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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알베르 카뮈 저 ㅣ #프랑스문학 | 문학 2020-10-26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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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초판본 페스트 : 초호화 스카이버(양피가죽) 금장 에디션

알베르 카뮈 저/변광배 역
더스토리 | 2020년 09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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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페스트의 경기에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전부는

경험과 추억뿐일 것이다.

본문 368쪽.









《페스트》에 없는 게 있다면 어설픈 위로나 황급한 미화다. 카뮈의 글을 읽으면 독자로서 신뢰받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고 나면 항상 기운이 난다.






《페스트》는 평범한 현대 도시 '오랑'에 페스트가 퍼지면서 개인과 사회가 겪게 되는 일을 기록한 연대기 형식의 소설이다. 습관적으로 살아가던 일상이 페스트로 인해 방해받으면서 공포와 혼란이 시작되지만, "공포와 더불어 진지한 성찰이 시작되었다.(p.35)"




소설 속엔 의사 리외, 신문기자 랑베르, 파늘루 신부,기회주의자 코타르, 장 타루 같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각자 페스트에 대처하는 방식이 다르다. 개중에는 페스트 때문에 가치관을 변화시키는 인물도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관철하는 인물도 있다. 이들의 심경 변화와 고뇌를 지켜보는 것이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재미였다.




서술의 호흡이 긴 만연체로 쓰였지만 생생한 묘사 덕분에 지루하지 않았다. 오랑 시가 겪는 자원 조달, 물가 상승, 환자 수용, 의료 인력 부족, 백신 연구, 관광산업의 위기 등의 문제와 오랑 시민이 겪는 공포와 불안, 희망과 체념이 현실적으로 그려져서, 70년 세월의 틈을 무상하게 만들어 버린다.




특히 격식을 갖춘 장례식이 폐지되고 관, 수의, 묘지도 없이 한 구덩이에 함께 묻히는 방식으로 변화하는 매장 제도나, 시립 운동장에 설치된 수용소에 격리된 사람들이 하릴없이 경계의 눈빛으로 앉아 있는 광경을 묘사하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구급차가 도착하면 들것으로 날라 줄지어 놓았다가, 살짝 뒤틀린 벌거벗은 시신들을 거의 나란히 붙여 구덩이로 미끄러뜨리고, 먼저 생석회를 뿌리고 그 다음에 흙을 덮었는데, 그것도 다음에 올 주인들의 자리를 마련해 두려고 아주 얕게만 덮었다. 그 다음 날 가족을 불러 서류에 서명을 받았는데, 이것이 이를테면 사람과 개 사이의 차이점이었다. 사람의 죽음은 확인되고 관리된다는 것 말이다.

223쪽.







이 작품에서 카뮈의 '저항의 철학'이 페스트라는 소재를 만나면서 폭발했다고 생각한다. 페스트는 말 그대로 전염병이지만, 페스트 대신 전쟁, 나치즘이나 독재 정권을 넣어도 위화감이 없다. 페스트를 마치 인격 있는 존재로 서술할 때에는 그 느낌이 더욱 도드라진다. 책의 덮고 나서야 책의 첫 장에 카뮈가 대니얼 디포의 말을 인용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한 종류의 감옥살이를 다른 종류의 감옥살이로 재현한다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으로 재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합리적이다.

_대니얼 디포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






서술자가 자신의 이름을 마지막에서야 밝히는 이유도, 페스트의 기록을 남기기로 결심한 것도,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태도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직 기록을 통해서만 페스트, 즉 역사를 통해 얻은 경험과 추억을 기억할 수 있음을. 서술자 자신 또한 역사의 일부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선량한 사람, 거의 누구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가능한 한 방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방심하지 않으려면 의지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요, 리외 씨, 페스트 환자로 있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입니다만, 페스트 환자로 있지 않으려는 것은 더 피곤한 일입니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 모든 사람이 피곤해 보이는 거예요. 오늘날 모든 사람이 심하든 약하든 조금씩은 페스트에 걸려 있으니까요. 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이런 상태를 끝내고 싶어 하는 몇몇 사람이 죽음 이외에는 아무것도 그들을 해방시켜 주지 않을 극도의 피로를 자진해서 겪는 겁니다.

318쪽.











집단으로서 페스트 즉, 부조리에 어떻게 대항하는 게 좋을까. 《페스트》는 그것의 답을 찾아가는 성찰의 과정이다. 카뮈는 사랑과 희망을 토대로 이뤄지는 협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 같다.




마스크 너머로 들어오는 공기에 익숙해진 지금, 나는 가끔 이것이 지나가고 난 후의 일상을 상상하곤 한다. 더 좋은 상황이야 마다않겠지만, 더 나쁜 상황을, 예를 들어, 평생 마스크가 필수품이 되는 일상을 더 많이 그려보게 된다.




아마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페스트》나 스티븐 킹의 《더 스탠드》를 읽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두 작품은 감금된 현실을 닮은 모습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현실을 덮어버리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현실을 토대 삼아 올라간 작품도 있다. 이 모두는 우리의 ‘지금‘을 견디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까 선생님도 파늘루 신부처럼 페스트가 유익한 점이 있다고, 사람들이 눈을 뜨고 생각하게 만든다고 믿는 겁니까?”

리외는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다른 모든 병들처럼요. 세상 모든 악의 속성이 페스트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분명히 사람을 성장시키기도 합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로 인한 비참함과 고통을 보고도 받아들인다면, 미쳤거나 눈이 멀었거나 비겁한 사람인 거죠.”

159쪽.



“내 질문은 이겁니다. 왜 선생님은 신을 믿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헌신하는 겁니까? 선생님의 대답이 내 대답에 도움을 줄지도 모르겠네요.”

리외는 여전히 그늘에 잠긴 채로, 이미 대답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전능한 신을 믿었다면, 치료를 그만두고 그 수고를 온전히 신에게 넘겼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세상 그 누구도, 파늘루 신부조차도 신에게 그런 전능함을 기대하지 않는다.

161쪽.



그래서 프랑스 남부의 많은 성당의 지하에 수세기 전부터 페스트로 쓰러진 자들이 잠들어 있으니, 지금 많은 사제들이 그들의 무덤 위에 서서 전하는 신의 메시지는, 어린아이들조차 보탠 죽음의 재로부터 솟아 나오는 겁니다.“

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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