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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 유지, 신친일파 | 사회사상 2020-05-30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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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신친일파

호사카 유지 저
봄이아트북스 | 202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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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로 세우려면 (신)친일파를 먼저 청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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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논리로 역사를 오도하는 신친일파

- 호사카 유지, <신친일파>

 

    

 

  ‘<반일 종족주의>의 거짓을 파헤친다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지은이는 반일 종족주의라는 미명 아래 친일을 정당화하는 세력을 비판한다. ‘뉴라이트라는 간판을 걸고 역사를 왜곡하는 이들 세력은 교묘한 논리로 제국주의 논리를 전파한다. 제국주의 논리는 강자의 논리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를테면 이들은 위안부문제를 제국주의의 시선으로 판단한다. 제국주의자들은 위안부 문제를 한 개인의 선택으로 몰아붙인다. 돈을 벌려는 욕심에 사로잡힌 여자들이 스스로 자기 몸을 판 게 위안부의 진실이라는 것이다. 위안부로 끌려가 고통을 겪은 수많은 여성들의 진술이 나와도 이들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세워진 제국주의 논리로 개인의 아픔쯤은 아무렇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

 

반일 종족주의는 반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민족이라는 허울에 싸여 상황을 오도하고 있다는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우선 반일 종족주의를 주창하는 핵심 인물인 이영훈에 대해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대목을 보자. 이영훈은 반일 종족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먼저 어떤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지적 분별력이 낮고, 그에 대한 수치심이 없는 가운데 거짓말의 수익이 크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사회가 거짓말에 관대하면 그러한 현상이 집단 문화가 되는데 그 저변에 물질주의가 흐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영훈은 더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시야에서 물질주의의 근원을 추구해 들어가면 한국의 역사와 함께 오래된 샤머니즘을 만나게 됩니다라고 다소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를 늘어놓는다.”(28)

 

이영훈은 한 사회의 거짓말 문화가 샤머니즘과 어울려 반일 종족주의를 낳았다고 설명한다. 거짓말 문화의 밑바탕에는 물질주의가 있다. 그가 말하는 샤머니즘은 거짓 믿음을 의미하는 듯싶다. 물질에 집착한 사람들이 거짓말로 반일을 부추겼고, 상황 판단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 밑자리에는 여론을 통해 물질적 이득을 얻으려는 세력이 자리하고 있다. 한마디로 반일은 배금주의에 빠진 한국사회의 현상을 뚜렷이 보여주는 사례라는 주장이다. 이영훈은 왜 이런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것일까? 그는 일본 극우 세력이 주창하는 논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강자의 논리를 따르는 사람이 어떻게 약자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까?

 

위안부란 일본군에 부속된 직업적 창녀들이다. 그녀들은 남자를 가지고 노는 방법을 알고 있다. 개인별로 독방에서 생활하고 영업하였다. 식사는 위안소의 업주가 제공하였다. 그녀들의 생활은 비교적 사치스러웠다. 식료와 물자를 구입할 수 있는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녀들의 생활은 좋았다. (110)

 

이영훈의 글에 나오는 한 대목인데, 지은이는 위안부는 일본군에 부속된 직업적 창녀들이라는 문구가 일본 우파가 즐겨 인용하는 부분이라고 언급한다. 이 대목은 미군이 당시 포로들을 심문한 기록을 근거로 하는데, 일본 우파는 보고서의 맥락은 무시하고 특정 대목을 끌어들여 짜깁기하는 형식의 글을 쓰고 있다. 이영훈은 이러한 우파의 글쓰기 방식을 받아들이면서 자기 식대로 적절히 보고서를 윤색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를테면 그녀들은 남자를 가지고 노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부분의 경우, 이영훈은 위안부가 직업 창녀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당시 이 말은 위안부 20명과 함께 잡힌 일본인 포주의 말인 것으로 입증되었다.

 

약자의 말을 듣지 않고 강자가 한 말을 근거 삼아 자기 논리를 펴는 이영훈의 글쓰기 방식은 사실 힘으로 약자를 주무르는 제국주의 방식과 그대로 통한다. 일본은 아직도 조선 여성들을 강제로 끌고 가 위안부로 삼았다는 역사적 진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위안부를 직업 창녀로 보고 있으며, 그에 합당한 보수를 지불했다고 주장한다. 이영훈 또한 위안부가 성노예라는 걸 부정한다. 위안부들 역시 전쟁 특수를 이용하여 한몫의 인생을 개척한 사람들이라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개인의 선택을 강조함으로써 그는 개인을 사지로 내몬 거대한 집단(제국주의)을 옹호한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인정사정을 두지 않는 제국주의 논리를 역사를 해석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영훈은 조선의 기생제와 공창제 여성들이 대부분 그 연장선상에서 위안부가 되었다고 서술했는데, 그다음에는 또 다른 이야기를 내놓았다. 그는 조선의 성문화가 호주제 가족 윤리 속에서 만들어졌다고 했다. 호주제의 권력자인 아버지가 딸을 업자들에게 파는 인신매매가 성행했고, 그것이 위안부제도로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153~154)

 

가난한 아버지가 딸을 기생으로 팔아넘기는 일은 물론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그럼 이영훈의 주장이 맞은 것 아니냐고? 이영훈은 바로 사람들의 이런 심리를 노린다. 이 부분을 지은이가 어떻게 비판하는지 들어보자. 이영훈의 주장에 따르면 딸들이 우선 조선의 공창제로 인신매매되었고, 그다음 위안부로 해외로 송출되었다. 하지만 그 주장은 허위다. 대부분의 위안부피해 여성들은 공창제를 거치지 않고 업자의 속임수에 넘어가 해외 위안소로 끌려갔기 때문이다.”(154) 이영훈이 어떻게 역사를 왜곡하는지 보이는가? 돈을 받고 딸을 팔아넘기는 아버지는 분명히 있었다. 이영훈은 그 사실을 바탕으로 조선의 공창제와 위안부는 연결된다는 허위 주장을 펼친다. 거짓말을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제 입맛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영훈을 비롯한 최근의 친일론자들은 왜 이런 식의 역사 왜곡을 자행하고 있는 것일까? 이영훈이 반일 종족주의를 들먹이는 논리를 그대로 그가 벌이는 행태에 대입할 수 있다. 거짓말 문화와 거짓 믿음(이영훈은 샤머니즘을 이 의미로 사용했지만, 이것은 샤머니즘을 제대로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리고 지독한 배금주의 말이다. 그들은 강자에게 빌붙어 편안한 삶을 누리려고 한다. 학자의 양심이니 하는 말로 그들은 이 상황을 오도한다. 한국사회에서 반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역사적 현실을 생각지 않고, 그들은 친일의 관점으로 반일을 바라본다. 여기서 친일이란 제국주의 논리를 가리킨다. 강자가 약자를 당연히 지배해야 한다는 논리 말이다.

 

이영훈을 따르는 한국의 극우세력이 왜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며 자신들의 존재감을 피력하겠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중심에 서는 사회를 만들려고 한다. 자신들과 뜻이 다르면 빨갱이이고, 자신들과 다른 주장을 펼치면 반일 종족주의에 빠진 거짓말쟁이이다. 반일을 종족주의로 내모는 한편으로 그들은 친일을 한국사회의 미래로 제시한다. 그 과정에서 제국주의의 폭력을 고스란히 받은 민중들(강제 징용자,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제국주의는 강하고 개인은 약하다. 강자는 강하다는 그 이유만으로 약자들을 마음껏 유린할 수 있다. 이영훈을 비롯한 극우 세력은 바로 이 논리로 역사를 해석한다. 이런 자들의 논리가 먹혀드는 사회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 지은이 말마따나 일본 우파의 논리를 그대로 가져온 21세기 신친일파의 논리에 우리 모두 어깨를 걸고 맞서야 할 이유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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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광, 『우리의 시간은 공평할까』 | 사회사상 2020-01-31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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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리의 시간은 공평할까

양승광 저
씽크스마트 | 2020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불평등한 사회를 평등하게 사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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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의와 시간의 공평성

- 양승광, 『우리의 시간은 공평할까』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 주어진다. 갓난아기도 24시간을 살고, 비정규직도 24시간을 살고, 기업 회장도 24시간을 산다. 사람들은 그래서 말한다. 24시간을 동일하게 주어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누구는 부자가 되고, 누구는 빈자가 된다고. 부자가 되려면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가난한 사람들은 게을러서 가난해진 거라고. 지은이는 우리의 시간은 공평할까, 라고 묻는다. 시간의 공평함을 묻다니? 누구에게나 24시간이 주어지는 게 아닌가. 부자라고 해서 25시간이 주어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정말로 그런 것 같다. 겉으로 보면 누구나 24시간을 산다. 부자도 24시간을 살고, 가난한 자도 24시간을 산다. 다만 그 시간을 누구는 즐기며 살고, 누구는 슬픔에 빠져 사는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면 결국 문제는 개인에게로 돌려진다. 같은 직장에 같은 날 입사했는데도, 누구는 승진을 하고 누구는 승진을 못한다. 승진한 사람에게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진 것인가? 아니다. 시간은 똑같이 주어졌다. 그 시간 동안 누구는 성과를 냈고, 누구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어떤 사람이 낸 성과를 다른 사람은 내지 못했다면, 성과를 내지 못한 사람이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휴일도 반납하고 회사를 위해 일한 사람이 승진을 한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에 퍼진다. 승진을 하려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에 투자해야 한다. 회사를 위해 일하는 것이 결국은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이 된다. 성공하고 싶은가? 그러면 회사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라. 그러면 회사가 알아서 당신을 성공의 광장으로 이끌고 갈 것이다.

 

공정한 기회 균등은 공직과 사회적 지위가 형식적 의미에서 열려 있을 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것을 차지할 공정한 기회를 가질 것을 요구한다. 공정한 기회의 관념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우리는, 천부적 재능의 분배를 가정할 때, 동일한 수준의 재능과 능력, 그리고 이러한 자질을 이용하려는 동일한 의욕을 가진 이들은 그들의 출신 사회 계급, 즉 그들이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성장하는 계급과 무관하게 동일한 성공의 전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과도한 재산과 부의 집중, 특히 정치적 지배로 이어지기 쉬운 집중을 방지하기 위해 자유 시장 체계는 경제 세력들이 장기 동향을 조정하는 정치적, 법적 제도의 틀 안에 놓여야 한다. 또한 무엇보다도 사회는 가족의 소득에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를 확립하여야 한다. (114)

 

존 롤즈의 『공정으로서의 정의』에 나오는 내용이다. 성공을 개인 문제로 돌리려면, 그 개인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롤즈는 공정한 기회 균등은 공직과 사회적 지위를 차지할 공정한 기회에서 비롯된다고 선언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들은 과연 공정한 기회를 얻고 있는가? 어떤 학생은 부모에게 용돈을 받으며 대학을 다닌다. 어떤 학생은 공부를 하는 시간보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간이 더 많다. 집에서 등록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 장학금을 받으면 된다고? 국가 장학금도 기준이 맞아야 받을 수 있다. 설사 국가 장학금을 받아 학비를 해결한다고 해도 생활비는 어찌 하는가? 누구에게는 대학을 다니는 것 자체가 빚을 지는 일이다.

 

같은 해에 졸업을 한 학생들이 있다. 누구는 몇 천 만원의 빚을 지고 있고, 누구는 전혀 빚이 없으며, 또 누구는 회사에서 버는 돈을 용돈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나뉜 사회이니, 비정규직은 회사에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직장 생활을 해야 한다. 하청업체를 통해 들어간 비정규직은 제대로 된 혜택도 받지 못한다. 더 공부를 해서 다른 직장을 찾고 싶어도, 먹고사는 게 급해 다른 공부를 할 생각도 못한다. 모든 시간을 일을 하는 데 소비하는 것 같지만, 손에 들어오는 돈은 한없이 적다. 같은 시간을 일해도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받는 액수가 적다. 정규직은 제도의 보호를 받고, 비정규직은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어릴 때 공부를 안 해서 그런 거라고? 웃기는 말이다. 공부를 안 해서 그런 게 아니라, 공부를 해도 공평한 대우를 받을 수 없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공평하지 않은 시간을 살고 있다. 돈이 많은 사람은 시간이 많고, 돈이 없는 사람은 시간이 그만큼 없다. 돈이 많으면 어릴 때부터 고급 교육을 받으며 성장을 한다. 당연히 돈이 없는 아이들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 영어유치원에 다닌 학생과 일반 유치원에 다닌 학생의 영어 실력이 같을 리 없다. 기업 회장의 아이와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근근이 살아온 아이가 하루 24시간을 동일하게 활용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돈이 많은 아이는 어릴 때부터 능력을 개발하지만, 돈이 없는 아이는 능력을 개발할 기회가 오지 않는다. 롤즈가 얘기하는 모두가 평등하게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는 무엇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고려 속에서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동일한 의욕을 지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출신 계급이 다르다고 그 의욕을 펼치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결코 공정한 사회라고 볼 수 없다. 이 책의 제목인 우리의 시간은 공평할까에는 우리가 사는 사회는 과연 공정할까, 하는 물음이 내포되어 있다. 권력자들은 자기 자식을 좋은 대학에 들여보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돈이 있는 아이들은 쌓는 스펙을 돈이 없는 아이들은 쌓을 수 없다. 돈이 있는 아이들이라면 당연하게 받는 고액 과외를 돈이 없는 아이들은 꿈조차 꿀 수 없다. 이러면서 사람들은 공정한 경쟁을 말한다. 출발지가 다른데도 경쟁은 공정하다고 외친다. 시간을 사유하는 건 곧 이 사회를 사유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걸 새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아이들이 살 세상의 공정성이 결정될 수 있는 것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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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로버츠, 『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 | 사회사상 2020-01-1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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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

앨리스 로버츠 저/김명주 역
푸른숲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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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동물, 식물과 더불어 공진화를 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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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진화를 통해 펼쳐지는 새로운 생명의 역사

- 앨리스 로버츠, 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

 

 

 

현생 인류를 호모 사피엔스라고 부른다. 생각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호미니들이 있지만,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가 이들과 피를 섞지 않은 순종이라고 생각한다. 지은이는 이 책의 10장인 인류에서 현생 인류는 구 인류와 교잡한 잡종이라고 이야기한다. ‘순혈사피엔스는 없다. 순혈 민족이라는 담론처럼 순혈 사피엔스는 현생 인류가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진화론의 측면에서 보면 현생 인류 또한 다른 호미니들과 만나 새로운 종으로 거듭났다. 호모 사피엔스인 현생 인류의 DNA를 분석하면,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나온다. 구 인류와 현생 인류가 어딘가에서 만나 잡종을 형성했다는 말이다. 현생 인류는 이렇게 다른 호미니들을 만나 현생 인류로 진화했다.

 

현생 인류가 길들인 것들도 마찬가지다. 지은이는 인류가 다른 종들을 길들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 종들에 인간 또한 길들여졌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유다. 인류는 엄마 젖을 먹어야 하는 아이 시절이 지나면 젖당을 소화시키는 능력을 대부분 잃는다. 필수 효소인 락타아제를 지정하는 유전자가 발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소화되지 않은 젖당은 소화관에 머물다가 세균에 의해 발효되어 소화기 장애를 일으킨다. 이 곤란을 피하려면 젖당 함유량을 낮춰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요즘 잘 먹는 치즈이다. 인류에게 우유가 필요 없는 음식물이었으면 인류는 이렇게 진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류는 소를 길들여 우유를 얻는 동시에, 그 우유를 먹을 수 있는 몸으로 진화한 것이다.

 

지은이는 두개골의 변화를 통해 인간의 삶이 폭력을 방지하는 차원으로 진화했다고 이야기한다. 지난 20만 년 동안 인류는 눈썹 위 융기부가 낮아지고, 뼈가 전반적으로 가늘어졌으며, 남녀의 송곳니 크기 차이가 줄어들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자연적으로 어떤 선택이 이루어지는 건, 그것이 번식에 유리하다는 것이 된다. 폭력성이 중시되었다면 인류는 송곳니를 더욱 날카롭게 만들려고 했을 것이다. 상황이 그 반대로 이루어졌다. 남녀의 송곳니 차이가 줄어든 것이다. 남자가 여성화되는 현상은 남자의 폭력성이 상대적으로 필요 없는 시대로 발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도 이런 변화를 거쳐 인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사는 생존의 법칙을 체득하게 되었을 것이다.

 

작물화된 곡류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신석기는 낯선 방식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목축만으로는 중동에서부터 유럽 전역으로 사람, 가축, 작물을 확산시킨 인구 팽창을 뒷받침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중동의 수메르문명, 극동의 황허강과 양쯔강 문명, 메소아메리카의 마야문명 같은 초기 문명들은 과연 날아올랐을까? 아마 방식은 달랐겠지만, 유라시아 스텝의 기마 유목민들은 우리에게 문명은 이동 중에도 발전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곡류가 없는 세계로 발전했다면 우리 모두는 여전히 집 대신 유르트에서 생활하는 유목민으로 살고 있을까? 아니면 감자처럼 녹말이 풍부한 덩이줄기가 그 공백을 메웠을까? 초기 작물의 부재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보면,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며 우리가 엄청나게 의존하는 종들이 없는 세계를 상상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509~510)

 

작물화된 곡류가 없었다면 인류는 당연히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인간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작물을 짓는 농사를 시작했다면, 그 작물을 통해 인간의 삶 또한 변화했다는 말이다. 인간은 개나 소와 말 같은 동물을 일방적으로 길들였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인간은 그 동물들과 생활함으로써 새로운 인류로 진화되었다. 인류 혼자서 진화한 게 아니라 다른 동물들과 더불어 진화하는 공진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지은이는 사냥을 도울 개가 없었다면 현생인류는 2만 년 전 정점에 이른 마지막 빙하기를 이기지 못했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인간이 개를 보호하기도 했겠지만, 가축화된 개의 도움을 받아 인간 또한 생존을 유지해 온 것이다.

 

지은이는 공진화의 측면에서 인간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생물권 재편성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오늘날 인간은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 생물권을 한계점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육지 면적의 약 40퍼센트가 농지로 쓰이고 있는데, 그 가운데 인간의 먹을거리인 가축을 먹이는 사료를 생산하는 농지가 상당수이다. 지구상에 사는 인간의 숫자는 70억이 넘고 가축은 약 200억 마리가 존재한다. 인간은 고기를 언제든 먹기 위해 기르는 식물의 3분의 1을 동물들의 먹이로 사용한다. 생물계와의 공진화가 아니라, 인간만이 사는 진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공진화를 인정한다는 것은 인간이 자연계의 일부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인간이 자연을 지배했다는 망상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신석기 시대에 일어난 생활 혁명을 통해 인간은 지구상의 생물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얻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은 자연을 지배하는 인간의 욕망으로 변질되었다. 수천 년 동안 서서히 파괴되던 생태계는 불과 200년 만에 복원이 불가능한 상태로까지 빠져버렸다. 과학기술을 등에 업은 인간의 지독한 욕망이 더불어 진화해야 할 생명들을 지배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우리가 동물과 식물을 길들인 것처럼, 식물과 동물 또한 우리네 삶을 길들인다고 강조한다. 이 점을 잊으면 인간의 미래는 참으로 암울하다. 인간만이 자연의 피라미드에서 벌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말 그대로 만용에 불과한 것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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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 우드, 『해빗』 | 사회사상 2020-01-02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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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해빗 HABIT

웬디 우드 저/김윤재 역
다산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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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화된 무의식인 습관을 기르기 위한 다섯 가지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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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 혹은 자동화된 무의식

- 웬디 우드, 『해빗』

 

 

 

이 책에는 내 안의 충동을 이겨내는 습관 설계의 법칙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제목인 해빗(habit)은 말 그대로 습관을 의미한다. 지은이는 자동화된 무의식이 만드는 습관 설계의 법칙을 이 책에서 제시한다. ‘자동화된 무의식이라는 말에 나타나는 대로, 지은이가 말하는 습관은 굳이 의지적으로 실천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레 나오는 본능과도 같은 맥락을 지닌다. 그는 5단계로 이 습관 설계의 법칙을 이야기한다. 1단계는 늘 동일하게 유지되는 안정적인 상황을 조성하는 것이고, 2단계는 좋은 습관으로 향하는 마찰력은 줄이고 나쁜 습관으로 향하는 마찰력은 높이는 것이다. 3단계는 행동(반응)을 자동으로 유발하는 자신만의 신호를 찾는 것이고, 4단계는 언제나 기대 이상으로, 신속하고 불확실하게 보상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5단계는 마법이 시작될까지 이 모든 것을 반복하라는 것이다.

 

전체 5단계에 나타나는 대로, 지은이는 습관은 무의식에 각인되어야 비로소 습관으로 의미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를테면, 지은이는 시작은 시작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사람들은 시작이 반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시작이 반이 되려면 시작하는 과정에서 습관이 이미 생겼어야 한다. 습관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은 시작하자마자 곧 그만두는 상황을 유발한다. 담배를 끊는다고 마음을 먹은 사람을 보자. 그는 시작은 반이라는 마음으로 금연을 시작했지만, 시작하자마자 온갖 증상에 시달린다. 그에게 흡연은 이미 무의식 속에 습관으로 각인되어 있는데, 그는 오로지 의지만으로 금연을 하려고 한다. 의지는 결코 습관을 이길 수 없다. 배가 고프면 생명은 자연스레 밥을 먹는다. 의지와 상관없이 본능은 이미 생명 체계에 새겨져 있다는 말이다.

 

습관 형성자와 습관 미형성자의 달리기단어 인식 과정을 다시 예로 들어 보자. 정기적으로 달리는 학생은 공원, , 운동장과 같이 달리는 장소를 떠올린다. 달리기 장소를 떠올린다는 것은 그만큼 달리기를 즐긴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즐기는 것을 할 때는 굳이 의지를 드러낼 필요가 없다. 정기적으로 달리지 않는 학생은 어떨까? 그들은 체중 감량, 휴식, 건강과 같이 달리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부수적인 목표들을 생각했다. 체중 감량을 위해 달리는데, 체중 감량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아마 달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체중 감량이 된다고 해도 이들은 달리기 자체를 즐기지 않기에 의지를 북돋는 데 힘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목표를 재점검하고 얼마나 더 달려야 할지 계산을 할지도 모른다. 단기 목표에 치중한 달리기는 말 그대로 무의식적인 습관을 형성하는 데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 것이다.

 

이 책의 2부에서 지은이는 습관을 일상에 뿌리내리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이 법칙은 앞서 말한 자동화된 무의식=습관을 기르는 데 필요한 5단계와 같다. 첫 번째 법칙은 나를 중심으로 상황을 재배열하라이다. 이것은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먼저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다. 도서관에 있으면 먼저 공부를 생각한다. 고성방가를 위해 도서관에 가는 사람은 없다. 지은이는 나는 내 장기적 목표를 달성하도록 돕는 친구를 선택한다. 나는 공부할 때 방해 요인이 없는 장소를 신중하게 고른다. 나는 부도덕한 행동을 유발하는 상황을 일부러 피한다.”(154) 등을 그 예시로 제시한다. 상황을 자신의 목표를 실현하는 과정으로 만듦으로써 습관을 기르는 것이라고 보면 좋겠다.

 

두 번째 법칙은 적절한 곳에 마찰력을 배치하라이다. 신용카드와 현금과 체크카드 중 마찰력이 가장 큰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현금이다. 현금은 돈이 있을 때만 쓸 수 있으니까. 그것을 카드로 만든 게 체크카드이다. 체크카드는 통장에 돈이 있을 때만 쓸 수 있다. 신용카드는 다르다. 신용카드는 당장 돈이 없어도 물건을 살 수 있으므로 마찰력이 가장 작다. 적절한 습관을 기르려고 하는 사람은 따라서 신용카드보다 체크카드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 신용카드가 있으면 할부로라도 물건을 살려 하지만, 체크카드가 있으면 그럴 수가 없다. 운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3회 이상 운동하기를 목표로 하는 사람은 간혹 거리 마찰, 곧 운동을 해야 할 곳이 멀다는 핑계로 운동을 자꾸 미루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가까운 동네 헬스장에 등록하거나 집 앞 공원에서 운동하는 방법이 있다. 거리 마찰을 줄이는 것이다.

 

세 번째 신호는 나만의 신호를 발견하라이다. 습관은 늘 똑같은 신호에 반응하는 법이다. 나는 아침마다 집 앞 공원을 달리는데, 작은 호수가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나보다 서너 살 나이가 많은 것으로 보이는 한 여성 러너와 늘 마주친다. 그녀는 내가 팔을 좀 더 크게 휘젓고 속도를 높이게 만드는 결정적 상황 신호다(물론 이 사실을 그녀는 모른다.)”(174~175) 나만의 신호를 발견하라는 것은 자신으로 하여금 운동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신호를 발견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조깅을 한 후 시원하게 샤워를 하는 상황을 생각해도 좋고, 조깅을 한 후 먹는 빵 냄새를 떠올려도 좋다. 이 과정을 거쳐야 자신이 원하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일을 도모할 것이다.

 

네 번째 법칙은 행동과 보상을 긴밀히 연결하라이다. 완수된 행동에 흡족한 보상을 주면 뇌는 도파민을 내보낸다. 도파민은 우리의 기분을 좋게 해주고, 그에 맞춰 우리는 즐거이 일을 하게 된다. 이러한 보상은 빠를수록 좋다. 지은이는 내재된 보상과 외부 보상을 구분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봉사 활동을 한 학생의 경우 내재된 보상은 자존감이나 보람을 느끼는 것이고, 외부 보상은 가산점을 얻는 것이다. 체중 감량을 다시 예시로 들면 내재된 보상은 내 몸에 딱 맞는 예쁜 옷을 입는 것이고, 외부 보상은 상금과 같은 것이다. 물론 보상을 노리는 행동은 보상을 얻는 의지를 따른다는 점에서 습관이라고 할 수는 없다. 지은이는 보상 없이도 작동하는 게 바로 습관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습관을 형성하는 과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얘기겠다.

 

다섯 번째 법칙은 반복이다. 마법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조용히 시작된다. 그러니 언젠가는 마법이 일어난다는 걸 믿어야만 한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신경 네트워크와 기억 시스템에 습관이 정착되기 전까지는 의도적으로 새로운 행동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만 한다. 그러다 어느 시점이 되면 그 반복은 습관을 낳고 우리의 제2의 천성이 되는 것이다.”(214) 글쓰기와 책읽기 또한 이러한 반복 습관과 이어진다. 억지로 글을 쓰려고 하면 글은 더욱 더 써지지 않는 법이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시간을 정해 글을 쓴다고 한다. 반복을 통해 습관을 기른 것이다. 처음부터 이런 습관이 길러질 리 없다. 쓰고 쓰고 쓰고 또 쓰다 보면 어느덧 글쓰기는 습관이 되어 글을 쓰지 않으면 일상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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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러스 데일, 『칼 폴라니 - 왼편의 삶』 | 사회사상 2019-12-19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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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칼 폴라니 - 왼편의 삶

개러스 데일 저/황성원 역/홍기빈 감수
마농지 | 2019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왼편의 보편적 삶을 지향했던 코즈모폴리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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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를 전환하는 거대한 시대는 올까?

- 개러스 데일, 『칼 폴라니 - 왼편의 삶』

 

 

 

칼 폴라니는 세계시민을 지향했다. 코즈모폴리턴의 논리는 근원적으로 반유대주의 논리와 통한다. 그는 반유대주의를 전통에 세우고, 코즈모폴리턴의 논리를 그 반대편에 세웠다. 초국적 네트워크에 연결된 코즈모폴리턴은 외국에서도 편안함을 느낄 준비가 되어 있다. 유대주의가 유대 공동체라는 공고한 장소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면, 코즈모폴리턴은 공동체 너머에서 빛나는 보편윤리를 지향한다. 폴라니와 그 형제들은 어린 시절부터 여러 언어를 사용했다. 집에서는 주로 독일어를 썼다. 헝가리어와 영어, 프랑스어까지 종종 식탁에서 쓰이곤 했다. 폴라니는 말년에 언어가 가난의 시기에 자신에게 학습의 세계를 꾸준히 열어주었다고 회상한 적이 있다. 언어는 세계관의 지평을 넓힌다. 모국어에 갇힌 사람은 얻을 수 없는 세계의 지평을 다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코즈모폴리턴은 공통의 인간성을 특히 중시했다. 폴라니가 반유대주의를 비판한 것은, 유대주의는 무엇보다 특수한 정체성(선민의식 같은 것)을 본질로 몰고 가기 때문이다. 코즈모폴리턴은 정치적 통일성과 자유를 국가 규모에서 세계 규모로 확대하는 입장으로 옹호한다. 칸트가 말한 세계종교의 사상이 여기에는 스며들어 있다. 폴라니는 나는 모든 존재의 자유를 옹호하는 코즈모폴리턴이라고 선언했다. 동시에 그는 나는 도서관만 있으면 어디든 편안함을 느낀다.”고도 얘기한 적이 있다. 그는 특수성이 아니라 보편성을 지향했다. 그 보편성으로 그는 어디에 가든 편안한 마음을 느끼는 존재가 되려고 했다. 책만 있다면 그는 낯선 것도 낯설지 않게 느꼈다. 그렇다고 그를 반국가주의자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는 조국에 대한 불성실, 혹은 조국이 없기 때문에 어디서든 똑같이 편안함을 느끼는 무미건조한 존재와 국제주의자를 명확히 구분하려고 했다.

 

이런 폴라니에게 파시즘은 공포의 대상이면서 투쟁의 대상이기도 했다. <거대한 전환>의 씨앗이 뿌려진, 전쟁이 할퀴고 간 갈리시아의 폐허에서 폴라니는 새로운 사회상이 나타나기 전에는 실효성 있는 윤리적 실천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예언했다. 그는 이 책을 저술하던 시절, 당대 학문의 쟁점들을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몰락, 전체주의의 등장, 경계계획의 사회학, 대공황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골똘히 생각했다. 대공황의 근원은 무엇일까? 자유주의 문명과의 불화는 얼마나 대대적으로 빚어지고 있는 것일까? 자유주의 정치경제가 돌이 킬 수 없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걸까? 경제적 자급자족, 협동조합주의, 계획경제로 전화하는 과정이 진행 중인 걸까? 그렇다면 가장 지독한 사례인 파시즘과 스탈린주의를 정반대 현상으로 이해해야 할까, 아니면 전체주의 쌍생아로 이해해야 할까? 불황에 타격을 입은 유권자들이 히틀러 쪽으로 돌아선다는 진부한 견해 외에 위기와 파시즘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245~246)

 

<거대한 전환>에서 폴라니는 네 가지의 핵심 논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인류학적 원칙이다. 자본주의 시장 원리는 전통적인 인간의 사회구조와 결별함으로써 기독교-사회주의적인 가치들을 짓밟았다. 둘째는 역사철학에 대한 주장이다. 서구 문명은 사회를 경제 영역과 정치 영역으로 분리함으로써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갈등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셋째는 보호주의에 대한 기독교 사회주의식 이해와 보호주의와 시장 체제의 양립 불가능에 대한 오스트리아식 분석을 독특하게 결합한 것이고, 넷째는 현대 역사에 대한 분석적인 조망이다. 그는 앞의 세 주장을 양차대전 사이의 정치경제와 연관 지어 국가 수준과 국제 수준의 정치, 경제 과정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꼼꼼히 살폈다. 그는 이 책에서 당시 세계 위기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오늘날의 세계 위기는 궁극적으로 산업 문명의 첫 단계인 시장-경제 때문이다. 지난 25년은 시장경제를 발판으로 한 국제 경제체제가 파국을 맞은 결과였다. “경제적인사회는 유토피아다. 모든 인간 사회에서 경제는 전체 사회의 필요에 종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체제의 개혁은 사회 붕괴를 각오하고라도 이루어내야 한다. 민주적인 방식이냐 비민주적인 방식이냐라는 선택지가 놓여 있을 뿐이다. 유럽에서 민주적인 방식은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파시즘이 등장했다. 미국은 뉴딜의 처음 몇 년 때문에 예외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세계적인 과정이다. 국제적인 삶은 재통합될 것이다. (248~249)

 

폴라니가 경제 제도와 사회질서의 관계를 묘사할 때 가장 빈번하게 사용한 단어는 묻어들어 있음embeddedness”이다. 이 단어는 개인이 한 일이나 개인의 기술보다는 더 넓은 사회적 맥락에서 그것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항상 강조한다. 이를 통해 그는 원시사회에서 인간의 역사 전반으로 조리개를 더 넓게 열고 일반적으로 경제행위가 물질적인 상품을 추구하는 이기적 욕망이 아닌, 자부심, 위신, 공적인 인정, 사적인 평판 같은 동기에 의해 지배되는 현실을 관찰했다. 18세기까지도 서유럽의 경제는 아직 사회 속에 가라앉아혹은 묻어들어있었다. 19세기 이후 자기조정 시장이 독립 체제로 확실히 자리 잡으면서, 사회는 시장 속으로 묻어들어가서 모든 제도가 시장의 장단에 춤을 추게 되었다. 이제 인류에게 절박한 과제는 산업 문명을 인간 존재의 요구에 맞춰 조정하는 일이 되었다.

 

이를 위해 폴라니는 경제결정론이 양산한 편견과 경제주의적 오류에 맞섰다. 그는 산업 문명에서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 새로운 토대를 이끌어내려고 했다. 그는 노동자들을 고난의 보편성으로 빠뜨리는 원천을 시장 경제에서 찾았다. 신자유주의가 주류가 되면서 시장화에 수반되는 도덕의 타락과 사회 혼란에 대한 혐오가 넘치지만 아직 시장 체제를 해체할 프로젝트는 마련되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를 견제하던 사회주의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지금 우리는 자본주의가 전일화된 사회를 살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완전한 승리라는 허구적인 신화로 자본가는 인류의 미래를 시장경제 체제에 종속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 체제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삶의 의미를 얻을 수 있을까? 이전의 경제결정론만큼이나 커다란 위험이 전일화된 시장경제 논리에도 그대로 내포되어 있다. 우리는 지금도 폴라니가 말한 거대한 전환을 여전히 사유해야 하는 상황에 있는 것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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