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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올해의 책 리뷰 이벤트 참여

[도서]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요조,임경선 공저
문학동네 | 2019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이 책은 나의 근간을 바꾸었고, 그 사실만으로도 '2019년 올해의 책'이라는 타이틀이 몹시 작아 보이는데 달리 덧붙여줄 말이 생각나지 않아 원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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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주고받는 교환일기에 좋아하는 애 이름을 쓰기로 했을 때 무려 열다섯이 넘는 이름을 적어 넣던 나에게 단 하나의 무언가를 정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고 괴롭다. 하지만 ‘2019년 올해의 책’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놀랍게도 딱 한 권의 책만이 떠올랐다.



─────


2019년. 나는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일도 쉼도 모두 집에서 해결하던 나에게 외출은 큰 이벤트였다. 한 달에 한 번, 많으면 두 번 또 세 번씩 서울에 가서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과 같은 책을 읽고 사고 보러 다녔다. 좋아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러 갔고 영화도 봤다. 얼결에 시작하게 된 독서모임은 그야말로 내 일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나는 내가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 없던 곳에 갔고 할 수 없을 거라 여겼던 일들을 했다. 나의 세계는 맹렬한 속도로 팽창했고 나는 내가 훨씬 더 나은 사람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도착했다. 모든 걸 정체시킬 혼란의 시기에. 검은 점에 불과했던 그것은 내가 자람에 따라 덩달아 커졌다. 어느새 나를 한입에 삼킬 만큼 혼자 커 있었다.


처음엔 단지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했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나는 늘 긴장했고 그 상태를 온종일 유지해야 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버거운 일이었다. 모임 초반 때는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와 이틀 내리 누워만 있던 적도 있었다. 휴식이 절실했다. 외부활동에 취약한 나에겐 여러모로 단련시켜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곧 그보다 더 근원적인 곳에 이유가 있다는 걸 알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내가 말을 잘 못해서 괴로운 거였다. 해야 할 말이 있는데 그걸 몰라서 답답하고 피하고 싶은 주제가 있는데 그걸 꼭 대면해야 해서 난처한 거였다. 한 주제에 관해서 사람들과 두세 시간씩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신의 성향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나는 그럴싸하게 잘 떠들고 좋아하는 얘기가 나올 때면 흡사 아웃사이더가 랩을 하듯 숨도 제대로 쉬지 않고 활기찬 말을 토해냈지만 예민하다고 느껴지는 주제 앞에서는 애매하게 몸을 틀었다. 그럴 때마다 아는 게 없어서라는 핑계를 댔고 논쟁을 어려워한다고 자신을 두둔했다. 다툼을 어려워하는 건 사실이었다. 싸우던 때의 공기마저 고스란히 다 기억하며 사는 나는 회복되지 않는 인간이었다. 조금만 언성이 높아져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애초에 그 자체를 감당할 수 없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싸움의 발화점마다 짓이겨 끄거나 내가 증발한다는 식의 극단적인 선택지를 품고 살 수는 없는 법이었다. 이런 얘기를 주절주절 다 떠든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그날이 바로 내가 혼란에 머리부터 삼켜진 날이었다. 얘기를 하면서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구질구질하고 비겁하게 느껴져서 다음날 눈뜰 자격이나 있을까 싶었다. 가을이 깊어지던 때였다. 나는 벌써 폭설에 깔린 것만 같았다. 끙끙거리며 나란 인간에 대해서 하루도 빼먹지 않고 생각했다. 정확하게 하루하루씩 내가 더 싫어졌다. 생각할수록 분명해졌다. 몸과 말이 따로 노는 인간이 나였다. 세상 모든 일에 기여할 것처럼 온갖 다짐만 번지르르하게 프린트한 포장지가 바로 나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런 때 이 책을 만났다. 썩 좋은 만남은 아니었다.



처음 이 책의 이름을 들었을 때 나는 무심히 흘렸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의 이름이 아니었다. 북토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책을 구매한 후에도 난처한 마음은 계속됐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는 나에게 너무도 부담스럽고 막막한 단어였다. 당시는 페미니즘을 대하는 나의 여러 모습과 지난한 씨름을 벌이고 있던 터라서 더 그랬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머리가 쪼개질 것 같았다. 책 표지를 젖히는 것만으로도 끄응 하는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 책을 읽은 지 약 10분 후 나는 이런 글을 썼다.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요조와 임경선이 쓴 교환일기였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문자메시지와 텔레그램 등 어디서건 문자 대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두 사람이 이 대화로 차라리 영양가 있는 뭐라도 만들어보자며 나온 게 바로 이 책이었다.


교환일기를 쓰면 일상의 전반을 차지하는 대화도 좀 줄지 않을까 싶었는데 전혀 나아지는 게 없었다는 위트 섞인 대화 속에 꼭꼭 씹어 소화시키고 싶은 지침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구질구질한 나를 탈피하고 싶다고 머리를 쥐어짜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니 어떻게 하면 내가 좋아하는 나로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나에게는 그야말로 약 같은 책이었다. 임경선의 냉철하고 확고한 처방과 요조의 나른하면서도 예리한 처방을 번갈아 읽다 보면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조금 보이는 듯도 했다. 뜨끔하고 반성하고 고민하다 보면 어느새 담요 같은 문장 안에 들어가 몸을 녹이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기운이 났고 더 많이 나를 돌아보고 생각해볼 수 있었다.


나는 다른 것보다도 네가 그날 보고 느낀 바를 속으로 눌러두거나 외면하지 않고, 어떤 형식으로든 표현을 해줘서 고맙고 다행이라고 생각해. 64p


인생의 어떤 국면에 고통이 찾아온다고 해서 미리부터 체념하거나 지고 들어가기엔 우리의 젊음이, 인생이, 너무 아까운 것 같아. 고통이 동반되지 않는 기쁨에 깨작대느니 고통이 동반되더라도 끝내 원하는 걸 가지는 기쁨을 누리고 싶어. 96p


늘 깨어서 세상을 바로 보고 옳은 편에 서야 하지만, 옳은 편에 서 있으면서도 깨어 있어야 해요. 옳은 편에 섰다고 안심하면서 내가 뭘 잘못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옳은 편이라는 명분에 취해서 옳지 않은 편에 선 사람들보다 더 깜깜한 혐오 속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계속 나 자신을 의심하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117p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공정한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함께 일하면서 여러 가지 것들을 신뢰하게 될 거야. 124p


별생각 없던 북토크도 열렬한 마음으로 달려가게 됐다.



그곳에서 나는 혼란을 완전히 덜어낼 수 있었는데 역시나 두 작가의 조언 덕분이었다. 이 사람이 나를 싫어해서 내는 화가 아니라는 걸 인지하면 싸움도 안전하다는 요조 작가의 말과 시스템 탓만 하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며 불편한 게 있으면 솔직하게 표현을 하는 게 좋다는 경선 작가의 말이 내 마음에 단단한 주춧돌을 세웠다.


남과 하하 호호하기 위해 나를 죽이면 안 되며, 갈등보다는 화합과 공존이 좋다고 생각하기에 서로를 이해해주고 보듬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 그 위로 차곡차곡 쌓였다.


생각해보면 나는 무언가 허락을 기다렸던 것 같았다. 다툼도 괜찮다는, 더 솔직하게 말해도 된다는 그런 격려가.


다만 말이란 얼마든지 악해지고 악용될 수 있기에 더 많이 배워야 한다는 책임을 스스로 안 자고 다짐했다. 한 계절 내내 휘청거리던 두 다리가 어느 때보다 굳건하게 서 있는 걸 느꼈다.


인생은 곧 선택이고 선택의 순간에서 애매하게 몸을 틀거나 어물쩍 묻어가는 식의 삶은 더는 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분명하게 주장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슬퍼요, 내 감정에 충실해보기도 전에 마음의 일대를 엉금거리며 의심하고 있는 게. 그러다 식어버린 애초의 감정을 망연자실 바라보는 게. 249p


슬퍼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


좋은 책의 기준이란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었다. 나만 해도 여러 이유들로 내 마음의 별표 다섯 개를 붙인 책들이 적잖이 있었다. 그럼에도 올해의 책이란 말에 이 책 딱 한 권이 떠오른 건, 그 책이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좋은 책의 기준’을 가장 잘 반영했기 때문일 터였다.


나를 주저앉히는 책, 생각하라고

나를 바꾸는 책, 더 나은 방향으로


매해 고만고만하게, 흡사 구렁이 담 넘어가듯 새해를 시작하던 내가 1월 1일을 몹시 기다리고 있었다. 어쩐지 2019년보다 더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그런 용기를 주는 책이었다.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더 많이 말할 수 있게 하는. 똑똑하게 자신을 지키는 동시에 타인에게 다정할 수 있는. 이토록 ‘다정하고 감동적인 침범’이 가능한 한 세상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보였다. 나로서는 보기 드문 긍정의 에너지였다.


흔들리던 묵은해를 잡아주고 힘찬 새해를 열어주던 책이었다고 기록하고 싶었다.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은 나의 근간을 바꾸었고, 그 사실만으로도 '2019년 올해의 책'이라는 타이틀이 몹시 작아 보이는데 달리 덧붙여줄 말이 생각나지 않아 원통할 따름이었다. 손 잘 닿는 곳에 두고, 두고두고 꺼내 읽겠다는 말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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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는 아직 독립 못 한 책방(일명 아독방, @a_dok_bang)에서 주기적으로 열리는 아(주)편(한)책(이야기)행사였다. 현장 사진은 원재님 작품(@sib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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