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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한중록 | 이야기들 2022-11-26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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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9일 수요일, 친구와 점심을 먹고 코로나에 옮아왔다.

토요일부터 아프기 시작했는데 검사를 해보니 바로 양성이 나와, 그대로 혼자 방에 격리에 들어갔다.

심한 몸살처럼 온 몸이 으슬으슬 아프고 목이 많이 아팠다.

 

코로나는 아픈 것도 그렇지만, 정말 외롭고 사람을 폐소 패닉에 빠뜨리는 처음 경험해보는 병이었다. 

하루종일 혼자 누워 병과 싸우는데 아무하고도 대면해 대화를 나눌 수가 없어 절해고도에 혼자 떨어진 느낌이었다. 문 밖에서 남편의 목소리나 똘이의 소리가 들릴 때는 그래도 참을 만한데-영화 <그래비티>에서 산드라 블록이 지구에서 들려오는 사람 목소리와 생활 소음에 감격하던 마음처럼- 남편과 똘이 마저 집을 나가면 정말 그 격리된 상태가 몸 아픈 것보다도 힘들었다. 

남편이 밥이나 차를 문 앞에 놓고 멀리 떨어지면 살짝 방문을 열고 서로 안타까운 눈빛을 교환하다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똘이는 이 상황을 이해를 못해 내 방문 앞에서 끙끙 울어서 내 맘을 아프게 했다.

 

내가 마른 반찬을 삼키지 못해 남편은 매일매일 장을 보며 정말 여러가지 음식을 해주었다. 짜장밥, 미역국, 연어 스테이크, 굴 칵테일, 야채슾, 조개슾....요구르트와 따뜻한 코코아까지...목도 아프고 미각이 희미해 음식을 먹기 힘들었지만 남편의 노고를 생각해 최선을 다해 먹어내었다.

 

코로나치고는 심하게 아픈 건 아니었지만 빨리 떨어지지를 않아 12일이나 격리를 하고 겨우 방 밖으로 나오니 똘이가 정말 감동할 만큼 나를 반겨주었다. 나를 이토록 사랑하는 존재라니! 댕댕아~ 너는 진짜 사랑이구나.  

 

12일만에 나와보니 남편이 점령한 부엌이 낯설었다. 키가 큰 남편은 자주 쓰는 그릇들을 나보다 씽크대 한단씩 위에 보관해 놨고, 모든 양념이 다 카운터에 나와있다. 별별 요리를 하느라 여러가지 허브들, 함초 소금, 스테비아에 개인적 야망이 있었는지 조미료까지 사다 놓았다.ㅎㅎ

남편에게 "여러날 살림을 안했더니 부엌일 하기 싫다" 했더니 "응, 하지마, 내가 다 할게" 하고 흔쾌히 대답한다. 사실 그는 살림할 능력이 안된다. 요리는 잘 하지만 경험이 없어 살림에 필요한 organize가 거의 안된다. 그래도 나는 그 대답에 기분이 좋다. 마음이 진심인 것을 알기 떄문이다.

 

바이러스는 음성이 나왔지만 아직도 계속 약간 몸살이 있는 느낌이고 쉽게 급 피로해진다. 그래도 병상에서 일어나 남편과 얼굴을 보며 얘기하고, 똘이를 마음껏 쓰다듬을 수 있으니 더 바랄게 없을 만큼 삶에 겸손해져 있어 기특한 일이다.

 

ㅡ코로나, 한가한 중에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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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주인공처럼 | 이야기들 2022-09-17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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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맛집이나 멋진 식당에 열망이 없는 우리 부부는 무슨 기념일에도 동네의 가까운 식당을 간다. 둘 중 누구도 식사 준비에 힘을 쓰지 않아도 되고 조용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할 수만 있다면, 별나게 맛 없지만 않으면 어디든, 무슨 메뉴든 만족이다. 역시나 올해도 결혼 기념일에 동네 스시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 식사 값은 남편이 냈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 차에 내가 기름을 넣었다. 나는 우리의 선물 교환(?)이 오헨리 단편 '크리스마스 선물'의 가난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부부 같다며 로맨스 한자락을 펼쳤다. 특별할 것 없어도 언제나 그럴듯하게 의미 부여를 주워 붙이는 마누라가 기특해 남편이 크크 웃었다.

 

요즘 우리는 남편의 은퇴를 앞두고, 은퇴 후의 생활, 노년의 생활에 이런저런 계획을 세워보며 많은 대화를 나눈다. 젊어 한때는 집장만이나 인테리어, 자식 교육 계획이나 아들애 미래 청사진 등에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늙어 할일 없어졌을 때에 관해 이렇게나 할 말이 많을 줄 그땐 몰랐었다. 

 

오래전 유럽 여행 중에 베르사이유 궁에 갔을 때, 베르사이유 궁보다 베르사이유 궁에 가기 위해 오르던 언덕길 동네 까페에서 본 풍경의 기억이 있다. 개 한마리는 발치에 앉아 졸고 있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던, 나비 넥타이 맨 할아버지의 평화로운 모습이다. 남편도 이상하게 그 장면의 기억이 선명하다 한다. 우리는 그 '평화'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자기, 퇴직하면 부산(남편의 고향)에 가 한달 살기 해볼까?" 했더니ㅡ나는 자갈치 시장에서 장 보는 로망이 있다-ㅡ남편이 뜻밖에 "나는 그보다 더 길게 살아볼까 하는 생각이 있다."는게 아닌가! 속으로 오, 일년? 이년? 하며 "얼마나 오래?" 했더니 그가 비장하게 말했다. "음...한 삼개월?" ㅎㅎㅎ

 

평화여 함께 있으라! 늙었어도 가져다 붙일 의미와 로맨스와 로망의 많고 많은 출처가 기다리고 있다. 나 그것을 위해 수많은 소설과 영화를 보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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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산, 용의 출현 | 영화와 책들 2022-08-19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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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와 불의의 싸움

 

이 영화는 나의 오랜 '민족적 자격지심'(?)을 풀어주었으니 한편으로 가히 '인생영화'라 할 수 있겠다. 어지럽고 부끄러운 정부, 백성을 버리려는 왕, 짓밟히고 찢어져 죽어나가는 민초들....이순신의 승리나 의병들의 이야기 또한 기쁨보다는 이상하게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순신이 투항한 왜병에게 "이것은 의와 불의의 싸움이다."라고 말 했을때 나는 마음속의 그 오래된 자격지심이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을 옥조이던 사슬이 플어지는 느낌이었다. "나라와 나라의 싸움"이었을 때 내 마음을 옥죄던 그 슬픔과 자격지심이 마침내 해결을 보는 것 같았다.

 

배 아래서 사력을 다하는 격군들을 보며 울었다. 이순신의 침묵과 고독이 온 마음에 스몄다. 그는 2000년대 우리가 누리는 모든 영화(榮華)를 이미 준비하기 위해 하늘이 보낸 사람인 것 같았다.

 

나는 국뽕에 취한 걸까? ㅎㅎ

 

이 영화에는 박해일과 변요한, 안성기 뿐 아니라 TV에서 보던 '미남은 아니지만 연기 잘하는 남자 조연 배우들'이 총 망라한다. 전투 장면과 함께 이 영화가 주는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2022, 한국

김한민 감독

박해일, 변요한, 안성기, 손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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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드라이브 마이 카 | 영화와 책들 2022-01-10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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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경청, 쪼(조,調)에 물들지 않기

 

연극 배우이자 연출가인 가후쿠는 여러 나라 배우들을 캐스팅해 수화를 포함해 배우들 각자의 언어로 체홉의 <바냐 아저씨>를 만든다. 그 과정에서 그는 배우들에게 대본 리딩을 시키는데 오랫동안 감정이나 움직임이 없이 건조하게 그냥 대본을 읽기만 하게 한다.(이 영화의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가 영화를 만들 때도 이 방법을 쓴다고 한다.) 다른 배우의 말(대사)를 알아듣지 못하니 처음엔 자기 대사가 끝나면 가볍게 탁자를 치고 그러면 다음 배우가 또 다른 언어로 대사를 한다. 이 방법은 쉬운 것같지만 연습이 거듭되며 배우들은 자기도 모르게 감정을 넣거나, 움직이지 못해 힘들어한다. 

 

나는 가후쿠의 이 대본 읽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긴 시간 내 감정을 나의 대사나 상대 배우에게 투영하지 않는 것, 그냥 천천히 또박또박 대사를 읽고 시간을 들여 그 대사를 이해하는 것,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이기에 상대에게 더 집중하는 것, 상대의 호흡에 내 호흡을 맞추는 것, 침묵을 듣는 것, 언어 외의 것을 전달하는 것.

 

단어나 문장이 갖는 '상투적인 이해'를 거부하는 것. 일단 이것을 하고나면 놀랄만큼 이해의 범위가 넓어진다. 전에 유명한 연극영화과 교수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학생들에게 "짜증난다"라는 말을 못하게 한다고 했다. 기분이 나쁜지, 화가 나는지, 어떻게 왜 화가 나는지...등등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그것을 설명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쉽사리 감정을 단정하고, 전형적으로 또는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자신을 고정된 틀에 넣고 어떤 '쪼(조)'에 물들게 한다. 슬픈 쪼, 화나는 쪼, 불쾌한 쪼....그렇게 쪼에 물들면 자신의 진짜 감정과 내면의 스토리를 알지 못하게 된다. '슬픈 것'이 그냥 단순하게 한마디 "슬프다"로 끝나버리면 그것으로 이해가 단절돼버릴 수 있다.(오래전 노희경 作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 나이든 배우들이 선배의 연기를 보며 '쪼'가 없다는 감탄을 하는 장면을 굉장히 인상깊게 봤었다.)

 

영화에서 가후쿠의 대본 리딩이 언어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소통이나 이해의 디테일을 생각해 보게 했다. 침묵을 듣는 것, 세세한 것을 전달하는 것, 언어의 뜻뿐 아니라 소리에 감정을 싣는 것. 마음과 마음, 생각과 생각은 단순하지 않다. 그것을 간과했을 때 우리는 경청하지 못하고, 많은 것을 잃고 만다. 

 

아이가 어릴 때 외국 여행 중에 그곳 아이들과 각자의 언어로 말하며 섞여 놀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하마구치 감독이나 영화 속 가후쿠가 원한 것이 그런 것이었을까?

일반화 하는 것, 규정짓는 것, 그냥 단순화 해버리는 것, 포장하는 것.ㅡ>디테일을 잃은 소통에 익숙해지지 않기,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기, 침묵 중에 받아들이기, 천천히 긴 호흡으로 소통하기.  

 

2021, 일본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출연: 니시지마 히데토시, 미우라 토우코, 오카다 마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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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이 | 이야기들 2022-01-0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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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쯤 남편이 생후 2개월된 진돗개 믹스 강아지 한마리를 데려왔다. 개는 못키운다고 질색하는 내게 남편은 "자주 가는 학교 근처 칼국수집 사장님이 키우려고 얻어온 강아지인데 부인과 장모님이 극렬 반대를 해, 집에 못 두고 식당 조리실에 데려와서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있는 걸 불쌍해서 임시로 맡았을 뿐"이라고 했다. 새 주인을 찾으면 데려간다고 고작 며칠 뿐이란 그 거짓말을 나는 믿었던가, 안믿었던가~ ㅎㅎㅎ 나중에 남편의 솔직한 얘기를 들어보니 품에 안은 순간 게임 끝이었단다.

 

내가 못키운다 버티자 남편은 강아지를 학교에 데리고 다녔다. '똘이'라고 이름 짓고 언제나 점퍼 안쪽 품에 안고 애지중지 사랑했다. 연구실에 데리고 있다가 봐줄 사람이 없으면 수업에 데리고 들어가기도 해서 똘이는 학교에 유명 인사(유명 견사-똘이는 그 유명한 '서당개'가 되어 연구실 '실장님'으로 불린다.)가 되었다. 나는 두번에 거쳐 마음이 꺾어져 결국 똘이를 사랑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한번은 처음 집에 온 날, 거실에 내려놓으니 강아지가 혼자 온 방을 돌아다니며 샅샅이 집을 구경했다. 내가 살 집이라 생각하나보다 마음이 뭉클하고 너무 귀여웠다. 또 한번은 내가 무심코 "똘이야~" 하고 불렀더니 온 힘을 다해 전속력으로 내 품으로 달려왔다. 나는 그렇게 똘이에게 무장해제가 되어버렸다.

 

똘이는 아들애가 어릴 때 하던 짓을 그대로 한다. 엄마 아빠가 있으면 안심하고 무조건 행복하다. 엄마 아빠가 세상의 전부이고, 그 존재만으로 완전히 만족된다. 산책하다가도 한번씩 뒤돌아보고 얼굴을 보며 웃는다. 나는 개도 웃는다는 걸 처음 알았다. 똘이가 낮잠 자는 풍경은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풍경이다. 일요일 오후 점심을 먹고 셋이 자는 낮잠은 루틴으로 즐기는 호사가 되었다. 

 

내 옆에 딱 붙어 자고 있는 똘이를 쓰다듬고 있으면 생명이 주는 기쁨이 촉감으로 온 몸에 전해진다. 똘이가 나와 남편에게 완전히 속해서, 완전한 믿음으로 우리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 애잔하고 슬프기까지 하다. 나는 세상에 좋은 걸 이미 많이 가졌는데 내 개까지 가지게 되었구나! 감사하고도 우쭐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남편은 상대적으로 인간보다 수명이 짧은 똘이가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일을 벌써 두려워한다. 나는 쿨한척 우리 손으로 똘이 보내고 우리도 가자!라고 말한다. 

 

아들애에게 전화가 왔다. "훈이야! 네 빈자리는 똘이가 채웠다." 그러니 이미 알고 있단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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