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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평단 모집]『인조仁祖 1636』 | 이벤트 2023-03-03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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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仁祖 1636』
 
모집인원 : 10명
신청기간 : 3월 6일 (월) 까지
발표일자 : 3월 9일 (목)
리뷰작성기한 : 도서를 배송 받고 2주 이내
*기대평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YES블로그 리뷰가 있다면 1건만 올려주셔도 당첨 확률이 올라갑니다.

  

 


 

『인조실록』 『승정원일기』 『만문노당(滿文老?)』 등
1차 사료를 바탕으로 인조와 병자호란에 대한 완전한 재인식! 
어리석은 군주의 권력욕이 불러온 병자호란의 참화와
소현세자의 죽음을 낱낱이 파헤친 역사 평설

 

『인조仁祖 1636』은 병자호란에 대해 완전히 다른 문제 인식을 제공하는 책이다. 먼저 저자는 1636년을 중심으로 조선의 내외 정세 및 대응 그리고 전쟁의 실질적 피해자인 백성들의 참상을 사료를 근거로 상세히 서술한다.
저자에 의하면 병자호란은 불가피한 전쟁이 아니었다. 이 책은 인조반정→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소현세자의 죽음에 이르는 시간을 꼼꼼히 살펴보면서, 무능한 지도자의 그릇된 인식과 판단이 엄청난 전쟁의 원인이며, 그것의 최종 피해자는 백성임을 밝힌다. 
『인조仁祖 1636』은 남한산성으로 도망간 주전파와 주화파의 허망한 논쟁보다, 인조의 삼전도의 굴욕보다 남한산성에 숨은 왕을 구하기 위해 근왕군으로 동원된 병사와 의병 그리고 백성들의 죽음, 청으로 끌려간 수십만 명의 억울한 백성들이 왜 그러한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그 원인을 추적한다.
이제 독자들은 막연히 조선의 3대 혼군으로 알려진 인조의 시간을 여행하며, 오욕의 역사에서 현재를 생각하는 ‘역사의 눈’을 키우게 될 것이다.  


p. 5
병자호란은 갑자기 닥친 전쟁이 아니다. 이 전쟁에 앞서 40여 년 전에는 임진왜란을 겪었고, 불과 그 10여 년 전에도 정묘호란을 겪었다. 정묘호란 이후, 청나라는 각종 경제적 요구는 물론, 명나라를 치는 데 협조하라며 수시로 조선을 압박했다. 이런 와중에도 인조 정권은 시종일관 국방이나 백성들의 곤궁한 삶을 외면하고 오직 자신들의 권력 팽창에만 열을 올렸다. 

 

p.130-131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인조 정권이 주변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좀더 유연하게 대처했더라면 충분히 막을 수도 있는 전쟁이었다. 그러나 인조 정권은 임진왜란 이후 급변하는 주변 정세에는 눈을 감은 채 지나친 숭명배금과 자신들의 정권 유지에만 급급한 나머지 국방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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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병직, 존엄성 수업(1) | 인문사상 2022-12-25 15:24
테마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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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존엄성 수업

차병직 저
바다출판사 | 2020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존중받으려면 타자를 먼저 존중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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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병직 <존엄성 수업> 읽기 (1)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권

 

 

 


 

 

 

문장은 힘이 셉니다. 진실이 담긴 문장은 더욱더 힘이 셉니다. 진실을 담은 문장을 권력은 어떻게 억누르려고 합니다. 진실이 알려지면 권력을 유지하는 게 어렵기 때문입니다. 한 시대의 변화는 늘 문장 속에 담겨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집니다. 이 책에 담긴 문장들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존엄성 수업'이라는 책 제목에 나타나는 대로, 지은이는 우리에게 문장에 담긴 생명의 권리를 들려줍니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그런 것이다.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기 위한 노력과 무수한 다른 주인의 배경이 되어 협력해야 하는 두 가지 위대한 과업을 짊어진 존재로서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는 가운데 각자 자기가 아닌 맞은편 사람의 가슴에 달아주는 존재 증명의 훈장이 인간의 존엄성이다. 그러한 의미와 가치를 깨달은 지혜로운 자나 좌충우돌하는 무지한 자나 애당초 차이는 없다. 다만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자신의 존엄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훼손하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거기서부터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야기의 중심을 인간으로 삼자는 진지한 제안, 그것이 인간의 존엄성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각자 그리고 서로 지켜주기 위한 목적적 가치이자 도구가 인권이다. (39~40쪽)

 

 

지은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합니다. 하나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기 위한 노력 속에서 이루어지고, 또 하나는 다른 주인의 배경으로 협력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집니다. 두 가지는 사실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기를 세우는 일은 곧 타자를 인정하는 일과 다르지 않으니까요. 타자를 통해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이 세워진다고 말해도 좋겠습니다.

 

지구상에 인류가 나타나면서 수많은 생명이 사라졌습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 욕망은 끔찍스러울 정도로 지독합니다. 오죽하면 같은 종족에 대한 지배 욕망으로까지 뻗어나갈까요. 지독한 욕망이 절제되지 않을수록 인간의 존엄성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의의 이름으로 인간이 일으킨 전쟁들을 떠올려 보세요. 아우슈비츠의 비극은 또 어떤가요?

 

지은이는 "거기서부터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생명이 단순한 도구로 변질되는 순간 인간을 포함한 생명 존엄성은 그 가치를 잃어버립니다. 지은이는 이야기의 중심을 '인간'으로 삼자고 제안합니다. 저는 '인간'을 '생명'으로 바꾸어 읽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생명의 존엄성과 다르지 않습니다. 생명 그 차제를 목적적 가치로 여기는 마음이 인간의 존엄성을 낳는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사나운 폭력이나 포악한 권력의 비이성적 횡포로부터 모든 생명권을 보호해야 마땅하지만, 그 안전한 안쪽에서는 생명의 주체가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으로서 품격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동시에 기능할 때 생명은 비로소 그 가치를 잃지 않는다. 생명이 절대적 조건이기는 하지만, 유지 그 자체만으로는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생명의 주체가 결정권을 행사하여 자기 생명의 품위를 지킬 수 있는 환경에서 존엄성이 살아난다. 생명으로부터 비롯하는 인간의 모든 자유와 권리가 다시 되돌아가 자신의 생명을 생명답게 만들기 때문에 기본권이 된다. (72쪽)

 

 

태어나는 순간 모든 생명은 생명권을 타고나게 됩니다. 아무리 사악한 권력이라도 생명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맥락이 이 말에는 들어 있죠. 물론 이러한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생명이 지구상에는 엄청나게 많습니다. 인류가 지구상에 발을 디디면서 얼마나 많은 생명이 사라졌는지 생각해 보세요. 인류의 발길이 미치는 대륙마다 생명 다양성이 파괴되었다는 증거를 우리는 곳곳에서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인간은 같은 종족조차 무자비하게 죽입니다. 권력자는 그 알량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일어난 무수한 전쟁을 가만히 떠올려 봐도 좋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애꿎은 백성들만 목숨을 잃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권력은 안전한 후방에서 진격 명령만 내릴 뿐입니다. 전쟁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이들은 가장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 전쟁이 끝나길 기다립니다.

 

지은이는 포악한 권력의 비이성적 횡포로부터 모든 생명권을 보호해야 마땅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 생명권일 수밖에 없는 이유겠습니다. 한편으로 지은이는 생명의 주체가 자기 자신인 점도 분명히 강조합니다. 생명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생명권이 보장되는 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 유지되는 삶을 생명권을 보호하는 일로만 생각할 수 있을까?

 

지은이는 생명의 품위를 이야기합니다. 품위를 지킬 수 없는 상황이 올 때, 생명 주체 스스로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은 바로 여기서 비롯됩니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무엇보다 이런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힘으로 생명을 연장하려는 연구가 공공연하게 진행되는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사는 게 고귀한 생명을 지키는 일인지 새삼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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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길택 동시집, 나 혼자 자라겠어요 | 시집 읽기 2022-12-24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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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 혼자 자라겠어요

임길택 저/정승희 그림
창비 | 2007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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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어른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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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어른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하늘의 별들이

  땅으로 내려온 것일까요.

  도랑가 여뀌

  저마다 꽃을 피우고 있어요.

 

  밤이면 하늘에 뜨고

  낮이면 땅에 내려와

  별이 되었다가

  들꽃이 되었다가

 

  이 가을에 별들은

  하늘과 땅을

  몰래몰래 오가는 것일까요.

  - '별'

 

 

동심에 물든 시인은 하늘과 땅을 나누지 않는다. 하늘과 땅을 나누지 않은 사람이 그 안에 사는 사물들을 나눌 까닭이 없다. 하늘에 뜬 별들이 땅으로 내려오면 도랑가에 핀 여뀌가 된다고 시인은 이야기한다. 여뀌만 될까? 밤이면 하늘에 뜬 별이 되었다가 낮이면 땅에 내려와 들꽃이 되는 별을 상상하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별과 들꽃이 하나로 연결되듯, 밤과 낮도 하나로 연결되고 하늘과 땅도 하나로 연결된다.

 

하늘과 땅을 몰래몰래 오가는 별을 가슴에 품고 시인은 하늘과 땅을 나누고, 인간과 자연을 나누는 문명 세계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문명에 흠뻑 젖은 이들은 하늘의 별이 땅으로 내려와 들꽃이 되는 이치를 모른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 이치를 알게 되면 모든 사물에 경계를 짓는 인간의 논리는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임길택은 별이 들꽃이 되는 이치를 마음에 품고 시를 쓴다. 모든 사물은 태어나는 순간 모든 사물과 이어진 삶을 살게 된다.

 

 


 

 

 

  화장실 뒤편 작은 언덕에

  고들빼기 한 포기

  노랗게 꽃을 피웠다.

 

  가느다란 꽃가지 이리저리 올려놓고

  풀잎 사이에서

  작게 작게 흔들거렸다.

 

  호두나무 위

  까치 소리 들으며

  먼 산 뻐꾹새 소리 들으며

 

  내리는 햇볕

  온몸에 받고 있었다.

  - '고들빼기'

 

 

모든 생명은 모든 생명과 이어져 있다고 했다. 이것은 관념이 아니라 살아 있는 감각과 같다. 화장실 뒤편 작은 언덕에 피어난 고들빼기 한 포기라고 다르지 않다. 가느다란 꽃가지를 이리저리 뻗친 고들빼기는 풀잎 사이에서 가만히 흔들린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곳에 꽃이 피어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그래도 고들빼기는 몸의 감각을 온통 바깥을 향해 내뻗고 있다. 바깥과 이어지지 않으면 고들빼기는 간신히 얻은 생명을 보존할 수가 없다.

 

호두나무 위에서 까치 소리가 들린다. 그보다 먼 산에 있는 뻐꾸기 소리도 들린다. 그 소리를 들으며 고들빼기는 땅 위로 내리비치는 햇볕을 온몸으로 받는다. 한 생명이 태어나 성장하려면 햇볕이 필요하고, 따뜻한 비가 필요하고, 뭇 생명의 아름다운 소리가 필요하다. 고들빼기는 태어나자마자 자신을 바깥으로 활짝 열어젖힌다. 생명은 혼자 살 수 없다. 더불어 살 때만이 생명은 생명으로서 값진 삶을 살 수 있다.

 

 

  장난감을 가득 실은 손수레를 끌고

  할아버지가 골목 앞에 나타나셨다.

  학원에 간 선아를 눈 빠지게 기다리다가

  정아는 두 눈이 둥그레져 손수레 옆으로 갔다.

  곰돌이, 말, 강아지 들이

  정아를 보고 벙긋벙긋 웃는 것만 같았다.

  정아도 플라스틱 장난감들한테

  웃으며 속으로 인사를 했다.

  할머니들이, 아주머니들이

  꼬마 아이에게 곰을 사 주고 토끼를 사 주었다.

  여섯 살 정아도 하나 갖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엄마가 없다.

  식당에만 있는 엄마는

  할아버지 장난감 차가 온 걸 알지도 못한다.

  정아는 한 발짝 더 손수레 앞으로 다가간다.

  절 보고 웃는 곰돌이를 만져보고 싶다.

  차마 손을 내밀지 못하고 있는데

  담 너머 살구꽃이 바람에 날려

  정아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 '봄날'

 

 

학원에 간 언니를 기다리는 아이가 있다. 이름이 정아다. 장난감을 가득 실은 손수레를 보고 정아 눈이 둥그레진다. 곰돌이가 있고, 말이 있고, 강아지가 있다. 장난감들이 정아를 보고 웃는다. 정아도 빙그레 웃으며 장난감들에게 인사를 한다. 손에 손에 장난감을 든 아이들을 정아는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정아도 장난감이 갖고 싶지만, 엄마는 지금 식당에서 일한다. 돈이 없어 장난감을 사지는 못해도, 정아는 한 발짝 더 손수레 앞으로 다가간다. 자기를 보고 웃는 곰돌이를 살짝 만져라도 보고 싶다.

 

제 것도 아닌 장난감을 만지는 게 쑥쓰러운가, 정아는 차마 손을 내밀지 못한다. 만질까 말까 고민 아닌 고민을 하는데, 담 너머에서 바람에 날려온 살구꽃이 정아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린다. 정아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에는 안타까움이 묻어 있다. 그런 안타까움을 바람에 날려온 살구꽃이 씻어준다. 장난감을 갖지 못해 서글픈 아이의 마음을 시인은 살구꽃으로나마 위로해 주고 싶다. 아름다운 봄날의 풍경을 살구꽃의 감각으로 표현했다고 말하면 어떨까? 슬픔을 그저 슬픔으로 표현하지 않은 데서 동심이 피어난다는 걸 시인은  이 시를 통해 분명히 보여준다고 하겠다.

 

 


 

 

 

  길러지는 것은 신비하지 않아요.

  소나 돼지나 염소나 닭

  모두 시시해요.

  그러나, 다람쥐는

  볼수록 신기해요.

  어디서 죽는 줄 모르는

  하늘의 새

  바라볼수록 신기해요.

  길러지는 것은 

  아무리 덩치가 커도

  볼품없어요.

  나는

  아무도 나를

  기르지 못하게 하겠어요.

  나는 나 혼자 자라겠어요.

  - '나 혼자 자라겠어요'

 

 

인간은 이런저런 용도로 동물을 기른다. 동물을 길들여 인간의 입맛에 맞는 짐승으로 만들어버린다. 위 시에 나오는 아이 화자는 "길러지는 것은 신비하지 않아요."라고 분명히 말한다. 길러지는 동물에서 생명의 신비를 발견할 수 없다는 얘기다. 소나 돼지, 염소와 닭 들에 비한다면, 다람쥐는 볼수록 신기하다는 아이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라. "어디서 죽는 줄 모르는/ 하늘의 새" 또한 바라볼수록 신기하다는 아이의 말을 문명에 길들여진 어른들이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이다.

 

시인은 야생을 사는 동물과 사람이 기르는 동물을 대비하고 있다. "길러지는 것은/ 아무리 덩치가 커도/ 볼품없어요."라는 시구에 드러나는 대로, 시인은 길러지는 게 생명의 본성을 빼앗는 일이라고 선언한다. 이 시에 나오는 아이 화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아무도 나를/ 그리지 못하게 하겠어요."라고. "나는 나 혼자 자라겠어요."라는 아이의 의지는 과연 지금 이 사회에서 실현될 수 있을까? 아이를 통해 자기 소망을 펼치려는 어른들의 욕망을 이 아이는 물리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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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 시집 사상의 거처 | 시집 읽기 2022-12-23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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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상의 거처

김남주 저
창비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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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은 언제나 사랑 속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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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은 언제나 사랑 속에 머문다

 

 

 

  할머니는 산그늘에 앉아 막대기로 참깨를 털고

  어머니는 따가운 햇살 등에 받으며 호미로 고추밭을 매고

  아버지는 이랴 자랴 소를 몰아 논수밭에서 쟁기질을 하고

  나는 나는 학교 갔다 와서 산에 들에 나가

  망태 메고 꼴을 베기도 하고 염소를 먹이기도 했지요

 

  나는 보고는 했지요 어린 시절에

  할머니가 깨를 터시다 말고 막대를 훼훼 저어

  모밀밭을 해치는 산짐승을 쫓는 시늉을 하는 것을

  나는 보고는 했지요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김을 매시다 말고 사금파리를 주워

  고춧잎에 붙은 진딧물을 긁어내는 것을

  나는 보고는 했지요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쟁기질을 잠시 멈추시고 꼬챙이를 깎아

  황소 뒷다리에 붙은 진드기를 떼어내는 것을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 시에는

  그 시절 우리 식구들이 미워했던 것들-

  산짐승 진딧물 진드기 같은 것이 자주 나오지요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 시에는

  그런 것들을 내치느라 일손을 잠시 놓으시고

  우리 식구들이 대신 들었던 것들-

  막대기 사금파리 꼬챙이 같은 것이 많이 나오지요

  - '시에 대하여'

 

 

김남주는 시를 통해 현실 너머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현실 속에서 시를 본다. 더불어 살 수 없는 존재와 싸우는 양식으로 시를 정립한다. 어린 시절 시인은 깨를 터시던 할머니가 막대를 훼훼 저어 산짐승을 쫓는 시늉을 하는 걸 보았다. 김을 매시던 어머니는 사금파리를 주어 고춧잎에 붙은 진딧물을 긁어냈고, 쟁기질을 잠시 멈춘 아버지는 꼬챙이를 깎아 황소 뒷다리에 붙은 진드기를 떼어냈다.

 

할머니와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런저런 방법으로 쫓아내고 긁어내고 떼어낸 산짐승과 진딧물과 진드기를 시인은 "그 시절 우리 식구들이 미워했던 것들"로 표현한다. 할머니와 어머니와 아버지는 막대기와 사금파리와 꼬챙이로 이 미운 것들과 맞서 싸웠다. 시인이 된 김남주가 싸우는 방식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싸우지 않고 어떻게 미운 것들을 몰아낼 수 있을까? 그에게 시작(詩作)은 미운 것들과 대차게 싸우는 일을 말한다. 순수시니, 예술지상주의니 하는 말을 그는그래서 거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골길이 처음이라는 내 친구는 

  흔해빠진 아카시아 향기에도 넋을 잃고

  촌뜨기 시인인 내 눈은

  꽃그늘에 그늘진 농부의 주름살을 본다

 

  바닷가가 처음이라는 내 친구는 

  낙조의 바다에 사로잡혀 몸둘 바를 모르고

  농부의 자식인 내 가슴은 제방 이쪽

  가뭄에 오그라든 나락잎에서 애를 태운다

 

  뿌리가 다르고 지향하는 바가 다른

  가난한 시대의 가엾은 리얼리스트

  나는 어쩔 수 없는 놈인가 구차한 삶을 떠나

  밤별이 곱다고 노래할 수 없는 놈인가

  - '가엾은 리얼리스트'

 

 

사물은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법이다. 시골길이 처음인 친구는 흔해 빠진 아카시아 향기에도 넋을 잃지만, 촌뜨기 시인의 눈에는 꽃그늘에 그늘진 농부의 주름살이 먼저 보인다. 아카시아 향기에 넋을 잃은 친구는 왜 농부의 그늘진 주름살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 살아온 삶이 다르기 때문이다. 관점은 구체적인 삶 속에서 형성된다. 자본가는 노동자의 비참한 삶에 관심이 없다. 당연히 그들이 사는 삶이 보이지 않는다.

 

낙조의 파도에 사로잡혀 몸둘 바를 모르는 또 다른 친구는 제방 이쪽에 펼쳐진 "가뭄에 오그라든 나락잎"을 보지 못한다.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난 시인의 눈에는 그토록 잘 보이는 나락이 말이다. 시인은 "가난한 시대의 가엾은 리얼리스트"로 자신을 표현한다. 그는 민중의 구차한 삶을 외면한 채 밤별이 곱다는 노래를 부를 수가 없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시가 아니다. 현실과 시를 일치시킨 김남주의 시학을 우리는 이 시를 통해 정확히 알 수 있다고 하겠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입만 살아서 중구난방인 참새떼에게 물어본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다리만 살아서 갈팡질팡인 책상다리에게 물어본다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져

  난마처럼 어지러운 이 거리에서

  나는 무엇이고

  마침내 이르러야 할 길은 어디인가

 

  갈 길 몰라 네거리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웬 사내가 인사를 한다

  그의 옷차림과 말투와 손등에는 계급의 낙인이 찍혀 있었다

  틀림없이 그는 노동자일 터이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어요 선생님은

  그의 물음에 나는 건성으로 대답한다 마땅히 갈 곳이 없습니다

  그러자 그는 집회에 가는 길이라며 함께 가자 한다

  나는 그 집회가 어떤 집회냐고 묻지 않았다 그냥 따라갔다

 

  집회장은 밤의 노천극장이었다

  삼월의 끝인데도 눈보라가 쳤고

  하얗게 야산을 뒤덮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추위를 이기는 뜨거운 가슴과 입김이 있었고

  어둠을 밝히는 수만 개의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고

  한입으로 터지는 아우성과 함께

  일제히 치켜든 수천 수만 개의 주먹이 있었다

 

  나는 알았다 그날 밤 눈보라 속에서

  수천 수만의 팔과 다리 입술과 눈동자가

  살아 숨쉬고 살아 꿈틀거리며 빛나는 

  존재의 거대한 율동 속에서 나는 알았다

  사상의 거처는

  한두 놈이 얼굴 빛내며 밝히는 상아탑의 서재가 아니라는 것을

  한두 놈이 머리 자랑하며 먹물로 그리는 현학의 미로가 아니라는 것을

  그곳은 노동의 대지이고 거리와 광장의 인파 속이고

  지상의 별처럼 빛나는 반딧불의 풀밭이라는 것을

  사상의 닻은 그 뿌리를 인민의 바다에 내려야

  파도에 아니 흔들리고 사상의 나무는 그 가지를

  노동의 팔에 감아야 힘차게 뻗어나간다는 것을

  그리고 잡화상들이 판을 치는 자본의 시장에서

  사상은 그 저울이 계급의 눈금을 가져야 적과

  동지가 바르게 식별한다는 것을

  - '사상의 거처'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고 시인은 묻는다. 길은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져 있지만, 시인은 도무지 "나는 무엇이고/ 마침내 이르러야 할 길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다. 갈 길을 모르는 시인에게 한 노동자가 다가와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마땅히 갈 곳이 없다고 하자, 그는 집회에 같이 가자고 이야기한다. 시인은 별다른 말없이 사내를 따른다. 눈보라가 치는 삼월에 어둠을 밝히는 수만 개의 눈빛이 모여 일제히 수천 수만 개의 주먹을 치켜든다.

 

차가운 노천 광장에 모인 노동자들이 펼쳐내는 "거대한 율동"에서 시인은 비로소 사상의 거처를 찾는다. 사상의 거처는 "노동의 대지이고 거리와 광장의 인파 속이고/ 지상의 별처럼 빛나는 반딧불의 풀밭"이라고 시인은 외친다. 사상의 촛불을 들고 사람들이 서 있던 그 광장에서 생성된다. 사상은 실천을 요구한다. 사상의 거처는 따라서 실천이 이루어지는 장소에 있을 수밖에 없다. 어떤 이념으로 뭉쳐 사람들이 광장에 모인 것은 아니다. 이념은 이념일 뿐이다. 사람들이 행동으로 표현하는 순간 이념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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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 대한민국사 1 | 인문사상 2022-12-21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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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대한민국사 1

한홍구 저
한겨레신문사 | 2003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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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관점이 다른 역사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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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관점이 다른 역사를 낳는다

 

 

역사는 사실이자 사실이 아니다. 역사는 사실을 해석한 것이다. 관점에 따라 역사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하면 어떨까? 박정희가 일으킨 5.16 군사쿠데타는 한때 5.16 혁명이라고 불렸다. 전두환이 일으킨 12.12 쿠데타는 또 어떤가? 시간이 흐르면서 혁명은 쿠데타로 교정되었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이다. 권력의 눈으로 보는 역사와 시민의 눈으로 보는 역사는 이토록 다르다. 우리가 역사의식을 길러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아마 우리 사회의 구성원 대다수는 테러리즘에 반대한 것입니다. 저 멀리 유럽이나 중동에서 이름도 생소한 아랍의 무장세력에 의한 테러행위가 발생하기만 하면 예외없이 신문이나 방송에서 테러리즘을 비난해 왔으니까요. 그러나 안중근 '의사'는 어떻습니까? 기차에서 내리는 비무장 정치인을 권총으로 암살한 행위, 바로 전형적인 개인테러행위 아닐까요? 그런데 테러리즘 일반이 나쁜 것이라면 유독 안중근 '의사'의 '의거'는 훌륭한 행위일 수 있을까요? 안중근 의사의 행위가 옳은 일이었다면, 어떤 테러행위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명제가 잘못된 것이고, 테러리즘 일반이 나쁜 것이라면 안중근 의사의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9쪽)

 

안중근은 테러리스트이고, 신채호는 사기꾼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대부분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놈이라고 손가락질할 것이다. 유럽이나 중동에서 테러를 일으킨 아랍의 무장 세력은 그럼 어떤가? 이들 또한 어떤 명분을 내걸고 테러를 한다.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안중근은 무조건 옳고, 자살 폭탄 테러를 저지른 아랍의 무장 세력은 무조건 그른 것인가?

 

일본인들은 이토 히로부미를 근대사의 영웅으로 칭송한다. 그들의 눈으로 보면 안중근은 분명 테러리스트이다. 왜 일본의 시선을 안중근 의거에 들이대느냐고 물을 수 있다. 한국인의 관점으로 안중근이 일으킨 거사를 바라봐야 하지 않느냐는 물음이다. 가뜩이나 이토는 한반도를 발판 삼아 일본의 제국주의적 속성을 만방에 내보인 인물이지 않은가? 힘으로 전 세계를 지배하려는 욕망을 품은 정치인이 바로 이토라는 건 분명하다.

 

비무장 상태로 기차에서 내리는 정치인이었고 해도 이런 위험한 인물을 죽이는 것은 정당한 행위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이렇다면 개인 테러 행위를 무조건 옳지 않은 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옳다고 생각한 일이 그른 것이 될 수 있고, 그르다고 생각한 일이 옳은 것이 될 수 있다. 일본인이 아무리 이토를 옹호해도 우리는 그래서 안중근을 의사(義士)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어떻습니까? 변절의 기미가 보이는 이광수를 꾸짖기 위해 세수할 때조차 고개를 숙이지 않으셨다는 그분을 많은 역사학자들은 우리 독립운동의 고고한 지사로 주저없이 꼽습니다. 그러나 이분도 일제관헌의 관점을 적용한다면 고고한 지사이기는커녕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질서를 교란한, 요즘으로 치면 유가증권 위조의 파렴치범입니다.

문제는 관점과 기준입니다. 일어난 일은 분명 하나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분명 이토 히로부미를 쏴죽였습니다. 신채호 선생은 분명 유가증권을 위조했습니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떤 입장에 서느냐에 따라 그 행동의 의미를 달라집니다. 안중근 의사는 대한국의 의병장으로서 우리를 침략하는 일본국의 수괴 이토를 사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입장에 서느냐, 아니면 일제의 입장과 일부 겹치기도 하지만 모든 개인테러행위를 비난하는 입장에 서느냐에 따라 그 행동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래서 역사는 골치 아픕니다. (9쪽)

 

단채 신채호는 독립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유가증권을 위조했다. 일제 관헌이라면 당연히 자본주의 사회질서를 교란한 인물로 신채호를 평가할 것이다. 우리도 그럴까? 남한이나 북한이나 신채호를 독립운동가로 기린다. 그는 한민족의 독립을 앞당기는 자금을 마련하는 방안으로 유가증권을 위조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방법 자체만 따지면 문제가 있지만, 그것으로 이룰 목적이 정당하므로 우리는 신채호의 행위를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골치 아픈 역사의 딜레마는 늘 우리를 따라다닌다. 우리는 일제의 만행에 분노하고, 노근리 학살에 참담한 마음을 느끼면서도,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벌인 민간인 학살 의혹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일제와 맞서 싸운 안중근과 신채호를 기리려면, 우리가 해외에서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중 잣대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강자의 논리로 역사를 보면 약자들의 아픔이 보이지 않는다.

 

테러리즘이 정당하다는 말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만 해도 우리는 미국과 유럽의 관점으로 이 전쟁을 들여다본다.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는 악마이고, 우크라이나를 돕는 세력은 그 악마를 무찌르는 십자군인 듯 생각한다.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해서는 입을 꽉 다문다. 미국은 옳고 러시아는 그르다는 사고는 도대체 어디서 뻗어 나온 것인가? 애꿎은 약자들만 신냉전의 구조 속에서 죽어갈 따름이다.

 

시민혁명을 거치지 못하고 제국주의적 근대에 편입되었다는 것은 전근대의 부정적 요소들이 고스란히 다음 시대에 살아남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근대의 부정적 요소를 척결하는 시민혁명을 거치지 못한 현실에서 근대/전근대의 이분법적 도식은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전 시대를 정리하지 못한 불행은 비단 시민혁명의 결여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은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않은 채 건설되었다 청산 못한 정도가 아니라 친일파를 척결하려던 반민특위가 오히려 친일경찰의 공격을 받아 해산당했고, 친일잔재 청산을 부르짖던 소장파 의원들은 남로당 프락치로 몰려 투옥되었다. 그리고 백범 김구 선생이 암살당했다. 모둔 1949년 6월의 뜨거운 여름에 일어난 일이다. 이 세 가지 사건은 친일파 청산을 외치던 민족 세력들이 오히려 친일파에 청산당한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19~20쪽)

 

서구의 근대는 시민혁명을 거치며 서서히 이루어졌다. 19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제도로 도입된 한국의 근대는 어떨까? 시민혁명이란 전근대의 부정적 요소를 시민의 힘으로 척결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시민혁명을 거치지 않은 한국의 근대는 당연히 전근대의 부정적 요소들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전근대적 사상을 마음 깊이 품은 채 근대 사상을 받아들였다고나 할까?

 

게다가 남한은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대한민국 건국을 선포했다. 대통령은 친일파를 요직에 앉혀 친일파 청산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스스로 포기했다. 친일파 척결을 주장한 반민특위를 친일 경찰이 해산시켰고, 친일파 청산을 요구한 국회의원들은 남로당 프락치로 몰려 감옥에 갇혔다. 남과 북을 하나로 이으려 했던 김구 선생의 암살로 1949년의 뜨거운 여름은 절정에 이르렀다.

 

친일파 청산 문제는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화두가 되고 있다. 친일파 선조들의 재산을 물려받은 친일파 후손들이 화려한 삶을 누릴 때, 정작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새로운 나라의 천덕꾸러기가 되어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다. 유명 정치인의 할아버지가 친일파라는 사실이 밝혀져도 사람들은 이제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역사적 과오를 저지른 사람들이 다시 정권을 잡았으니, 역사적 정의를 실천한 사람들이 핍박받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인지 모른다. 만주에서 독립군을 소탕한 박정희는 18년 동안 절대 권력자가 되었고, 광주 학살의 주범 전두환은 구국의 영웅이 되어 떳떳하게 대통령 선서를 했다. 과오를 저지른 권력자들은 힘으로 국민을 내리누른다. 총에서 권력이 나온다. 한국의 근대사를 수놓은 피비린내 나는 사건들을 떠올려 보라.

 

역사는 반복된다. 미국과 이승만 정부 덕분에 친일파는 살아남았다. 이들에게 미국과 이승만 정부는 목숨을 살려준 은인이었던 것이다. 친일파는 반공 이념을 뼛속 깊이 받아들여 그 은혜를 갚았다. 이념 논쟁이 심해질수록 친일파가 설 자리는 그만큼 넓어졌다. 6.25 전쟁은 반공 정책을 더욱더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 속에서 친일파가 살길 또한 활짝 열렸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미국의 관점에서 이 세계를 들여다본다. 미국이 벌이는 일이라면 무조건 찬성하는 극우언론들을 보라. 미군 탱크가 한국의 소녀들을 짓뭉개도 우리 법으로는 그들을 처벌할 수 없다('반미 감정 좀 가지면 어때?').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정권이 나오면 이내 이념에 물든 세력이 나서 비난의 강도를 높인다. 스스로 역사와 대면해 본 적이 없는 지난 시간의 결과라고 말하면 지나친 해석이 될까?

 

인천에 가면 맥아더 동상이 있다. 이승만 정권 시절에 세워진 동상이다. 맥아더가 아직 생존해 있을 때 건립되었으니, 한국 사회에서 맥아더의 위상을 새삼 알 수 있다. 지은이는 '맥아더가 은인이라고?'라는 항목에서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지만,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는 노병의 동상을 보며 나는 자꾸 숨이 막힌다."(211쪽)라고 적는다. 한국 근대사의 비극이 맥아더 찬양이라는 시대착오적 영웅심리를 낳았다고 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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