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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나를 찾아왔던 아버지는 『스웨덴 기사』 | 책 2022 2022-01-26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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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스웨덴 기사

레오 페루츠 저/강명순 역
열린책들 | 2020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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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의 고백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미스터리한 추리소설 같으면서도, 주인공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지게 했다. 매 순간 선택의 지옥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때마다 그는 본능이 말하는 대로 움직였겠지. 그게 아니라면 그는 갈 곳이 없었다. 다른 선택이 있을 수도 없었다. 목숨을 건 방향으로 걷는 것 말고, 그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소설은 마리아 크리스티네라는 여인의 고백으로 시작한다. 살아온 세월만큼 쌓인 기억을 써 내려갔다. 이 원고는 후에 손자가 발견하고 출간하게 되는데, 18세기에 접했던 다양한 사건이 배경이 된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는 스웨덴 기사라는 제목으로, 자기가 어렸을 때 돌아가신 아버지에 관한 내용이었고, 그 묘한 내용은 독자에게 이 소설의 결말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기대하게 했다. 당연하지. 전투에 참여한 아버지가 그 밤에 올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아버지가 그리웠던 밤에 딸의 눈앞에 나타난 아버지, 그 아버지는 오래 머물지 못하고 곧 사라졌으며, 딸은 그런 아버지의 방문이 꿈인지 아닌지 헷갈리면서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사랑과 온기가 그대로 전해져오던 그 짧은 시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스러운 만남은 후에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남겨진 딸은 그날의 일을 아직도 분명히 알지 못한다. 이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딸의 눈에 보였던 아버지가 아버지였는지 아닌지 의문스러운 상태로 말이다.

 

1701년의 어느 추운 날이었다.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된 두 사람이 추위를 뚫고 걷고 있다. 한 명은 도망 중인 도둑, 다른 한 명 역시 도망 중인 병사였다. 먹을 것이 없어서 훔치다가 붙잡힌 도둑은 다시 잡히면 안 되는 간절함이 있다. 병사는 명예로운 삶을 위해 참전했으나 견디기 어려워 탈영했기에 용기병들에게 쫓기고 있다. 눈보라와 거친 바람에 시달리면서 지칠 대로 지친 둘은 어느 허름한 물레방앗간에 도착하는데, 그곳에서 더 움직일 수 없던 병사는 도둑에게 부탁한다. 병사는 귀족 청년 토르네펠트였으며, 물레방앗간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의 대부이자 친척이 살고 있다면서, 도둑을 그곳에 보내 도움을 청하려고 한다. 용기병에게 쫓기며 위험한 것은 탈영병이나 도둑이나 마찬가지인데, 그 상황에서 도둑은 탈영병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러나저러나, 인생 끝에 다다른 것 같은 느낌은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어쩔 수 없지, 운명을 시험해보는 수밖에.

 

귀족의 부탁을 받고 영주를 찾아간 도둑은 어떻게 했을까? 어느 정도 예감했듯이, 도둑은 귀족을 배신하고 영주의 터전에 자리 잡는다. 그의 눈에 들어온 아리따운 아가씨의 약혼자로 둔갑하여 사랑을 이루고 신분도 바꾼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던 그의 인생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오랜 세월 저택의 하인으로 살아온 그가 그동안의 경험으로 무너져버린 영주의 공간을 부활시킨다. 제때 파종하지 않고 게으른 농사로 영주의 가문은 황폐해졌던 거다. 그곳에 영주는 없고(죽었으니까) 영주의 딸만 있었는데, 주인으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에 그곳은 이미 죽은 땅이 되어버렸다. 그런 곳이, 그가 등장한 후로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귀족(탈영병)의 약혼자와 결혼하여 귀족이 되었고, 아내의 가문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다.

 

그럼 원래 귀족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도둑을 믿고 영주에게 구조요청을 했으나, 도둑의 거짓말로 주교의 지옥이라 불리는 곳으로 가게 된다. 그렇게 운명이 나뉜 두 사람의 인생은 각자의 상황대로 흘러간다. 소설은 대부분 주인공인 도둑의 삶을 말하는데, 읽으면서도 한 번씩 떠오르는 궁금증 때문에 들려오지 않는 귀족 청년의 안부가 궁금했다. 도둑은 신분을 바꿔 아내까지 챙기면서 잘만 살고 있는데, 어디로 사라진 건지 귀족 청년은 보이지가 않네.

 

사실 도둑은 도둑으로 살다가 쫓기고, 귀족 청년을 속이고 그를 멀리 보내고, 다시 성물 도적단으로 활동하면서 부를 축적하지만,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되었을 때 영주를 찾으면서 신분을 바꿨다. 이제 팔자 폈구나 싶을 무렵, 그가 거짓말로 이룬 모든 것에 대가를 치를 순간이 온 거다. 사는 동안 마음 편하지 않았겠지. 사랑스러운 아내와 딸, 부유한 삶이 그를 안정되게 했지만, 그러면서도 한 번씩 찾아오는 우울한 감정을 견딜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닌 건 아닐까? 언젠가 들통나면 어쩌지? 역시 이 세상 나쁜 일에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게 답인가 보다. 그에게 다가온 추격자들을 피해, 어찌 보면 이 불운의 상황을 마무리하고자 했던 일이 실패함으로써 모든 것을 잃는다. 그가 아끼는 딸까지 말이다. 다시 궁지에 몰린 그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이때 반전처럼 나타난 귀족 청년과 아버지가 떠난 후에 밤마다 자기 방에 찾아왔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는 딸의 이야기가 연결되는데, 마치 처음에 등장했던 상황의 의아함이 이 지점에서 맞춰지면서 우아한 미스터리가 된 느낌이다. 어느 설명에서는 이 소설을 환상 소설이라고 말하던데, 환상적인 분위기가 소설 전체에 깔려있기는 하지만, 나에게는 결말까지 보고 나면 무릎을 치게 하는 구성이 오히려 더 돋보였다. 장면 곳곳에 잘 녹아든 복선과 어느 순간 조금씩 맞춰져 가는 반전이 잘 짜인 추리소설 읽는 느낌이 강하게 남는다.

 

스웨덴 역사가 배경이 되기도 하면서, 그 커다란 역사 속 개인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다양하게 보여준다. 먹을 것이 없어서 훔쳐야만 했던 도둑(그는 처음에 어느 저택의 하인이었으리라), 가문의 영광을 이어가고자 전투에 참여한 귀족 청년(의미 없는 싸움에 목숨을 건 명예가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금수저로 태어나서 아무것도 할 줄 모른 채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문을 이끌 수 없는 의지박약 약혼자(가진 것이 줄줄 새는 줄도 모르고 지킬 힘도 없는 그녀가 정신을 차렸으면 했는데)까지, 누구 하나 온전한 삶을 이어가지 못하는 듯하다. 그 상황에 도둑과 귀족 청년의 바뀐 운명이 무슨 일인가 하는 걱정도 잠시, 이야기는 독자를 미친 듯이 빨아들인다. 누구나 궁금하지 않을까? 운명이 바뀐 두 청년이 어떻게 되었을지, 어떤 결말로 두 사람의 운명을 마무리할지. 다 읽고 나면 이상하게 슬픔이 밀려와서 당황스러웠는데, 지키지 못한 사랑과 욕망의 한계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누구나 사랑을 느끼고 욕망이 있다. 도둑 역시 자신의 욕망에 따랐을 뿐이고, 불안함 가운데 그 욕망의 결과물을 지키고 싶었을 텐데 말이지. 운명의 절묘한 힘을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나 보다.

 

재미있다. 처음과 마지막이 서로 잘 연결된 짜임새가 매력적인 소설이기도 하다. 고전의 재미가 이런 거라면 계속 읽어도 좋을 것 같고, 사랑과 욕망, 운명과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마 내가 도둑이었어도 그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나중에 어떤 운명이 찾아와도 지금은 그 사랑을 선택하고야 말았으리라. 레오 페루츠의 다른 작품 곧 찾아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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