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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briele Basilico사진전'을 보고 | 기본 카테고리 2020-11-27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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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briele Basilico사진전》을 보고

: Photography of Italy

2020.10.20 - 12.02 KF Gallery




시내에 잠시 나갈일이 있어 을지로에 들렀다가 KF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사진전을 관람했다. 사진을 전공하는 친구가 가보라고 했던 기억이 나서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렀다.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 출신인 사진작가 가브리엘레 바질리코(Gabriele Basilico, 1944-2013)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12 2 까지). 평일인데다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어서 그런지, 점심시간이라고 해도, 넓은 공간에 대개 혼자 아니  정도로 관람할 있었다.


바질리코는 대형 카메라로 도시의 풍경을 주로 찍는 작업을 했던 같다. 영상을 보니 말년에는 컬러 작업도 했던 모양인데, 전시된 사진은 모두 흑백 사진 작업이었다. 이번에 전시된 사진은 1978년에서 2010 사이에 작업한 사진을  고르게 선별했다고 나온다. 사진을 전공한 친구의 말에 따르면, 바질리코의 사진 작업 중에서 가장 알려진 작품들은 베이루트 찍은 풍경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 국내 전시에는 이것만 빠져있었다. 아쉽지만 영상에서 보는 장의 이미지로 만족해야 했다.


지난 8 4, 항구에서 항구에 년간 저장되어 있던 질산 암모늄이 폭발하여, 400 명이 죽고, 6500 명이 부상했다는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바질리코는 바로 레바논의 베이루트를 찍은 사진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는 모양이다. 1991년에 여러 사진작가들과 함께 15 지속된 내전으로 파괴된 도시 베이루트에 관한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찍은 사진들이라고 한다. 도시의 건물에 유리창이라고는 남아 있지 않고, 모든 건물은 앙상한 구조만 남아 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이 터질 순간 발생한 엄청난 열로 사람이 증발한 흔적을 보는 같은 충격이 느껴진다.


요즈음 그림 전시회나 사진전에서 많은 관람자들이 작품을 보면서 폰이나 카메라로 사진 찍기 바쁜 모습을 본다. 모든 사진을 담아가려는 사람도 있다. 나도 이전에 그렇게 하곤 했지만, 찍어두고는 다시 들여다 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촬영이 허용되는 한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 장만 찍어오는 것으로 그치고, 대신 넉넉히 시간을 들여 그림이나 사진을 눈에 담아오는데 집중하는 편이다. 게다가 사람이 많지 않아서 떠밀리듯 감상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 작품의 특징을 찬찬히 관찰하면서 메모해두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집에 와서 메모를 봤을 , 머릿속에서 제법 생생하게 그림이나 사진을 떠올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관람자가 거의 없어서 메모와 함께 사진을 보았다


사진 전공인 친구는 바질리코의 사진에서 어떤 인성같은 것을 느낄 있을 정도로 좋았다고 했다. 안타깝게 나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바질리코의 사진은 대부분의 대형 카메라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사진처럼 조용하다. 하지만 그의 사진이 조금 색다른 점은 도시의 건물을 찍을 어떤 패턴을 느낄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건축전공을 해서 그런지 상당히 치밀하게 화면을 구성하는 균형감같은 것들을 느낄 있었다. 평면의 영역 속에 관람자의 관습적인 기억에 의존하는 전경과 후경의 배치, 도시의 수직 구조 같은 기하학적인 느낌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하늘 아래 새로운 없다라고 했던가. 바질리코의 사진 역시 여러 사진가들로부터 받은 영향이 보이는 했다. 영상에서도 작가가 언급하지만, 건축을 전공한 바질리코가 사진을 시작할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그의 사진 역시 브레송 사진의 흔적들이 보인다. ‘트리에스테 1985사진 중에서 해질 녘의 바닷가/부두를 찍은 장의 사진이 있다. 전망대처럼 보이는 위쪽의 공간을 에워싸고 있는 가드레일은 기하학적인 구조를 하고, 화면의 가운데를 에워싸면서 화면을 중심과 외부로 분할한다. 쪽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이는데, 계단을 올라가는 시선 위로는 멀리 바닷가에 척이 닻을 내리고 정박해 있는 처럼 보인다. 


반면에 오른쪽 아래 어둑한 그늘 속의 회랑에는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연인이 있다.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처럼 바질리코는 대형 카메라로 화면을 구성하고, 프레임 속의 동적 요소가 나름 균형있는 지점에 때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리며 작업을 했을 것이다. 하루에 장을 찍을까 말까한 대형 카메라 작업에서 그는 기하학적 요소와 동적 요소가 적절한 배치나 그림자의 위치가 나올 때까지 많은 시간을 기다린 정황을 곧바로 알아볼 있었다. 조용한 그의 사진에는 대개 사람이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처음 보면 사람이 없는 하다가도, 자세히 보면 어딘가에 사람이 박혀 있는 경우가 많다. 


영상에서 폐허가 되다 시피한 베이루트의 건물 잔해들 사이로 남자가 걸어가는 이미지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프레임을 구성하고, 빛과 동적요소가 만족스럽게 혹은 적절하게 배치가 때까지 기다린 사진들이다. 시원한 도시의 풍경 속에 무너저내릴 법한 건물 잔해들, 사이를 외롭게 걷는 사람으로 인간의 흔적을 남겨두었다. 고요한 피렌체 사진들 중에서도 적막한 도시 공간의 어느 구석엔 자세히 보면 대개 사람의 자취를 발견할 있다. 가본적은 없지만, 이탈리아에서 광장은 자체를 규정하는 공간인 것으로 보인다. 나라 사람들의 삶은 바로 광장에서 시작해서 광장에서 끝날 같단 생각이 든다. 


바질리코가 기록한 오랜 도시의 흔적, 그리고 이와 대비되는 현대 문명의 모습을 보다보면 수직선은 언제나 문명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연은 수평선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명은 <밀라노, 공장들의 초상> 프로젝트에서와 같이 수직으로 올라가는 공장의 굴뚝을 낳았다. 혹은 건물 위로 있는 계단, 가로등 그리고 건물의 외벽에 조각되어 있는 그리스 신전 모양의 부조, 이오니아 양식의 신전 기둥을 닮은 가짜 기둥 조각과 같은 구조물을 통해 화면의 수직선을 구성하는 것이다. 


베네치아 1998 어느 사진은 인적이 없는 광장에 동상이 높이 세워져 있고, 아래 광장 바닥에는 비둘기 마리가 있다.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광장에 동상과 비둘기 마리가 외롭게 있다. 장면이 오히려 이미지가 제시하는 장면의 비현실적인 느낌을 배가한다. 베네치아 골목을 찍은 바질리코의 사진은, 파리 골목을 찍은 앗제의 사진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미묘한 차이라는 것은 무시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앗제의 느낌과는 다르게 화면을 채우는 건물이 무게감과 동적 느낌을 더해준다. 이건 아마도 화면 구성상의 소실점 배치와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전공자가 아닌 나로서는 가끔씩 이렇게 사진의 특징을 메모해놓곤 한다. 그런데 바질리코의 사진은 화면의 구성 뿐만 아니라, 흑백 자체에서 나오는 매력이 있다. 특히 영상에서도 작가가 설명하고 있던 현대적인 건물의 곡선 외양과 계단에서 보여주는 톤의 매력이 인상적이었다. 점은 밀라노 1989작업 밤에 두오모처럼 보이는 건물을 촬영한 사진에서도 느낄 있었다. 둥근 지붕의 위에 나온 구조물이 지붕과 함께 밤의 암흑 속으로 사라져가는 듯한 세심한 톤의 표현이 인상적이 었다. 가운데 중심적인 건물을 양쪽에서 에워싸는 듯한 배치는 작가의 도시 사진 프레임 구성의 전형적인 방식으로 보인다. 이런 유형의 작업 중에서 양쪽 건물, 담벽 사이의 톤이 주는 미묘한 매력을 느낄 있는 작업들이 있기도 하다. 


건물의 정면을 찍으며 화면을 가득 메우게 만든 구성은 다양한 실험적인 시도를 했던 사진가 워커 에반스의 작업들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또는 김아타의 작업처럼 오랜 노출로 부동의 건물을 제외한 사람의 흔적이 모두 사라져 버린 도시 풍경을 닮기도 했다. 하지만 사진 역시 창밖으로 빨래를 널어 놓은 모습을 발견할 있다. 사람의 흔적을 발견할 있다. 바질리코의 사진은 자세하고 웅장한 느낌을 주는 듯하면서도 언제나 사람의 자취를 있다. 다양한 작가의 영향이 느껴지는 사진들 역시 소형 카메라가 아닌 대형 카메라로 작업을 하니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도시의 풍경을 담으면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을까. 기독교 문화에서 세레자 요한의 탄생을 즈가리아에게, 그리고 예수의 탄생을 동정녀 마리아에 고지한 대천사 가브리엘의 이름을 사진작가 바질리코. 그는 관람자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이야기 하고자 했을지 궁금하다.       

  

이번 바질리코의 사진전은 그가 컬러 사진 작업을 말년의 작업들, 이를테면 샌프란시스코 사진이나 상하이, 이스탄불 시리즈 처럼 다양한 장소에서 촬영한 사진이 전시되어 있지는 않다. 이번 사진전의 주제가 이탈리아의 사진이듯,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에서 촬영한 사진들만을 대상으로 했을 것으로 보인다. 주한이탈리아대사관, 주한이탈리아문화원이 주최한 것으로 보아, 이탈리아의 도시와 이탈리아가 낳은 유명 사진작가의 홍보를 겸해서 하는 전시로 보인다. 바질리코의 다른 사진들은 국내 사진 전문 출판사 열화당에서 가브리엘레 바질리코 Gabriele Basilico(2002)라는 제목의 사진문고판이 나와 있으므로, 작가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나 작업들을 있을 것이다. 


최근에 마찬가지로 열화당에서 출간한 루이지 기리의 사진 수업(2020)라는 책에도 바질리코의 이름이 스치듯 지나간기도 한다. ‘이탈리아 기행이라는 제목으로 기획된 대규모 사진전에 대한 주석에 가브리엘레 바질리코를 참여 작가로 언급하는 대목이 군데 나온다. 사진 수업 이탈리아의 사진가 루이지 기리의 사진 수업 기록을 엮은 책이다. 책은 흔히 보는 사진 관련 서적처럼 미국 중심의 혹은 유명한 (미국인 위주의) 사진이 중심이 것이 아니라, 루이지 기리 자신의 사진, 그리고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사진들을 수업에 많이 활용하는 점이 신선하게 보인다. 게다가 책의 서두에 사진 장비에 대한 설명부터 진부하게 설명하는 사진학 수업 서적이 아니라, 보다 인문학적인 이야기로 주제를 이끌어내는 점이 흥미롭다. 오늘은 미국 위주의 사진가가 아닌 이탈리아의 유명한 사진가의 이야기를 주목해서 메모해두고자 한다. 





가브리엘레 바질리코 Gabriele Basilico

프란체스코 보나미 저/이영준 역
열화당 | 2002년 12월

 

루이지 기리의 사진 수업

줄리오 비차리,파올로 바르바로 편/한리나 역
열화당 |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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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과 ‘전염병 문학’을 생각해보며 | 기본 카테고리 2020-11-2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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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과 '전염병 문학'을 생각해보며


코로나19가 올해 세 번째 유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전염병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바꾸어버렸는지 이번 기회에 충분히 실감하고 있다. 개인사업자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특히 여행업과 관련한 제반 사업이 무엇보다 전반적으로 큰 타격을 입은 모양이다. 반면 출판계는 한동안 도서관과 학교가 제한적으로 운영을 해서 그런지 대체로 잘 버티고 있는 업종에 속한다 한다. 물론 작은 출판사 입장에서는 언제는 넘어야할 도전이 있긴 하겠지만 말이다. 올해 팬데믹 일 년이 다 되어 가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여러 전염병이 최소 2년 정도는 지속되며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준 것을 떠올리면, 이번에도 쉽게 끝날 것 같진 않다. 특히 지금 겨울철이 되어 다시 유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나와 주변의 삶을 얼마나 바꾸어버렸는지 생각하다가 스페인 독감이 떠올랐다.


     제1차 세계대전 즈음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스페인독감은 19182월부터 19204월까지 만 22개월 동안 지속되었다고 한다(위키피디아 참조). 감염자가 대략 5억 명(당시 전 세계 인구의 대략 3분의 1 감염)이었고, 이로 인한 사망자는 17천만 명에서 5천만 명 사이로 추산되는 모양이다. 코로나19는 아직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전 세계적으로 감염자 수가 이미 5천만 명을 넘었으니 안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니 이 작은 바이러스 혹은 병원균(박테리아)에 의한 전염병이 인류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실감하게 된다.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를 염려하지만, 인류는 지구상에 나타난 이후 줄곧 전염병에 시달려왔다는 점을 기억해둘만 하다.

 

     최근에 우연히 국내의 단테 연구자가 신곡의 저자 단테 알리기에리의 자취를 쫓아 여행한 기록 단테를 읽게 되었다. 단테는 1265년 피렌체에서 출생한 시인이자 정치가였다. 35세 였던 1300년에 공직에 선출되어 공적활동을 시작했고, 능력을 인정받아 피렌체 최고위원이 되었다. 그런데 1302년에 교황을 배후지지 세력으로 둔 정적에 의해 피렌체에서 추방당했다. 이후 사망할 때까지 19년 동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식객으로 망명생활을 한 셈이다. 단테의 삶을 따라간 이 책 중에서 내가 눈여겨보았던 부분이 단테가 말년에 말라리아로 사망했다는 대목이었다. 마지막에 라벤나라는 도시의 외교사절단으로 베네치아에 파견을 나갔다가 말라리아에 걸려 1321년에 56세에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우리가 읽고 있는 단테의 신곡이나 철학서 향연과 같은 저서는 그가 망명생활 중에 본격적으로 작업한 결과물이었다. 그가 말라리아에 걸려 일찍 사망하지 않았으면 피렌체로 교황의 사면을 받아 귀향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단테가 만약 더 오래 살았다면, 그를 흠모하고 존경하던 조반니 보카치오를 만나 교류하며 더 풍성한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우리에게 데카메론으로 잘 알려진 그 보카치오다. 그 역시 피렌체(이탈리아 중부) 인근 체르탈도라는 곳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하니, 유명한 단테의 이야기를 어려서부터 들으며 자랐을 것이다. 보카치오가 태어난 1313년에는 단테가 추방당한지 이미 11년이 지난 시점(단테는 48)으로 단테의 망명생활 중반에 해당한다. 단테가 객지에서 사망했을 때, 보카치오가 8살이었으니, 두 사람이 지나칠 가능성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단테가 오래 살았다면, 단테와 보카치오 두 사람도 괴테와 에커만과처럼 교류하지 않았을까하는 상상을 해본다. 독일의 대 문호 괴테가 노년에 이르러 요한 페터 에커만이라는 조력자가 나타나 43년의 나이차를 넘어 서로 멘토-멘티 관계를 이룬 것처럼 말이다. 요한 페터 에커만은 괴테와의 대화를 쓴 인물로, 보카치오처럼 괴테의 작품과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 푹 빠져있던 젊은 문학도였다고 한다. 노 문호에 대한 존경심으로 에커만은 10여 년에 걸쳐 괴테 옆에서 지켜보고, 그와 대화하며 이 기록을 남겼다. 단테와 보카치오 역시 48년의 나이차이가 있었으니 단테가 말년에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고 평온한 삶을 살았다면, 단테를 흠모하던 젊은이로 보카치오는 노년에 이른 단테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으로 남겼을 것이다. 그러면 후세인들은 단테의 망명생활과 고뇌에 대해서 작품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단테와 보카치오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을 것 같다.

 

     또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보카치오가 남긴 가장 유명한 작품 데카메론이 전염병의 영향으로 쓰게 된 작품이라는 것이다. 아직 이 작품을 읽어보진 못했는데 책 소개에 따르면, 이 작품은 132714세의 보카치오가 1340년에 피렌체로 돌아온 뒤, 1348년에 유행했던 흑사병(페스트)의 참상을 목격하고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데카(deca-)’라는 접두사가 숫자 10을 의미하듯이, 이 책의 제목은 젊은 남녀 10이 흑사병을 피해 피렌체 교외로 가서 자연을 벗 삼아 어울리며 열흘100편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내용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전염병이 창궐하는 도시를 떠나 교외에서 자가 격리를 하던 젊은이들이 스스럼없이 나눈 대화록이라고 예상해본다. 당대(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던 과도기)의 젊은이들이 삶을 어떤 식으로 향유하고 바라보았을지 엿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전염병이 등장하는 다른 문학을 떠올릴 때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여러 문헌에서 언급되는 소설이라 읽어보긴 했는데, 처음 읽었을 때는 다소 밋밋하게 다가오긴 했다. 이 책에는 베네치아에 유행하기 시작한 전염병이 등장하는데, 나는 단테 역시 베네치아로 가던 길에, 혹은 베네치아에서 모기에 물려 말라리아에 걸렸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베네치아에 물이 많아서 그런지 향후에 이곳으로 여행을 간다면 모기를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이 소설의 주요 모티프는 노작가의 소년에 대한 동성애적 집착(파이데라스티아, 소년애)이다. 작가 토마스 만의 동성애적 성향과도 관련이 있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고 보다 이해가 되었다. 소크라테스와 파이드로스와의 플라토닉’(동성애) 관계를 떠올려보면서 말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전염병은 작품의 주제와는 무관할지 모르지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가장 주요한 장치 혹은 제한조건으로서 기능한다고 이해된다.

 

     또페스트하면 곧바로 떠올릴 수 있는 작품이 카뮈의 페스트이다. 소설의 배경은 프랑스령이었던 알제리 서북부의 도시 오랑이다. 오랑 시는 카뮈가 27살에 파리에서 결혼하고 이듬해에 돌아와 교편을 잡았던 도시이기도 하다. 카뮈는 교편을 잡으면서 동시에 페스트를 준비하고 이방인을 출간했다. 도시에 어느 순간 쥐들이 나타나 피를 토하면서 죽어가는 것을 시작으로 도시에 페스트가 유행하기 시작한다. 인간의 거주지에서 함께 사는 쥐의 벼룩이 인간에게 전염시켰던 것인데, 코로나19가 발병했을 당시에 우한 시가 봉쇄되었던 것처럼 오랑 시가 봉쇄되는 것이다. 소설에서 죽음과 마주한 고립된 오랑 시의 시민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들을 읽을 수 있다. 나는 인간과 자연이 대립하는 시공간에서 연대하고 인간임을 확인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담고 있다고 읽었다.

 

     최근에 읽은 소설 중에 전염병과 관련한 소재가 등장하는 작품에 우루과이 작가 오라시오 키로가의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가 있다. 이 단편 소설집을 관통하는 주된 주제는 삶과 죽음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사이에 광기라는 것이 매개한다. 작품 중에는 인간과 자연과의 대결에서 여지없이 패배하는 인간의 이야기도 나오지만, 기이한 사랑의 이야기도 있다. 뇌막염 환자와 그녀를 따라다니는 그림자광견병에 걸린 개가 그것이다. 모두 단편이므로 줄거리를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다만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배경은 모두 병원균와 관련이 있다. ‘뇌막염은 대개 혈관을 타고 뇌에 침투한 바이러스나 세균(박테리아)에 의해 발병된다고 한다. 이 바이러스나 세균을 전달한 매개체는 아마도 모기나 벼룩, 진드기와 같은 녀석들일 것이다. 뇌막염 환자와 그녀를 따라다니는 그림자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기이한 사랑이야기이다. ‘사랑이란 무엇일까관계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해준 단편이다.

 

     키로가의 광견병에 걸린 개역시 광견병이 주요 모티브인데, 우리가 흔히 개가 물을 무서워하는공수병이라고 부르던 것이다. 광견병 역시 광견병 바이러스가 중추신경계를 감염시킴으로서 발병한다. 광견병이 무서운 것은 광견병에 걸린 개나 야생동물(너구리, 오소리, 박쥐 등)에 물리면, 대개는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전염병이기 때문이다. 광견병 바이러스는 스스로를 전파시키기 위해 숙주를 상대적으로 빨리 죽이는 대신, 공격적으로 다른 동물을 물어서 자신을 전파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점이다. 물론 정확히 말하면 이런 의도를 가졌다고 의인화해서는 안되겠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방식으로 진화하게 되었다.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전염병이 숙주를 상대적으로 오래 살도록 하는 대신, 다양한 방법(설사, 재채기, 기침, 콧물 등)으로 자신을 다른 숙주에게 전파시키도록 진화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광견병은 특히 개가 인간 사회(수렵-채집 사회)에 사냥의 동반자로 받아들여지면서 함께하게 되었을 것이다. 야생에 있던 바이러스가 인간의 침범(사냥)을 계기로, 그리고 이 개를 매개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을 것이다.

 

     허버트 조지 웰스는 우리에게 워낙 유명한 공상과학 소설 작가이지만, 기본적으로 과학을 공부한 지식인이었다. 특히 진화론을 주창한 다윈의 열렬한 지지자 중 한명이었던 토마스 헉슬리로부터 직접 진화론과 생태학 등을 배웠다고 한다. 웰스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19세기 말에 핵전쟁과 세균전, 광선총, 로봇 등을 예견한 것으로 유명한 SF소설 우주 전쟁(1898) 때문이다. 전염병과 관련하여 주목해보면, 이 세발 달린, 고대 그리스의 세발솥 같은 로봇을 타고 파괴를 일삼던 화성인들이 갑자기 전멸하게 되는 이유가 지구의 세균에 대한 면역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것이 결정적인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19세기 말이긴 하지만, 박테리아와 면역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었다면 쓰지 못했을 놀라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책의 전반부보다는 후반부에 작가의 문명 비판적인 시각이 많이 드러나서 인상적으로 읽었던 소설이다. 톨스토이의 소설들처럼 작가의 말이 많이 나오긴 하지만, 공상과학 소설에서 작가의 비판적인 철학은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톨스토이는 도스토옙스키에 비해 작품에서 작가가 직접 하고 싶은 말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반면 도스토옙스키는 이와 달리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하고자하는 말을 많이 보여주는특징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 전염병과 관련하여 떠올린 작품이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셸리가 쓴 장편소설 최후의 인간이다. 아직 이 책 역시 읽지는 못했지만, 조만간 읽어보려는 목록에 들어있다. 불치의 전염병으로 인류가 전멸하고 한 명이 살아남는, SF의 고전이 된 이야기라고 한다. 프랑켄슈타인에서도 그렇지만, 뭐랄까 메리 셸리 역시 죽음대한 강박 같은 것이 있었을까 추측해본다. 전류를 흘려주어 죽은 개구리의 뒷다리를 움찔거리게 만드는 장면을 직접 보았을 메리 셸리를 상상해본다. 프랑켄슈타인이 죽음에서 생명을 주는 이야기라면, 반대로 최후의 인간은 인류의 생명이 사라져가는 풍경을 묘사했던 것 같다. 이 두 이야기의 중심에 모두 죽음에 관한 문제가 자리한다. 메리 셸리의 어머니 역시 태어난 지 열흘 만에 사망했으니, 작가에겐 이 죽음이 평생 어떤 무게로 다가왔을지 짐작해볼 수 있겠다. 죽음에 대한 강박이 작품에 드러내는 작가는 앞서 언급한 오라시오 키로가도 만만치 않다.

 

     메리 셸리 역시 작가 소개란을 보면 죽음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짐작해볼 수 있다. 첫 아들이 출생 직후 사망한 것을 시작으로, 자녀들은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사망했다고 한다. 부모보다 자녀가 먼저 죽는 것을 지켜보는 심정을 상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25세에 남편이 익사하여 미망인이 된 그녀는 시인 바이런이 말라리아에 걸려 죽은 소식 이후 최후의 인간을 완성했다고 한다. 문학사상 최초로 세계 종말을 그린 작품이라는 평가가 따르는 이 소설에 불치의 전염병이 등장한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랑하는 가족이 자신만 남고 먼저 사망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언제나 갖지 않았을까. 성인이 된 메리 셸리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자책을 하기도 했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추측이지만 첫 남편의 사망 이후, 평생 홀로 살았던 그녀는 주변 사람들의 죽음이 자신과 관련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런 배경을 이해하면 최후의 인간을 읽을 때, 인류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간의 고독을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 혼자 남은 그 사람이 바로 메리 셰리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코로나를 극복하자는 구호로 많은 것을 감내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이런 상황이 코로나19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울한 결론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냉엄한 현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전염병과 관련하여 암울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물리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장회익 명예교수의 저서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에 보면 고전 물리학을 정립한 뉴턴에 관한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기적의 해 1666’(103)이라는 소제목을 단 글에서 뉴턴이 고전 물리학을 정립하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1665년에 학사 학위를 받고 혼자 공부하던 뉴턴은 그 해에 영국뿐만 아니라 전 유럽을 휩쓸기 시작했던 역병(페스트)를 피해 고향 집으로 돌아왔다. 역병이 유럽을 2년 가까이 휩쓸고 지나가버린 후 정상화된 케임브리지대학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이미 고전 물리학을 정립해냈던 주요 연구를 고향집에서 이루어냈던 것이다. 이 결과에 간접적이긴 하지만 한편으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 바로 역병(페스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페스트가 많은 생명을 앗아갔지만, 과학사에 있어서는 기적의 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역병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 신화 만들기에 활용한 사람도 있다. 바로 나폴레옹과 파시즘의 원형을 제공했다고 알려진 시인이자 선동적인 정치가, 군인, 호색한 가브리엘레 단눈치오다. 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에서 단눈치오는 도시의 사령관으로 지낼 때, ‘야파(오늘날 이스라엘의 자파 지역)에 창궐했던 페스트 환자들에게 과감하게 손을 내밀었다는 나폴레옹의 신화를 떠올렸던 것이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신봉자였던 단눈치오 역시 전염병이 돌던 병사들의 막사를 돌면서 나폴레옹이 했던 것처럼 정치적인 쇼를 하기에 이른다. 전염병이 신화만들기에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 정도 사례는 아니라도 비슷한 전략은 오늘날 국회의원 선거철만 되면 우리가 익숙하게 보는 광경이긴 하다. 성경을 제대로 읽어보진 않았지만, 여기에도 야파를 비롯한 이스라엘 지역에 창궐한 전염병에 관한 이야기들이 심심치않게 등장한다. 아울러 여러 문학작품에도 이 야파, 그러니까 지리학적으로 비옥한 초승달지역의 지중해 연안 지역에 속하는 이스라엘 지역에 전염병이 창궐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눈에 들어온 도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흑사병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흑사병의 귀환이다. 이 책도 다음 기회에 읽을 목록으로 생각해두었는데, 역사학자와 동물학자가 함께 써내려간 흑사병 연대기라 할 수 있다. 한스 홀바인의 그림이나 알브레히트 뒤러의 판화그림에 자주 등장하곤 하는 해골은 중세인에게 죽음이 얼마나 가까운 삶의 요소였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특히 당시에는 원인도 모르는 전염병등을 통해 언제 죽을지 모를 상태에서 살아가야만 했을 것이다. 죽음에 관해 많은 성찰의 기록을 남겼던 수상록의 작가 몽테뉴도 책에서 자신의 마을을 휩쓸어버린 역병에 대해 이야기 한다. 역병이 자신의 마을을 휩쓸고 있을 때, 몽테뉴는 자신의 몽테뉴성에서자가 격리를 하며 삶과 죽음에 관해 성찰하고 에세이를 썼다는 말이다. 이렇게 전염병과 관련한 문학 작품, 도서를 생각하다보니 전염병이야말로 인간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 않았던가 싶다. 중세 유럽에 페스트가 휩쓸고 가버린 후, 살아남은 이들은 신의 자비에 대해 끊임없이 되묻지 않았을까.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배경에는 유럽인이 세계로 퍼져나가고, 무역을 통해 신흥 귀족이 부를 축적한 물질적인 배경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염병을 통해 신과 인간에 대한 믿음과 인간과 세계에 대한 관점이 극적으로 뒤바뀌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도 생각해본다.

 

     전염병이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상상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올해 읽은 책들을 정리하지 못해 이 기회에 전염병과 관련한 도서, 전염병이 등장하는 문학 작품을 떠올려 보고 몇 가지 읽어볼 도서도 모았다. 물론 아직 읽지 못한 작품들이 더 많을 것이다. 발견하는 대로 전염병 문학리스트에 추가해나가려고 한다.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콰먼의 책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를 읽고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전염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와 세균의 관점에서 인류를 최종 숙주로 삼은 것은자연스럽고 최선의 선택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인간은 자신의 편리함을 위해 지구의 모든 자원을 착취 활용하며 그 수가 유례없이 증가하고 있기에, 인간은 바이러스에게 숙주로서 좋은 조건을 다 갖추었다. 다시말해 인간은 바이러스와 세균에게 가장 핫한숙주다. 무엇보다 인간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인간은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무한정한 이윤추구 활동으로 인해 바이러스와 병원균의 숙주되기를 자초하고 있다.


      특히 인간과 동물이 함께 걸리는 이런 인수공통전염병의 경우, 인간이 이 전염병을완전히극복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점은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다. 인간과 기타 숙주 동물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멸종하여 사라지지 않는 이상, 인간이 바이러스를 완벽하게 제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역사적으로도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전염병과 함께살아온 셈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무엇보다 바이러스 및 병원균과 함께 생존할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특히 과도한 이윤추구를 위해 아프리카의 자연과 아마존 밀림을 파헤치고 무단으로 침범하여 훼손하지 않는 것, 언제든 자원의 유한함을 인식하고 무모하게 이용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방향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는 더 많은 비닐과 플라스틱을 사용하며, 더 많은 화석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면, 단순히 경제가 파탄난다는 것을 우려하기 전에 우리가 맞물려 살아가는 인간의 조건을 먼저 들여다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글에서 언급한 서적들]


단테

박상진 저
arte(아르테) | 2020년 05월

 

신곡 세트

단테 알리기에리 저/박상진 역/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민음사 | 2013년 08월

 

향연

단테 알리기에리 저/김운찬 역
나남 | 2010년 09월

 

데카메론 1

조반니 보카치오 저/박상진 역
민음사 | 2012년 09월

 

신곡 지옥

단테 알리기에리 저/김운찬 역
열린책들 | 2009년 12월

 

괴테와의 대화 1

요한 페터 에커만 저/장희창 역
민음사 | 2008년 05월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토마스 만 저/윤순식 역
부북스(BooBooks) | 2013년 09월

 

초판본 페스트 + 이방인

알베르 카뮈 저/변광배,최헵시바 공역
더스토리 | 2020년 03월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

오라시오 키로가 저/엄지영 역
문학동네 | 2020년 08월

 

우주 전쟁

허버트 조지 웰스 저/이영욱 역
황금가지 | 2005년 06월

 

초판본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저/구자언 역
더스토리 | 2018년 07월

 

최후의 인간 1

메리 셸리 저/김하나 역
아고라 | 2014년 07월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장회익 저
추수밭 | 2019년 09월

 

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

루시 휴스핼릿 저/장문석 역
글항아리 | 2019년 01월

 

 

흑사병의 귀환

수잔 스콧, 크리스토퍼 던컨 저/황정연 역
황소자리 | 2005년 11월

 

몽테뉴 수상록

몽테뉴 저/손우성 역
동서문화사 | 2005년 08월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데이비드 콰먼 저/강병철 역
꿈꿀자유 | 202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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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되돌아갈 길은 없다’ - 영화 [알바트로스]를 보고 | 기본 카테고리 2020-08-05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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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되돌아갈 길은 없다

크리스 조던(Chris Jordan) 감독의 영화 《알바트로스 Albatross》를 보고

 


영화는 영국 시인이자 문학비평가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 1772-1834)  늙은 수부의 노래(The Rime of the Ancient Mariner)’  구절로 시작한다.

 

The spirit who bideth by himself

In the land of mist and snow,

He loved the bird that loved the man

Who shot him with his bow.

 

연무와 눈의 나라에서

혼자 사는 정령,

그는 사랑했소

활로 자신을  사람을 사랑했던  새를.

 

[번역 출처윤준 지음코울리지의 시연구도서출판 동인, 144p]

 

      시에서  물안개와 눈의 나라에 사는 정령을 가리키며 시에서 가리키는   바로 알바트로스이다알바트로스는 자신을 쏘아죽인 인간을 사랑했다정령은 인간에 의해 죽어간 무고한  새를 사랑했다 구절에서 무엇보다 주목하게 되는 부분은 새를 사랑함이다새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사진작가이기도  영화감독 크리스 조던은 처음에 북태평양  가운데에 버려진 미드웨이 섬에 와서  새를 카메라에 담는 작업으로 시작했다처음에는 그저 인간이 버린 온갖 종류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견된 알바트로스 사체를 촬영하는 작업으로 시작했지만감독의 시선은 점차 알바트로스라는  자체에 머무르기 시작했다감독은 인간의 영향으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알바트로스에 대한 연민을 넘어  존재에 대해 진정한 애도 보내게  것이다감독은 이를 사랑이라고 표현했는데영화의 부제를 우리 시대를 위한 사랑이야기라고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감독은 알바트로스가 겪는 재앙의  단면을 마치 다른 알바트로스가 옆에서 지켜보듯이새의 눈높이에서 가까이 다가간 시점에서 보여주고 있다영화의 독특한 시점이 가능할  있었던 이유는 알바트로스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기 때문이었다특히  미드웨이섬은 태평양  가운데에 위치해있는 섬으로, 2차대전 당시 미해군의 태평양 기지로 사용되었다지금은 병력이 모두 철수하고최소한의 인력이 관리하는 정도로 버려진 섬이 되어버렸다영상 중간중간에는 인간이 떠나간 적막한 군사시설물을   있다이런 미드웨이섬은 가까운 육지가 최소한 3,000 km 이상 떨어져 있는 고립된 섬이다알바트로스는  섬에서 처음부터 천적을  적이 없었다그러므로  새들은 낯선 존재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인간에 의해 멸종한 새로  알려진 인도양 모리셔스 섬의 도도새처럼  새도 역시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모리셔스섬의 도도새 역시 천적이 없었기 때문에심지어 날개도 퇴화되어 날지 않게 되었다다만 도도새는  섬에 처음 상륙한 유럽인들에 의해 학살당했다식용을 위해서든 단순한 오락거리를 위해서든 총과 칼을 들고 다가간 사람 앞에서 날지 못했고심지어 빠르게 도망가지도 못했던 도도새들은 호기심 어린 눈길로 유럽인들을 바라보다가 죽어갔을 것이다알바트로스는   있지만 카메라를 들고 이들 무리 속에서 가만히 자신들을 지켜보는 감독에 적응하게 되었을 것이다감독이 카메라 렌즈를 새의 얼굴에 가까이 내밀어도 이들은 신경을 쓰지 않은  보였다.

 

     알바트로스는 현존하는 가장  새로 알려져 있다태평양에 폭넓게 서식하며펼친 날개의 길이가 미터에서 최대 3.7 미터까지 달한다고 한다그러니까 내가 양쪽 팔을  펼쳤을  길이보다 길고심지어는    길이 가까이 되는 셈이다. ‘신천옹이라고도 불리는  새는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에도 등장한다 소설에서는 바다  가운데에서 만난 신천옹이 뱃전에 내려 앉아 쉬는 동안 선원들이 손으로 잡아들이는 장면이 나온다나아가 모비   색과 더불어 새의  색은 불길함 암시하는 대상으로 등장한  있다하지만 크리스 조던의 《알바트로스》에서는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다른 의미에서 불길함 암시하는 대상으로 등장한다.  

 

     알바트로스가 환경운동가들의 주목을 받게  이유는 영화에서도 분명히 보여주듯알바트로스 사체에서 발견된 수많은 플라스틱 쓰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알바트로스는 대개  개의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데점점 원기 왕성해지는 새끼에게 먹일 음식을 구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한다연구자들이 보고한 추적조사에 의하면알바트로스는 일단 새끼에게 먹일 먹이를 구하러 바다로 나가면일주일 이상 바다 위에서통상 16,000 km 비행한다고 한다결코 길을 잃어버리지 않고 말이다알바트로스는  과정에서 바다에 떠있는 각종 쓰레기들을 먹이로 오인하고 삼켜버린다인간이 버린 각종 쓰레기를 뱃속에 가득 채운 어미 알바트로스는 둥지로 돌아와 자신이 먹은 것들을 다시 게워내어 새끼에게 먹인다바로 여기에 지속되는 재앙 있었다문제는 미드웨이섬이 오염되어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세계의 인간이 무심코 버린 각종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들었고알바트로스는  쓰레기조각들을 수집하여 배에 채우고 돌아오게  것이 문제였다반면같은 섬에 사는 흰제비갈매기 알바트로스처럼 새끼에게  먹이를  바다에서 구해오지 않기 때문에 플라스틱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지 않는다.  알바트로스에게 닥친 재앙은 1차적으로 이러한 정황에서 비롯되었다.

 

     영화를 통해 감독은 죽은 알바트로스의 배를 갈라 새의 뱃속에 있는 소화되지 않은 잔존물을 카메라에 담아 보여주었다새의 사체에서 나온 물건들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영상에서만 알아본 물건들은 주로 물에 뜨는 플라스틱 조각  병뚜껑칫솔그물낚시줄 등으로 보였다영화에서 감독은 자신이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인간인 자신이 알바트로스의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반면 새들은 자신이 이유도 모른  죽어가야 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이라고 말했다영화에서 감독은 직접 죽은 새의 몸에 손을 얹고죽은 새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새들에게 닥친 -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화자인 감독은 이러한 자신이 경험을 두고, ‘애도의 진정한 본질은 사랑과도 같다바로 상실에 대한 사랑의 경험인 이라고 말하고 있다.  

 

     언젠가 코끼리에 관한 어느 자연 다큐멘터리 영화를  적이 있다 코끼리는 뼈만 남게  어미 코끼리의 잔해에 매년 찾아와 끌어 앉고 마치 울부짓듯 소리를 내었더랬다코끼리 역시 일종의 애도’ 행위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이런 코끼리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나는 감독이 담담하게 꺼냈던  말을 보다  이해하게 되었다크리스 조던 감독에게도 마찬가지로그가 해변에서 발견하여 뱃속의 잔존물을 꺼낸 대상은 알바트로스라고 불리는’ 새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개별적이며한때 현존했던 바로  였던 것이다이제 살아남아 비행에 성공한 알바트로스들은 일단 섬을 떠나면 3년에서 5년간  번도 땅을 밟지 않고바다 위에 혹은   씩이나 하늘에 떠있게  것이었다알바트로스들이 떠난 미드웨이섬은 고요했다다만 섬의 해안가에는 뱃속의 이물질들로 인해 죽은 알바트로스의 사체들만이 말없이 남아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다시금 느꼈던 점은 단순히  새가 마주해야 했던 재앙에 대한 연민을 넘어선 감정이었다만약 어떤 이유로 알바트로스 대신 인간이 이러한 운명을 맞았다면알바트로스 혹은 다른 존재가 인간을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지금은 이처럼 인간이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재앙을 피할  있었지만과연 죽은 알바트로스의 운명 대신 인간의 운명이 이렇게 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있을까과거의 역사가  교훈은 지구상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무차별적이다인간도 예외가   없다는 의미다그러므로  영화  《알바트로스》 전달하고 있는 메시지는 무엇보다 알바트로스의 재앙을 통해 여기에 투영된 우리 인간의 모습을 읽어낼  있어야 한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죽은 알바트로스를 쓰다듬으며 흐느끼던 감독은 인간의 운명 또한 예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우리가 누리는 문명으로 인하여 강제로공동운명체가 되어버린  알바트로스과 마찬가지로우리 인간은 알바트로스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나아가 인간의 운명은 알바트로스가 겪고 있는 삶과 운명의 연장선에 있음을 새로이 깨닫게 되었다

 

     영화에서 감독이 남긴  마디가영화가 끝나고서도 특히 기억에 남았다바로 There is no going back.이라는 말이었다. ‘되돌아갈 길은 없다후퇴는 없다’ 정도의 의미로 번역될  있는  표현은 영화에서 새끼 알바트로스들이 처음 비행을 시도하기 위해 해변으로 이동하는 장면에서 나온 표현이었다하지만 나는  표현이 알바트로스와 인간의 운명이 오버랩되며 인상적으로 다가온다직간접적으로 인간이 유발한 모든 원인으로 인해 현재의 알바트로스와 미래의 인간이 겪게  운명을 경고한 메시지로 읽힌다이미 우리 인간에겐 순수의 상태 되돌아갈 방도는 없다대신 우리는 우리의 현재를 바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그러니까  영화는 미래 인간의 운명에 보내는 과거 인간의 애도와 사랑의 노래다.  

 

Farewell, farewell! But this I tell

To thee, thou Wedding-Guest!

He prayeth well, who loveth well

Both man and bird and beast.

 

 가시오 가시오하지만  한마디는

당신에게 해야겠소결혼식 하객이여!

사람뿐만 아니라 새와 짐승을

 사랑하는 이가 기도를  하는 이라고.

 

  [번역 출처윤준 지음코울리지의 시연구도서출판 동인, 154p, Part VII ]




코울리지의 시 연구

윤준 저
동인(종로)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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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신간 《H2O와 망각의 강》《젠더》 | 기본 카테고리 2020-07-03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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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허택 옮김 | 사월의책




이제는 나오지 않을 줄만 알았던 이반 일리치의 책을  년간의 공백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다이반 일리치를 검색하면 대부분의 결과는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검색되곤 하여 다소 번거롭긴 하지만내가 이야기 하는 이반 일리치는 물론 다른 사람이다. 1926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한 일리치는 뭐랄까 상당히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는 인물이다타이틀을 뭐라고 딱히 정하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다사상가의 면모와 역사가의 면모에  ’ 카톨릭 사제이기도  철학자라고   있을까일리치의 저작을 단지  권만 읽어보았을 뿐이지만나는 일리치를 우리에게 문제를 던지는 문제아라고 평가한 적이 있었다일리치의 글쓰기는 우리에게 익숙한 것을 다르게   있는 여지를 극대화한다그리고 해결책 혹은 답을 독자에게 주지는 않는다악동처럼 독자에서 질문을 던지고 독자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최근에 미셸 푸코를 알고 싶어서 그의 책을 두어  읽어보았는데일리치와 푸코는 물론 많은 점에서 다르지만  한편으로는  가지 유사한 점도 발견할  있었다 사람 모두 현대의 어떤 문제점을 분석할 역사적 관점에서 그리고 계보학적 관점에서 과거의 언어나 역사적 맥락을 짚어보는 작업을 한다. 사람 모두 1926 생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하고 사람이 관심을 가졌던 대상에는 전문가의 문제 있다다만 푸코는 현대사회에서 전문지식을 가진 전문가 집단의 전략적 위치에 주목하고 눈여겨본 바가 있다반면 일리치는 전문가가 지녀온 권력우리가 전문가라는 집단에 권위를 맡겨버린 현상에 대해 비판한 바가 있어서 어떤 면에서는 전문가라는 집단에 대해 반대 입장에 서서 이야기한 바가 있었다물론 나는 아직   사람을 어설프게만 알고 있다고 미리 자백하겠다그러니  사람의 철학에 대해서는  이상 아는 척을 하지는 않겠다.


     이반 일리치가 현대 사회에 던지는 생각거리질문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사랑의 기술》 저자 에리히 프롬의 옆집에 살면서 절친으로 지내기도 했던 일리치는 주장의 독특함으로 인하여 실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우파로부터 총격을 받기도 하고천주교 사제이면서도 교황청을 비판하여 마찰을 빚다가 사제직을 관두기도 했다 좌파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비판을 받기도 하고심지어 많은 페미니스트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이반 일리치라는 사람이  정도라면 그는 인성이 이상한 사람이었을까하는 의구심을 가질만도 하겠다하지만 그것보다 일리치에게는 현대 사회를 이루는 모든 요소가 다시보기 다르게 보기 대상이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말하자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할  있는 모든 대상을 의심해보고 따져보고 질문을 던져본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일리치의 여러 저작을 떠올려보면그는 대체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줄기를 이루고 있는  같다푸코가 권력 개념에 기반하여 병원정신병원감시 시설통제성소수자 등에 대한 차별과 배제 등의 주제에 대해 문제제기와 분석을 했다면일리치 역시 병원학교의 문제남녀문제 등을 현대 문명과의 관련성 속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했다고   있다개인적으로는 이런 관점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푸코의 철학이 많이 언급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현대 자본주의현대 문명에 대해 다시 보고다르게 바라볼 것을 요청하는 일리치의 사상 역시 진지한 독자들에게 유의미한’ 생각 거리를 던져줄  있다고 생각한다  


       이반 일리치는 우리가 물의 화학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H2O 물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전에 《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이반 일리치,데이비드 케일리 지음, 권루시안 옮김, 물레2010) 읽다가 H2O 망각의 이라는 텍스트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내용이 상당히 궁금했더랬다. 아마도 《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중에서 9 질료가 제거된 세대라는 제목의 글에서   의미를 따지며,  의미의 변천을 따라가는 내용이 소개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인간이 인식하는  이라는 대상이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분석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거에 영감을 주는 신화적 상상력의  있었다면, 과학혁명을 지나 물이 H2O라고 인식 이후의, 혹은 현대 자본주의 문명에서  갖는 위상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던  같다.  짐작이 맞는지를 알아보려면 읽어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텍스트가 과연 번역되어 나올까 하는 아쉬움과 기대를 갖고 있었는데, 결국  H2O 망각의  통해 그동안의 궁금증을 해소할  있게 되어 무엇보다 반가울 따름이다.   




이반 일리치의 신간


H2O와 망각의 강

이반 일리치 저/안희곤 역
사월의책 | 2020년 07월

 

젠더

이반 일리치 저/허택 역
사월의책 | 2020년 07월

 


과거에 출간된 책들/이반 일리치 전집


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

이반 일리치,데이비드 케일리 저/권루시안 역
물레 | 2010년 03월

 

그림자 노동

이반 일리치 저/노승영 역
사월의책 | 2015년 12월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이반 일리치 저/신수열 역
사월의책 | 2018년 07월

 

전문가들의 사회

이반 일리치 등저/신수열 역
사월의책 | 2015년 12월

 

깨달음의 혁명

이반 일리치 저/허택 역
사월의책 | 2018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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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정복, 이제야 출발선에 서다」- 촌평을 읽고 | 기본 카테고리 2020-05-17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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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 이제야 출발선에 서다


창작과비평 187(봄호) ‘촌평

최형섭 지음 | [창비]




 

계간지 창작과비평에는 각호마다 새로 발간되는 도서들에 대해 분야의 전문가가 짧게 서평이 실린다. 지난 호부터 여러 주제에 걸친 서적들에 대한 소개글을 읽고 있는데, 나름 읽는 재미가 있다. 개인적으로 과학 분야 서적에 대한 서평이 궁금해서 주로 과학 도서에 대한 글을 먼저 읽는다. 이번 (187)에서는 연구의 최전선에 있는 국내 과학자가 직접 책에 주목했다



       암이라는 질병은 이제 우리 생활에 아주 깊이 들어와 있다. 가까운 지인, 친척 들만 해도 암을 진단받은 분들이 상당 있어서, 이제 암은 마치 성인병의 하나로 여겨질 정도다. 일본의 비평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다치바나 다카시가 자신의 방광암 수술을 계기로 연구를 취재하여 2007년에 펴낸 , 생과 사의 수수께기에 도전하다 하더라도 당시 암연구의 최전선을 소개해주었다. 이번 호에서는 생화학을 전공한 과학자 남궁석씨가 정복 연대기 소개 하고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취재 이후 동안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을지 함께 읽으면 좋을 같다



       서평을 저자는 수전 손택이 은유로서의 질병 언급한다. 암과 같은 질병에 대해 대중이 갖는 위상의 역사성에 대해서 짧게 언급한 부분을 소개하는데, 손택은 책에서 과거에는 암이 인과응보의 성격을 가졌다 점을 지적했다. 다만 서평의 저자가 인용한 내용에 따르면, “희생자가 자신의 세계와 자신 스스로에게 저지른 일의 결과라는 표현이 마치 손택 자신이 언급한 것처럼 보이도록 놓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표현은 메닝거라는 사림이 주장한 내용을 손택이 자신의 책에서 재인용한 것이었다. 과거에 암을 비롯한 질병은 개개인들의 도덕적 품성의 결과이자 심판이었다는 생각이 퍼져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다카시의 , 생과 사의 수수께기에 도전하다에서는 세계 최초로 암유전자 RAS 발견한 로버트 와인버거 교수의 말을 소개한다. ‘살아가는 자체가 암을 낳는다. 암은 다세포 생물의 숙명이라고 말이다. 이처럼 과학의 발달로 질병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세월이 흘러 많이 바뀐 것을 감지할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암을 바라본다. “암은 나의 내부에 있는 적이다. 당신의 암은 당신 자체다라고 말이다.    



       다치바다 다카시처럼, 서평의 저자 역시 연구의 최전선을 보여주는 정복 연대기에서는   연구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말한다. 치료도 그렇지만 암이라는 대상 자체에 대한 이해가 최근에야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서평의 저자는 정복 연대기의 예비 독자들이 눈여겨볼 사안 가지를 간결하게 조망한다. 하나는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여러 치료제들이 아주 최근에 개발되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최근의 연구와 발전이 이전에 오랫동안 축적되어 기초 연구에 빚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주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사안들, 물음들을 던져주는 셈이다.



      여기에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책의 의미에 대해 언급하며 다른 과학서들과의 맥락을 덧붙인다. 이를테면 정복 연대기는 한국의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분야에 대해 성찰하기 시작 했다는 의미라고 평가한다. 말은 연구에 전념해온 국내 학계가 이들이 축적한 지식과 정보를 나머지 비전문가, 일반인들과의 소통에 다소 소홀했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요즈음에는 해외의 좋은 도서들도 많이 번역이 되고 있고, 국내 전문가 필진들도 조금씩 들어나고 있지만, 우리의 말로 다시 쓰는 분위기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풍토가 확대되면 좋을 같다. 저자는 이런 맥락에서 초파리 과학자 김우재의 저서도 함께 소개하며 연결짓는 독서를 권하고 있다. 이런 언급은 국내 필자가 문제 의식을 갖고 글들에 주목하고 맥락화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필요한 일이다



      학창시절 생물학 개론을 들은 적이 있는데, 유전학을 소개하는 대목에서 유전자는 일종의 스위치라는 개념을 배웠던 기억이 난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에는 유전자가 정보로 들어 있지만, 대부분은 발현되지 않는 무용해보이는 유전자라는 것도 배웠다. 하지만 특정한 환경적 요인이나 내부적인 조건의 변화로 이렇게 잠을 자던 유전자들이 스위치처럼 켜져 새로운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유전자가 방사능이나 발암 물질에 노출되는 외부적인 영향에 의해, 아니면 노화로 인해 돌연변이가 발생하기도 하며, 이로 인한 세포 분열 기능과 세포 파괴 기능의 변형 등이 얽혀 암을 만드는 조건을 구축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정복 연대기는 암이란 대상 자체에 대한 물음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왔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은 학창시절 배운 지식과 많은 지인들이 경험하는 이 질병에 대한 실질적인 위험성, 그리고 암 발병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과 환경에 관한 물음들을 지니고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암이란 개개인의 신체 내부에서 드러나지만, 그 그본적인 원인은 우리가 속한 환경 및 사회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도 책을 읽어가며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창작과 비평 (계간) : 187호 (2020년 봄)

창작과비평사편집부 편
창비 | 2020년 03월

 

암 정복 연대기

남궁석 저
바이오스펙테이터 | 2019년 11월

 

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

다치바나 다카시,NHK스페셜 취재팀 공저/이규원 역/명승권 감수
청어람미디어 | 201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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