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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 『만년의 집』 | 인문사상 2020-01-06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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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만년의 집

강상중 저/노수경 역
사계절 | 2019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한이 깊어지면 비로소 학문의 지혜가 생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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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 찾은 만년의 행복

- 강상중, 『만년의 집』

 

 

 

강상중은 재일 철학자이다. 1950년에 태어났으니, 한국에서 한창 전쟁이 일어날 때, 일본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고철을 모아 한국에 수출하는 일을 했다. 고철은 한국에 와서 사람들을 죽이는 총이 되었다. 누군가가 죽은 자리에서 누군가가 태어나는 건 자연의 법칙이다.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하면서도 우리는 언제나 자기 뜻과는 상관없는 삶을 산다. 운명이라고 말해도 좋다. 어딘가에서 날아온 돌을 맞았는데, 정작 누가 그 돌을 던졌는지 알지 못할 때, 우리는 운명의 힘을 느낀다. 도대체 그 돌은 누구 던졌는가? 던진 이를 모르는 그 돌은 왜 다른 사람이 아닌 하필 내 머리를 때렸는가? 질문을 하면 할수록 가슴이 먹먹해진다.

 

고철을 모아 생활을 하던 지은이의 부모 또한 이러지 않았을까? 고철을 모으지 않으면 낯선 일본 땅에서 먹고 살 도리가 없다. 고철을 모으는 게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알면서도 부모는 먹고 살기 위해 고철을 모은다. 강상중의 철학은 무엇보다 부모의 마음속에 새겨진 이 딜레마를 사유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는 강자의 논리를 따르지 않는다. 강자의 논리에 눌린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한다. 여기에는 사람을 걸어 다니는 식도로 생각한 어머니의 교훈이 스며들어 있다. 식도(食道)는 음식물이 내려가는 길이다. 음식물이 내려가지 않으면 모든 생명은 죽는다. 걸어 다니는 식도로서 인간은 결국 살기 위해서는 먹을 수밖에 없다는 생명의 진실을 담고 있는 셈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 중 「한국전쟁과 진달래」라는 글이 참으로 좋았다. 그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읽으며 식민지 치하를 산 김소월의 가혹한 인생을 사유한다. 식민지배하의 폭력으로 정신이 이상해진 아버지와 보낸 어린 시절, 고독한 소년기, 인습적인 혼인에 속박된 청년기, 시인의 인생은 어둡게 그늘져 있었다. 김소월이 도일하자마자, 1923년 관동대지진이 일어났다. 겨우 목숨만 부지해 귀국한 그는 혜성처럼 문단에 등장했지만, 그 뒤에 찾아온 인생의 시련에 자학하듯 술에 빠져 비운의 죽음을 맞이했다.”(136) 김소월에 시에 나타나는 이별의 슬픔은 무엇보다 이러한 아픈 영혼의 참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미래에 벌어질 이별을 현재 상황으로 끌어들였다. 그만큼 김소월에게 미래는 이별이 현실로 들이닥치는 시간을 의미했다.

 

일본이 아시아와의 전쟁으로 치닫던 즈음, 김소월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에 드러나는 서정성과 시인이 살았던 역사 사이의 이 엄청난 간극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하긴, 김소월이 자살을 하지 않고 해방을 맞았어도 그는 결코 좋은 세상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해방 후 조선은 남과 북이 이념으로 갈라져 서로를 헐뜯었고, 그것은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만약 김소월이 한국전쟁을 경험했다면 어떤 시를 썼을까? 한국전쟁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이별을 노래하는 시를 쓸 수 있었을까? 한국전쟁 이후 남한과 북한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다. 북한은 국가사회주의의 길을 걸었고, 남한은 지독한 자본주의의 길을 걸었다.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생각은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되었다고나 할까.

 

아버지와 어머니는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매일 고철 수집에 혈안이었다. 모은 고철은 조국의 친척들을 살상하는 탄약으로 그 모습을 바꿀 터였다. 두 분 모두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눈치채고 있었으리라. 낮에는 고철 수집에 땀을 흘리고 밤에는 친척들의 안부를 걱정하며 눈물을 흘리던 부모님. 이 처절한 세상의 조화에 어머니는 하늘을 우러르며 당신의 운명을 저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한 그해 여름, 나는 구마모토에서 태어났다. 살육의 해, 통곡과 비탄의 계절에 생명을 허락받았다는 사실에 나는 줄곧 집착해 왔다. (138)

 

이 대목을 읽으면서 학문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학문이란 개념도 아니고 관념도 아니다. 학문 하면 사람들은 개념을 생각하고, 관념을 생각하지만, 정작 학문은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역사적 일상에서 비롯된다. 현실과 상관없는 현학적인 지식 놀이를 학문의 이름으로 떠벌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김소월이 진달래꽃」을 쓰면서 느꼈을 그 한()의 정서를 알 까닭이 없다. 쉬이 풀어지지 않는 사람들을 앞에 놓고 이런저런 개념들을 늘어놓아 봤자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차라리 그들의 한을 풀기 위해 굿을 하는 무당들이 개념을 늘어놓는 학자들보다 더욱 더 인간다워 보인다.

 

1950년에 태어난 한 학자는 이제 70을 넘긴 노인이 되었다. 그 나이에 이른 사람에게 진달래꽃에 서린 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만년의 집이라는 책 제목은 어찌 보면 살아서는 사라지지 않을 이 한을 에둘러 드러내는 말인지도 모른다. 만년의 집이란 영원의 집이 아닌가. 「영원한 행복」이라는 글에 나오는 대로, 지은이는 복수초처럼 봄의 덧없는 한 때를 열심히 살고 삼림을 살리는 땅이 되고 싶어 한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라고 이 복수초와 다를까? 우리 모두는 덧없는 한때를 살고 있고, 그 한때가 지나면 땅속으로 들어가 수많은 생명들을 살리는 터전이 되어야 한다.

 

만년의 집이 영원의 집이라는 건, 그러므로 삶과 죽음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덧없음 속에 영원이 있다. 영원 속에 덧없음이 있다고 해도 좋다. 이것을 운명론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운명론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이야기하지만, 만년의 집은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어떻게든 뒤바꾸려는 또 다른 생명들의 노력을 그 속에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수초는 덧없는 한때를 보냈기에 역시 덧없는 한때를 보내는 생명들을 보듬을 수 있다. 세상과 딱 좋은 거리를 두고 고원에서 사는 지은이의 일상은 바로 이러한 복수초의 여정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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