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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저/왕은철 역
현대문학 | 2007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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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곳으로 가는 길에 벚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사람들은 벚꽃이 하늘거리는 빛깔의 향연 아래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따사로운 봄날의 오후였습니다. 일찍이 소동파 시인은 춘소(春宵)라는 시에서 ‘춘소일각지천금(春宵一刻指千金)’이라고 했습니다. 풀이하자면 봄밤의 일각은 천금의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봄날의 밤이 이런데 낮은 이보다 더 할 것입니다.


내가 그곳으로 가고자 했던 것은『천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이 두툼한 책은 아프카니스탄이라는 나라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주는 할레드 호세이니의 장편소설입니다. 전쟁, 살인, 약탈, 강간…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가슴이 물컹거렸습니다. 아프카니스탄의 나쁜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비극입니다. 더구나 폭탄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터집니다. 최소한의 사람에 대한 예의조차 없습니다. 그러니 폭탄이 터지는 밤을 한 순간이라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카불의 사진전」을 보고 싶었습니다. 눈으로만 읽었던 그곳 사람들의 참상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안의 숨은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비록 두려움의 정체를 29장의 사진이 다 보여줄 수 없었지만 어쩌면 숫자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마리암과 라일라 같은 두 여자의 영혼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29장의 사진 하나하나를 볼 때 마다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사진이 나를 보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천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그만큼 절실했습니다. 이 책은 내 가슴을 슬프게 지나갔습니다. 그럴 때마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아프카니스탄의 참상을 보았습니다. 알듯 하면서도 알 수 없는 고통이 온 몸을 찌릿찌릿하게 만들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슬픔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남의 일이라고 하며 침묵했던 양심을 움직이게 했습니다. 더 이상 그곳이 파괴되지 않기를 희망했습니다.


페르시아어로 ‘꽃 속에 있는 물’이라는 뜻을 카불은 예로부터 문명의 십자로였습니다. 다양한 문화와 역사가 공존했으며 특히 한때는 불교의 중심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고대 인도에서는 카불을 이상의 도시로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18세기 유럽의 한 여행가는 ‘아시아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찬란함도 1979년 소련의 침공으로 공산주의 국가가 되면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암울한 역사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곧 공산주의에 맞서 무자히딘이 독립 전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무자히딘이 정권을 쟁취했을 때는 민족 간의 분열로 인해 수많은 내전이 수많은 피를 흘리게 했습니다. 전쟁의 당사자는 물론 평범한 사람들의 목숨이 오늘을 기약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면서 엄격한 이슬람주의로 인해 이 세상에서 가장 불안한 도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프카니스탄의 역사는 고통에 가깝습니다. 전쟁으로 인하여 내가, 내 가족 그리고 내 이웃이 금방이라도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억울하다거나 안타깝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누군가를 향해 원망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누군가가 무섭다고 고백하는 것이 오히려 맘 편한 일입니다. 누군가는 신(神)이기도 하고 민족(民族)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믿는 그들은 누군가를 믿지 않는 상대방을 철저히 파괴합니다. 가족도 예외는 아닙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딸을 강간하게 합니다.


생각해보면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6.25을 겪어야 했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흘렸던 눈물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여전히 그 눈물이 마르지 않고 있습니다. 전쟁은 삶의 모든 것을 파괴해버립니다.『천개의 찬란한 태양』에서도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가장 무서운 무기이라는 것을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는 또 다른 눈물이 눈시울을 젖게 했습니다. 조금만 건드려도 순식간에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바로 이슬람 국가의 뿌리 깊은 전통 때문입니다. 즉 여성들이‘부르카’를 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부르카는 눈만 빼고 온 몸을 가리는 옷입니다.


우리와 사는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나라든지 그들의 문화와 함께 사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르카가 여성의 차별과 희망을 상징하는 대명사된 것은 너무나 모순적입니다. 분명 그것은 감옥이었을 것입니다.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을 입고 한 평생을 숨죽이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이슬람 여성들이 사는 단 한 가지 방법입니다. 그것은‘타하물(참는 것)’입니다.


그동안 부르카를 입은 여성들을 보면 단지 독특한 의상을 입었다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라시드에 의해 여성의 아름다움을 송두리째 빼앗겨버린 마리암과 라일라를 생각할수록 타하물이 이런 것이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라시드는 전형적인 이슬람주의자입니다. 그는 하라미(사생아)로 태어난 마리암과 결혼합니다. 그때 그의 나이는 45세이었고 마리암은 15세였습니다. 그는 한 손에 코란을 또 한 손에는 돈으로 마리암에게 사소한 것 까지 조롱하고 경멸했습니다. 가령, 마리암이 “공산주의가 뭔데요?” “칼 마르크스가 누군데요?” 몰라서 물어보면 “춥고(입 닥쳐)”라고 쏘아댑니다. 마리암은 그와 결혼 생활하면서 두려울 때는 견딜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도 마리암이 라시드를 떠나지 않았던 까닭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남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요? 어쩌면 라시드보다 집이라고 해야 그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녀는 라시드와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에게 남아있는 것 중에서 집이 제일 소중하다고 믿습니다. 그녀에게 집은 먹고 자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삶의 굴레인 동시에 희망이었습니다.
만약 그녀가 집을 떠났다면 이야기는 사뭇 달라지겠지만 그 끝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제 목숨을 지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녀가 엄마가 되고 싶은 희망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입니다. 비록 아기를 낳다가 7번 실패했지만 그녀는 엄마가 된다는 것이 자기의 아까운 생을 사랑할 방법이라는 것을 진솔하게 들려줍니다.


마리암은 굳이 삶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설령 그렇게 마음먹었다고 해도 그럴만한 힘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위험천만하고 앞날은 민둥산만큼이나 갈색이었습니다. 그리고 죽음이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의 희망은 무모해보입니다. 더구나 딸 같은 라일라가 라시드의 둘째 부인으로 들어오면서 뜻하지 않는 반쪽 신세가 되어 버립니다. 이제 라시드의 집은 그녀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라일라 또한 전쟁으로 인해 가족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습니다. 결국 라일라에게 남아있는 것은 운명적으로 마리암과 함께 살아야 하는 라시드의 집 밖에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라일라는 딸을 낳고 아들을 낳습니다. 하지만 아들을 낳기 전에 라일라는 심각한 갈등합니다. 그녀의 딸은 사랑했던 타이크의 선물이었다면 아들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래서 라일라는 아들을 죽이기로 작정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차마 그러지 못했습니다. 라일라는 자신이 엄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나는 이 부분이 무척이나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두 여성을 괴롭혔던 수많은 고통을 보며 적지 않게 분노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녀들의 마음은 따뜻했으며 아물지 않을 것만 같았던 상처마저도 “나는 엄마야.”라고 말하던 잔잔한 외침이 아직도 귓속을 맴돌았습니다. 피보다 눈물이 날카롭기 때문일까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녀들이 참고 견뎌야 했던 아픔을 기꺼이 용서했기 때문입니다. 라일라가 라시드의 아기를 낳을 수 있었던 것도 마리암이 라일라를 위해 폭력적인 라시드를 죽일 수 있었던 것도 지금 이순간의 삶을 이해하고 행복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또한 라일라가 불안한 카불로 되돌아갔던 것도 용서와 함께 미래에 대한 부푼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카불의 미래가 없다고 하며 떠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라일라는 여자가 아니라 엄마가 되었으며 그곳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카불의 사진전」을 보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태양이 떠 있고 그 태양 아래 벚꽃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 나오는 마리암과 라일라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찬란한 인생을 보낼 수 없었습니다. 한창 꿈 많고 아름다울 나이에 오히려 삶과 죽음을 걱정해야 했습니다. 전쟁이 할퀴고 간 혼돈 속에서 웃음이 말라버린 얼굴은 건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두 여자는 마침내 엄마와 딸이 되었습니다. 정말 위대한 일이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한 살아가는 방법이 이 보다 더 극적일 수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짓밟고 있을 때 두 여자는 적이 아니라 동반자로 ‘사와브(착한 일)’의 진정한 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지 연약한 여자라고 해서 사랑받기 위한 사와브가 아닙니다. 그 보다는 사랑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와브! 이것이 매혹을 잃어버린 도시 카불이 말하는 위로의 메시지였습니다. 만약 사와브가 없었다면 카불의 비극은 여전히 포연(砲煙)이 자욱할 것입니다. 그것은 이슬람 여성들이 차별을 온 몸에 감싼 부르카를 입으며 망사로 세상을 보는 것 보다 더 흐릿합니다. 어쩌면 두 여자가 보여주는 가슴 떨리는 사랑과 우정 그리고 위로는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사와브입니다. 그것은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달라도 무방합니다. 찬란한 태양 아래 같은 인간으로 사는 삶의 문제입니다.


이 책을 통해 아프카니스탄의 고통을 봤습니다. 고통이라는 단어를 되씹을수록 가슴이 저렸습니다. 그것을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똑같이 고민해보고 싶었습니다. 피와 눈물로 얼룩진 아프카니스탄에서 폭력적인 한 남자의 아내가 된 두 여자의 운명은 이슬람 사회의 모순을 눈물겹게 합니다. 한편으로는 왜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걸까? 라는 고민 때문에 답답하다 못해 막막했습니다.


과연 신의 잘못일까요? 아니면 인간의 잘못일까요? 이 문제에 대해 카뮈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인간이 자유롭지 못하기에 이 세상 모든 악에 대한 책임이 없다면, 그 책임은 전능한 신에게 있을 것이다. 그 반면에 인간이 자유롭기에 그에게 책임이 있다면 신은 전능한 존재가 아닐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누구의 잘잘못을 논하기 보다는 우리 모두가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요? 폐허 앞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미래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제 우리가 정말로 가슴 벅차게 ‘사와브’를 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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