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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교장 선생님 이야기 - 《우리 숨바꼭질할까》 | 기본 카테고리 2022-06-27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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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리 숨바꼭질할까

김향숙 저
학교도서관저널 |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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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교장 선생님

- 우리 숨바꼭질할까를 읽고

 김향숙 지음, [(주)학교도서관저널] (2021)

 

 

학교에 대해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좋아하는 선생님 몇 분이 있긴 했지만, 교사의 폭력적인 언어와 체벌도 흔하던 시절이었다. 책상에 올라가서 주먹과 발로 학생들을 내려찍던 수학 선생, 커다란 주먹으로 얼굴을 날리거나 나무 분필통을 학생들 얼굴에 집어 던지던 체육 선생, 테잎을 감은 각목으로 한 시간 내내 돌아가며 반 전체 학생을 400대나 때렸던 불어 선생도 여전히 기억난다. 지금쯤 은퇴했거나 은퇴할 나이가 다 되었을 것이다. 또 나보고 지진아라고 했던 여자 선생(심지어 도덕 선생님!)도 기억난다. 당시에 나이가 20대 후반 아니면 30대 초반 아니었을까 싶은데, 모든 남자 아이들에 대한 적개심을 분출하던 분이었다. 이제는 교사와 학생의 입장이 반대가 된 상황이라 학교 교실의 분위기가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다.

 

 

주말에 도서관에서 발견한 에세이집 우리 숨바꼭질할까를 읽게 되었다. 저자는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은퇴한 분이었다. 읽는 글마다 뭉클한 감동이 느껴졌다. 저자는 500명이 넘는 전교생을 매일 아침마다 등교시간에 맞아주고 이름을 외우는 교장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이 찾아가서 고민을 털어놓는 교장선생님을 상상할 수 있을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교장 선생님을 만나본 적이 없을 것이다. 아이들이 표정만 보고도 아이들의 심리 변화나 형편을 읽어내는 일은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저자는 전교생의 이름을 외우는 과정을 통해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아이들 이름을 알아가는 과정은 학교의 실태를 파악하는 계기가 되었다.”(32)

 

아이들 이름을 알기 전의 학교와 이름을 알고 난 이후의 학교는 나에게 전혀 다른 세계였다.”(33)

 

 

아이들하고 대화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른인 나의 기준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아이들에겐 아이들만의 세계가 있음을 자주 잊곤 한다. 엉뚱해 보이고 때론 기발한 생각을 해내는 아이들에게 내 선택을 종용하고 있지나 않은가 점검해본다. 그래서 저자는 독자에게 아이들의 질문과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한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직접 임명장을 받기도 하고, 아이가 직접 쓴 하나 뿐인 동화책을 선물로 받는 교장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은 저자로부터 감화를 받고, 저자의 상냥한 말투를 따라하며 성장해가고 있었다. 우리 교육 현실에서 아이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는 교장 선생님을 상상한 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었을까. 아니 나는 그런 일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내겐 그게 당연하게 보였으니까. 하지만 이 책은 나의 예상과 편견을 뒤집는다.

 

 

저자의 에세이를 읽는 내내 어른인 내가 아이들로부터 배울 것이 더 많다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의 말마따나 아이들은 저마다의 고유함을 지닌 존재’(113)인데, 어른들은 아이들을 단지 덜 발달된 사람 혹은 더 배워야하는 사람으로만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알코올 중독자인 아빠를 지키려고 학교에 나오지 못하던 한 아이의 이야기가 기억난다. 저자는 아이의 집을 찾아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당장 도와줄 수 없어 무력감과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다.

 

 

책에는 5학년 선배들이 1학년 후배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오일장 책 나들이행사도 소개되어 있다. 이는 저자가 재직하던 초등학교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5학년 아이들은 후배들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보다 진지하게 책을 이해하게 되고, 후배를 챙기면서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과 책임감을 배운다. 아이들은 이런 활동을 통해 상대방을 배려하는 일에 익숙해져 갈 것이다. 저자가 있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은 이렇게 성장해가고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자신의 존재만으로 스스로를 가득 채우고 있는 상태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상대방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대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얼굴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여기에 더하여 이런 경험을 마련해준 저자와 교사들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쁜 교사 업무 가운데에도 전교생과 손편지를 수시로 주고받는 저자의 모습을 보고 학창 시절에 이런 선생님이 있었다면 그 시절이 누군들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책에 실린 에세이 중에서 교실에 들어가지 못하던 어느 1학년 아이의 이야기도 생각난다. 저자를 비롯해서 다른 교직원이 이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산책하기를 한 학기 내내 했던 것 같다. 방학이 지나고 다시 개학날이 되자 이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이 교실에 많은 걸 보고 교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동안 한 아이와 함께 산책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을 저자와 교직원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이 경험을 한 이후 저자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교육이란 무엇일까. 한 아이를 위해 모두 함께 손을 잡는 것이 아닐까.”(107)하고 말이다. 어쩌면 교사는 아이가 집을 떠나 사회(학교)로 나왔을 때 돌보아주는 부모와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조카나 아이들에게 나의 견해를 이해시키려고 조급하게 떠밀었던 내 모습이 생각나 당황스럽기도 했다.

 

 

가히 폭력 교실의 시대를 거쳐 온 내게 40년 동안 저자가 몸소 실천해낸 교육 현장의 모습이 때론 생소하기도 했다. 이런 것이 가능한 일이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하지만 이러한 저자의 모든 노력에는 무엇보다 아이들에 대한 인정과 사랑이 우선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나름의 세계가 있었다. 책 중간 중간에 아이들이 저자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아이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생각이 깊다. 또 아이들은 각자 고유한 이름을 가진 존엄한 존재이기도 하다. 다시 느끼는 것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많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여전히 아이들로부터 배워야할 것이 많다고 느꼈다. 나는 아이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법을, 인내심을 가지고 더 배워야하는 어른이었다.

 

 

 

[책 속으로]

[1] "아이들 이름을 알기 전의 학교와 이름을 알고 난 이후의 학교는 나에게 전혀 다른 세계였다."(33)

 

[2] "아이들은 하나의 숫자나 번호가 아니다.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존엄한 존재이다. 이름부르기는 서로를 환대하고 존중하는 일이다."(33)

 

[3] "우리는 자신의 선택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종종 착각한다. 어떤 일이든 아이들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언제나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리."(36)

 

[4] "우리 교직원이 경서의 손을 다정하게 잡았고 경서와 함께 산책했다. 그것이 전부이다. 교육이란 무엇일까. 한 아이를 위해 모두 함께 손을 잡는 것이 아닐까."(107)

 

[5] "아이들은 내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한다.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그것은 단지 호칭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 ‘가 인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123)

 

[6] "저는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은 추억을 만들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132)

 

[7] "나는 왜 굳이 손편지를 쓰는가? 나는 손편지를 쓰는 동안 오직 편지를 받는 대상에게 빠져든다. 한 획, 한 글자를 꼭꼭 눌러 쓰면서 그를 불러온다. 그가 나의 펜 끝에 닿으면 우리들만이 느낄 수 있는 시간과 공간, 즉 우리의 세상이 된다. 손편지는 이렇듯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힘이 있다. 이것이 내가 한 아이도 빠뜨리지 않고 해마다 손편지를 쓰는 이유이다."(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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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포의 시와 장미허브 - 쉼보르스카의 《읽거나 말거나》 | 기본 카테고리 2022-06-0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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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읽거나 말거나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저/최성은 역
봄날의책 | 2018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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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포의 시와 장미허브

- 쉼보르스카의 읽거나 말거나

 

 

새로운 일을 하게 되어 책읽기가 쉽지 않다.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말은 핑계겠지만, 일이 끝나면 거의 탈진 상태로 집에 돌아와 책을 펼치면 10분이 안되어 책상에 머리를 박고는 한다. 무언가를 읽는 게 힘들어졌다. 쓰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요새는 여러 블로그나 서재의 좋은 글들을 읽을 기력도 나지 않아 아쉽기도 하다. 나이가 들면 수입은 줄어들어도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서 좀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으려나 했건만, 내 몫의 삶을 살아내는 일도 여전히 만만치 않다. 그래서인지 매일 아침 흔들흔들 언덕을 오르내리는 마을버스 안에서 잠시 펼쳐보는 책읽기가 꿀맛이다.

 

최근에 아내가 직장에서 장미허브 하나를 받아왔다. 톡톡 건드리고 쓰다듬으면 기분 좋은 향이 공기에 가득해지고, 못생긴 내 손에서도 향기가 난다. 햇빛이 잘 안 드는 집이건만 그래도 거실 창가에 가까이 해놓고 통풍을 신경써주어서 그런지 잘 자라고 있다. 조금 웃자란 부분을 끊어서 빈 화분에 장미허브를 옮겨 심었다. 아내가 장미허브는 이렇게 해도 잘 자랄 수 있다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며칠간 시들지 않고 상태를 유지하는 걸 보면 생존의 기로에서 한창 사투를 벌이는 모양이다. 과연 살아날 수 있을까 매일 지켜보고 있다. 새로 심은 녀석도 톡톡 건드리고 쓰다듬어 보면 여전히 향이 퍼진다. 제약이 있긴 하지만 식물의 경우 본체로부터 나누어진 일부가 살아내는 모습을 보면 늘 감탄하게 된다.

 

장미허브를 톡톡 건드리다가 쉼보르스카의 서평집 읽거나 말거나에 눈이 가서 펼쳐보았는데, 마침 사포의 시집에 대해 짧게 리뷰를 남긴 페이지가 나왔다. 쉼보르스카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의 시인이었던 사포가 남긴 시는 1만 여 편으로 추산된다. 그 중에서 전해지는 시는 550편이고, 다시 이 가운데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것은 불과 몇 편이란다. 규모로만 보자면 빈약한 파편만 남아 있는 상태다. 하지만 쉼보르스카는 그의 시대에도 여전한 사포 열풍을 깎아 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대했던 시인의 모습을 상상한다.

 

여기에서 시인은 머리와 팔, 발이 소실된 사모트라케의 니케를 언급한다. 니케 상 주변에 떨어져 있는 손과 발 일부 조각들을 가리키면서 만약 니케상에서 단지 몇 개의 발가락만 남았더라면, 과연 감탄할 사람이 있겠는가”(44)라면서 말이다. 마찬가지로 간결하면서도 절제되고 정곡을 찌르는 언어를 사용하기로 유명했던 시인, 자신이 쓴 시를 끊임없이 고치고 또 고쳤던 시인 쉼보르스카가 생각하는 시의 본연은 뺄 단어가 보이지 않는 그런 완전체에 가깝다.

 

몇 행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는 단어 하나만 사라져도 시 전체 의미가 훼손될 수 있다.”(44)

 

하지만 시인은 비록 사포의 시가 대부분 잘게 부서진 조각 같긴 하지만 란 돌을 깎아내어 만드는 조각품이 아니다”(44)라고 말한다. 오히려 파편처럼 남아 있는 시와 시어를 통해, 시인의 숙련된 경험과 직관을 통해, 오히려 위대한 시인을 상상했다. 사포의 시집에 대한 아주 짧은 리뷰이지만, 나는 사포의 시들이 오히려 이 장미허브를 닮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조각처럼 몇 개의 이파리만 남은 생명이 빈 화분을 만나 다시 살아내듯이, 단어만 남은 시어, 빈약한 파편들로 이루어진 사포의 시를 통해 고대의 시인은 여전히 살아남아 우리 곁에 있는 셈이다.

 

흐린듯하지만 바람이 살살 부는 주말, 2000년 넘게 단어 몇 개가 살아남아 전해지고 여러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해지는 시와 시인의 삶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혹독한 전쟁을 겪으면서도 이 시를 읽었거나 시인에 대해 생각해보았을 또 다른 시인의 삶도 떠올려본다. 모처럼 새로 심어 놓은 장미허브 앞에 앉아 잎을 톡톡 건드려보기도 하고 쓰다듬으며 향기를 맡아 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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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옷자락을 내어줄 수 있다면 | 기본 카테고리 2022-05-29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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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죠리퐁은 있는데 우유가 없다

강이랑 저
좋은생각 | 2022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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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옷자락을 내어줄 수 있다면

- 죠리퐁은 있는데 우유가 없다

  강이랑 지음 | [좋은생각] | (2022)

 

 

20년 가까이 피우던 담배를 8년 전 즈음 끊었다. 지인들은 나를 독한 놈이라며 별종으로 취급했다. 내가 담배를 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 염치때문이었다. 지인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담배 끊는 비결은 사실 간단했다. 하루 한 갑 이상 피우던 담배를 살 돈이 없어서였다. 직장을 그만 두기 전에 다른 일자리를 구한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지 않고, 막연히 일자리를 금방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던 것이다. 주변머리가 없어도 이정도 일 수 있을까. 구직기간 동안 저축해둔 자금은 금방 바닥이 났다. 돈 버는 재주도, 주변머리도 없던 흡연자가 할 수 있는 선택이란 우선 담배를 끊는 수밖에. 마음 편히 부모님의 도움을 계속 받을 만큼 느긋하지도 못했고, 또 타인이 준 도움으로 담배를 사 피울 염치도 없었다. 경험은 누구에게나 상대적이지만, 가난한 상황이 수반하는 구차함의 생생한 경험을 나는 이렇게 맛본 적이 있다.

 

 

내가 잠시 경험했던 이런 삶의 순간들을 죠리퐁은 있는데 우유가 없다의 저자 강이랑은 어떻게 이렇게 담담하게 살아낼 수 있었을까. 당장 여유 자금 없이 삶을 누군가에게 온전히 의지해야만 했던 경험이 있는 도시 생활자로서 나는 책에서 아프면 큰일이다라고 한 저자의 한마디가 더 실감나게 다가왔다. 더 물러설 공간 없는 마지노선 위의 삶. 그럼에도 누군가의 삶에 도움을 주는 존재로 살고 싶다는 저자의 말이 더 뚜렷하게 각인되어 남는다. 물질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것을 나누는 일은 부유한 이가 나누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넉넉하지 못한 이에게는 그의 실존적인 결단이 개입되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가난하지만 타인과 나눔으로써 더 넉넉해질 수 있었던 저자의 일상이 투명하게 담겨있다.

 

 

저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학원에서 글쓰기 강사를 하던 중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발견했다. 아동문학을 공부하고 싶었다고 한다. 일본어를 할 줄 알았기에 일본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학위를 받고 국내에 돌아온 저자는 국내 대학에 자리를 얻고 평범해 보이는 연구자의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찾아온 공황장애 증상으로 소속이 있는 직장을 떠나기로 했고, 대신 독립 연구자의 길을 선택했다. 이 정도가 책에서 이해한 저자의 간단한 이력이다. 이 중에서 그가 유학 시절에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클럽에 가입하여 일본 아이들과 만난 경험을 이야기한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아이들은 외국인인 그를 편견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가 독립 연구자라는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해서도 삶에 매몰되지 않고 당당히 나아갈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나는 그림책을 사랑한다”(62)고 고백하는 그 마음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유학 시절 아이들과 만나면서 아이 같은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느 날 저자가 산책하는 들판에 자라던 풀을 누군가가 베어냈다. 하지만 다시 자라나는 들풀처럼 아이는 모두 성장하는 힘을 지니고 태어난다”(74)라는 믿음이 그에게 남아있었다. 이처럼 저자가 아이들과 만나고 스스로도 더욱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아이들과 함께 읽는 그림책이 주는 힘이 컸던 것 같다. 그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림책이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143)라고 하는 점이었다. 타국에서 외국인이 아이들과 만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마음이 맞는 좋은 사람들과 계속 만나며 삶을 나눌 수 있었던 것 역시 그림책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한편 그림책뿐만 아니라 아동문학과 동화를 연구하는 저자에게 글쓰기는 삶의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중학교 입학식 때 어머니와 있었던 일을 써서 동화책을 만든 적이 있었다. 물론 이 동화책은 출판되지 않았으므로 그에게는 유일무이한 책이었다. 성인이 되어 동화책을 발견한 뒤 이 책을 함께 읽고 저자가 노모와 교감을 나누는 모습이 인상 깊다. 물론 노모는 그 책 읽었다정도의 반응만을 보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저자와 노모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화책을 통해 서로가 마음을 확인하는 모습은 충분히 읽어낼 수 있었다. 굳이 말이 없어도 교감할 수 있었는 것은 가족이기에 가능할 것이다. 두 모녀의 모습을 보면서 키티 크라우더의 그림책 메두사 엄마에 나오는 이야기도 떠올려 보았다. 메두사 엄마와 딸의 관계처럼 엄마와 아이는 서로를 성장시키며 삶을 나누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간결하게 적어 낸 저자의 에세이가 토대를 두는 삶은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는 글을 마치면서 가난한 지금을 오롯이 살아 내며 고개를 돌리지 않았더니 이 책에 실을 글들을 얻을 수 있었다”(163)라고 담담히 말한다. 하지만 그의 글에선 누군가의 삶에 도움을 주는 존재로 살고 싶다는 바람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언젠가 지하철에서 공황장애 증상을 겪었을 때, 그가 잠시 붙들 수 있게 옷자락을 내어주었던 사람을 결코 잊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누군가 주저앉으려는 사람에게 잠시라도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러한 마음들이 저자를 통해 나에게 이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이 우리의 지난한 삶을 또다시 견디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저자는 스스로를 돈길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부르지만 그는 오히려 재화의 쓰임새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한 끼 식사가 될 수 있는 죠리퐁도 주변과 나누는 사람, 누군가의 삶에 도움을 주는 존재로 살고 싶다는 그는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나누어도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까지 나누어주기 때문이다.

 

 

 

 [책 속으로]

[1] "한 마디로 나는 돈길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벌고 쓸 수 있는지 도통 모른다. 이렇다 보니, 아프면 큰일이다."(38)
 

[2] "아이들은 자신의 말에 성의껏 반응해 주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며 말을 건넨다."(53)

 

[3] "아이는 모두 성정하는 힘을 지니고 태어난다. 자신 안에 갇혀 불평만 하는 어른은 타고난 강점마저 잃은 것이다."(74)
 

[4] "‘여주‘같은 무언가를 건네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소박한 채소 하나가 여름 보양식이 되듯, 누군가의 삶에 도움을 주는 존재로 살고 싶기에."(116)
 

[5] "나는 그림책을 사랑한다."(62)

"그림책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가장 간결하게 이야기한다."(136)

"그림책은 함께 읽어야 제맛이고, 다른 사람에게 읽어줄 때 빛을 발한다. (...) 그림책은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다."(143)
 

[6] "엄마와 아이는 서로를 성장시키는 존재인 것이다."(159)
 

[7] "아이가 건강하게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선 ‘아버지의 이름‘이 중요하다. (...) 어머니가 아버지의 존재를 완전히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이는 ‘아버지의 이름‘을 가질 수 없게 된다."(160)
 

[8] "가난한 지금을 오롯이 살아 내며 고개를 돌리지 않았더니 이 책에 실을 글들을 얻을 수 있었다."(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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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강물에 소용돌이가 생길 때 | 기본 카테고리 2022-05-03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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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단 하나의 방정식

미치오 카쿠 저/박병철 역
김영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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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강물에 소용돌이가 생길 때

- 단 하나의 방정식을 읽고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집에서 전자석을 처음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대못을 커다란 펜치로 잡고 가스레인지의 불에 한참을 달군 다음 천천히 조심스럽게 식혔다. 지금의 부모들이 알면 불장난 한다고 경악을 했을 텐데, 그 때는 부모님이 모두 일하시는 동안 집에서 놀 거리를 이렇게 혼자 찾았던 모양이다. 이후 식은 못을 기름종이와 같은 얇은 종이로 한 번 싼 다음 구리선을 촘촘히 감는다. 못대가리를 기역자로 구부린 함석판과 일정한 거리를 두어 나무판에 고정시킨 후 배터리를 연결하면 전자석이 완성 된다. 여기에 스위치를 하나 달면 일종의 모스 송신기처럼 전원을 연결할 때마다 전자석이 된 못대가리에 함석판이 들러붙었다. 선행학습이란 것을 해본 적 없는 나에게는 집에서 했던 이런 놀이가 사물의 이치를 경험으로 이해하는 유일한 기회였다.

 

 

그런데 내가 하던 이런 과학 체험활동은 일본계 미국 물리학자 미치오 가쿠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 동네 전파상과 고물상에서 중고 부품을 수집하여 소형 입자가속기 베타트론을 혼자서 만들었다고 한다. 베타트론은 전자를 가속시키는 장치다. 따라서 전자를 만들어 쏠 수 있는 전자총(electron gun)이 필요하다. 일상에서 전자총이 장착되어 있던 장치는 바로 브라운관식 텔레비전이었다. 여기에 전자총에서 방출 된 전자를 가속시키기 위해 전기장을 걸어둘 고전압 장치가 필요했을 것이다. 가쿠와 같은 과학자들의 어린 시절을 보면 거의 틀림없이 이렇게 과학 실험을 직접 하며 시행착오를 거쳤던 선체험이 있다. 요즘 아이들은 아쉽지만 이런 기회를 수많은 학원을 다니느라 박탈당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자연과 사물에 대한 감각이 상당히 둔화되어 있는 것이다. 어렵고 기나긴 수련을 거쳐야하는 과학의 길에는 미치오 가쿠와 같은 괴짜가 많이 필요한 분야다.

 

 

단 하나의 방정식의 저자 미치오 가쿠는 아인슈타인 키드이기도 하다. 그가 1947년생이므로 아인슈타인이 사망했을 때인 1955년에 8살이었을 것이다. 8살이면 당대의 아인슈타인이 과학계의 세계적인 거물이었다는 정도도 알았을 것이다. 어린 가쿠는 아인슈타인이 말년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지만 완성하지 못했던 통일장 이론을 자신이 완성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만물의 이치를 설명할 수 있는 통일장 이론은 결국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힘(중력, 전자기력, 약한 핵력, 강한 핵력)을 하나로 통일하는 작업이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물리학에서 우주의 시작과 끝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방정식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준다.

 

 

이처럼 큰 뜻을 세웠던 어린 과학자는 훗날 끈이론이라는 분야를 일구어낸 인물이 되었다. 국내에 소개된 과학자들 중에 (내가 현재까지 이해한 바에 따르면) 끈이론의 선구자 혹은 지지자 계보에는 미치오 가쿠와 레너드 서스킨드(블랙홀 전쟁, 우주의 풍경, 물리의 정석 등 저술), 그리고 브라이언 그린(엔드 오브 타임, 엘리건트 유니버스,우주의 구조 등 저술)이 포함된다. 반면 끈이론의 지지자들의 대척점에는 고리양자중력이론의 선구자 카를로 로벨리(모든 순간의 물리학,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등 저술)가 있다. 이들은 모두 우주 혹은 존재의 근본 원리를 설명하고, 그 시작과 끝을 설명하고자 시도한다. 물론 지나친 일반화가 되겠지만, 이 구도만 보면 우주의 시작과 끝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에 미국 학계와 유럽 학계의 경쟁구도가 이루어져 있는 모양새다.

 

 

저자가 소개하는 바에 따르면, 인간의 먼 조상은 이미 우주의 시작과 끝에 대한 상상을 펼쳐보곤 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우주가 나일강에 떠 있는 우주 알(cosmic egg)’에서 시작되었다고 믿었다. 어쩌면 이런 믿음이 인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전파되어 세계 여러 민족의 시작을 알리는 신화가 되었을 것 같다. 새끼를 낳는 사례보다, 알에서 생명이 나올 때 감각되는 탄생의 장면이 더욱 극적이고 생생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현대에 이르면 우주의 시작은 빅뱅으로 설명된다. 과학자들은 그 원인을 무에서 일어난 양자요동이라고 말한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빅뱅 직전의 우주는 불확정성원리에 따라 에너지가 0인 상태는 애초에 존재할 수 없다. 우주는 마치 물이 끊기 직전에 공기방울이 표면에 올라오며 일으키는 표면의 요동과 같은 상태에 있다. 여기에 우연의 요소가 가미되어 방울 하나가 급격히 계속 팽창하고, 이것이 결국 우주로 자라난다는 것이다.

 

 

시작이 있다면 모든 존재에 최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인간의 조상도 다르지 않았다. 고대 바이킹족은 세상의 최후를 라그나로크(Ragnarok)’, 신들의 황혼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영원히 산다고 믿었던 신들에게도 마지막이 오고야 말 것이라고 인식했던 것일까. 라그나로크라는 표현은 나치 독일이 가져와 사용하기도 했다. 히틀러가 자신들의 마지막을 지칭할 때 썼던 표현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물리학자들은 우주가 맞이할 수 있는 종말을 빅프리즈(Big Freeze), 빅크런치(Big Crunch), 빅립(Big Rip) 세 가지로 정리한다. 현대 물리학계는 우주가 점점 더 빠르게 팽창한다고 본다. 하지만 우주에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존재와 역할 정도에 따라 여러 가능성을 예측한다. 현재의 우주가 팽창을 멈추고 얼어붙듯 멈추게 되거나(빅프리즈), 다시 수축하여 하나의 점으로 수렴하며 으깨지거나(빅크런치), 아니면 계속 팽창하여 파열하듯 종말을 맞이할 것(빅립)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 모든 가능성들은 현재 우주에 존재한다고 알려진 암흑 물질(우주의 총 에너지 중 26% 차지)과 암흑 에너지(우주의 총 에너지 중 68% 차지)에 대한 이해의 정도에 달려 있다고 한다. 우리가 여태껏 살아오고 관측하며 이해한 일반 물질의 질량에너지는 우주에 존재하는 전체 양의 5%에 불과할 뿐이다.

 

 

과학의 중요한 특징 중에는 검증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론 물리학자인 저자가 이야기하는 우주의 시작과 끝, 끈이론의 전제가 되는 우주의 10차원 혹은 11차원에 대한 이야기들을 증명할 길은 없다. 아마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학창시절에 아인슈타인이 이루지 못한 과업, 곧 만물의 이론을 정립하려는 포부를 갖고 평생 연구했다. 저자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태초의 우주를 기술하는 방정식은 하나뿐이라고 단언한다. 방정식이 낳는 해, 그러니까 우주의 존재 양식은 무수히 많을 수 있지만 말이다. 아인슈타인도 하나의 방정식이 주는 심미적인 집착이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만물의 이론은 아름다운 수학 이론을 넘어 최후의 순간에 인류의 유일한 생존수단이 될 것이다”(261)라고 언급한다. ‘최후의 순간이 온다면, 인류가 손을 쓸 도리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저자는 물리학자로서 심미적인 이유 너머를 통찰한다.

 

 

물리학자들이 우주의 시작과 끝에 대해 말하고, 시간과 공간의 정체에 대해 탐구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언제나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다. 과연 시간 여행은 가능할까? 이를 테면 현재에서 과거로 갈 수 있을까하는 문제다. 역시 직접적인 검증은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이지만 20세기 후반에 일군의 물리학자들은 시간 여행이 이론적으로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앞에서 우주의 시작인 빅뱅이 생겨난 원인이 무에서 일어난 양자요동이라고 한 것과 비슷한 논리다. ‘시간의 강물에 소용돌이가 생길 때과거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달리 이야기하면 이 시간의 강물에 생기는 소용돌이는 순간순간 열리며 과거로 갈 수 있는 통로인 셈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모두 저자가 만물의 이론을 설명하는 하나의 방정식으로 설명이 가능할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물론 이 방정식을 찾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물리학 법칙에 근거하여 우주의 시작과 끝을 생각하는 연구자들은 결국 철학자가 되는 모양이다. 저자 역시 자신을 신의 존재에 관한한 불가지론자라고 밝힌다. 사변적인 이유만으로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과학자들이 우주의 비밀을 하나씩 알아내면 우주에 대한 예측이 어떻게 구체화될지 궁금해진다. 과거로 갈 수 있는 시간의 소용돌이의 존재 역시 궁금하기는 마찬가지다.

 

 

끈이론의 선구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현대물리학이 나아가는 방향을 대중 독자에게 친숙한 언어로 이야기해 주었다. 미치오 가쿠의 책은 이번에 처음 접해보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독자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국내에 잘 알려진 브라이언 그린의 책은 때론 설명이 너무 자상하여장황한 인상을 줄 때가 있다. 반면 가쿠의 책은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접근성이 좋은 것 같다. 또 설명이 간결하지만 때론 너무 함축적인 경우가 있어 설명의 비약이 느껴지기도 하는 카를로 로벨리의 책보다는 구체적이고 설명이 매끄럽다는 장점이 있다. 이 책은 끈이론의 선구자가 평생 추구해온 자신의 학문적인 길을 정리하고 독자에게 자상하게 안내하는 지도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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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공습, 불가피한 선택이었을까 | 기본 카테고리 2022-04-25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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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떤 선택의 재검토

말콤 글래드웰 저/이영래 역
김영사 | 202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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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공습, 불가피한 선택이었을까

- 어떤 선택의 재검토를 읽고

 

 

나는 말콤 글래드웰의 전작 아웃라이어티핑 포인트에서 저자가 보여주는 신선한 생각과 탁월한 글솜씨를 인상 깊게 읽었다. 하지만 최근작 어떤 선택의 재검토는 독자로서 다소 불편하게 읽었다. 현재 지구의 어느 곳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많은 민간인과 군인이 학살당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책에서 다루는 사건이 민간인을 겨냥하여 대대적인 폭격을 가했던 1945년 도쿄 공습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글래드웰은 도쿄 공습이 이루어지기까지의 역사적 과정을 추적하고, 여기에서 이루어진 인간 집단의 세력싸움과 정치적 선택이 만들어낸 비극을 들여다보았다.

 

책에서 저자는 미 공군 내부의 두 그룹에 주목한다. 하나는 폭격기 마피아라 불렸다. 이들은 자신들이 믿게 된 신조를 일관되게 믿고 실천하고자 했던 신실한 신자 같은 이들로, 폭격기사령부 헤이우드 핸셀이라는 인물로 대표되는 집단이다. 다른 집단은 커티스 르메이로 대표되는 실천가 집단이다. 우선 폭격기 마피아의 교리는 고고도 주간 정밀폭격이다. 이들은 정확한 폭격이 가능할수록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지녔다. 일개 독자로서 보면 이 문구 자체는 상당히 도착적이다. ‘파괴생명 구하기는 서로 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 폭격기 마피아는 명예와 도덕적 이상을 중시하고, 첨단기술에 주목했다. 적국의 핵심 시설을 타격할 수 있다면, 사람을 희생시키지 않고도 군수품 생산에 차질을 주고, 도시를 마비시켜 전쟁에 따른 비용과 위험한 공격을 불필요하게 하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보았다.

 

반면 다른 폭격기 사령부 지휘관 커티스 르메이는 상부에서 지시하면 어떤 이의 없이 실천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유럽 전선에 이어 동인도 콜카다 인근의 폭격기사령부를 맡게 되어, 일본을 폭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문제는 폭격기들이 히말라야를 넘어야 했다는 점이다. 이 때 히말라야를 넘어가다가 산에 충돌한 비행기만 700대였다고 한다. 그의 명령 아래 이륙한 폭격기 92대가 지구 반 바퀴를 도는 동안 수많은 부하가 희생되었지만, 일본의 표적에는 단 한 발 떨어뜨렸다. 이 사람은 과연 제정신인 인물이었던 걸까싶을 정도다. 르메이를 비롯한 이들 집단은 폭격기 마피아가 따르던 신조나 원칙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반면, 오로지 최종결과만을 중시 했다. 이들의 사고방식은 압축된 근대화를 이루어낸 우리나라 지도자들 그리고 한국 사회의 모습과 꽤나 닮아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하버드 대학 연구진이 개발한 네이팜탄은 기본적으로 일본에 사용하기 위해 개발한 것’(178)이었다. 나는 네이팜탄이 베트남에서 주로 숲을 불태우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일본의 민간인 취약계층지역을 표적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네이팜탄은 한국 전쟁 때 인천의 월미도와 주변 민간인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데 사용된 무기이기도 하다. 르메이의 폭격대대는 이런 무시무시한 무기를 194539일 밤, 도쿄 공습에 대대적으로 사용했다. 수백 대의 B-29폭격기가 3시간가량 1665톤의 네이팜을 투하했다. 도쿄 화재는 6시간가량 이어졌다. 이날 밤에만 10만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2달 후인 5월에는 같은 방식으로 요코하마를 공습했다. 450대 이상의 B-292570톤의 네이팜탄을 투하하여, 도시 절반이 잿더미가 되고 수만 명이 사망했다. 도쿄 공습만 해도 8월에 이어졌던 원자폭탄 희생자 수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말콤 글래드웰은 이런 민감한 역사적 사건을 다루었다. 일견 신선하고 과감해 보인다. 하지만 독자로서 다소 불편하게 읽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미국 군 지도부가 일본의 도시 폭격을 어떻게 대했는지, 일본인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군데군데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만하고, 넓적하고, 뻐드렁니의 못생긴 얼굴에 안짱다리를 한 개자식들이 어떤 꼴을 당했는지 보는 게 얼마나 통쾌하던지. (...) 우리는 파괴된 지역을 만족스럽게 둘러보고 3시에 산뜻한 기분으로 들어 왔다.”(218)

 

이 말은 도쿄와 요코하마 공습 이후 육군 장성 조지프 스틸웰이 자신의 일기에 쓴 내용이다. 수많은 일본인을 사망에 이르게 한 국가의 장성이 일본인을 경멸적이고 희화화하여 표현한 부분은 상당히 불편하게 다가온다. 미국인들이 일본인을 비롯한 동양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오드리 헵번 주연의 영화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에 등장하는 뻐드렁니 일본인의 전형과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르메이의 회고록은 어떤가. 그는 북베트남에 대해 우리는 그곳을 폭격해서 석기시대로 되돌릴 것이다”(227)라는 기록도 남겼다. 미 군지도자들이 보여주는 이런 언급을 통해 동양인에 대해 갖는 서양인의 편견과 전쟁 시에 적국으로 규정한 시민들에 대한 비인간화 기제를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실천가 스타일의 르메이와 신실한 신자 스타일의 헤이우드 핸셀의 지도력을 비교했다. 동시에 핸셀의 폭격기 마피아 집단이 지닌 이상이 도덕적이라는 판단을 내리며 두 집단을 구별하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이 두 집단은 모두 근본적으로 부조리한 전쟁이라는 기초 위에 있으며 전쟁은 필요악이라는 전제를 공유한다. 이들은 이 토대 위에서 단지 각자 다른 도덕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저자가 영국군의 폭격 기조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야간 폭격하는 지역폭격이라고 언급한 반면, 미 공군의 기조를 도덕적이고 인간적이라고 차별화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군도 결국 네이팜탄을 사용하여 도쿄 공습이라는 무차별 폭격을 감행했다. 이러한 결과는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일까?

 

영국 폭격기 마피아의 대부는 놀랍게도 물리학자 프레더릭 린더만이었다. 아인슈타인과 친분이 있었고, 처칠의 두터운 신임을 얻은 사람이었다. 저자는 두 문화라는 과학철학의 고전을 저술했던 C.P. 스노의 말을 빌어 린더만의 폭격 접근법이 개인적이고 사디스트였다는 평가를 전한다. 하지만 미 공군도 결국 린더만의 접근법과 다를 바 없는 무차별 폭격을 받아들이고 적용했다. 고도의 기술과 최소한의 인명 피해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신념을 지녔던 미국 폭격기 마피아는 굴복했다. 그리고 최종 결과만을 중시했던 워싱턴 고위 당국과 이들의 지시를 철저히 따랐던 르메이의 결정과 실천은 부조리하고 냉혹한 전쟁의 원칙을 재확인시켜주었다. 이 점에서 보면 과연 미군도 영국군에 비해 스스로 도덕적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점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저자는 9장에서 미군부의 네이팜탄을 투하했던 일본 공습에 대해 재검토를 한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일본인이 죽었는지 헤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마 50만 명가량, 어쩌면 100만 명일지도 모르겠다.”(214) 내가 저자의 태도에서 아쉽다고 느낀 지점은 이런 숫자들 뒤에 선행했던 워싱턴 정계의 결정과 미군부의 실천에 대해 비판적인 질문 제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책의 시작과 끝에서 저자가 드러내는 미 공군 관계자와 친분은 이들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데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 심지어 이들에 대한 존중의 태도를 보여주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저자뿐만 아니라 군 지도자들은 전쟁은 부조리하지만, 필요악이라는 입장을 공유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전쟁 자체가 발생하지 않을 수는 없었는지 그 근본에서 문제를 제기해볼 수는 없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에겐 피해자 측의 정서나 생각에 대한 공감과 연구가 좀 더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이건 아마도 내가 한국의 독자로 이를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미국인들이 개발한 무기의 시험장이나 다름없었던 국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군의 일본 도시 공습에 얽힌 정황과 군지도부의 선택이 남다르게 느껴졌던 이유다.

 

내가 저자를 만나면 해주고 싶은 말이 생각났다. 당신이 언급한 일본인희생자들의 숫자에는 일본인만 있던 것이 아니었다고 말이다. 여기에는 소설 파친코에서 보고 상상할 수 있는 수많은 개별적인 재일 조선인들, 그리고 조선을 비롯한 식민지에서 끌려온 수많은 강제징용 외국인 노동자들도 있었다고 말이다. 나 역시 원자폭탄과 네이팜탄으로 발생한 무고한 희생에 애도를 표하지만, 한편으로는 일본 정부가 미국에 대해 희생자 코스프레를 할 때, 희생자에는 조선인을 비롯한 수많은 외국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들은 전후 피해보상을 회피하려는 일본 정부가 이들의 일본시민권을 박탈하여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존재들이었다고 말이다. 그러니 당신이 자국의 폭격기 마피아를 흠모하면서 일본의 희생자가 50만 명인지, 100만 명인지 안타까워하는 것에서 나아가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연구와 검토를 해달라고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경악하고 안타까웠던 부분은 전후 일본 지식인과 일본 정부가 취한 입장이었다. 역사가 콘래드 크레인이 일본 대중 강연을 한 후 한 일본 역사가가 다가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결국 우리는 소이탄과 원자폭탄을 떨어뜨려준 당신들 미국인에게 감사해야 합니다.”(223) 우리도 이런 도착적이고 자기 분열적인 지식인들이 있었을 테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사실이 있다. 1964년에 일본 정부가 많은 의원들의 반대를 묵살하고, 일본에 네이팜탄과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던 전 폭격사령부 지휘자 커티스 르메이에게 외국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인 ‘1등 아사히 대훈장을 수여했던 사건이다. 일본 정부가 훈장을 수여한 이유는 일본 공군의 재건을 도운 공로였다. 당시 일본 총리는 지난 일은 지난 일이다’(224)라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저자는 일본을 방문했을 때, 도쿄 공습과 같이 심각한 민간인 희생자가 있었던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념관이 초라한 건물이었음을 지적했다. 독일인 작가 W.G. 제발트가 연합군의 대대적인 독일 공습에 희생된 이들에 대한 추모 움직임이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에 문제제기를 했던 일을 떠올려본다. 하룻밤에 10만 명의 자국민이 사망한 역사를 기억하지 않았던 나라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자국의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것은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굴종적인 식민지근성일 뿐이다.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않고 잊어버리는 집단에게 남는 것은 반복되는 굴종의 상황과 도착상태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를 기억하고 이로부터 배움을 얻고 이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다.

 

이 책은 잘못된 선택과 결정이 이루어진 사례를 도쿄 공습이라는 사건을 통해 재조명한 작업이다. 저자는 이것은 우리 의도의 혼란에 대한 이야기이다”(19)라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의 입장은 한국의 독자 입장에서 볼 때, 다분히 미국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인상을 주며, 그래서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는 잘못된 선택을 내린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언급하거나 여기에 주목하고 문제 제기를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대신 도덕적인 이상과 신념을 지닌 것으로 묘사한 미국 폭격기 마피아를 영국의 폭격기 마피아와 비교하고, ‘명령에 이의 없이 실천하는르메이와 대조한다. 이로써 미국 폭격기 마피아를 두드러지게 부각하는 결과를 연출한 것은 아닐지.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보여준 한계에 아쉬움이 남지만,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실존적인 생각거리를 독자에게 던져주기도 한다. 과연 /우리의 상황이라면 어떻게 행동할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이 될 것이다. 전쟁에서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 혹은 개개인의 인생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사자가 빠지기 쉬운 유혹, 특히 어떤 원칙과 신념 그리고 보다 현실적인 이유 사이에 결정을 할 때, ‘당신은 어떻게 검토하고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와 같은 논의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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