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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옷자락을 내어줄 수 있다면 | 기본 카테고리 2022-05-29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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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죠리퐁은 있는데 우유가 없다

강이랑 저
좋은생각 | 2022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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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옷자락을 내어줄 수 있다면

- 죠리퐁은 있는데 우유가 없다

  강이랑 지음 | [좋은생각] | (2022)

 

 

20년 가까이 피우던 담배를 8년 전 즈음 끊었다. 지인들은 나를 독한 놈이라며 별종으로 취급했다. 내가 담배를 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 염치때문이었다. 지인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담배 끊는 비결은 사실 간단했다. 하루 한 갑 이상 피우던 담배를 살 돈이 없어서였다. 직장을 그만 두기 전에 다른 일자리를 구한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지 않고, 막연히 일자리를 금방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던 것이다. 주변머리가 없어도 이정도 일 수 있을까. 구직기간 동안 저축해둔 자금은 금방 바닥이 났다. 돈 버는 재주도, 주변머리도 없던 흡연자가 할 수 있는 선택이란 우선 담배를 끊는 수밖에. 마음 편히 부모님의 도움을 계속 받을 만큼 느긋하지도 못했고, 또 타인이 준 도움으로 담배를 사 피울 염치도 없었다. 경험은 누구에게나 상대적이지만, 가난한 상황이 수반하는 구차함의 생생한 경험을 나는 이렇게 맛본 적이 있다.

 

 

내가 잠시 경험했던 이런 삶의 순간들을 죠리퐁은 있는데 우유가 없다의 저자 강이랑은 어떻게 이렇게 담담하게 살아낼 수 있었을까. 당장 여유 자금 없이 삶을 누군가에게 온전히 의지해야만 했던 경험이 있는 도시 생활자로서 나는 책에서 아프면 큰일이다라고 한 저자의 한마디가 더 실감나게 다가왔다. 더 물러설 공간 없는 마지노선 위의 삶. 그럼에도 누군가의 삶에 도움을 주는 존재로 살고 싶다는 저자의 말이 더 뚜렷하게 각인되어 남는다. 물질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것을 나누는 일은 부유한 이가 나누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넉넉하지 못한 이에게는 그의 실존적인 결단이 개입되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가난하지만 타인과 나눔으로써 더 넉넉해질 수 있었던 저자의 일상이 투명하게 담겨있다.

 

 

저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학원에서 글쓰기 강사를 하던 중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발견했다. 아동문학을 공부하고 싶었다고 한다. 일본어를 할 줄 알았기에 일본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학위를 받고 국내에 돌아온 저자는 국내 대학에 자리를 얻고 평범해 보이는 연구자의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찾아온 공황장애 증상으로 소속이 있는 직장을 떠나기로 했고, 대신 독립 연구자의 길을 선택했다. 이 정도가 책에서 이해한 저자의 간단한 이력이다. 이 중에서 그가 유학 시절에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클럽에 가입하여 일본 아이들과 만난 경험을 이야기한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아이들은 외국인인 그를 편견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가 독립 연구자라는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해서도 삶에 매몰되지 않고 당당히 나아갈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나는 그림책을 사랑한다”(62)고 고백하는 그 마음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유학 시절 아이들과 만나면서 아이 같은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느 날 저자가 산책하는 들판에 자라던 풀을 누군가가 베어냈다. 하지만 다시 자라나는 들풀처럼 아이는 모두 성장하는 힘을 지니고 태어난다”(74)라는 믿음이 그에게 남아있었다. 이처럼 저자가 아이들과 만나고 스스로도 더욱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아이들과 함께 읽는 그림책이 주는 힘이 컸던 것 같다. 그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림책이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143)라고 하는 점이었다. 타국에서 외국인이 아이들과 만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마음이 맞는 좋은 사람들과 계속 만나며 삶을 나눌 수 있었던 것 역시 그림책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한편 그림책뿐만 아니라 아동문학과 동화를 연구하는 저자에게 글쓰기는 삶의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중학교 입학식 때 어머니와 있었던 일을 써서 동화책을 만든 적이 있었다. 물론 이 동화책은 출판되지 않았으므로 그에게는 유일무이한 책이었다. 성인이 되어 동화책을 발견한 뒤 이 책을 함께 읽고 저자가 노모와 교감을 나누는 모습이 인상 깊다. 물론 노모는 그 책 읽었다정도의 반응만을 보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저자와 노모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화책을 통해 서로가 마음을 확인하는 모습은 충분히 읽어낼 수 있었다. 굳이 말이 없어도 교감할 수 있었는 것은 가족이기에 가능할 것이다. 두 모녀의 모습을 보면서 키티 크라우더의 그림책 메두사 엄마에 나오는 이야기도 떠올려 보았다. 메두사 엄마와 딸의 관계처럼 엄마와 아이는 서로를 성장시키며 삶을 나누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간결하게 적어 낸 저자의 에세이가 토대를 두는 삶은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는 글을 마치면서 가난한 지금을 오롯이 살아 내며 고개를 돌리지 않았더니 이 책에 실을 글들을 얻을 수 있었다”(163)라고 담담히 말한다. 하지만 그의 글에선 누군가의 삶에 도움을 주는 존재로 살고 싶다는 바람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언젠가 지하철에서 공황장애 증상을 겪었을 때, 그가 잠시 붙들 수 있게 옷자락을 내어주었던 사람을 결코 잊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누군가 주저앉으려는 사람에게 잠시라도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러한 마음들이 저자를 통해 나에게 이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이 우리의 지난한 삶을 또다시 견디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저자는 스스로를 돈길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부르지만 그는 오히려 재화의 쓰임새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한 끼 식사가 될 수 있는 죠리퐁도 주변과 나누는 사람, 누군가의 삶에 도움을 주는 존재로 살고 싶다는 그는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나누어도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까지 나누어주기 때문이다.

 

 

 

 [책 속으로]

[1] "한 마디로 나는 돈길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벌고 쓸 수 있는지 도통 모른다. 이렇다 보니, 아프면 큰일이다."(38)
 

[2] "아이들은 자신의 말에 성의껏 반응해 주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며 말을 건넨다."(53)

 

[3] "아이는 모두 성정하는 힘을 지니고 태어난다. 자신 안에 갇혀 불평만 하는 어른은 타고난 강점마저 잃은 것이다."(74)
 

[4] "‘여주‘같은 무언가를 건네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소박한 채소 하나가 여름 보양식이 되듯, 누군가의 삶에 도움을 주는 존재로 살고 싶기에."(116)
 

[5] "나는 그림책을 사랑한다."(62)

"그림책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가장 간결하게 이야기한다."(136)

"그림책은 함께 읽어야 제맛이고, 다른 사람에게 읽어줄 때 빛을 발한다. (...) 그림책은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다."(143)
 

[6] "엄마와 아이는 서로를 성장시키는 존재인 것이다."(159)
 

[7] "아이가 건강하게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선 ‘아버지의 이름‘이 중요하다. (...) 어머니가 아버지의 존재를 완전히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이는 ‘아버지의 이름‘을 가질 수 없게 된다."(160)
 

[8] "가난한 지금을 오롯이 살아 내며 고개를 돌리지 않았더니 이 책에 실을 글들을 얻을 수 있었다."(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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