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은 청각을 상실하고도 어떻게 훌륭한 음악을 작곡할 수 있었을까? 한 인간의 장애를 딛고 이뤄낸 위대한 성취라고 감탄만 하기에는 궁금하기 이를 데 없는 이야기다.
베로니카 오킨의 『오래된 기억들의 방』에서 그 비밀의 열쇠를 얻어본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이십대 때 청력을 잃기 시작했지만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 작곡을 했다.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몇 곡은 그의 청력이 가장 약해진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는데 어떻게 곡을 썼을까? 그 답은 그의 청력 약화가 어느 부위에서 발생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부검 결과 그 위치는 청각 신경이었다. 청각 신경은 외부 세계에서 소리를 인도해 두뇌의 청각 피질로 끌어오는 감각 신경이다. 베토벤의 청각 신경은 병에 걸렸지만 소리, 음표, 곡조, 음악을 기억한 청각 피질은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211쪽)
그러니까 베토벤은 새로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지만, 이미 청각 피질에 각인되어 있는 많은 음악적 요소들을 이용해서 음악을 들을 수 있었으며, 작곡을 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오킨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귀가 들리지 않는데도 이제껏 작곡된 것 중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그의 놀라운 재능은 고도로 발달된 청각적 기억이 고도의 기능을 가진 전두엽의 지휘자와 상호작용하는 데서 나온 결과물이다.” (231쪽)
이 얘기는 베토벤의 위대한 업적이 단순히 천재성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의 청각이 멀쩡하던 시기에 쌓은 숱한 경험과 노력이 그의 청각 피질에 고스란히 기억될 수 있었던 것이며, 귀가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그것의 진가가 발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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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들의 방
베로니카 오킨 저/김병화 역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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