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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유 리카르, 『이타심』 | 사회사상 2019-04-29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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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타심

마티유 리카르 저/이희수 역
하루헌 | 2019년 04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이타심이 살아 있는 마음이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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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심, 더불어 사는 사회를 향한 마음

- 마티유 리카르, 『이타심』

 

 

      

정치인들은 대중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자주 망언을 내뱉는다. 국민을 개돼지라고 지칭한 사례는 차라리 애교(?)라고 할 수 있다. 개돼지는 생명이라도 있으니까.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국민을 권력을 얻는 도구로 생각한다. 도구는 필요할 때만 쓰고 버리면 되는 것이다. 권력을 얻으면 정치인들은 그래서 국민을 버린다. 그들은 국민을 어떤 상황 속에서만 호명한다. 선거철이 되면 국민은 유권자가 되고, 나라에 아이엠에프(IMF)와 같은 재앙이 일어나면 국민은 금을 모아 나라를 구하는 애국자가 된다. 유권자라는 도구, 애국자라는 도구를 통해 정치인들은 권력을 얻고, 그것을 통해 자신들이 이루고 싶은 부()를 이룬다. 이들은 어떻게 국민을 도구로 다룰 수 있는 것일까? 자기중심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지은이의 말대로라면 정치인들에게는 무엇보다 이타심이 부족하다. 권력을 탐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타심을 바랄까? 사이코패스처럼 정치인은 권력을 위해서라면 국민이야 무엇이 되는 상관하지 않는다.

 

지은이는 이 책에 자신과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힘이라는 부제를 붙이고 있다. 뜻대로 풀이하면 이타심(利他心)은 남을 이롭게 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마음이 이타심에는 들어 있다. 그 어느 시대보다 부익부빈익빈이 심해진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지은이는 왜 이기심이 아니라 이타심을 내세우고 있을까? 신자유주의는 사람들에게 이기심을 가지라고 명령한다. 이기심(利己心)은 나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자기가 이로워야 다른 사람도 이롭다고 생각한다. 말 자체로는 그르지 않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에서 제창하는 이기심은 다른 사람을 도구로 생각할 때만 가능한 마음이다. 무한 경쟁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이기심은 남을 이기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미덕(?)과 같은 것이다. 밟고 넘어서야 할 사람의 이익을 고려하며 경쟁을 하는 사람은 없다. 신자유주의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경쟁 사회를 이상 사회로 본다. 강한 자가 권력을 쥐어야 약한 자들이 그나마 살 수 있는 사회가 도래한다는 것. 이런 사회에서 이타심은 참으로 쓸모없는 도구라고 하겠다.

 

지은이는 이기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사회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다음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개인적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이기심은 자기 자신을 너무 중요하게 여기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에 끊임없는 고통의 원천이 된다.”(129) 이기심이 왜 고통의 원천이 될까? 끊임없는 욕망 때문이다. 이기적인 욕망에 빠진 사람은 하나를 이루면 다른 하나를 원한다. 피라미드의 끝에 올라가면 피라미드 너머에 있는 하늘로 올라가려고 하는 격이다. 한평생 먹고 살 돈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왜 하루하루를 간신히 넘기는 서민들의 돈을 착복하겠는가? 욕망에 빠진 사람은 오로지 자기 욕망만 본다. 다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살피지 않는다는 얘기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들이 그렇고, 쾌락을 얻기 위해서라면 생명을 죽이는 것쯤 아무렇게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그렇다. 지은이는 두 번째 이유로 이기심은 현실과 완전히 모순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우리는 현실을 홀로 살 수 없다. 이기심이 통하려면 다른 사람들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혼자만 사는 사회에서 아무리 돈이 많은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내가 세상의 중심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 세상은 다른 사람들 것이다.”(130)라는 지은이의 주장은 무엇보다 이러한 맥락과 연결될 것이다.

 

에 대한 개념이 점점 강해져서 자아라는 허상으로 굳어 버리면 내 것에 대한 생각도 덩달아 강해진다. 달라이 라마는 내 것에 대해 집착하는 감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어떤 가게 쇼윈도에 멋진 도자기 화병이 진열된 것을 바라보고 있는데 점원이 실수로 화병을 떨어뜨렸다. 그럼 아마 정말 예쁜 화병인데 아깝군!’ 하면서 가던 길을 계속 갈 것이다. 그런데 화병을 선물 받아 벽난로 위에 자랑스럽게 올려놓았는데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면 내가 아끼는 꽃병이 깨어졌다!’고 소리치면서 크게 상심할 것이다. 차이점이라고는 화병에 내 것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뿐이다. (424)

 

내 것에 집착한다. 무언가를 소유한 사람들은 항상 그 무언가에 의미를 붙인다. 인용문에 나온 대로, 우리는 같은 화병을 의미의 유무에 따라 다르게 생각한다. 연인에게 선물 받은 화병이 깨지면 세상이 무너진 듯 우는 사람도, 점원이 실수로 깨뜨린 화병을 보고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의미가 붙은 화병일수록 우리는 더욱 더 집착을 한다는 얘기겠다. 우리가 왜 이타심보다 이기심에 익숙하겠는가.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는 . 그 다음이 가족이다. 나와 가족과 관련된 일이라면 우리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나와 가족에는 내 것이라는 의미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돌려 말하면 나와 가족에게 배신을 당할 경우 우리는 죽음을 생각할 만큼 강한 충격을 받는다. 지은이가 이타심을 무아無我에서 시작되는 자애로운 힘(425)이라고 표현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자기중심으로 세상을 생각하는 사람은 이타심에 이를 수 없다. 타자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만이 무아를 통해 이타심에 이를 수 있다. 무아는 말 그대로 를 내려놓는 것이다.

 

를 내려놓는 게 가능하냐고 물을 수 있다. ‘를 내려놓는 일은 당연히 어렵다. 정체성이니 주체성이니 하는 말로 우리는 얼마나 에 집착하는가. 현대 자본주의를 대변하는 신자유주의는 어떻게든 를 지키라고 우리에게 명령한다. 이기적인 가 개인을 세우는 힘으로 작용한다. 요즘 사회에서 특히나 중시되는 자기 계발이라는 말을 생각해 보라. 자기 계발은 성공을 위한 지름길을 (이기적인) 개인들에게 알려준다. 자기를 끊임없이 계발하라는 신자유주의의 엄숙한 명령을 따라 개인들은 자기를 계발하기에 바쁘다. 어린 시절부터 자기를 계발한 사람들은 성공에 갈망하는 성과주체의 길로 스스로 들어선다. 무한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무아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다. 자기를 계발하기도 벅찬데, 자기를 비우라고! 묘한 건 자기를 비우는 일을 자본이 명상이라는 말로 도구화하고 있는 대목이다. ‘명상은 이제 산업이 되었다. 자기 계발을 위한 도구로서 명상이 사용되고 있다고나 할까? ‘를 내려놓는 일이 도리어 를 강화시키는 이상한 상황에 우리는 직면하고 있는 셈이다.

 

를 내려놓는 일마저도 이기심을 채우는 도구가 되어버린 사회에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소진(burn out)시키며 일에 집착한다. 산업화된 명상을 하는 순간에도 사람들은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다. 명상을 하면 머리는 더욱 명쾌해지고, 마음은 더욱 명랑해진다. 명상을 통해 육체적, 정신적 활력을 얻은 사람들은 다시 무한 경쟁 사회로 뛰어들어 다른 이들을 압도하는 힘을 발휘한다. 딱 부러진 성과를 내야 조직에서 밀려나지 않는다. 경쟁자들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해 오로지 앞으로만 달리다 보면 인간관계는 당연히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가족 외에는 주변에 아무도 남아나지 않는다. 가족이라도 남아 있으면 다행인데, 일에 빠져 사는 사람에 익숙해진 가족들은 마음을 닫은 채 그()를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로 대한다. 성과에 집착할수록 이들은 감정적 탈진, 냉소주의, 무능감에 빠져든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유독 힐링과 관련된 산업이 발달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신자유주의는 사람들의 고통을 자본으로 만드는 특이한 능력이 있다. 사람들이 고통을 받을수록 힐링 산업은 더욱 커진다.

 

이기적이라야 살아남을 수 있고 이기적이라야 남보다 더 잘 살 수 있다면서 남보다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인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이타주의자들이 유토피아를 꿈꾸는 이상주의자들이고 늘 착취만 당하는 비이성적인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사람들은 코넬 대학교 교수 로버트 프랭크가 한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타주의자들은 이기주의자들보다 덜 이성적이지도 않고 더 이성적이지도 않다. 둘은 추구하는 목표가 서로 다를 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타주의자가 이기주의자보다 훨씬 더 현실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다. 이기주의자는 이해관계에 연연하느라 편향적인 판단을 할 수 있지만 이타주의자는 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상황을 약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서 가장 적절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이해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은 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비인간적인 것이다. (904~905)

 

신자유주의는 이기심을 찬양한다. 이기적인 사람만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예찬한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은 더 많이 갖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게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논리의 핵심이다. 이기심을 다스리는 정부를 그들은 그래서 거부한다. 모든 것을 자본의 관점으로 보면 이 세상 모든 것은 도구가 되어버린다고 했다. 도구에는 생명이 없다. 생명이 없으니 다 쓰면 언제든 버려도 상관없다. 갑과 을의 관계가 왜 사회적 문제가 되겠는가? 갑은 을을 도구로만 본다. 쓸모가 없어진 도구를 우리는 쓰레기통에 버린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도구는 쓰레기가 된다. 요컨대 갑에게 을은 언제든 쓰레기가 될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러니 제 마음대로 때리고, 막말을 하는 것이다. 도구로서 을은 갑이 때리면 맞아야 하고, 갑이 막말을 하면 그저 듣기만 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반응을 보이면 화가 난 갑은 을의 목숨 줄을 끊어버린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왜 계약이라는 말을 두려워하겠는가? 계약이 되지 않는 순간 그들은 목숨을 잃는다.

 

신자유주의는 이타주의자들을 유토피아를 꿈꾸는 이상주의자이며 비이성적인 사람들이라고 비난한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바깥을 인정하지 않는다. 공산주의 사회가 몰락한 이후로 우리가 사는 세계는 자본주의 체제로 통일된 사회가 되었다. 공산주의 사회가 현존할 때 자본주의 사회는 복지에 신경을 썼다. 자본주의는 원래 사람들의 복지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무한 경쟁을 지향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본주의가 공산주의 이론과 맞물리며 복지 사회를 주창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공산주의가 몰락하면서 신자유주의에 근거한 자본주의는 이제 어떻게든 사회복지를 줄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공공재는 점점 줄어들고, 예전에는 공공재로 생산되었던 것들이 하나하나 자본의 이득을 위한 도구로 바뀌고 있다. 사람의 목숨도 자본을 확장하는 도구로 만들어버린 지 오래다. 값비싼 의료 기구를 들인 병원들은 더 이상 병원을 공공재로 생각하지 않는다. 병원은 기업이다. 기업이 된 병원이 무엇을 추구하겠는가? 이익이다. 곳곳에 뻗힌 자본의 손길은 이렇게 사람들을 이타심을 발휘할 수 없는 영역으로 몰아세우고 있는 셈이다.

 

지은이는 다른 사람의 이해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은 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비인간적인 것이라고 단언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내세우는 이성은 냉혹한 결단을 가리킨다. 그들은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계산기를 두드린다. 사이코패스보다 더 냉혹한 이 이성주의자(?)들은 도구적 이성으로 이 세상을 바라본다. 도구적 이성은 생명을 생명으로 보지 않는다. 이익이 되는 생명만이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 돈이 있으면 환영받는 소비자가 되지만, 돈이 없으면 소비자로서 자격을 박탈당한다. 신자유주의는 냉혹한 이성을 발휘하는지는 모르지만, 모든 생명이 잘 사는 사회를 결코 지향하지 않는다. 비인간적인 걸 알면서도 우리는 왜 이기적인 사회논리를 바꾸지 못하는 것일까? 먹고 살려면 그 논리를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가 만든 사회논리는 자본이 풍족한 사람들의 이익을 중시한다. 산업자본주의가 왜 금융자본주의로 진전되었겠는가? 금융자본주의는 자본을 중심으로 굴러가는 사회를 가리킨다. 금융자본주의는 숫자에 민감하다. 산업자본주의를 지탱하던 노동자는 금융자본주의에 이르면 숫자로 기록된다. 언제든 쫓아낼 수 있는 무의미한 숫자들.

 

부탄에서 국민 총행복GNH 논의에 참여했던 칠레 경제학자 만프레드 막스 니프는 인간의 9대 기본 욕구가 포함된 모델을 제시했는데 여기에는 일반적인 물질적 욕구 외에 보호, 자유, (사회)참여, 애정에 대한 필요까지 포함된다. 만프레드 막스 니프의 모델은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한다.

* 경제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사람이 경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 발전은 사물이 아니라 사람에 관련된 것이다.

* 성장은 발전과 같지 않다. 발전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 생태계의 도움 없이는 어떤 경제도 존립할 수 없다.

* 경제는 생물권의 하위 시스템이다. 생물권은 경제보다 규모가 훨씬 더 크지만 유한한 시스템이라 무한 성장이 불가능하다.

* 어떤 경우에도 경제나 금전적 이익이 생명 존중보다 우선시될 수 없다. (1018)

 

경제적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보다 부탄처럼 경제적 후진국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선진국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만족할 줄을 모른다. 이기심은 더 큰 이기심으로 이어진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자들을 보라. 그들은 돈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돈이 있는 사람은 경쟁을 하는 파트너이고, 돈이 없는 사람은 쓰고 버리는 도구이다. 그들은 사람들을 돈이 있는 사람들과 돈이 없는 사람들로 나눈다. 아니면 그들은 세상을 이익이 되는 생명들과 이익이 안 되는 생명들로 나눈다. 자본이 많은 사람들은 도구적 이성을 사용하는 데 능하다. 도구적 이성은 생명을 도구로 본다. 자본 증식을 위해서라면 생명을 죽이는 것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자본 증식이지 생명 보호가 아니다. 움직이지 않는 자본은 의미가 없다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다.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들은 그래서 자본 증식에 집착한다.

 

자본으로 만들어진 땅에는 생명이 남아나지 않는다. 생명은 상호관계를 전제한다. 자기만 아는 이기심으로 가득 찬 사회에는 상호관계를 전제로 하는 생명이 있을 수 없다. 지은이는 알프레드 막스 니프가 제시한 행복의 원칙을 바탕으로 이타심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근원임을 새삼 강조한다. 인용문에 나타나는 대로, 행복의 중심에는 생명 존중이 있다. 생명은 도구가 아니다. 생명이 도구가 되는 순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생명이 생명에게 늑대가 되는 전쟁 상태가 되어버린다. 지은이는 세상을 바꾸려면 자신부터 달라져야 한다(1037)라고 강조한다. 산업화된 명상으로 자신이 달라질 리는 없다. 산업화된 명상은 진정한 를 모른다. 그것은 가짜 를 만들어 사람들을 무한 경쟁 사회에 적응하도록 돕는다. 에고를 내려놓고 무아(無我)에 이른 존재는 과감하게 이타심을 실천한다. 지은이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타심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타심이 없는 사회는 생명을 생명으로 인정하는 공존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 1000쪽이 넘는 방대한 이야기로 지은이는 생명이 생명과 더불어 사는 이타적인 사회의 가능성을 세밀하게 짚고 있는 것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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