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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조금만 | 기타 2023-02-08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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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질문은 조금만

이충걸 저
한겨레출판 | 2023년 0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독창적인 이력을 가진 11인의 인터뷰, 일상의 대화에도 필요한 언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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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독창적이거나 획기적인 색다른 이력을 가진 11인의 인터뷰를 실었다.

모든 사람은 고유한 언어를 가져아 한다고 믿는 이충걸은 건축공학과를 나왔지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행복이 가득한 집> <보그> <GO KOREA>편집장으로 활동하다가 은퇴하고 인터뷰 현장에서 이전의 인터뷰와는 다른 인터뷰들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질문은 짧게 던지고 대상자에 대한 불안을 보고 싶어하는 그의 인터뷰는 술렁이는 말들로 어지럽다. 봄철 아지랭이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현기증이 나는 언어들의 기지개.

"인간의 모든 순간은 질문과 대답으로 엮여 있으니까. 언어는 세계의 전부이자 표정을 손질하는 단 하나의 가치니까."라고 하는 그는 "결국 인터뷰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나무 열매를 잡는 일과 같"다고 하면서도 대상자의 세계에 들어가서 결핍을 들추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책에 실린 열 한 명의 인터뷰는 무척 재미있었고 나를 반성하게 만들었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몇몇 조각들로 제멋대로 오해하고 판단해버렸던 사람들을 새롭게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중에 기억에 남았던 인터뷰는 그렇게 오해했다가 미안해진 마음이 드는 사람들이었다. 처음부터 오해 없이 호감이었던 사람은 더욱 좋아하게 되었고.

서초동 정토 법당에서 만난 법륜 스님은 평소 불교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나의 편견을 솔직한 어조로 부셔버렸다. 불교는 현실과 동떨어진 곳에서 내면의 문제만 다스리며 좋은 말씀과 평온한 명상을 하는 종교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법륜 스님은 현실에 침묵하는 종교라면 사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직 홀로 존재할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님들의 말씀에 귀기울여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직설화법으로 '진격'하는 법륜 스님의 말은 오히려 종교를 좁은 틀에 가두려고 했던 내 사고를 흔들었다.

사회적인 활동을 하지 말고 정치에 침묵하라는 말은 독재 권력에 침묵하라는 말과 같다고 하면서 그는 정곡을 찌른다. 속세와 동떨어져 청렴하게 살아가는 것이 참되다고 하는 종교인들에 대해, 내가 품는 헛헛한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듯.

 

산다는 게 마음을 다스리는 것과 환경으로부터 영향 받는 두 가지 성질이 다 있는데, 사회적인 활동은 왜 하느냐, 정치에 침묵해라, 이게 뭐예요? 독재 권력에 침묵해라, 이 말 아니에요? 그런 절에 안 살고, 그런 밥도 안 먹고, 그런 차도 안 타면서 사회에 관여 안 한다, 그럼 오케이예요. 그런데 산속에 있는 절은 다 자기가 지었어요? 전부 사람들의 노력과 재화로 지어놓고 사회에 대해 침묵한다? 혜택은 다 누리고 어려움을 외면하기 위한 핑계로 사회 발언을 안 한다? 그건 모순이죠.

질문은 조금만/ 법륜스님

그는 정치, 환경에 관심이 무척 많았다.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반작용이 있다"는 그의 말처럼 우리는 엄청난 과학 문명의 발전에 따른 이익을 누리는 동시에 환경파괴라는 비극을 맞이하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녹색'이라는 화두에 깊은 관심이 생겨서 녹색당에 가입하고 창비에서 연속적인 주제로 잡았던 환경문제를 꾸준히 접하다보니 그 안에 자본주의의 멈출 수 없는 고리가 늪에 끌려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개그콘서트'에서 미친 존재감을 보여주었고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서 독특한 인터뷰를 하던 강유미도 몇 조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당연히 모든 사람을 조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특히 제목과 가십성 기사들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경박함을 스스로 반성하여야 한다고, 다시금 다짐한다.

강유미는 보기보다 다크하고 주위를 얼어붙게 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개그콘서트에서 내가 봤던 것과 다른 이미지였다. 그는 자신의 연기는 생계형이고 무대에서는 다른 사람처럼 열정적으로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나는 특히 미니멀리스트였던 그가 결혼 후 보란 듯이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느끼는 감정에 공감했고, 우리 세대보다 한참 젊은 세대들의 멋진 강단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나는 살면서 느끼는 감정을 제대로 눈치채지 못했고 표현하지도 못한 채 순응하고 침묵하고 있었으니까.

 

저는 결혼에 사랑의 종착역 같은 의미를 부여했는데, 그 관계조차 불안하기만 하고 쉽지 않아요. 결혼이 내가 생각한 것만큼 가치 있는 게 아니고, 내가 부여한 의미만큼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남편이 별로인 사람이고, 내 결혼 생활이 남들보다 특별히 불행해서는 아닌 것 같고, 저 스스로 제가 가진 상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강요하는 거잖아요. 내 결혼을 들숨과 날숨마다 나를 행복하게 해줘야 하고, 내 배우자는 늘 나에게 안정감을 주고 한결같은 사랑을 줘야 된다는 우김 때문에 스스로 고통을 자처하는 거죠.

질문은 조금만/ 강유미

 

 40년 의사생활을 마치고 죽음학 강의를 시작하고 카르마와 윤회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전직 의사 정현채는 조금 독특했다. 의사가 전생을, 이라는 의문같은.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죽음 뒤에 패자부활전이 있으며 육체가 죽은 후에도 존속되는 의식의 비국지성에 관한 이야기는 뚜렷하게 남아서 개인적으로 내게는 다른 이야기로 이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동대문에 가서 면으로 지은 수의 두 벌을 들여다보며 삶의 종착역을 가늠하고 마음을 안정시킨다는 그의 말에 나도 소박한 수의를 지어놓고 종착역을 가늠하며 그 사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실컷 놀다가 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삶이 죽음에 속해있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삶을 사랑할 수 있다는 확인 하나 더.

 강경화는 생각보다 더 멋있는 사람이다. 어떤 척을 하지 않고 간결하고 명확한 스타일이 더욱 그를 빛나게 하는 것 같다. "생산 과정에 있어 사람은 재료가 아니다. 노동을 제공하는 권리를 주어야 하고, 현장에서의 존엄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필라델피아 선언을 말하는 그의 말에서 우리의 플랫폼 노동자와 특수 고용직 노동자들이 떠올랐다. 직접고용보다 외주로 전환하는 고용 형태에서 타인의 지옥을 경험하고,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출근했다가 집으로 퇴근하지 못하는 수많은 죽음은 나와 별개가 될 수 없을 것이기에. 유엔에서 인권 담당을 맡았던 강경화의 말처럼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이 부디 확대되기를 바란다. '의미 없는 것에 의미를 읽는 것처럼 위험한 게 없다'는 말에 요즘 나의 불신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다. 최초라는 수식어로 소개되는 그이지만 정작 그는 그런 수식어가 필요없는 세대가 빠릴 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옷을 만든지 57년이나 된 여든여섯 살의 디자이너 진태옥이 넘치는 에너지로 대화를 하다가 방글라데시의 모든 하천이 옷으로 뒤덮여 있다는 말을 하면서 자신의 직업을 돌아보는 장면은 의외였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문제점을 알기에 재고를 남기지 않도록 옷을 만든다는 그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여생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디자이너는 "정신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최고의 미니멀리즘'으로 장식되는 마지막 쇼를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석주 시인의 책을 몇 권 안 읽었지만 내가 고른 책마다 빛나는 문장들이 빼곡하게 들어차있었다. 나의 언어의 한계로 빛나다, 라는 표현밖에 하지 못해서 유감이다. 주류에 속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글을 쓰고 많은 책을 낸 시인은 어느 시점에서는 쓰는 일도 놓고 고요와 무위의 상태 속에서 살다가 코끼리처럼 사라져야 한다는 말 끝에 새들도 그런 식으로 갑자기 죽는다는 말을 한다. "사고로 죽지 않고서는 우리가 새의 죽음을 볼 수가 없거든요. 조용히 사라지니까." 그 말이 슬프면서도 당연하게 다가왔다. 요즘 죽음에 관한 생각을 자주 하고 있어서 그런지(개인적인 죽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변화에 대한 생각이니 오해 없기를..) "조용히 사라"진다는 말이 내내 명치에 걸렸다. 그는 "은유는 시의 비장의 무기. 우주를 한 줄로 압축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영화 <일포스티노>가 장석주가 바라보는 밤하늘에 걸리는 듯했다.

 좋은 인터뷰는 압축된 언어를 건드리는 것 같다. 정확한 언어를 사용해서 질문을 던지면서 자신의 언어로 공간을 채우지 않고 기다리는 동안 상대는 "꿈과 세속 사이에서 분투하는 성장기 아이처럼" 말하게 된다. 형식을 갖춘 인터뷰에서 나오는 내밀하고 솔직한 답변. 인터뷰가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에도 이런 관점을 적용하면 다른 사람에게 무례한 태도를 취하거나 상처를 주는 말은 하지 않게 될 거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그러니 이제 실행만 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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