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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우수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그 책으로 나의 일상을 전할 수 있다.. 
부러워요 ㅋㅋㅋ 소식이 많이 늦었죠?.. 
축하해요 저도 갖고 싶은 거 간신히 .. 
나나벨님 16기 파블 선정되신것 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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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 | 도서 리뷰 2022-04-11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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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스킨

E. M. 리피 저/송예슬 역
달로와 | 2022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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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는 스스로 자신감과 자존감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자신의 존재를 혐오하며, 후회나 실망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면 음식을 “무작정 입으로 쑤셔넣”고 싶은 충동에 빠진다. 한 사람이 자신의 몸을 포함한 언동, 생각 등을 일일이 부정적으로 보는 데 익숙하다면 왜 그러는지를 들어줄 수 있는 귀가 나도 모르게 솟는 법이다. 그런 자세로 읽었다. 내가 공감하는지 아닌지를 따지지 말고, 어떤 것도 평가하지 말고 잠자코 읽자고 다짐했다.

 

《스킨》은 여행담 모음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작품이다. 나탈리의 첫 해외여행지인 발리를 시작으로 호주와 뉴질랜드, 아일랜드와 페루, 네덜란드 등 여러 나라를 거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중에는 이몽의 생일 파티에 참여한다거나 집세를 아끼려고 할머니 집에 얹혀사는 등 전적으로 여행이 목적이 아닌 경우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 대목에선 ‘삶 자체가 이미 여행’이라는 은유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여행하면서 인생을 달리 보게 됐다(22쪽)”는 친구의 말을 나탈리가 직접 시연하는 셈이다.

 

여행지가 바뀌어가면서 점차 달라지는 나탈리의 모습을 목격하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여행은 언제나 낯설고 피로하지만, 새로워질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라면 그 안에서도 새로움을 발견하고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나탈리를 보면 알 수 있다. 자신의 몸에 죄책감을 느끼며 습관처럼 배를 가리던 발리의 나탈리와 자신 역시 몸 때문에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암스테르담의 나탈리 사이에는 얼마나 큰 간격이 있는지.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은커녕 삶에서 뭘 고민해야 하는 건지 갈피조차 잡지 못하는 자신을 외계인처럼 느끼던 나탈리는 자신의 입에서 절망적으로 흘러나온 말이 타인의 입에서 나오는 걸 들으면서 자신만의 우울감, 절망감, 스스로를 향하는 혐오감에서 돌아나간다. 내부에서 외부로 영역을 넓혀가는 이 변화는 당연히 중요하다. 나는 거절당해도 “내 아이디어가 무시당하는 꼴은 볼 수 없(352쪽)”다던 선언을 마침내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이는 소설 속에서 몇 차례 반복되던 일종의 유체이탈 현상─나탈리는 호흡 곤란 상태에서, 환각 상태에서 자신의 몸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특수한 경험을 한다─과 맞물리며 스킨, 즉 나의 신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며 ‘세상이 규범한 몸’에 갇히지 않겠다는 소설의 주제와 연결된다.

 

그렇다고 나탈리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나탈리는 여전히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비관적인 생각에 짓눌린다. 다가오는 사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며, 가까운 사람과는 멀어질 일이 생긴다. 그러면서도 성장의 곡선을 그려가기에 인생이란 아름다운 그림이 완성된다는 게 이 책의 뉘앙스다.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할 만한 대화들이 많이 오가서, 그쪽으로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겠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며,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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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레사와 함께한 마지막 오후들 | 도서 리뷰 2022-04-10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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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떼레사와 함께한 마지막 오후들

후안 마르세 저/한은경 역
창비 | 2016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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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6월 23일 성 요한 축제의 전야. 오토바이 절도범 마놀로는 부르주아 동네인 싼헤르바시오에 갔다가 어느 파티 장소에 들어간다. 출세를 바라는 이 침입자는 뻔뻔스럽게 초대받은 손님 행세를 하며 수영장 가장자리에 앉아있던 여자애와 달콤한 키스를 나누고 다음날 만나기로 약속까지 한다. “막연한 희망이 가득(22쪽)”하고 “마술적 심오함(30쪽)”마저 느껴지는 6월의 여름밤. 두 사람의 만남은 어떻게 이어질까.

 


 

낭만적인 분위기가 드리워진 계절 안에서 인물들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운명과 싸우고 있(423쪽)”다. 저마다가 바라는 방향으로,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노력한다면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목표로 부단히 손을 뻗는다. 흥미로운 것은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 오류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상대의 신분을 잘못 판단한다거나 이념적 열정을 성적 욕망으로 착각하는 등 자신만의 환상이 지나치게 커서 바로 눈앞에서 벌이지는 일조차 엉뚱하게 왜곡한다.

 

떼레사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떼레사는 진보주의에 빠진 부르주아 여대생으로 모순적인 면모를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부잣집 아가씨로서 누릴 수 있는 편의와 특혜를 자연스럽게 누리면서 맹목적으로 느껴질 만큼 빈민가와 노동자 계급을 찬양한다. 마놀로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가 투쟁하는 노동자일 거라는 떼레사만의 환상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어릴 적부터 자매처럼 가까이 지내던 하녀의 방에 드나드는 남자’라는 이유까지 더해져서, 처녀성이라는 보수적인 도덕관념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이념 같은 인물로 첫 만남부터 떼레사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마놀로를 두고 떼레사가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내용은 우려스러울 정도다. 마놀로가 ‘다분히 의도적으로 취하는 모호한’ 태도가 ‘어느 조직에 속한 중요한 노동자가 마땅히 취해야 할 자세’ 같은 것으로 여겨질 때는 웃음보다 한숨이 앞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분야에 있어선 마놀로가 떼레사보다 위일 수도 있다. 마놀로의 환상은 수년에 걸쳐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마놀로에게 그것들은 “유년 시절 그의 유일한 장난감(101쪽)”이었으며, 지금도 “어린 시절부터 소장해 온 반짝이는 욕망의 그림카드(223쪽)”로 존재한다.

 

자신이 어머니가 일했던 저택의 주인, 쌀바띠에라 후작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환상에서 시작된 그 그림카드들은 마놀로의 세계를 움직이는 두 형제, “욕망과 소유(321쪽)”를 보여주는 결정체이다. 마놀로는 여전히 꿈꾼다. 자신을 더 높은 계급으로 데려갈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우연히 찾아온 어떤 사건이 자신을 부유하고 존경받는 사람으로 단숨에 바꾸어주기를. 거짓말과 도둑질이 능숙해질 수밖에 없는 계급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이기도 할 테지만 적어도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그에게 가장 굴욕적이고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언젠가는 감옥에 가고 떼레사를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보다도, 아무도 심지어 그가 떼레사와 사랑스럽게 키스하는 걸 지켜본 사람들조차도 그가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했고 그녀 역시 그랬을 가능성을 받아들이지도, 믿지도 않는다는 사실일 것이다.

후안 마르세, 『떼레사와 함께한 마지막 오후들』 520쪽


마놀로와 떼레사가 함께한 오후들은 떼레사의 하녀인 마루하가 병원에 입원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계급이 다른 두 사람 사이에 병원이라는 예기치 못한 거점이 생기면서 각자가 동경해오던 세계에 두 발을 들인다. 하필 병원이라는 장소로부터 시작된 교류라는 게 꽤나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병실에 누워있는 사람을 두고 그들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다.

 

그러면 머쓱하게도, 서로가 함께하는 앞날에 대한 기대감이 심장의 펌프질처럼 생생하게 책 안에서 그려진다. 흥미로운 것은 연인들은 부지런히 사랑을 하는데 그게 정말 사랑인 건지 읽는 쪽은 절절하게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후안 마르세가 그리는 여름의 오후들은 환상적이고, 그 안에서 연인들은 각자의 환상을 부풀리느라 여념이 없다. 사랑은 음모에 지나지 않으며, 사랑보다는 욕망이 더 중요하다는 인물들이 어느새 사랑을 노래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문득 알아차릴 정도로 요란하지 않은 변화이다.

 

개인적으로는 사랑보다는 욕망이 더 선명하게 읽히던 소설이었다. 사람보다는 사회가 더 도드라지게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해설을 읽고 나서야 관련 내용을 정리할 수 있었다. 당시 사회에 관심이 생겨서 같은 배경의 소설을 더 읽어볼까 한다.

 

 

※ 창비 시크릿서평단 멤버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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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의 신 | 도서 리뷰 2022-03-02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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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웹소설의 신

이낙준(한산이가) 저
비단숲 | 202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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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작법서라면 자고로 이래야 한다고 나도 모르게 생각했다. 웹소설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웹소설로 보여주는 건 지극히 웹소설 작가다운 방식 아닌가. 일반적인 작법서와 다른 방식에 놀라기가 무섭게 원투 펀치가 정신없이 들어온다. 뼈를 맞아가며 배운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신의 팩폭은 거침이 없고 ‘나’의 고집과 고민은 여러 지망생들의 자화상과 같다. 두 사람의 티키타카에 홀린 듯이 페이지가 넘어간다. 말맛 나는 대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저 즐거울 뿐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말맛의 재미는 떨어지긴 하는데 배울 게 계속 이어지므로 별 지장은 없다. 게다가 그 시점엔 이미 주인공들과 정이 든 상태이므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무난하게 달려갈 수 있다. ‘주인공과 정이 든 상태이기에’ 같은 말은 책 속에서 배운 것이다. 큭큭 웃기만 한 게 아니라 배우기도 열심히 배웠다. 3500화가 넘는 웹소설을 쓴 경험치가 있는 데다, 남들은 어렵다는 일일 연재를 동시에 진행하는가 하면 하루에 세 개, 네 개씩 소설을 써내는 작가에게 언제 또 비법을 전수받아보겠나.


웹소설 제목은 어그로가 필수라며 제목부터 몸소 보여주고 있는 작가였다. 신뢰감을 느꼈다. 저자의 분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책 속의 신이 ‘한산이가’라는 이름이 나올 때마다 다이내믹한 반응을 보여주는 것도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였다. 저자는 웹소설 신의 입을 빌려 자신을 칭찬하거나 평가하거나 자신의 실패작을 두둔하거나 다시 구상해 보기도 하는데, 그 모든 과정이 웹소설 작가가 되려는 ‘나’의 시행착오와 닮은 구석이 있어서 뜻밖의 재미를 줬다. 그러니까 뼈 맞고 옆구리 짚는 게 ‘나’만이 아니란 말이었다. 후광을 번쩍거리며 가르침을 하사하는 신의 뒤에 있는 누군가도 옆구리를 짚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옆구리 짚고, 잠깐 눈물 좀 하고 눈 밑을 훔치며 쓰도 또 쓰고, 어쩌면 처음부터 다시 쓰기도 하는 것.


작가란 결국 비슷한 문양을 그려가는 존재들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는 방식은 모두가 알고 있고, 그걸 얼마나 크게, 또렷하게, 깊이, 오래 그려가는가의 차이가 있을 뿐인 것 같다.


책 속에는 총 40개의 주제로 웹소설을 쓸 때 필요한 정보들이 다양하게 담겨 있다. 제목 짓기나 빌런 디자인 같은 기초 부분부터 연재 방식이나 투베 공백기 줄이기 등의 실전 편까지. 신의 가르침을 받아 웹소설을 쓰고, 비축분을 쌓다가 연재를 시작하고 다시 쓰게 되는 ‘나’를 보며 몸소 체험하는 기분으로 배울 수 있다.


현대 판타지 작가가 쓴 작법서이다 보니 책에 내용도 그에 한정되어 있다. 연재 방식에 관한 조언도 문피아에 맞춘 것이어서 같은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먼 이야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가 쓰려는 장르에 대해서 자꾸 돌아보게 되어서 개인적으로는 이점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더하여 이런 스타일의 작법서가 장르마다 나와도 좋겠다는 즐거운 상상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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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레모사, 김초엽 : 죽음의 땅에서 끝나는 춤 | 도서 리뷰 2022-02-25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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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므레모사

김초엽 저
현대문학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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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은 여행객들과 므레모사로 향한다. 2박 3일 일정에 1천 달러를 지불해야 하는 이 므레모사 투어는 특수한 이벤트다. 신청 당일 접속자가 폭주하여 사이트가 터진 것만 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므레모사는 수년 동안 은폐되어 있었다. 2003년 원인불명의 화재로 유독성 화학물질이 유출되어 인간이 밟을 수 없는 죽음의 땅이 된 후로 처음 개방되는 것이다. 또한 므레모사는 괴이한 소문의 장소이기도 했다. 기이하게도 죽음의 땅으로 다시 돌아온 므레모사 사람들의 이야기가 좀비나 유령 같은 공포소설의 단골 소재와 함께 떠돌았다.

 

안전이 보장되는지도 확실치 않은 폐쇄된 마을.

 

여행객들이 그곳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유안은 그곳에서 무얼 보고 싶은 걸까. 애초에 므레모사는 왜 이제 와 마을을 개방하기로 한 건가.

 


 


■ 절망의 땅을 보는 외부인의 시선

 

므레모사로 향하는 여행객들에겐 저마다의 목적이 있다. 대학생인 이시카와는 자신의 연구를 위해서 왔고, 종합 언론사 신입 기자인 탄은 대단한 기사를 써보겠다고 자원해서 왔다. 여행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주연은 콘텐츠 제작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헬렌은 다크 투어리스트다. 인류 역사의 끔찍한 실패를 목격하며 자신의 비극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확인하려 한다.

 

이들은 일상적인 어투로 “너무 많은 사람이 다녀가면 비극은 희석(25쪽)” 된다거나 “다듬어진 비극”은 별로야, “솔직히 말하자면, 오늘은 기대에 못 미치지 않던가요?(59쪽)” 같은 말을 주고받는다. 끔찍한 생화학 무기를 만들고 시험하다가 화재를 일으켜 그 지역을 초토화시킨 비극의 역사 현장 위에서 나누기에는 꽤나 비정하게 느껴지는 대화다. 사건과는 조금도 관계되지 않은, 철저한 외부자이기에 가질 수 있는 태도인 것이다.

 

또 다른 여행자인 레오의 말처럼 그건 단지 “여행자의” 시선으로 “오랜 시간을 살아온 사람의 시선(79쪽)”을 대신해 그 장소를 새롭게 볼 수 있는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이 여행지에서만 이런 눈을 뜨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유안을 대하던 몇몇 사람들의 반응이 그제야 문제의 도마 위에 올려진다.

 

우리는 타인의 비극에 얼마나 일방적이고 무례하고 과장된 눈짓을 보이는가. 『므레모사』는 ‘재난의 땅’을 찾아 간 ‘한 쪽 다리를 잃은 무용수’를 통해 다수의 일상적이고 고정된 생각을 전복시킨다. 우리가 읽어야 할 것은 공포의 정면이다. 언젠가 내가 저질렀을지도 모를 일이 그 위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보는 일이다.

 

그때야 우리는 외부자의 시선을 잃고 관계자가 된다. 세상의 비극과 타인의 절망을 다른 방식으로 읽는 눈을 갖게 된다. 비로소 유안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자세를 갖추는 것이다.

 

 

■ 고통과 비명 사이에 추는 춤

 

무용수인 유안은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었다. 절단된 그의 오른쪽 허벅지 아래에는 신경 의족이 달려있다. 사람들 앞에서 제대로 걷는 것만으로도 긴장해야 했다. 그런데 유안은 춤을 췄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유안 너는 가장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야(166쪽).” 한나는 말했다. 유안의 재활훈련사에서 연인이 된 한나는 유안이 다시 춤출 수 없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상실을 딛고 일어서 나아가는 것, 우리 인간이 지닌 최고의 능력(89쪽)”을 봐. “다시 좋아하게 될 거야”, “원래 네 삶의 이유였던 것들(84쪽).” 유안이 무대 위에서 도약할 수밖에 없는 말들이 한나의 입에서 계속해 나왔다. 그래서 유안은 춤을 췄다. 관중 앞에서 의족을 떼서 내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으면서까지 춤을 췄다.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한나를 향한 유안의 마음은 소설 곳곳에서 다분히 느껴진다. 그래서 더 씁쓸해지는 것은 한나는 말하는 사람이었지 듣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안은 한나에게 다리 때문에 느끼는 격렬한 통증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그에 한나는 나아질 거라는 얘기를 다양한 표현으로 반복한다. 한나는 유안의 ‘회복’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고, 때문에 ‘회복’을 가리키지 않는 말들은 그가 오래 곱씹거나 고려해야 할 사항이 아니다. 이는 유안이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이유가 된다. 실제로 유안은 자신이 느끼는 통증에 대해 한나에게 거의 얘기하지 않는다. 그것이 유안의 가장 절실한 문제인데도 말이다. 심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위에 있는 사람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신체의 고통은 실체처럼 선명해진다. 홀로 삼킨 신음은 유안의 귀에만 들리는 비명이 되었다. 그 안엔 이런 목소리도 섞여 있었을 것이다.

 

나는 왜 회복되어야 하는가. 다리를 잃은 내가 왜 다리가 있던 때의 모습을 되찾아야 하는가. 사람들은 어째서 그걸 ‘회복’이라 부르는가.

 

세상엔 한나 같은 사람이 다수이다. 유안의 나아감을 응원하고, 유안의 춤을 경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안은 춤추기를 쉽게 포기할 수 없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무대를 장악해야 할 때마다 유안이 느꼈을 감정의 형태는 므레모사의 실체를 목격한 후에 얻는 감정과 기이하게도 닮아있다. 유안이 므레모사에 끌린 것도 당연한 결과였을지 모른다. 유안은 마지막으로 춤을 추며 므레모사로 향한다. 갈망해왔던 것을 드디어 손에 쥐려는 핏빛의 독무가 펼쳐진다.

 

 


■ 죽음의 땅 위에서

 

므레모사는 여전히 ‘죽음의 땅’이다. 과거의 비극을 발밑에 단단히 묻고 그 위로 태어난 새싹들처럼 보이려 하지만 사실 비극은 식도도 내려가지 못했다. 조금만 건드려도 왈칵하고 토해져서 과거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던 유해 물질의 잔해나 시체들을 보여준다. 겨우 흰색 천 한 장으로 아직 끝나지 않은 비극의 연결고리를 가리고 있는 것이다.

 

좀비처럼 움직이는 사람들이나 알 수 없는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의문의 약물, 불길한 냄새, 암시의 걸린 사람들 같은 요소들이 여행객들을 서서히 포위하며 ‘죽이려’ 오는 와중에 일부 여행객들은 그들이 무엇을 죽이려 하는지를 본다. 사고, 자유, 일탈, 저항. 어쩌면 역동하는 모든 것, 그 자체. 세상의 수많은 한나 들이 보기에 므레모사는 스스로 죽어가는 땅이다. 한나는 ‘움직임’이 곧 ‘살아있는’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유안이 움직이는 매 순간이 고통스러워서 더는 춤을 출 수 없다고 말했을 때 “제발, 죽지는 마. 살아 있어(172쪽)”라고 말했다. 유안에게 그 말은 어떻게 들렸을까.

 

당연한 결말이겠지만 유안은 므레모사에 남고 싶어 한다. 움직임과 멈춤의 질서가 바뀐 마을. 움직이는 자들이 움직이지 않는 자들을 숭배하는 그곳에선 유안이 신경 의족을 분리한 채로 얼마나 오래 누워만 있다고 한들 ‘죽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삶을 낭비하는 한심한 인간으로 여겨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소설에서 언급된 ‘삶의 권력’이란 말을 여기서 꺼내 본다. 나의 긍정과 희망과 응원의 마음이 타인의 삶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떠밀려 한 적은 없었는지를 돌이켜 본다. 므레모사는 무논리적이며 일방적이고 착취적인 공간이다. 이 기괴한 마을이 유안이 므레모사 밖에서 사는 동안 느꼈던 세상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처참한 마음이 된다. 소설 속 사건을 복기했다. 제대로 보고 듣지 못한 결과가, 자신이 생각하는 ‘나아감’과 ‘나아짐’을 일방적으로 추구한 결말이 무엇이었는지를 잊지 않도록.

 

글을 마치려는 지금. 이상하게도 머릿속에 자꾸 떠오르는 건 한나가 침대 시트 위에 요란한 담요를 까는 장면이다. 의족을 결합해야 하는 유안의 허벅지에선 자주 피가 흘렀는데, 한나는 요란한 담요를 깔아주며 “오늘은 피를 흘려도 상관없어(171쪽)”라고 말한다. 어차피 피는 묻을 거고 그런 건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는 유안의 말에는 “눈에 안 보이면 그만이지(171쪽)”라고 답한다. 눈에 안 보이면 그만이지. 이 말은 매 순간 휘청거렸으나 “이를 악물고 버텨, 겉으로 보이는 움직임을 매끄러워 보이도록 만들 뿐이었(166쪽)”다는 유안의 독백과 평행한다. 평행하지 않는 이해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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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 특급 살인 | 도서 리뷰 2021-12-31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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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오리엔트 특급 살인 -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03

애거서 크리스티 저/신영희 역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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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에서 일을 마치고 이스탄불에 있는 토카틀리안 호텔에 도착한 에르퀼 푸아로는 런던으로 돌아와달라는 전보를 받고 곧장 떠날 준비를 한다. 푸아로가 타게 된 열차는 9시 오리엔트 특급. 열차 안에는 낯익은 얼굴이 몇 보인다. 그중에서도 호텔에서 보았던, 사나운 야생 동물 같다고 느꼈던 고상한 미국 신사가 푸아로에게 다가와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며 도와달라는 외뢰를 한다. 푸아로는 고객을 가려서 받고 있다며 그의 제안을 거절하고, 그날 밤. 그 남자, 라쳇은 열두 번이나 칼에 찔려 죽는다.



기차라는 공간은 굉장히 특수하다.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곳이며, 물리적인 공간 그 자체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 이런 유동적인 공간 안에서 살인이 어떻게 일어날까? 혹 일어났다 한들 범인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아가사 크리스티는 모두가 잠든 밤에 사건을 일으켰다. 폭설로 기차를 멈추고, 저녁 식사 후에는 보통칸과 침대칸 사이에 문을 잠근다는 일상적인 루틴을 밝히며 자연스럽게 침대칸에 타고 있던 손님들만 의혹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건 여전히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우리의 푸아로가 깨끗하게 정리해두는 습관이 있어서 사건을 간략하게 요약해서 두 번이나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주인공 이름도 곧잘 잊어버리는 내 머리로 이 이야기가 얼마나 치밀하게 잘 설계되었는지를 끝내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건의 전말을 다 알게 된 후 이 사건이 왜 기차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져야 했는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의 전율은 다시 생각해도 굉장하다. 나는 소설의 배경이 되던 시절을 정말 살아본 듯 경험해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가사 크리스티라는 열차를 탄다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닐 듯했다.

1934년에 발표된 이 소설에는 당시 사람들이 타국인을 어떻게 보는지가 흥미롭게 기록되어 있다. 미국인은 전혀 쓸모없는 사람들이라 좋아하지 않는다는 영국인이나, 유고슬라비아 경찰은 자신들을 싫어하기에 믿지 않는다는 이탈리아인, 칼에 여러 번 찔린 시체이니 분명 이탈리아인이 범인일 거라고 주장하는 벨기에인과 완고하고 입이 무거우며 인정이 눈곱만치도 없다는 평을 듣는 영국인들. 지금이라면 인종차별이라고 비난받아 마땅한 말들이 인물의 속마음이나 표정, 행동을 통해서, 더러는 직접 입 밖으로 내는 소리를 통해서 쉼 없이 드러난다. 심리학 분석을 잘한다던 푸아로가 “이탈리아인들은 칼로 찌른다” 같은 말을 심리학적 측면에서 고려하는 모습을 볼 때면 그런 게 정말 심리학적인 측면인 건지 다소 의아한 마음이 일기도 했지만 당시의 심리학을 잘하는 탐정은 그랬나 보다고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서로서로 반감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한 공간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어울리며 생활할 수 있었는지가 생각할수록 이상하고 신기할 뿐.


때론 복잡하게, 때론 흥미롭게. 진지하게 활자 사이를 파고들다가 공연한 실소를 터뜨리며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질문은 하나였다. 정의의 실현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어 마땅하다고 여기는 범죄자가 자신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 멀쩡히 돌아다닐 때, 우리의 안전과 이 세상의 정의를 위하여 심판자를 자처하며 직접 벌해도 되는 걸까. 이런 생각은 곧 지금 내가 발 딛고 살고 있는 사회의 정의에 대해 곰곰 돌아보게 했다. 언제나 말하지만 나는 범죄자가 제대로 처벌을 받지 않을 경우 그로 인해 생기지 않았어도 될 문제들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고 설렁설렁 흘러간 문제들은 반드시 사달을 낼 거라고. 꼭 어떤 사달을 내지 않았더라도 처벌받지 않은 범죄자라는 선례를 남긴 것만으로도 범죄자의 비중이 높아진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기여했다고 본다. 그런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겠는가. 그런 사회에서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우리는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람이 사람의 죄를 판단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늘 신중해야 한다. 타인의 잘못에 대해 쉽게 판단하고 감정적으로 말하지 않기 위해서 푸아로의 이 말을 새겨두기로 했다.


“아주 뛰어난 범죄자가 될 소질을 갖고 계시는군요. 타고난 독창력, 정의를 기만할 수 있는 의연한 결단력 등을 갖추셨어요.”


나의 오만함과 무지를 정의라 믿는 일이 없도록.

각자의 증언이 서로의 알리바이가 되어주는 이 소설의 복잡한 트릭은 나와 나를 얽고 있는 사람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누가 거짓말을 하며 자신의 악행을 숨기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건 함께 얽혀 있는 사람들 뿐일 것이다. 정의와 평화 같은 말들이 요구되는 자리를 유독 눈을 크게 뜨고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언젠가 보았던 ‘아가사’의 목소리로 들은 말이기도 했다. “왜 살인에 대해 쓰는지”에 대해 아가사 크리스티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정의와 평화라는 그런 말들
영원한 사랑처럼 너무 멀지만
그래도 난 소중하다 생각해
그래서 살인에 대해서 쓰네
처음부터

그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되니까”

_뮤지컬 아가사 OST 《꿈 속으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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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 도서 리뷰 2021-12-22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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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저/양억관 역
재인 | 2017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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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은 처음부터 범인과 살해 과정을 모두 밝히며 시작하는 소설이다. ‘누가, 왜, 어떻게 죽였을지’를 추적해가는 형사(혹은 사건을 해결하는 인물)의 입장에서 읽게 되는 여느 미스터리 소설과 달리 범인의 입장과 생각에 중점을 두어 ‘그가, 왜, 어떤 방식으로’ 진실을 숨기고 있는지를 쫓아가며 읽게 된다. 이런 소설의 위험한 점은 범죄자에게 지나치게 많은 이해의 영역을 허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책 표지의 앞뒤로 강조되어 있는 유난스러운 사랑의 구절은 그래서 더 우려스럽게 다가왔었다. 살인자에게 낭만적인 서사를 주거나 변명거리를 만들어주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려했던 정도의 이야기는 아니었고, 어떤 면에서는 “백 퍼센트의 사랑, 백 퍼센트의 헌신”, “사랑에 인생 전부를 건 한 남자의 거대한 헌신의 이야기” 같은 문장이 맞는 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에게 이 같은 감상을 남기기 위해 저자는 꽤 영리하게 판을 짠 것처럼 보이는데, 자신이 하고 싶은 주요 메시지를 대치시키는 구도가 특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설명하자면 “사람은 때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만으로 누군가를 구원할 수도 있는 것이(438p)”라는 문장에서 우리는 다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상기하게 되는데 이때 우리의 가치, 즉 우리가 받게 될 사랑은 한 사람을 ‘구원’한 경우에 한해 그 사람이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려는 만큼의 크기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존재를 구원해냈으니 그것은 꽤 낭만적인 답가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선한 영역 안에서 이루어지는 순환 작용으로 영역을 벗어난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범인이 바라는 대로 소설이 흘러가지 않다는 걸 증거로 볼 수 있다. 사랑은 위대하지만 스스로 살인을 저지르지는 못한다. “그 쓰임새를 결정하는 것은 톱니바퀴 자신(330p)”이라는 저자의 또 다른 메시지는 이런 식으로, 범죄 앞에 분명하게 선을 긋는 방식으로 등장하여 살인자가 사랑꾼으로 둔갑하여 길이길이 남으려는 시도를 차단한다. 이 지점이 나는 매우 마음에 들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이 별로였다는 말을 할 때마다 『용의자 X의 헌신』은 읽어봤냐는 질문을 들었었다. 여러 차례 추천을 받기도 했던 걸 보면 저자의 작품 중 꽤 수작인 건 분명한 듯하다. 너무 유명해서 싫다고 기피했던 시간들이 좀 아까워지기도 했으니 나도 딱히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지금까지 읽었던 그의 추리소설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것도 사실이고. 솔직히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내는 수수께끼보다 그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이해하려는 시도 같은 데 관심이 더 많다. 우리가 무심히 놓치며 사는 인간의 외로움이나 무정함 같은 것에 대해 그는 정말 쉽게 읽히도록 쓰면서도 공감을 잘 이끌어낸다. 사회문제에 늘 촉각을 세우고 있는 점도 좋다. 이번 작품에서도 자신의 주관에 너무 치우친 채 수사를 진행하는 형사라든지 수학 교육을 점점 의미 없게 만들고 있는 교육 현장, 스토킹에 시달려 경찰에 신고해도 아무 도움을 받지 못하는 여성의 어려움 등의 문제를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소설에서 이런 대목을 만나면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게 된다. 정말 좋아하는 소설들에는 늘 이런 구간이 존재했던 것 같다. 멈춰, 그리고 생각하기, 나름의 답 내리기. 모르면 한번 검색만이라도 해보기.

의외로 좋았던 건 갈릴레오 탐정이다. 사실 나는 이렇게 탐정이 애칭까지 달고 등장을 하면 기대감이 식는다. 작가가 그에게 모든 능력치를 때려붓는 걸 알기 때문이다. 주인공이라면 응당 좋은 아이템은 다 장착하고 나와야 마땅한데, 희한하게도 나는 작정하고 좋은 걸 다 주워 입고 나온 주인공에게는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뭔가 이상한 병에 걸린 것 같다. 이 소설에 나오는 탐정, 유가와 마나부는 심지어 천재 물리학자였다. (천재 물리학자와 천재 수학자의 두뇌 싸움이라는 카피가 띠지에 버젓이 쓰여 있지만 사실 이 문구는 나를 이 책으로부터 더 멀리 달아나게 했다. 물리, 수학과 나는 그런 사이다. 하지만 우려했던(?) 내용이 없어서 안심이었다.) 너는 또 얼마나 나댈 거지, 삐딱한 눈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별반 나대지를 않아서 당황했다. 가끔 주인공이 할 법한 죽여주는 제스처를 시전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공고히 하면서도 수상할 정도로 신중하고 은밀히 움직이고 진지하며 침착했다. 그가 캐내고 있는 사건의 전말이 자신의 유일한 호적수이자 존경하는 친구를 잃을 수도 있는 일이라는 걸 상기하면 그의 태도는 달리 읽힌다. 얼마나 상대를 존중하고 있는지, 그를 향한 그의 우정이 얼마나 진심인지가 절절히 느껴진다. 긴긴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는 탐정들은 대부분 이런 공통점을 가지는 것 같다. 머릿속으로 들어와 뛰어노는 줄 알았더니 돌아보면 마음을 파헤쳐놓고 달아나고 있다. 다음 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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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다자이 오사무 : 다자이 오사무라는 잎의 잎맥 같은 소설들 | 도서 리뷰 2021-08-0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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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만년

다자이 오사무 저/유숙자 역
민음사 |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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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를 읽으려면 이 책은 필수여야 한다고, 얼마 전 블로그에 썼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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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은 다자이 오사무의 첫 창작집이다. 대부분 스물 서너살쯤 집필한 작품들로 다자이의 청년기를 짐작해볼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을 쓰기까지 다자이는 두 번의 자살 시도를 했고, 혼례를 치렀다. 비합법 좌익 활동으로 경찰의 조사를 받았으며, 존경하는 작가와 동생이 죽었다. 작품을 집필하고 발표하는 동안에도 그의 인생의 파란은 계속됐다. 그는 또 한 번 자살을 시도했으며 맹장염 수술 후 복막염을 일으켜 중태에 빠졌다가 진통제로 사용하던 파비날에 중독되었다. 『만년』이 간행되었던 1936년에는 중독이 심각한 상태였다. 그때 그의 나이 스물일곱으로, 제1회 아쿠타가와상 차석을 받은 후였다. 심사위원이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작가 현재 생활에 불길한 구름” 운운하며 문학잡지에 공공연하게 써낼 정도이니, 삶으로도 작품으로도 꽤나 유명세를 치렀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다자이는 매우 심약한 사람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면을 자꾸 보이는 주변의 인간들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던 그는 결국 인간 공포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는 인간을 두려워하며 지옥 같은 괴로움을 겪었다.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해갈 요령이 없었기에 매사를 익살을 부리며 얼버무리는 인간이었다.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겼고, 자신의 한심함을 몇 번이고 밝혔다. 그 결정체가 바로 『인간실격』이었다. 끝내 인간다워지지 못한 주인공에게 ‘실격’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는 이 작품은 주인공의 치부를 모조리 드러내는 방식으로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묻는 소설이다. 작가의 삶을 고스란히 반영한 자전적 소설이라는 데 의미가 크다. 다자이 오사무라고 하면 제일 먼저 언급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만년』은 그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다자이 오사무를 보여주는 책이다. 줄거리는 딱히 없지만 이야기 파편들을 한 몸인 양 늘어놓은 「잎」처럼, 책 안에 실린 열다섯 편의 이야기들이 다자이 오사무라는 인간에게 닿기 위한 잎맥처럼 뻗어나간다.

 

「추억」과 「역행」을 읽으면 유소년기부터 스물다섯까지의 다자이를 그려볼 수 있다. 친구가 고향에서 도망쳐 온 연인을 그냥 돌려보내려 하기에 자신이 덜컥 배웅을 나간다거나(「열차」)나 세입자에게 일 년이나 집세를 받지 못하고 휘둘리기만 하는 모습(「그는 옛날의 그가 아니다)」, 자신을 갇혀 있는 원숭이와 같은 구경거리로 인식하는 태도(「원숭이 섬」) 등은 작가 본인이 이야기하던 그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어복기」(붕어가 된 소녀의 이야기)나 「지구도」(일본에 천주교를 전도하러 왔다가 감옥에 갇히기 된 신부이야기), 「로마네스크」(최선을 다할수록 망해가는 세 사람 이야기) 같은 이야기들은 신비롭고 흥미로워서 단숨에 읽어나가게 되는 작품이지만, 그 안에도 다자이의 성격이나 취향, 아무튼 다자이스러움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곳곳에 등장해서 ‘역시나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이구나’, 실감하며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소설을 쓸 때의 그의 모습도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특히 「어릿광대의 꽃」에서는 작정을 하고 본문에서 튀어나와서, 실시간으로 그의 목소리를 듣는 기분을 경험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인간실격』의 주인공인 오바 요조가 술집 여성과 바다에 투신한 뒤 혼자 살아남은 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그 당시 (다자이가 투영된)요조의 심리와 그걸 쓰고 있는 작가(다자이)의 속내가 동일선상에 있는 것처럼 겹쳐지는 듯하다가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튀어 결국 주인공은 주인공의, 작가는 작가의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미묘한 재미를 준다.

 

소설가 한 강을 생각하면 ‘파란 돌’이 떠오른다. 냇물 아래에 있는 파란 돌을 주우려는 모습을 그의 소설에서도 시에서도 봤기 때문이다. 이렇듯 독특하게 반복되는 이미지는 작가 본연의 세계를 드러낸다. 독자는 작가가 쓴 무수한 문장 속에서 그런 식으로 반복되는 이미지를 주워 모아가며 작가에게 가까워지는 건지도 모른다.

 

『만년』은 그에 특화된 책이다. 수록된 작품들 어디에서도 다자이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다자이가 일기 대신 쓴 작품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다자이를 읽으려면 이 책은 필수여야 한다고, 얼마 전 블로그에 썼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이제, 이걸로, 끝이라며 일련의 유서에 제목을 붙이듯” 책의 제목을 『만년』으로 정했다는 말을 듣지 않았어도 나는 이 책을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필독서라고 말했을 것이다.

 

죽음과 좌절, 공포감이 드리워진 채 흘러가는 인생의 파란 속에서도 다자이는 세 번이나 동인지를 창간하고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다. 습작만도 백 편이 넘는다고 한다. 이백 편이 넘는다는 말도 있다. 회피하고 단념하기가 일상이던 인간이 끝까지 놓지 않던 것. 그 첫 결실이 『만년』이었다고 생각하면 책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진다.

 

다자이 오사무의 삶의 방식을 배우고 싶지는 않다. 해마다 점점 더 많은 욕을 해가며 그의 글을 읽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구석이 남아있다. 그것에 대해서 나는 자주 생각한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는 내가 가장 쉽게 떠올릴 수 문장이다.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아무래도 인간을 단념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인간실격』)”, 역시 마찬가지다.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책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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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조언│내가 바라는 나로 살고 싶다, 브라이언 리틀 | 도서 리뷰 2020-08-22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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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내가 바라는 나로 살고 싶다

브라이언 리틀 저/강이수 역
생각정거장 |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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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나에게 적용해볼 요소들이 많았으므로 나는 이 책이 몹시도 실용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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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해왔기에 자아를 분석하는 모든 항목에 흥미를 느꼈다. 사주팔자나 타로점, 심리테스트, MBTI 등은 물론이고 내성적인 사람들이 쓴 에세이나 정신과 의사들의 유튜브, 범죄 프로파일러의 강의 동영상 등을 꾸준히 습득했다. 이번에는 하버드 학생들이 최고로 뽑았다던 교수의 심리학 강의였다. 나는 내가 여전히 나를 분석하고 싶어 한다는 생각에 약간 질려하면서도 모종의 기대를 가지고 책을 폈다. ‘이게 나다!’싶은 구절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질리지도 않고 나를 설레게 했다.


164쪽의 작은 책 안에는 브라이언 리틀 교수가 50년 가까운 세월을 바쳐 연구하고 터득한 내용의 정수가 담겨 있었다. 성격이 유전과 환경(책 속에서는 제1 본성과 제2 본성으로 설명된다)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으므로 별반 새롭지 않았지만, 그 두 가지의 힘만으로 성격이 형성되는 건 아니라는 의견은 좀 흥미가 돋았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퍼스널 프로젝트’라는 말을 소개하는데, 말하자면 이것은 “크고 작은 삶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노력의 모든 것(10p)”으로, 자신의 타고난 성격의 바운더리를 벗어나 인간성을 재구성하는 일이며 이것으로 앞날이 결정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내가 만일 ‘나는 매일 45분씩 동네 산책로를 뛰겠다’라는 퍼스널 프로젝트를 설정하고 꾸준히 실천하면 아무리 모태 집순이에 움직이기 싫어하는 나라도 건강한 신체조건을 유지하며 나이 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집순이’라는 선천적 성격에 3n년을 살며 정교하게 완성된 ‘움직이기 싫어하는 나’를 동시에 극복하는 일로, 바로 이러한 “변화 가능성”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라고 저자는 말했다.


그 때문에 우리는 “한 사람의 성격을 타고난 특성이 아닌 그가 수행하는 퍼스널 프로젝트로 정의(78p)”해야 하며, 쉽게 바꿀 수 없는 성격적 특성과 환경적 요인들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라고. 성격과 환경이 아닌 제3의 본성을 이용하여 얼마든지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으므로.


삶의 질이 하강곡선으로만 뻗어가는 요즘 같은 때에 모처럼 희망적으로 들리는 얘기들이었다. 나를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무언가를 하는 것까지 이끌어준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좋은 효과였다. “웰빙Well-being이 아니라 웰두잉Well-Doing”이라더니 과연 책의 효과도 저자의 가르침대로였다. 당장 몇 개라도 퍼스널 프로젝트를 설정‘하게’ 됐다.


응당 알 거라고 생각했던 성격 관련 용어들을 바로 잡아주는 것부터 내 프로젝트에 방해가 되는 타인이나 환경에 대처하는 실질적인 방법까지. 막연하거나 진부하다고 느껴지던 순간들이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실제로 나에게 적용해볼 요소들이 훨씬 많았으므로 나는 이 책이 몹시도 실용적으로 느껴졌다.


특히 내가 감명 깊게 읽었던 부분은 강박에 대한 파트였다. “자신을 단 하나의 자아로 한정하는 것은 여러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는 것과 같다. (121p)”니. 평소 지나치게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습관처럼 나를 미워하던 나에게는 치료약과도 같은 가르침이었다. 역시 자신을 분석하고자 하는 열망은 옳았다. 이 책을 고른 나의 안목도 참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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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이제 막 독립한 이야기 : 우연한 사랑, 필연적 죽음 | 한줄 감상 2020-08-13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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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세상에 터진 열여섯 개의 웃음소리. 한 목소리인 듯 어울려, 재미있는 놀이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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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목소리를 드릴게요 | 한줄 감상 2020-08-13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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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순간에도 사람들의 이타심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녀는 희망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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