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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진, 상처가 더 꽃이다 | 시집 읽기 2020-04-10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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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알고(考)

유안진 저
천년의시작 | 2009년 07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상처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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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어린 매화나무는 꽃 피느라 한창이고

  사백 년 고목은 꽃 지느라 한창인데

  구경꾼들 고목에 더 몰려섰다

  둥치도 가지도 꺾이고 구부러지고 휘어졌다

  갈라지고 뒤틀리고 터지고 또 튀어나왔다

  진물은 얼마나 오래 고여 흐르다가 말라붙었는지

  주먹만큼 굵다란 혹이며 패인 구멍들이 험상궂다

  거무죽죽한 혹도 구멍도 모양 굵기 깊이 빛깔이 다르다

  새 진물이 번지는가 개미들 바삐 오르내려도

  의연하고 의젓하다

  사군자 중 으뜸답다

  꽃구경이 아니라 상처 구경이다

  상처 깊은 이들에게는 훈장(勳章)으로 보이는가

  상처 도지는 이들에게는 부적(符籍)으로 보이는가

  백 년 못 된 사람이 매화 사백 년의 상처를 헤아리랴마는

  감탄하고 쓸어 보고 어루만지기도 한다

  만졌던 손에서 향기까지 맡아 본다

  진동하겠지 상처의 향기

  상처야말로 더 꽃인 것을.

  - 유안진, 「상처가 더 꽃이다」

 

 

어린 매화나무가 있고, 사백 년을 산 고목이 있다. 어린 매화나무는 한창 꽃을 피우고 있고, 사백 년 고목은 한창 꽃을 떨어뜨리고 있다. 그런데 구경꾼들은 어린 매화나무가 아니라 사백 년 고목에 더 몰려서 있다. 한창 피어나는 생명은 저만치 두고, 죽음을 향해 가는 고목에 사람들은 왜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일까? 둥치도 꺾인 지 오래고 가지도 구부러지고 휘어졌다. 몸통은 갈라지고 뒤틀어져 여기저기가 터지고 또 튀어나왔다. 어린 매화나무가 피운 매화와는 견주기 힘든 이 고목의 어떤 점이 사람들을 매혹한 것일까? 고목이 살아온 연륜일까? 나이 든 고목의 삶을 알고 싶어 사람들은 이리도 죽음과 가까운 고목 앞으로 몰려드는 것일까?

 

오랫동안 고여 있던 진물은 말라붙어 주먹만큼 굵다란 혹이며 패인 구멍들을 만들었다. 어린 매화나무가 자랑하듯 내보이는 매끈한 몸통에 비하면 참으로 험상궂기만 하다. 거무죽죽한 혹에 모양과 굵기와 깊이와 빛깔이 다 다른 구멍 또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사람으로 따지면 어린 매화나무는 한창 청춘의 꽃을 피울 나이이고, 사백 년을 산 고목은 죽을 날을 받아놓은 노인과 다르지 않다. 청춘의 눈에 노인은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시인은 청춘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고목의 모습을 고목의 시선으로 보려고 한다. 고목의 시선이라고? 고목의 몸을 온통 뒤덮고 있는 상처에 그 시선은 집중한다.

 

아직도 흘러나올 진물이 남아 있는지, 개미들이 바삐 고목을 오르내린다. 그래도 고목은 의연하고 의젓하다”. 시인은 고목이 내보이는 이 모습을 사군자 중 으뜸답다는 시구로 표현하고 있다. 사군자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가리킨다. 옛 선비들의 정신세계를 상징하는 사군자 중에서도 으뜸이 바로 매화이다. 매화는 늦겨울(초봄)에 꽃을 피운다. 다른 꽃들은 피어날 엄두도 내지 않는 시기에 꽃을 피우는 매화를 보며 옛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조를 지키는 존재를 떠올렸다. 여전히 추운 시기에 꽃을 피우는 것이니 매화는 얼마나 힘이 들까. 매화는 매서운 추위와 싸우며 꽃을 피운다. 상처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사백 년 고목은 사백 년 동안 겨울 추위와 싸우면서 아름다운 꽃을 피워냈다. 찬란한 꽃을 피우는 만큼이나 엄청난 상처를 온몸에 새겼다. 시인은 이런 매화 고목을 구경하는 일이 꽃구경이 아니라 상처 구경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어린 매화나무는 화려한 꽃을 피워 사람들을 유혹하지만, 사백 년을 산 고목은 온몸에 난 수많은 상처로 사람들을 이끌어 들인다. 상처 하나 없이 이 풍진 삶을 살 수 있을까? 상처 깊은 이들은 그래서 고목의 상처를 훈장(勳章)”으로 보고, 상처 도지는 이들은 그래서 고목의 상처를 부적(符籍)”으로 본다. 훈장과 부적은 상처의 이면이다. 상처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존재만이 훈장과 부적을 온몸으로 끌어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길어야 백 년을 사는 사람들이 사백 년을 넘게 산 고목의 상처를 온전히 헤아릴 수는 없으리라. 그래도 상처 입은 사람들은 온몸에 상처를 뒤덮은 고목을 쓸어보고 어루만진다. 고목을 만진 손에 향기라도 옳아온 듯 손 향기까지 맡아본다. 사백 년을 산 몸에는 어떤 향기가 풍겨 나올까? 시인은 상처의 향기가 진동할 것이라고 말한다. 상처의 향기는 말 그대로 고목이 살아온 삶의 향기를 의미할 것이다. 고목이 산 삶의 향기는 온몸에 새겨진 상처에서 뻗어 나온다. 상처가 곧 삶의 향기를 풍기는 기원이 되는 것이니, 상처야말로 찬란한 꽃보다 더 고목의 삶을 대변하는 것이 된다. 옹이 진 상처에서 화려한 꽃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삶을 발견하는 시인의 눈이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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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를 | 추천 4        
김광균, 「추일서정」 | 시집 읽기 2020-02-27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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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김광균 시선

김광균 저/김유중 편
지식을만드는지식(지만지) | 2012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도시인의 고독을 감각적 이미지로 표현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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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즈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 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 나무의 근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세로팡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쪽에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어 간다

  - 김광균, 「추일서정」

 

 

김광균은 다양한 이미지를 통해 도시 문명을 노래한 시인이다. 도시 문명을 통해 사람들은 풍요로운 삶을 이룩했지만, 그 결과로 인간관계가 단절되는 불운을 맞았다. 도시 문명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다. 예로부터 내려온 공동체의 도덕으로부터 벗어나 그들은 개인이 중심에 서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려고 한다. 당연히 사물을 인식하는 과정에도 사물을 바라보는 개인의 눈을 중시한다. 시인의 독창적인 이미지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모더니즘 시학은 도시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현대시를 대표하는 특성으로 떠오른다. 김광균의 시는 이러한 모더니즘 미학을 바탕으로 도시인의 근원적인 외로움을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 시는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는 아주 낯선 이미지로 시작한다. 시인은 낙엽이라는 시어로 가을날의 쓸쓸함을 표현한다. 쓸쓸한 가을을 표현하는 낙엽이 왜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와 연결되는 것일까? 망명정부가 낸 지폐는 쓸모가 없다. 근거가 없는 지폐이기 때문이다. 자기 근거를 잃은 이미지는 포화(砲火)에 이즈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로 이어진다. 뿌연 연기가 맑은 가을 하늘을 뒤덮는다. 포화는 전쟁 상황을 가리킬 테니,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은 지금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제 이미지를 잃어버렸다. 그래서일까, 시인은 길을 구겨진 넥타이로 표현하고, 그마저도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는 상황을 묘사한다.

 

저 멀리서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 뿜으며급행차가 달려온다. 지금까지 살펴온 대로, 김광균의 시에는 시각적인 이미지가 넘쳐난다. 시인은 이미지로 상황을 객관적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사물(혹은 상황) 밖에서 객관적으로 사물을 보려고 하는 것이다. 요컨대 김광균은 도시 문명의 외로움에 빠진 화자의 상황을 이미지로 드러낸다. 저 멀리서 달려오는 급행열차를 바라보던 시선은 이내 포플라 나무의 근골(筋骨)로 이어지고, 그것은 다시 흰 이빨을 드러낸 공장의 굴뚝으로 이어진다. ‘근골은 잎이 떨어져 외로운 포플라 나무의 상황을 나타내고, ‘흰 이빨은 황량한 공장 건물을 표현하는 이미지로 제시된다. 잎이 떨어진 가을날의 쓸쓸한 풍경을 시인은 주변 사물들을 묘사함으로써 다채롭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공장을 감싸고 있는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은 바람에 나부끼며 황량한 풍경을 더욱 강화한다. 하늘에는 세로판 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떠서 쓸쓸함을 더욱 부추긴다. 구슬픈 풀벌레 소리까지 들려오는 상황에서 시인은 호올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어허공에 돌팔매 하나를 띄운다. 시인의 마음이 쓸쓸한 것일까? 아니면 주변 환경이 쓸쓸한 것일까? 모든 사람이 가을을 쓸쓸함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테니, 핵심은 가을날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에서 찾아야 한다. 시 제목에 드러나는 대로, 시인은 가을날의 서정을 쓸쓸함과 외로움의 정서로 표현하고 있다. 생명의 근거를 서서히 잃어가는 계절로 가을을 인식하고 있다고나 할까.

 

허공으로 던진 돌 하나는 고독한 반원을 그으며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쪽으로 사라진다. 시인만 고독한 게 아니라 돌마저도 고독하다. 외로운 돌은 고독한 반원을 그리고 저쪽으로 사라진다. 무생물인 돌마저도 외로운데, 살아 있는 풀벌레가 어떻게 외롭지 않을 수 있을까? 세로판 지로 붉게 물든 저녁 하늘 또한 외로워 보이는 건 마찬가지다. 시인은 사물들이 내보이는 외로움을 가슴 깊이 받아들인다. “호올로 황량한 생각을 차마 버리지 못한다. 시인이 이미지로 묘사하는 외로움이 잘 느껴지는가? 그러면 이 시를 잘 읽은 것이다. 김광균은 외롭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 외로움을 이미지로 표현한다. 모더니즘 시의 특성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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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 시집 읽기 2020-02-17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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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안도현 저
현대문학북스 | 2001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피워내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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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속을 보여주지 않고 달아오르는 석탄난로

  바깥에는 소리 없이 내리는 눈

 

  철길 위의 기관차는 어깨를 들썩이며

  철없이 철없이도 운다

  사랑한다고 말해야 사랑하는 거니?

  울어야 네 슬픔으로 꼬인 내장 보여줄 수 있다는 거니?

 

  때로 아무것도 아닌 것 때문에

  단 한 번 목숨을 걸 때가 있는 거다

 

  침묵 속에도 뜨거운 혓바닥이 있고

  저 내리는 헛것 같은 눈, 아무것도 아닌 저것도 눈송이 하나 하나는

  제각기 상처 덩어리다, 야물게 움켜쥔 주먹이거나

 

  문득

  역 대합실을 와락 껴안아 핥는 석탄난로

  기관차 지나간 철길 위에 뛰어내려 치직치직 녹는 눈

  - 안도현,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시인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했지만, 시인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노래할 리는 만무하다. 아무것도 아닌 것은 그 속에 섣불리 다룰 수 없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의미가 너무나 커서 시인은 그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지 모른다. 수사법으로 따지면 역설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시인은 참으로 소중한 무언가를 이야기한다. 시인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반복할수록 아무것도 아닌 것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그 무언가로 승화된다. “때로 아무것도 아닌 것 때문에/ 단 한 번 목숨을 걸 때가 있는 거다라는 구절을 보라. 아무것도 아닌 것에 왜 시인은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걸려고 하는 것일까? 아무것도 아닌 것이 없으면 그는 결코 시적인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합실 석탄난로는 속을 보여주지 않고도 은근히 달아오른다. 대합실 바깥에는 소리 없이 눈이 내린다. 석탄난로가 달아오르는 대합실에서 시인은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을 바라본다. 철길 위로 기관차가 철없이 울면서 다가온다. 침묵해야 할 때는 침묵해야 하는 법이다. 시인은 철없이 우는 기관차에서 침묵을 깨는 어떤 소음을 듣는다. “사랑한다고 말해야 사랑하는 거니?”라는 시구에 담긴 의미를 생각해 보라. 이 질문에는 부정성이 내포되어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듣지) 않고도 연인은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울면서 슬픔을 표현하지 않아도 눈빛에 담긴 슬픔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침묵이란 이런 것이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말하는 신비한 능력.

 

시인은 침묵 속에도 뜨거운 혓바닥이 있고라고 말한다. 침묵은 그 속에 뜨거운 말을 품고 있다. 가슴 속에 들끓는 말을 시인은 왜 침묵으로 갈무리하려고 하는 것일까? 언어로 표현되는 순간 뜨거운 혓바닥은 차갑게 얼어버리기 때문이다. 소리 없이 내리는 저 헛것 같은 눈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라는 말로 눈송이 하나하나에 담긴 상처 덩어리를 담아낼 수 있을까? 뜨거운 혓바닥을 언어에 담는 순간 사물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의 감각은 사라지고 추상화된 만이 우리 앞에 나타난다. 묘하지 않은가. 사물은 왜 언어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일까? 뜨거운 사물은 왜 언어만 만나면 차가운 대상으로 변해버리는 것일까?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 저 헛것 같은 눈송이 하나하나를 시인은 제각기 상처 덩어리를 품고 있거나, 야물게 주먹을 움켜쥐고 있는 사물로 그려낸다. 상처 덩어리면서 동시에 움켜쥔 주먹이기도 한 저 눈송이는 왜 지금 이 순간 땅을 향해 천천히 내려오고 있는 것일까? 눈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침묵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눈을 통해 시인은 침묵 속에 담겨 있는 뜨거운 혓바닥을 상상한다. 저 작은 눈송이 하나에도 뜨거운 혓바닥이 들어 있다. 눈송이가 전하는 뜨거운 말을 들으려면 우리 또한 몸속에 품은 뜨거운 혓바닥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침묵은 침묵으로 맞아야 한다는 얘기다. 침묵으로 눈송이들이 풀어내는 상처 덩어리를 하나하나 보듬어 안아야 한다.

 

시인은 문득 석탄난로가 온몸으로 대합실을 와락 껴안으며 핥는 느낌에 빠진다. 달아오르는 몸으로 석탄난로는 대합실을 끌어안는다. 제 몸으로 자기보다 더 큰 세상을 달구는 것이라고나 할까. 기관차가 지나간 철길 위로는 거침없이 눈송이들이 뛰어내려 치직치직 녹아내린다. 석탄난로는 온몸으로 대합실을 데우고, 눈송이들은 뜨거워진 철길을 온몸으로 식힌다.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제 길을 가는 사물들을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말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자꾸만 무언가에 대한 욕망을 부추긴다. 무언가가 되는 일은 무언가를 지배하는 일과 같다. 무언가를 지배하기 위해 무언가가 되려는 이 마음의 맞은편에 시인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맞세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은 욕망의 저편에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욕망하는 사람은 없다. 무언가를 욕망하는 사람은 늘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욕망에 불타고 있다. 무언가에 대한 욕망이 다른 무언가에 대한 욕망을 부른다.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 사람은 더욱 더 그 말에 집착을 한다. 하루라도 그 말을 듣지 못하면 애가 단다. 왜냐고? ()는 사랑이라는 언어로 상대를 지배하려는 욕망에 흠뻑 빠져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닌 말에 집착하여 그 너머에 있는 사랑의 진실을 그()는 놓쳐버린다. 사랑에 목말라 하면서도 정작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목숨을 걸고 그 사랑 속으로 뛰어들지 못한다. 온몸으로 대합실을 데우는 석탄난로와 온몸으로 뜨거운 철길 위에 떨어지는 눈송이들의 뜨거운 삶이 느껴지는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기에 그들은 목숨을 걸고 저편으로 가는 힘을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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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무, 데스밸리에서 죽다 | 시집 읽기 2020-02-09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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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데스밸리에서 죽다

이재무 저
천년의시작 | 202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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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한 인생에서 길어올린 생의 새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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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랑

  

  밤사이 비가 다녀가셨다

  우리가 잠든 사이 도둑처럼 오셔서 산과 들을 깨끗이 쓸고 닦고 가셨구나

 

  나는 이렇게 몰래 다녀간 것들이 좋다

 

  몰래 온 비

  몰래 온 눈

  몰래 온 사랑

 

  몰래 와서는 존재의 흔적을 남기고 가는 것들

 

  몰래 들어와 내 안에서 기숙하는 사랑아!

 

  올 때처럼 갈 때에도 몰래 가거라

  - 이재무, 「몰래 온 사랑」

       

밤사이 내린 비로 산과 들은 오랜만에 목욕을 했다. 말끔하게 제 빛깔을 드러낸 산과 들을 보며 시인은 우리가 잠든 사이 도둑처럼다녀간 사랑을 떠올린다. 몰래 온 비는 지상에 흔적을 남기고 어딘가로 가버렸다. 미처 알아채지도 못한 채 산과 들을 적시고 가버린 사랑이라니. “나는 이렇게 몰래 다녀간 것들이 좋다라고 시인은 쓰고 있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 몰래 다녀간 것들이 베푼 이 환대를 시인은 감격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몰래 오는 비가 있고, 몰래 오는 눈이 있고, 몰래 오는 사랑이 있다. 비가 그쳐도 비가 내린 흔적은 남아 있다. 눈이 그쳐도 눈이 내린 흔적이 남아 있다. 마찬가지로 사랑이 떠나간 자리에도 사랑의 흔적은 남아 있다. 이 흔적으로 우리는 비를 그리워하고, 눈을 그리워하고, 사랑을 그리워한다.

 

몰래 와서는 존재의 흔적을 남기고 훌쩍 어딘가로 떠나버린 것들을 생각하다가 시인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차마 잊을 수 없어 몸에 새긴 것들이 바로 흔적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걷던 길을 홀로 걸으면 가슴 저 깊은 곳에서 그리움이 밀려온다. 그리워서 그 길을 걸은 게 아니다. 그 길을 걷다 보니 그리움이 밀려온 것이다. 분명 그 사람을 잊은 줄 알았는데, 이 길을 걸으면 잊었던 그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 머릿속을 채운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 본능과도 같이 무심결에 떠오른다. 배고픔의 본능이야 밥을 먹으면 이내 사라지지만, 그리움은 밥을 먹을수록 더욱 더 깊어진다. 그리움이 커질수록 존재의 흔적이 커진다. 그 흔적을 지우려면 그리움도 지워야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움은 문득 문득 떠올라 우리를 당황스럽게 한다.

 

시인은 이 상황을 몰래 들어와 내 안에서 기숙하는 사랑아!”라는 시구로 표현하고 있다.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몰래 들어온 이 사랑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언제 들어 온지 모르는 이 사랑을 시인은 그 사랑이 나간 다음에야 알아챈다. 몰래 온 비를 비가 내린 흔적으로 알 수 있듯, 몰래 온 사랑은 사랑이 남긴 흔적으로 알 수 있다. 알지도 못한 사이에 왔다가 가버린 사랑은 어떤 흔적을 남기게 될까? 시인은 산과 들을 깨끗하게 쓸고 닦고 간 비를 통해 몰래 왔다가 간 사랑의 흔적을 상상하고 있다. 혼자 사는 방에 밥상을 차리고 사라진 우렁각시/우렁총각이 생각나지 않는가. 그들이 어디에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밥상을 차려놓고 갔다는 사실에 있다. 시인은 바로 이 흔적을 통해 몰래 온 사랑을 가슴 깊이 느끼는 것이다.

 

몰래 온 사랑은 갈 때에도 몰래 가야 한다. 우렁각시가 현실에 나타나는 순간, 사랑은 이내 현실이 되어버린다. 사랑이 현실이 되면, 욕망 또한 현실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무언가를 원하기 시작한다는 말이다. 하나가 이루어지면 다른 하나를 원한다. 다른 하나가 이루어지면 또 다른 하나를 원한다. 이것이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이다. 사랑만큼 지독한 욕망이 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비는 세상을 욕망하지 않는다. 눈 또한 세상을 욕망하지 않는다. 사랑도 과연 이럴까? 사랑은 세상을 욕망한다.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을 욕망한다. 이 욕망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 사랑은 이내 집착으로 변한다. 무언가를 향한 욕망이 금기가 되어 사랑에 빠진 사람을 얽매기 시작한다.

 

몰래 온 사랑은 이리 보면 사랑이라는 지독한 욕망과 거리를 둔 사랑임이 분명하다. 몰래 들어온 사랑이므로 사랑에 빠진 사람은 자신이 사랑에 빠진 것을 모른다. 사랑에 빠진 줄 모르고 사랑하는 상황이 참으로 재미나지 않는가. 밤새 내린 비가 산과 들을 깨끗이 씻고, 밤새 내린 눈이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듯, 몰래 온 사랑은 욕망에 물든 사람들의 마음에 가만히 닿았다가 이내 사라진다. 그 사랑이 온 것을 알 수도 없거니와, 설사 안다고 해도 그 사랑을 붙잡을 수는 없다. 사랑이 다녀간 흔적으로 하여 시인은 가슴이 뭉클해오는 것을 느낀다. 가슴을 뒤흔드는 사랑의 마력을 느낄 수는 없지만, 가슴을 잔잔하게 맴도는 사랑의 여운만은 느낄 수 있다. 세상을 겪어야 할 젊은이의 사랑이 아니라, 세상을 이미 겪고 편안하게 의자에 앉은 황혼녘의 사랑을 시인은 몰래 온 사랑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2. 인생

       

오늘처럼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여름 저녁은 양푼에 찌개용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와 네모나게 썬 두부를 넣고 끓인 찌개를, 갓 지은 밥과 포장 김과 함께 먹고 싶다. 반주도 곁들이면 더욱 좋으리. 얼큰한 국물을 한 숟갈, 두 숟갈 뜨다 보면 이마에 송골송골 땀은 돋아나리라. 싱겁게 살아온 하루를 맵짠 맛으로 달래다 보면 울컥, 설움이 자욱하게 솟기도 하리. 밖은 허공에 못 박듯 사선을 그으며 줄기차게 비가 내리고 열린 창으로 빗소리가 들어와 찌개 속으로 첨벙 뛰어들기도 하리. 안부가 그리운, 먼 곳의 사람아, 얼도 있고 큰도 있는 찌개가 아니라면 우리 어찌 저 매캐한 세월을 건너갈 수 있겠는가. 오늘 저녁은 비가 와서 어둠이 근친처럼 살갑고 먼 곳의 네 얼굴조차 가차이에서 환하다.

- 이재무, 「김치찌개」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 시인은 김치찌개를 먹는다. 양푼에 가득 담긴 김치찌개를 먹으며 더위에 지친 몸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음식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생명은 먹어야 살 수 있다. 먹는 일이 곧 생명이 사는 일이다. 반주를 곁들여 얼큰한 국물을 먹다 보면 이마에서는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몸이 살아 있다는 표시다. 한여름에 비까지 내렸으니 눅눅한 날씨가 아닌가. 온몸에 달라붙은 습기를 뜨거운 찌개 국물로 날려 버리면, 오랜만에 매끄러워진 몸을 느낄 수 있다. 음식이란 이런 것이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몸이 달라지고 마음이 달라진다. 다른 생명을 먹어야 비로소 생명을 유지하는 생명의 본성 때문인 걸까?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고 사람들은 묻지만, 어쨌든 사람은 먹어야 산다는 말 하나는 거부할 수 없는 진실임이 분명하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느낄 새도 없이 맵찬 김치찌개를 먹으며 시인은 싱겁게 살아온 하루를 달랜다. 음식을 먹을 때만큼 평화로운 때가 어디에 있을까? 다른 생각을 하며 음식을 먹으면, 음식은 결코 몸으로 가지 않는다. 빨리 먹으면 체하기 일쑤이고, 억지로 밥을 먹어도 속에 무언가 걸린 듯 그득한 느낌이 든다. 인생에서 먹는 재미만한 것도 별로 없는데, 지금 사람들은 마치 일을 하기 위해 음식을 먹는 것도 같다. 그래서일 것이다. 시인은 김치찌개를 먹다가 울컥, 설움이 자욱하게 솟기도 하리.”라고 이야기한다. 김치찌개 하나로도 이토록 큰 위안을 얻을 수 있는데, 사람들은 이런 시간마저도 외면한 채 일에 매진한다. 성공을 하면 더 맛있는 김치찌개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일까?

 

밖에서는 줄기차게 비가 내린다. 열린 창으로 들어온 빗소리가 찌개 속으로 첨벙 뛰어든다. 빗소리가 가미된 김치찌개라, 참으로 감미롭지 않은가. 어디에 가서 이런 김치찌개를 먹을까? 시인은 비 오는 날 그저 김치찌개만 먹는 게 아니다. “안부가 그리운, 먼 곳의 사람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얼도 있고 큰도 있는 찌개를 통해 저 매캐한 세월을 건너가기도 한다. 한마디로 그에게 김치찌개는 인생을 돌이키게도 하고, 다른 인생을 떠올리게도 하는 고마운 음식으로 나타난다. 김치찌개 하나에 드리워진 인생의 맛이 느껴지지 않는가. 먹는 일이 사는 일이라는 말에 담긴 진의를 시인은 김치찌개의 맵짠 맛을 통해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인생이 김치찌개만 같다면 정말로 살 만하지 않겠는가.

 

하긴, 김치찌개를 먹는 마음으로 인생을 살면 그뿐이다. 김치찌개가 어디 값비싼 음식이던가. 가장 서민적인 음식을 먹으며 시인은 비가 오는 날의 정취를 느끼고, 지금은 볼 수 없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매캐한 연기로 남아 있는 지난 세월을 들여다본다. 빗소리까지 첨가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김치찌개를 먹다 보니 어둠이 근친처럼 살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둠과 식구가 되어서 그런 것일까? “먼 곳의 네 얼굴조차 가차이에서 환하다.”라고 시인은 쓰고 있다. 이 정도면 김치찌개의 낭만이라고 이름 지을 만하다. 김치찌개 하나로 먼 곳에 있는 네 얼굴을 환한 세상으로 데려오는 이 낭만 시학이 이재무 시를 관류하는 근원인지도 모른다.

 

낭만이란 현실에서 현실 너머를 보는 일이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 시인은 김치찌개를 먹으며 안부가 그리운 먼 곳의 사람을 떠올린다.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이곳으로 불러냄으로써 시인은 김치찌개를 먹는 장소를 그리움이 흘러넘치는 시적 공간으로 만든다. 어둠에 물든 칙칙한 세상은 김치찌개의 낭만과 만나 멀리 있는 네 얼굴조차 환한 세상으로 돌변한다. 사물 하나로 피워내는 낭만치고는 참으로 그럴싸하지 않은가. 낭만이 유물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 시인은 김치찌개의 맵짠 감각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입안에 침을 고이게 하는 그 감각을 온몸으로 느끼며 우리는 누군가와 먹던 김치찌개를 떠올린다. 이것이 인생이고, 동시에 이것이 이재무가 추구한 낭만의 시이다. 감각은 무엇보다 그런 낭만과 더불어 더욱 깊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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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종 시 두 편 | 시집 읽기 2020-01-08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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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날랜 사랑

고재종 저
창비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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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만으로도 이루어지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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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랑

 

     

  얼음 풀린 냇가

  세찬 여울물 차고 오르는

  은피라미떼 보아라

  산란기 맞아

  얼마나 좋으면

  혼인색으로 몸단장까지 하고서

  좀더 맑고 푸른 상류로

  발딱발딱 배 뒤집어 차고 오르는

  저 날씬한 은백의 유탄에

  봄햇살 튀는구나

 

  오호, 흐린 세월의 늪 헤쳐

  깨끗한 사랑 하나 닦아 세울

  날랜 연인아 연인들아

  - 고재종, 「날랜 사랑」

 

 

따뜻한 바람에 몸이 풀린 냇물이 세차게 흐르며 여울을 짓는다. 눈과 얼음이 녹아 무리지어 흐르는 저 거센 물살을 은피라미떼가 차고 오른다. 은피라미떼는 산란기를 맞아 바다에서 민물로 올라온 은어를 가리킨다. 자기와 같은 생명을 퍼뜨리는 게 얼마나 좋은지 은어는 혼인색으로 몸단장까지 했다. 산란기가 되면 은어는 아가미 아래로 붉은색이 선명해진다. 시집 갈 때 신부 얼굴에 찍는 연지 곤지가 붉은색이 아닌가. 한 조각 붉은 마음으로 백년 서방을 맞는 여인의 마음을 시인은 산란기가 된 연어의 몸에서 보기라도 한 것일까? 혼인이란 성()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일이다. 산란기를 맞아 세찬 여울물을 차고 오르는 은어 또한 다음 생명을 잉태하는 숭고한 일을 지금 준비하고 있지 않은가.

 

혼인색으로 단장한 은어들은 좀 더 맑고 푸른 상류로 가기 위해 거친 물살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물살은 물살대로 자기 갈 길을 가고, 은어는 은어대로 발딱발딱 배를 뒤집어 흐르는 물살을 차고 오른다. 은빛 은어와 은빛 물살이 맞물리며 퍼뜨리는 아름다운 이미지를 떠올려 보라. 시인은 은빛 은어가 은빛 물살과 만나 벌이는 이 이미지를 저 날씬한 은백의 유탄이라고 표현한다. 은어가 물결을 차고 오를 때마다 사방으로 물결이 튄다. 은빛 장관을 보는 눈만 즐거운 게 아니라, 물결이 튀는 소리를 듣는 귀 또한 즐겁다. 거기에 봄 햇발이 질 수 없다는 듯 찬란한 은빛을 발한다. 은어 몸에 닿은 햇발이 사방으로 튀며, 거세게 몸을 치솟는 은어에 놀라 유탄처럼 흩어지는 물살을 휘감는다.

 

시인은 세찬 여울물을 거슬러 오르는 은어들을 보며 모든 생명 속에 본능처럼 새겨진 거룩한 사랑을 본다. 거룩한 사랑을 실천하는 존재는 자기 이익에 연연하지 않는다. 자기 이익에 연연한다면 은어가 굳이 목숨을 걸고 바다에서 민물로 올라올 리가 없다. 연어는 민물로 올라가는 길이 죽음의 장소라는 것을 알면서도 주저 없이 민물로 가는 여행을 시작한다. “흐린 세월의 늪을 헤치고 태어난 곳으로 거슬러 오르는 이 은어들의 여행에 시인은 깨끗한 사랑이라는 시구를 붙인다. 깨끗한 사랑은 새로운 생명을 낳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상황과 이어져 있다. 은어는 산란을 하자마자 곧바로 죽는다. 산란이 곧 죽음으로 이어지는 이 운명을 시인은 죽음을 넘어서는 사랑의 진경으로 생각한다.

 

사랑은 언제나 그 속에 죽음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죽음을 육체의 죽음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선사(禪師)들의 깨달음 또한 자아를 죽인결과로 이루어지지 않는가. 깨끗한 사랑 하나를 닦아 세우려면 자기 이익에 매몰된 자아를 죽이는혹독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시인이 사랑이라는 말에 붙인 깨끗한이라는 수식어는 무엇보다 자기를 중심에 세우는 이 마음을 내려놓는 일과 관련이 있다. 자기를 중심에 세운 존재는 늘 사랑의 가치를 따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자기에게 돌아올 이익이 없으면 결코 깨끗한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려고 한다.

 

시인은 깨끗한 사랑을 닦아 세우기 위해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을 날랜 연인아 연인들아라고 부르고 있다. 시 제목인 날랜 사랑과 이어진 이 시구들에는 좀 더 맑고 푸른 상류로 올라가 깨끗한 사랑을 이루려는 연어의 꿈이 스며들어 있다. 꿈을 꾸지 않으면 연어의 몸은 결코 혼인색으로 바뀌지 않는다. 맑고 푸른 물가로 가는 위험한 비행도 실행할 리 없다. 연어는 민물로 거슬러 오르는 험난한 여행을 펼침으로써 다음 세대들이 꿈꿀 자리를 아름드리 마련해준다. 생명의 꿈은 언제나 다음 생명이 꾸는 꿈으로 이어지는 법이다. 생명이란 서로서로가 이어진 거대한 그물망을 형성하고 있지 않은가. 날랜 연인들은 바로 이 생명의 그물망을 잇기 위해 맑고 푸른 상류로 끊임없이 올라간다. 자신을 내버린 자리에서 피어나는 날랜 사랑이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2. 사랑

       

  간밤 뒤란에서

  뚝 뚜욱 대 부러지는 소리 나더니

  오늘 새벽, 큰 눈 얹혀

  팽팽히 휘어진 참대 참대 참대숲 본다

  그중 한그루 톡, 건들며 참새 한 마리 치솟자

  일순 푸른 대 패앵, 튕겨져오르며 눈 털어낸 뒤

  그 우듬지 바르르바르르 떨리는

  저 창공의 깊숙한 적막이여

 

  사랑엔, 눈빛 한번의 부딪침으로도

  만리장성 쌓는 경우가 종종 있다

  - 고재종, 「직관」

 

 

큰 눈이라도 내리는지, 간밤 뒤란에서 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올곧은 게 대나무라고 하지만, 바람이 세차게 불거나, 큰 눈이 내리면 대나무는 한쪽으로 휘어지거나 아예 부러지기도 한다. 이것은 대나무의 자연이다. 곧은 것이 자연이라면, 휘거나 부러지는 것 또한 대나무의 자연이다. 사람들은 곧고 곧은 대나무에 반하는지 모르지만, 휘거나 부러지는 특성 없이 어떻게 곧고 곧은 특성이 나올 수 있을까. 큰 눈을 맞아 팽팽히 휘어진 참대숲을 시인은 오늘 아침 기꺼운 마음으로 본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대나무에 얹힌 큰 눈이 아래로 쏟아져 내릴 형국이다. 말 그대로 아슬아슬한 균형이라고나 할까. 대나무는 끝내 견디려 하고, 큰 눈은 기어이 대나무를 이겨내려고 한다.

 

참새 한 마리가 대나무 한 그루를 톡, 건들며 하늘로 치솟는다. 일순 푸른 대가 패앵, 하늘로 튕겨져 오르며 온몸에 쌓인 눈을 털어낸다. 우듬지가 바르르 떨린다. 참새 한 마리가 아니라면 대나무는 그 모습 그대로 큰 눈을 견뎠을 것이다. 견디고 견디다 못 견딜 것 같으면 스스로 부러져 내렸을지도 모른다. 참새가 대나무를 도와주기 위해 일부러 하늘로 치솟지는 않았으리라. 참새는 본능처럼 하늘로 치솟으며 대나무 한 그루를 건드렸을 뿐이다. 큰 눈에 눌려 있던 대나무는 바로 그 순간을 기회 삼아 온몸을 짓누르던 큰 눈을 털어내고 우듬지를 바르르 떤다. 우듬지만 떨었을까. 우듬지에서 내려온 떨림이 뿌리까지 이르러, 한겨울을 힘겹게 견디던 뿌리 또한 부르르 몸을 떨었을 것이다. 참새 한 마리의 몸짓이 대나무 한 그루를, 나아가 참대숲을 온통 울리는 이 기막힌 현상을 보라.

 

시인은 참대숲에서 펼쳐지는 이 기막힌 순간을 저 창공의 깊숙한 적막이여라고 표현하고 있다. 바르르 떨리는 우듬지 위로 깊디깊은 창공이 펼쳐져 있다. 창공(蒼空)은 말 그대로 푸른 하늘을 의미한다. 푸르고 푸르러 깊이를 모르는 적막한 하늘 속으로 대나무 푸른 소리가 흘러든다. 대나무는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인 채로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땅 속 깊이 뿌리를 박은 덕에 대나무는 저 창공이 펼쳐내는 깊숙한 적막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큰 눈을 털어낸 대나무가 바르르 몸을 떨면 창공 또한 바르르 떨며 몸속 깊이 그 떨림을 받아들인다. 공명이다. 참새 한 마리의 몸짓이 깊숙한 적막에 빠져 있던 하늘에 숨구멍을 낸다. 공중으로 치솟는 참새를 하늘이 왜 온몸으로 끌어안겠는가. 생명은 다른 생명이 있기에 비로소 생명으로 거듭나는 법이다.

 

자연에서 펼쳐지는 신비한 현상에 눈길을 주던 시인은, 바로 그 현상에서 우리네 마음을 유혹하는 사랑의 감정을 이끌어내고 있다. 사랑이란 결코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짝사랑이라는 말을 사람들은 사용하지만, 사실 짝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공명이 없는 사랑을 어떻게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시인은 사랑엔, 눈빛 한번의 부딪침으로도/ 만리장성 쌓는 경우고 종종 있다라고 쓰고 있다. 눈빛이란 공명을 의미한다. 참새 한 마리가 하늘로 치솟으면, 대나무는 패앵 소리를 내며 우듬지를 떨어 눈을 털어낸다. 뿌리까지 울리는 이 떨림은 그대로 하늘로 올라가 창공이 펼친 깊숙한 적막을 가만히 흔든다. 아주 작은 떨림이 거대한 떨림으로 확산되는 이 순간을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무엇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시인은 눈빛만으로 이루어지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 눈빛과 다른 눈빛이 만난 자리에서 사랑이 피어오른다. 불과 불이 만나 더욱 큰 불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하면 어떨까. 눈빛이 마주친 순간 연인들은 깊이를 모를 사랑에 빠진다. 한 그루 대나무의 떨림이 참대숲 전체를 떨리게 하듯, 연인의 눈빛을 본 것만으로도 그의 몸은 주체할 수 없이 떨린다. 그는 왜 눈빛 하나에 이토록 온몸을 떠는 것일까? “저 창공의 깊숙한 적막을 그 떨림 속에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눈빛과 마주하기 전까지는 느낄 수 없었던 적막이 눈빛과 마주하는 순간 온몸으로 휘감아 들어온다. 가슴이 턱 내려앉는 이 느낌, 이 공명이 무엇보다 사랑이 비롯되는 지점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이미 눈빛 한번 부딪친 것만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뜨릴 수 없는 사랑의 만리장성을 쌓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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