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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밝은 밤 | 기본 카테고리 2021-08-27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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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밝은 밤

최은영 저
문학동네 |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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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이라는 제목에서 두 가지 심상이 떠오른다. 하나는 백야이다. 해가 지지 않아 밤이 되어도 낮처럼 밝은 밤. 다른 하나는 인적 드문 시골길의 밤이다. 구름에 가려 별도 달도 없고, 불빛마저 없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반딧불이 떼의 작은 빛에도 주변이 환하게 느껴지는 밝은 밤. 백야의 밝은 밤이 굴곡 없이 평탄한 행복이 지속되어 불행의 그늘이 드리워지지 않은 한낮의 권태로운 삶을 떠올리게 한다면, 시골길의 밝은 밤은 앞이 보이지 않는 불행 속에서 작은 위로와 사소한 기쁨에 의지해 나아가는 삶을 떠올리게 한다. 이 소설은 후자의 이야기이다.

 

일제 강점기에 백정의 딸이었던 증조할머니 삼천과 한국전쟁 시기의 지난한 삶을 통과한 할머니 명옥과 남편의 외도로 이혼했으나 엄마 미선의 이해를 받지 못하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딸 지연에 이르는 4대에 걸친 이야기에는 이렇다 할 행복한 일화는 없다. 하나같이 몸은 고되고 마음은 상처투성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삶이 불행하고 절망적이지만 않은 것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살피는 우정과 다정이 작은 빛처럼 점멸하며 주변의 어둠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 이전에 작가는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라는 단편에서 이렇게 썼다. “나와 닮은 누군가가 등불을 들고 내 앞에서 걸어주고, 내가 발을 디딜 곳이 허공이 아니라는 사실만이라도 알려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 그런 빛을 좇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라고. 이 문장은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어 [밝은 밤]까지 이어진다. 삼천이와 새비가 걸어주고, 명옥과 희자가 따라가고, 미선이 뒤를 이어 간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연은 허공이 아닌 곳에 발을 디디며 걷고 “벌어진 상처로 빛이 들어오”며 “그 빛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음을 발견한다.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이 유행했다. 나이 든 사람이 어린 사람에게 "나 때는 이렇게 살았다"고 과거 이야기를 풀어놓는 행위를 희화 혹은 비하해서 나온 말이다. 나 역시도 젊었을 때까지는 과거보다 현재에, 현재만큼 미래에 가치를 부여하고,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중요하다 여겨 어른들의 이야기를 고리타분하게 여겼다. 증조할머니는커녕 할머니의 삶도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았으며 내가 태어나기 전의 엄마보다는 내가 태어난 후의 엄마의 삶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나마도 굳이 시간을 내어 물어볼 만큼은 아니었다. 소설을 읽고 나서 많이 후회했다. 살아생전 증조할머니에 대해, 할머니에 대해,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더 많이 물어보고 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외가와 불화했던 아버지의 이야기만 들으며 그 편에 섰고, 부모님의 이혼 후에 아버지와 생활하며 외가와 발길이 끊기고 소원해졌다. 이 책을 일찍 만났다면, 그래서 할머니가 지연에게 들려주는 삼천과 영옥과 미선의 이야기를 통해 서로가 공감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나도 겪었더라면, 나의 할머니와 엄마와 더 살가운 사이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어 슬펐다.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내 아이들에게는 증조할머니와 할머니와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지난 기억을 소중히 끌어모으려 한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길어지고 나서야 깨닫는다. 미래에 대한 희망만큼이나 과거의 소중한 추억에서도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것을. 모래처럼 퍼석한 고되고 힘든 과거 속에도 순간순간 빛나는 기억의 사금들이 반짝이고 있고, 그래서 삶은 귀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이제는 웃어른들의 “라떼는 말이야”에 귀기울이고 싶어진다. 역사책을 읽으면 한국의 근현대사를 풍경처럼 조감할 수 있겠지만 그 시기를 살아온 사람의 육성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풍경 안으로 들어가 봄으로써 이해와 공감을 형성한다는 것을 [밝은 밤]에서 할머니가 지연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꼈다. 저녁 식사 시간에 둘러앉아 아이들에게도 조곤조곤 들려줘야겠다. "얘들아, 라떼는 말이야. 증조할머니와 할머니가 어떤 분이셨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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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유다를 읽어야 할 이유다 | 기본 카테고리 2021-04-15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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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유다

아모스 오즈 저/최창모 역
현대문학 |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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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없지만, 서양 문학의 뿌리 중 하나가 성서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배경지식으로써 성서를 알고 싶은 열망이 있다. 특히 히브리 문학의 대가라고 불리는 아모스 오즈의 작품은 성서를 모르면 제대로 읽어낼 수 없을 듯하여, 읽으려고 마음먹고 있으나 여태 미루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유작인 [유다]는 평생의 염원을 쏟아붓고 가치관을 집약했기에 더욱 그러리라 예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를 가장 먼저 펼쳐 든 이유는 작가가 던진 ”유다는 과연 배신자였을까? 배신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이고도 묵직한 질문 때문이다. 거기에 개인적인 이유까지 더해 책을 읽고 싶은 동기가 다른 모든 책을 앞질렀다.

 


 

개인적인 이유란, ‘유다’라는 이름을 가진 지인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오는 인명을 이름으로 가진 사람들을 여럿 보았지만 ‘유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그 사람이 처음이었다. 아모스 오즈가 지적했듯 ‘유다’라는 이름은 배신의 상징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니건만, 그 사람의 부모님이 아들의 이름을 유다로 지은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 적이 있었다. ‘가룟 유다’가 아닌 구약성경의 ‘다대오 유다’에서 따온 이름일 수도 있겠고, 순전히 다른 한자의 조합으로 만든 이름일 수도 있겠지만 ‘유다’ 하면 다른 사람들도 나 못지않게 ‘가룟 유다’를 먼저 떠올리게 되지 않으려나? (네이버 지식인에서도 자신의 이름이 유다여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올린 질문을 봤음;) 이 책에서도 그렇게 언급한다.

 

“내가 아는 모든 언어에서,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에서도 유다라는 이름은 배신자와 동의어가 되었다네.” (p375)

 

그 사람의 부모님이 아모스 오즈보다 유다를 먼저 재해석해서 붙인 이름일지도 혹시나 모를 일이지만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 사람 역시 나에게 배신감을 적잖이 안겨준 일이 있으므로 그의 이름을 ‘가룟 유다’라고 생각해버리는 소심한 복수(?)를 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적 공존을 외치는 소신 때문에 작가 역시 유다에 투영되어 비난을 받아왔다. 그런 입장에서 누구보다 통렬하고 치열하게 ‘유다’를 문학적으로 재해석하고, 이스라엘의 건국 과정에서 벤구리온의 반대편에 서서 배신자로 낙인찍힌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을 재평가하여 ‘배신’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를 전복하는 아래의 문장은 이 책을 통틀어 가장 백미이다.

 

(이스라엘 초대 총리인 다비드 벤구리온. 근데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에 대한 정보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실존 인물 맞는지 궁금하다. 매우~~)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슈무엘은 말했다. “그 안에 변화할 의지가 있는 사람은, 어떤 변화도 인정할 수 없고 변화가 생기는 것을 죽을 만큼 무서워하며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변화를 혐오하는 사람들 눈에 언제나 배신자로 간주될 수밖에 없어요.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은 아름다운 꿈을 꾸었고, 그의 꿈 때문에 그들이 그를 배신자라고 부른 거예요.” (p374)

 

선과 악, 옳고 그름이라는 이분법으로 가를 수 없는 문제에서 가치관의 차이로 편이 갈라질 때, 가치관의 변화는 배신으로 간주되기 쉽다. 더 나은 선택이라 할지라도 변화는 쉽게 받아들여 지지 않는다. 그래서 시대를 앞서가는 자들은 외롭다.

 

영화로 구현하면 어울리는 소설이 있는가 하면 연극에 어울리는 소설이 있는데 [유다]는 두 가지 이유에서 무대 위에 올리는 연극으로 제격이었다. 첫 번째 이유는 비교적 한정된 공간과 주요 등장인물의 수가 적기 때문이다. 여러 인물이 언급되긴 하지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주요 인물은 스물다섯 살의 대학원생인 슈무엘과 마흔다섯 살의 아름다운 여인인 아탈리야, 그리고 장애를 가진 일흔 살의 노인인 게르숌 발드이고, 슈무엘이 게르숌 발드의 말동무라는 일자리를 구하면서 세 사람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는 하라브 엘바즈 길 17번지의 집이 이야기의 주요 무대여서 연극 연출에 딱이라고나 할까.  두 번째 이유는 인물 간의 대화가 두드러지는 구성이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유다와 예수의 관계, 벤구리온과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 주로 슈무엘이 게르숌 발드의 말동무가 되어줄 때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논쟁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게르숌 발드의 서재를 배경으로 하는 연극 무대에 두 사람이 마주 앉아서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선하게 그려진다. 여기에 때때로 아탈리야를 짝사랑하는 슈무엘과 아탈리야가 주고받는 대화가 소설에 탄력과 재미를 더한다.

 

이 소설은 유다에게 부여된 은유와 배신의 알레고리가 설득력 있게 이야기로 직조되어 있다. 대가의 솜씨로 인생의 대단원에서 써내려간 소설답게 세상의 고정관념이 만든 사고의 틀을 과감하게 부셔 버린다. 하지만 상당한 분량의 후주가 없었다면 히브리 성경의 인용이나 은유인지도 모르고 지나쳤을 표현들 때문에 나의 얕은 배경지식이 곤혹스럽게 느껴질 정도였고, 완독하기까지 몇 번의 고비가 있었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그럼에도 어려움(?)을 딛고 책을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데 이의가 없다.

 

아모스 오즈가 한 인터뷰에서 “삶 자체가 배신이다. 부모의 꿈으로 태어나 살면서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하며 첫 꿈의 고결함대로 살 수 없는 것이 인생 아닌가. 타협이란 배반의 한 형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인터뷰에서 한 말이 와닿지 않았는데 책을 읽고 내용을 내 안에서 곰삭히니 문장의 다른 층위가 느껴졌다. 나 역시 첫 꿈을 현실과의 타협이라는 형태로 나 자신을 배반하기도 하고 배반당하며 스스로 유다가 되기도 하고 내게 유다인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배반이란 변화의 일부였다고, 자책과 절망보다는 희망하여 본다. 푸시킨도 말하지 않았던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고.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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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와 인지 편향의 놀랍고도 흥미로운 접점 | 기본 카테고리 2021-03-25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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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놀라움의 해부

베라 토빈 저/김보영 역
풀빛 |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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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분야의 독서를 두루 좋아하는 저는 그중에서 단연 ‘소설’을 제일 좋아합니다. 그런데 소설만큼이나 좋아하는 분야가 소설 쓰기에 관한 책이기도 합니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이유도 있지만, 소설 쓰기에 관한 책을 읽으면 소설을 제대로 읽는 데 도움도 되기 때문이지요.

 

지금껏 다종다양한 작법서를 읽어 왔는데 인지심리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책은 처음 접해서 상당히 신선한 지적 충격이었습니다. 몇 해 전에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인상 깊게 읽은 적이 있어서 인지심리학에 대한 약간의 배경지식이 있었음에도 서사의 구조와 인지 편향을 연관 지어 볼 생각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답니다. [놀라움의 해부]를 읽으면서 제가 느낀 놀라움은 이 책에서 말하는 ‘잘 짜인 놀라움’처럼 다가왔습니다. 책 뒤표지의 “놀라움이 작동 원리에 관한 더 놀라움 파헤침”이라는 문구가 적어도 제게는 과장이 아니었다고나 할까요 ㅎㅎ 

 

이 책의 카테고리는 ‘글쓰기’가 아니라 ‘심리 이론’입니다. 작법서처럼 친절한 책이 아니라는 의미이며 오히려 학술적인 책에 가까운 내용이라고 할 수 있지요. 술술 읽을 만큼 쉽지는 않지만 찬찬히, 꼼꼼하게 읽어 나가면 다른 작법서나 인문학 글쓰기 책에서 알 수 없었던 내용을 발견할 수 있는 책입니다. 역자의 말대로 “독자의 관심사에 따라 픽션을 통해 인간의 인지 과정에 관한 이해를 넓히는 책으로 읽을 수도 있고 인지심리학의 통찰력으로 픽션에서 놀라움이 작동하는 원리를 캐내는 책으로 읽을 수도 있다.(p6)”는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는 책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할 때 뭉뚱그려서 “재밌다”라고 곧잘 표현하는데 이때의 ‘재미’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슬퍼서 눈물이 나는데도, 무섭고 끔찍한데도, 가슴이 아프고 심란한데도 이런 감정을 불러일으키면서 깊은 인상과 만족감을 주는 독서 경험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재밌다”라고 하는 것처럼, “놀랍다”라는 단어에도 여러 가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이 책은 놀라움 중에서도 서사 속에서 사전에 치밀하게 구성되고 준비된 잘 짜인 놀라움에 대해 분석을 시도합니다.

 

잘 짜인 놀라움을 만들기 위해서는 플롯이 중요하게 작동합니다. (소설 창작이나 시나리오 작법을 공부하면 가장 빈번하게 나오고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는 용어가 ‘플롯’입니다. ‘스토리’라는 단어는 시간 순서에 따라 진행되는 이야기를 의미하는 반면, ‘플롯’은 이야기를 극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시간을 재배치한 구성을 의미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렇다면 잘 짜인 놀라움을 갖춘 플롯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저자는 “불현듯 사건들을 재해석하게 만들고, 그 순간 이렇게 재해석할 근거가 이미 쭉 거기에 있었음을 느끼게 하는 플롯(p12)”이라고 말합니다. 요즘의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소위 떡밥을 사전에 잘 뿌리고, 떡밥 수거를 잘해야 한다는 말이 아닐까 싶네요.

 

그렇다면 이야기에서 놀라움을 일으키는 작동 방식은 무엇일까요. 심리학 용어로 ‘인지 편향’이라고 부르는, 인간의 뇌와 우리의 사고가 지닌 특정한 한계와 버릇이 ‘잘 짜인 놀라움’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라고 저자는 분석합니다. 인지 편향 중에서도 비중 있게 다루는 ‘지식의 저주’라고 부르는 경향은 독자가 스토리를 받아들이는 방식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지식의 저주’가 뭔지 먼저 알고 넘어가야겠지요?

 

“지식의 저주”는 경제학에서 나온 용어로 1989년에 발표된 콜린 캐머러, 조지 로웬스타인, 마틴 웨버의 논문에서 처음 쓰였지만, 그 기본적인 아이디어―사람들은 자신이 알지 못한다고 여기는 것을 상상할 때 기존에 알고 있었거나 믿고 있는 바를 완전히 배격하기 어렵다―는 사후판단 편향, 조명 효과, 출처 귀인 오류, 투명성 착각 등에 잘 알려진 여러 심리학적 현상에도 내포되어 있다.(p31)

 

스토리에서 ‘지식의 저주’는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음을 유의해야 합니다. 그것은 작가가 혹은 독자 자신이 안다고 생각해서 예사롭게 넘어간 실마리나 사실이 될 수도 있고, 사실을 알기 이전의 마음가짐이나 생각 상태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편입견이나 선견이 될 수도 있어서 이런 ‘지식의 저주’를 적절히 활용하면 독자에게 잘 짜여진 놀라움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그 반대로 독자가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작가 자신만 아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놀라움의 해부]는 지식의 저주가 유발하는 여러 구조적 패턴을 개괄하여 놀라움이 어떻게 구축되고 독자에게 영향을 주는가를 설명해주고, 그것이 독자와 작가가 지배당하기도 하고 지배하기도 하는 트릭이기도 하다는 것을, 인지편향이라는 인간의 결점이 독자와 작가에게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으며 이는 인간의 추론이 지닌 본질적 속성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이 책에는 스토리에서 놀라움이 작동하는 방식과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문학 작품과 영화를 예를 들어 설명하고 참고 문헌이 인용됩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인 찾아보기를 살펴보면 “오오~”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답니다. 이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본문에서 비중있게 인용되는 [빌레트], [에마], 찰스 디킨스의 책 등과 <컨버세이션>이라는 영화를 챙겨 보고 다시 재독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대부분의 번역서에는 옮긴이의 글이 마지막 나오는데 이 책은 가장 앞에 나옵니다. 거기에는 적절한 이유가 있습니다. 역자는 이 책의 전반에 걸쳐서 인용되는 피터 브룩스의 [플롯 찾아 읽기]와 번역에 참고했던 [인지편향 사전]이 독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소개해 줍니다. 조언대로 두 권의 책을 이 책과 겸해서 읽었는데 역자의 말처럼 몹시 유효했고 유용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위의 첨부한 사진에 사감을 덧붙여 보자면 제가 사는 동네를 중심으로 아홉 군데의 도서관에서도 빌릴 수 없는 [인지편향 사전]을 예스24북클럽에서 바로 읽을 수 있어서 기뻤고, [놀라움의 해부]를 읽기 전에 마침 [이야기의 해부]를 읽고 있던 중이라서 함께 읽으니 흥미와 이해가 배가되었습니다.(시너지 효과겠죠?) 더불어 오래 전에 사두고 여태 읽지 않았던 [플롯 찾아 읽기]까지 꺼내어 볼 수 있어서 보람있는 독서 시간이었습니다. 좋은 책은 다른 책을 읽게 하는 씨앗과 토양이 되어준다는 것을 다시금 느껴봅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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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언어로 세상을 읽을 수 있다면 | 기본 카테고리 2021-03-16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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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음악의 언어

송은혜 저
시간의흐름 | 202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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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 우선 짚고 넘어가야 중요한 점 한 가지! 음악에도 여러 가지 범주가 있는데 이 책은 클래식에 대한 이야기다. 나도 처음부터 그러리라 기대하고 예상했다. 책 제목이 콕 집어서 클래식의 언어가 아니라 음악의 언어인 것은 음악하면 가장 먼저 클래식이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는 “클래식”하면 떠오르는, 잊을 수 없는 흑역사(!)가 있다. 아아... 이거 정말 비밀인데...(소곤소곤) 대학을 졸업하고 갓 직장 생활을 하던 무렵에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하는 클래식 연주회에 처음으로 가본 적이 있다. 그것도 데이트 신청으로 비싼 초대권을 선물 받았다. 상대방에게 고백을 받고 서로에게 조심스러웠던 연애 초기여서 꽤나 신경이 쓰이는 자리였다. 그 당시 클래식 음악회에 1도 관심이 없었던 나는 공연 관람이 처음이 아닌양 굉장한 집중력을 발휘해서 연주를 들었으나, 이내 졸고 말았다;;; 정신줄을 아무리 붙들고 목에 힘을 줘도 티가 안 날리 없었고, 상대는 매너있게 모른 척 해준 걸로 기억한다. 아흑;;; 지금도 가끔 자기 전에 문뜩 생각나면 이불킥을 절로 하게 된다. 내가 음악적 취향을 가지지 못한 이유는 학교 다닐 때 음악 수업 시간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학창 시절을 되돌아 보노라면, 음악 수업은 나에게 즐거움을 주기보다는 곤욕스러움을 더 많이 안겨주었다. 음악실에서 한 명씩 앞에 나가서 노래 시험을 치르는 시간은 나를 움츠려들게 만들어서 학창 시절 내내 내가 음치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대학에서 노래방이라는 문화를 접하고 나서야 자신감을 회복했고, 심지어 제법 잘 부른다는 소리를 듣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았다. 음악 감상 시험은 또 어떻고. 수업 시간에 한 번 들어본 클래식 곡들로 실기 시험 때 음악가와 곡명을 듣기평가 당한 덕분에 클래식을 제대로 감상하고 좋아할 겨를도 없이 정을 뗐다. 성인이 되어서도 팍팍한 생활 덕분에 노동요를 들었으면 들었지, 우아하고 고상하게 클래식을 틀어두고 감상을 즐길 시간적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음악도 수학이나 물리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클래식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즐기려면 일단 알아야겠기에(아는 만큼 들릴 테니까) 클래식에 관련된 책들로 리스트를 만들던 중에 이 책을 만났다. 동네 음악선생이라는 친근한 명칭도 좋았고, “음악은 언어다. 소리로 마음을 주고받는 언어”라는 글귀가 나를 사로잡았다. 그래서 미리보기로 볼 수 있는 만큼 내용을 먼저 읽어 보았다. 첫 장부터 베토벤이 에밀리에게 보내는 따뜻한 편지글을 만났다.

 

사랑하는 에밀리, 나의 친구에게

너만의 길을 따라가면 된단다. 그저 예술을 행함에 그치지 말고 내면으로 파고들기를 바란다. 예술과 과학만이 인간을 신성에 가깝게 이끌 수 있기 때문이지. 사랑하는 에밀리, 정말 힘들 때는 나를 믿고 내게 편지를 쓰렴. 진정한 예술가는 자만하지 않아. 예술에는 한계가 없음을 아는 이는 자신이 목표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막연하게나마 느낄 수 있는 법이거든. 다른 이들이 아무리 자신을 찬양해도, 머나먼 곳에서 반짝이는 한 줄기의 빛으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천재의 수준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음을 괴로워하지. 화려함으로 내면의 빈곤함을 감추는 이들 말고, 너를 보러, 너의 작품을 보러 가고 싶구나. ―루트비히 판 베토벤 (p11)

 

베토벤의 편지를 받았을 에밀리가 부러웠고, 저자 역시 수많은 에밀리 중 한 명이 된 마음으로 힘든 시기에 베토벤의 상냥한 조언에 힘입어 음악의 목표가 자신을 발견하는 것임을 깨달았다는 글귀가 와닿았다. 나도 저자처럼 상냥한 음악의 언어로 자신을 발견하는 한 명의 에밀리가 되고 싶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음악을 해석하고 연습하고 연주하듯 기록한 일상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서른세 개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독자들 앞에서 강연하듯 큰소리를 내지 않고, 옆에서 조곤조곤 대화하듯 이야기를 들려준다. 친근한 목소리처럼 들리는 문체에 이내 귀를 기울이고 음악 이야기에 마음 한켠을 내어주게 된다. 전공자의 음악 연습에 관한 이야기는 나랑 아무 상관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내가 고심하는 글쓰기 연습에 대한 이야기로도 들리고, 인생 연습에 대한 이야기로도 들려서, 음악이 가지는 메타포에 새삼 놀랍기만 했다. 무언가 절실하게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되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이라면 음악에 담긴 의미를 다층적으로 해석하여 자신에게 비추어 볼 수도 있으리라.

 

저자는 서문 격인 프렐류드(prelud)에서 베토벤의 편지에 대해 얘기했고, 33개로 이루어진 일상 변주곡의 중심부(Var.17)에서 베토벤의 변주곡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지막 장(Var.33)에서 다시 베토벤의 교향곡 중 환희의 노래를 언급하며 “음악은, 우리 모두를 향해 사랑하라고 전한다.”는 말로 이야기를 맺는다. 그리고 저자 후기 격인 악장의 종결부(coda)에서 베토벤을 향한 질문의 방식으로 삶과 음악의 의미를 확인한다.

 

오늘은 오늘의 하루를 살았고, 오늘도 오늘의 음악을 배웠다. 이렇게 일상을 변주하며 나를 연습한다. 변주에는 끝이 없으니까. 그렇죠, 베토벤 선생님? (p230)

 

베토벤으로 시작해서 베토벤으로 끝나는 세심한 구성을 가진 잔잔하고 다정한 음악 같은 에세이였다. 처음 접한 저자이고, 저자의 첫 책인데 기대 이상으로 나에게는 의미있었기에 저자의 이름 세 글자를 가슴에 새겨두었다. 그리고 나의 종결부는 아래와 같다. 

 

“음악이라는 언어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기꺼이 당신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베토벤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이 생겨서 관련 책들을 잔뜩 빌렸답니다. 음악도 공부도 끝이 없으니까요. 그렇죠, 동네 음악 선생님?”

 

[노년이 되어서라도 꼭 배우고 싶은 바이올린과 피아노, 그리고 베토벤에 관한 책들 중 몇 권]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책을 읽으면서 참고하면 더 좋은 내용들 모음 *


요즘 음악 관련 책들은 QR코드가 대세이던데 이 책에는 그게 없어서 아쉬웠건만 이렇게 리스트가 있어서 반가웠다.

< 저자가 만든 유투브 플레이 리스트가 있는 주소>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ZBSsp5eRJ1QasYzAQgEY-82PM_4mZjAh

 

책의 1장(Var.1)에 언급된 바렌보임의 연주 모습이 너무 궁금했는데 다행히 유투브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다니엘 바렌보임의 시라크 대통령 장례식 피아노 연주 동영상 주소>

https://www.youtube.com/watch?v=66saQMea0kI

 

책의 10장(Var.10)에 언급된 이야기로 사르트르가 말년에 피아노를 연주했고 그 모습이 남아 있어서 놀랍다!

<사르트르의 피아노 연주 동영상 주소>

https://www.youtube.com/watch?v=twzqvIHtVqU

 

책의 28장(Var.28)에 나오는 트라베소 이야기. 살면서 처음 들어본 악기 이름이라 폭풍 검색!

<바르톨드 쿠이겐의 트라베소 연주 동영상 주소>

https://www.youtube.com/watch?v=6QYouEfO6Y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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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시작과 끝에 당신이 함께 하기를 | 기본 카테고리 2021-03-1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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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엔드 오브 타임

브라이언 그린 저/박병철 역
와이즈베리 |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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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 이후, 물리와 오랜 세월 내외하던 내가 물리에 새롭게 눈을 뜨고 사랑할 수 있게 주선해준 저자가 브라이언 그린(Anne처럼 Green with an "e"라서 더 좋아하는~ ㅎㅎ)이다. 나의 첫사랑 물리책은 [멀티 유니버스]였다. 정확히 말하면 우주에 관한 책을 읽고 싶어 이리저리 검색해서 알게 된 책인데 우주와 물리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도 이 책에서 처음 알았고 우주와 물리 이론이 판타지 소설만큼이나 흥미진진하고 재밌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당시에 나는 과학에 일자무식이었..;;), 나에게는 기념비적인 책이었다.

 

 

이후로 브라이언 그린의 책은 모두 소장하는 찐팬이 되었다.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것도 우주에 대한 브라이언 그린의 사색이 담긴 책이란다. 전작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렇게 해박하고 재치있고 글을 잘 쓰는 저자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나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 터이다. 두툼한 책을 받아들고 더 많이 두툼해도 되는데, 라고 책의 두께를 유일하게 아쉬워하며(다음 책이 언제 나올지 모르니..) 냉큼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은 후의 나 자신이 빨리 만나고 싶어졌다.

 

책을 펼치자마자 평소 애정하는 저자 세 분이 남긴 추천의 글(두 분의 글은 심지어 분량도 꽤 많다) 이 책의 기대치를 더 높여주었다(김민형 교수님, 김상욱 교수님, 한정훈 교수님도 언제고 이런 책을 써주시길!).

 

책의 전체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이러하다. 입자물리학과 천체물리학, 그리고 우주론을 바탕으로 다양한 인문학적 배경 지식과 인용, 저자의 견해가 밀도있게 어우러진 이 책은 1장에서 책의 전체에 대한 개괄을 설명해주고, 2장과 3장은 증가하는 엔트로피와 감소하는 엔트로피와 거기에서 빚어진 우주론에 대한 이야기가, 4장은 진화와 환원주의자의 관점에서 슈뢰딩거의 물리학과 화학의 수준으로 생명을 정의하려는 원대한 목표에 대한 이야기와 생명의 기반인 물의 독특한 성질에 대해 나온다. 5장은 환원주의자 뿐만 아니라 인본주의자의 감수성으로 바라본 인간의 의식에 관해서, 6장은 인간이 언어 습득력과 이야기 전달 능력을 키워 온 과정이, 7장은 인간이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8장은 창의적 표현을 추구해 온 인간의 역사에 대해, 그리고 9장과 10장은 인간이 얻은 관측과 계산 결과와 새로 발견한 것들과 11장에서 지금까지 알게 되고 생각한 모든 것을 합하여 얻어낸 결론, 혹은 마무리가 나온다.

 

위의 내용들 중 어떤 부분이 좋았냐고 묻는다면 모든 부분이 좋았다고 대답하겠다. 동전 100개를 이용해서 엔트로피를 설명하는 방식도, 증기 기관에 비유해서 열역학 제2법칙의 2단계 과정을 설명하는 내용도, 원형극장의 구조를 두고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에서 전자 구름에 들어갈 수 있는 전자 개수를 설명해주는 부분도 나에겐 최고의 설명이었다. 이런 방식의 설명이 아니라면 내가 어떻게 물리학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우주와 생명의 탄생부터 종말까지, 우아하고 위트 넘치며 영리한 문장들로 가득 차 있다. “역시 브라이언 그린!”이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가령 이런 문장들이 그러하다.

 

핵력은 중력의 도움을 받아 엔트로피 2단계 과정을 실행하고, 그 덕분에 물질은 우주 전역을 무대 삼아 춤을 추고 있다. 이것은 빅뱅 직후부터 우주라는 상설 극장에서 한시도 쉬지 않고 공연되어 온 장엄한 무용극으로 그동안 수많은 스타(별)를 배출했다. (p104)

 

이런 문장은 어떻고. 진심 빵 터졌다. 깨알 유머 최고다!

 

당신의 몸이 지금과 같은 상태로 유지되는 것은 원자와 분자를 강하게 결합시켜 주는 전자기력과, 원자핵 안에서 양성자와 중성자를 결합시켜 주는 강한 핵력 덕분이다. 이 힘들이 공간을 확장시키는 힘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에 당신의 몸이 하나의 덩어리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당신의 몸이 확장되는 것은 공간 팽창 때문이 아니라 다이어트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p365)

 

그밖에도 많은데 여기에 다 옮기지 못해서 노트에 한가득 기록해두었다. 특히 9장부터는 우주의 탄생부터 소멸까지 장구한 역사를 설명해주는데, “인간의 직관은 일상적인 시간(간격)을 파악하는데 별 문제가 없지만, 우주적 시간 규모는 너무나 방대하여 피부에 와닿지 않기에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층수에 비유한 우주 달력을 도입한다. 우주의 소멸을 읽으면서 류츠신의 [삼체]라는 SF소설이 떠올랐다. 내가 이 소설을 SF소설 중에 손에 꼽는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브라이언 그린의 설명과 일맥상통한다. 삼체의 3부에 가면 태양계의 멸망과 우주의 소멸이라는 방대한 우주적 시간 규모를 인간의 직관으로 파악 가능하게 실감나는 이야기로 구현했기 때문이다.

 

작년에 화제였던 영화 [테넷]에 대해서도 이 책을 통해 엔트로피와 시간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 조금 더 이해의 여지가 생겼다. “우리의 경험은 왜 한쪽 방향으로 치우쳐 있을까? 우리는 왜 특정 방향으로 진행되는 사건에만 익숙하고, 반대로 진행되는 사건은 볼 수 없는 걸까? 그 해답은 우주 진화의 비밀이 담긴 엔트로피에서 찾을 수 있다.”라며 과거와 미래의 차이를 엔트로피로 설명해준다.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깨지는 유리에서 몸의 노화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겪는 모든 일상적 현상들은 반대 방향으로 진행될 수도 있지만 그 확률이 엄청나게 작을 뿐이라는데 제법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테넷]은 허구가 아니라 엄청나게 작은 확률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볼 수 있게 된다.

 

드디어 이 책을 읽기 전의 내가 이 책을 다 읽은 나를 만났다. 책을 읽은 후 세상에 대한 경이로움과 경외심으로 벅차오르는 내가 있었다. 존재의 시작부터 무에 대한 이야기였고, 20세기 지성을 대표하는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이 우주의 미래가 암울하다면서 신의 존재를 부정했지만, 세상이 허무하게 보이거나 두렵거나 공허하지 않았다. 과학과 수학이 밝혀낸 우주의 탄생과 소멸의 과정이 정말로 희귀하고, 경이롭고, 특별하고 가치 있는 사건이며 개인적인 존재의 의미는 바깥 세계가 아닌 내면으로 찾아들어가야 한다는 저자의 결론에 동의하기에 나의 시각과 시간은 이제 이 책을 읽기 전과 다르게 바라보고 다르게 흐를 것이다.

 

리뷰의 마무리로 인용하기 딱 알맞은 문장을 본문에서 찾아두었다. “’전체의 대강이 항상 그렇듯이, 이야기를 단순화시키면 중요한 진실이 흐릿해지거나 아예 사라져 버리(p353)“기에 타인의 리뷰을 읽고 만족하는데 그치지 말고 이 책을 몸소 통과하기를 여러분께 권해본다. 이 책을 다 읽은 당신을 꼭 만나보기를. 이 책의 시작과 끝에 당신이 함께 하기를.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추천의 글에 나온 저자들의 책♡과 크리스 임피의 책들

P.S 리뷰가 길어져서 따로 언급 못했지만, 크리스 임피의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와 [세상은 어떻게 끝났는가]도 참고로 읽으면 더욱 풍성한 독서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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