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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제국과 그림자 제국을 잇는 웜홀의 역사 | 인문학 2022-09-2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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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오랑캐의 역사

김기협 저
돌베개 | 2022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고대로부터 중화제국이 이어져온 연속성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인가? 유목민족으로부터 그 답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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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중국 역사를 망망대해로 비유한다. 중국을 침범한 이민족들이 셀 수 없이 많은 한족에 동화되어 결국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와 소멸된다는 얘기다. 더 이상 만주어를 쓰지 않고 한족화 된 만주족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그러나 오늘날 만주족은 1천만 명 정도로 추계되고 신장지구에는 아직도 만주어를 쓰고 그들의 풍습을 따르는 후예들이 살아간다. 블랙홀처럼 주변 오랑캐들을 잠식한다는 중화 역사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김기협 교수는 [오랑캐의 역사]에 ‘만리장성 밖에서 보는 중국사’라는 부제를 달았다. 말 그대로 이해하자면 중국 인구의 절대 다수인 화하족(華夏族), 즉 한족(漢族)이 아닌 주변 민족과 새외 세력 입장에서 바라보는 중국사라는 뜻이다. 그런데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부제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다. 저자가 얘기하고 싶었던 담론은 고대 하나라에서 현재 중화인민공화국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중화제국의 연속성을 찾는 것이다. 수천 년간 거대한 영토와 수십수백의 다민족으로 구성된 제국의 체계를 유지했던 진정한 역사의 원동력을 규명하는 작업이다. 제국이란 힘의 중심에서부터 문화, 민족성이 자신과 전혀 다른 영역과 구성원에게까지 통치권을 확장하는 국가로 정의된다. 따라서 중화제국은 한족, 즉 화하족이 여러 이민족을 아울러 다스리는 국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중화 제국의 역사는 한족이 주도권을 쥔 시기가 그리 많지 않은 아이러니에 봉착한다.

 

  중국 왕조는 하-상-주-(춘추전국)-진-한-(삼국)-진-(남북조)-수-당-(5대10국)-송-(요,금)-원-명-청-중국 순으로 이어진다. 괄호로 표시된 시기는 천하가 분열된 시기였고 나머지 국가들이 천하를 통일한 왕조들이다. 상기한 통일 왕조 중에서 춘추전국시대 이전 관점의 화하족이 세운 나라는 하, 주, 한, 진, 송, 명 정도에 불과하다. 최초의 역사 국가로 인정받는 상나라가 동이 계열이라는 논란이 있고 최초의 통일 왕조였던 진(秦) 나라가 춘추전국시대 이전에는 서융의 강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중화제국의 역사를 한족만의 역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좁은 의미의 화하족은 지금의 하남성에 세력을 두었다. 흔히 말하는 중원에 근거하였는데, 황하강과 양쯔강 사이의 하남지역을 가리킨다. 주나라 때까지 화하족의 강역은 하남 일대에 국한되었으니 중화의 관점에서 그 밖의 새외세력을 일컬어 이만융적이라 하여 하남을 둘러싼 동서남북에 있는 다른 민족들을 동이, 남만, 서융, 북적으로 불렀다. 춘추전국 시대를 거치면서 중원의 황화 문명이 세력을 넓혀 장강과 파촉 문명권까지 교류하며 확장해 나가자 동이는 산동반도에서 바다 건너 북만주와 한반도로 밀려나고 남만은 점차 남쪽 해안가까지 세력을 잃은 후 서서히 화하족의 일원으로 편입된다. 서융과 북적만이 고대 이후 명, 청까지 중화제국을 위협하고 교류했던 세력으로 남는다. 

 

  이만융적 중에 서융과 북적만이 중화제국과 중원을 두고 다툴 수 있던 이유는 사회 경제 기반이 유목에 근거했다는 점에 있다. 동이와 남만은 동일한 농경 문화권이었던 탓에 철기 문명이 발전하고 농업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점차 화하족으로 통합되었다. 이에 반해 기후가 농업에 적당치 않은 서융과 북적은 원시 목축업에서 대규모 유목으로 생산성을 발달시켜 통합에 적당치 않았다. 유목 사회는 비록 과거에 비해 생산성이 높아졌을지라도 자급자족이 불가능하니 궁극적으로 농경사회에 의존하며 경쟁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약탈 대상인 농경민족에 의존하는 유목민족의 모순은 생존전략에도 영향을 미쳐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먼저 내경 전략이다. 농경민족의 세력권 안에서 터전을 잡고 그들이 필요한 군사적 기능을 대행하며 공존하는 방식이다. 한나라 이후 수나라가 중국 대륙을 통일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이민족이 세운 나라는 내경 전략을 구사했던 세력들이었다. 다음으로는 외경 전략이다. 농경민족에 동화되기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유목사회를 고수한다. 부족한 생산력은 농경 사회를 수탈하거나 교류하며 메꿔 나가는 방식이다. 한때 한나라, 당나라를 위협했던 흉노, 돌궐이 채택한 전략으로 통일제국을 군사력으로 위협하여 조공을 받거나 제국의 변경을 약탈하여 경제력을 유지했다. 이러한 중화제국과 유목민족 간의 관계는 제국과 그림자 제국 가설로 연결된다. 중화가 통일되어 강력한 제국이 등장하면 외경 전략을 취하는 유목민족도 농경사회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거대한 군사-정치 조직을 만들게 되는데 이러한 조직 기술과 원리는 농경 사회로부터 본받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토머스 바필드의 내·외경 전략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채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이매뉴얼 윌러스틴의 중심부-반주변부-주변부의 3중 세계체제론을 그림자 제국인 유목민족의 역할과 결부하여 중심부-외곽-배후지로 중화제국의 원리를 풀어낸다. 화하족이 차지하고 있는 동아시아 대륙의 중국 문명을 중심부로, 이 중심부에 전적으로 종속되지 않고 어느 정도 매여있는 서북 방면의 유목민족을 외곽으로, 외곽보다 더 척박하고 건조하여 유목에 적당치 않고 문명과 접촉이 드문 파미르 고원 일대의 미개발 지역을 배후지로 보고 유라시아의 역사를 통찰한다. 이를 아시아 대륙에 빗대어 보면 중동의 이슬람 제국과 중화 제국 사이에 각기 외곽과 배후지가 있는 것이다. 양 제국의 변경 사이에 있는 유목민족들이 문명을 연결하고 확장해주는 역할을 했다. 세계 역사상 최대 제국이었던 몽골 제국은 유목민족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정주 문명을 지배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지배력을 넓히려는 열린 제국과 외경 전략을 구사함과 동시에 중국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치세를 하려는 닫힌 제국과 내경 전략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다가 제국은 4개로 분열되어 힘을 잃어 갔다. 

 

  그는 세계사에서 근대화를 이끈 서유럽 중심주의에 입각한 일방적인 역사 해석에 반기를 든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에서 발원한 고대 중동 문명은 그리스 문명과 함께 지중해를 아우르는 오리엔탈 문명의 중심이었고 이를 페르시아를 거쳐 이슬람 제국이 계승, 발전시켰다. 당시에는 근동이 유럽이었고 서유럽은 로마제국의 외곽에 불과했던 곳이다. 낙후된 서유럽은 중세를 거치며 이슬람 문화와 기술을 받아들여 제한된 노동력 하에 에너지 집약적이고 자원 집약적인 문명을 일궈냈다. 인구가 풍부하고 자급자족이 충분하여 안정된 천하를 유지하려던 닫힌 중화제국과 다른 길을 걸은 것이다. 명, 청대의 중화제국은 국가가 주도하는 교역 체계를 유지했다. 흉노로 대표되는 북로의 오랑캐를 염려하여 만리장성의 90%가 명나라 때 건축됐다. 정작 보이지 않는 위협이 남왜의 남쪽 오랑캐로부터 비롯되고 있음에도 말이다. 유럽이 대항해 시대 이후로 식민지로부터 획득한 자원을 바탕으로 급속하게 국민국가로 거듭나고 이를 일본이 이어받는 와중에도 여전히 중화제국은 남왜와의 통교를 제한했다. 이에 내경에 만족하지 않은 남왜 외경 세력이 명, 청 제국의 변경을 위협한 중화제국은 수당 이후로 혼돈과 분열의 시기를 거쳐 중화인민공화국에 이르게 되었다. 

 

  이 책은 중화제국의 역사가 오롯이 한족만의 역사가 아니라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이만융적의 오랑캐, 이민족과 교류하고 통합하면서 제국의 질서를 유지해갔으며 이민족으로부터 다른 문명과 영향을 주고받았음을 설파한다. 또한 오랑캐의 역사가 이슬람과 유럽으로 이어지고 다시 제국이 뒤늦게 발흥한 유럽제국과 일본이라는 남왜 문명에 무릎을 꿇게 되는 과정을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발굴된 유적으로부터 실재와 사실을 추론하는 고고학과 달리 역사학은 사료를 연구 대상으로 한다. 과거에 문자로 기록된 사료를 수집하고 해석하는 것이 역사학이다. 사료를 있는 그대로 해석하고 유추하는 것이 역사학자가 지녀야 할 태도이지만 그 사료를 기록한 자들의 가치관이 투영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역사는 공평무사하게 기록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당시의 가치관으로 투영해야지 오늘날의 잣대를 들이대면 곤란하다. 해석하는 자들의 입장에서 역사를 편견 하기 때문이다. 동북공정이 그 예일 것이다. 도광양회를 넘어 주동작위를 함에 있어 중국이 무리수를 두는 일들이 즐비하다. 중국이 자행하는 역사 왜곡에 대해 개인적으로 분개하는 일이 많았다. 중국이 차지한 영토와 다민족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서북공정과 동북공정을 무리하게 추진하여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민족 감정이 앞선 탓이다.

 

 ‘북미 텍사스 역사는 누구의 것인가? 아즈텍 문명의 한 축이자 영역이었으니 멕시코가 자기네 것이라고 한다면 흔쾌히 인정할 수 있을까? 아니면 현재 텍사스는 미국 영토이니 미국의 역사라 순순히 끄덕일 수 있나? 텍사스의 역사는 그 자체로서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평가해야 할 사안이다. 텍사스 인디오의 후예가 멕시코인이고 그 강토를 오늘의 미국이 멕시코로부터 할양받은 것이 사실이나 그로 인해 텍사스 역사를 왜곡해서는 안될 일이다.

 

  비슷한 질문으로 ‘고구려의 역사는 누구의 것인가?’ 되물어 본다. 고구려는 분명코 중국의 지방정권이 아니다. 그러나 오롯이 한반도에 있는 우리 한민족만의 역사도 아니다. 만주에 남아있는 조선족이 있는 한 말이다. 발원지에서 세력을 잃은 민족의 비극이자 아이러니이다.

 

  고조선과 고구려는 외경 전략을 채택했다. 그리고 멸망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기존의 식민사관에서 탈피하여 현존하는 사료로써 한민족 고대사를 재조명해야만 고대사의 가려진 진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사군이 어디에 있었는지, 고대의 평양이 북한의 수도인 평양인지. 중화제국이 기록한 사료에 정답을 찾을 단서들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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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돌마로 거듭남을 기대하는 길 | 예술/스포츠/여행 2022-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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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성장의 길, 북인도 히말라야

거칠부 저
책구름 | 2022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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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인도 라다크와 시킴 히말라야의 황홀한 경관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하다. 칸첸중가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을 그녀의 기행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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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의 길, 북인도 히말라야」는 거칠부 작가가 79일 일정으로 61일간 북부 인도 라다크와 시킴을 트레킹 한 기록을 담았다. 파키스탄 히말라야를 걸은 후에 인도로 넘어온 그녀는 라다크 잔스카르와 창탕 고원, 시킴의 라바라패스 그린레이크와 종그리탑 고에치라의 여정을 가졌다. 가이드가 지어준 현지어 ‘돌마’라는 이름에 무색하게 미움과 분노를 한가득 담아 시작했던 트레킹이 점차 평온해져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과연 그녀는 진정한 ‘돌마’로 거듭날 수 있을까?

 

  작가는 책을 시작하자마자 떡밥을 크게 던졌다. 여정 이틀이 되자 나타났다는 위험한 동반자가 누구일까 몹시 궁금했다. 외딴곳에서 돌변한 현지 세르파일까? 아니면 트레킹에서 우연하게 길을 동행하게 된 여행객일까? 이도 저도 아닌 트레커를 노리는 강도였다면 매우 위험했을 거라며 걱정이 앞섰다. 이런 내 예상을 보기 좋게 깨뜨린 위험한 동반자는 저자가 온라인에서 모집한 라다크 트레킹에 동참한 6명의 한국인들이었다. 

 

  여럿이 가던 혼자 가던 북인도 히말라야 트레킹은 가이드와 셰프, 마부를 써야 한다. 고정 경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작가는 라다크와 북부 시킴 일정에 동행할 회원을 모았다. 라다크 트레킹은 6명이 참여했고 북부 시킴 코스는 2명이 모였다. 그런데 라다크 일정을 같이 소화하려던 6명의 일행에서 문제가 생겼다. 다들 남자라서 그런지 처음 만나는 날부터 술자리를 갖더니 어느새 하나로 뭉쳤다. 패거리 중 최연장자가 자연스럽게 리더 역할을 했다. 암암리에 서열이 생겼고 최연장자는 자신이 대우받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겼다. 트레킹에 방해될 정도로 횟수가 잦고 정도가 과한 음주가 싫었던 작가는 꼰대스럽고 남성, 군대 문화 같은 분위기에 거부감이 들어 거리를 두었다. 이를 불쾌하게 여긴 일부 일행들의 노골적인 막말과 거친 언행이 시작되었다. 라다크 초기 일정은 어느새 작가가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걸어야 했다. 파랑라를 넘어 키버까지 완주는커녕 여행을 중단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기에 이르렀다.

 

  파키스탄에서 누군가를 지독히 미워했던 작가는 그 업보를 받는다고 여겼다. 그녀는 법구경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아무에게도 거친 말을 하지 말라. 받은 자가 그에게 돌려보낼 것이다. 격정의 말은 고통을 야기하니 되돌아온 매가 그대를 때리리라”

 

  사실 술을 즐기기로는 두 번째 동행자들이 더 심했다. 하지만 작가는 그들에겐 거부감이나 적대감이 없었다. 왜일까? 라다크를 마무리하며 마음의 여유가 생긴 점이 한몫했다. 그러나 J와 S가 작가를 먼저 정중하게 대한 연유가 더 컸다. 앞선 이들이 불평불만을 내세웠고 트레킹을 제안한 작가를 여행사나 가이드로 여긴 것과 차이가 났다. 작가 입장에서는 그들에게 섭섭함 이상의 감정이 쌓였다. 다만 일정을 소화하며 그녀의 미움과 분노는 점차 눈 녹듯 사그라진다. 트레킹을 중간에 포기한 일부 일행들의 급하게 마련한 새로운 일정이 잘 마무리되기를 기원해주기도 했다. 아마도 많은 독자들은 작가 편에 서서 그녀를 이해하고 위로할지 모른다.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작가 역시 모임을 제안하고 주선한 리더로서 그들과 마찬가지로 부족하고 배려심이 적었다는 입장이다. 

 

  그녀는 스스로가 그들의 자존심을 배려하지 않았고 부족한 경험을 외면했으며 불평불만으로 원하는 바를 말하는 소통방식을 이해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사람들을 데려와 놓고 중심을 잡지 못한 채 전체를 보지 않고 혼자 걸을 궁리만 했음을 인정한다. 자기만이 옳았다고 강변하지 않는다. 작가는 어찌 보면 합리적인 에고이스트이다. 자신이 피해를 받지 않는 한 다른 이들에게 너그럽고 관대하다. 고생하는 네팔 셰프 스태프들에게 팁을 먼저 주었고 가이드 역할을 부적절하게 한 롭상에게 불같이 화를 내면서도 그의 진심 어린 반성에 흔쾌히 사과한다. 일정을 마치고 헤어지는 모든 스태프들에게 현지어 철자로 이름을 적은 팁 봉투를 나눠 줄 정도로 인정이 많다. 

 

 그러나 딱 그만큼이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는 동안 한 번도 텐트 치기 좋은 자리를 누구에게 양보한 적이 없고 오히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두르기까지 했다. 불편한 일행이나 스탭이 있으면 아량을 베풀기에 앞서 치미는 역정을 애써 누르곤 한다. 그녀를 이해해주고 돌봐준 Y에 한없이 우호적이면서도 자신처럼 겉도는 H를 감싸려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본문에 직간접적으로 표현되지 않았지만 어쩌면 작가는 과거에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아 자기방어 기제가 강한 사람일지 모른다. 그리고 이런 모습 때문에 파키스탄에서와 달리 스텝들이 롭상이 지어준 ‘돌마’라는 현지어 이름을 부르지 않은 건 아닐까?

 

  작가는 “신은 내게 불안한 동행자들과 훌륭한 스태프를 함께 보내주었다”라고 할 만큼 북인도에서 만난 모든 스태프들에게 고마워했다. 트레커를 위협하는 위험한 동반자가 결코 아니었다. 불안한 치안에 여행이 꺼려지는 인도의 이미지와 달리 북인도 히말라야 현지인들은 선하고 인정이 많다. 티베트 불교 영향이라 여겨진다. 그들에게 불교는 삶의 시작이자 끝이다. 자신을 위하여 열반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웃의 고통을 덜어주고 타인의 해탈을 돕는 게 진정한 대승 불교의 길이라고 믿는 이들이다. 내게 이질적이란 선입견이 큰 티베트 불교가 자신의 이웃을 사랑하라는 기독교 교리를 묵묵히 실천한다. 우리 기독교야말로 이를 외면한 채 자신과 자식들만의 행복과 구원을 앞세운 구복 신앙과 하나님의 것일 교회 재산을 어떠한 주저함 없이 세습하는 목회자의 추태가 부끄럽다.

 

 히말라야 경관은 지역에 따라 다채롭다. 네팔은 내로라하는 설산이 대표적이다. 파키스탄은 첨봉과 거대 빙하, 초원과 야생화를 뽐낸다. 라다크의 풍경은 기이하고 독특하다. 그곳에선 예상할 수 있는 풍경이 없다. 잔스카르는 붉은 바위산과 협곡의 땅이다. 멍이 든 것처럼 푸르뎅뎅한 산, 특정 광물로 자주색 반점이 덮여 있거나 커피에 아이스크림을 휘저은 듯한 산들이 가득하다. 동쪽의 평평한 땅이란 뜻의 창탕 고원은 제자리걸음을 걷는 것처럼 주변 풍경의 변화가 없다. 시킴은 모든 게 왕성하게 살아 있어 곳곳에 생기가 넘치면서 우아하고 기품 있는 칸첸중가를 자랑한다. 작가는 히말라야 서쪽의 척박하고 황량한 풍경을 좋아했다. 눈 덮인 설산보다 마음이 끌렸다. 나도 메마르고 거친 생태 환경과 원시림 가득한 밀림을 동경한다. 라다크와 시킴을 읽자니 북한의 개마고원 걸을 수 있는 날이 손꼽아진다. 내 생애에 그날이 오기를 희망해본다.

 

  메마른 땅을 메마른 마음으로 걷던 작가에게 까망이와 갈색이가 나타났다. 라다크 트레킹의 마지막 6일을 두 녀석과 같이 했다. 아니 까망이 누나까지 세 녀석이다. 녀석들은 때때로 앞서가고 때때로 기다려주며 작가 일행과 함께 걸었다. 작가는 주저 없이 녀석들을 히말라야에서 만난 최고의 동행 중 하나로 꼽는다. 라다크 일정을 마치기까지 Y의 헌신이 있었다면 지옥 같은 심정에 평화의 꽃을 가져다준 까망이와 갈색이는 관음보살의 현신 일지 모른다. 

 

 작가는 단독 일정으로 진행한 시킴의 모든 것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만큼 모든 일정을 흡족해했다. 거기에 화룡점정을 더해야 한다. 바로 그린레이크의 아침 해와 종그리탑의 황홀한 일출이다. ‘다섯 개의 위대한 눈(雪)의 보고’라는 칸첸중가의 아름다운 장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지리산 일출은 3대의 음덕이 쌓여야 가능하다고 한다. 단 하루만 쨍한 해를 볼 수 있던 그린레이크 트레킹에서 그 장관을 볼 수 있다면 조상 몇 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 궁금하다.

 

  7 년 전 산악회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를 트레킹 했다. 학수고대했던 정모였지만 건강 문제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안타까움이 컸다. 회원들이 보내준 ABC 일출은 황금성 그 자체였다. 칸첸중가 일출 역시 그에 못지않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작가의 경험을 밑천 삼아 수년 내로 그린레이크와 종그리탑 트레킹을 할 작정이다.


[칸첸중가 일출(본문 사진)]


[ABC 일출]


[히말라야 설산]

 

  병풍을 펼쳐 놓은 것처럼 하얀 설산이 눈앞에 있고 그 정상위로 황금빛이 물드는 칸첸중가. 작가는 북인도 히말라야 일정의 모든 고생과 마음의 질곡을 모두 보상받았다고 했다. 더불어 언젠가는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꼭 다시 오고 싶다고 했다.

 

  ‘돌마’는 얽매임으로부터 풀려난 여성을 의미한다. ‘자비의 보살’이자 깨달음에 이른 첫 번째 여성이다. 매 번의 여행에서 시험에 들었고 그때마다 번번이 오답을 골랐던 작가. 그녀는 “여행은 딱 자신이 생각한 것만큼 행복하다”라고 말한다.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자신의 선택이자 그 결과는 불편한 감정까지도 오롯이 자신의 몫이라 할 정도로 지혜롭다.

 

  나는 그녀가 칸첸중가를 다시 찾을 때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만 함께 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녀에게 힘이 되어준 Y, J, S, 까망이와 갈색이, 롭상, 까지, 릴 아저씨, 꺼비, 마부 소남, 계초, 남걀, 시킴에서 만난 비노드, 에디, 소남과 여타의 스태프들의 마음까지 동행하기를 원한다. 단지 그뿐이 아니다. 라다크에서 그녀를 힘들게 했던 H와 일정을 중간에 포기한 4명과 파키스탄에서 그녀가 미워했던 이까지, 그들에게 품었을 미움과 분노의 감정도 윤색없이 그대로 가져갔으면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다섯 개의 위대한 눈의 보고 앞에서 떠오르는 황금빛에 사바세계의 희로애락을 모두 녹여 없애어 그녀가 우주만물에게 너그러울 진정한 ‘자비의 보살’로 승화하여 남은 히말라야 트레킹을 이어가길 간절히 소망한다. ‘옴 마니 반메 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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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추억 - 내 인생 최고의 와인들 | 와인 2022-08-26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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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년 즈음으로 기억된다. 오디오 중고 장터로 유명한 와싸다 닷컴의 오디오 게시판에서 실용 오디오 논쟁이 한창 불이 붙었던 적이 있다. 실용 이슈는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뜨거운 논박과 설전을 불러일으키는 주제이다. 인간의 가청 능력상 구분이 안될 주파수 대역까지 비싼 돈 들여 선재와 스피커, 앰프를 바꿀 필요가 없다는 실용파와 단지 고가라는 감성적인 소구 이상으로 실제로 소리를 구별할 수 있는 청취자들은 물론이요 어쨌든 오디오 성능에 차이가 있는 만큼 가능하다면 고가를 추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하이엔드파 간의 말싸움이 늘 그렀듯이 끝내 감정싸움으로 이어지곤 한다.

 

양진영에서 굳이 따진다면 다소 실용주의에 가까운 나는 어느 한쪽 편을 들기보다 결국 오디오를 취미로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클래식, 팝, 재즈, 가요 같은 음악 감상에 있으니 서로를 비난하지 말자는 취지로 섣부른 중재를 했다. 내 의견에 동조하는 동호인들이 많았지만 여전히 양진영으로부터 힐난을 받기도 했었다. 당시 실용 논쟁에 끼어들면서 와인과 주식을 오디오에 비유하기도 했다. 대중들이 가치주라고 믿는 XX회사가 실은 가장 리스크가 많은 회사라며 장기 투자를 한다면 이런 기업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와인도 비슷하게 세평과 등급만이 정답이 아니라면서 내 인생 최고의 와인은 보르도 1등급 와인이 아닌 떠오르는 신성 도멘의 'David Duban Echezeaux'였고 두 번째 베스트는 어이없게도 미국 나파밸리의 로버트 몬다비 보르도였다고 고백했다.

 

와인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라투르나 마고, 무통 로췰드 같은 1등급 와인을 먹어보지 않았으니 하는 얘기라거나 경험한 와인 스펙트럼이 제한된 수준의 결론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내가 마셔보지 못한 특급 와인이라면 프랑스로 국한할 때 보르도 계열에서는 페트뤼스, 오브리옹 정도였고 부르고뉴 쪽으로는 DRC의 로마네 꽁티와 같이 한 병에 수백만 원 이상하는 브랜드 정도다. 어느 정도 고가의 특급 와인을 제법 마셔봤다. 그럼에도 내 인생 최고의 와인을 꼽는데 다비드 듀방의 에세조를 서슴지 않고 꼽을 수 있다. DRC의 로마네 꽁티가 아마도 이런 스타일임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주었다. 마치 꽃밭에 앉아 다채로운 아로마를 맡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같은 날 같은 자리에서 땄던 무통 로췰드의 그레이트 빈티지인 2005년 세컨드가 명함을 내밀지 못할 수준이었다. 세컨드라지만 2005년이면 '신의 물방울'의 세라 말대로 유아 살해를 넘어선 태아 살해였으니 공평한 테이스팅이 아니긴 했다.

 

사실 와인은 기본적으로 가격에서 품질을 유추할 수 있다. 아무리 훌륭한 그랑퀴르 5등급 와인이라도 2급이나 1급에 필적하기란 매우 힘들다. 과장컨데 바늘 구멍에 낙타가 들어갈 확률이다. 그랑퀴르 이하라면 더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와인이 재미있는 것은 간혹 하늘이란 기후, 땅이란 테누아르의 잠재력에 인간이란 샤토의 노력이 삼위일체 할 경우 특급 와인에 못지않은 괴물을 왕왕 탄생시킨다는 점이다. 다비드 듀방의 에세조가 그런 셈이다. 홍콩에서 20만 원에 구입했던 이 에세조가 한국에서라면 대략 50만 원 이상 호가했을 것이다. 보르도에 비해 부르고뉴 와인들이 국내에서 더 비싸게 거래된 탓이다. 당시 그 감동을 못 잊어서 홍콩 출장 중에 짬을 내어 홍콩 갈 때마다 가끔 들르는 침사추이 하버시티의 와인숍에서 다비드 듀방의 생볼 뮤지니를 사 왔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와인 모임 장소에 달려가 잠깐 칠링을 하고 따 봤는데 에세조의 감동을 얻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칠링이 너무 과하게 되어 향이 제대로 살아나기도 전에 다 마신 탓인지 모르겠다.

 

요즘 한국 시세로 7~10만 원 정도인 로버트 몬다비 보르도가 어떻게 라투르, 마고, 무통 로췰드를 이겨내어 생애 두 번째 베스트 와인으로 꼽히게 되었을까? 물론 기본적으로 맛있긴 했지만 특급 와인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그러나 그 와인을 마셨던 장소와 멤버, 추억은 23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첫 직장에서 존경했던 대표이사님이 퇴임한 다음 첫 송년 모임에서 대표님을 초대했다. 서여의도에서 조그맣게 개업한 오마카세 일식집을 통째로 빌려 전임 대표님 포함 주식운용본부 임직원 6명이 단출하지만 행복하게 연말을 보낸 자리에서 딴 와인이었다. 내 생애에서 마주왕 말고 제대로 된 와인을 처음 경험했던 자리이기도 했다. 6명이 세프를 둘러싼 바에 앉아 좋아했던 상사, 후배와 함께 한 시간에 취했던 기억이 특급 와인을 제친 이유였을 것이다.

 

요즘은 한국에서 보졸레 누보를 찾기 힘들다. 15년 이전만 해도 보졸레 누보가 프랑스 와인을 대표한다는 듯이 막 병입 된 보졸레 누보를 마시지 않으면 와인 애호가가 아니라고 치부될 정도로 유행한 적이 있다. 사실 보졸레 누보의 이상 열풍은 마케팅 승리에 지나지 않는다. 보졸레 누보는 우리 식대로 표현하자면 김치 겉절이에 불과하다. 겉절이는 제대로 익혀 숙성된 맛을 볼 정도의 깊은 맛이 없다. 식전에 바로 무쳐 먹는다. 입 속에서 아싹하게 씹히는 생생한 식감과 상큼한 맛이 장점이다. 보졸레 누보도 마찬가지다. 그랑퀴르에서나 느낄 수 있는 병입 된 지 얼마 안 된 와인의 강력한 탄닌을 느낄 수 없다. 세월이 흘러 그 탄닌이 풀려 아름다운 아로마를 깊은 풍미도 없다. 이처럼 샤토의 클래스란 차이가 있을 밖에 없다. 하지만 전술했다시피 꼭 클래스의 한계를 뛰어넘는 게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천지인의 삼위일체에 마시는 시음자의 주관적 심리 상태가 더해진다면 내 기억 속의 베스트 와인이 와인 평론가들의 랭킹과 굳이 일치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할인마트에서 데일리 와인을 즐기는 지인들에게 가끔 이런 얘기를 한다. 실속 있고 가성비가 훌륭한 데일리 와인을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경제적 부담을 느끼지 않으면서 와인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은 10번 데일리 와인을 마실 경험을 포기하고 10만 원 남짓의 중고가 와인을 잘 골라서 마셔보라고 권한다. 나도 모르게 굴레를 씌운 와인이란 잠재력을 넓히기 위해서는 가끔이라도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와인을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10만 원짜리를 무분별하게 마신다면야 사치이겠지만 1만 원짜리 10번을 아껴 한 병 산다면야 경제적으로는 등가이겠고 그간 느끼지 못했던 무언가를 얻고 경험할 수 있다면 플러스알파 아니겠는가?

 

하쿠와 타타와 한 식구가 된 지 이제 1년이 되어간다. 아이들에게 유일하게 금단의 영역이 있었다. 내 서재이자 음악방이다. 내가 들어가 방문을 걸어 잠그고 한두 시간 음악을 듣고 있자면 아이들이 문밖에서 운다. 못 들은 체 대꾸 없이 시간을 보내고 나오면 아이들이 문 앞에서 미동도 않고 앉은 채 기다리기 일쑤다. 마음이 못내 저미어 결국 올봄부터 오픈해줬다. 내가 음악 들을 때 하쿠는 CD장 꼭대기에도 올라가고 스피커 위에서 뛰어 논다. 오디오 기기가 망가지거나 흠집 나는 걸 포기한 지 오래지만 혹여라도 애써 버리지 못하고 보관 중인 와인 공병들을 떨어트려 다칠까 봐 걱정이 많았다. 결국 라벨이 예뻐 15년가량 모아 왔던 와인병을 주말에 분양 보냈다.

 

한 병 한 병, 이런저런 모임에서 친한 이들과 마셨던 추억만이 내 기억 속에 남게 되었다. 그 기억이 잊힐까 봐 부랴부랴 사진을 찍어두었다. 당시 모임에 참석했던 이들과 어떤 감정들이었는지를 와인과 함께 싸이월드에 기록해두었다. 싸이월드가 폐쇄되어 접근이 불가하다가 얼마 전에 복구가 되어 들어가 봤다. 달랑 사진만 복구되었고 정작 추억이 방울방울 아로새겨진 게시물은 사라지고 없다. 공병 사진은 남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와인의 추억은 안개 낀 듯이 점점 희미해질지 모른다. 그러나 이 또한 자연스러운 일일 게다. 추억할 일이 많으면 앞으로 기억될 일들이 적을 게 인생의 순리이지 않을까? 와인의 추억은 가볍게 놓아주지 않으면 된다. 남은 반평생 더 잊지 않아야 할 일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사랑스런 아이들 - 타타와 하쿠]

 



[내 생애 최고의 와인 : 1위 다비드 듀방 에세조, 3위 샤토 까농, 4위 사토 라투르]

 




[보르도 1등급 라투르, 마고, 무통로췰드, 북미 컬트 와인 제외시 절대강자인 오퍼스 원]

 




[ 보르도 1등급 와인의 세컨드 : 르 쀼티 슈발(슈발블랑, 르 페티트 무통(무통로췰드, 파빌롱 마고(마고)]

 





[생떼밀리옹의 1등급 와인 앙젤루스, 파돈 드 앙젤루스(앙젤루스 세컨드), 1등급에 필적하는 슈퍼 세컨드(2등급 중 상위권) 피숑 롱그빌 바롱, 꽁테스 라랑드, 꼬스테스투르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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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달 가듯이 걷는 로마 길 - 로마로 가는 길 | 예술/스포츠/여행 2022-08-25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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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로마로 가는 길

김혜지 저
책구름 | 2022년 07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걷기 인프라가 부족하여 날 것의 냄새가 물씬한 비아 프란치제나. 순례객의 민낯과 심연의 나신을 오롯이 들어내주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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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겐 로마와 커다란 악연이 있다. 원데이 렌즈를 무리하게 떼 내다 생긴 심각한 각막 출혈로 인근 대학 병원에서 응급 치료를 받은 후 애꾸눈 잭이 되어 남은 여행 일정을 간신히 마쳤다. 이 책을 통해 7년 남짓 되어가는 이 악연을 해소하기 위해 언젠가 나도 작가처럼 로마로 가는 길을 온전히 걸어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감을 갖게 되었다.

 

  로마로 가는 길을 뜻하는 비아 프란치제나는 산티아고 길에 비해 인프라가 열악하다. 순례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프랑스길 루트에 비하면 말할 것이 없거니와, 나름 불편하다고 평가되는 포르투갈길 루트에 비해서도 조악한 듯하다. 저자가 걸은 루카 ? 로마 코스가 비아 프란치제나를 대표할 이탈리아 구간의 하이라이트이지만  안내 표시가 부족하고 하루 일정 중에 보급하거나 쉬어갈 곳 마땅치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당연히 편의 시설과 묵을 숙소가 여의치 못하다. 물가 역시 차이가 꽤 나서 순례 비용이 훨씬 많이 든다. 이처럼 날 것의 느낌이 물씬 풍기고 트레킹 하기에 부적해 보이는 비아 프란치제나는 역설적으로 순례객들에게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상당히 제공한다. 자신도 모르게 겹겹이 둘러 씌웠을 가식의 허물을 가감 없이 벗어내어 오롯이 민낯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심연의 나신을 드러내게 해 준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성지순례길은 배고픔, 목마름, 피로, 배출의 욕구까지 무엇이든 한계 직전까지 느끼게 해 주었다. 그 속에서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마주했다. 어느 정도까지 인내심을 가진 사람인지,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인지.”

 

  작렬하는 태양 아래 마실 물이 떨어지고 행동식이 여의치 않는 극한 상황에 처하면 누구나 자신의 바닥을 드러내어 원치 않아도 내면의 깊이를 보여준다. 저자 부부가 아닌 다른 순례객들이라면 달랐을까? 순례 경험이 많고 트레킹에 익숙한 이들일지라도 큰 차이가 없을 거라 추측된다. 그만큼 걷기 인프라가 최적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 내외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고 지칠 때마다 교통편으로 점프할 유혹에 빠지곤 했다. 다행히도 순례길을 수호하는 천사가 나타나 끝까지 도보로 완주하도록 격려해주었다. 30번 코스에서 만난 스베아는 같이 택시를 타고 힘든 구간을 넘어가자는 작가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나는 오로지 걷기 위해 이 길을 떠나 왔어.” 그녀가 작가에게 해 준 말이다. 그러면서 부부에게 로마까지 반드시 걸어갈 것을 신신당부하기까지 한다. 이 대목에서 내년 산티아고 순례길 준비를 하며 동행할 누나를 배려한다는 핑계로 피레네 산맥을 넘을 2일 차에 배낭 하나를 동키로 보낼지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남은 배낭은 내가 짊어지겠지만 걸을 때 필요 없을 무거운 짐은 동키 편에 보내게 되니 걷는 고행이 줄어드는 데 마치 칼도 뽑기 전에 집어넣을까 주저하는 무사와 다름없다는 느낌에서다. 작가 부부는 12일째에 버스로 이동을 해야 했다. 일정상 종착지에 묵을 숙소가 없어 다음 날 목적지까지 버스로 가서 숙박을 한 다음 되돌아와서 배낭 없이 걸었다. 배낭 하나 벗었을 뿐인데 죄책감이 들어 그렇게 마음이 무거웠단다. 마음이 찔려 누나에게 여쭤보니 동키를 쓸 생각이 전혀 없단다. 누님의 굳은 의지 덕분에 천만다행으로 우리 남매는 37일로 예정한 순례 일정을 죄책감 없이 걸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자면 남부 유럽 국가들의 공통된 정서를 체감하게 된다. 바로 사람 사는 ‘정’이다. 밀라노, 베네치아, 제노바 같이 북부 이탈리아인들은 기질적으로 독일인과 비슷한 면이 많은 듯하다. 너무 합리적이어서 경우에 따라서는 차갑게 느껴진다. 작가가 출발한 토스카나의 루카에서 로마로 향해 갈수록 남유럽 특유의 오지랖 넓은 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 작가는 지금 거주하는 베네치아보다 로마가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하다고 하는데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탈리아를 달랑 13일만 경험한 내가 얼마나 안다고 이렇게 단정할 수 있을까? 영화 ‘웰컴 투 사우스’ 때문이다. 영화에서 밀라노 사람들에게 이탈리아 남단은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오지라는 선입견이 강하다. 그러나 막상 카스텔라바테로 징계성 전출을 당한 주인공은 남부에 대한 잘못된 편견에서 벗어나 현지인들과 친해진 끝에 남부 이탈리아의 정취에 흠뻑 매료된다는 줄거리이다. 영화 내내 남부 시골의 아름다운 전경에서 우리네 남해안을 떠올렸다. 

 

  우리나라의 이미지는 대체로 이렇다. ‘끈끈한 정’, ‘한’, ‘다이내믹한 민족성’, ‘삼천리 금수강산’. 어릴 적 유신교육의 영향 때문인지 20대까지 한국만큼 아름답고 인정 넘치는 나라가 없다고 은근히 자부심을 가졌었다.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단견이었는지! 남유럽도 우리네 못지않은 인정이 넘치고 아름다운 풍광과 문화유산이 곳곳에 들어차 있다. 토스카나의 자부심 시에라와 피렌체, 전문 사진작가도 욕심 낸다는 소도시 산 퀴리코 도르차, 이탈리아에서도 손꼽는 캄포 광장과 시에라 대성당, 단테가 지옥의 거인이라 부른 몬테리 지오니 성의 망루. 우리네 문화유산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이탈리아를 조상 덕분에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라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를 끊임없이 지켜내려는 후손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문화 강대국은 없었을 것이다. 경주 국립박물관을 공사하다 발견한 신라 유적과 청계천 복구를 하는 과정에서 나온 조선 초기의 귀중한 유물을 단지 공기 준수를 이유로 적당히 묻고 덮어 버리는 우리가 반면교사해야 할 일이다.

 

노와 몬탈치노의 무성한 포도밭과 인상적인 와이너리 사진에서 나는 박목월의 ‘나그네’를 조그맣게 되뇌었다. 남도 삼백리 외줄기 길을 구름에 달 가듯, 타는 저녁놀처럼 술이 잘 익어가는 마을을 구름에 달 가듯 가는 나그네. 토스카나의 절경을 걸었던 작가 내외의 모습이다.

 

  작가가 당초 예정했던 여정은 10일 200km, 라디코파니까지였다. 그러나 이심전심으로 부부는 로마까지 400km를 걷기로 계획을 바꿨다. 처음 목표보다 일정을 배로 늘린 이유는 그만큼 비아 프란치제나를 걸으며 무언가 위로받았던 데 있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과 그로부터 연유한 스트레스를 치유하고 임시방편으로 이탈리아 여행 체험을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의 콘텐츠를 확보하자는 취지로 떠난 순례길이었다. 그런데 순례를 하며 어머니와의 소중한 여행을 기억해냈고 코로나로 아등바등했던 스스로를 반추했으며 바닥을 드러내는 통장에 숨통이 조여왔지만 유튜브에서 ‘즐거운 척 행복한 척’ 타인을 의식한 플렉스에 종국에는 울음을 서럽게 토해냈다. 이처럼 고통스러운 허물을 벗게 되자 마침내 그녀는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 내어 로마로 가는 길에 다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녀 말대로 ‘로마로 가는 길은 너무 고달파 눈물이 나고 그만하겠다고 선언만 하면 되는 길인데 걷다 보면 계속 나아가야 할 길이 명확하게 보이고 매 순간 포기하고 싶으나 편안하기 위해 떠나온 길이 아니었기에’ 불편한 날 것이 가득한 이 길이야말로 그녀에겐 최고의 선물이었다.

 

  작가가 인용한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의 한 구절, ‘걷는다는 것은 대개 자신을 한곳에 집중하기 위하여 애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가 어울리는 길이 바로 비아 프란치제나이다. 이 길이 더 다듬어져서 날 것의 생명력을 잃기 전에 이탈리아 구간 1,020 km를 오체투지 하듯 나를 던지며 걸어보고 싶다. 

 

  그간 순례길 기행을 다룬 대여섯 권의 서적을 읽었다. 책마다 작가가 강조하는 집필 방향이 조금씩 달라 어느 하나가 더 낫다고 하기 애매하다. 각자의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로 가는 길'은 최소한 문장력에서 가장 낫다는 평가를 할 만하다. 소설에서 접할 수 있을 만한 묘사와 비유가 두드러진다. 논리적인 글에 자신있는 나로서는 흉내내기 힘들 정도다. 순례길을 걷는 생동함있고 아름다운 문장을 보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이 책을 꺼내들기를 추천한다.

 

"YES24 서평단 자격으로 리뷰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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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의 역사

김기협 저
돌베개 | 2022년 08월

 

모집인원 : 3명
신청기간 : 8월 26일 까지
발표일자 : 8월 29일

 

 

오랑캐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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