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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멸을 잊어버릴 시간 ㅣ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김이설 저 | 문학 2020-10-29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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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김이설 저
작가정신 | 2020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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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기억이 남은 그 정류장,

나를 나이게 하는 사람과 기억이 있는 그 정류장으로,

밖으로 돌아가고 싶다.







시인이 되는 것이 꿈인 '나'는 10년째 필사 중이다. 3년 전에 폭력 남편으로부터 친동생과 조카 둘을 구해 친정집으로 데리고 왔다. 직장이 있는 부모님과 동생을 대신해 조카를 맡은 '나'는 중압감과 집안일에 치여 살며 시의 언어를 잃어버렸다. '나'의 소원은 단 하나다. 집에서 나와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을 가지는 것.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나'의 소원이 이뤄질 수 있는 기회가 곧 찾아온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은 내면의 언어와 "근본적으로 해결 불가능한 돌봄의 어려움(p.180)"과 "잊은 척했던 환멸(p.181)"에 대한 이야기다.







40세의 꿈꾸는 시인인 '나'는 가족이라는 족쇄에 얽매여 자신의 존재조차 지워져 버릴 위기에 처한 투명한 존재다. 원래 있어야 할 '나'의 모습의 일부가 마치 가족 공동체 생활이라는 지우개로 지워진 것처럼 텅 비어 있다. 작품을 읽으며 문득 시인의 독특한 시선으로 일상을 관찰하고 묘사해 줄 것이라 기대했는데 주인공에겐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게 금방 확연해졌다.



'나'의 정체성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시를 향한 열망인데, 그 부분조차 크게 손상되어 있다. 가족이라는 유기체의 일부로 있는 한 '나'의 가슴을 달구는 시에 대한 열망은 희미해지고, 인생의 꽃은커녕 새싹이라도 났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은 시들어 버린다.





동생은 참을성 있게 내 대답을 기다려줬다. 나는 간신히 입을 벌려 발음했다.

"시."

그 순간, 마음속에서 자라나던 그 창백한 연두색 싹이 불쑥 커 올라 이파리를 막 뻗치는 기분이 들었다. 활짝 펼쳐진 잎들은 앞다퉈 반짝였다. 이런 기분을 언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나는 그저 아득하기만 했다.


64쪽.



피지 못한 꽃, 이라는 말을 들은 날에도 나는 시를 쓰지 못했다. 필사 노트만 두꺼워지고 있었다. 낙선자로만 평생을 살아가면 어쩌나 싶은 마음. 선택받지 못한 사람이 되어, 패배자가 되어, 이대로 무용한 인간이 돼버리면 어떡하나 매일 두려웠다. 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연둣빛 싹이라도 될 수 있다면, 아니 새하얀 뿌리 한 쪽 될 수 있다면.


117쪽.








주인공이 이토록 힘들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돌봄 노동을 모두가 나눠가며 짊어지지 않고 하나가 전담하는 유동적이지 못한 가족 내 제도가 그 원인 중 하나다. 주인공의 말마따나 아이를 키우는 건 "가르치고 보듬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 가족은 공동 희생 구조(p.113)"임에도 말이다.



"위로를 받아도 될 상대에게 마음대로 어깨조차 기대지 못하는(p.146)" 동생과는 달리 전화를 걸어 ”내가 기댈 수 있게 빨리 오라(p.147)“고 하면 한달음에 달려오는 상대가 있는 '나' 사이의 간극은 또 어떻게 설명할까.



반대로 '나'가 동생을 부러워하는 점은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다. 그러나 '나'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정체성을 외부에서 찾고 있다는 점처럼 보인다. 가족의 일원이라도, 방해받지 않고 독립되어 존재해야 하는 부분이 함몰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나'는 몰랐다. 자신이 집에서 나와도 가족들은 별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집을 나온 후에야 그 투명했던 존재에 색이 돌기 시작하고, 금이 갈지도 모른다. 그때야 비로소 그녀 만의, '나'만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류장에는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저마다 손부채질을 하며 더위를 이겨내고 있었다. (…)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무수한 어느 날의 여름밤이었으나 그 사람과 나는 열대야에 딱 맞춤한 장면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순간이라는 것도 짐작했을 것이다.


본문 88쪽.







후기.


책의 줄거리와 나의 감상을 듣던 지인은 헨리크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결말만 놓고 보면 두 작품은 닮아 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인형의 집》 속 주인공이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진해서 집을 나온 것에 비해, 소설 속 ’나‘가 집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우연을 가장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의해서였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둘을 같은 관점으로 볼 수 없고, 소설 속 ’나‘의 운명이 더욱 비극적이라고 대답했다.



우울증을 앓는 나에겐 비극이 곧 희극이지 않냐고 지인이 물었다. 글쎄, 희극이 되기엔 내게 소설 속 '나'는 너무 투명했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이 소설이 위로와 위안이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지인과의 대화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가장 아름답고 생기에 넘쳐 문학에 투신하기 좋은 시기에 우리는 그 생기의 대부분을 가족 대소사와 관련 노동에 투입하고 있지만, 그래서 가끔은 개점휴업 상태인 것만 같은 자괴감에도 시달리지만, 최소한 셔터를 내리지 않는다고, 멈추지도 꺼지지도 않을 거라는…… 반딧불이만한 신호를 보내고 싶었는지도.


본문 180쪽.



그러니 오늘 밤에도 써야겠다. (…) 오늘도 달리고 있는 당신들의 흙먼지와 흙먼지 속에서 기어이 피어오르는 우리의 언어에 대해서.


본문 194쪽,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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