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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 『걷는 사람, 하정우』 | 책 2020 2020-01-19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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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저
문학동네 | 2018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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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어 보였다. 그가 책을 낸 게 처음이 아닌지라, 이 책도 낯설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다만, 걷는 사람이라는 타이틀로 내놓을 것을 보니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게 있었을 뿐이다. 이미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이 아는 그 공약 있지 않은가. ^^ 설마 하는 마음에 뱉은 말이 사실이 되었고, 그에게는 수상과 동시에 전 국민이 보는 가운데 공약을 지켜야 하는 숙제가 남았다. 어떻게 되었을까? 그의 걷기는 시작할 수 있었을까? 정말 그 긴 거리를 걷는 게 괜찮을까? 내 일도 아닌데, 그의 걸음에 내 걱정을 얹었더랬다.

 

그의 걷기가,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 국토대장정에 참가하게 된 거로 생각했다. 설마 하는 일은 인간사에서 늘 예외로 생기기 마련이고, 그가 뱉은 말은 그 설마의 증거가 되었다. 나는 그때부터였을 거로 생각했던 거다. 평소 걷기와는 거리가 먼 그의 생활 습관이 그 말 한마디 때문에 시작되었다고 믿었기에, 이렇게 책으로 걷기 이야기를 할 정도의 경지에 오른 그의 일상이 특별해졌다고 믿었다. 잘못 알아도 한참 잘못 안 것 같다. 내가 몰랐던, 영화로 만나던 그의 캐릭터가 아닌, 인간 하정우의 걷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습관 같은 일상이었던 거다. 그러니 국토대장정이라는 험난한 걷기를 그렇게 선뜻(?)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집 근처를 며칠 걷다가도 이런저런 핑계로 하루 이틀 게을리하기 마련인 내 기준에, 국토대장정은 시작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 궁금했다. 그가 어떻게 걸어왔는지, 육체적 걷기를 넘어서서 그의 인생 걷기가 새삼 궁금해졌다.

 

천만 배우 등극에 오른 그가 걸을 수 있는 시간이나 있었을까? 이런 의문은 첫 페이지에서부터, 그의 걷기가 말 한마디 때문에 시작된 게 아닌 것을 알게 된 그 순간부터 해소되었다. 그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걷게 된 한 사람의 역사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청춘의 배고픔은 그의 걷기와 비슷한 느낌이었고, 웬만한 거리는 일단 걸어서 다니는 그의 습관은 그 시절의 고민을 덜어내는 방식이었다. 물론 몸을 쓴다고 이미 생긴 고민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너무 잘 안다. 하지만 생각의 우선순위가 달라지는 걸 지켜보고 있노라면, 머릿속 고민이 몸의 힘듦으로 조금은 옅어지고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겠다.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이 손 하나 까딱할 수 없게 몸을 지배하고 있을 때, 나는 일단 잔다. 이상하게 잠이 온다. 그렇게 누워 있다 보면 스르륵 잠이 오고, 실컷 자고 일어나면 좀 개운해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머릿속 복잡한 일들은 조금 나아진 것 같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 그렇게 느끼게 되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그의 걷기도 비슷하게 작용할 때가 많다. 물론 그의 걷기는 신체와 한 몸이 되어 있기에 이미 익숙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에게도 나름 복잡한 일상의 한 부분을 해결하고 싶을 때 그는 운동화를 꿰어 신고 나간다. 걷는다. 땀을 흘리고 돌아오면서 허기를 느끼고, 집을 나설 때의 고민은 이제 배고픈 일을 먼저 해결하는 것으로 바뀐다. 잠시 밀어두니 조금씩 해결이 보이기도 한다. 복잡하고 급하지만 조금 천천히 가는 일에 그의 걷기가 힘을 발휘한 걸까?

 

답이 없을 때마다 나는 그저 걸었다. 생각이 똑같은 길을 맴돌 때는 두 다리로 직접 걸어 나가는 것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다. (166페이지)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아까 무슨 고민을 했었는지 떠올려보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고민의 주제는 선명한데, 낮에 느꼈던 것만큼 중대하고 어려운 상황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분명히 심각했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렇게까지 엄청난 위기 같지는 않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나는 금방 곯아떨어진다. 단순하게도 인간은 몸을 움직이는 만큼 수면의 질이 높아지는 것 같다. (32페이지)

 

특히 그의 걷기에 활력을 넣는 곳이 하와이다. 가볍게는 관광지로 떠올리기 쉬운데, 그에게는 걷기 좋은 장소, 진짜 쉰다는 의미를 부여하는 곳이다. 하와이에서 자연에 소속되는 느낌을 받으면서 걷는 그의 표정을 상상해본다. 누구나 알아보는 대한민국의 어느 거리보다 편할 것이다. 게다가, 하와이에 있을 때 편하게 변하는 그의 표정만으로도 그는 만족한다. 편한 차림에 마음껏 걸을 수 있고, 허기진 배를 채우고 다시 걷고, 저녁의 풍광을 보면서 다시 걸어서 들어오는 숙소. 누구에게나 그런 장소 하나쯤 만들어두면 좋겠다는 부러움이 생긴다. 걷다가, 앉아서 쉬다가, 다시 걷고, 맛있는 냄새에 끌려 뭔가를 먹고, 또 걷고. 특히 그는 힘들수록 하와이에 가고 싶다고 한다. 어쩌면 하와이는 그가 찾은 치유의 장소가 아닐까 싶다. 힘들 때 가고 싶은 곳, 당신이 떠올리는 그곳은 어디인가. 누구에게나 그런 장소 하나쯤 가지고 있다면 병원에 다니는 횟수가 확 줄어들지도 모른다. ^^ 반바지에 헐렁한 티셔츠에 운동화를 신고 달리는 그를 보면서 이렇게 편하게 지낼 수 있다면, 이 며칠이 그에게는 또 다른 내일, 또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만들어주는 곳이리라.

 

걷기 멤버들을 빼놓을 수 없게, 그와 오래된 이들이 함께 걷는다. 무슨 경쟁 하듯 서로의 걸음 수를 비교하고 채운다. 하와이의 10만 보 걷기 도전에 함께하면서 그들만의 목적지에 도달한다. 걷다가 생각하고, 걷다가 얘기하고. 한편으로는 각자의 머릿속 엉킨 실타래를 조금씩 풀기도 하겠지. 조금만 더 걸으면 목적지에 도달할 것 같은데 생각보다 10만 보는 너무 큰 걸음이었다. 인제 그만 포기할까 싶으면서도 선뜻 누가 먼저 꺼내지 않는 말, 그렇게 주저하다가도 조금씩 걸어가다가 보니 10만 보의 고지에 도달했다. 그 과정이 참 눈물겨웠는데, 그가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서다. 10만 보는 아니지만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이해한다. 일단 걸었는데 목적지까지 너무 멀었다. 어느 정도 가다 보니 닿지 못할 곳에 가려고 애쓰는 대신 되돌아가고 싶었다. 처음 출발한 지점으로 돌아가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을 일이니 그러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갔다가, 조금만 더 걸어가다가... 그렇게 '조금만'을 다짐하면서 걷다 보니 2만 보 이상의 둘레길을 완주했다. 아, 나에게도 이런 순간이 오다니. '조금만 더'의 힘을 생각보다 컸다. 두 다리만 필요한 걷기에 이렇게 큰 노력이 필요한데, 인생에서 부딪히는 크고 작은 일들에 '조금만 더'의 힘은 더 크게 작용하지 않을까? 단순한 걷기가 아니었다. 숙제하듯 삶을 채워가는 우리 모두의 방식으로 작용하는 순간이었다.

 

이것은 꼭 걷기에 관한 얘기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유난히 힘든 날이 오면 우리는 갑자기 거창한 의미를 찾아내려 애쓰고,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의미 없다' '사실 처음부터 다 잘못됐던 것이다'라고 변명한다. 이런 머나먼 여정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최초의 선택과 결심을 등대 삼아 일단 계속 가보아야 하는데, 대뜸 멈춰버리는 것이다.

(중략)

이제 곧 10만 보 고지가 가까워온다. 목표점이 눈앞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다들 조금씩 여유를 되찾는다.

도저히 나가서 걸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날, 혹은 걷다가 체력이 달려서 집으로 당장 돌아가고 싶었던 날, 그런 순간들을 견디게 만든 것은 결국 걷기를 다 마치고 돌아올 때의 성취감이었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그러니 어쩌면 한 걸음 한 걸음은 미래를 위한 저축 같은 것이다. 지금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이고 오히려 괴롭기까지 하지만 훗날 큰 감동과 의미를 선물해주니까. (79~81페이지)

 

운동을 하려고 할 때 가장 먼저 하게 되는 게 걷기, 달리기였다. 비단 하정우가 알려주지 않더라도 걷기는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기본 중의 기본 운동이다. 게으름이 습관인 나부터도 체육관에는 가기 싫어도 걷기라면 바로 따라나서는 걸 보면 말이다. 몸을 관리하는 것을 넘어서서 마음을 정돈하는 방식의 걷기라는 게 아주 마음에 들어서 그의 걸음을 계속 지켜보게 된다. 뭐랄까, 다이어트 효과도 누리면서 머릿속의 혼잡을 다잡고 싶을 때 바로 운동화 꿰어 신고 현관문을 열기만 하면 된다는 쉬운 해결책을 만난 기분? 듣다 보니 더 궁금해진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어떤 배우일까.

 

작품을 고를 때 시나리오뿐만 아니라, 그 작업을 같이할 사람을 본다는 게 기억에 남는다는 그의 말이 인상적이다. 그의 필모그래피에 남긴 작품들에서 인간의 모습이 보이는 거다. 작품의 기본이 되는 시나리오가 굉장히 중요하겠지만, 그 시나리오를 들고 와서 같이 하자고 말하는 사람의 면면을 본다. 오랜 기간 함께 작업해야 하는 사람이 자기 동행이 될 수 있는지 보는 것,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알아가는 일이 영화라는 협업에 얼마나 큰 작용을 하는지 알 것도 같다. 실제로 배우가 처음 받는 시나리오는 완벽하게 짜인 게 아니라고 한다. 영화의 스태프와 배우들이 함께 머리 맞대고 고민하고 의견 나누면서 조금씩 완성해가는 게 그 영화의 시나리오가 된다. 그러니 영화는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일까.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이제 상영관에서 만나는 모든 영화가 달라 보일 것 같다. 취향이나 재미를 떠나서, 이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화면 너머 사람들의 노력과 열정을 그의 목소리로 새삼 다시 듣는다.

 

그가 써 내려간 문장 틈에서 인간 하정우, 배우 하정우를 본다. 걷기로 배운 것들이 너무 많았다. 걷는 일, 그의 일, 그리고 그의 인생. 그의 모든 일상과 인생에도 적당히 숨을 고르고 보폭을 잘 맞춰서 계속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세상이나 타인에 관한 푸념이 아니라, 오직 그의 두 다리로 걸으면서 감사함을 느낀다. 지금 주어진 일에 기꺼이 걸어가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일의 실패와 성공 사이에서도 그가 중심 잡고 걷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것이다. 그는 계속 걸어야 하니까, 육체적으로도 배우로서도. 그리고 걷기 멤버들과 같이 책 읽기에 도전하는 것도 너무 멋졌다. 아니, 더 재밌어 보인다고 해야 할까? 걷기와 책 읽기. 이 묘한 조합에 이들의 모임마저 엿보고 싶은 심정이다. 강요하지 않지만 참여를 독려하고, 완전하지는 않지만 관심 두고 같이 얘기할 수 있는 이들에 더 돈독해지는 관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누구든, 무엇이든, 우리는 함께 했을 때 만들어지는 인생의 한 조각들을 챙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사람이든 일이든 모이게 된다면 배우는 인생을 만들 테니까 말이다.

 

독서와 걷기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저는 그럴 시간 없는데요.'라는 핑계를 대기 쉬운 분야라는 점이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하루에 20쪽 정도 책 읽을 시간, 삼십 분가량 걸을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206페이지)

 

손목에 피트니스밴드를 차고 걷는 그를 상상하면 너무 평범해 보이는데, 넘치는 끼를 주체할 수 없어서 연기를 넘어서 화가라는 명칭에 익숙해진 그는 다른 별의 사람 같았다. 부족한 게 없는 사람, 연기 슬럼프도 없을 것 같이 꾸준히 배역에 녹아드는 사람, 가끔은 흥행에 실패하지만 그래도 천만 배우의 이름이 더 익숙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런 그가 걷는다? 그것도 무슨 행사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걷는다는 게 낯설면서도, 그의 걷기가 계속되어왔던 이유를 듣다 보면 걷기는 그의 현재와 미래에 없어서는 안 될 몸의 일부였다. 몸의 움직임을 따라 걷는 생각의 조각들, 현재의 겸손이 흐트러질 수 없게 단단히 잡아주는 것, 혹시나 주저앉고 싶을 때 슬쩍 손을 내밀어 주려는 힘 같은 것. 거침없이 1만 보 이상의 걸음으로 서울을 누비고 다니면서, 연기를 위한 급 다이어트에도 그의 걷기는 힘을 발휘한다. 들으면 들을수록 걷기는 그에게 운동 이상의 의미라는 것을 너무 잘 알겠다. 숨 쉬고 명상하고, 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리해주는 길 위의 상담소라고 해도 될까. 도대체 그는 걸으면서 길 위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이렇게 걷기 예찬론자가 되었을까. 아마도 유명 배우가 아닌, 그냥 배우의 시절을 보낼 때부터였던 듯하다. 무대에 오를 기회는 자주 없었고, 그러다 보니 그의 연기를 보여줄 사람도 없었다던 그때. 그렇다고 그가 연기하려 여기저기 찾아다닐 수 없던 순간에도 걷기는 그가 계속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사람이 절망에 빠지는 건 한순간일 텐데, 그는 걷기 습관으로 매번 그 위기를 넘기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언제 어디서든 그가 연기를 보여줄 기회가 주어졌을 때 주저하지 않고 보여줄 수 있는 준비를 하게 만드는 선생 같은 역할이었다. 항상 준비된 연기자, 언제라도 그의 연기가 빛을 발할 수 있게 다져준 바닥 같은, 이제 믿고 보는 배우가 된 하정우의 지금을 만든 건 걷기였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먹기 위해서라도 걸어야 한다는 걸 몸으로 보여준 그다. 찰진 먹방으로 유명한 그에게 아마도 걷기가 없던 일상이었다면 지금쯤 씨름 선수의 체격을 갖추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했다. 여지없이 그가 스스로 그렇게 말을 한다. 걷기를 즐기지 않았다면 150kg이 넘는 몸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걸으면서 생각하는 걷기 이후의 식사, 스스로 장을 보고 먹고 싶은 것을 정하면서 발걸음을 향하고. 그러면서 저절로 조금 전까지 했던 고민은 사라진다. 걸으면서 보이는 길 위의 많은 것, 점점 보이는 것들을 생각하고,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생각이 꼬리를 물고. 어느 순간 처음의 고민은 사라져간다. 잊게 된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렇다고 해서 처음의 고민이 해결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걷다 보니 다른 생각이 침범하면서 머릿속을 채우던 고민이 처음처럼 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가는 순간이었던 거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뭔가 바라보던 눈이, 고민의 크기가 달라지고 있었다. 우리 일상의, 인생의 많은 일이 정말 그러지 않을까 싶다. 생각보다 크지 않았던 것, 시간이 조금은 해결해주는 것도 있다는 것, 조금은 더 지켜봐도 괜찮을 거라는 것. 인생이 그렇게 흘러간다는 것을 또 한 번 배운다.

 

삶은 그냥 살아나가는 것이다. 건강하게, 열심히 걸어 나가는 것이 우리가 삶에서 해볼 수 있는 전부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고민하고 머리를 굴려봤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이렇게 기도한 이후로 이상하게 조금 더 마음이 편해졌다. 무슨 일에든 더 담대해질 수 있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어찌해볼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명백한 사실은, 내게 포기나 체념이 아니라 일종의 무모함을 선물해주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길을 그저 부지런하게 갈 뿐이다. (291페이지)

 

배우나 감독 하정우가 아니라 그냥 하정우가, 나와는 거리가 먼 곳에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나와 비슷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한 사람의 인생이 보인다. 사실 그걸 몰라서는 아닐 테다. 아무래도 그걸 느끼기가 쉽지 않은 현실의 많은 모습 때문이었을 거다. 심란하면 집 근처를 걷는 것처럼, 근처 공원에 벤치에 앉아 찬바람 실컷 맞고 들어오는 것처럼, 때로는 잠이 보약이라고 미친 듯이 자는 것처럼, 그의 걷기는 나와 닮은 듯하다. 그가 괜히 친근해 보이는 게 내 오버일까. 그래도 뭐, 이렇게라도 그와 가까워진 느낌이 너무 좋다. 특별하지만 평범한 그의 모습을 본 것도 즐겁다. 잠시 후에 바로 나가서 걷고 싶은 갈증을 만드는 그의 문장들도 신난다. 인간 하정우, 걷는 사람 하정우를 만난 지금, 길 위의 많은 것을 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 같아서 나의 걷기도 기대된다. 인생을 채우는 여러 가지 느낌들 안에서 만난, 이 책 속 문장들의 온도가 높아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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