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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한 선진국 대한민국의 민낯 | 기본 카테고리 2022-01-1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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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불평등한 선진국

박재용 저
북루덴스 |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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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한 나라의 경제 수준을 평가하는 지표인 GDP 기준으로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이고, OECD 내 국제적인 위상도 그 정도 회의에 초대받을 만큼 올라섰다. IT 강국답게 노동자 1만 명당 산업용 로봇 사용량으로 따지는 로봇 밀집도는 세계 1위다.(107쪽) 비단 경제력뿐 아니라 최근에는 BTS, 오징어 게임, 기생충 등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도 전 세계를 강타하여 국민의 자부심을 높였다.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 사회 전반적인 도덕 지수는 그만큼은 아니라고 보지만, 어쨌든 전쟁의 포화속에서 탄생한 분단국인 점을 감안하면 분명 대단한 성취라 하겠다.

박재용이 쓴 <불평등한 선진국>(부제 : 대한민국의 불평등을 통계로 보다)은 그러한 경제 성장의 어둠을 통계로 톺아보는 책이다. 통계는 가장 객관적인 잣대로 활용되어야 마땅하지만,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제시하느냐에 따라 오차도 많을 수 있다. 정치적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단 이야기다.

이 책에 제시된 통계의 오류 몇 가지를 살펴보자.

1) 업무상 사고 재해율 0.5% - 우리나라는 산재보험에 따라 보상을 신청하고 승인을 받은 사람을 기준으로 통계를 낸다. 따라서 특수고용 노동자처럼 애초에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노동자는 여기에서 누락된다.

2) 2020년 제외하고 지난 5년간 자영업 폐업률 11% 내외 - 폐업률은 가동사업자 수로 폐업사업자 수를 나눈 것인데, 비교적 오래 자영업을 하는 이들은 계속 버티고 있으니 전체 폐업률은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확연히 낮게 나타난다.

3) 장애 출현율(장애인 수/전체 인구) 5.39% - OECD 국가 중 가장 작은 편.

이는 장애 판정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으로, OECD 대부분의 국가 기준으로는 장애로 판정받아 공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에선 장애를 인정받지 못한다.

실업률은 말할 필요도 없고, 이쯤 되면 '눈 뜨고 코 베어 가는' 통계라고 할만하다.

 

우리는 악명 높은 통계를 익히 알고 있다. 낮은 출산율과 높은 자살률.

이 책을 통해, 보다 세부적으로 OECD 불명예 1위가 속출한다.

노인 자살률, 노령층의 상대적 빈곤율, 내국인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격차, 국회의원 중 여성의원의 비율(이건 일본이 1위), GDP 대비 장애인에 대한 공적 지출, 낮은 조세 부담률...

'아! 대한민국'이란 유행가가 허망하고, 세계 10위권 국가라는 한국의 민낯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책을 정독할수록 읽기가 곤혹스러울 지경이다.

저자는 기밀이 아닌,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계청 통계포털사이트를 비롯한 정부 자료에 근거해 <불평등한 선진국>을 완성했다. 여기 적시된 통계에도 오차가 생길 수 있음은 앞서 언급했고, 저자는 이런 통계만 잘 살펴봐도 대한민국의 현재 문제점을 적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취지로 이 책을 집필했다.

저자가 보기에 이미 대한민국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전 세계 어디나 소득 불평등 심화가 화두긴 하지만 대한민국은 거기에 대한 정책적인 대비가 매우 부족하다.

박재용의 시선이 머무는 항목인 노동 / 청년 / 가족 해체 · 노인 · 지방 소멸 / 소수자(이주 노동자와 이주 여성, 장애인, 여성차별 등)로 나누어 본문을 구성하고 안타까운 통계를 제시하고 거기에 대한 설명을 이어간다. 특이하게 매 챕터나 부(部)가 끝날 때 '팩트 토론을 위한 간단 퀴즈'를 넣어 내용을 되새김질하는데, 무슨 교재도 아니고 왜 이런 편집을 했는지 좀 의아하다.


구성된 내용이 5부로 구분은 되어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모두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부모의 부는 자식에게 당연히 이전된다. 어렸을 때부터 좋은 주거환경에서 남보다 앞선 교육의 기회를 제공받아 야구로 보면 이미 2, 3루에 위치해 있다. 좋은 대학교를 거쳐, (부모 찬스를 쓰든 안 쓰든) 좋은 직장을 잡고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이어 나간다. 계약금이 없어 당첨된 분양권마저 포기해야 하는 서민들과는 다르게, 내 집 마련을 할 때도 든든한 부모의 지원을 받는다.

부가 세습된다면 같은 논리로 가난도 대물림된다. 이들이 상대적으로 고소득 일자리를 차지할 확률은 드물다. 오죽하면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지났다'라는 말을 하겠나. 치열한 취업 전쟁에 나서야 하고, 설사 일자리를 구한다 한들 임금 격차는 피할 수 없고, 열심히 살아도 나이 들면 노인 빈곤이란 현실에 처한다.

여기에 대한 부수적인 작용으로 1인 가구 증가와 출산율 저하는 운명이다.」

"이들의 노동은 경력이 되지 못하고 그저 소비될 뿐입니다." - 163쪽

너무 비관적인가?

책에 나온 무수히 많은 통계가 이런 라이프 사이클을 반영한다.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많이 알려진 핵심적인 팩트(소득 불평등, 외국인 증가, 지방 소멸, 노인 빈곤, 청년 실업 등)를 입증하는 무수히 많은 통계를 반복해서 확인하고, 그 숫자들을 나열하며 설명하는 내용이 다소 지루하고, 중언부언의 느낌이 강하게 들기도 했다. 너무 많은 통계가 제시되다 보니 오히려 '뭣이 중한디?'란 생각도 들고.

방식을 살짝 달리해서 각 챕터의 가장 핵심적인 지표를 보여주는 대표 통계 A를 설정해 설명하고, 필요하면 A1, A2 정도 예시하는 방식이면 어땠을까? '팩트 토론을 위한 간단 퀴즈'보다는 간결하게 독자의 기억에 어필하지 않을까.

 

저자의 취지는 잘 알겠다. 그래서 이 나라의 선장을 뽑는 대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단 생각이다. 대한민국의 불평등을 통계로 보면서 수치스럽다 느끼기보다는 실행 가능한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 아마도 이런 정책은 포퓰리즘이 아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행위가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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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트레이시 시리즈의 서막 | 기본 카테고리 2021-12-26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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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내 동생의 무덤

로버트 두고니 저/이원경 역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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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참 작가는 많다. 한국에 연간 대략 250여 권 내외의 추미스 계열 책이 출간되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미처 소개되지 못하는 세계 각국에 존재하는 유수(有數)의 작가들이 많다. 이번에 <내 동생의 무덤>으로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로버트 두고니'라는 미국 작가도 그렇다. 보통 작가들은 뚜렷한 한 명의 캐릭터 시리즈도 성공적으로 이어가기 쉽지 않은 레드 오션이 장르물 시장이건만, 두고니는 '데이비드 슬로언' 시리즈, '찰스 젠킨슨' 시리즈를 인기리에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내 동생의 무덤>은 '데이비드 슬로언' 시리즈에 잠시 등장한 시애틀 최초의 여성 강력계 형사 트레이시 크로스로드를 독립시킨 또 다른 '형사 트레이시' 시리즈의 서막이다. 형사 트레이시의 전사(前史)를 밝히는 시리즈의 기원인 것.


「우애가 너무 좋은 트레이시와 세라 자매. 트레이시가 벤에게 청혼을 받은 세상에서 가장 기쁜 날 세라는 행방불명이 돼버리고,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정황 증거만으로 성범죄 전과자 에드먼드는 1급 살인 유죄를 받아 무기징역에 처해진다. 짜 맞춘 듯한 증거와 믿을 수 없는 지각 목격자, 석연치 않은 재판 과정에 강한 의구심을 가진 트레이시는 결국 고등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그날의 진실을 몸소 밝히기 위해서 경찰에 투신한다. 20년의 세월이 흘러 동생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닫혀 있던 진실의 문은 열리는데... 」

490쪽의 책에서 354쪽에 이르러, 과거의 미심쩍은 판결이 뒤집히면서 누명을 쓴 에드먼드가 석방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첫 번째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면, 남은 140쪽에서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새로운 인물이 갑자기 튀어나올 수는 없고, 그렇다면 앞서 진술된 인물들 중에 누군가는 결정적인 카드 한 장을 들고 있단 소리인데, 트레이시가 추적을 하면 할수록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자매의 아빠로 밝혀지는데...

소설의 결말을 중반 이후까지 종잡지 못했다. 중간중간 작가가 흘리는 떡밥에 투척되어 나만의 시나리오를 그리기도 했건만, 결말은 나의 그것과는 달랐다. 미스터리를 읽다 보면 독자의 짐작과 결말이 동일할 때 생기는 자긍심도 있지만, 그보다는 역시 짐작을 배반하는 결말이 짜릿하다. 짐작과 간격이 크면 클수록 묵직한 타격감이 크다. 흔히 말하는 반전의 쾌감이다.

최근 무수히 쏟아지는 반전을 위한 작품으로 <내 동생의 무덤>은 쓰이지 않았지만, 소설의 결말에서 다시 한번 만나는 뜨거운 가족애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미스터리에서 만나는 이런 감동은 사뭇 신선하다.

 

두 개의 축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하나는 트레이시의 친구 변호사 댄의 활약으로 과거 재판의 불합리를 뒤집는 법정 스릴러이고, 다른 하나는 형사 트레이시의 수사 과정이다. 13년간 변호사 생활을 한 로버트 두고니가 그려내는 법정 신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자신감이 넘친다.

시체가 발견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데, 여기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건 과학수사다. 과거엔 의미를 밝혀낼 수 없던 증거물들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고, 이는 에드먼드의 무죄 입증에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법정 스릴러로도, 형사물로도 흠잡을 데 없는 완성도를 보여주는 잘 쓰인 깔끔한 스릴러다. 미국에서 그리 큰 사랑을 받았다는 두고니의 작품이 왜 이제서야 소개되었는지 한탄하기 보다, 2014년 작품이지만 이제라도 선을 보이게 돼서 다행이란 생각이다. 이미 '형사 트레이시' 시리즈는 8권이 출간되었고, 현재도 집필 중이라고 전한다. '형사 트레이시'의 다른 작품, 아니면 두고니의 다른 작품을 또 만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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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월드의 시발점 | 기본 카테고리 2021-12-26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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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유지니아

온다 리쿠 저/권영주 역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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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소설에는 반드시 시체가 등장해야 한다. 시체는 많을수록 좋다. 살인보다 가벼운 범죄는 독자가 300페이지 가까운 책을 읽게 할 동기로는 부족하다. 끝까지 읽는 독자의 노력은 보상받아야 한다."

미스터리 황금기를 대표하는 미국 작가 S.S. 밴 다인의 '20칙'중 7번째 원칙이다.

소설이 시작하고 몇 페이지 지나지 않아 일가족은 물론, 집안 경사에 놀러 온 이웃까지 무려 17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더 놀라운 건 조금 지나 범인이 범행 일체를 자백하고 자살한다는 전개다.

보통 미스터리는 세 가지 중 하나에 천착하기 마련이다. 누가(후더닛) 어떻게(하우더닛) 왜(와이더닛) 범행을 저질렀는가 밝히는 과정이 책을 읽는 재미다. '누가'는 고전기와 일본 (신)본격물에서 최고의 재미 '범인 찾기'를 선사했고, '어떻게'는 대표적으로 밀실이란 소장르에서 위세를 떨쳤으며, '왜'는 사회파 작가들의 화두라 간단히 정리해 볼 수 있겠다. '누가, 어떻게'가 소설 초반에 한여름 땡볕처럼 명백하게 밝혀진 온다 리쿠의 <유지니아>에서 남는 수수께끼는 '왜'뿐이다. 도대체 왜?

해당 독살사건(나카오가키 사건)이 일어나고 20년이 지난 시점, 누군가(!)가 당시 사건의 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며 다시 과거의 기억을 헤집는다. 도대체 왜 2?

라쇼몽식 구성으로 관련자들의 진술은 이어지는데, 놀랍게도 사건을 담당한 경찰을 비롯한 몇몇 인물은 당시 유일한 생존자인 앞 못 보는 명문가 소녀가 희생자가 아닌 진범일지 모른다는 강한 의구심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앞서 밝혀진 사건의 전모는 '도서(倒敍) 미스터리'였단 말인가! 독자들은 황급히 앞서 철석같이 믿었던 '누가'와 '어떻게'를 재확인해야만 한다. 근본이 흔들리는 상황, 그럼에도 여전히 '왜'라는 숙제는 풀리지 않는다. 도대체 왜 3?


정통 미스터리에서 범인은 밝혀지고, 사건의 모든 정황이라 할 범행 동기, 수법 등은 속시원히 드러난다. 제59회 일본 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유지니아>는 그런 뻔한 길을 가지 않는, 별미를 제공하는 소설이다. 온다 리쿠는 의도적으로 곳곳에 여백을 남겨 놓아, 그곳을 독자의 상상력으로 채우게 한다. 딱 들어맞는 퍼즐이 아니라, 독자만의 퍼즐을 만들어낼 수 있는 'DIY'형이라고나 할까.

정말 아오사와 히사코는 진범인가? 헌책방 화재는? 마키코의 사망은 단지 일사병 때문일까?


<유지니아>는 비채의 일본 문학선 '블랙&화이트'의 3번째 책으로 2007년 처음 출간되었다, 14년이 지난 2021년 전면 개정판으로 우리 앞에 다시 섰다. 17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소설을 '아름답다'라고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기 좋지만, 여전히 <유지니아>는 몽환적이며 탐미적인 명작이다. '온다 월드'를 탐사하기 위해선 <유지니아>를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며, 여러 번 읽으면 처음 읽었을 때 몰랐던 비밀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매력덩어리다. '범인 찾기'에 다소 물린 독자라면 마땅히 <유지니아>를 펼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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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대화된 불편함 | 기본 카테고리 2021-12-2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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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날 저녁의 불편함

마리커 뤼카스 레이네펠트 저/김지현 역
비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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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상 강국 네덜란드에서 스케이팅은 일상이다. 큰 오빠 맛히스는 스케이트를 타러 나간 어느 날 집에 돌아오지 못한다.

"돈을 모아서 새 아들을 살 수는 없는 것이다." - 65쪽

참척의 고통이라고 하던가. 자식을 자신들보다 먼저 보낸 부모 심정을 어찌 짐작이나 하겠는가. 독실한 신자였던 이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불행을 잘 인정하지 못하고, 서로 관계마저 소원해진다. 원래도 별생각 없어 보였던 아빠는 아무 생각이 없는 듯하고, 엄마는 식욕을 잃고 '살 만큼 살았으니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내뱉어서는 안 될 대사를 자식들 앞에서 읊조리는 지경에 이르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르던 소들이 살처분되는 참사마저 닥친다. 정신줄을 놓아버린 이들 부부에게 자식을 돌봐야 한다는 부모의 의무는 뒷전이다.

"우리 오빠는 서서히 사람들의 마음에서 흐려져가는 반면 우리의 마음속으로는 점점 더 깊이 들어오고 있다." - 123쪽

4남매에서 3남매가 된 아이들. 오빠 '오버'는 행동이 오버 투성이다. 머리를 찧으며 자해하고 비행 청소년의 모습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소설의 화자, 주인공 나(야스)는 충격으로 똥을 누지 않으며, 오빠의 사고날 입고 있던 코트를 벗지 않는 강령으로 세상에 맞선다. 이들의 내재된 슬픔과 끝 모를 분노는 이상 행동으로 나타난다. 동물 학대, 호기심인지 선을 넘을랑 말랑 하는 성적 일탈 행위들... 그러면서 슬픔의 강을 건넌다.

10세 소녀의 시선으로 오빠를 잃은 상실감과 이후 변화를 다루는 <그날 저녁의 불편함>은 문장에 대화가 거의 없고, 있다 하더라도 티키타카가 이어지지 않는다. 스토리텔링을 따라가기보다 주인공의 내면 심리 묘사에 치중한 탓이다. 역시나 문학상 수상작답게 독자 친화적이지 않다. 세상 사물을 보는 남다른 시선을 지닌 저자의 시적인 문장은 소설 곳곳에서 또아리를 튼다. 레이네펠트는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다.

역시나 이런 소설은 절대로 아무나 쓸 수 없다. 세 살 때 오빠를 잃은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에만 6년이 걸린 <그날 저녁의 불편함>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섬세하고 날선 감수성이 아니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신경쇠약 직전의 경지를 보여준다. 이런 소설에 공명하는 독자 역시 날카롭고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일 테고, '재미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라고 믿는 일파는 조금 거리를 두는 게 현명하다.

그러나...

우리네 인생은 '장밋빛'이 아닐 때가 많고, 때론 슬픔도 힘이 된다는 점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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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작가, 15개의 소우주! | 기본 카테고리 2021-12-19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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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레이먼드 카버 등저/파리 리뷰 편/이주혜 역
다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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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리뷰>(the PARIS REVIEW)는 '작가들의 꿈의 무대'라 부르는 미국의 문학 계간지로, 1953년 출판과 문학의 중심지였던 프랑스 파리에서 창간했다. 영어로 작품을 발표하는 유명 작가치고 여기 지면을 거치지 않은 이가 없다 할 정도로 권위를 인정받는 문학잡지인데, 어느 날 편집자는 재미있는 기획을 한다.

작가들에게 <파리 리뷰>가 발표한 단편소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 하나를 고르고, 그 소설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결정적인 이유를 서술해달라고 부탁한 것. 2012년 출간된 이 책의 원제는 《Object Lessons : The Paris Review Presents the Art of the Short Story》다. 출간 연도를 고려하면 약 60년의 세월 동안 발표된 작품들 가운데 현직 작가들이 고른 결과물인 셈이다. 국내 소설집의 아름다운 제목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는 수록된「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에 나오는 문장에서 따왔다. 원서에는 스무 편이 실렸다는데, 도서출판 다른에서 나온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는 이중 열다섯 편을 추려 수록했다. 소설 애호가라면 누구나 그냥 지나치기 힘든 유혹이다.

 

소설이든 영화든 최고 작품을 뽑을 때 평론가와 일반 팬들의 리스트는 많이 다르다. 아무래도 전문적인 감식안을 가진 사람들이 손꼽는 작품들은 일반인들의 눈에는 그냥 스쳐 지나가거나, 무엇보다 재미가 담보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이 책에 선정된 단편들은 창작 강의나 글쓰기를 생업으로 하는 성공한 문인 자신이 꼽은 작품들이라 아마도 일반 독자들의 그것과는 다를 거다. 그야말로 '작가들의 작가'인 셈 아닌가. 보통 독자들이 좋아하는 스토리텔링 위주의 단편보다는, 다소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성향의 작품이 이들의 레이더에 포착돼 창작에 자극과 영감을 주었을 확률이 높다. 또한 해당 작가의 알려진 대표작이 아닌 숨겨진 걸작을 복권하고픈 심리도 있었을 테고.

수록된 작가들의 면면을 살핀다. 레이먼드 카버, 제임스 설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이렇게 세 명의 작가 정도만 이름을 알고 다른 분들은 잘 모르겠다. 조이 윌리엄스는 추천 작가로 본인의 작품이 실리기도 했고, 추천인으로 다른 작품을 추천하기도 한다. 보르헤스의 「모든 걸 기억하는 푸네스」를 추천한 알렉산다르 헤몬은 내주 개봉하는 <매트릭스 : 리저렉션>의 각본에 참여하기도 했다고.

앞서 예측한 대로 약 절반 이상은 핵심적인 줄거리가 잘 드러나지 않는 단편들이 많다. 완곡하게 표현하자면 읽는 재미가 별로라는 이야기다. 일반 독자의 시선으로 대가의 경지까지는 이해하지 못한 탓이 크다. 이런 독자들을 위해 해당 소설을 추천한 작가들이 소설의 말미, 몇 페이지에 걸친 해제를 실어 이해를 돕는다. 해제가 대부분 소설보다 더 어렵다는 게 함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없는 거보다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마음을 뺏긴 단편은 이선 캐닌이 쓴 「궁전 도둑」이다. 좋은 소설은 일 방향의 해석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개인적인 감상은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로 「궁전 도둑」의 주제를 평가하고 싶다. 누구나 인생에 있어서 결정적인, 잊지 못할 사람이 한 명 정도는 있을 테고 그와 연관된 사건이 분명 있으리라. 두 번에 걸친 '미스터 율리우스 카이사르 선발대회'를 다루는 이 단편이 소설집의 백미로 다가왔다. 「궁전 도둑」은 2002년 <엠퍼러스 클럽>으로 영화화되었는데, 아쉽게도 국내엔 소개되지 않았다.

그 외 폴라로이드 사진 같은 즉각적인 이미지를 남기는 카버의 「춤추지 않을래」, 짧은 대화로 어떻게 많은 이야기를 함축하는지 잘 보여주는 모범답안 제임스 설터의 「방콕」,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를 아들의 시선에서 연민으로 지켜보는 「늙은 새들」, 걸작을 위해서는 작가는 그 무엇도 희생할 수 있다는 풍자와 은유 「스톡홀름행 야간비행」이 기억에 남는다.

아직도 문학의 힘을 믿는 소설 팬들은 전문가들이 이름을 걸고 감식한 15편의 소우주에서 분명 자기와 주파수가 맞는 작품을 만날 것이다. 문예 창작을 염두에 둔 자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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