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몽슈슈 무민의 블로그
http://blog.yes24.com/nykino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초란공
무민의 블로그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11월 스타지수 : 별3,467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함
전체보기
기본 카테고리
새소식
나의 리뷰
기본 카테고리
나의 메모
기본 카테고리
태그
도스토옙스키탄생200주년 오르부아르 알렉스헤일리 제임스볼드윈 성수대교붕괴사고 충주호유람선화재사고 한국형발사체누리호 앵글로아프간전쟁 아프가니스탄미군철수 폴발레리의문장들
2021 / 11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월별보기
최근 댓글
우수리뷰 축하드립니다 좋은 리뷰 감사.. 
어제 고래에 대한 글을 보았는데, 이.. 
우수리뷰 축하드립니다! 서평 너무 잘.. 
우수리뷰 축하드립니다! ^^ 
초란공님. 이 주의 우수 리뷰 선정 .. 
오늘 50 | 전체 30986
2016-10-07 개설

전체보기
‘자유인이 되기위한 매뉴얼’ - [내 안에서 찾은 자유] | 기본 카테고리 2017-05-29 20:55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9665683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내 안에서 찾은 자유

장자 원저/뤄룽즈 저/정유희 역
생각정거장 | 2017년 04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 안에서 찾은 자유 - 장자>

장자 원저 | 뤄룽즈 지음 | 정유희 옮김 | 생각정거장

 

자유인이 되기위한 매뉴얼

 

우리에게 너무나 알려져 있는 장자의 사상이 담겨있다는 <장자> 대한 인상을 오늘날의 언어로 어떻게 표현할 있을까? 대만의 뤄룽즈 교수가 <장자> 기반으로 선별/해설한 책의 제목과 같이<장자> 인간의 자유로움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의 자유로움을 이야기할 ,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보다 마치 우주 밖의 외계인이 지구인을 바라보는 시각처럼 자유로움 이야기하는 같다. 따라서 인간을 중심에 놓고 세계를 바라보는 인위성을 <장자>에서는 줄곧 비판하고 조소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뤄룽즈 교수가 지은 책을 달리 말하면 자유인이 되기 위한 매뉴얼이라고 말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인간사의 상대성

     세속의 모든 도덕은 상대적이다.”(182)

우선 뤄룽즈 교수가 언급하고 있듯이 장자는 인간과 세상을 마치 지구밖 외계인의 시선에서 지켜보고 판단하는 같다. 그만큼 대상과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이들을 바라본다. 장자는 이런 시야를 갖게되었을까를 생각해본다. 장자가 살았던 시대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던 사회였으며,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짓밟고 잔혹하게 대하던 전국시대를 살았다고 한다. 현대의 인권 같은 개념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혹독하고 잔혹한 유아살해시대를 살았다는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 역시 전국시대에 살았던 장자와 100 이상 차이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늘날의 관점에서) 인권이 심하게 유린되던 세상에서 정치가들이 불변의 인위적인 규칙을 가지고 이를 적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장자는 몸소 철저히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판단의 근거, 기준을 어디에 것인가? 장자는 그러한 기준을 자연에서 발견한 모양이다. 우리가 학의 다리가 길다라고 이야기하지만, 타조보다는 짧다. 오리의 다리를 짧다라고 하지만, 참새보다는 길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가 학의 다리가 길다혹은 짧다라고 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장자는 이런 의문에 대해 자연에는 이러한 근거가 본래적으로 없음이 바로 자연의 본성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닐까.

      장자는 자연에서 얻은 지혜를 인간사에 적용할 역시나 자연의 상대적인 특성으로부터 주요 힌트를 얻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국 인간중심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장자의 관점에서 인간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우는 일과 다름아닐것이다. 그런 점에서 <장자> 통해 장자는 인위적인예를 강조한 공자를 자신의 우화에 자주 등장시켜 존중하는 듯하다가도 어느 비판과 조소의 대상으로 삼는 이유를 짐작해볼 있다. 누군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여 미움을 자초하기 보다는 우화 허구의 인물로 등장시켜 빗대는 방식은 무척 장자답다는 생각도 해본다. 장자의 우화 상당수가 유사한 구조를 갖는 점도 눈에 띄는데, 이는 인간 본위의 기준이 갖는 절대성을 비판하고 언제나 다양한 해석과 의견이 가능한 상대적인 견해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다시말하면 인위성에 대한 조소와 비판은 <장자> 전반적인 정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보인다.

     예컨대 백이와 도척 우화를 떠올려본다. 장자의 관점에서 절개를 위해 자신의 명을 단축시킨 백이나 재물에 대한 욕심으로 죽음에 이르는 도척 누가 나은 삶을 살았다고 판단할 있겠는가를 묻는다. 어느 인생이 의미있는 인생을 살았다고 있을까? 저자 뤄룽즈는 도척이든 백이든 모두 자연성 거스른 삶을 살았기에 생명을 해친것이라고 해석한다. <장자> 특징을 앞에서 언급했듯이 의미있는 인생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를 따져보면 가지 정답만 있는 것이 아님을 있다. 인간의 관점에서 과연 어떤 집과 재물과 얼마만큼의 수익이 보장되면 의미있는 인생 살고 있는지 판단이 가능한지를 우리 스스로 물어볼 있겠다. 누구나 인정하듯 여기에는 정답이 없다 점이 유일한 답일지도 모른다. 이렇듯 <장자> 읽으며 찬찬히 나의 삶을 되돌아보면 당연한 생각되는 부분도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만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점에 수긍하면서도, 우리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구가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장자는 여기에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고 나에게 말해주는 하다. 그리고 지혜를 인간 중심의, 인위적인 상황에서가 아니라 보다 보편적인 상황에서 구하라고 가르쳐주는 같다. 여기에서 나아가 장자가 주장하는 상대적인 관점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져들어가다보면, 결국 나는 그동안 그토록 해결하기 힘든 또는 불필요한 문제에 고민하느라 나의 에너지와 감정을 소모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해준다.    

     장자의 상대주의 관점이 담긴 우화를 읽어나가다보면, 작가 밀란 쿤데라가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성서에 등장하는 인간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 그리고 <죽음의 밥상>에서 윤리학자 피터 싱어의 인간중심적인 종차별주의 대한 주장과도 만날 있음을 또한 발견한다. 견해 모두 결국 장자의 상대주의적 시각을 실천하고 판단한 사례로도 있겠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자신의 근처에서만 생산되는 농산물만을 먹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 피터 싱어는 윤리적인 고려방식이 상대적일 있음을 이야기한다. 멀리 이동함으로써 또는 멀리서 농산물을 수입하여 발생되는 화석연료 소비를 줄이고, 지역 농민의 삶에 경제적인 도움을 준다는 생각은 훌륭하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절대적으로 윤리적인가를 묻는 것이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농산물을 수입함으로써, 나와 가까운 농가에 도움이 되는 것보다 훨씬 극적으로 멀리 떨어진 농가에 도움이 되어, 이들의 삶에 도움이 된다면 과연 어느 방식의 소비가 윤리적일 있는지 단정해서 대답할 있을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복합적이고 복잡한 양상을 좀더 이해하게 됨에 따라 이렇듯 상대적인 가치 대해 좀더 눈을 뜨게된다. 나아가 <장자> 통해 우리의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고 깔끔하게 모든 바램과 해결책이 맞아들어가지는 않음을 점점 수긍하게 된다.   

 

자유인은 어떻게 되는가?

    자유인이란 무엇일까? 자유는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판단하고 행동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리고 자유인은 자신의 욕망대로 있어야 하는가. 언젠가 어떤 어르신과 대화를 나눈 자리에서 자유인 대한 언급이 나온적이 있다. 어르신은 자유인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하기 싫은일을 자신의 의지대로 삼가하고 거절할 있는 사람이 자유인 같다라고 말씀하신 기억이 난다. 비슷해보이는 표현이 다른 것은 무엇일까. < 안에서 찾은 자유> 서문에서 저자 뤄룽즈 교수는 인간이 부자유 얻게 이유가 인간이 물질과 지식, 감정에 의존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의 의지와 욕구대로 수있는 사람이 자유인이 아닐 있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의지와 욕구라고 믿는 신념이 지극히 인간본위적인 대상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념이 순수하게 우리 자신의 신념이 아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욕망하는 것이 과연 우리의 순수한 욕망일까? 아니면 물질에 대한 욕심 혹은 사회의 편견과 관습에 의해 욕구와 욕망이 안에서 내면화된 또는 이런 외부의 욕망이 나에게 투사 욕구가 아닐까. 나는 우리 대부분이 욕망하는 어떤 신념이나 대상은 우리의 순수한 욕구를 반영한다고 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의 의지대로 있는 상태를 자유 보는 것도 결국은 장자의 관점에서 부자유 스스로 추구하는 길이 아닐까.

     반면에 앞에서 언급한 어르신의 말대로, 자신이 하기 싫은 , 또는 거부하는 것을 자신의 의지대로 거절할 있는 상태는 뤄룽즈 교수의 표현대로 우리가 우리의 물질적 욕망이나 감정으로부터 우리를 객관화하는 일이기에 자유 추구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 나의 해석이다. 따라서 우리의 욕구대로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 자유인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어떤 것을 스스로 거절할 있는 사람이 보다 자유인에 가깝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그리고 둘은 분명히 질적으로 다른 상태다.

     우리에게 너무나 알려진 우물안 개구리우화를 읽다보니 우화를 생각의 도구로 첨가한 장자의 의도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본다. 물론 우화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중년 초입에 들어온 나에게는 새롭게 다가오는 면도 있다. 문맹률이 매우 높던 기원전 전국시대에 장자는 우화를 통해 기가막히게 놀라운 발상의 전환을 우리에게 또는 독자에게 의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글도 제대로 모르는 이들에게 상대주의적 관점 대해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그리고 글을 아는 사람들로부터 속임을 당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이 중요함을 장자는 알았을 같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앞서 잠깐 언급했던 플라톤이 자신의 <국가>에서 도입한 동굴의 우화 떠오르게 한다. 좁은 동굴의 입구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생기는 그림자만을 있었던 동굴 사람들의 이야기는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인간 세상에 현상을 설명해줌과 동시에 우리의 편협함을 조소하고 있는 듯하다. 뤄룽즈 교수도 이야기하듯 우리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가 되기 힘든 이유도 결국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 만든 인위적인 의존’(물질, 지식, 감정 ) 장치로부터 스스로 벗어나기 힘든 까닭일 것이다.

     한편 장자의 우물안 개구리우화든,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은 우리 스스로 거리를 두고 바라볼 있는 고유의 능력을 시사한다고 수도 있다. 이러한 인간의 독특한 정신적 능력은 <장자> 우화에 나오는 공손룡의 회의주의적자세와 연관이 깊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상대주의 관점은 사실 나만이 옳다라고 믿을 있는 상황에 대한 회의 전제가 되어야만 가능한 관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옳다라고 믿는 만큼, 상대방도 옳을 있음을 깨닫고 인정하는 일이 바로 회의하는 인간이 자유 얻을 있는 길이기도 것이다. 우리의 도덕이 상대적일 있음을 깨닫는다면, 타인에게 우리가 옳다고 믿는 도덕을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덮으며

    < 안의 자유> 덮으며 떠오르는 이미지 가지가 있다. <장자>에서 이야기하는 새장 속의 우화와 우리 속의 맹수 등장하는 우화이다. 책이 주는 전반적인 이미지라는 것을 떠올려 , 새장 우리 표상하는 것은 결국 우리 인간의 부자유 의미할 수도 있겠고, 장자가 줄곧 비판하고 있는 인간의 인위성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새장 속의 우리 속의 맹수 스스로 만든 족새에 얽매여 있는 부자유인’, ‘인간이기도 것이다. 확고한 판단 근거와 규칙을 주장하는 유가의 입장에서  장자의 견해는 기회주의적이고 궤변론자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장자의 가르침에 내가 크게 공감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 위치 감각이자 회의의 정신이다. 광대무변한 우주의 티클로서 위치하는 우리에 스스로에 대해 신선한 관점을 제공함과 동시에 나만 옳은 것이 아니다. 나아가 자연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학창시절일 때보다도 우리 삶의 복잡성에 대해 좀더 이해를 하게 지금 장자가 주장하는 견해가 단순히 궤변론자가 아니라 보다 친숙하게 다가오게 것도 이번 기회에 < 안에서 찾은 자유> 읽고 새롭게 얻게 수확이다.

 

  

 

(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1)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진행중인 이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