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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는 어떻게 시작되는가 『잔혹한 어머니의 날』 | 책 2020 2020-01-1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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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잔혹한 어머니의 날 1

넬레 노이하우스 저/김진아 역
북로드 | 2019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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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의 대부분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부모의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이 상처 입고 그 폭력을 따라 하기도 하고, 부모의 행동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습득하기도 한다. 부모의 유전자를 받았으니 알게 모르게 닮아가는 모습이 있을 거로 생각한다. 이미 외모부터 닮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게 닮은 많은 것 중에서도 아이의 성장환경에서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클 테다. 부모가 아이의 거울이니, 부모의 모습 그대로 아이는 보고 자라면서 흡수한다. 그러니 우스갯소리로 애들 앞에서는 찬물도 함부로 못 마신다고 하지 않던가.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너무 잘 알고 있기에, 혹시 내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다면 물불 가리지 않고 노력하리라 다짐한 적도 있다. 고백하건데, 아마도 나의 이런 집착 같은 마음은 내가 성장한 환경에서 비롯한 갈증이 아닌가 싶다. 내가 부모를 보고 자라면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들이, 내 부모가 나에게 완전한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원망이 쌓이고 쌓여 정립된 어떤 것 말이다. 넬레 노이하우스가 풀어놓는 이 소설의 중심에도 아이가 있다. 아이를 둔 부모가 가져야 할 책임감이 있다. 모든 일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부모와 아이의 관계에서 시작되었다.

 

맘몰스하인의 오래된 저택에서 시신 한구가 발견된다. 아마도 사망한지 열흘은 지났을 것 같은 80대 노인의 변사체다. 그의 이름은 테오도르 라이펜라트. 그가 아끼던 개는 창고에서 아사 직전의 상태로 발견된다. 혹시 혼자 살던 노인이 고독사한 게 아닐까? 타인의 침입이 아닌 혼자 넘어져서 피를 흘리다가 죽은 건 아닐까? 의심스럽지만 완전한 타살로 보지 않았던 형사들에게 다른 단서가 포착된다. 개가 감금되어 있던 창고의 바다에서 발견된 뼈들. 동물을 많이 키웠다던 죽은 노인의 흔적에 동물 뼈인가 싶지만, 아니었다. 언제 죽었는지 모를 사람의 뼈들이 흐트러져 있던 것이다. 아마도 땅에 파묻은 것을 개가 바닥을 긁으면서 노출된 게 아닐까 싶다. 이제 사건은 고독한 노인의 죽음이 아니라, 연쇄살인으로 전환된다. 그 뼈들의 주인은 누구일까, 왜 그 장소에 묻혀 있던 것일까, 어떤 사건들이 미제로 남아있기에 그 뼈들은 이제 나타났을까.

 

한 노인의 죽음으로 시작되었던 소설은 처음부터 연쇄살인의 긴장감을 불러온다. 추적 결과 시신들은 모두 5월 어머니의 날 전후로 실종된 여성들이었다. 이상하다. 많은 날 중에 하필이면 어머니의 날을 중심으로 벌어진 실종과 살인이라니. 보덴슈타인과 피아 형사 콤비가 밝혀가는 사건의 전말을 끔찍했다. 좋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뒤로는 학대와 잔혹하게 감정의 분풀이를 하는 부부의 진짜 얼굴이 있었다. 테오도르 라이펜라트와 리타 라이펜라트 부부는 수녀원 건물을 사들이고, 20여 년 동안 보육원에서 보내온 아이들을 입양해 키웠다. 보육원에서는 골치 아픈 문제아들을 처리해야 했고, 라이펜라트 부부의 공간과 입양은 그런 문제를 단숨에 해결해주었다. 그렇게 라이펜라트 부부의 집은 여러 명의 아이들을 수용해왔고, 지역의 좋은 사람으로 추천받으며 명성을 누렸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정부 보조금도 챙겼으리라. 하지만 이들 부부에게는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는 것을 외부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다. 이 부부는 서로 사랑하지도 않았고, 서로에게 상처 입히지 못해 안달하면서 평생을 같이 살았다. 그런 부부에게 던져진 아이들이 과연 정상의 사고로, 보편적인 평범함을 배우면서 성장할 수 있었을까? 누가 봐도 이 부부의 가정이 아이를 키울 환경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머니의 날에만 자행된 실종과 살인사건, 형사들과 심리학자는 라이펜라트 부부의 입양아들 중의 한명이 연쇄살인의 범인일 거라고 말한다. 계속되는 추적과 수사로 범인의 윤곽은 점점 좁혀온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그 입양아들 중의 누가 범인인지 쉽게 드러내지도 않는다. 넬레 노이하우스의 작품을 오랜만에 읽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쉽게 이야기의 끝을 들려주지 않는 저자의 매력은 여전했다. 이 사람일까, 아닌 것 같은데, 저 사람일까, 그것도 완전하지 않은데? 여러 사람을 모두 용의선상에 놓고 고민하면서도 선뜻 범인이라고 말할 수 없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이 연쇄살인과 별개로 전개되는 또 다른 이야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등장한 젊은 여자 피오나. 그녀는 미혼모에게 자라났다. 엄마가 죽고 나서 아버지의 존재를 찾아다녔고, 결국 만나게 된 아버지에게서 자기 출생의 비밀을 듣게 된다. 그녀가 알던 엄마와 아빠는 그녀의 생물학적 부모와 연관이 없었다. 이제 진짜 부모를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녀는 아주 작은 단서 하나씩 찾아가면서 기어코, 엄마를 찾아간다.

 

젊은 여자 피오나가 이 연쇄살인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소설에 더 빠져들게 한다. 아무리 찾아봐도 접점이 보이지 않아서다. 이야기는 피오나의 엄마 찾기와 형사들의 연쇄살인 범인 찾기를 보여주면서, 틈틈이 형사 피아의 동생 킴의 흔적을 찾는다. 피아가 동생 킴과 관계가 소원해지고 연락이 뜸해지면서도, 정신분석 의뢰를 핑계로 킴과 연결고리가 만들어지면서 점점 그 궁금증은 커져간다.

 

어느 가정의 울타리 안의 일. 밖에서 그 안을 들여다보는 우리는 얼마나 그들의 모습을 잘 알 수 있을까? 사실 거의 알지 못할 것이다. 그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어떤 사건이 되어서야 밖으로 튀어나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아니면 가정 폭력으로 신고해도 가정의 일이라 경찰이 개입할 수 있는 선이 정해진 건지, 우리가 타인의 삶 안쪽으로 들어가는 일이 쉽지 않다. 그건 관심이 아니라 간섭으로 여길 수 있는 감정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너무 단단하게 엮여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라이펜라트 부부의 폭행과 학대로 희생당한 아이들의 성장 모습을 아무도 볼 수 없던 게 바로 이런 선 때문이었다. 부모가 책임지지 않고 버린 아이들을 구원해준 천사의 모습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던 단단한 가면들 뒤로, 아이들은 혹시나 또 버려지지 않을까 하는 공포로 이 진실을 밝힐 수 없었으리라. 결국은 어른들이 만들어낸 온갖 폭행과 가식과 명예가 이 잔혹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진실은 언젠가 세상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렇게 꽁꽁 숨기려고 했던 노인의 잔인함도 결국은 죽은 후에 드러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이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놓칠 수 없다. 부모가 저지르는 정신적인 학대는 또 다른 학대를 낳는다. 더 큰 희생을 만들면서 더 잔혹해진다. 삐뚤어진 성정을 만들면서 방향이 틀린 원망을 키운다. 그렇게 잔혹한 살인은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아무도 모르게, 점점 살인을 즐기면서 말이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눈감고 침묵하는 사이에, 두려움에 움츠린 아이들이 벌벌 떨기만 하는 사이에, 양부모라는 이들이 서로를 향해 끊임없이 공격하면서 저주하는 사이에, 살인 기계는 계속 업그레이드하여 완벽한 살인에 다다른다. 지금도 매일 뉴스에 등장하는 잔혹한 범죄의 가해자들은 그 성장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던 경우가 많다. 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이 잡혔을 때야 비로소 듣게 되는 그들의 성장 환경, 부모의 성정, 돌봄의 사각지대에 머물면서 자연스럽게 뻗게 되는 범죄의 손짓들. 이쯤 되면 한번은 묻고 싶지 않은가?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를. 이 소설에서 시작된 살인은 어디서부터, 누구에게서부터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미 전작들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이번 작품 또한 굉장한 흡입력이다. 연쇄살인의 공포를 느끼면서도 촘촘하게 짜인 그 관계들의 지점을 찾아내고 싶어서 페이지는 멈추지 않고 넘겨진다. 보덴슈타인과 피아 형사의 머리를 맞댄 추리와 추적은 계속되고, 사건과 연관 없어 보이는 두 여자의 발자취는 끊임없이 시선을 붙잡는다. 마지막까지 왔을 때 밝혀지는 범인과 범인의 추적 과정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그 살인의 이유들이 안타까움을 남긴다. 더불어 우리가 가족이라고 부르는, 조금은 더 단단하고 튼튼하게 엮이고 싶은 그 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묻는 듯하다. 부모가 무엇인지 가족이 무엇인지, 그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어때야 하는지, 혹시 지금 나는 무언가를 보고 있으면서도 방관자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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