연을 언급하며 다시 한번 우연이 만든 세계를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왜 이미 수십 년 전에 모노가 한 이야기를 또다시 하고 있을까? 모노와 모노의 책 내용을 비방한 사람들의 희망대로 세상이 흘러가지 않은 것도 맞지만, 모노의 희망 역시 만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캐럴의 나라인 미국에 사는 사람들 상당수가 세상의 모든 일이 그분의 뜻에 따라 일어난다고 믿는다. 캐럴은 모노가 얘기했던 것에서 출발하여 그가 말하지 못했던 것, 즉 그 이후 과학이 밝혀낸 진실을 통해 이 세상과 생명이 우연에 의한 것이란 걸 제시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이 두 번째 기회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캐럴은 인간의 출현 자체가 굉장하고도 희박한 우연의 결과였다는 것부터 제시하고 있다. 생명의 탄생부터 시작해도 좋겠지만 캐럴은 거기까지 가지는 않고 지금으로부터 6500만 년 전의 일에서 시작한다. 그때 우주에서 날아온 소행성이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측술루브 마을에 맹렬한 속도로 처박혔다. 지구에는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고 당시 지구를 지배하고 있던 공룡을 비롯한 대부분의 생물들이 멸종하고 말았다. 멸종된 생물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대멸종은 현생 포유류의 조상에게는 기회가 되었다. 이전에는 겨우 생존하고 있던 그 생물들의 특성은 그 암울한 시기에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이 되었고, 진화를 거듭하며 인간에까지 이르렀다. 몇 분만 이르거나 늦었어도 대서양이나 태평양에 떨어졌을 6500만 년 전 소행성이 바로 그 자리에 떨어진 것은 엄청난 우연이었다. 이후에도 많은 우연이 현재 지구를 만들어갔고, 또 지구에 살아가는 생물들의 생태를 만들어갔다.

 

진화 자체가 우연의 결과물이다. 캐럴은 자신의 어릴 적 야구 기사에서 찾은 오타를 바탕으로 진화라는 게 그러한 우연한 돌연변이에 의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DNA가 복제하는 과정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날 확률은 매우 낮다. 그냥 낮은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낮다. 말도 되지 않게 정확한 시스템이지만 아주 가끔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실수가 진화의 원동력이 된다. 어떤 부분에서 그런 실수가 날지는 전적으로 우연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그 우연들 중 어떤 것이 선택되는가는 그 생물이 어떤 시기, 어떤 장소에 있는지와 같은 조건에 따라 필연이 되는 것이다. 캐럴은 매머드를 추위에 견딜 수 있게 한 특성과 남극 바다에 사는 물고기의 결빙 방지 유전자의 존재를 설명하며 아름다운 실수라 칭하고 있다.

 

캐럴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가 태어날 확률, 면역 세포가 항체를 만들어내는 가짓수 등을 계산하고 있다. 일단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어떤 특정한 아이가 나올 확률은 염색체만 따지고 봤을 때도 약 70조 분의 1이다. 이는 유전자 재조합이나 특정 염기서열이 바뀌는 돌연변이 등은 무시했을 때의 계산이다. 이 어마어마한 우연의 결과가 라고 한다면 나의 존재, 당신의 존재, 저 아프리카에서 굶어가고 있는 어떤 아이의 존재가 경외롭지 않은가?

 

그렇다. 이 책은 단순히 진화를 옹호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그런 책은 이미 많고, 캐럴도 몇 권 썼다). 이렇게 우연에 의해 이루어진 세상과 생물임을 깨달았을 때 세상이 시시해지는 게 아니라 세계와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생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각은 (암 발생에 관한 돌연변이의 역할과 빈도에 관한 데이터가 보여주듯) 우리가 과학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길을 밝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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