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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여성 예술가들》 파이돈 편집부 | 비문학 2021-01-1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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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위대한 여성 예술가들 (보급판)

파이돈 프레스,리베카 모릴 공저/진주 K. 가디너 역
을유문화사 | 2020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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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도록 도울 것이다.

15쪽.

 


 

파이돈 출판사는 영국의 대표적인 예술 전문 출판사다. 고전, 미술, 건축, 사진, 디자인, 패션 등 예술 관련 대형 도감을 펴내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 책은 예술가들을 장르나 시대로 구분 짓지 않고 알파벳 이름순으로 소개하기 때문에 아무 곳이나 골라 펼쳐서 읽어도 된다. 한 작가당 하나의 작품과 짤막한 소개 글이 전부지만 500여 년간 활동한 2,500명의 예술가 중에서 주요 아티스트 400여 명과 그 대표작을 선정했기 때문에 심혈을 기울인 티가 난다. 편집부는 더 많은 예술가들을 책에 소개하지 못한 점을 자못 아쉬워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어 보인다.

 

책에 소개된 작가들의 소개와 작품을 보고 호기심이 생기면 그것을 이정표 삼아 웹으로 예술 탐험을 나가기 좋다. 코로나 시대에 이보다 더 적절한 랜선 여행 방법이 또 있을까. 지금은 비록 직접 작품을 볼 순 없지만 그럼에도 화면 너머로 자기 존재를 드러내며 현실로 손을 뻗어오는 작품들이 많다.

 

우리는 이 짧은 글이 그들의 예술을 떠올릴 수 있는 비망록이 되고, 그들의 예술을 깊이 탐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거나 그 탐구를 돕는 출발점으로 쓰이기를 바란다. 나아가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여성들의 예술을 더 읽고, 더 보고, 더 나누게 되기를 희망한다.

15쪽.

 

 


 

 

인류 대다수가 시각을 주요 감각으로 쓰고 있는 걸 감안하면 예술 작품 감상은 보는 행위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관객이 작품을 관찰할 때, 그 시선은 한곳으로 모이기도 하고 분산되기도 하며 때로 작품 속 인물과 만나기도 한다.

 

 


 

그림 속 인물이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면 그것은 전달이다. 시선의 대상을 향한 태도와 감정이 드러난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린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를 보면 시선이 얼마나 강력한 도구인지 알 수 있다. 젠틸린스키는 대부분의 중세 여성 화가들처럼 아버지의 작업실에서 그림을 배웠다. 그 후 자신의 작품세계를 갈고닦기 위해 아고스티노 타시의 작업실에 들어가게 된다. 거기서 그에게 강간을 당하고 법정에 나가 그 사실을 증언했다. 오랜 사투 끝에 그녀는 승소했지만 그 과정에서 느꼈을 감정이 그림 속 유디트의 표정에 그대로 드러난다. "분수처럼 튀는 피를 피해 고개를 돌리고 있지만 눈은 똑바로 장군을 응시한다.(150쪽)"

 

작품 속 인물이 관객을 마주 보는 것은 독백 혹은 대화의 전조다. 중세 시대 화가들의 자화상이 관객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권위를 당당히 보여주는 것이다.

 

 


 

 

1928년 제작된 클로드 카운의 <자화상>(81쪽)을 보면 거울에 비쳐서 사진 속 인물이 둘이 되었다. 자서전 『부정 Disavowals』에서 카운은 "카드를 섞자. 남성인가? 여성인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 중선은 언제 어느 때건 내게 가장 잘 맞는 성"이라고 말했는데, 이 작품이 그 말과 공명하는 것 같다.

 

누드화는 시선을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주제다. 주체와 객체의 문제가 거론되기 때문이다. 책에 실린 누드화 중에 인상 깊은 작품은 제니 사빌의 <도면 PLAN>이다. 가까운 거리에서 인물을 아래에서 올려다본 모습으로 그려 하체가 더 커 보인다. 그림 속 여인은 관객을 내려다보고 있다. 제니 사빌은 신체 이미지의 "과잉을 겁내는" 사회(357쪽)에 대해 말한다.

 

 


 

 

때로 본다는 것은 지독히 피곤한 행위다. 내가 추상 예술을 보면 편안함과 해방감을 느끼는 것은 그 때문이다. 추상에는 내 시선을 받은 대상도, 나와 눈을 맞추는 대상도 없다. 내 시선은 이리저리 진동하면서 작품 곳곳에 부딪혀 튕겨나간다.

 

 


 

 

브리짓 라일리의 <흐름>(336쪽)에서 느껴지는 어지럼증은 실물에서도, 그것을 찍은 사진이 실린 책 속에서도, 작은 스마트폰 화면 안에서도 느껴진다. 어지럼증을 참고 계속 보고 있으면 그림 속 물결 모양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의 흐름을 방해하고, 관객의 의식을 흡수하는 작품이다.

 

 


 

 

에텔 아드난의 <세상의 무게> 연작 속에서 자연 풍경은 단순화된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의 움직임도 느려지게 된다. 추상화를 바라보면 평소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고 느껴진다. 우타 바르트의 <들판 #3>(51쪽)은 자동차와 도로를 초점이 흐리게 찍은 것인데 관객의 무의식을 건드리는 작품이다.

 

 


 

 

이제 예술은 시선에 얽매이지 않는다. 예술가들은 장르, 주제, 소재를 끊임없이 융합하고 초월하면서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관객 참여 예술이나 설치 예술처럼 보는 행위를 넘어서는 작품들도 많다. 이들은 관객에게 직접 말을 하고 접촉을 한다.

 

 


 

 

관심 가는 작품이나 작가의 이름을 하나하나 검색하면서 발견한 것은 여성 예술가들은 장소와 시대를 불문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슷한 화풍, 재료, 지역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물며 끝없이 이어지는 연관 검색어로 매번 다른 디지털 풍경을 경험한다.

 

실험 정신과 저항 그리고 회복탄력성이 이들 예술가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이들은 어디에나 있다. 교육을 거부당하고, 장르와 재료를 제한받고, 작품과 이름을 빼앗겼어도 그들은 항상 있었다. 중세부터 현대까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고 앞으로는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기 더욱 쉬워진다는 확신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여성성만을 다루지 않는다. 이 책은 페미니즘 예술에 관한 책이 아니며, '여성의 수난', '여성적 주제'에 관한 작품 모음집도 아니다. 젠더 이슈보다는 여성들이 재료, 기술, 형태, 주제 등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작품들을 실었다. 결국 이 책은 역사에서 소외된 예술가들을 몇 십 년 동안 연구해 온 대규모 작업의 기록이자 오늘날 전 세계에 걸쳐 꾸준히 창작 활동을 펼치는 여성 예술가들을 기념하는 공간이다.

8쪽.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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