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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통영행 버스를 타자 | 리뷰 2020-07-08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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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통영

이서후 저
21세기북스 | 2020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통영의 매력을 한껏 느끼기엔 17년 전 통영에서 보낸 1년은 너무 짧았다. 내가 원하던 내용과 구성의 여행서이자 교양서.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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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에 1년 산 적이 있다. 15년도 더 됐고, 그 당시 어렸기 때문에 많은 것이 생각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히려 1년만 살았기 때문에, 그 때의 통영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집 근처에 있었던 대형마트, 자주 먹었던 콩 박힌 치킨, 누나 학교 가는 길의 오르막길, 별 것 아닌 일상이 소중하다. 1년을 살고 나서 지금 살고 있는 도시로 이사 왔다. 여기서도 통영은 한 시간 정도면 가는 거리기 때문에, 통영이 생각날 때면 가끔씩 찾는다. 이렇듯 통영은 나에게 특별한 도시다. 이 책을 보고 신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이 책이 내가 원하던 내용과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몇 달 전 <도쿄의 디테일>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책에선 'd design travel'이라는 지역 가이드북이 소개되어 있다. 취재할 현이 정해지면 편집부는 2~3개월 정도 현지에서 지내며 해당 지역의 '지역다움'을 경험한다. d design travel은 매해 개정판을 내면서 최신 여행 정보를 담는 가이드북이 아니지만, 그 지역을 잘 담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간이 지나도 간직하고 싶은 책이라고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엔 이런 책이 없을까 생각했다. 여러 번의 짧은 취재나 여행을 통해 최신 정보를 담는 것 만이 아닌, 그 지역을 오래 느끼며 '지역다움'을 담는 가이드북 말이다. 또한 서울, 부산, 제주도 같은 메이저 여행지가 아닌 한국 구석구석의 매력적인 도시를 담는 가이드북 말이다. 그러다 이 책을 봤다. 책 소개에서부터 '통영스러움'을 말한다. 저자도 지역과 깊은 연고가 있는 사람을 도슨트로 삼는다고 한다. 나는 '통영'이기 때문에 더 끌렸지만, 지금까지 나온 책들을 보니 속초, 목포, 신안 등이 있다. '이거다!' 싶었다. 이런 시리즈가 있었구나. 그럼 직접 보면서 만족할 만 한지 판단해보자. 그래서 신청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만족했다. 책 소개에 '인문지리서'라고 적혀 있듯이, 단순히 통영의 여행지를 나열하는 책이 아니다. 장소를 설명하면서 때로는 역사를, 때로는 문학작품을 인용한다. 역사도, 문학도 좋아하기 때문에 흥미로웠다. 17페이지부터 30페이지까지, 통영의 역사를 짧게 소개하지만, 이후 '통영스러움'을 보여주는 28곳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군데군데 역사 이야기가 있다. 글의 흐름과 짜임새가 좋아서, 정말 도슨트와 함께 통영 여행을 하는 느낌을 받는다. 300페이지의 책이지만 지루하지도 않다. 책을 읽으며 통영의 여행지 뿐 만 아니라 조선시대의 통영, 일제시대의 통영과 같이 통영 자체에 대한 역사도 습득할 수 있었다. 일본인 이주 어촌이 들어서고 선진 문물이 빠르게 들어와 빠르게 발전하고, 일본이 통영운하를 만드는 등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통영은 남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경남 해안선 중간 즈음에 있는 바닷가 도시다. 북쪽으로 고성군을 이고 있고 동쪽으로 거제시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서쪽으로 바다 건너 남해 군을 바라보고 남쪽으로는 570여 개 섬이 흩어져 있다. 그 너머는 태평양으로 이어지는 망망대해다. 통영 섬들은 거제 지심도에서 전남 여수 오동도에 이르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일부다. 한려수도가 원래 통영 섬 한산도에서 여수에 이르는 물길이라는 뜻이니 통영 섬들이 그 중심이라고 보면 된다.


통영은 조선시대 수군 총본부인 삼도수군통제영에서 나온 이름이다. 임진왜란 중에 수군을 효율적으로 지휘, 통제하고자 만들어진 삼도수군통제영은 이후 300여 년간 조선 해군 총본부로서 중요한 위상을 누리게 된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오가던 통제영이 마지막으로 정착한 곳이 지금 통영 땅이다.


   그렇다고 여행서로써의 가치가 없는 것도 아니다. 책은 크게 28곳의 이야기로 나뉘어져 있지만, 한 곳에서도 여러 볼거리들이 소개되어 있다. 통영 여행지로 유명한 동피랑까진 가지도 않았는데, 이미 서피랑과 그 근처 부분만 읽는데도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았다. 뻔한 여행지도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 번 찾고 싶게 만들었다. 장소 자체도 섬과 산 같은 자연환경부터 책방, 카페 등 요즘 감성에 맞는 곳까지 다양했다. 초반에 관심을 가장 끌었던 곳은 세병관이다. 세병관을 가장 최근에 찾았던게 10년 전 쯤이다. 그 때도 지금처럼 더웠는데, 큰 관심을 가지고 가지 않아서 엄청 흥미로웠던 기억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가장 먼저 가보고 싶어졌다.



세병관은 통제영 관아의 중심 건물이다. 삼도수군통제영이 최종적으로 통영에 자리 잡은 후 1605년에 세워진 것으로 통제영 자리에 남은 유일한 건물이다. 무려 '국보' 제305호다. 적어도 보물 1호인 서울 동대문보다 더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세병관은 통제영 관아의 객사다. 조선시대 관아에서는 동헌과 객사가 제일 중요한 건물이다.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신 곳이기 때문이다. 신하들이 임금을 부를 때 쓰는 '전하'와 같은 '전'자다. 전하께서 객사에 계신다고 여기라는 뜻이다.


세병관 현판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 높이 2m가 넘는 '洗兵館(세병관)'이란 글씨는 제136대 통제사 서유대의 것이다. 세병이란 이름은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 「세병마행(洗兵馬行)」에서 가져왔다. 그가 평화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아 쓴 구절이다. 마찬가지로 임진왜란이란 혹독한 전쟁을 치러야 했던 조선 백성의 평화를 향한 간절한 바람이 세병이란 글자에 담겨 있다.


고종 32년(1895년) 친일내각이 단행한 제2차 갑오개혁으로 조선 팔도의 구식 군사 제도가 폐지되면서 통제영은 본래 쓰임을 끝냈다. 이후 일제는 통제영 건물을 죄다 허물고 그 자리에 학교와 관공서를 지었다. 유일하게 세병관만 살아남았는데, 크고 튼튼해 학교 건물로 쓰기 적당했기 때문이다. 


   첫번째로 관심을 가졌던게 세병관으로 대표되는 통제영 시절 통영의 역사라면, 그 다음으로 관심을 끈 것은 통영의 다양한 예술가들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박경리 선생을 시작으로 동양의 정신과 한국의 소리를 서양 작곡 기법에 담아넨  작곡가 윤이상, 통영 바다를 닮은 푸른색을 사용하는 서양화가 전혁림, 대표작 「꽃」의 시인 김춘수, 청마(靑馬) 유치환, 소설가 김용익 등 정말 위대한 예술가들이 통영 출신이다. 이 외에도 서양화가 이중섭, 시인 백석도 통영에 머문 적이 있다. 박경리 선생과 전혁림 화백이 통영 출신인 것은 알았지만, 다른 분들이 통영 출신인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책의 앞부분에서 일제시대 통영의 역사를 소개하며 다른 지역보다 부유해서 많은 예술가들이 몰려 들었다고도 했지만, 통제영 시절부터 물려받은 통영 사람들의 예술가 기질은 숨길 수가 없나보다. 


나는 아직 「토지」를 읽어보진 않았지만, 몇 년 전 하동 여행을 갔을 때 박경리문학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엔 박경리 선생의 동상이 있었는데, 책을 읽다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통영의 박경리기념관을 소개하는 부분이다.



기념관 입구 앞마당에 박경리 선생의 전신 동상이 있다. 높이 1m 35cm로, 안경을 쓴 선생이 책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다. 이곳 말고 하동 박경리문학관, 원주 토지문학관 그리고 러시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 동양학부 건물 안에도 완전히 똑같은 동상이 서 있다. 모두 같은 거푸집에서 찍어낸 것이다. 


한국과 러시아 우호 증진을 위한 민관협의체인 한러대화(KRD)는 한국과 러시아의 지속적인 관계 발전을 위해 2013년 11월 13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 단지 안에 러시아 국민 시인 푸시킨의 동상을 세웠다. 이날 열린 KRD포럼에서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 동상을 서울에 세웠으니 러시아에도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동상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이 때 한국 대표 작가로 박경리 선생이 선정되었다. 2018년 6월 문재인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에 맞춰 러시아에도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570여개의 섬을 가진 통영인 만큼, 미륵도, 만지도, 욕지도, 사량도, 매물도 등 다양한 섬도 소개되어 있다. 나는 멀미도 심하고, 배도 좋아하지 않아서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은 크게 들지 않는다. 어릴 때 가족과 소매물도 등대섬을 간 적이 있는데, 지금 가라고 하면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외에 삼문당커피컴퍼니,카페 배양장, 봄날의 책방, 내성적싸롱 호심과 통영인디페스티벌 등 통영의 현재를 보여주는 장소도 많았다. 요즘 여행 트렌드는 유명 관광지를 보는 것이 아닌 작은 카페, 샵을 구경하는 것으로 많이 바뀌었는데, 그런데도 이런 장소보다 세병관, 박경리기념관이 더 가고 싶은 것은 통영이 얼마나 매력적인 여행지인지를 느끼게 해준다.




   쓰다 보니 내 글 만큼이나 책 인용이 많아져, 조금 난잡한 글이 됐다. 하지만 그만큼 마음에 든 책이란 뜻이다. 내가 읽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에 그 중 일부분이라도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적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도시기 때문에 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이 책이 전달하고 싶었던 '통영스러움'이 한껏 전달됐다. 통영은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한시간 반 정도면 갈 수 있다. 당장이라도 이 책을 보고 여행 일정을 잘 짜서, 통영행 버스에 오르고 싶다.



   또한 이 시리즈의 앞날도 기대된다. 현재 6권(통영)까지 나왔고 18권(원주)까지의 출간 계획이 나와 있다. 이 정도의 내용과 구성이라면, 크게 관심이 없는 도시 편을 읽어도 그 도시에 가고 싶어질 것 같다. 읽으면서 내가 사는 도시 편을 만든다면 책으로 나올만큼 많은 내용이 담길까 생각해보았는데, 꽤 많다. 언젠가 우리 도시 편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 백석, 영(營) 중에서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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