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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게 건네는 기나긴 농담 - 베르베르의 [죽음] | 기본 카테고리 2019-06-27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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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죽음 1,2 세트

베르나르 베르베르 저/전미연 역
열린책들 | 2019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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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지음 |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인시피트 - 누가 죽였지?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죽음’, ‘탄생 소멸 운명을 지닌다. 우리는 태어남 대해 나름의 이해를 갖고 있지만, ‘죽음 누구나 피해갈 없고, 보다 생경한 경험일 수밖에 없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폭넓은 호기심을 보여주었던 작가, 독특한 소재와 기발한 발상이 녹아있는 작품을 발표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이번엔 죽음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개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통해 알게된 베르베르는 언젠가 내가 써보고 싶었던 글쓰기를 보여주었던 작가였다. 이번에 발표한 죽음 추리소설 작가이자 몽상가인 주인공 가브리엘 웰즈 죽음부터 시작한다. 웰즈의 영혼은 추리 소설의 형식을 빌려 죽음 영역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을 누가 죽였는지알아내기 위해 수사를 진행한다. 소설의 시작은 터키의 작가 오르한 파묵의 소설 이름은 빨강 유사한 모티브를 갖고 있다. 파묵의 소설에서는 다양한 화자 등장하지만 죽은 화가의 영혼이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고 자신을 누가 죽였는지 궁금해하며 시작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죽음 가브리엘 웰즈도 파묵의 소설에 등장하는 화가처럼 자신이 죽게 경위를 추적하는 형식을 지닌다. 소설이 죽음이라는 진지한 주제로 시작하고 있지만, 작가 자신의 독특한 개성은 소설 전반을 통해 다르게 드러나게 마련이다. 웰즈의 영혼이 살인자를 찾는 과정에서도 간간이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통해 인간의 죽음 관련한 기묘한 역사적 사실들을 곁들이며 죽음이라는 소재에 흥미를 더하고 있다.

  

소설 주인공이자 화자이기도 가브리엘은 기독교에서 하느님의 전령으로 알려진 대천사와 이름이 같다. 특히 성경에서 천사 가브리엘은 세례자 요한과 예수가 태어날 것이라는 수태고지 하고 있기도 하다. 다른 맥락에서 본다면 대천사 가브리엘의 이미지는 소설의 도입부에 나오는 죽음 이미지보다는 탄생 이미지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윤회와 환생의 구도를 기반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을 고려할 가브리엘은 새로운 탄생 예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기대를 해보게 된다.    

 

 

소설보다 작가 - 베르나르의 유머와 문제의식

 

소설의 전개는 평이하고 약간의 반전이 마지막에 기다리고 있다. 다만 여기서 자세한 내용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같다. 소설의 사건을 따라가며 내가 눈여겨 보게 부분은 소설을 통해 솔직하게 드러나는 작가 베르베르의 면모들이었다. 특히 옮긴이가 지적하고 있듯이 작가 스스로를 농담과 자조의 대상으로 삼는 유머 감각은 베르나르의 개성이라 생각한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관통하고 있지만, ‘죽음이라는 현상 자체에 주목하기 보다는 여전히 요소에 무게가 수밖에 없다. 베르베르는 죽음 둘러싼 진실들을 다르게 이야기하는 위트를 보여준다. 영매 뤼시의 애인, 사미의 행방을 추적 조사하던 할아버지의 영혼이 죽은 아파트 관리인의 영혼과 협상하는 장면이 예이다. 사미의 행방에 관한 정보를 주면 관리인의 영혼이 환생할 브라질 축구 스타 태어날 있는지 자리를 알아봐 주겠다고 약속하는 모습은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욕망을 가지며 흥정도 하는 영혼들이라니. 베르베르는 사후세계에도 나름의 규칙과 질서가 있는 것으로 상상하지 않았을까.

 

한편 소설의 제목인 죽음 대해 작가가 시도한 다양한 생각들도 엿볼 있다. 영매 뤼시가 죽음을 일체의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럽고 유약한 것에서 벗어나 본질적인 , 정신만 간직하게 됐다고 생각해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사후세계와 윤회에 대한 색다른 생각들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소설은 이런 구도 하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태어난 모든 이는 죽음을 피해갈 없기에 죽음 역설적으로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우리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중요한 일들을 계속 미루기만 하면서 살았다 후회할 것인가? 이런 고민은 지금 순간 삶이 어떠해야하는지에 대해 지향점과 실마리를 준다. “마지막 순간에 얻는 깨달음을 가지고 죽은 자들이 조금 있다면..”(1 58)이라고 죽은 웰즈의 영혼이 후회하는 부분이 그러하다. 걱정과 두려움은 삶에서 중요한 일들을 미루는데 가장 핑계거리인지 모른다. 모기에 물리는 것은 정말 싫은 일이지만, 할아버지의 영혼이 말하고 있듯이 이것이 죽음의 장점이 되기에는 삶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사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영혼들에게 무료라는 점은 솔깃하긴 하지만 말이다. 베르나르는 이렇듯 무거운 주제를 가벼운 위트로 우리의 돌아보게 해주기도 한다. 계기가 심각하고 진지하기만 하는 문학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좀더 진지한 저자의 고민으로는 연명치료 안락사 관련지을 있는 삶의 관한 문제에 주목해본다. 작가 개인적으로 할아버지의 연명치료 대한 경험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환자의 의지와 반하여 삶을 연장하는 문제에 대해 우린 어떤 태도로 바라보고 실천을 해볼 있을까. ‘존엄이라는 상태는 모든 인간이 자신의 삶을 누릴 중요한 키워드가 있다. 소설 속에서 웰즈의 할아버지가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하는 대목에서 잠시 생각해볼 있었던 주제이다. 과거에 집에서 맞던 죽음 이제는 병원에서 처리되는죽음의 외주화 현상이나, 현대 의학의 도움으로 장기간 이루어지는 연명 치료에 대해 베르베르의 관심을 엿볼 있다. 아울러  멈추는 순간을 스스로 결정하지도 못하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1 212)라고 할아버지의 영혼이 반문하는 대목은 안락사문제와 연결지어 수도 있다. 인간의 죽음이란 문제에 정답이란 없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존엄을 갖춘 이란 어떤 것일까가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소설의 여러 부분에서 베르베르가 죽음 대해 했던 가볍고도 진지한 고민들을 발견할 있었다. 나아가 저자의 특기인 상상력과 관련한 문제의식도 소설의 주요한 구성 요소다. 소설의 막바지에 이르면, ‘상상력 문체진영이 서로 비물질 차원의 전투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소설에서 상상력진영은 상상력이 주요한 특징인 장르문학을 대표하고, ‘문체진영은 제도권 작가들의 문학을 대표한다. 장르 문학을 중심으로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베르베르의 입장에서는 제도권 문단에서 평하는 사항들을 익히 들어왔을 터이다. 따라서 웰즈의 영혼이 문단의 평론가들을 장르 문학을 하위 문학으로 취급하도록 배운 사람들”(1 145)이라고 말하는 대목은 프랑스 문단에 대한 베르베르의 비판인지도 모른다. 소설에서 웰즈의 소설 권을 출판해준 편집자 빌랑브뢰즈가 웰즈에게 했던 말처럼 정말 프랑스에서는 비평가의 지지를 받거나 대중의 지지를 받거나 하나일까? 문제는 작가로서 베르베르가 오랫동안 고민해온 부분일것 같다. 다만 부분이 양립불가능한지는 별개의 문제일 있다. 일례로 프랑스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의 오르부아르같은 작품들은 문학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소설로 알려져 있다. 다만 문단의 인정과 대중 독자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경우가 희소할 뿐이다. 상상력 진영과 문체 진영의 대결 끝에 최초의 드루이드 투안의 영혼이 개입하여 설교하는 대목은 문학이란 무엇인가 대해 생각거리를 던져주기도 한다. 다시 말해, ‘내용과 형식은 상반되는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라는 , ‘모든 문학이 존중받는 다양성 수호되어야 한다는 투안 영혼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의 내용보다는 무엇보다 작가 베르나르의 면모, 작가로서의 고민과 문제의식을 더욱 친밀하게 느끼고 공감할 있었다.

 

 

소설의 전개 아쉬운 점들 - 그런데 혹시 아니라면?

 

소설의 전개상 아쉬운 점들은 군데 있었다. 특히 웰즈의 영혼이 자신의 살인자를 추적 조사하는 가운데 가정부 마리아 콘셉시온은 조사하지 않았을까를 예로 있다. 웰즈가 사망하기 전날 , 웰즈는 가정부가 만들어주는 단백질 음료를 마셨지만 콘셉시온을 용의 선상에 올려 조사하는 과정은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웰즈의 영혼이나 뤼시가 용의자들을 찾아가 대화하면서도 이들을 용의자로 의심할만한 실마리를 찾아오지 않는다. 그럴 듯한 계기없이 뤼시와 할아버지가 살인사건 수사에서 돌연히 손을 떼기로 선언한다던지, 뤼시가 사미와 재회하여 아이를 갖기 위해 애지중지하던 고양이를 떠나보내려하는 상황은 아무리 모성성이 강하다고 해도 선뜻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작가 베르나르가 과거에 발표했던 나무 개미 같이 독특한 소재와 시각, 기발함을 여운으로 남았던 것과는 달리 죽음 이전 작품에 비해 다소 부족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웰즈의 소설을 읽은 코난 도일의 영혼이 웰즈의 작품을 평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아이디어는 훌륭한데 엄격함이 부족해. 아직 등장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다루지 못했어.”(2 97)

 

사실 평가는 죽음 읽어나가는 동안 내가 했던 생각과 유사했다. 코난 도일의 입을 빌어 추리 작가인 웰즈의 소설에 대한 인상을 말하고 있는데, 이런 평가는 베르나르의 작품에 대한 프랑스 문단의 평가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이런 평가를 소설의 가운데 집어넣어 저자가 갖고있는 문제의식을 솔직하게 드러내보여주는 듯하다. 분명 베르베르는 장르 작가로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들어온 평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면, 애초에 죽음이라는 소설이 사건들과 인물의 내면, 그리고 소설적 구조의 정밀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것인가. 일련의 사건들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가 떨어지고 개연성이 부족해보이는 전개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주목하고 있는 점은 다른데 있다면?   

 

만약 타고난 이야기꾼, 베르베르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들었음직한 평가들을 소설 속에서 드러내고자 했다면, 그야말로 베르베르적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저자는 틀림없이 소설의 원고를 보며 이를 간파했을 같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평을 코난 도일의 입을 통해 의도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내용이 노파의 영혼의 입으로 또다시 등장한다. 2 282-283 참조). 이쯤되면 나는 소설이 죽음 소재로하여 어른들을 위해 준비한 하나의 동화이자 유머가 아닐까 믿게 되었다. 그리고 제도권 문학에 대한 베르베르의 저항심과 자조적이고 넉살 좋은 유머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말이다. 오히려 베르베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당당함이 느껴졌다. 당연히 제도권 문학의 기준으로 장르소설을 평가절하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읽어가며 베르베르가 배치해놓은 이런 단서들을 만나다보니 소설의 구조니 전개의 미흡함이니 하는 판단은 접게 되었다. 평론가는 생업을 위해 글을 쓰지만, 독자들은 즐거움을 위해 책을 선택할 것이다. 최후의 판단은 독자들이 일이다.  

 

 

 

엑스플리시트 - 나는 누구이며 태어났나?

 

소설을 읽고 남은 인상은 소설 전체가 죽음 소재로, 독자들에게 건네는 기나긴 유머가 아닐까 하는 점이다. 물론 소설 전체가 유머만을 의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관통하면서도 가볍게써내려가되,  작가 자신의 문제의식 또한 놓치지 않고 표출해낸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베르나르가 슬며시 언급한 화제들에는 죽음 둘러싼 문제의식이 보인다. 예를 들어, 장기간 병원에서 이루어진 할아버지의 연명치료 경험은 소설 속에서 비중있는 부분으로 활용되고 있다. 개개인의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할 있는 안락사의 관점에서도 죽음 생각해볼 있다. 소설이지만 이러한 화제를 통해 인간을 존엄하게 만들어주는 조건이 무엇인가에 대해 베르베르의 생각을 발견할 있었다.    

 

영혼은 자유의지를 갖고 있으며, 환생하지 않으면 끝없이 떠돌게 된다 저자의 설정도 흥미롭다. 나아가 프랑스 심령술의 창시자 알랑 카르데크의 영혼이 브라질에 있다는 할아버지 영혼의 말은 시사하는 바도 크다. “떠돌이 영혼들이 대부분 그렇듯 그도 자기를 가장 기억해 주는 곳에서 지내.”(267) 부분에서 나는 애니메이션 <코코> 떠올렸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처럼 현세에서 누군가 자신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은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말하는 같다. 반대로 누군가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을 누군가 존재는 비로소 무화된다. 그러므로 할아버지 영혼의 말처럼 떠돌이 영혼들은 정말 자신을 기억해주는 곳에서 지내고 싶어하지 않을까.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면 웰즈의 영혼은 도입부에서 등장했던 누가 죽였을까? 질문 대신, 이제 나는 태어났지? 묻고있다. 영혼이긴 하지만 자신의 존재 이유 궁금해하는 것이다. 소설 전체를 떠올려 저자는 죽음에서 시작하여 이유를 지향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아마 소설 뤼시의 설득에 넘어가 다시 환생하기로 결정했던 웰즈의 영혼처럼, 소설은 죽음에서 다시 ’, ‘새로운 탄생 예비하며 끝을 맺는다. 마치 대천사 가브리엘이 새로운 수태고지 하러 마리아에게 것처럼, 웰즈의 영혼은 자신이 삶에서 배운 교훈을 독자에게 고지하고 있다. 웰즈가 말해주는 여섯 가지 교훈은 다소 교조적인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기에 간간이 음미해볼 만한 내용이다.      

 

소설을 읽고 나는 일단 오라 구멍이 뚫리지 않도록 자신을 존중하고 돌보는 일이 우선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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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드는 구절들

 

[1] 사랑에 관한 구절들

 

어릴 부모한테 받은 뽀뽀가 마치 포커칩과 같아서 어른이 되어 사랑이라는 포커 게임을 그걸 있다고 했어요. 어릴 받은 포커 칩이 많을수록 게임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1 94)

 

영매인 뤼시가 가브리엘 웰즈의 영혼에게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대목이다. 재미있는 표현이다. 아이들에게 해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대신 아이들은 포커 게임과 포커 칩을 모를 있으니, ‘포커 대신 블루마블게임의 황금열쇠카드 중에서 생일선물 카드 우대권’, 혹은 무인도 탈출같은 카드를 얘기해주어도 되겠다.

 

 

사랑은 지능에 대한 상상력의 승리고, 결혼은 경험에 대한 기대감의 승리다.” (1 209)

 

웰즈의 할아버지 이냐스 웰즈의 영혼이 자신의 인생을 웰즈의 영혼에게 이야기해주는 대목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는 바로 와닫진 않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절반의 진실과 절반의 유머를 담은 말이란 생각을 해본다. ‘사랑이란 관념은 인간의 상상력을 통해 발명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결코 논리로 완성되는 것도 아니고, 베푸는 자에게 보다 사랑이 돌아가는 . 그러므로 사랑은 상상력의 영역에 속한 것이 맞을 지도 모른다. 처음 결혼을 해보는 사람에게 결혼에 대한 기대치는 무엇으로도 꺾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러 결혼을 해본 경험이 있는 이에게도 결혼하냐?’ 묻는 일은 무의미하다. 새로운 사랑을 찾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 기대는 경험을 무색케하는 놀라운 현상인 것이다. 아니면 번번히 아픈 경험에 대한 기억이 마비가 되는 것이거나.

      


[2] 인생의 경험과 관대함에 대한

 

인간은 자신의 어두운 면과 맞부닥뜨려 봐야 비로소 그것에서 벗어날 있어요. 실수를 하고 잘못을 저질러봐야 고칠 있는 거예요. (…) 실수없이 앎에 도달하는 불가능해요. 경험은 오랜 시간에 걸쳐 퇴적물처럼 쌓이는 거죠.” (2 198)

 

뤼시와 돌로레스의 영혼이 사미에게 해코지를 하려 하자 드라콘의 영혼이 개입하며 하는 말이다. 특별한 말은 아니지만, 부분을 읽는 동안 학창시절의 나를 떠올렸다. 혈기왕성하던 시절, 나만의 생각이 옳다고 믿었던 행동들,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고 상처를 주었을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말하지만, 그것은 진정으로 성찰하지 않는 사람들에나 해당하는 이야기 아닐까. 중요한 것은 실수를 해보고 경험치가 쌓이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마음가짐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관대한 마음가짐을 가질 있는 사람은 분명 젊은 시절에 많은 시행착오와 실수를 해본 사람일지도 모른다. 베르베르 역시 작가로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관찰해온 결과 관대함 대한 통찰을 우리에게 넌지시 이야기해준다. 실수를 저지른 타인에게 우리가 돌을 던지지 않는 관대함을 가진 사람은 어쩌면 과거의 실수를 통해 어떤 종류의 이른 사람의 태도일 것이다. 내가 미숙하던 시절을 끊임없이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를, 그리고 타인에게 관대해야하는 이유를 슬며시 일깨워준 구절이다.

 


  [3] 문학의 본분과 문학인의 지향점에 대한

 

문학을 권력의 도구로 여기는 잘못된 생각일세. 문학은 교육과 성찰과 오락의 도구지. 작가인 자네들이 일은 의식의 고양이야. (…) 나는 모든 문학이 예외 없이 존중받고 수호되야 한다고 믿게 됐네. 다양성이 우리의 힘이야. 특정 문학의 우월성을 고집하는 어리석은 것일세.” (2 257면)

 

상상력 문학 진영 제도권 작가 진영 영혼들과 등장인물들의 영혼이 비물질 차원의 전투를 하며 대결하는 장면에서 최초의 드루이드 투안의 영혼이 설교하는 대목이다. 투안의 영혼은 나쁜 문학과 좋은 문학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것을 이야기한다. 특히 문체 중심의 문학과 상상력 중심의 문학은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문학이란 이름 아래 시도되는 모든 노력들은 존중받아야한다고 말이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우린 생각보다 다양성이 부족한 환경에 놓여있음을 깨닫곤 한다. 상대방의 의견이 나와 다르다거나 심지어 거슬린다는 이유로 제거하고 배척해야할 대상으로 삼는 태도도 보인다. 소설이긴 하지만 작품 속에서 작가의 문제의식이 그대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나는 베르베르가 어느 순간 자신의 존재를 이렇게 드러내는 것을 흥미롭게 주목해본다. 작가의 다원주의적 시각 관대함 요즈음 내가 자주 하게되는 고민들과 맞닿아 있다. 투안의 표현대로 문체를 중시하는 제도권 문학만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소설을 읽으며 즐기는 동안 작가의 고민과 문제의식을 접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이런 부분을 만나게 되면 작가에게 보다 가까워진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작가는 분명 어느 (species) 갖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내부의 다양성이라는 교훈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인간의 삶과 사회도 다르지 않다. 짧은 순간이지만 책을 읽으며 옆길로 빠졌다가 다시 돌아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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