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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유래로 만나는 인문학... 『언어 천재 조승연의 이야기 인문학』 | 책 2019 2019-03-15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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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대여] 언어천재 조승연의 이야기 인문학

조승연 저
김영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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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를 통해 봤던 저자는 굉장한 지식을 풀어내는,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며 놀랍게 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그가 구사하는 언어 대부분을 혼자 공부했다는 말을 듣고, 언어 천재라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한 가지도 아니고 여러 가지 언어를 그것도 혼자 공부해서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의심스러우면서도, 눈앞에서 그가 증명하고 있으니 반박할 말이 없더라. 천재라는 건 이렇게 태어날 수도 있구나 싶은 놀라움과 그가 그 정도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했을까 싶은 대단함도 보였다. 그런 저자가 단어 하나로 풀어내는 인문학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영어 단어의 유래를, 그 단어에 얽힌 유래로 인문학적 지식을 보태어 들려준다. 듣다 보니 의외의 단어들이 많았다. 지금 그 단어가 설명하는 뜻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도 있었고, 비슷하지만 조금 달라져서 역사를 품고 있는 단어도 있었다. 그의 말을 듣다 보면, 우리 사는 세상에 언어가 있었고 그 언어가 인문학의 뿌리가 되었다는 걸 안다. 단어에 얽힌 사람들의 생활 모습이 그대로 전해지면서, 우리 인류의 역사를 일반적인 생활 모습으로 확인한다. 습관처럼 썼던 말들, 이미 알고 있던 뜻의 단어들이 새롭게 보이는 순간이다.

 

amateur는 라틴어로 사랑을 뜻하는 amor에서 나왔다고 한다. 프로가 아니면서 운동이나 예술에 푹 빠진 사람을 뜻하는 아마추어가 사랑이란 의미에서 나왔다는 게 의아하다. 전혀 다른 맥락의 두 가지 단어 아닌가. 그런데 테니스의 점수 계산에서 0점을 love라고 말하는 이유는 0점으로 지고 있는 사람은 이기든 지든 상관없이 그저 테니스를 사랑하는 마음 자체만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다고 믿었다는데, 그래서 사랑과 아마추어가 같은 의미로 파생된 건가 보다. 그저 운동하는 그 시간만으로 매우 좋다는, 사랑스럽다는, 만족스럽다는 거겠지. 오늘날 대부분의 운동 경기나 예술은 순위를 정하고 그 수상을 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많다. 프로의 자세로 모든 것에 임해야 하는 분야로 여긴다. 하지만 초창기 우리 인간은 운동이나 예술로 싸우고 이겨서 순위권을 차지해야 하는 게 아닌,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그 자체에 행복했겠지. 상대와 적이 아니라 같은 운동을 즐기는 동료쯤으로 여겼을 것이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아마추어의 자세로 대하는 많은 분야의 의미를 되새겼으면 좋겠다.

 

위급한 순간에 울리는 소리를 사이렌이라고 한다. 경찰차도, 소방차도, 구급차도. 위급한 상황이나 집중해 달라고, 길을 비켜달라고 말이다. 알다시피 siren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괴물이다. 세이렌의 소리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바다에 뛰어들어 죽게 된다고. 제대로 된 지도나 나침반이 없이 항해하던 시절, 옛 유럽의 뱃사공들은 세이렌이라는 물귀신들을 무서워했다고 한다. 19세기에 과학이 발달하면서 세이렌 목격담은 점점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바다는 위험한 곳이다. 안개에 배가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감춰진 방하와 충돌해 배가 침몰하기도 한다. 이때 여객선 회사들이 배에 안개호른foghorn이라는 나팔을 달고 다니도록 했다. 안개 낀 날 들려오는 안개호른 소리 역시 세이렌처럼 섬뜩하게 들렸다고 한다. 이후 위험을 알리는 신호는 모두 사이렌이라고 불리게 됐다는 이야기다. 과거의 세이렌이 어쨌든, 현재까지 사이렌이 외치는 위험신호의 의미는 똑같다. 위험하니까 조심하라고, 위급하니까 길을 비켜달라고 말이다. 바다 괴물의 소리가 육지까지 올라와 위험을 알리는 소리가 되었다니, 재밌는 사연이다.

 

십자군 열풍이 유행처럼 번지던 시절에 귀족 남자들은 십자군 전쟁에 참여해야 영웅이 된다는 꿈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떠나버린 남자들. 남겨진 어린 나이의 아내들은 외로웠다. 그 틈을 노린 귀족 부랑아들이 홀로 남은 귀부인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녀들에게 돈을 받았다. 그런 이야기꾼을 '트로바도르'라고 불렀는데, 그들은 귀부인을 최고의 상전으로 여겼다. 진흙땅을 지나갈 때 자기 망토를 벗어 땅 위에 깔아 귀부인의 신발이 더럽혀지지 않게 하고, 귀부인이 말을 탈 때 자기 어깨를 밟고 올라타게 해주었다. 계단이나 마차에 오를 때도 손을 붙들어 오르기 쉽게 해주었으니, 그들의 매너는 남편을 멀리 보내고 외로움에 떠는 귀부인들이 반하기에 충분하지 않았겠는가. 그런 트로바도르가 만들어서 들려주던 사랑 이야기를 '로맨스어로 된 작품'이라고 해서 '로맨스'가 생겨났단다. 로맨스는 점점 남녀 사이의 낭만을 이야기하는 단어로 발전했다. 듣기만 해도 달콤해지는 단어 '로맨스'가 사실은 돈벌이를 위해 꾸며낸 이야기를 들려주는 과정에서 별다른 감정 없이 생겨난 말이라고 하니 좀 서운하다. 뭔가 그럴싸한 사연이나 사랑 정도를 품고 있을, 진짜 로맨틱한 말일 줄 알았더니. 실제 로맨스의 유래가 돈 많은 귀부인의 지갑을 열기 위해 제비들이 물주를 모시던 방법이라니! 하지만 트로바도르가 귀부인들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는 오늘날의 데이트 문화로 현실화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위안으로 삼아주기를.

 

일상에서 가끔, 혹은 자주 쓰던 단어들의 유래에서 인간의 삶을 엿보는 기분이 색다르다. 우리 삶과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면, 그냥 처음부터 지금의 의미로 생겨난 단어 하나쯤으로 여기고 말았을 텐데. 길에서 흔히 보는 간판의 글씨, 인터넷에 유행처럼 번지는 신조어, 책에서 마주하는 낯선 단어까지 우리 삶에 너무 가까이 있다. 그 뜻이 시작되고 변화되는 과정까지 듣다 보면, 단어들이 은근 다정하게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오면서 그 인생에 지혜를 담아 세상을 봤는지 알 것도 같다. 인문학이라고 하면 무거운 느낌부터 드는데, 단어와 함께한 과거로의 여행처럼 들려서 산뜻했다. 이런 식의 접근이라면 인문학이 더는 멀리 있는 학문이 아니라 항상 가까이에서 마주하며 즐길 수 있는 학문으로 거듭날 것 같기도 하다. 일상에 묻어나는 것이야말로 인문학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저자가 들려주는 쉬운 이야기에 보편적인 지식까지 담아온 것 같아서 재미있기까지 하다.

 

대단히 많은 단어의 유래가 있는데, 다 옮길 수는 없으니 책으로 직접 만나 봐도 좋겠다. 지루하지 않게, 색다르게 만나고 즐길 수 있는 인문학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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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를 | 추천 3        
[세트] 학교 다녀왔습니다! (외전 포함) (총3권/완결) | 로맨스가 좋아 2019-03-1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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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주대학 영문과 교수인 김원범.

원범의 외가는 유명한 예술가 집안이다.

어머니는 유니버설 발레단 수석 발레리나였고,

아버지는 권위 있는 클래식 잡지 편집장이다.

하지만 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원범은 예술가로 살아가지 않는다.

돌연변이처럼 그 집안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만의 고집으로 살아간다.

 

그런 원범의 집에 세주대학교 학생이자 발레리나 유망주인 온빛이 들어온다.

원범의 외가가 이끄는 재단 라피네와 원범의 어머니의 후원을 받게 되어

원범의 집으로 들어와 함께 지내게 된 거다.

온빛에게는 그래야만 하는 사정도 있었다.

그런 온빛의 사정 따위 원범이 알바 아니다.

그저 평상시의 흐름을 잃지 않은 일상을 지내고 싶을 뿐인 원범은

온빛의 존재가 그다지 신경쓰지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같은 집에 살게 되면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온빛의 마음을 알게 된다.

온빛의 사연을 알고 온빛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까칠하게만 대했던 원범이 온빛에게 관심두고 마음을 주게 된다는 내용.

 

여주인공 온빛이 복수 전공을 하면서 원범의 강의를 듣게 되고

집에서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봐야 하는 스승과 제자 사이가 된다.

그렇게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처음에는 몰랐던 속마음들을 알게 되니 마음이 가는 건 당연하겠지.

원범에게도 예술가 집안인 외가를 따르지 않겠다는 다짐의 배경이 있었고,

온빛에게도 후원을 받아 발레를 해야만 하는 사정이 있었으니.

서로의 상황과 진심을 알게 되니 그동안 가려졌던 마음이 툭 터지는 건가 보다.

두 사람이 인생의 그늘에서 벗어나 함께하게 되었으니,

이제 좀 더 행복해져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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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선녀 | 로맨스가 좋아 2019-03-15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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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대여] 선남선녀

이희정 저
그래출판 | 2017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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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 전작들이 포근하고 다정한 글이 많던데,

이 작품도 그 분위기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적당히 설레고 적당히 따뜻해서 훈훈한 이야기다.

 

남자 중학교 국어 교사인 김미림.

마녀라는 별명으로 아이들이 무서워하기도 하지만,

나이 서른의 노처녀 대열에 들어선 순간이기도 하다. (서른이 노처녀라니... ㅠㅠ)

뭔가 다급하게 밀려왔는지,

주변 사람에게 소개팅 해달라고 조르는 마녀 쌤.

 

그래서 만난, 컨설팅회사 오너인 이강재.

외모도 훈훈, 커리어도 좋고. 소개팅에서 이런 남자를 만나다니 마녀 쌤 인생 꽃피는 건가?

노노. 이강재는 부드러운 외모와는 달리 성격의 뚝뚝. 얼음 같다.

하지만 미림이 어디 보통 에너지였던가.

그녀만의 밝음으로 얼음 같은 강재의 마음을 녹이기 시작한다.

 

어찌 보면 어떻게 흘러갈지 뻔히 보이는 내용인데,

그 과정이 재밌다.

정반대의 성격으로 보이는 여자와 남자가 섞어지는 걸 지켜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한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웃으면서 즐길 수 있는 소설이다.

둘 다 늦은 나이라고 너무 서두르는 두 집안의 분위기도 그렇고,

두 사람의 마음도 그렇고 해서 결혼까지 무난하게 통과하는 게 시원하기도 하다.

 

가끔 웃고 싶거나 재밌는 사랑 이야기 생각나면 읽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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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빚는 공간들...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 | 책 2019 2019-03-15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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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

유현준 저
와이즈베리 | 2019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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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공간의 시간이 있을 것이다. 어렸을 적, 청춘의 시절, 어른이 된 후 나의 삶을 이루고 흘러간 공간들. 그 공간은 그 자리에 있는 장소로만 머물지 않는다. 나의 기억 속 추억이 되거나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감정으로 가슴에 머문다. 저저가 풀어낸 자기만의 공간도 그러하다. 우리가 모두 간직했을 장소, 다른 사람들 눈에는 평범하고 흔하게 스쳐 지나간 곳일지라도 누군가에게 특별한 시간을 마련해준 장소로 남는 곳. 듣다 보면 특별해진다. 저자의 말 한마디를 들을 때마다 나만의 장소를 찾고 싶어진다. 한 사람의 인생을 채우는 것 중의 하나인 장소를 아름답게 기억해내고, 현재와 앞으로의 삶에서 공간이 줄 무게감을 느끼게 한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로 들을 수도 있지만, 그 사적인 이야기가 우리에게 건네져 올 때 자기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된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가장 많은 삶을 빚는 공간이다. 그곳이 좋아야 그 사람의 삶의 질도 좋아진다. (119페이지)

 

저자를 이 도시에 있게 해준 시간을 만든 장소들이다. 어렸을 적 그가 기억하는 집의 마루와 마당, 형과 나란히 앉았던 집에 있던 그네. 부모님과 할머니가 있던 시절의 장소는 그의 유년 시절을 채운다. 그곳에서 그는 가족의 사랑을 받고 자라는 소년이었으며, 소소한 가족 여행 같은 외출은 그의 시선에 건축을 담기 시작했다. 그의 별자리 여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첫사랑이 이사 간 동네를 기억하고, 주택에서 아파트로 변화하는 일상의 자리를 기억한다. 장소가 바뀌면서 달라진 사고들은 그의 시야를 넓고 다양하게 만든다. 어느 한 곳을 보면서 그가 했을 생각, 다짐, 변화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 목소리는 그의 성장의 시간에 따라 같이 흐른다.

 

 

 

나는 공간을 감정과 연관시켜 기억한다. 다양한 공간과 그 공간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한의원 약초 서랍처럼 여러 개 있다. 디자인을 할 때는 내가 그 공간에서 어떠한 느낌을 받기 원하는지를 먼저 생각한 후 그 서랍에서 필요한 공간을 찾아 대입하는 식으로 작업한다.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기억들이 나를 먹고살게 한다. (87페이지)

 

건축은 일상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 나는 건축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도시에 가서 한 달 이상 살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 지역 사람들의 삶과 건축을 하나의 체험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호텔에 묵으면서 식당에서 밥을 사 먹어서는 안 되고, 그 동네 시장에서 장을 봐서 음식을 해 먹을 때 비로소 현지인의 마음으로 그 도시를 느낄 수 있다. (136페이지)

 

건축을 통해서 일상을 배워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이 책에 담긴 그의 이야기와 맥락을 같이 한다. 눈으로 대충 구경하고 오는 곳은 외관만 기억날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있던 물건들, 사람들까지 함께 경험하면, 그 공간의 특별함이 저절로 보인다. 우리가 기억하는 어떤 장소, 과거의 시간만 봐도 안다. 남들 눈에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는 장소가 우리만의 특별한 장소로 기억될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삶과 장소(건축)가 하나로 이어질 때 그 장소의 의미와 이유가 생긴다. 도시를 경험하고 느끼는 가장 기본적이고 필요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어느 곳에 있든지 벤치는 항상 좋다. 이 도시 속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곳은 모두 움직여야 하는 공간뿐이다. (중략) 도시 속에서 값을 지불하지 않고 앉아 있을 수 있는 자리는 두 곳이다. 도서관과 벤치, 그 중 벤치는 야외 공간에서 앉아서 쉴 수 있는 곳을 제공한다. 내가 지금 앉지 않더라도 비어 있는 벤치는 기분을 좋게 한다. 그런 빈 벤치는 나중에 수 있게 저금해놓은 통장을 보는 듯하다. 벤치가 좋은 또 다른 이유는 다른 사람과 함께 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두 개의 의자를 둔 것과는 달리 벤치는 여러 사람이 앉을 수 있게 의자 상판에 경계가 없다. 그래서 두 사람이 가깝게 앉을 수 있다. (257페이지)

 

사람의 체온과 가장 비슷한 나무 재질로 만든 식탁을 두면 체류 시간이 더 길어지고 몸을 앞으로 기대어 가족 간의 거리가 더 좁아진다. 나무 식급은 더 많은 시간 동안 친밀하게 가족들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267페이지)

 

어느 순간, 우리가 앉을 수 있는 많은 장소는 값을 지급해야 하는 곳이 되었다. 무료로 앉을 수 있는 장소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슬프다. 지급한 값만큼만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 같아서 불편할 때도 있다. 그런 도시 어느 곳에서 만난 벤치는 반갑다. 특히 '경계가 없이' 만들어진 벤치의 특징이 사람 사이의 관계를 변화시키고 정의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하나의 의자에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사이, 불편한 사이보다 다정한 사이가 선택할 수 있는 자리의 구도가 아닐까 싶다. 가깝게 앉아서 같은 방향을 보고 이야기하는, 가끔 고개를 돌려 서로의 얼굴을 보고 눈빛을 마주하며 표정으로 말하기도 하는 순간을 상상한다. 상상에서만 머물지 않은, 일상에서 이미 경험한 순간이었기에 저자가 말하는 벤치의 철학(?)을 공감하게 된다. 그렇게 도시의 많은 곳에서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다시 생각한다. 우리 삶 어느 곳에서 만날 수 있는 편한 자리가 도시에서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말하는 것처럼, 다정하게 들리는 말이다. 그러면서 연결되는 게 주방의 식탁이었다. 가능하면 식탁 위에 유리를 올려놓지 말라고, 차가워서 식탁 유리 위에 팔을 기대어 앉기 어려워서 오래 앉아 있지 못한다고, 차가워서 식탁 의자에 기대어 앉게 된다고, 그러면 마주앉은 사람과의 거리가 멀어진다고. 좀 더 편하고 깔끔하게 사용하고자 식탁 위에 얹은 유리 온도만큼 사람 사이의 온도도 차가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다.

 

5개의 장으로 나누어서 들려오는 그의 시선은 맞춤형 장소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의 유년 시절을 채웠던 공간들, 청년 시절에 많이 다녔던 곳, 우연처럼 마주한 도시의 장소들, 연인과의 시간을 위한 곳, 혼자여도 좋을 시간을 만드는 장소들. 어찌 보면 각 상황에 맞게 선택하여 가 봐도 좋을 여행안내서처럼 들리지만, 이 모든 장소가 그의 시선에 머물며 그의 시간을 채운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그의 걸음이 머문 공간을 상상하는 게 즐거운 순간이다. 그곳에 머문 그의 시간이 어땠을까 떠올려보기도 하면서, 우리 각자가 채울 공간의 시간을 생각해본다. 나 어렸을 적에 엄마와 갔던 오래된 극장, 버스를 타고 다녔던 도시의 어느 구석에 자리한 대중목욕탕, 봄날에 쑥을 캔다고 갔던 시골 동네 뒷산, 건널목 대신 일부러 걸어 올라가던 육교. 말하고 보니 뭔가 자꾸 빠진 느낌이 든다. 어린 시절의 장소는 참 적고, 그 장소를 다니던 시간은 짧았던 것 같다. 어렸을 적의 기억보다는 사실 커가면서 부모님과 다르게 걷던 길이 더 많다. 어른이 되면서 이 작은 도시의 곳곳을 찾아다니는 시간이 많아지고, 부모님이나 가족이 아니라 다르게 인연 맺은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이 늘어나는... 그 모든 게 현재의 나를 만든 시간과 공간이겠지만, 많지 않게 느껴지는 어릴 적의 시간이 아쉽기도 하다.

 

 

도시를 어떻게 즐길 수 있을까, 내 안에 도시의 이미지를 어떻게 새길 수 있을까, 하는 물음과 같이해도 좋을 답이었다. 좁은 골목, 계단, 어느 곳에 놓인 벤치, 도시를 채우는 곳곳의 건물들, 그의 유학시절을 함께 보낸 이국의 장소들, 여행지까지. 그만의 별자리가 되어 존재하는 곳들의 이야기가 빛난다. '별자리'라고 하니 하늘의 별자리를 먼저 떠올렸는데, 그게 아니라 그의 '삶에서 반짝이는 순간과 공간'이라는 의미였다. 그렇게 삶의 궤적을 따라가듯 하나하나 짚어간 공간들은 현재와 앞으로 계속 이어갈 공간을 만든다. 그의 말처럼 도시를 사랑하는 게 별을 따기만큼이나 어렵게 느껴지는 시대에, 도시에 살아가는 이가 도시를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책이 아니었나 싶다. 삭막하고 힘든 시간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세워지는 곳이 아니라, 어느 장소 어느 시간에 우리가 머문 흔적이 행복을 만드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어느 곳이든, 우리가 만드는 감정 그대로를 품은 곳으로 남겨질 것이기에 말이다.

 

 

모든 길은 다 통한다. 홍대에서 한남동으로 가야 한다고 치자. 가는 길은 수없이 많다. 강변북로를 타고 가도 되고, 삼각지와 이태원을 거쳐서 가도 되고, 남산순환도로를 통해서 가도 된다. 신촌 오거리를 통해서 가다가 길이 막히면 아현동 사거리에서 우회전해 공덕동을 통해서 돌아가도 된다. 길을 바꿔 가도 목적지는 같다. 다만 경치만 달라질 뿐이다. (401페이지)

 

여전히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하며 사랑하고, 일하고 움직이면서 살아간다. 그렇게 인생은 채워진다. 한 번씩 떠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할 때 도시의 어느 골목길을 여행자처럼 걷고, 답답해진 머릿속을 비우고 싶을 때 도시의 어느 벤치에 앉아도 좋은, 언젠가 기억 속 그곳이 그리워질 때마다 인생의 별자리를 떠올리는 일은 행복하고 편안할 것 같다. 의도하지 않아도 도시와 연결된 삶, 그 삶을 채우는 공간의 의미를 생각하는 하는 이야기로 오늘의 서늘함이 조금 밀려나는 듯하다. 도시를 경험하고 싶을 때마다, 도시 생활에 지쳐 떠나고 싶을 때마다 펼쳐보면 좋을 듯하다. 도시에서 느끼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 멀리 있는 것만 같았던 자연의 향기, 삭막하다고만 느꼈던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도시의 특별함을 경험할 것이다. 도시를 떠날 수 없는 우리의 삶이 어쩔 수 없다면, 도시와 연결된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게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음을, 그 안에서 한발씩 나아가는 우리 모습을 지켜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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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보노보노, 오늘 하루는 어땠어?

이가라시 미키오 글그림/고주영 역
놀 | 2019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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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 시리즈를 두 편 정도 읽은 게 전부다. 그 정도만으로도 이 만화의 분위기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지만, 그걸 알면서도 꾸준히 보고 싶은 만화이기도 하다. 특이 이번 베스트 컬렉션은 '베스트'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녀석들의 모험 같은 일상이 재밌고 감동으로 다가온다. 얘네들 원래 이랬나 싶게 각 캐릭터를 좀 더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한꺼번에 모아놓고 보니, 그 특징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같은 상황을 두고도 각자 해결하는 자세가 다르다. 각자의 개성이 더 묻어난다고 해야 할까. 그만큼 매력이 달라서 다가오는 색이 다르기 때문에 읽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무엇보다, 이 녀석들의 일상에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들이 우리와 너무 닮았다는 거다. '어라? 이거 나도 궁금했는데, 왜 그런 걸까? 어떻게 해야 하지?' 싶은 문제들을 풀어가는 방식이 가슴으로 한 번에 들어온다. 때로는 고민도 해야 하지만, 우리가 겪는 많은 문제 대부분은 의외로 쉬운 답을 가진 것일지도 모른다.

 

보노보노의 엉뚱함은 그가 하는 고민에 그대로 드러난다. 아빠의 보물창고에 새긴 구멍 때문에 사라진 귀한 것들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발을 동동 구른다. 너부리, 포로리와 머리 맞대고 고민하지만 찾을 방법이 없다. 여기저기 다 뒤져봐도 마찬가지. 길을 떠난 아빠가 돌아올 때는 다 되었고, 사라진 아빠의 보물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러다 누군가의 한 마디에 귀가 번쩍 뜨인다. "혹시 아빠가 길을 떠날 때 그 보물들을 가지고 간 건 아닐까?" 그러네.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럼 처음부터 아빠의 보물창고에 생긴 구멍으로 사라진 보물을 걱정할 게 아니라, 아빠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어봐도 좋았을 것을...

 

왜 우리는 아닐지도 모를 일에 걱정부터 하는 걸까 생각해보게 한다. 나처럼 작은 일 하나에도 마음을 계속 쓰고 고민하는 사람이 보면 좋은 안내서 같은 부분이었다. 보노보노가 아빠의 사라진 보물을 걱정할 때 누군가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를 것이라고 말해주었다면, 아마도 보노보노는 아빠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을까? 처음부터 아빠가 들고 간 게 아니었는지 묻고, 그게 아니라면 다 같이 찾아보면 되는 일이라고 말이다. 우리가 하는 걱정 대부분이 처음부터 할 필요 없는 고민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이 일상적으로 뱉는 쉬운 말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는데, 이 녀석들이 아빠의 보물을 찾아다닌 시간을 보고 있자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언제 해도 해야 할 걱정이라면, 확인해보지도 않고 처음부터 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꼬리를 떼어버리겠다는 너부리의 다짐으로 궁금해졌다. 너부리의 꼬리는 정말 필요 없는 것일까? 처음부터 있던 꼬리의 쓰임새가 분명 있는 거 아닐까? 그러니까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 꼬리는 그 자리에 그대로 붙어 있는 거겠지. 그런데도 너부리는 그 꼬리가 거추장스럽고 마음에 들지 않은가 보다. 떼어버리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것도 그렇고, 어떻게 떼어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도 그렇고, 웬만한 다짐은 아닌 듯하다. 꼬리가 없어도 죽지 않을 것을 알기에 이참에 확 떼어버리고, 예쁜 너부리로 거듭나고 싶었나... 포로리와 보노보노는 너부리의 꼬리에 마음을 두고 너부리의 마음을 바꾸려고, 그동안 그 꼬리가 너부리의 몸에 붙어 있으면서 했던 활약(?)을 하나하나 짚어준다. 혹시나 너부리의 떼어낸 꼬리로 동물 친구들이 놀리면 어쩌려고 그러냐는 둥, 처음부터 한 몸이었으니 당연하다는 둥, 결론은 같다. 꼬리를 떼어낼 필요가 없다는 것. 그때 현명하게 답을 준 족제비 아저씨가 너부리의 다짐을 바꿔놓았는데, 이상하게도 매일 거울을 보면서 내 얼굴을 품평했던 나 자신이 떠오르더라. '나이 먹으면서 눈이 자꾸 처지는데 어떻게 좀 해야 하나? 조금 더 예쁜 외모를 만들고 싶은데 좋은 방법 없을까?' 하면서 하루에도 수없이 생각하던 것을 고민해본다. 떼어내도 죽지 않으니 거추장스러운 꼬리를 떼고 싶다던 너부리처럼, 조금 더 나아지고 싶은 외모를 만든다고 죽지 않으니까. 하지만 굳이 떼어내지 않아도 너부리인 것처럼, 지금보다 더 예쁜 외모가 아니어도 나인 것이라고. 목숨에 지장을 줄 문제가 아니라면, 이대로 사는 게 불편한 게 아니라면, 처음 주어진 상태로 오늘을 살아가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긍정적인 마음을 담아본다. 이대로도 나쁘지 않잖아?

 

꿈을 꾸는 이유를 궁금해하면서도 왜 꿈은 이상한 걸까 고민한다. 꿈이 이상한 건 현실이랑 구분하기 위해서라는 답을 내놓는 너부리의 말에 공감도 된다. 꿈은 그냥 꿈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가 종종 있는데, 그래서일까. 현실에서 이루기 어려운 상황들이 꿈에 나타나는 걸 보면, 정말 현실과 구분하기 위해 꿈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꿈에서라도 간절한 바람을 이뤄보는 거, 잠깐이지만 행복해지는 순간이 될 것 같다. ^^

 

읽다 보면 이 녀석들이 모여서 일으키는 문제들만 보는 것 같다. 나쁘지 않게 웃음을 주면서 그들만의 엉뚱함을 뽐내는 것 같아서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슴을 울컥하게 하는 에피소드에 이 만화가 더 가까이 다가온다. 걷는 게 좋은데 걷는 게 왜 좋을까 자문하는, 혼자 있다는 것을 외로움이라고 해야 할지 고민하는 보노보노의 모습에 사색적으로 된다. 심심하니까 걸을 수도 있고, 풍경을 보면서 걸으니까 좋고, 좋아하는 곳에 갈 수도 있으니까 걷는 게 좋다고 말하면서도, 아주 쿨하고 정확한 답을 내놓는다. 걷는 게 좋으니까 좋은 거라고. 걷는 순간에만 보이는 것들을 소환하면서 천천히 가는 순간의 미학을 담는다. 어떤 의미도 답도 더는 필요 없다는 듯 '좋아하는 것' 자체에 모든 의미가 있다는 거. 생각해보니 그러네. 다른 이유가 있을 수가 없잖아?! 좋으니까 좋은 거, 그 사람이 좋으니까 좋아하는 것. 같은 의미잖아. 좋은 건 그냥 좋은 대로 놔두고 받아들이면 되는 거였다. 흐뭇하게 마음에 두고 그냥 생각하면 되는 거였네. 무언가를,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이렇게 쉬웠는데, 왜 우리는 자주 그 쉬운 일을 어렵게 해야만 했던 것일까 되묻고 싶어진다. '외로움'이라는 화두, 계속 머릿속에 남을 질문이 되었다.

 

 

그렇게 포근해지는 답을 듣다가도, 외로움이라는 주제를 꺼낸 이 녀석들을 보면 진지해진다. 혼자 있는 아빠의 모습이 외로워 보였던 보노보노의 고민에 동물 친구들의 답이 가지각색이지만, 다 맞더라. 원래 모두가 외로운 거라고 말하는 포로리는 모두 쓸쓸하니까 시시한 얘기라도 하고 싶은 거라고 말한다. 그렇게라도 외로움을 달래고 싶다는 말일까? 그러다가 듣게 된 홰내기의 말. '우리는 보통 누군가와 같이 있으니까 혼자 있으면 외로워 보이는 건 당연하다'고. 반대로 혼자 있다가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외로워 보이지 않는 걸까? 행복하기만 한 걸까? 홰내기의 말에 시선을 멈추고 한참 생각했다. 타인의 시선에 외로워 보인다는 말이지 외롭다는 건 아니지 않을까? 그 사람이 외로운지 아닌지 누가 정해주는 걸까 궁금하다. 그래서 자꾸만 사람들은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어 하고, 연애나 결혼으로 짝을 만들고 싶어 하는 걸까 싶기도 하다.

 

이 녀석들의 소소한 에피소드가 어느 순간 인생 철학을 말하는 것 같은 퀄리티가 되어 새겨진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서 마음이 힘든 하루에서, 보노보노와 친구들이 찾아내는 보물 같은 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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