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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잘 보았어요ㅡ추천합니다 
사진이 정말 귀엽게 나왔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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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Lucy》 - 피식민지 출신 소녀가 자신에게 다가가는 과정 | 기본 카테고리 2022-02-1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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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루시 Lucy

저메이카 킨케이드 저/정소영 역
문학동네 | 2021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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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Lucy》

저메이카 킨케이드 지음 | 정소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

 

 

 

‘피식민지 출신 소녀가 자신에게 다가가는 과정’

 

 

우리는 아름다운 풍경 사진을 보고 대개 감탄하곤 한다. 혹은 풍경 속의 현장에 직접 가보고 싶다거나 그 장소의 이력을 궁금해 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이가 그런 것 은 아니었다.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소설 《루시 Lucy》는 이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도시에서 사는 백인 중산층 부부와 이들의 아이를 돌보는 흑인 소녀가 기차를 타고 도시를 벗어나는 길이었다. 창밖에 갈아엎은 밭이 펼쳐진 풍경을 보고 백인 여성은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풍경’이라고 말한다. 반면 흑인 소녀는 ‘저 일을 내가 안 해도 돼서 정말 다행’이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이 장면은 소설 전반부에서 상당히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이처럼 동일한 풍경, 혹은 이를 담은 사진을 보고 사람마다 크게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은 풍경을 보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경험과 기억을 지녔기 때문이다.

 

 

소설 《루시 Lucy》는 저자 킨케이드의 자전적 이야기다. 저자는 서인도 제도의 영국 식민지였던 앤티가섬에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17살 때 학업을 중단하고 미국 뉴욕 주의 백인 중산층 가정에 입주 보모(오페어)로 일을 시작했다. 화자는 저자의 분신이었다. 화자의 생년월일이 저자와 동일하게 설정되기도 했다. 킨케이드가 대학에서 잠시 사진을 공부했던 것처럼 화자 루시도 사진을 찍는 것으로 나온다. 이 소설은 ‘길지 않은’ 장편소설이지만 꽤나 다양하고 복잡한 층위가 뒤섞여 있다. 식민주의, 여성으로서의 삶과 페미니즘, 가부장제도, 인종주의와 같이 현대인의 삶을 규정하고 있는 틀과 맥락이 밀도 있게 담겨 있다. 인종주의적인 측면은 소설에서 두드러지게 부각되지 않지만, 인종 문제는 소설 속 인물의 배경이 되는 전제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이 모든 문제는 사실 별개의 문제가 아니었다.

 

 

 

 

식민주의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삶과 고통

 

 

앞서 언급한 흑인 소녀의 이름은 루시 조지핀 포터다. 루시는 자신의 이름을 무척 싫어했다. 식민지의 역사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녀가 태어나 자란 앤티가섬은 소설의 시간적 배경인 1968년 즈음에도 여전히 영국에 속해 있었다. 1981년에서야 독립했던 이 섬은 공식적으로 무려 349년 동안 식민지였다. 루시의 성 ‘포터’는 예외 없이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왔던 조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다. 식민지 현실에서 노예들이 주인의 성을 따랐던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루시의 할머니는 사라져버린 원주민의 후손이었다. 3대에 걸친 여성의 피 속에 식민주의의 잔재가 여전히 흘렀다. 실제로 킨케이드는 《루시 Lucy》의 전편 격인 자전적 소설 《애니 Annie John》를 출간한 해에 딸을 낳았는데, 딸의 이름 역시 애니로 지은 바 있다. 현실의 삶에서도 여성이라는 공통분모를 기반으로 식민주의의 역사가 세대를 건너 이어지고 있었다. 소설 속 인물과 실제 작가의 삶이 맺는 관계는 마치 거울에 비친 대칭 이미지처럼 여겨진다. 작가는 피식민지 여성의 목소리를 다른 세계의 사람들에게도 들려주고 잊지 않기를 무엇보다 바랐던 것 같다.

 

 

식민지 모국에서 살아가는 피식민지 여성의 삶은 내게 익숙한 삶을 너머 훨씬 다양한 층위가 존재하고 있음을 말한다. 오랜 시간 피지배자로 살았던 환경에서 개개인이 그 영향력을 떨쳐내기란 역부족이다. 루시와 엄마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줄곧 ‘나는 엄마와 닮지 않았고, 엄마처럼 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해도 이 관계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루시는 언젠가부터 엄마가 겪던 두통을 마찬가지로 앓는다. 백인 주인 머라이어의 손을 보고도 엄마를 떠올리는 루시는 ‘자신이 곧 엄마’임을 깨닫는다. “멀리 도망갈 수는 있겠지. 하지만 내가 네 엄마라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 내 피가 네 속에 흐르고 있고, 넌 아홉 달 동안 내 뱃속에 있었으니까.”(74)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애증의 관계다. 엄마가 자신과 다르게 세 남동생을 대했을 때, 엄마에 대한 증오가 두드러졌다. 점령국의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간 피식민지 여성이 가부장제도를 내면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루시의 가슴에 칼이 꽂히는 순간이었다.

 

 

난 사회적 지위도 없고,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도 없었다. 내겐 기억이 있고, 분노가 있고, 절망이 있었다.”(108) 소설 전반에서 루시가 줄곧 보여주었던 정서가 아닐까한다. 루시에게는 엄마처럼 미운 사람이 없었고, 또 엄마처럼 그녀에게 중요한 사람도 없었다. 내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딸 사이의 애증관계다. 루시는 언제나 자신을 친절하게 돌봐주는 백인 여성 머라이어의 모습에서 엄마를 떠올렸다. 머라이어의 손이 엄마와 닮았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도 엄마가 보낸 편지는 읽지도 않고 치워버렸다. 하지만 갑자기 아빠가 돈 한 푼 남겨 놓지 않고 세상을 뜬 다음 큰 빚까지 남겨둔 것을 알게 되자, 루시는 자신이 가진 모든 돈을 엄마한테 보냈다. 아들이 할 법한 행동과는 사뭇 다른 엄마-딸 사이의 모습이다.

 

 

피식민지인에게 가해진 억압과 왜곡된 가부장제 질서의 모순 때문이었을까. 루시의 대인관계, 특히 남녀 관계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녀는 사랑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육체적 관계에는 탐닉했다. 일반적인 관계에서 기대되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란 없었다. 자신이 가진 돈을 전부 준 다음 엄마와 손절했던 루시는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 살아가고 싶어 했다. 이게 자신이 늘 원했던 삶이라고 생각했다. 겉보기에 루시는 자유를 얻었지만 사랑이 빠진 대인관계에서 행복감과 희열, 소망이 성취되었다는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다. 삐걱거리는 그녀의 대인관계는 식민주의와 가부장제가 남긴 상처의 결과였다. 루시에게는 곁에서 자신의 상처를 돌보아줄 사람이 없었고, 스스로도 상처를 돌볼 기회도 놓쳤다. 사랑 없는 공허한 관계에 탐닉했던 것은 더 이상의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았던 무의식에서 나온 행동이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기만의 키스’라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현실에서 루시만 고통 받았던 건 아니었다. 자신이 돌보던 아이들의 부모, 머라이어와 루이스의 결혼 생활 역시 파탄을 향하고 있었다. 루이스는 아내에 대한 사랑이 식었지만, 가족들 앞에서는 애정 표현을 과시했다. 루시는 루이스의 행동이 그저 ‘쇼’임을 곧바로 알아챘다. 게다가 루이스는 가족이 별장에 머물 때, 텃밭을 망친다는 이유로 토끼를 쏘아 죽였다. 이 모습은 피식민지인들에게 가했던 식민지 모국의 행적을 떠올리게 한다. 백인 가족이 토끼를 위해 치러주는 장례 의식을 보면서 루시는 이것이 이들의 삶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허위’라고 여겼다. 이처럼 소설은 백인 중산층 가정의 기만적이고 가식적인 모습을 화자의 눈으로 고발하기도 한다. 그녀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은 폐허라는 사실”(72)을 깨닫게 되었다.

 

 

 

사진 - 분노와 절망, 거짓을 걷어내는 의식

 

 

대인 관계는 언제나 삐걱거리고, 매사에 불만과 분노를 드러내던 루시도 좋아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박물관 가기와 책읽기였다. 머라이어는 박물관에서 본 어떤 사진을 좋아했던 루시에게 사진집 한 권을 선물했다. 사진집을 보면서 루시는 지인들을 떠올렸는데, 특히 한 소년에 대해 말했다. ‘두 팔에 커다란 병 두 개를 안고 경쾌하게 걸어가는, 반바지를 입은 아이 모습’(93)을 담은 사진이었다. 틈나는 대로 사진집을 보던 루시는 자신도 사진기를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실제로 킨케이드가 사진학과에서 1년 동안 공부를 했던 이력이 있었던 것처럼, 루시도 사진에 관심을 갖고 자신이 촬영한 사진을 인화하여 들여다보곤 했다. 여러 면에서 루시는 작가의 분신이었다.

 

 

소설 속의 화자가 사진을 찍고 결과를 들여다보는 과정은 상징적이고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의 ‘사진 활동’은 앞서 언급했던 식민주의적 질서에 영향을 받은 인간들의 모습을 비추어 주었다. 다시 말해 허위와 허영, 기만적인 삶에 얽힌 대인 관계로부터 거리를 두고 이를 관찰할 기회를 준 것이다. 또 그녀가 회피하고 가슴 깊이 묻어 둔 상처들을 돌아보게 했다. 사진 찍는 이유를 알지는 못해도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좋아 그녀는 계속 사진을 찍었다. 루시는 가족과 떨어져 낯선 곳, 익명성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자유로움과 더불어 행복감과 만족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를 기다린 건 공허함뿐이었다. 반면 사진 속에 담긴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흔들림 없이 응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고통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더라도 말이다. 이 과정은 자신의 상처를 보듬고 애도하는 과정과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또 타인의 모습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해주는 사진의 힘을 보여주기도 한다.

 

 

머라이어의 집에서 나와 독립한 루시는 이제 ‘자신만의 방’에서 사진을 들여다본다. 그녀의 사진기는 렌즈 앞에 있는 대상 그대로의 모습을 담았다. 결과물은 사진가와 피사체를 기록하며 이들의 현존을 증명했다. 반면 루시는 사진 자체가 모든 진실을 말해주지도 않음을 간파했다. 자신이 인화한 사진을 보면서, “어떤 실재를 찍은 사진이 종국에는 그 실재 자체보다 더 흥미로운 건 왜일까?”(97)라고 묻기 때문이다. 루시의 궁금증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사진을 보는 감상자의 경험이나 기억에 따라 사진의 진실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음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적 진실과 사진에 보이는 진실에는 언제나 간극이 존재할 수 있음을 직관했던 것. 그녀는 바로 이 점에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사진은 이를 읽고 말하는 자에 따라서 언제든 우리를 기만할 수도, 혹은 진실을 말해줄 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이점을 이해한 루시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통로로 사진을 활용한다. 촬영자와 감상자가 동일하기에 오히려 현실에 덧씌워진 기만과 허영의 장막을 걷어낼 수 있었고, 거짓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순간 지나가버리는 현실과 달리 사진 속의 현실은 자신의 기억,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 마주하며 새로운 진실을 발견하기도 했다. 루시의 사진 활동은 상처를 숨긴 채, 사람들 앞에서 삐뚤어지고 모순된 행동을 보였던 자신과 마주하게 해주었고, 자신의 면모를 새롭게 발견하게 해주었다.

 

 

루시의 사진 활동이 소설에서 중요하다고 여긴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이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자기를 발견하는 글쓰기의 가능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머라이어는 도시 생활을 정리하면서 이탈리아에서 샀던 가죽 장정 공책을 루시에게 선물한다. 침대에 누워 있던 루시는 늘 마음에 들지 않았던 자신의 이름을 공책에 쓴 다음 이 문장을 썼다. “사랑해서 죽을 수도 있을 만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130) 이어서 루시는 수치스러움이 몰려와 오열한다. 사랑과 신뢰가 깃든 대인관계에 실패했던 것은 또 다시 상처입기 싫었기에 상대방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루시가 사진을 찍고 이를 들여다보는 행위는 식민주의의 영향과 여성의 굴레 속에서 지난한 삶을 살아야 했던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또 자신을 가리고 있던 기만적이고 두터운 장막을 걷어내게 해주었다. 이 과정은 자신과 만나는 글쓰기의 가능성으로 이어졌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앞으로 루시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가능성과 사랑이 깃든 인간관계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을 갖게 될 수 있기를 기대하게 된다.

 

 

 

 

[덧붙임]

루시는 머라이어가 선물해준 사진집 한 권을 보고 사진기를 사겠다고 결심했다. 이 사진집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집으로 생각된다. “한 소년의 사진이 특히 그랬다. 두 팔에 커다란 병 두 개를 안고 경쾌하게 걸어가는, 반바지를 입은 아이였다.”(93)라는 대목을 근거로 한다면 말이다. 이 사진은 브레송이 1952년에 파리에서 찍은 흑백 사진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의 배경인 1968년과도 시간적으로 모순되지 않는다.

(아래 사진 참조)


(c) Henri Cartier-Bresson, Paris, 1952

 

 

[책 속으로]

[1] "한 곳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남자에게 매맞는 여자아이가 있고, 다른 한 곳에는 눈에 보이는 남자에게 목이 베이는 여자 아이가 있구나. 이렇게 넓고 넓은 세상인데 어째서 내 인생에는 선택지가 고작 그 둘뿐이지?" (22)

 

[2] "우리가 그 장면을 똑같이 보고 함께 눈문을 흘릴 수도 있겠지만, 그 눈물의 맛은 다를 것이었다." (29)

- 활짝 핀 수선화가 무리지어 넘실대는 수풀을 보고 한 사람은 아름다움을, 다른 사람은 비통함과 원한만을 느끼는 모습.

 

[3] "내가 머라이어를 사랑했던 때는, 그녀를 보면 엄마가 떠올랐을 때다. 내가 머라이어를 사랑하지 않았던 때는, 그녀를 보면 엄마가 떠올랐을 때다." (49)

 

"머라이어를 보면 볼수록 내가 사랑하는 엄마의 면모가 점점 더 많이 떠올랐다. 손이 엄마 손과 똑 닮았다." (50)

 

[4] "꽤 어렸을 때였는데도 난 잘사는(그러니까 분명 행복한) 사람들은 다들 일 년 삼백육십오 일이 뚜렷한 네 계절로 나뉘는 지역에 산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기울어진 자전축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곳이었다. 해가 쨍쨍하고 가뭄에 시달리는 단 하나의 계절만 있는 곳." (70)

 

[5] "그리고 틀림없이 난 여자였다. (...) 엄마처럼 되기 싫다는 말을 얼마나 오랫동안 되뇌며 살았던지 그러다가 사정의 전말을 놓치고 말았다. 난 엄마처럼 되지 않았다. - 난 그냥 엄마였다." (74)

 

[6] "남자의 생애는 언제나 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막 알게 된 참이었으니까." (78)

 

"요즘 깨닫기 시작했는데, 무슨 일을 하든 정확한 방식을 아는 사람들, 그러니까 찻잔을 쥐는 법이나 포크로 찍은 음식을 옷 앞자락에 흘리지 않고 입으로 가져가는 법을 아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이 세상 대부분의 불행에 책임이 있고, 미칠 일도 빈털터리로 생을 마감할 일도 별로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80)

 

[7] "어떤 실재를 찍은 사진이 종국에는 그 실재 자체보다 더 흥미로운 건 왜일까? 아직 그 대답은 알 수 없었다." (97)

[8] "자유를 향해 가는 길에서 누구든 재물을 얻고 누구는 죽음을 얻지." (103)

- 폴이 차를 몰면서 대양을 건넜던 위대한 탐험가 이야기를 하면서 ‘자유를 찾아 나서는 것이 인간의 조건‘이라고 말하자 로드킬당한 동물을 보면서 루시가 대꾸한 말.

 

[9] "난 내가 그 섬에 존재하게 된 기원이, 내 조상의 역사가 사악한 행위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09)

- 아프리카 흑인들을 노예로 데려와 사탕수수 농장 등에서 일을 시킨 역사를 가리킨다.

 

[10] "포터라는 성은 틀림없이 우리 조상이 노예였을 때 그 주인이었던 영국인의 성일 것이다." (120)

- 실제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어머니 이름도 로더릭 포터다.

 

[11] "악마 이름을 붙인거야. 루시는 루시퍼를 줄인거지. 하여튼 내 뱃속에 들어선 그 순간부터 얼마나 성가셨던지." (121)

- 자신의 이름이 지닌 의미를 알게 되어 오히려 실패자라는 기분에서 벗어나 의기양양한 기분을 느끼는 루시.

 

[12] "사랑해서 죽을 수도 있을 만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130)

- 루시가 선물로 받은 공책에 썼던 첫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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