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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처럼 살다 가다 | 책을 읽다 2022-05-2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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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역사에 불꽃처럼 맞선 자들

강부원 저
믹스커피 | 2022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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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질서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지만 맞서 싸우는 사람이 있다. 대부분은 순응해가며, 아니 적어도 순응하려 애쓰며 살아간다. 그래서 세상에 맞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려 불꽃처럼살다간 사람들을 경외한다. 경외하지만 세상의 질서를 만들고 지켜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이들을 역사에서 배제해야 하며,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야 한다. 어쩌면 역사의 싸움은 그런 이들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얼마나 남기느냐, 혹은 지울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강부원은 세상과 화해하지 못하고, 싸우며 살아간 사람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거나, 달리 기억되던 이들을 소환해서 되살려내고 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좌절의 연속이었고,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이 많은 삶이었다. 실패 속에서 삶의 가치를 찾았던 이들이 대부분이다.

 


 

 

여기에서 소개하고 있는 스물다섯 명의 인물 중 상당수가 여성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1부 자체가 세상에 맞서 싸운 여자들이라고 하여 여성만 다루고 있다. 평양 을밀대에 올라 자신의 주장을 펼쳐, 최초의 고공투쟁 노장자가 된 고무공장 노동자 강주룡, 기생으로서 3.1운동에 참여하고 나중에는 열혈 독립운동가로 거듭난 정칠성, 영화 <암살>의 모델이 되었던 남자현, 조선공산당의 여성 트로이카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 이들은 일제 강점기 시대에 남성 독립운동가, 사회주의자에 가려 있었던 여성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여성으로서 한계를 거부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끝까지 추구한 인물이었다(고명자는 물론 나중에 변절하고 말았지만). 그리고 최초로 일본군의 전쟁 범죄 피해(위안부)를 증언한 김학순,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 수십 년간 해고 무효 투쟁을 벌인 용접공 김진숙 역시 온 몸으로 한 시대를 대변한 용기 있는 삶을 살아간 여성들이었다.

 

1부를 넘어가더라도 여성들은 더 등장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 김점동(혹은 에스더 김, 에스더 박), 조선복재단기를 발명한 이소담,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 여성 언론인으로 <한겨레> 창간에 앞장섰던 조성숙, 그리고 60년대 문학소녀의 대명사였던 전혜린이 그 인물들이다. 이들을 하나의 결로 묶기는 불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불꽃같은삶을 살아갔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여성으로서 제한된 삶을 강요하는 사회에 결연히 반대하고 꿋꿋이 자신의 삶을 살아갔던 인물들이었다.

 

다른 이들, 즉 남성들도 대부분 그렇다. 안창남보다 10년이나 먼저 비행사가 되어 일제와 싸웠던 서왈보, ‘최악의 불량선인으로 불렸던 아나키스트 박열, ‘마을문고의 창시자 엄대섭, 한탄바이러스를 찾아내고, 진단법을 발명했으며, 백신까지 개발한 이호왕, 한국 영화의 개척자로 우뚝 섰지만 젊은 나이에 죽고 만 나운규, 민족 화가 이쾌대, 4.19 이후의 한국 문학의 찬란한 별로 떠올랐고 지금도 전설로 남은 김승옥 등이 그렇다. 이들의 삶 역시 불꽃 같았다.

 

그러나 젊었을 때의 열정을 꺾고 굴종의 삶을 살아간 이들도 소개하고 있다. 젊었을 때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회주의자였지만 결국은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변신한 정연규, 쥘 베른의 SF소설을 최초로 번역한 인물로 밝혀진 신태악 같은 인물들이 그런 인물들이다. 한국 최고의 건축가로 평가받는 김수근에 대해서도 그의 야누스적인 면(‘공간대공분실을 모두 설계)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우리 근현대 역사의 주역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이 빠진 역사가 온전한 역사는 아니다. 위험한 사상을 가졌고, 세상의 질서에 반대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는 그들이 쌓아올린 유산이 더미다. 모든 이가 이들의 삶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들의 추구했던 가치를 한번이라도 생각하고, 존중해주는 것은 그들이 남긴 유산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 후대의 의무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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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설렘은 타당하다 | 책을 읽다 2022-05-22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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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설레는 오브제

이재경 저
갈매나무 | 202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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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보이는 사물의 이면을 깊게 들여다보는 일은 늘 흥미롭다. 늘 관심 속에 있었던 물건인 경우도 있지만, 별로 관심을 받지 못하던 사물들이 가지고 있는 사연을 추궁하고, 그 사연이 확장되어 더 넓은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로 나아간다. 내 주변의 사물들이 달리 보이고, 그것들이 나와 맺고 있는 관계를 돌이켜보게 된다. 말하자면 책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책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게 되는, 그런 조금은 주체적 읽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재경의 설레는 오브제를 펴면서 나도 설랬다. ‘오브제라는 말부터 그랬다. 그냥 사물이나 물건이 아니라 오브제니까. 뭔가 낯선 느낌, 뭔가 생경한 느낌. 어쩌면 뻔한 것에 오브제라는, 이제는 상투적인 외래어를 제목에 썼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낄 만도 하지만, ‘설레는이라는 수식어가 그 느낌을 싹 가져가 버렸다. 나도 설레어야 할 것 같은 느낌.

 

그런데 놀랍게도 이재경을 설레게 하는 오브제, 그러니까 사물들은, 그녀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내게는 정말 오브제라는 느낌 그대로다.

 

나는 그런 의자를 팔러 체어라 부르는지 몰랐고, 그래서 팔리 체어라고 했을 때 무엇을 가리키는지 몰랐다. 뱅커스 램프 역시 마찬가지다. 그림을 보고서야 무척이나 낯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식이다. 낯익으면서도 그것을 부르는 이름, 그것이 가지는 효용 등에 별로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 그런 것들이다. 꿀뜨개도 그렇고, 깅엄체크도 그렇다. 허니콤 볼 역시 그것을 보면 무엇인지 알지만 그것의 이름을 알아볼 생각을 전혀 해본 적도 없다(그러니 내가 뭐라 불러본 적도 없다). 그런 문양을 플뢰르 드 리스라고 부르는지 알 수 없었고(그것이 무슨 의미와 역사에 대해서는 미셸 파스투로를 통해 조금은 알고 있지만), 또 그런 표식을 컴퍼스 로즈라고 부르는지도 몰랐다. 드림캐처는 어떻고, 아티초크는 어떤가. 낯익으면서도 실제로는 낯이 선 이 물건들, 오브제들이다. 그러니 그것들의 이면과 그것들에 대한 생각이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알던 것이면서, 실제로는 몰랐던 것이다. 저자의 경험도 보편적이지만, 또 다른 면으로는 무척이나 특수한 것이다.

 

익숙하면서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도 있다. 봉지와 봉투의 차이에 대해 별로 생각해보지 못했고, 봉지를 발명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더더욱 상상도 해보지 않았었다. 텀블러가 원래 커피보다는 술에 더 가까운 물건이었다는 것(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인데), 여전히 내 책상에 놓여 있으면서 가끔씩 사용하게 되는 페이퍼 나이프가 그렇게 의미가 확장될 수 있다는 것, 쥘부채가 추파의 도구였다는 것, 스콘이 그런 것이었다는 것, 혹은 지역에 따라 먹는 방법이 달랐다는 점. 그런 것들은 그냥 있었던 것일 뿐인데, 이재경의 생각을 통해서 그것의 의미가 달라진다.

 


 

 

우리는 온갖 사물 속에서 살아간다. 그 사물들에는 역사가 있다. 역사는 사물의 역사이기도 하고, 또 그 사물과 얽힌 사회와 개인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런 사연은 늘 확장된다. 확장은 새로운 만남을 향한다. 새로운 만남은 설레는 일이다.

 

그러니까 내 설렘은 타당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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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에 빠졌던 이가 뇌 과학자가 되어 | 책을 읽다 2022-05-21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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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중독에 빠진 뇌 과학자

주디스 그리셀 저/이한나 역
심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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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마약이라 불리는 약물에 관한 책을 몇 권 읽었다. 아직까지 마약이라 불리는 약물을 접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은 없지만 그래도 흥미가 돋는 건 어쩔 수 없다. 순전히 학술적이랄 순 없고, 상당한 부분 호기심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어떻게 그런 약물에 빠지고, 또 왜 그렇게 빠져나오기가 힘든지 등에 관한 건 잘 이해할 수 없으면서 궁금한 내용이기도 하다. 물론 그래도 과학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입장에서 그런 약물들이 작용하는 메커니즘에 대한 아카데믹한 호기심도 조금은 있다.

 


 

 

마약에 관한, 내지는 그런 약물에 관한 중독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었지만(이를테면 오후의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로렌 슬레이터의 블루 드림스, 박성규의 약국에 없는 약과 같은 책들), 이 책은 그 책들과 분명한 차별점을 갖는다. 바로 저자의 이력이다. 주디스 그리셀은 뇌 과학자다. 중독의 메커니즘을 신경과학적 측면에서 연구한다. 그런데 그는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 심각한 마약 중독(지금은 약물사용장애(drug use disorder)'라 불리는)에 아주 깊이 빠져 있었다. 집을 나와 가족과는 아예 연을 끊을 정도였고, 여기에 언급하는 약물 중 해보지 않은 약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 자신의 삶에 대한 애정을 찾고 악착같은 노력 끝에 약물 중독에서 벗어나며 대학원에 진학하고, 결국에 약물 중독에 대한 뇌과학적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당연한 얘기지만 그의 약물의 효과에 대한 묘사, 설명은 너무나도 생생하다. 서로 다른 종류의 약을 했을 때의 다른 느낌은 그저 다른 사람의 묘사나 설명을 전해 들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느낀 것이다. 그래서 술은 오함마이고 코카인이 레이저라면 대마는 한 통은 새빨간 페인트라는 절묘한 표현이 나온다. 나는 이 표현이 얼마나 적확한 것인지 알 수도 없고, 그게 정확히 어떻게 다른지도 짐작에 의존할 뿐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경험이 아니라면 절대로 나올 수 없다는 것쯤은 알아차릴 수 있다.

 

그녀는 약물에 의한 중독에 이르는 과정을 포괄적으로 설명한 다음(사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것 같지만, 그렇게 흥미롭지는 않다) 약물을 몇 가지 종류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중독성 약물이 대표 주자의 대마, 꿈과 현실을 오가게 만드는 아편, 가장 오래되었으면서 가장 많은 사람이 탐닉하면서 가장 파괴적인 약물이 알코올, 대중적인 처방 약물이 된 진정제(바륨부터 시작된 바르비투르산을 비롯하여 마이클 잭슨을 사망에 이르게 한 프로포폴까지), 커피와 담배와 같은 강력한 중독 약물이지만 규제를 받지 않는 것을 포함하여 엑스터시와 같은 강력하게 규제를 받는 약물을 포함하는 각성제, 중독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허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LSD나 사이로빌과 같은 사이키델릭 환각제 등이다.

 

간단히 설명했지만, 여기에서 저자는 커피나 담배를 중독과 관련하여 상당히 해로운 물질로 취급하고 있다. 반면에 LSD와 같은 점잖은 관계자가 들으면 경천동지할 약물에 대해서는 중독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그 효과가 상당히 긍정적이라는 측면에서 서술하고 있다. 이런 내용은 앞에서 언급했던 책에서도 비슷하게 나왔던 내용이다. 그런데 온갖 약물에 취해 밑바닥까지 내려갔다 올라온 이의 경험담에서 온 것이라 조금은 더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자신의 학생들이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기를 간곡히 부탁하고 있는 장면이 몇 차례 나온다. 하지만 그래도 여깃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약물을 선택하게 되는 단일한 이유가 없다는 이유에서, 그리고 현대 사회의 복잡한 상황에 비추어 약물의 선택이 개인의 자유와 관련되어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런데 이 자유와 관련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저 자신이 무엇을 할 자유가 무한히 주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의 불행과 불안,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으로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해서 사회가 조금 더 너그러워 졌으면 한다는 측면에서 자유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자유를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 금지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측면에서(그렇다고 무조건 풀어놓자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귀담아 들어야 할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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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가고 싶다 | 책을 읽다 2022-05-20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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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래서 유럽풍이란 게 뭔가요

이은화 저
폭스코너 |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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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와 관련하여 미국의 도시들은 자주 가봤지만 이상하게 유럽은 기회가 닿질 않았었다. 그러다 3년 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가본 것이 첫 유럽 경험이었다. 사실 재작년 딸이 덴마크에 교환 학생으로 나갔고, 그게 끝나면 합류해서 아내, 딸과 함께 유럽 여행을 계획했었다. 루트를 다 짜고, 숙박할 데도 예약해 두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와중에... COVID-19 팬데믹이 터져버렸다. 아쉬움을 삼키며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 유럽은 발이 잘 닿지 않는구나, 하며.

 

이렇게 쓰면서 나는 유럽이라고 그 대륙의 나라들을 퉁치고 있다. 대체로 다들 그렇게 한다. 유럽연합(EU)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브렉시트로 영국이 뛰쳐나오긴 했지만 거의 한 나라와 같이 지내는 거 아닌가.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퉁치기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유럽인들이 한국과 인도를 같은 아시아라고 별로 구분하지 않고 인식한다면 과연 그게 옳은 처사일지 생각해보면 답은 뻔하다. 대한민국을 동남아시아랑 비슷하게 본다고? 우리는 중국이랑 일본하고도 같이 취급받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방랑 디자이너이은화는 이탈리아에서의 경험과 독일에서의 경험을 비교하며 유럽풍이라는 단어와 인식이 굉장히 허구적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풍경 자체가 다르고, 그래서 사람들의 삶이 다르다. 그녀는 한국과 이탈리아 사이의 차이보다 이탈리아와 독일 사이의 차이가 더 크다고 느낀다. 유럽의 나라들을 그냥 유럽이라고 묶어 놓고 보는 것은 유럽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녀는 이탈리아, 독일의 경험과 프랑스 등을 여행하며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정리하고 있다. 여행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여행에 대한 정보가 없지 않고, 디자인에 관한 얘기를 많이 하고는 있지만 또 그게 아주 전문적으로 다루지도 않는다. 그저 저자의 유럽 경험인 셈인데, 그 경험을 통해 무엇을 느꼈는지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다.

 

인상 깊은 대목들이 있다.

<최후의 심판>의 놀랍도록 청명한 빛깔이 미켈란젤로가 바라봤던 하늘의 색깔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르세상스의 예술가들이, 19세기 인상파 화가들, 특히 모네와 정원과 코흐의 풍경이 바로 그들이 바라봤던 것이었다는 것도 확인한다. 우리의 인식과 작품(그게 꼭 그림이 아니더라도)은 우리의 환경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은 프랑스 리옹의 음식에서도, 독일 쾰른의 카니발에서도 찾을 수 있다.

 


 


 

 

아쉬움도 없지 않다. 저자가 경험한 유럽은 여전히 몇몇 국가에 머문다.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독일. 이른바 유럽의 주요 국가라고 불리는 나라들이다. 다른 나라들은 스쳐가 버리고 만다. 스페인도 없고, 동유럽의 국가들도 없고, 북유럽의 국가들도 없다. 경험한 국가들에서도 지역은 한정된다. 그녀가 주로 머물렀던, 지금도 머무는 이탈리아에서도 남쪽은 언급도 되지 않는다. 경험은 해보지 못했지만, 이탈리아의 북부와 남부는 풍경도, 경제도, 사람들의 성향도 아주 다르다던데... 프랑스는 쾰른과 파리, 영국도 잉글랜드의 런던 정도이지 스코틀랜드 같은 데는 언급도 되지 않는다. 저자의 경험 안에서 그려지는 유럽인 셈이다. 경험하지 않은 것을 쓰라고 할 수는 없고, 자신의 경험한 한계 내에서 굉장히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진짜 유럽을 표방했다는 면에서 더더욱.

 

유럽,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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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가? | 책을 읽다 2022-05-19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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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김준혁 교수가 들려주는 변방의 역사 2

김준혁 저
가갸날 | 202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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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의 역사2권은 1권보다는 좀 소프트하다. 그렇다고 말 그대로 부드러운 얘기들은 아니고, 소재 자체가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많다는 얘기다. 1권이 거의 정치와 권력 기관이나 권력자 들에 대한 얘기였다면 2권은 먹고, 자고, 사랑하는 데서 나오는 얘기들이다. 물론 추악하고, 황당무계한 얘기들도 적지 않지만.

 


 

 

2권에 실은 스물 여섯 꼭지의 글들 중 가장 많은 내용은 여인들에 관한 것이다. 이 이 내용들은 인상 깊을 수 밖에 없는데, 이미 많은 사극에서 다뤄졌던 것들이라 익숙하기도 하지만, 그 익숙함이 왜곡되었던 면도 적지 않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읽게 된다.

특히 임금이나 권력자 주변에서 권력의 도구가 되거나, 혹은 직접 권력을 휘둘렀던 이들의 얘기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연산군보다 열 몇 살이나 위이며 뛰어난 미모를 자랑했던 것도 아닌데 그의 모정 콤플렉스를 자극하며 임금을 가지고 놀았던 장녹수,

소윤(小尹) 윤원형의 신분 상승 욕구와 권력욕의 화신이었던 정난정,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로, 혹은 첩으로 일제의 첩자 노릇을 했던 배정자,

후궁이었던 딸(숙의 문씨)이 딸을 낳자 아들로 바꿔치기를 시도했던 영조의 장모,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아들 명종의 따귀까지 때리며 관철시켰던 문정왕후,

남편 현종을 조선 시대 유일하게 후궁을 두지 못한 임금으로 만들며 꼼짝 못하게 만들고, 아들 숙종마저 좌지우지했던 명성왕후(고종의 왕비가 아니라),

마음은 착했다 하지만 남인과 장희빈을 꺾는 도구가 된 숙빈 최씨(영조의 어머니).

  • 이들의 악행, 혹은 결국은 비극을 읽으며 조선이라는 나라의 부침을 생각하게 하는데, 사실은 이것만 있었던 게 아니기 때문에 500년이라는 세계사에서 그리 흔하지 않은 긴 역사의 왕조로 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 밖에 흥미로운 여인들의 얘기들이 많다.

조선 최대의 섹스 스캔들을 불러일으킨 어우동,

최근 <붉은 소매 끝동>이라는 드라마로 그려진 정조의 후궁 의빈 성씨,

노래는 팔지언정 몸은 팔지 않는다는 기개를 가졌던 조선과 일제 강점기의 기생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여자 경찰 다모(茶母),

등등

 

그리고 조선 시대의 성() 문화, 성생활에 관한 이야기는 2권의 부제 밤의 히히히스토리가 상당히 적절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우리가 근엄하게만 여기는 세종이나 퇴계 이황이 밤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어 오히려 그분들이 상당히 친근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조선, 특히 후기로 들면서 여성들의 삶이 녹록치 않아졌다는 것도 여러 꼭지의 글을 통해 알 수 있다.

 

2권의 역사는 그동안 그렇게 진지하게 다뤄지는 역사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역사 역시 당대의 문화를 투영하고 있으며 오늘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지금 우리의 삶도 역사가 될 터인데, 우리는 어떤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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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웃기지 않은 '히히히스토리' | 책을 읽다 2022-05-18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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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김준혁 교수가 들려주는 변방의 역사 1

김준혁 저
가갸날 |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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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저런 방송을 통해 인지도가 높아진 역사학자 김준혁 교수가 김용민 PD와 함께 유튜브에서 방송한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제목은 히히히스토리’. 웃음 소리와 히스토리를 합쳤다는 것은 저자의 말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말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역사를 재미있게 소개하고자 하는 의도다.

 


 

 

그러나 거의 조선 시대만을 훑고 있는 이 책에서 1권에서는 좀 심각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주로 조선이 어려웠던 시기의 임금과 신하들에 관한 얘기라서 그렇게 흘러갈 수 밖에 없다. 한일병탄 소식을 듣고 어찌 이에 맞서 목숨을 끊는 선비가 없을 수 있냐며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한 황현에서 시작하여 친일파에 관한 이야기들이 있다. 임진왜란 시기에 백성들을 두고 도망가기 급급했던 선조, 불순한 의도에서 벌어진 인조 반정, 즉 쿠데타, 말도 안 되는 조직 문화를 가졌던 사헌부 등을 이야기한다. 그가 이러한 얘기를 풀어놓는데, 묘한 것은 그 역사가 오늘의 현실과 겹쳐지기 때문이다. 개혁의 열망을 품었지만 좌절하고만 정조의 이야기도 그렇고, 오로지 명나라만을 바라보며 이에 반대한 세력을 몰살시키고만 사대주의의 역사도 그렇다. 정여립을 비롯하여 윤휴 등과 같은 인재들을 사형시킨 정치 공작은 또 어떤가?

 

그래서 이 역사 이야기를 읽으며 히히히하고 웃을 수만 없다.

 

이 책을 통해서 새로 알게 된 이야기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글자도 모르는 허수아비 임금으로만 알았던 철종이 개혁 군주를 꿈꾸었다는 것.

김체건, 김광택, 그리고 백동수로 이어진 조선 시대 무사의 계보

사도세자가 기골이 장대해서 보통의 뒤주로는 안 되어 군인들이 쓰는 뒤주를 따로 가져와서 가뒀다는 얘기.

우리나라 유치원의 뿌리가 친일의 역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한 후, 선조에게 훈계조의 상소문을 올리고 홀연히 사라진 곽재우의 신비로운 이야기

등등.

 

역시 알아야 할 것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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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의 밤, 역사를 현실처럼, 현실을 역사처럼 | 책을 읽다 2022-05-17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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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페스트의 밤

오르한 파묵 저/이난아 역
민음사 | 2022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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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고통 받는 와중에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이 제목부터 시의적절한 소설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코로나 팬데믹이 오기 전부터 집필하고 있었고, 소설이 나온 이후에야 팬데믹은 시작되었다. 그렇게 보면 그가 놀랄만한 예언을 한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팬데믹은 언제고 올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이런 식으로 전 세계가 동시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이는 많지 않았겠지만). 소설가로서 그는 강력한 재난 앞에서 사회와 개인이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재난으로 전염병을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재난을 다루는 소설이나 영화는 제한된 공간에 사람들을 격리시킨다. 그렇게 했을 때 재난은 증폭되고, 사람들은 본성을 드러내며, 사회는 인간의 본성에 여지 없이 휘둘린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1901유럽의 병자로 불리며 기울어가는 제국 오스만의 한 섬 민게르 섬에서 일이 벌어지며, 그 섬은 고립되고 만다.

 

민게르 섬은 이슬람교와 기독교(정확히는 그리스정교)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페스트를 막기 위해 오스만 제국의 황제는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방역 전문가인 기독교인 본코프스키 파샤를 파견한다. 그러나 그는 몇 일 지나지 않아 거리의 시체로 발견되고 만다. 이어 민게르 섬으로 파견된 이는 자신이 폐위시키고 감금한 자신의 형이자 전임 황제의 셋째 딸 파키제 술탄과 그녀와 결혼시킨 이슬람교인 의사 누리였다. 그들은 의화단 사태로 혼미한 중국에 특사로 파견되어 가던 중이었다. 파키제 술탄은 결혼 전까지 하렘에 갇혀 밖의 세상을 보지 못하고 살았다. 사실 왜 황제가 자신과 자신의 남편을 중국으로 가는 배에 태웠는지 영문도 모르고 있었다.

 

부마 누리는 민게르 섬의 총독 사미 파샤와 함께 엄격한 방역 조치를 시행하지만 정부의 체계는 허술했고, 주민들은 그 방역 체계를 의심하며 따르지 않았다. 결과는 방역 실패였고, 사망자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만다.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 독일은 섬을 봉쇄하기 위해 전함을 보내고, 이스탄불도 그 압력을 굴복하여 섬의 봉쇄에 동참하고 만다. 민게르 섬은 본국에게도 버림받은 신세가 되어 버렸고, 자력으로 페스트를 극복해야만 하는 처지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극적인 일들이 벌어진다. 그 일들은 의도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여러 우연적 사건이 필연처럼 받아들여지고, 필연은 다시 여러 우연을 통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모든 역사가 그렇고, 소설은 역사가 그러함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오르한 파묵의 이 소설은 매우 정교하다. 가상의 섬이며, 가상의 역사이지만, 실제의 섬처럼, 실제의 역사처럼 여기게 만든다. 그렇게 만드는 것은 실제의 역사가 있었으며, 그런 역사 속에서 동지중해에 떠 있는 한 섬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개연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연적인 사건이 필연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그 우연적인 사건들을 우연적으로만 그리고 있지 않는다. 그 다음에 일어나는 사건들과 아귀가 맞으며, 또 먼 훗날의 운명과도 연결되어 있다.

 

오르한 파묵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이 소설을 완성시켰음에도 이 팬데믹이 어떻게 악화될 수 있는 것인지를 통찰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읽으며 씁쓸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소설에서 묘사하고 있는 1901년 버림받은 한 섬의 풍경이 21세기 세계 곳곳에서 비슷하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시대의 징조를 느낀다고 했었다(황지우). 소설가는 역사를 현재처럼 그린다. 현재를 역사처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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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속의 전염병 | 책을 읽다 2022-05-1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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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리 역사 속 전염병

신병주 저
매일경제신문사 | 202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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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도 당연히 전염병이 있었다. 그리고 전염병에 대한 대책은 왕조의 중요한 임무이기도 했다. 역사학자 신병주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하여 우리 역사의 기록 속에서 전염병을 찾아내 어떤 양상으로 전파되고, 그에 대한 대책은 어떠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COVID-19이 계기가 된 책임에 분명하다. 그것 자체가 어떤 흠이 될 수는 없다. 이 상황에서 과거에는 어떠했는지를 알아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니까. 그리고 역사라는 학문의 덕목에는 그러한 것이 있으니까. 얼마나 그 작업을 충실히 하느냐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우리 역사 속의 전염병이라는 제목을 달고는 있지만, 이 책 속의 우리 역사는 주로(전부는 아니지만) 조선 시대다. 그리고 전염병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의녀들의 활동이나, 허준의 동의보감, 정약용의 마과회통, 종두법을 우리나라에 들여온 지석영 등에 대한 얘기들은 넓게 보면 전염병에 관한 얘기이긴 하지만 조금은 할 수 있는 얘기들이 제한되어 포함시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더군다나 구체저인 전염병에 대한 얘기 전에 이 얘기들부터 있어서 조금 순서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도 든다.

 

그래서 이 책이 원래 의도했던 바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7부부터 10부까지라고 할 수 있다. 서로 구분하기 힘들었던 홍역과 천연두가 우리 역사, 특히 왕실과 민간에 어떤 상처를 냈는지를 역사 속의 기록을 찾아내고 있고, 19세기 조선을 휩쓸었던 콜레라와 온역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이 중 특별하게 여겨지는 것은 왕실에서 이런 전염병들로 꽤나 많은 희생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민간에서의 희생이 더 컸겠지만(민간의 희생은 단순한 숫자로만 기록될 뿐이기도 하다), 당대 최고의 의료 혜택을 볼 수 있었던 왕실의 희생은 다소 의아스럽기도 하다. 그것은 전염병의 정체에 대한 이해 결여(그건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미신에 의존한 대처 등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왕실이 어떤 이가 전염병에 걸렸다고 하면 격리 조치 등이 이뤄지곤 했지만 그것 역시 철저하지 못했던 실정이었다.

 

한 가지 새로 알게 된 사실은 병자호란의 강화가 천연두 때문에 일찍 이뤄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주화파의 득세에 의한 것이기도 했지만, 당시 조선에 들끓던 천연두에 대한 위협 때문에 우리 정부도 굉장히 곤란했고, 홍타이지도 섣불리 조선 땅에 들어오지 못하면서 서둘러 강화를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서 좀더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지석영 전에 정약용이 먼저 우두법을 제안했다는 것도 여기서 알게 된 사실이다. 물론 정약용이 보급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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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블링크를 읽고 | 책을 읽다 2022-05-14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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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블링크

말콤 글래드웰 저/이무열 역
김영사 |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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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링크 (Blink)에 대해서 책날개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블링크blink?

무의식적으로 눈을 깜박이다. 깜박거림, 반짝임.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나 긴급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결정을 내려야 할 때, 2초 동안 우리의 무의식에서 섬광처럼 일어나는 순간적인 판단을 뜻한다.

 

말콤 글래드웰은 <티핑 포인트>에서 집단 행동의 뒤에 숨은 힘을 서술한 데 이어 <블링크>에서는 개인적인 판단의 문제를 서술하고 있다. , 개인이 판단이 사실은 오랫동안 심사숙고한다고 해서 꼭 나은 것은 아니고, 순간적인 판단, 블링크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언뜻 보아서는 전혀 관계없을 것 같은 예들을 통해서 이와 같은 그의 생각을 뒷받침하고 있는데, 이런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는 재주는 이야기꾼들의 전형적인 미덕이고, 부러운 부분이다. 고미술품에 대한 감정, 짧은 대화만으로 부부의 미래에 대한 판단, 의사와 환자와의 대화를 통한 의사사고에 대한 대처 양상, 테니스 선수의 더블 폴트 여부에 대한 직감, 뉴욕 빈민가에서의 총격, 시카고 빈민가 공립 병원의 개혁 등. 언뜻 보아서는 전혀 연관이 없는 얘기들이 시냇물이 강물로 모이듯이 하나씩 모여 블링크라는 주제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순간적인 판단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지만, 모든 사람의 순간적인 판단이 심사숙고보다 나을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지는 않다. 이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바로 이 책의 뒷부분에 실린 그와의 인터뷰에서의 한 토막.

훌륭한 축구 선수가 있다고 합시다. 그는 운동장으로 뛰어나가서 놀랄 만큼 빠른 시간 안에 정확한 판단을 내립니다. 공을 어디로 찰 건지, 어떻게 찰 건지, 공을 가지고 어떻게 할 건지 등등. 그 사람들은 그게 가능해요. 왜냐면 수천, 수만 시간 동안 축구를 했으니까요. , 스스로의 본능을 교육시켜 온 거죠.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성공적인 선수가 될 수 있죠. 경험 없이 순간 판단에 기대는 건 매우 조심해야 할 사항입니다.”

 

, 전문적인 훈련도 받지 않은 사람의 맛에 대한 순간적인 판단이 얼마나 부정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얘기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바로 그의 다음 책, 즉 가장 최근의 책 <아웃 라이어>와도 연결이 된다. 바로 ‘1만 시간의 법칙’.

말하자면, 그의 책 <티핑 포인트>, <블링크>, <아웃라이어>는 연작이다.

집단 행동의 법칙과 개인의 순간적인 판단의 중요성에 대해서 서술하고 그러한 성공을 위한 조건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

 

말콤 글래드웰의 <블링크>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chapter)6장 블링크의 오류 줄이기 빠르게, 그러나 여백을 두어라이다.

 

여기에는 4명의 경찰관의 무고한 흑인 디알로 총격 사건과 실번 톰킨스와 폴 에크만의 얼굴 읽기 (마음 읽기?), 자폐증 환자인 피터에 관한 이야기 등을 통해서 이 책의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핵심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블링크, 즉 순간적인 판단이 가치있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것이다. 가장 실천적인 대목이기도 하다. (119를 누르는 연습 같은 것) 달리 내가 설명할 것 없이 그의 글들을 옮겨와 본다.

 

우리는 당연히 마음으로 감정을 느낌 후에야 그 감정을 표현하거나 혹은 표현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얼굴을 감정의 부산물로 여긴다. 그렇지만 이 연구 (에크만의 연구 등)는 그 과정이 반대일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해 준다. 얼굴에서 감정이 시작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얼굴은 내적 감정의 이차적 게시판이 아니다. 얼굴은 감정의 대등한 파트너이다.” (269)

- 우리는 좋은 표정을 가지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식적 표현체계는 자신의 감정을 의도적으로 전한다. 하지만 오히려 여러 면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무의식적 표현체계다. 이는 진짜 감정을 전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발달시켜 온 방식이다.” (271)

- 톰킨스는 얼굴은 페니스와 같다!”고 했단다. , 우리가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체로) 성욕이란 게 그런 것이니까. 아니, 성욕의 발현은 조절할 수 있을 지언정 페니스를 스스로 조절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니. 우리의 감정은 별 수 없이 얼굴에 씌여지게 마련이다.

 

(자폐증 환자인 피터)는 영원히 마음을 읽지 못하는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특정한 상황에서는 우리도 순간적으로 피터와 다름없어진다. 만일 자폐증 ? 마음을 읽는 능력의 상실-이 만성병이 아니라 일시적인 질환일 수 있다면? 정말 그렇다면 평소에 정상적인 판단을 내렸을 사람들이 가끔씩 참담할 만큼 잘못된 결론을 내리는 사건들을 설명할 수 있을까?” (283~284)

- 순간적인 판단의 잘못을 일시적 자폐증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글래드웰의 생각은 신선하다. 읽어야 할 사람을 읽지 못하고, 원하는 것만 본다는 점에서 극한 순간에서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자폐증에 걸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걸 자폐증이라 부를 수는 없어도

 

우리의 마음은 생명을 위협받을 경우 처리해야 하는 정보의 범위와 양을 극적일 만큼 제한한다. 소리와 기억과 보다 넓은 사회적 이해 따위는 눈앞의 직접적인 위협에 대한 자각을 고조시키기 위해 망각의 제물로 바쳐진다.”

일단 지나친 각성 상태가 되면 (맥박이 175가 넘으면) 시야가 훨씬 좁아진다. 행동이 부당할 만큼 공격적으로 돌변한다. 가능한 한 근육을 단단하게, 이를테면 근육을 일종의 갑옷으로 만들어 상처가 날 때 출혈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러나 막상 그렇게 되면 몸이 뻣뻣하게 굳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287-289)

- ‘클루지’ (Kluge)가 생각난다. 급박한 상황에서의 우리의 반응은 전체적인 시각에서 보면 부적응적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는 하는 수 없이 가장 그럴듯한 반응을 진화시켜왔다. 본능적 보호이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기이다.

 

그래서 과도한 각성 상태가 마음의 눈을 멀게 한다” (293)

- 글래드웰은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그로스만의 입을 빌어 ‘119 다이얼 돌리는 연습을 해야한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훈련과 전문지식의 선물, 즉 경험의 가장 얇은 조각에서 방대한 양의 의미 있는 정보를 추출해 내는 능력이다.”

- 글래드웰은 블링크를 통해서 ()’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훈련과 전문지식의 습득’, 그것도 엄청난 양의 그것이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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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아웃라이어를 읽고 | 책을 읽다 2022-05-14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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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웃라이어

말콤 글래드웰 저/노정태 역/최인철 감수
김영사 | 2009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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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에서 가장 감명(?) 깊은 것은, 우리가 마음 속으로는 그러리라고 생각하면서도 표현은 반대로 하던 것을 명확하게 지적하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 대부분이 그렇다.

'1만 시간의 법칙'부터 보면, 누구나 잘 하기 위해서 열심히 해야하는 줄은 알면서도 성공한 사람들은 열심히 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는 어떤 천재성 같은 것이 있다고 여겨버리는 태도를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 학창시절의 성적도 그렇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열심히 해서 그런 것이지, 그냥 머리가 좋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성적을 우리에게 주어진 어떤 것인냥 말해버리고 스스로를 위안하려고 한다.

"연습은 잘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잘 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1만 시간의 법칙에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1만 시간이 엄청난 시간이라는 점이다. 성인이 아닌 경우, 스스로의 힘만으로 그 정도의 연습을 해낼 수는 없다. 격려해주고 지원해주는 부모가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곤궁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연습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낼 수 없으면 안되므로 가난해서도 곤란하다." (58~59)

 

그다음으로는 캘리포니아 지역의 천재들의 성장과정을 연구한 결과와 천재이면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랭건과 맨허턴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였던 오페하이머를 비교하면서 가정환경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말하자면 성공이란 개인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요소들이 긍정적으로 결합해야한다는 것이다. 가정환경의 중요성, 즉 좋은 가정환경이 커서의 성공과 더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고 우리는 잘 알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걸 그렇게 쉽게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좋지 못한 가정환경을 이겨내고 성공한 사례들에 환호를 한다. 그러나 그건 예외적이기 때문에 뉴스가 된다.

"이 연구에서 마지막으로 문제가 되었던 것은 단 한 가지, 바로 가정환경이었다." (135)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도 혼자서는 자기 길을 만들어가지 못한다." (138)

 

또한 어떤 분야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그 분야에서 성공할 만한 시기와 지역에서 태어나야 한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모든 시기에 걸쳐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확률적으로 비슷하게 나타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뉴욕의 유태인 변호사, 유태인 의류업자 등의 예로 제시한다. 우리의 경우만을 보아도 비슷하다. IT 호황으로 떼돈을 번 사람들은 그 시기에 그것을 받아들이고 충분히 자기 것으로 할 수 있는 나이에 있었던 아주 작은 범위의 세대에 한한다.

"성공에 반드시 필요한 기회가 늘 우리 자신이나 부모에게서 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로부터 온다.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의 특별한 기회가 오는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1955년에 태어나는 것이나 기업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1835년에 태어나는 것처럼, 변호사가 되고자 하는 젊은이에게 1930년에 태어나는 것은 마법의 시간대를 등에 업은 것이나 다름없다." (165)

 

이렇게 적고 보니 굉장히 우울해진다. 우리의 성공은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지지만

좋은 부모도 만나야 하고, 적당한 시기에 태어나야 하고 심지어 적당한 달에 태어나야 하며 (미국, 캐나다의 경우 1월생 운동선수가 많은 것처럼), 어느 곳에 태어나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다면 나의 성공 확률은 대충 어느 정도라는 것이 정해져서 태어난 것인지 모른다. 그것도 모르고 과도한 성공을 꿈꾸거나, 혹은 너무 쉽게 좌절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 들기도 한다.

 

그러나 말콤 글래드웰은 절대로 숙명론자는 아닌듯하다. 성공은 비록 기나긴 유산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유산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 유산을 지금의 나와 연결시키는 것은 나와 가족, 그리고 공동체의 몫이며 또한 1만 시간 동안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 이제 조금은 위안이 된다.

 

"슈퍼스타 변호사와 수학 천재, 소프트웨어 기업가는 얼핏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에서 벗어난 존재처럼 보인다. 그들은 역사와 공동체, 기회, 유산의 산물이다. 그들의 성공은 예외적인 것도 신비로운 것도 아니다. 그들의 성공은 물려받거나, 자신들이 성취했거나 혹은 순전히 운이 좋아 손에 넣게 된 장점 및 유산의 거미줄 위에 놓여 있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을 성공인으로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요소였다. 아웃라이어는 결국, 아웃라이어가 아닌 것이다."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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