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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 인문주의의 가치와 한계 | 옛 리뷰 2015-11-09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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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에라스무스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 저/정민영 역
아롬미디어 | 2006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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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이크는 에라스무스에 대해서 왜 썼을까?

위대한 인간이라서?

세상에 흥미로운 업적을 남긴 시대적 인물이라서?

위대하였지만 시대적 흐름을 타지 못한 연약한 인간이라서?

그에게 물어볼 수도 없기에 정답을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생각해보자면 에라스무스가 츠바이크 자신과 비슷한 인간이라서가 아닐까?

여전히 나는 몽테뉴에게서 츠바이크를 읽듯이 에라스무스에게서도 츠바이크를 읽는다.

그들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고민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인문학자 츠바이크 말이다.

시대의 광기에 밀려 안으로 침잠해야했던 그들의 고민과 츠바이크의 고민은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럼 에라스무스 혹은 츠바이크의 고민, 혹은 고뇌는 무엇일까?

에라스무스의 시대는 종교 개혁의 시대였고, 츠바이크의 시대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시대였다.

종교 개혁의 시대에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는 학자였던 에라스무스는 루터냐, 교황이냐 하는 이분법적인 선택을 강요당했지만, 그는 끝까지 어느 편에도 손을 들지 않았다. 다만 평화만을 강조했을 뿐이었다.

츠바이크도 그랬을 것이다. 그는 히틀러를 피해 달아났지만, 독일을 잊지 못했고, 끝내 선택의 갈림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대와의 불화(누구의 말이었을까?).

정신으로 시대를 해석하고, 미래를 볼 수는 있었지만, 그 정신만으로는 시대를 장악하거나 변화시킬 수 없었던 인문주의자의 고뇌를 수백년의 시간 간격을 두고 둘은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몽테뉴와 마찬가지로 에라스무스는 중고교 시절 단 한 줄로 스쳐가듯 언급되는 인물이다.

우신 예찬(여기선 바보 예찬이라고 번역이 되고 있는데, 사실 우신이 그런 뜻인지도 잘 몰랐다. 아니,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고 해야 맞다.).

그런 책의 저자로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르네상스가 꽃을 피웠다는 예로 거명되는 인물.

그러나, 츠바이크의 에라스무스 평전에서 만나는 에라스무스는 그 정도로만 언급된다면 그와 그의 시대를 좀 잘못 판단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츠바이크는 에라스무스를 최초의 의식있는 세계주의자이자 유럽인’(18), ‘자기 정신세대의 유일한 사람’(30)로 일컫고 있고,

그가 만물 박사’, ‘학문의 군주’, ‘연구의 아버지’, ‘고귀한 신학의 보호자’, ‘세상의 빛’, ‘서양의 피티아’, ‘견줄 데 없는 인간이자 불멸의 박사라 불렸다고 쓰고 있다(109).

말하자면, 근대 인문주의의 대가라는 얘기다.

그 계보는 츠바이크는 몽테뉴로, 스피노자로, 디드로, 볼테르, 레싱으로 이어지고, 많은 회의주의자들, 이상주의자들로, 실러의 문학으로, 칸트의 철학으로, 톨스토이, 간디, 롤랑의 평화주의로 이어진다고 쓰고 있다.

그만큼 사상적 중요성을 가진 인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인문주의를 나타내는 표현은 편견 없음, 이상주의, 평화, 세계주의 등등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츠바이크는 인문주의의 한계를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 그들만의 세계였다는 것인데, 단 몇 %의 지식인들의 이상 세계만이었지, 현실에 뿌리박지 못했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철인통치와도 같은 이상을 꿈꾸었고, 그래서 근대 이후에 높아진 민중 의식에 도저히 융합될 수 없었다. 현실에서의 실패는 당연했다는 것이다.

츠바이크는 스스로 인문주의자로서 자리매김하면서, 그 인문주의의 한계를 인식하였고, 그래서 현실에서의 무기력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셈이다.

실패의 가능성을 알면서도 기질상, 혹은 원칙상 나설 수 없고, 세계의 변혁에 참여할 수 없는 인문주의자의 비애를 에라스무스에게서 찾은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에라스무스가 어떤 생애를 살았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고, 어떤 싸움을 벌였는지를 조목조목 알 수는 없다.

츠바이크는 에라스무스의 행동을 중심으로 에라스무스에 대한 평전을 쓴 게 아니라 그의 사상을 중심으로 바로 들어가 쓰고 있다.

마치 사람의 생애는 언제 무엇을 했는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생각과 그것이 표출되는 방식이 중요하다는 식이다.

그래서 읽을 때는 에라스무스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싶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다 읽고 나면, 그 불분명한 에라스무스가 상당히 선명하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물론 다시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묻는 질문에 명료하게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마음 속에 그가 어떤 인물인지, 현대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남아 있다.

사실 그게 독서라 생각하고, 또 인문이라 생각한다.



(201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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