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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는 그냥 며느리입니다. 거기까지만... 『며느리를 그만 두는 날』 | 책 2018 2018-11-14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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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며느리를 그만두는 날

가키야 미우 저/고성미 역
레드박스 | 2018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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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우리나라는 물리적으로 가까우면서도 마음이 가닿지를 않았던 멀고도 먼 나라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이런 소설을 읽을 때면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정서가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특히 이 작가가 이런 분위기의 소설을 적나라하게 쓰는 것 같다. 현실의 우리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리면서 뜨끔하게 하는 것, 우리가 불합리하다고 여기는 생각들을 겉으로 꺼내놓는 것. 그래서 직접 들여다보고 그다음의 행동을 고민하는 것까지 이어지게 한다.

 

결혼생활 15년을 함께한 남편이 죽었다. 갑작스러운 일에 가요코는 놀랐지만, 곧 놀라움은 분노와 배신으로 채워진다. 출장을 떠났다는 남편이 호텔에서 뇌졸중으로 급사를 하고, 장례식과 그 이후의 일들은 시댁에서 알아서 처리해주었다. 가요코는 미망인으로 장례식의 자리만 지키면 되었다. 남편의 부재는 당장 집안의 경제적인 문제를 만들었지만, 그것도 어찌어찌 잘 해결될 것 같다. 가요코도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었고, 주택융자금도 갚을 방법이 생겼고, 자식이 없어서 큰 금액은 아니지만, 남편이 남긴 보험금도 있다. 사치하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일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곧 안정된 직장을 찾는다면 더 여유가 생기겠지. 더는 죽은 남편을 애도할 일도, 남편을 그리워할 일도 없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시작됐다. 남편이 죽은 후의 시댁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소설의 제목만 보면 가요코가 남편의 사망 후에 갑자기 시댁과의 모든 관계를 끊어버리는, 말 그대로 며느리였던 가요코가 며느리를 그만두겠다는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언젠가는 그렇게 될지도 모르지만, 가요코가 처음부터 그런 마음을 먹은 것은 아니다. 시어머니는 가요코의 집 열쇠를 가지고 있으면서 수시로 가요코의 집에 드나든다. 죽은 아들이 생각나서 그렇다고 하는데 가요코는 시어머니에게 선뜻 열쇠를 내놓으라고 말하지도 못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편하게 쉬고 싶기도 하고, 어떤 날은 식사를 안 챙겨도 늘어져 있고 싶기도 했다. 누군가 불시에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집은 더는 쉴 곳이 못 된다. 게다가 시부모님이나 시댁 사람들이 무심코 하는 말들이 의미심장하다. 자신들의 노후는 며느리가 있으니까 괜찮다는 둥, 히키코모리 시누이의 앞날을 걱정했는데 그것도 며느리가 있으니까 안심이라는 둥. 가요코라는 인간의 개인적인 삶을 생각하지 않은 채로, 오직 당신 집안의 며느리였던 상태로만 남아주길 원한다. 그러면서 며느리가 나이가 들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그 나이로는 재혼 생각을 못 할 테니. 오 마이 갓~!

 

좀 더 시시콜콜하고 자세한 이야기가 더 있지만, 더 들어봐야 의미 없다. 가요코의 시댁에서 바라는 것은 아들이 없는 상태에서도 당신들의 며느리는 며느리로 그 집안에 뼈를 묻어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다. 하지만 꼭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갑자기 아들이 죽은 이 노부부에게 외로움이 밀려왔을 수도 있고, 가족으로 가요코와 소통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문제는 시댁이라는 존재가 가요코를 대하는 방식이다. 당신들이 원하는 방식의 며느리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거다. 좁은 동네에서, 누굴 만나서 차 한 잔만 마셔도 금세 소문이 나고 이상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입을 막을 수가 없다. 오해의 끝장을 보여주는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 숨이라도 제대로 쉴 수 있게 해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 동네는, 그 동네 사람들은, 그 동네에 같이 사는 시댁 사람들은, 가요코라는 인간을 보는 게 아니라 누구네 집 며느리로만 생각한다. 그 역할만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 같다.

 

더는 안 되겠다 싶을 때, 가요코는 며느리를 그만 두겠다고 한다.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홀로서기를 감행한다. ‘인척관계종료신고서’라는 서류 한 장 제출하면 될 일을 못하고 있었던 시간이 억울할 정도로, 관계 정리는 간단했다. 결혼 전 성 씨로 돌아가고, 시댁과의 관계에서 더는 ‘며느리’로 살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배우자가 죽은 후에 배우자 가족과 인연을 끊는 일. 물론 마음으로 다짐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간단하지 않은 것 같다. 온갖 험악한 말을 듣기도 하고, 더는 이 불편한 관계를 그만하고 싶은데 자꾸 연결 고리를 남겨두려고 하는 한쪽의 바람으로 어려울 때도 있다. 법적으로 배우자 가족과의 관계를 끊는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일본은 ‘인척관계종료신고서’ 한 장으로 가능한가 보다. 일명 사후 이혼. 며느리가 무조건 남편의 부모를 평생 모셔야 한다는 게 잘못된 사고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소설은 남편이 없는 상태에서 시부모님을 평생 모시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가요코의 홀로서기를 통해 보여준다. 누군가의 며느리이기 전에 한 여자로, 한 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그동안 어떤 고정관념이나 주변의 시선 때문에, 자기 의지대로 현실과 미래의 삶을 그릴 수 없던 여성들에게 하나의 삶의 방식을 제시한 것 같다. 누구나 바라는 삶은 똑같지 않은가. 행복하게 사는 것.

 

읽는 내내 답답했던 게, 소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사이다를 조금씩 들이켜는 기분이다. 물론 가요코가 어떤 복수라도 하기를 기대했다면 의외의 반전에 황당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건 남편의 배신 같은 게 아니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 어떤 생각과 선택을 해야 하는지, 현실에서 있는 그대로 적용하며 받아들일 방향을 열어주었다. 어떤 관계든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어갈 수는 없다. 가요코가 선택한 게 맞는다는 믿음이 있다. 정리할 건 정리하고 새로 시작할 건 시작하면서 펼칠 그녀의 내일이 기대된다. 우리의 행복은, 누구에게 기대거나 무의미한 관계를 참아가면서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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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생겼다 | 로맨스가 좋아 2018-11-14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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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동생이 생겼다

주혜민 저
와이엠북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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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의 인연은 9년이라는 세월을 거슬러 또 다른 인연으로 맺어진다.

 

연서는 마케팅 사업부 주임이다.

어렸을 적에 엄마가 데려온 아이가 있었는데, 연서는 그 아이를 좋아했다.

예쁘다고 동생으로 삼고 싶다면서 들떠있었다.

미아보호소에서 데려온 그 아이에게 이서라는 이름도 지어주고,

같이 성장하면서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사이가 된다.

 

하지만 친남매가 아니라는 걸 무의식중에도 느끼는 것일까?

남매인듯 남매가 아닌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른다.

연서의 마음은 잘 모르겠는데, 이서는 연서가 여자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물론 마음으로만 품고 있다. 겉으로 표현하지도 못하고 말이다.

그런 관계는 오래 가지 못하고 이서가 미국으로 떠나면서 소식이 끊긴다.

그리고 9년 후, 이서는 연서의 직장 상사가 되어 나타난다.

이쯤 되면, 두 사람이 다시 만났으니 금방 사랑하는 사이가 되겠구나 싶을 텐데,

쉽게 다시 관계가 이어질 거로 생각할 텐데...

 

이서는 권혁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다른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권혁은 연서가 오래 전 그 연서인 줄 모르고 사랑에 빠진다.

아, 역시 한번 사랑은 바로 또 같은 사랑의 냄새를 맡는 건가.

 

한때 남매였으나 곧 사랑을 하는 사이가 된다는 설정이

어떻게 한 편의 드라마로 펼쳐질까 기대했다.

우리 이런 내용의 드라마, 언젠가 오래 전에 한 편 보지 않았던가? ^^

그러니 새삼 다른 기대감이 있었던 건 아니고,

순간순간 들려올 두 사람의 진심이 오직 설렘으로만 들려오길 바랐다.

나쁘지 않게,

사라진 기억이 돌아오면 더 사랑이 짙어지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어쩌면 기억이 없는 순간에도 같은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았던가 싶은 운명론을 그려가면서,

만나게 될 사람은 기어코 만나게 되는구나 싶은 안도의 한숨을 돌리면서... ^^

 

연상연하 커플의 귀염귀염한 분위기도 살짝 느낄 수 있고,

이서나 연서 캐릭터 눈길을 줄 정도로 매력 있게 그려져서 좋았다.

한번은 설레면서 읽기 좋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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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빛이 내린 | 로맨스가 좋아 2018-11-14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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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붉은빛이 내린

서혜은 저
피플앤스토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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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이 작가의 시대물(?)은 처음 읽는 것 같다.

그동안 짧은 중편이나 단편의 현대물이 끌려서 읽곤 했는데,

이런 분위기도 만들 수 있다니 색다른 느낌이다.

 

여우굴에 웬 낯선 남자가 끌려온다.

사실 좀 의심스럽긴 하다. 끌려온 건지 일부러 끌려오게 만든 건지 저의가 의심스럽다.

늑대굴의 종족 같지만 분명하지 않다.

어쩌면 늑대굴의 스파이일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지켜보는 수밖에...

 

미호는 외로운 존재였다. 그녀의 능력이 너무 강해서 더 외로웠는지도 모르겠다.

미호의 강력한 힘은 그녀의 아버지조차도 그녀 가까이에 갈 수 없게 했다.

자식의 능력이 무서웠던 것일까?

동생 일호에게 급습을 당해서 힘도 잃었고, 유배처럼 떠밀려온 곳이다.

어쩌면 그곳에서 그렇게 있다가 늙어 죽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녀가 늙기도 전에 누가 죽이러 올지도 모르고.

 

그런 위태로운 생활을 하는 미호에게 찾아온 늑대족 남자에게 관심을 둔다.

그녀의 노예처럼 있는 그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녀를 지켜주는 존재가 된다.

나중에서야 드러나고 알게 되는 진실들과 인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데,

조금 더 진심을 털어놓을 때마다 가깝게 다가서는 둘이었다.

 

굉장히 낯설면서도 친근하게 읽히는 이야기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로맨스소설이겠구나 싶었는데,

점점 서로의 기억과 존재감을 확인할 때마다 아직 다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확인하는 즐거움이 있는 소설이다.

악역에 밀려 위기에 빠진 상황을 어떻게 벗어날까 궁금하던 찰나에

외로움에 등이 한껏 굽어지는 순간마다

위기를 벗어나게 해주고 외로움을 쓸어주는 존재가 옆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강한 듯하지만 역시 내면은 말랑말랑하고 한없이 순수한 존재들이었다.

짧지만 즐겁게 읽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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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13~2018 『골든아워2』 | 책 2018 2018-11-12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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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골든아워 2

이국종 저
흐름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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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자주 드나들면 저절로 알게 된다. 어떤 의사(의료진)가 환자를 위하는 건지 그냥 보인다. 저자가 지금 이렇게, 마지막 구명 밧줄을 잡는 것처럼 계속 말하는 이유는 그 무엇도 아니다. 오로지 환자를 위해서다. 환자에게 다가가는 시간이 길어져서 사지를 넘지 않도록 붙잡으려고, 살릴 수 있는 환자를 살리려고. 그게 전부다.

 

저자의 이름을 처음 들었던 게 아덴만 작전이고, 저자의 이름을 다시 들었을 때가 작년이다. 그사이 다른 매체를 통해 인터뷰나 강연을 잠깐씩 보긴 했지만, 그저 사람을 살리는 일에 앞장서는 훌륭한 의사라는 생각까지 만으로 멈췄다. 북한군 병사의 치료를 하면서 그의 인터뷰를 몇 번 보고, 국회의원들에게 중증외상센터의 현실과 대책을 브리핑하는 걸 보면서 뭔가 조금은 달라질 거로 믿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말만 앞선 정책이 아니라, 중증외상센터가 왜 필요하고 그에 필요한 시설을 갖추어야 하는지 일련의 사건들로 증명되지 않았던가. 알려진 것이 그 정도일 뿐, 우리가 들어야 할 이야기는 그보다 많을 것이다. 그때만 해도 나는 우리나라의 병원에 그가 말하는 필요한 시스템을 갖추고, 중증외상센터의 지원이 늘어나서, 병원까지 가지 못해 길에서 죽어가는 환자가 더는 없는 세상이 곧 올 거로 생각했다. 참으로 순진했지. 어느 날 갑자기 CF에 등장한 그를 보고 의아했다. 화면을 보면서도 믿지 않았다. 그가 왜 CF까지 등장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이름을 알려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 싶은 오해를 했다. 나중에 그 CF를 찍어야 했던 배경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지. 그냥 화면에 나올 사람은 아닌 거야. 아직은(?) 내 믿음이 맞는 거야. 응급출동에 필요한 지원을 해주지 않는 정부 대신에, 환자를 살리기 위해 필요한 것을 해주는 통신사와 손잡고 찍은 광고. 그것도 갑자기 출동하게 된 현장을 화면에 담게 되었다는 후문에 한숨이 푹푹 나오더라는...

 

이 책을 읽다 보면 그가 방송이나 다른 인터뷰에서 말하는 현장의 생생함이 더 가깝게 다가온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물론 나 역시도, 아는 게 거의 아무것도 없을지 모르지만...)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다고 저렇게 나대는 거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혹시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이 틀렸다고 말해주고 싶다. 사람의 목숨보다 급하고 중요한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은 다른 무엇도 아니다. 그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려는 것뿐이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시스템과 구조장비를 갖추려는 것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그걸 해주지 못하는 정부나 그런 생각조차도 곱게 보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그의 간절한 바람은 한발도 앞을 나아가지 못한다. 돈이 되지 않는 일이라는 것 때문일까? 당장 눈앞에 엄청난 돈을 물어다 줄 제도가 아니어서 아무도 어떤 기관도 쉽게 협조하지 않는 것일까?

 

책을 읽다가 이렇게 눈물이 나려고 했던 게 참 오랜만이다. 끝이 없는 그의 노력이 시한부가 될까 봐 답답하고, 그런데도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를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내고 있는 그에게 감동해서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더라. 그놈의 행정은 당장 현장에서 필요한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행정을 운운하는 사람들은 무엇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급하지 않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해서일까. 골든아워에 도착해서 치료를 시작해야 환자가 살아날 기회는 늘어난다. 의료진이 환자에게 가까이 갈수록 환자가 살아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거다. 그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준비를 하자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었다니. 미국이나 독일, 영국, 일본에서도 정착되었다는 중증회상센터의 시스템이 대한민국에서는 한없이 어려운 일이라는 걸 보고 무슨 생각을 해야만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살릴 수 있는 생명을 살리는 게 옳은 일인데, 그게 잘못된 것일까?

 

방송이나 언론에서 그의 인터뷰를 한 번씩 볼 때마다 이 커다란 제도를 그 혼자서 이고지고 끌고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한 인터뷰일수록 그의 신념은 사그라진 것 같다. 다음이 없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렇게 노력을 해도 달라지지 않을 일에 그는 어떤 바람조차 더는 갖지 않는 듯 말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가 없는 중증외상센터의 운명을 생각한다. 그곳은 언제까지 운영이 될까, 그가 없는 그곳이 과연 존재할까, 그럼 우리가 목숨을 구할 기회도 사라지는 건가?

 

그 혼자가 아니라 중증외상센터 팀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려준다. 그가 이끌어가고 있지만, 그 혼자서는 이루어낼 수 없는 공간이다. 그래서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의 이야기와 동급으로 들려온다. 틈나는 대로 헬기 출동 훈련을 하고 부족한 장비지만 정비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든 환자를 구하러 갈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응급 출동 현장의 이야기는 더 생생했다. 세월호 사고에도 갔었다는 말을 처음 들었는데, 거기에서도 참 우리나라의 행정은 사람이 우선이 아닌 채로 굴러가더라. 더는 그곳에서 남아있을 이유를 찾지 못한 채로 돌아왔을 때 허탈한 심정이었을 것 같다. 밤에 나는 헬기 소리를 소음이라고 민원을 넣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 만약 그 소음(?)이 지금 나와 내 가족을 살리기 위해 오고 있는 소리가 되었을 때야 아무 말도 안 할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그가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2권에서 보이는 것은, 힘을 잃은 채로 중증외상센터를 떠나는 동료들을 이야기할 때마다 읽고 있는 내 어깨도 축 처진다. 아직 그곳에 남아있다고 해도 그들의 끝은 어떤 모습일지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역시 마찬가지다. 이대로 중증외상센터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사람을 구하고자 한다는 그의 신념과 의지가 끝날 것만 같아서 무섭다.

 

그의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아니, 아예 표정이 없는 사람 같다. 이 사람이 지금 화가 났는지 슬픈지 아픈지 어떤지, 표정을 읽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혹시 로봇인가? 그만큼 그에게서 표정은 물론이고 웃는 것도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던 차에, 그가 활짝 웃는 모습을 봤다. 이런, 그에게 이런 표정도 있구나 싶은 놀라움. TV에서 그의 병원 생활을 취재하는데, 중증외상센터로 실려 온 환자가 잘 치료 받고 퇴원한 후에 외래 진료를 온 장면이 보였다. 그때 그가 활짝 웃으면서 진료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그러면서 이제는 안 봐도 되겠다고, 잘 나았으니 더는 안 와도 된다고 말하며 환자와 웃으면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모습에 놀랐다. 그도 웃을 줄 아는 사람이란 것을 확인한 기쁨도 있지만, 그가 이럴 때 웃는구나 싶은 의미심장한 순간이었다. 죽음에 가까운 상황에서 실려 온 환자가 잘 치료받고 나가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그에게는 이 일을 하는 목적이자 신념이었다. 더도 덜도 아닌, 사람을 살리는 그 자체가 그가 지금 그 자리에 있는 이유다.

 

외상센터 안에는 환자를 끌고 CT를 찍으러 갈 사람도 부족했다. 외상외과 교수들은 다른 대학 병원이라면 수련의들이 할 일들을 직접 몸으로 감당하며 버텨내고 있었다. 새벽 3시에 환자에게 소변줄을 꼽고, 똥으로 오염된 핏물을 온몸에 뒤집어쓰며 수술했다.

이런 현실과는 정반대로 새 정부는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고 나섰다. 각종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정부의 정책 방향은 외상센 터에도 영향을 미쳤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의사들의 업무 공백을 메워주는 전담간호사들의 근무시간도 주 52시간으로 묶여버렸다. 증원은 없으면서 근무시간을 제한하는 기상천외한 정책. 이것은 센터 운영에 엄청난 타격이었다. 나는 세상의 흐름과는 정반대로 돌아가야 간신히 유지될 수 있는 내 처지에 구역질이 올라왔다. (290~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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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없는 역사에는 미래가 없다. 『조선 왕 독살사건 양장 특별판』 | 책 2018 2018-11-08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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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조선 왕 독살사건 1

이덕일 저
다산초당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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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싸움에서 밀려난 자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차지한 자가 왕이 되는 거로 생각하면 단순한데, 뭐든 그 순서와 절차가 자연스럽지 못함을 발견할 때는 복잡해진다. 그럴 때마다 의심하고 불합리한 뭔가를 찾아내고 싶어질 테지만,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에서 왕의 독살을 의심해본 적도 있을 테지만, 아무도 그 독살에 대해 입을 열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사의 기록으로만 만났던 조선왕의 순서별 이름만 외우려고 노력했지 그 기간과 왕권 교체 순간의 내밀한 이야기는 두루뭉술하게 흘려들었다. 저자가 말하는 조선왕의 독살은 그래서 더 궁금하고 흥미롭다.

 

우리 역사에서 이어져 온 각 나라의 왕조가 보통 200~300년을 이어온 것에 비하면 조선이 500여 년이라는 긴 시간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정말 긴 세월이라고 한다. 어떻게 이 긴 세월 왕조를 이어올 수 있었을까? 혹시 조선의 오랜 역사를 이어올 수 있게 했던 것은 왕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조선의 왕권은 절대 권력이라고 하는 중국 왕권과 이름뿐이었던 일본 왕권의 중간쯤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조선의 신하는 왕을 위해 존재하기보다는 당파를 위해 존재하는 당원으로서의 신하였다고 하는 게 맞을 듯하다. 자신이 소속된 당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런 행동이 올바른 나라를 이끌어가고자 애쓰는 왕의 신하 된 도리를 다하는 것 다음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기 때문에 조선의 신하는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크게는 당파를 위해 작게는 개인의 안위와 권력을 위해 태도를 보였던 것 같다. 그러니 자기 당파의 이익과 존재를 위협하는 왕이 등장했을 때, 그 왕의 재위 기간을 단축하게 할 방법을 연구했겠지. 혹은 허수아비 왕을 세울 방법을 찾았거나. 그런 순간에 필요했던 게, 아무도 모르게 왕을 끌어내리는 독살이라는 확실한 방법을 이용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조선의 왕은 4명 중 한 명이 독살당했다고 한다. 적은 숫자가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피를 봐야 했다는 건지도 모른다. 태어나면서 왕족이 되고, 언젠가 왕이 되는 이가 있을 테다. 하지만 왕이 되지 못한 왕족을 생각하면 그 권력을 모른 척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그래서 왕의 자리는 안정적이지 못하다. 항상 목숨을 위협받는 자리였을 거로 추측한다. 보이지 않는 적(?)이 너무 많아서 밤에 잠이나 제대로 잤을까 싶다. 그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위험도 불사할 수 있다는 걸, 조선왕 독살사건으로 알게 된다. 철저한 보안, 왕의 잠자리를 옆에서 지키고 대변까지 확인할 정도의 호위를 하는 곳이 궁궐이다. 그런 곳에서 독살할 수 있었다고 하는 걸 보면 완전한 곳은 아니었으리라. 한두 번도 아니고, 조선의 왕 여러 명이 그렇게 죽어갔다는 건 궁궐은 왕을 위한 곳이 아니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곳은 권력을 쥔 자와 권력을 쥐려는 자의 싸움터일 뿐이다.

 

처음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한 번 읽고, 개정판이 출간되었을 때 읽고, 이번 특별판이 세 번째다. 한 권으로 출간되었던 책이 개정판을 거치면서 두 권으로 늘어난 이유는 독살 의혹을 하게 된 조선왕의 숫자가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인조반정 이후의 조선 후기 역사에 근거하여 시작된 글은 문종의 독살설을 의심하면서 두 권 분량으로 늘어났다. 그러니 조선왕의 독살설은 조선 후기에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거다. 그렇게 이 책에 기록된, 독살된 조선왕은 문종, 단종, 예종, 연산군, 인종, 선조, 소현세자, 효중, 현종, 경종, 정조, 효명세자, 고종까지, 오랜 세월 조선의 역사를 이어오면서 독살된 왕도 많았다는 비례적인 숫자다. 자연사라고 믿어왔던 문종이 수양대군에 의해 처리되었다는 의심, 단종과 예종의 의문사까지 이어진다. 연산군이 폭군이라는 말에 어머니 폐비 윤 씨의 복수라고만 생각했는데, 오히려 다른 내용이 펼쳐진다. 연산군은 자기가 처벌한 사대부들의 재산을 빼앗고 독식했기 때문에 신하들이 반정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살아남은 자들이 바꿔놓은 기록의 분위기가 연산군 이미지를 만드는데 한몫한 건 아니었을까. 인조반정으로 소현세자가 사라지고, 소현세자의 동생인 효종 역시 의문사로 사라졌다. 북벌을 꿈꾸었다던 효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의혹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어의가 침을 잘못 놓아 죽었다니...

 

개인적으로 죽음이 아쉬웠던 왕이 정조다. 개혁 군주라고 불리던 그가 조금만 더 조선을 이끌었다면, 저자의 말처럼 정조가 아마 10년만 더 살았더라면 조선의 운명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정조가 꿈꾸었던 개혁이 좀 더 활발하게 이어져 오늘의 대한민국까지 이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그때 정조가 계속 조선을 이끌며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했다고 해도 어떤 결과를 얻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항상 놓칠 수 없는 부분은 '만약'이라는 가정일 것이기에 말이다. 만약에 그때 정조가 조금 더 조선의 운명을 바꿔놓았더라면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운명도 다른 모습의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하는 가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미 지나온 역사에 만약은 없다. 지나간 역사가 더 아쉽고 안타까운 부분이 존재하는 이유다. '만약'이 없기에,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지나왔기에, 나라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정권이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반성 없는 역사에는 미래가 없으며, 미래가 없는 역사는 어디에도 쓸 데가 없다고. 의심의 부분을 드러내놓고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지나간 조선의 역사 속에서 조선왕 독살설이 들추어내는 게 무엇인지, 그것들을 보고 확인해야 할 것을 강조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남겨진 자의 역사가 아니라 그 순간을 보면서 찾아내야 할 것들을 들려주며 역사에 필요한 것은 반성이라고 말한다. 반성과 함께하는 역사만이 이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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