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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 - 초사회성(Ultra Sociality) | 기본 카테고리 2017-07-26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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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울트라 소셜

장대익 저
휴머니스트 | 2017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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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 소셜>

장대익 지음 | 휴머니스트

 

“호모 사피엔스를 이해하는 하나의 키워드 - 초사회성(Ultra Sociality)

 

우리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하는 물음은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의 종착점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한다. 학문을 비롯하여 예술, 스포츠 등등 결국은 우리 인간이 주체이며 관심 대상이라는 것이다. 진화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여러 책을 출간한 장대익 교수의 <울트라 소셜>에서는 관심 대상을 호모 사피엔스로 좁혔다. 하지만 제한된 대상에 대해서도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을 있음은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이해가 아직은 완전하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책에서는 호모 사피엔스의 ‘초사회성’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추적하는 것으로 책을 시작한다. 여타의 영장류 집단과 사뭇 다른 호모 사피엔스만의 여러 가지 특징들을 살펴보며, 초사회성이 집단에 가져다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의 양면을 들여다 보고 있다. 나아가 인간과 로봇과의 교감과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을 통해 호모 사피엔스의 새롭게 진화되어갈 초사회성에 대해 새로운 화두를 던지듯 마무리하고 있는 책이다.

     나의 개인적인 기억을 떠올리자면, 내가 인간에 대한 고찰을 담은 누군가의 결과물을 때마다 떠올리게 되는 것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이라는 영화였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인류의 초기 모습으로 보이는 영장류 집단이 나온다.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시작하는데, 어느 하늘에서 반듯한 검은 서판이 떨어진다. 그리고 영장류는 동물의 유해(뼈조각) 이용하여 다른 영장류에게 폭력을 가하고 우위를 점하는 법을 알아내게 된다. 영장류가 유전자 속에 가지고 있던 ‘폭력성’이 뼈조각이라는 도구를 통해 발견하는 장면으로 나는 보았다. 이후 화면은 인류의 미래로 시간 이동하여 우주 복판에서 우주선과 우주정거장이 우아한 왈츠곡 “푸른 도나우강”에 맞추어 흘러가는 장면이 나온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떠오른 생각은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라는 영화가 어쩌면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영상서사이자 초사회성의 과거, 현재, 미래를 요약해놓은 영화라고 수도 있겠다라는 점이었다.

     장대익 교수는 ‘초사회성’을 호모 사피엔스가 문명을 꽃피우게한 사회성을 의미하고 있다. 그리고 초사회성의 시작은 무엇보다도 가장미숙한 존재이기에 발달할 수밖에 없다고 본듯하다. 다시말하면 아기가 엄마의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오면서 터뜨리는 ‘응애’하는 울음소리에 자신이 생존할 있는 모든 가능성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아기의 울음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초사회성이 발현된 사회적 욕구이자 행위라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정의하고 이를 타자에게 알림으로써 자신의 생존을 보장받는 수단이 바로 아이의 울음으로 있다. <울트라 소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부터 보다 간결하게 호모 사피엔스의 사회성에 주목하고 있는 책으로도 있겠다.

     앞서 언급한 1960년대 개봉된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에서 한가지 흥미로운 점을 찾아볼 있는데, 바로 우주정거장의 운영OS라고 있는 인공지능의 존재이다. 영화에서 인공지능의 존재는 인간을 파괴하려는 의도를 갖게 되는 혹은 스스로 진화하는 인공지능의 모습으로 디스토피아적인 배경을 전제하고 있다. 반면 <울트라 소셜> 후반부에서 펼치는 인간과 로봇의 공존양상은 보다 긍정적인 면에 가까운 같다. 어쩌면 호모 사피엔스는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하는 초사회성을 통제하고 다룰 있다는 믿음에 근거하고있는 결말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알파고와 이세돌 9단과의 대결이 전해준 충격은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과 논의를 우리 사회에 촉발시켰다. 사건은 나아가 빅데이터를 다루는 4 혁명’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결국 빅테이터가 인공지능과 접목이 되면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할 있는 인공지능의 탄생이 좀더 가까워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책을 읽어가면서 장대익 교수는 하버드대 심리학자인 스티븐 핑커의 영향을 상당히 받은 듯한 인상을 받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들> 언급하기에 이른다. 분명 엄청난 양의 역사적 자료와 수치 통계를 동원하여 인류의 폭력성은 역사를 통해 점점 감소해오고 있음을 논증한 방대한 책의 영향을 저자는 많이 받은 것일까. 초사회성이라고 부를 있는 영장류를 포함한 여타 동물과 다른 독특한 사회성을 보이는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를 스티븐 핑커와 함께 낙관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3 초사회성의 그늘에서 초사회성의 어두운 (집단 편가르기, 서열현상, 권위에 대한 무비판적 동조행위) 대해 언급하지만, 칼날의 양면과도 같이 우리가 하기 나름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는 듯하다.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와 함께 해온 초사회성 대해 이분법적인 잣대-선과악-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의 양면적 초사회성 인류의 미래에 인공지능과 결합했을 나타날 있는 부정성에 대한 언급은 말을 아끼는 듯하다. 우리의 미래에 좋음과 나쁨 일괄적으로 정할 없듯, 호모 사피엔스의 초사회성 어떻게 생겨나고,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돌아봐았다면,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에도 양면을 전문가의 입장에서 들려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이런 부분은 스티븐 핑커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사피엔스의 미래>에서 매트 리들리와 함께 인류의 미래는 낙관적이라고 주장하는 대목과 일관성은 유지하는 반면, 수치와 통계를 이용하여 우리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듯한 불편한 감을 지울수가 없다. <울트라 소셜>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에 대해 짤막하게 언급하는 대목에서도 바로 스티븐 핑커의 이런 인류의 미래에 대해 무언가 석연치 않은 낙관이 보인다는 점이 나에게는 유사하게 다가왔다.

     지금 현재 호모 사피엔스를 바라보는 학계의 보편적인 관점이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가 주장하고 있는 인류에 대한 관점과 일치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울트라 소셜>에서는 <사피엔스>에서 보이는 인간의 특징적인 부분들이 많이 겹쳐 드러나는 같다. 기타 영장류와 달리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남을 있었던 것은 보다 집단(150 또는 이상 수준) 결속을 다질수 있는 수단을 동원했다는 점일 것이다. 장대익 교수의 견해가 옳다면 아마도 이런 현상은 수렵채집 시대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잉여 만들이 시작한 농경사회가 도래하면서부터 가능했다는 것으로 나는 이해한다. 인도나 단군의 변신 신화 등장하는 변화의 신들은 대개가 비와 구름과 같은 자연현상을 닮아 있다는 점이 근거로 생각해 있겠다. 그리고 거대한 집단의 결속을 다지는 접착제 역할을 바로 인간의 신화, 이야기, 스토리텔링 능력을 통해 가능했다는 것이 공통적으로 유발 하라리와 장대익 교수가 언급하는 것들이다. 달리 말하면 스토리텔링이란 허구를 만들어내는 창작능력에 다름 아니다. 좀더 과장해서 말하자면, 호모 사피엔스는 속이고 속는능력을 가짐으로써 비로소 지구의 정복자가 있었다고 봐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류의 속이는 스토리텔링 능력은 논픽션이 아니라 픽션, 보다 넓게 보아 문학의 기능과도 연관지을 있을 같다. 오늘날 우리가 문학 필요한가를 따질 내세울 있는 근거가 된다. 오늘날 네가 존재할 있었던 것은 바로 문학 때문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이다.

     스토리텔링에 관해 말할 , 이야기 스토리텔링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장대익 교수는 문학이 인지 적응의 부산물로서 보는 견해를 소개하며 스티븐 핑커의 예술관을 언급하고 있다. 그의 시각은 문학과 예술 등이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를 해오며 인지적응된 사례가 아니라 적응 과정에서 따라오는 부산물이라고 보는 것이다. 내가 이해한 바가 맞다면 스티븐 핑커는 예술이 쾌락버튼 눌릴 나오는 부산물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장대익 교수는 핑커의 예술관에 동의하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핑커의 관점은 고전 문학의 존속 이유를 설명해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티븐 핑커가 갖고 있는 인류에 대한 관점은 동물과 다를바가 없는 듯하다. 장대익 교수가 문화의 전수 대해 설명했듯, 동물의 행동이 자극강화 통해 이루어진다는 관점과 핑커의 예술관은 무엇이 다를까. 달리 보면 스티븐 핑커의 예술관은 계몽주의적인 영향 이후 변질되어버린 근대적 예술관 대한 제한적인 이해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문이 든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도 이미 예술의 원형은 놀이 따로 떨어뜨려 생각하기 힘들다고 한다. 속에 있는 어떤 쾌락 버튼 자극되어야만 예술활동이 이루어지고 결과물이 나온다는 관점은 아무리 호모 사피엔스가 유전자의 생존 번식 기계라고 말하는 리처드 도킨스의 관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책에서 핑커의 예술관에 대해 너무 간결하게 설명이 것인지, 아니면 내가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생각은 핑커가 놀이 성격의 예술관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지 않을까라는 것이 견해다. 우리는 다른 동물들과 다른 차원 높은 정신적 영역을 갖고 있다고 말할 있지 않을까? 그리고 한차원 높은 수준의 영역에 바로 초사회성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하는 의문을 새롭게 가져본다.     

 

좋은 점과 아쉬운

     책에 등장하는 연구들의 거의 대부분이 서양의 연구자들이 그들의 관점에서 풀어낸 인간관이라는 점은 언제나 아쉬운 부분으로 남지만, 이러한 연구들을 국내의 연구자가 보다 알기 쉽게 정리하여 일반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는 점은 우선 반가운 사실이다. 또한 복잡해보이는 심리 신경과학 실험 결과들에 대해 저자의 간결하고 맛갈나게 의미를 짚어주는 부분은 읽으면서도 보람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다. 반면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다. 아마도 일반 독자를 위해 책의 내용을 한정하다 보니, 여러 연구결과들을 소개하고 의미를 친절하게 짚어주는 것은 좋았으나 장대익 교수의 견해를 좀더 들어보았으면 좋았을 같다. 앞서 언급했던 스티븐 핑커의 주장 예술관에 대해 저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한 부분이다. 책의 분량과 독자를 염두해두어서인지 저자의 참신한 비판과 의견들을 좀더 듣고 싶은 것은 비단 나만의 아쉬움일까. 아울러 저자가 어떤 특정 실험을 소개할 , 실험의 구성이나 장치에 대한 묘사를 하는 대목에서 저자의 설명이 곧바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저자는 해당 실험이나 구성에 대해 알고 있겠지만, 독자로서는 보다 친절한 그림이나 도표가 없거나 부족한 상황에서 저자의 설명만을 따라간다는 것은 때론 상당한 고역이기도 하다.

 

 

(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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