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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죽음이 멀지 않았다 | 인문 2022-09-27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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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자유죽음

장 아메리 저/김희상 역
위즈덤하우스 | 2022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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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어버림, 그게 죽음이다.

-사르트르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뭘까? 죽음이라는 불청객이다. 최선을 다하며 끝까지 살고자 하는 것이 생명의 법칙이다. 어느 누구도 생명의 법칙을 파괴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죽음에 따라 미세한 차이가 있다. 일상적인 그러니까 늙고 병들거나 아파서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은 자연적인 죽음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극한상황에서 자살(suizid)을 선택하는 것은 비자연적(非自然的)인 죽음이다.

자살에 대한 거부감은 극명하다. 자살은 단단한 진리가 아니다. 오히려 단단한 흉터로 남는다. 흉터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자살은 죽음을 담보로 하여 삶에 반항한다. 반항하는 이미지가 차곡차곡 쌓일수록 삶으로부터의 도피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만약에 삶을 질식시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이성은 마비되고 탈출이라는 고통스러운 감각은 살아남게 된다. 여기까지 충분히 면죄부가 허용된다. 그럼에도 자살에 대한 죄책감이 피부에 와 닿게 되면 이상하게도 불편하였다.

우리는 사회적인 잣대로 뉴스 화면에 나오는 자살을 수동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장 아메리는『자유죽음』에서 우리가 제대로 인지 못하고 있는 자살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자살은 자살을 둘러싼 객관적인 사실들의 결과다. 분명 어딘가 원인이 있으며 원인에 따라 자살이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자살자에 대한 가혹한 상황이 전부일까? 자살자는 어쩔 수 없이 죽어야 하는 운명의 수레바퀴일까?

그래서 ‘자유죽음(freitod)’을 생각할수록 고민이 깊어졌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모두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모두가 하는 고민이다 보니 결코 가벼운 문제는 아니라는 것. 자살과 죽음은 죽음이라는 범주에서 보면 서로 의미가 충돌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살과 죽음 사이에 자유를 놓고 생각하면 낯선 의문들이 생겨난다. 자살이 의미하고 있듯 자살은 자유의 영역이다 보니 자유죽음과의 경계선이 흐려진다. 나를 찌르는 대상이 남이 아니라 나이며 그런 내가 죽음에 이르는 것이 자유죽음과 비슷한 궤도에 있다.

이렇게 자살과 자유죽음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하면서도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무엇이 타당한 선택인지 선명해진다. 자유죽음을 택할 것이다. 삶의 무게감이 시시포스가 밀어 올리는 바위와 같더라도 살기 위해서 자살을 부정하게 한다. 그럼에도 ‘에셰크(echec: 돌이킬 수 없이 실패하고 만 것을 적시하는 단어)’를 구원하는 자유죽음이 이미 내 몸속에서 같이 살고 있다는 위로를 받았다.

어디 그뿐인가. 자살에 대해 질문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일찍이 비트겐슈타인은 “대답이 있을 수 없는 질문은 던지지 마라.”고 했다. 바꿔 말하면 대답 자체가 곤란한 질문이다. 자살은 곤란한 질문이지만 대답할 수 있다. 하지만 자유죽음은 정말이지 곤란한 질문이다. 어쩌면 대답하기 어렵다고 해서 곤란한 질문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삶에서 정말 중요한 질문을 잃어버리게 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삶의 피곤함과 좌절감이 켜켜이 쌓일 뿐이다.

그래서 아우슈비츠 생존작가인 장 아메리는 ‘자유죽음’이라는 침묵을 깨트리고 있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죽음을 성찰하면서 자유죽음에 대한 진실에 접근하고 있다. 자살과 자유죽음을 둘러싼 수동과 능동의 관점은 자살자의 내면에 얼마큼 접근하느냐에 달려 있다. 자유죽음은 자살자의 내면으로 들어가 삶의 밑바닥에 가려앉아 있는 죽음을 마주한다. 그리고는 “살아야만 하기 때문에 살아야만 하는 인생은 없다.”라고 하며 실존적 부조리를 파헤치고 있다.

실존적 부조리에 따르면 우리에게 생명보다 소중한 가치는 없다. 생명은 ‘없음에서 있음’이다. 이와는 달리 죽음은 ‘있음에서 없음’이다. 우리는 어떠한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견디며 살아야만 하는 정언명령을 따라야 한다. 비록 고통스럽다고 하더라도 있음이 없음보다는 대단히 허무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없는 마당에 삶이 무슨 소용이라 말인가? 생명의 효율성을 최고로 여기며 살아도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삶은 정반대로 작용했다. 오히려 생명의 올가미에 둘러싸인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아 스스로 무너질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생명이 아닌 자유죽음의 관점으로 보면 이야기는 사뭇 다르다. 가령, 운동선수는 부상을 당해 더 이상 운동할 수 없다는 괴로움에 못 이겨 그토록 안타까운 눈물을 흘린다. 물론 운동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얼마든지 먹고 살 길은 있다. 문제는 먹고 사는 게 아니라 눈물 흘리는 이유를 우리가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느냐에 있다. 운동이 없으면 죽을 것 같은 선수에게 삶의 가치를 호소하는 것은 회복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다. 더구나 죽을 듯 살아가는 정신적 황폐함으로 무작정 손을 놓아버리는 것은 개인의 희생양이라는 주홍글씨를 남기게 된다.

자유죽음이 스스로 손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정신착란이라는 몹쓸 병에 걸린 것은 아니다. 죽음의 방식으로 ‘손을 내려놓는 것’은 타인의 의지가 아니다. 타인의 의지에 일어나는 죽음이 ‘사건’이라고 한다면 스스로 손을 내려놓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자유’를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 말대로 자유인은 언제까지 살 것인가 스스로 결정한다. 그리고 자유죽음을 굳이 ‘손’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나와 내 몸은 하나이면서 둘’이라는 데 있다. 이러한 까닭에는 ‘나’라는 것이 공간이라면 내부세계인 자아와 외부세계인 내 몸은 시간이라는 주장이 담겨져 있다. 따라서 손을 내려놓으면 시간이 사라진다.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려보면 시간이 사라진다는 것은 더 이상이 근심이 없다는 것이다.

문득, 왜 자유죽음인가? 라는 문제를 둘러싼 고민을 해봤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살이 아닌 자유죽음은 왜 사는가? 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왔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니까, 혹은 삶의 부당함에도 구토를 참아가며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부조리에 맞서 저자는 자유죽음이라는 ‘새로운 휴머니즘’을 제시하고 있다. 새로운 휴머니즘은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말한다. 견디기 힘든 모멸의 순간, 마음의 문을 필사적으로 잠갔을 때 삶이 얼마나 쉽게 부서지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과 자유는 인간의 특권이다. 어느 누구도 인간의 특권을 대신할 수 없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오직 자기 자신만이 책임질 수 있는 존재다. 만약에 인간의 존엄과 자유가 없다면 우리는 동물과 다를 바 없다. 무엇보다도 동물은 스스로 죽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동물에게 없는 부음(訃音)이 인간에게만 있다는 것은 죽음을 단순히 슬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죽음을 삶의 진공상태가 아니라 집합체로 믿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자살이 만연하고 있는 ‘자살문화’에서 힘겹게 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유죽음을 자살과 곧바로 연결해서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낙인이다. 자유죽음은 장례식장에서 만나는 죽음이 아니다. 장례식장에 가본 사람은 느끼게 된다.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하지만 자유죽음은 죽음으로 뛰어내기 전 출구를 찾아 나선다. 자유죽음을 둘러싼 옳고 그름은 폭력적이다. 결과적으로 죽음의 경계선에서 자유는 삶을 파괴하지 않으며 더더욱 자살을 응원하지 않는다. 누구나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는 것처럼 누구나 존엄하게 죽을 권리도 있다.

이러한 메시지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저자의 묵직한 고백을 읽으면서 ‘자유죽음’이라는 네 글자가 죽음의 율법으로 각인되었다. 그리고는 자유죽음을 불청객이 아니라 친절한 손님으로 맞이하니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삶의 어느 순간에 자유죽음이 찾아온다는 것을, 우리가 추구해야 할 존엄한 삶을 더 발견하게 되었다. 자유죽음이 결코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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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리고 사랑하는 보물 | 어린이 2022-09-02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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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행복한 부자학교 아드 푸투룸 1

리치보이 글
아이휴먼 | 202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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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YG 384 b호. 미하엘 엔더의『모모』에 나오는 회색 신사입니다. 회색 신사는 시간 저축은행의 영업사원으로 사람들에게 시간을 저축하라고 합니다. 돈을 은행에 저축하는 것처럼 시간을 저축하라는 것이지요. 그러면 시간을 저축한 만큼 이자까지 더해 시간을 돌려준다는 것입니다. 회색 신사의 말을 듣고 보면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많이 행복하니까요.

그런데 회색 신사는 왜 나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까요? 시간을 저축한다는 것은 매우 그럴듯한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알고 보면 회색 신사는 사람들의 소중한 시간을 도둑질합니다. 하루하루가 아름답기 때문에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게 좋은 일은 아니잖아요. 누구나 시간을 절약하며 저축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1분, 아니 1초까지 각박하게 시간을 아껴야 한다면 멘탈이 없어질 정도로 기회비용이 발생하게 됩니다.

만약에 시간을 돈으로 바꿔 생각하면 어떨까요? 돈이 왜 필요한지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뭔가를 하고 싶을 때나 사고 싶을 때 정작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돈이 없으면 불편한 게 하나둘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자신감이 떨어지는 게 가장 큰 고통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지? 궁금해 하며 백만장자의 꿈을 꾸며 살고 있습니다. 백만장자가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리치보이의『행복한 부자학교 아드 푸투룸』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 100% 꿈을 100% 현실로 바꿔주고 있습니다. 100%라고 하니 뭔가 대단한 마법이 숨어 있을 것 같은데 놀랍게도 ‘아드 푸투룸’의 비밀은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부자가 되는 도깨비방망이, 알라딘 요술 램프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행복한 부자를 바란다는 50%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그리고 나머지 50% 실천을 해야만 가능합니다. 막연한 생각으로 부자가 되겠지, 라고 기대하지 마세요. 로또1등에 당첨되는 확률 8,145,060분의 1보다 낮아 마른하늘에 돈벼락을 맞을 일을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저자는 아이들과 ‘아드 푸투룸’에 입학하는 신기한 모험을 합니다. 만약에 책을 읽지 않는 아이 때문에 고민이라면 ‘아드 푸투룸’은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드 푸투룸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도서관이 있습니다. 도서관에 들어서는 순간 평범했던 아이들이 거인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부자가 되는 방법과 책이 연결되어 있으며 부자의 눈높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눈높이가 1미터 높아진다고 했습니다. 책을 1,000권 읽으면 1미터가 커지는 셈입니다. 물론 책을 읽지 않아도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은 돈 많은 부자가 아니라 ‘행복한 부자’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입니다. 남들보다 돈이 많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행복한 부자에게 중요한 내면의 보물은 ‘부자량’이 아니라 ‘독서량’입니다.

한편으로, 시간 관리가 엉망이라고 한다면 ‘타임 뱀파이어’를 조심해야 한다고 합니다. 타임 뱀파이어는 시간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쪽쪽 빨아먹기 때문입니다. 타임 뱀파이어의 종류는 아주 다양합니다. 가령, 요즘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틈만 나면 SNS을 하거나 ‘카톡 카톡’ 귀가 따가울 만큼 알림을 받고 댓글을 다느라 손가락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바쁩니다. 이럴 경우 머리는 정작 텅 빈 상태가 되고 마는데 ‘알림 왔숑’으로 불리는 타임 뱀파이어가 범인입니다. 또한 뭐든지 하기 싫다고 짜증을 내고 있다면 ‘귀차니즘’ 타임 뱀파이어를 의심해봐야 합니다.

이렇듯 아드 푸투룸은 입시와 성적으로 전쟁을 해야만 하는 여느 학교와는 다르게 ‘부자’라는 과목이 흥미롭습니다. 말 그대로 아드 푸투룸은 ‘행복한 부자학교’입니다. 행복한 부자 학교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돈의 중요성을 가르칩니다. 단순히 돈을 용돈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가난한 부자의 나쁜 습관입니다. 반면에 행복한 부자는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하면서 돈을 경제적으로 관리합니다.

세상에는 많은 꿈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꿈은 뭘까요? 바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행복한 부자’입니다. 그래서 인지 알파 세대를 위한 ‘아드 푸투룸’에 입학하고 싶어졌습니다. 비록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저자의 이름처럼 ‘리치보이’가 되어 부자에 대해 현명해지고 싶어졌습니다. 나를 살리고 사랑하는 보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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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스토리젠터 채자영 “말을 잘한다는 건, 생각이 좋다는 것” | 채널예스 2022-07-2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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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h.yes24.com/article/view/51206


방송 현장의 아나운서로, 치열한 입찰 현장의 전문 프리젠터로 일해온 채자영 저자. 그는 ‘말하기’를 업으로 삼으며 누구보다 ‘말 잘하는 법’을 깊이 고민한 사람이다. 정확한 발음으로 청중과 시선을 맞추고 한 마디도 틀리지 않으려 애쓰던 시간을 지나자, 어느 순간 말하기의 본질이 보였다. 지난 10년여의 경험으로 그가 깨달은 것은 단 하나다. 좋은 말하기에는 좋은 생각과 진심이 담겨 있다는 것. 

『말가짐』은 단순한 스피치 기술이 아니라, 말을 잘하기에 앞서 내 삶을 먼저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채자영 저자는 ‘이야기’와 ‘프리젠터’의 합성어인 '스토리젠터(Storysente)'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좋은 말하기는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해야 가능하다. 공동체와 조화롭게 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자 타인을 위한 배려의 언어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좋은 말을 하려면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 

말 잘하는 스킬을 알려주는 책이라고 예상했는데 아니었어요. 말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담은 책이었죠. 

무대에서 말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 “말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아요. 자연스레 말에 대한 고민을 깊이 하게 됐죠. 보통 스피치라고 하면 제대로 발성하는 법, 무대에서 제스처하는 법 등을 떠올리시는데요. 현장에 있으면서 진짜 중요한 건 단순한 스킬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보다 나의 진솔한 이야기를 말 속에 담는 게 먼저였죠. 한 번에 끝나는 무대가 아니라, 누구나 일상에서 말하기의 힘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의 생각이 좋다는 말이다(21쪽)”라고요. 언제부터 이런 깨달음이 있었나요? 

전문 프리젠터라는 커리어를 시작하고, 처음 3년간은 일단 무대에서 나의 임무를 잘 마치고 내려오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준비한 발표를 완벽하게 한 날은 정말 기뻤고, 토씨 하나라도 틀리거나 말을 더듬은 날은 속상했죠. 그런데 3년 차가 지나면서 이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걸 저절로 체감할 수 있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요? 

저는 프리젠테이션으로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제가 준비한 말 한마디에 사람들의 눈빛과 표정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순간순간 느낄 수 있었어요. 무대에 올라가면 청중의 반응이 적나라하게 보이거든요. 그 반응을 즉각적으로 보다 보니, 어떤 말을 할 때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제 안에 쌓인 거죠. 

청중들은 발표를 완벽하게 하고, 뇌리에 박히는 멋진 명언을 말할 때가 아니라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 안에 단단히 세우고, 그 내용을 진심으로 믿으며 말할 때 비로소 움직였어요. ‘말’을 하나의 범위로 생각한다면, 스킬은 맨 끝이에요. 화룡점정처럼 용의 눈을 찍어주는 포인트죠. 정작 용의 형태를 만드는 건 ‘이야기’예요. 말 속에 담긴 이야기가 텅 비어있다면 말하기 스킬이 아무리 좋아도 전달되는 게 없죠. 

‘말가짐’이라는 제목도 이 생각에서 비롯된 거네요. 

언젠가 한국외국어대 중국언어문화학부에 계시는 나민구 교수님께 수사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교수님이 수사학의 개념을 설명하시면서 종이에 ‘몸, 맘, 말’이라고 쓰시고는 “이 세 가지가 사실은 하나의 단어에서 탄생했다는 설이 있고, 서로 선순환된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 이야기가 너무 좋더라고요. 몸-마음-말이 연결되어 있다면 결국 내가 바로 서야 좋은 말하기를 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몸가짐’, ‘말가짐’이라는 말처럼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말가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나를 표현할 언어 찾기 

말을 잘하려면 좋은 생각을 먼저 가져야 한다고 하셨어요. 좋은 생각을 기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책에 소개한 ‘문장 수집 노트’를 쓰면서 큰 도움을 받았어요. 계기는 취업 준비였죠. 언론 고시 준비를 위해서 멋진 명언을 모으는 리추얼을 시작했거든요. 원래는 작문 시험에 인용하기 좋은 문장을 수집하려던 게 점점 이상하게 흘러갔어요. 어느 순간부터 내 상황과 어울리거나, 나에게 위로를 주는 문장을 모으고, 그 아래에 그걸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도 함께 적게 된 거예요. 

그러다 보니 꼭 멋진 문장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들은 말’, ‘지나가다 떠오른 생각’ 등도 쓰게 되었죠. 지금은 이걸 ‘인생 노트’라고 불러요. 노트 몇 권만 펼쳐봐도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무엇에 가치를 두고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있거든요. 살다 보면 세상에 나를 보여줘야 하는 기회가 종종 생기잖아요. 흔하게는 면접처럼요. 그럴 때 이 노트가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자아 성장 큐레이션 플랫폼 ‘밑미’에서도 문장 수집 리추얼 모임을 진행하고 계시죠. 함께 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초반에는 생각을 쓰는 게 이렇게 어려울지 몰랐다고 하다가도, 한두 번 경험이 쌓이면 점점 재미있어 하세요. 사실 누구나 처음에는 자기 생각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아차리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타인의 문장을 빌려 내 생각을 알아가는 거죠.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나의 언어를 가지는 시간이 꼭 필요해요. 

문장이 어느 정도 쌓이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말과 생각의 맥락이 보이거든요. 결국, 나다움을 진정성 있게 표현하는 건 내가 진짜 좋아하는 언어로 나를 설명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문장 노트를 쓸 때는 단순히 필사만 하는 게 아니라, 그 문장을 보고 느낀 내 생각을 함께 적어야 해요. 문장을 매개로 내 삶의 맥락을 찾는 게 중요하니까요. 

“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스스로 언어를 찾아야 하는 시대가 왔다(89쪽)”는 생각으로 2015년부터 ‘스토리젠터’라는 이름으로 본인을 소개하고 있죠. 인디팬던트 워커로 사는 독자들을 위한 네이밍 팁을 나눠주세요. 

요즘은 직업이 너무 다양하다 보니 기존의 언어로 업무를 설명하기가 어렵죠. 그래서 세상이 부여하거나, 회사가 나에게 준 타이틀 안에 갇히면 어느 순간 한계가 느껴지는 것 같아요. 제가 연남동 기록상점에서 ‘새 이름 짓기’라는 클래스를 진행했는데요. 그때 ‘나에 대한 100가지 키워드’를 적고, 여기서 힌트를 얻어 새 이름을 만들어보는 활동을 했어요. 키워드는 뭐든 상관없죠. ‘나를 설명할 때는 이걸 빼놓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모두 적으시면 돼요. 좋아하는 음악, 별명, 하는 일 등이요. 중요한 건 가치 평가가 없어야 합니다. 멋있어 보이는 단어만 쓰려고 하면 ‘현재의 나’가 아니라 가고 싶은 방향만 보이거든요. 이 활동을 해보시면, 지금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서 네이밍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새 이름을 짓고 나면, 나의 정체성이 확장되는 느낌을 받을 것 같아요. 

맞아요. 또 나의 일에 대해서도 더 깊이 고민하게 돼요. 저도 스토리젠터라는 이름을 지은 뒤로 ‘이야기’의 중요성을 자주 말하다 보니, 그 키워드를 삶의 중심에 두게 되었어요. 사람들이 저의 일을 궁금하게 생각해주시는 것도 좋죠. “스토리젠터가 무슨 뜻인가요?”라는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한 번 더 저에 대해 말할 수 있거든요. 새 이름을 지었다면 자기가 먼저 자주 사용하고 불러주세요. 이름의 쓸모는 결국 누가 불러줬을 때 생기니까요.

 


다양한 이야기가 공존하는 세상이 오기를 

작가님이 생각하는 ‘말 잘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무대 위와 아래의 모습이 다르지 않은 사람이요. 저는 과거에 힘주는 말하기를 배웠고, 무대에서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믿었어요. 그런데 현장에서 오래 일을 하다 보니, 힘주지 않고 말하는 사람들이 어느 순간 눈에 들어왔죠. 자기를 억지로 꾸미지 않고, 멋있는 말을 첨언하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무대에서 보여주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정말 멋있더라고요. 그때부터 말하기에 대한 가치관이 확 바뀐 것 같아요.

공식적인 말하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인가요? 

청중이 누구인지가 가장 중요해요. 똑같은 콘텐츠를 말한다고 하더라도, 누가 듣는지에 따라서 전략이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그래서 저는 발표를 앞두고 듣는 이가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상상해요. “누구에게나 가닿으려 하는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가닿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다수가 흘려듣더라도, 단 한 명이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면 그게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처럼 공식적인 말하기에서는 청중이 듣고 싶어하는 말이 반드시 있어요. 말하기의 상황과 맥락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할 때 감탄을 자아낼 수 있죠. 먼저 내 이야기를 들을 사람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그 사람은 뭘 좋아할까? 어떤 관심사를 가졌을까? 지금 어떤 상황에 처했을까?’를 깊이 고민하면 해야 할 이야기가 보일 거예요. 

“말을 많이 한 날, 가슴에 10cm 되는 구멍이 뚫린 상상을 한다. 말하기를 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늘 이런 공허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온다는 말이었다(174쪽)”고 했어요. 일을 하며 소모되는 마음은 무엇으로 채우는 편인가요? 

평소에 말을 잘 안 하게 되는 것 같아요(웃음). 원래 저는 모임에 참석하고,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언젠가부터 말이 많이 줄었죠. 또, 너무 소모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날은 꼭 철학책을 읽거든요. 거기서 와닿는 문장을 만나면 너무 좋아서 책을 덮고 한참 생각하죠. 어떤 문장 하나가 마음에 훅 들어와서 빈 구멍을 채워주는 것 같아요. 

말을 잘하는 게 왜 중요한가요? 

좋은 말을 한다는 건 일상에서 꾸준하게 자기 생각을 수련했다는 의미이고요.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한 토대가 돼요. 물론 누구나 각각 자기를 표현하는 수단이 있을 거예요. 작가는 글로, 화가는 그림으로 생각을 표현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말로 나를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인생에 꼭 찾아오거든요. 그때 나를 올바르게 설명하는 건 너무 중요한 일이죠. 

꼭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라, 일상에서도 말하기는 타인에게 나를 정확히 이해시키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도구예요. '우리 사이에 말 안 해도 다 알잖아'라는 생각은 관계를 그르칠 수 있어요. 내가 어떤 마음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말해야 건강한 관계를 지속할 수 있죠. 

어떤 분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말하기를 주저하는 분들이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거나, 쑥스러움이 많은 분들은 어떤 자리에서 자기가 말을 많이 하는 게, 어쩌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말하기는 이기주의가 아니거든요. 자기의 생각을 타인과 나누는 건 좋은 관계를 맺는 시작이 돼요. 

한편으로는. 말로 인한 실수 때문에 말하기를 주저하는 분들도 계세요. 특히, 요즘은 언어 감수성이 민감한 사회이기 때문에 더 두려움을 느끼시는 듯한데요.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잖아요. 저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도전하는 사람이 정말 말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말이 와전되었다면 다시 진심을 전할 수 있는 것도 결국은 좋은 말하기에 달렸어요. 그러니 많은 분들이 말하기를 시도하셔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말’로 공존하는 세상이 오기를 바랍니다.




*채자영

아름답고 바른 우리말을 써야 하는 방송 현장부터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비즈니스 입찰 현장, 가장 정확한 언어로 나를 표현해야 하는 브랜딩 현장까지. 10년째 ‘말’의 본질을 탐구하며 ‘이야기’의 가치를 전하고 있다. 스토리 경험 디자인 그룹 필로스토리의 공동대표이자 브랜드 스토리텔링 전문가, 입찰 전략 컨설턴트, 브랜드 에세이스트, 유튜버, 모더레이터, 한국수사학회 교육이사, 두 아이의 엄마라는 다양한 정체성으로 살아가고 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인 ‘이야기’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 믿는 ‘프리젠터’의 합성어인 ‘스토리젠터(Storysenter)’라는 이름으로 철학과 예술, 비즈니스의 경계를 넘나들며 ‘세상에 꼭 전해져야 하는 이야기를 말하는 일’을 한다.




말가짐
말가짐
채자영 저
블랙피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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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향해 걷는 열 걸음

최진석 저
열림원 | 2022년 07월

 

모집인원 : 10명
신청기간 : 7월 22일 까지
발표일자 : 7월 25일

 

 

나를 향해 걷는 열 걸음

 

“중요한 것은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 그것뿐이지요”
최진석 교수와 함께 읽는
단 하나의 나로 살게 하는 인생의 문장들!


84일간 고기를 잡지 못한 노인의 이야기가 있다. 85일째 되는 날 아침, 바다로 나가기 전 노인은 “오늘은 자신이 있다”라고 중얼거리며 또 배를 탄다. 그리고, 고기잡이는 아니더라도 긴 시간 자신의 삶이 팍팍하고 이룬 것 하나 없다는 느낌에 허탈한 맴을 매일 도는 우리가 있다. 팍팍하게 지쳐가는 당신, 아침에 집을 나서며 노인처럼 “오늘은 자신이 있다”라고 중얼거릴 수 있는가? 일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람들은 부산하다. 어디론가 향해 가면서도 어디로 가는지 제대로 모른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찾는 나의 마음은 어디로 갔나.
최진석 교수는 “중요한 것은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 그리고 “단 하나의 나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우리에겐 정해진 ‘답’이 아닌, 꾸준하고 성실한 ‘질문’이 필요하다. 대답은 나아가기를 멈추는 소극적 활동이고, 질문은 전에 알던 세계 너머로 건너가고자 하는 적극적 시도다. 최진석 교수는 책 읽기를 ‘마법의 양탄자’를 타는 일에 비유한다. 하늘을 나는 융단에 몸을 싣고 ‘다음’을 향해 가는 일. 책을 통해 쌓은 높은 지혜는 인간을 ‘다음’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다. 인간은 머무르지 않고 변화하는 존재이기에 멈추면 부패하지만 건너가면 생동한다. 건너가기를 하는 삶이 가장 인간다운 삶이며, 책 읽는 습관을 쌓으면 그 내공을 더 키울 수 있다.
이 책은 2020년 7월부터 2021년 4월까지, 『돈키호테』 『어린왕자』 『페스트』 『데미안』 『노인과 바다』 『동물농장』 『걸리버 여행기』 『이솝 우화』 『아Q정전』 『징비록』 등 열 편의 문학을 함께 읽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독서운동 ‘책 읽고 건너가기’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였다. 모두 ‘진짜 나’를 발견하기 위해 끝없이 질문하며 탐험하는 인물의 이야기거나,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자신을 향해 걷지 못하는 미련한 인물의 이야기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죽기 전에 완수해야만 하는 내 소명은 무엇인가.” 나에 대해 끝없이 질문하게 하는, 열 편의 문학에 숨어 있는 인생 문장들을 통해 진짜 자신이 원하는 삶에 대해 진심을 다해 묻고 다음을 향해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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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요일 밤의 블랙홀 | 채널예스 2022-06-20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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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플래쉬

돌리던 채널을 멈추게 하는 마성의 영화가 있다. 남자들에게 독보적 1위는 <타짜>겠지만 이에 못지않은 영화를 하나 더 꼽는다면 나에게는 <인터스텔라>다. 지난 일요일 밤 무심코 누르던 채널 버튼의 궤도는 <인터스텔라>에 걸려버렸고, 내 시간은 블랙홀의 강력한 중력에 걸린 듯 엔딩 크레디트까지 빨려 들어갔다.

나에게 특별한 월요병 치료제가 있다면, 일요일 밤에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를 정주행 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 <인터스텔라>나 <프로메테우스> 그리고 조디 포스터 주연의 97년 작 <컨택트> 같은 영화다. 차원과 은하계 너머 미지의 세계로, 인류의 기원 같은 원대한 질문의 답을 찾는 여정을 다뤘다. 보다 보면 지구의 지표면에서 직장인이 느끼는 출근하기 싫은 감정 따위는 하찮게 느껴지기 때문일까? 은하계의 티끌만 한 존재인 나의 월요병이 대단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며 그럭저럭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이 철저한 자기 객관화의 장점일지도 모른다.

물리적 기준에서 내가 우주 속 티끌이라는 것은 반박의 여지가 없지만, 존재론적 측면에서 어쩐지 받아들이기가 힘들 때가 있다. 리처드 도킨스 같은 진화생물학자는 인간 역시 끝없는 유전자의 자기 복제 산물임을 강조했고 과학적으로도 진화의 증거가 있지만,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우연한 세포분열의 반복이 만들어 낸 것이라니? 그렇게 받아들이기에 나는 나에게 있어 정말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이니까.

내가 <프로메테우스>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인류 기원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인류를 창조한 '엔지니어'라고 불리는 외계의 존재들에게, 우리를 만든 이유를 묻기 위해 떠나는 엘리자베스 쇼 박사와 탐사대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과학자인 엘리자베스 쇼 박사도 인류의 기원이 궁금했지만, 예술가인 고갱도 같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그의 작품은 우리가 왜 존재하게 되었고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이 질문은 음미할수록 벗어날 수 없는 본질적 호기심에 빠지게 한다. 우리는 왜 존재하게 되었을까. 우연한 진화의 결과물일까? 혹은 영화에서처럼 어떤 의지의 산물일까? 왜 우리는 최소한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스스로의 존재에 물음을 던지고 고민하게 된 걸까? 오랜 시간 인간은 종교와 예술, 철학 그리고 과학이란 도구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리고 개인의 신념에 따라 답을 내린 사람도 있고 여전히 물음표를 지우지 못한 사람도 있다.

여전히 물음표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나 같은 부류를 위해, 리들리 스콧 같은 영화감독은 <프로메테우스> 같은 영화를 만들고, 나사에서 만든 로봇 큐리오시티는 8천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화성의 사막에서 지금도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인류는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 혹은 내가 죽게 되면 알 수 있을까?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인류가 가진 강력한 힘인 상상력은 앞으로도 <프로메테우스>나 <인터스텔라>보다 더 블랙홀 같은 영화를 만들어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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