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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여행이 때론 혁명을 부른다’ | 기본 카테고리 2021-12-26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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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체 게바라 저/홍민표 역
황매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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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 세상을 바꾸기 전에 먼저 자기를 바꾼 한 남자의 특별한 여행기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Ernesto Che Guevara) 지음 | 홍민표 옮김 | [생애]

 

누군가의 여행이 때론 혁명을 부른다

 

인간의 여행은 언제부터 시작했을까. 전 세계에 퍼진 바이러스로 여행이 더욱 낯설게 다가온다. 교통수단이 이렇게 발달한 시대임에도 말이다. 인류의 조상이 여행을 시작한 것은 두 발로 설 수 있었을 때부터일까. 여행이라는 행위의 본질은 미지의 세계로 나아감이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혹은 뜻밖의 위험이 기다리는 일. 반면 새로운 세계에 대한 앎과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겠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혁명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에게 여행이란 무엇이었을까? 그가 의대생이던 23세살에 떠난 두 번째 여행의 기록인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읽으면서, 여행에 타고난 사람이란 이런 사람을 두고 말하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북아메리카에 가보면 어떨까?”

북아메리카에? 어떻게?”

포데로사를 타고!”

 

혁명가의 무모한여행은 이렇게 비롯되었다. 바로 돈키호테 같은 게바라와 알베르토 두 명의 젊은이가 나눈 대화에서. ‘힘센 녀석이라는 의미와는 반대로, 폐차 직전의 부실한 오토바이 하나에 초록색 다이어리와 필기구, 오토바이 수리 도구와 부품, 권총과 칼, 먹을 것을 조금 넣은 뒤 무작정 떠난 여행(195110)이었다. 불과 1년 전에 이 의대생은 자신의 조국 아르헨티나 북부 지역 4500 km를 여행하고 돌아온 적이 있으니 어느 정도의 자신감에 차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번엔 동행인과 오토바이가 있지 않은가. 하지만 여행에는 불확실성이 함께하기 마련이다. 새로운 만남뿐만 아니라 위태로운 순간도 기다리는 법. 두 의사 몽상가들은 아르헨티나를 떠나 태평양을 마주하는 칠레, 페루, 콜롬비아,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까지 처음에는 오토바이로, 나중에는 도보로 히치하이킹을 하며 나아갔다.

 

어느 날은 부실한 오토바이 때문에 하루에 9번이나 사고를 당하면서도 두 사람은 오토바이를 고치고 노숙을 하며, 폭풍우를 만나 고생을 하기도 한다. 마치 돈키호테가 늙은 말을 타고 가다가 이리 저리 굴러 떨어지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앞에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하고, 사고를 당해 땅바닥으로 구르면서도 여전히 시들지 않은 즐거운 기분으로 여행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게바라는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을 보면서 나의 운명이 여행임을 알았다.”(42)라고 다이어리에 적었다. 심지어 이스터 섬으로 가고 싶어 몰래 밀항한 배 안에서 우리의 진정한 소명이 영원히 세계 곳곳을 방랑하는 것임을 깨달았다.”(95)라고, 여행이 자신의 소명임을 발견한다. ‘진정한 소명이라니! 내 방에서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이번 생애에 이런 생각이 들 것 같지는 않다. 나에겐 혁명가의 기질이 없다는 것이 다행(?)이다.

 

여행을 마치고 자신의 다이어리에 쓴 글을 다듬고 정리하면서 게바라는 분명히 다른 사람이 되어갔음을 스스로 인정한다. “아르헨티나 땅에 발을 디뎠던 그 순간, 이 글을 쓴 사람은 사라지고 없는 셈이다. 이 글을 다시 구성하며 다듬는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다. ‘우리의 위대한 아메리카 대륙을 방랑하는 동안 나는 생각보다 더 많이 변했다.”(20) 여행이 이렇게 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니. 몸을 움직이기 싫어하는 나도 이런 여행을 해볼 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해본다. 낯선 곳에서 새롭고 맛있는 음식을 맛보는 일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여행에서 돌아와도 항상 허기를 느꼈다. 아마도 지금까지 내가 다녀온 여행은 몸(뱃살)만 변했지, 나의 정신이 변화할만한 여행을 한 적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도 않고, 트럭을 타거나 혹은 걸어서 5000 m 넘는 안데스 산맥의 산들을 넘는 이들 일행을 상상해본다. 요즘처럼 이동전화가 있거나 응급환자 이송 체계가 갖추어지지 않았던 시기였다. 야생의 환경에 그대로 노출된 두 젊은이는 호기심과 두려움을 모두 끌어안고 세상에 나섰다. 그러고 보니 내 아버지의 젊은 시절이 떠오른다. 아마도 60년대 말 혹은 70년대 초일 것이다. 오토바이 하나에 몸을 싣고 전국을 다니셨다는 아버지였다. 어느 날 아버지는 어머니와 부부싸움을 한 뒤 오토바이를 타고 남쪽 끝에 있는 누나 집으로 떠나셨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아마도 당시에는 포장이 안 된 국도가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여행자에게 도움이 될 지도 역시 없었을 테다. 말하자면 내 아버지는 70년대 초에 전국을 누비던 폭주족이었던 셈이다. 아버지는 길을 떠나면서 두렵지 않으셨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게바라는 다이어리에 두려움이야말로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몇 안 되는 경험 중 하나’(241)라고 썼다.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미지의 세계로 나아감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용기를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두려움을 극복하게 해주는 호기심과 상상력이 작동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 세대는 이제 이런 여행을 더 이상 하기 힘들 듯하다. 길을 잃고, 시행착오를 할 여지를 첨단 도구들이 대체해버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부모 세대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상실해버린 세대인지도 모른다. 게바라 역시 두려움을 마주하고 세상으로 나아가 만나는 삶의 모든 양태를 그대로 관찰하고 흡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여행하면서 정치인 및 여러 지식인들, 경찰 및 병원의 직원들, 나환자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나환자들을 만나 대화하고 함께 축구를 하기도 했다. 심지어 구걸하는 이들을 비롯한 극빈자들과도 만나 대화를 하며 가난의 모습을 실감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과 직접 부대끼며 교과서 밖의 세계를 배워나간 셈이다.

 

 

라틴아메리카의 현실과 범아메리카주의, 그리고 혁명의 씨앗

 

대항해시대가 시작되면서 유럽의 백인들은 괴물들이 살고 있다는 세상 밖을 상상했다. 특히 중세 시대에 지중해의 서쪽 끝에 있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바라본 대서양은 그저 막막한 바다였다. 수평선 너머 세계의 밖에는 무엇이 있을까? 일부 몽상가들은 분명 궁금했을 것이다. 항해술이 발달하면서 시작한 탐험으로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 이후 발생한 인류사의 비극들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예가 서인도 제도와 아메리카 대륙으로 유입된 노예와 노예제도의 문제들, 현재의 페루 지역에 있는 잉카 제국의 멸망, 멕시코 고원의 아즈텍 제국의 멸망이다. 게바라는 다이어리에 스페인 정복자들이 잉카제국의 태양신 잉티 사원을 완전히 파괴하고 그 토대와 벽돌을 이용하여 성당(산토 도밍고 성당)을 지었던 일을 기록해두었다. 물론 서구 문명의 야만과 폭력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게바라가 고국 아르헨티나에서 북쪽의 베네수엘라까지 여행하면서 깨달은 것은 서구 문명의 식민주의적 침탈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었다.

 

게바라의 기록에 따르면 1950년대 당시, 칠레는 이미 전 세계 구리 생산의 20%를 담당했고, 그 밖에 철, 석탄, 주석, , , 망간, 질산염 등 풍부한 지하자원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강력한 공업국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 뿐만 아니라 전 인구를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는 가축과 곡물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절망적이었다. 칠레 광산의 채굴권은 독일인들이 먼저 획득했는데, 아마도 나치 시대에 남미 지역에 많이 진출했을 것이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치 독일이 패전국이 되면서, 영국이 재빠르게 남미의 광산과 공장의 소유권을 가져가버렸다. 칠레와 접하고 있던 페루는 어땠을까? 게바라가 여행했던 50년대에 페루 광산의 소유권은 이미 미국에 있었다. 서구 백인들의 제국주의 국가는 20세기에도 여전히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자원을 깡그리 흡수하고 있었다. 오늘날 서양사회에서 남과 북으로 언급되곤 하는 빈부의 격차는 결국 서양의 문명이 야기한 문제였다.

 

게바라와 알베르토 두 사람은 오토바이로 여행을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히치하이킹으로 차를 얻어 타거나 도보로 다녔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서구 문명이 판을 짜놓은 세상의 모습을 더욱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지 않았을까. 광산의 주인은 영국과 미국인들인데, 광산 노동자들은 몰락한 잉카 제국의 후손들이었던 현실. 하지만 게바라는 광산의 소유주와 노동자가 서로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부조리한 구조를 간파했다. 그는 냉혹한 효율과 무기력한 분노가, 증오심에도 불구하고 함께 손을 잡고 그 거대한 광산을 움직이고 있었다. 한쪽 편은 생존 때문에, 다른 한쪽 편은 이윤을 위해...”(101)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누더기 담요 한 장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사람들과 함께 추위에 떨면서 밤을 보내기도 했다. 거리의 사람들로부터 가학적인 가난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고, 세상이 빚어낸 극빈의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오늘날 민족과 국가의 우월함이라는 허구를 걷어내고 바라본다면, 개개인에게 모멸감을 안겨주고 인간의 존엄성을 앗아가는 극빈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을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게바라가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국제 정세의 현실을 더욱 실감했을 것이다. 특히 치안과 정치적 불안이 극심했던 콜롬비아의 경우도 기록되어 있다. 이 모습은 콜롬비아에 대한 미국의 개입과 입김 때문이었다. 칠레 공산당이 불법화된 시기(1948-1958) 역시, 미국의 매카시즘이 북아메리카를 몰아치던 시기와 오버랩된다. 여기에 한국전쟁(1950-1953)으로 불거진 냉전시대를 떠올린다면, 미국이 전 지구를 하나의 체스판처럼 만들어 세계를 주무르던 제국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다. 오늘날 베네수엘라에 두 명의 대통령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현재 베네수엘라는 국민의 지지를 받고 군대를 장악하고 있는 대통령과,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는 두 번째 대통령이 대립중이다. 게바라를 사살했던 볼리비아 군이 미국의 지휘를 받았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현재 베네수엘라의 정세가 불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당연한 결과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 이 아름다운 나라의 분열과 희생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게바라가 70여 년 전에 바라보았던 현실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알베르토와 게바라 일행이 여러 나라의 지식인들을 만나면서 눈을 뜨게 된 것 중 하나는 바로 연대의 가능성이 아닐까 싶다. 페루에 있는 나환자 병원에서 머물 때 만난 정신분석학 교수 발렌사 박사는 청년 게바라에게 범아메리카주의를 이야기했다. “북아메리카가 고층빌딩이나 자동차들, 엄청난 부를 가졌다고 해서 성숙했다고 할 수 있을까? 과연 성장기를 지났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닐세. 그 차이는 표면적일 뿐, 근본적인 것이 아닐세. 이 점에서는 북아메리카든, 남아메리카든 모든 아메리카는 자매지.”(195) 나환자 병원에서 머무는 동안 두 사람은 환자들과 함께 이들을 마치 건강한 사람들을 대하듯 악수를 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축구도 했다. 이들이 떠날 때 환자들은 두 사람을 위해 진심어린 환송파티를 열어준다. 게바라는 발렌사 박사의 범아메리카주의에 감화를 받았던 것일까. 병원의 의사가 축배를 제안에 화답한 게바라는 범아메리카주의를 역설한다. “우리는 멕시코에서 저 멀리 마젤란해협에 이르기까지 두드러진 민족적 유사성을 가진 하나의 메스티조 민족입니다. 나 자신에게서 편협한 지역주의의 굴레를 벗어버려는 뜻으로, 페루를 위하여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연대를 기원하며 축배를 제안합니다.”(217)

 

무작정 떠난 길 위에서 게바라는 이렇게 서구 문명의 침탈을 여전히 겪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을 발견했다. 사람들의 삶 속에 들어가서 극빈의 냄새를 맡았으며, 가난에 처한 인간의 위기를 목격했다. 책이 아닌 사람과 세상을 통해 범아메리카주의를 몸소 깨달았다. 그는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만일 위대한 영혼이 인류를 두 개의 적대적인 진영으로 나눈다면, 나는 민중과 함께 할 것임을.”(244)이라고 적었다. 다이어리에 좋아하던 시인들의 시를 적고 중얼거리며 추위를 견디며 걸었던 몽상가 청년은 여행 후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이 책에서는 일개 의대생이 혁명가가 되기 전, 현실에 눈을 뜨는 과정을 발견할 수 있다. 게바라는 1800년대 말에 라틴아메리카 해방투쟁의 지도자 볼리바르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역자가 언급한 것처럼, 게바라는 미국 식민주의에 대항하며 쿠바의 독립을 위해 싸운 민족 영웅 호세 마르티 역시 알지 않았을까. 그에게 여행은 인식의 지평을 확장한 것뿐만 아니라, 현실에 새롭게 눈을 뜨게 하고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던 경험이었다. 이처럼 여행은 누군가를 혁명가로 만들고 혁명을 불러오기도 하는 것이다. 진정한 여행은 이처럼 위험할 수도 있다.

 

 

 

 

[책 속으로]

[1] “아르헨티나 땅에 발을 디뎠던 그 순간, 이 글을 쓴 사람은 사라지고 없는 셈이다. 이 글을 다시 구성하며 다듬는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다. ‘우리의 위대한 아메리카 대륙을 방랑하는 동안 나는 생각보다 더 많이 변했다.” (20)

 

[2]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을 보면서 나의 운명이 여행임을 알았다.” (42)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소명이 영원히 세계 곳곳을 방랑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95)

 

[3] “칠레에서 만남이란 곧 환대를 의미했고 우리 두 사람 중 누구도 이 뜻밖의 행운을 거절할 처지가 아니었다.” (83)

 

[4] “계급제도라는 부조리한 이념에 기반한 현재의 질서가 얼마나 더 지속될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지배자들이 자신들의 치적을 선전하는 데 낭비하는 시간을 줄이고 사회적으로 유용한 일들에 더 많은 돈을 써야할 때가 왔다.” (86)

 

[5] “냉혹한 효율과 무기력한 분노가, 증오심에도 불구하고 함께 손을 잡고 그 거대한 광산을 움직이고 있었다. 한쪽 편은 생존 때문에, 다른 한쪽 편은 이윤을 위해...” (101)

 

[6] “발디비아의 행로는 신대륙의 정복자들이 실제로 통과한 지역들을 살펴볼 때, 스페인의 식민사업에서 가장 두드러진 정복 활동의 하나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 발디비아의 행위는 절대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지역을 장악하고 싶은 지칠 줄 모르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 (110)

 

[7] “무엇보다 중요하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우리가 여기서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강력했던 토착 민족의 순수한 자기표현을 보았다는 것이다. 아직 정복자들의 문명과 접촉하지 않았고, 생명을 가지지 못한 지루함 때문에 죽어버린 벽들 사이에 있는 충만한 보물들을 말이다.” (152) - 몰락한 잉카 제국의 흔적을 보면서 기록한 말.

 

[8] “북아메리카가 고층빌딩이나 자동차들, 엄청난 부를 가졌다고 해서 성숙했다고 할 수 있을까? (...) 북아메리카든, 남아메리카든 모든 아메리카는 자매지. 칸틴플라스를 보고서, 나는 범아메리카주의를 이해하게 되었다네!” (195)

- 여행 중 만난 정신분석학 교수 발렌사 박사의 범아메리카주의

 

[9] “만약 우리 자신을 나병 치료에 진정으로 헌신하게 만들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은 환자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애정일 것이다.” (197)

그들(나환자들)이 이렇게 고마워하는 것은 저희가 가운도 입지 않고 장갑도 끼지 않은 채 마치 건강한 사람들을 대하듯이 자신들과 악수를 하고 곁에서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함께 축구도 했기 때문입니다. (..) 평소 마치 동물처럼 취급받아 왔던 이 불쌍한 사람들에게는 단지 정상인들처럼 대우받았다는 사실이 주는 심리적 고양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나큰 것입니다.” (211) - 여행 중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10] “우리는 멕시코에서 저 멀리 마젤란해협에 이르기까지 두드러진 민족적 유사성을 가진 하나의 메스티조 민족입니다. 나 자신에게서 편협한 지역주의의 굴레를 벗어버리려는 뜻으로, 페루를 위하여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연대를 기원하며 축배를 제안합니다.” (217)

- 나환자들이 마련해준 파티에서 한 게바라의 화답

 

[11]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만일 위대한 영혼이 인류를 두 개의 적대적인 진영으로 나눈다면, 나는 민중과 함께 할 것임을.”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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