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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번역서-루이스와 톨킨의 판타지 문학클럽, 더 옥스퍼드 잉클링스 | 冊移野基 2020-06-02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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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래 걸려 나왔다. 나니아연대기와 반지의 제왕을 사랑한 만큼 루이스와 톨킨을 사랑했지만, 특히 톨킨은 경외에 가깝게 사랑했지만 힘든 작업이었다. 그러나 결국 나왔어ㅠㅠ.


루이스와 톨킨의 판타지 문학클럽

콜린 듀리에즈 저/박은영 역
이답 | 2020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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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되풀이되는 비극 | 상식 넓히고 교양 쌓고 2020-03-28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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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몽유병자들

크리스토퍼 클라크 저/이재만 역
책과함께 | 2019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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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면서 시작되었으며, 1918년 11월 11일 독일의 항복으로 끝난 세계적 규모의 전쟁이다. 이 전쟁은 영국·프랑스·러시아 등의 협상국(연합국)과, 독일·오스트리아의 동맹국이 양 진영의 중심이 되어 싸운 전쟁으로서, 그 배경은 1900년경의 '제국주의' 개막의 시기부터 고찰되어야 할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간략하게 소개된 제1차 세계대전은 이렇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으며, 전세계가 관여된 전쟁에 대한 기록치고는 간략하기가 이를 데 없다. 좀 더 길게 정리할 필요가 있기는 하다. 그래서인지 1014쪽에 달하는 두터운 책 <몽유병자들>의 저자는 마침 백과사전에서 제국주의 개막의 시기라고 한 1903년의 세르비아 국왕 시해 사건부터 다루기 시작한다. 전쟁이 터지기 십 년 이전부터 전쟁의 기미와 단서들을 끌어 모은 셈이다. 하나의 거대한 사건을 전후하여 어떤 것들이 얽히고 설키어 있을 것인지에 대해 그야말로 하나의 트리거에 불과한 것을 사건의 이유로 단정해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고자 하는 태도에 우선 신뢰가 갔다. 그리고 잘 썼다. 번역도 좋다.

세르비아 국왕 시해 사건은 이후 세르비아의 정치적 상황을 배태한 중요한 시발점이었다. 쿠데타와 쿠데타로 정권이 이어져나가면서 세르비아의 고통 받는 국민들에게 주어진 것은 범슬라브주의라고 하는 민족정신의 기치였다. 대(大) 세르비아의 복원에 대한 염원은 신화적 과거에 투영한 서사 민요를 통해 반외세 항쟁으로 이어졌다. 오스트리아-헝가리라는 이름의 강대국에서 프랑스라는 강대국으로 의지처를 옮기면서 세르비아는 오스트리아가 점령하고 있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반환을 부르짖으며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더욱 급진화된 민족주의자들은 흑수단으로 널리 알려진 ‘단결 아니면 죽음’이라는 비밀결사를 만들었다. 1903년 국왕 시해의 주동자들이 중심이 된 단체였다. ‘청년 보스니아’라는 단체의 활동가가 오스트리아인인 보스니아 총독을 자살 공격한 이후 민족주의 운동은 정치적 테러리즘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리고 세르비아가 돌려받고자 한 보스니아에 오스트리아의 차기 황제인 태자가 방문하기로 결정되자 당연한 수순으로 흑수단을 중심으로 암살이 계획되었다.

‘사실은 당연하지 않았을 수 있다.’ 

저자의 시선은 이 암살을, 파시치 수상을 필두로 한 세르비아 정부를 포함한 세르비아 안팎의 모두가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향했다. 심지어 이 황태자가 온건하고 개혁적인 정책을 펼 것으로 알려지자 세르비아 내의 강경한 기조가 허물어질까 두려워한 측면도 있었다는 부분까지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모두가 전쟁이 내다보이는 이 계획에 대해 각자의 입장에서 이해득실을 따지느라 머뭇거리거나 모른 체 하거나, 에두른 정보를 애매하게 흘리는 동안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진정한 이념 따위는 개나 줘버린 상황이었다. 민족주의는 이용 대상에 불과했다.

저자에 따르면 실체조차 모호한, 국민의 감성을 좌지우지하는 대 세르비아의 구호는 절대 불변의 진리라고 하는 왕좌를 차지했고, 이것을 지킨다는 명분만 있으면 무엇을 하든 상관이 없었다. 그게 전쟁이라고 해도 말이다. 오스만으로부터 얻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소유하고 있던 오스트리아가 악의 축으로 규정된 것에도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음을 저자는 밝히고 있다. 1939년 헝가리 작가 미아이 버비치는 군주국의 붕괴를 반추하며 이렇게 썼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지난날 우리가 증오했던 것을 상실해 후회하고 그것을 되찾고 싶어 눈물을 흘린다. 우리는 독립했지만 기쁨을 느끼기는커녕 벌벌 떨 뿐이다.’ 실제로 ‘세르비아로부터 자두나무 한 그루, 양 한 마리’(p.206)도 원하지 않으며 전쟁을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거듭 표명한 프란츠 페르디난트 제위 계승자를 저격한 어린 청년들을 제외하고 하는 말이다.

이 전쟁에는 이 나라, 저 나라를 막론하여 극단주의자들에게 찍힐 것을 두려워하는 수상, 중요한 사항을 누락하거나 도외시한 부주의한 외교관, 전쟁 영웅이 되어 사랑을 쟁취하려는 숱한 인간들이 개입해 있었다. 그리고 제국주의가 있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에 이어 멀리 일본까지 제국의 확장에 열을 올렸고, 독일은 오히려 이 경쟁에서 후발주자였다. 이합집산과 이중 삼중의 편 먹기가 난무했다. 이 두꺼운 책은 이렇게 각 열강들이 표면적으로 손을 잡았다가 놨다가 하는 이야기에 아주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다 추적하기에는 뇌에 과부화가 걸릴 지경이다. 결론은 이토록이나 숱한 요소들이 제1차 세계대전에 얽혀 있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찬찬히 끝까지 읽는 일을 숙제로 남겨 놓고(제1차 세계대전 연구자들은 침을 흘리겠지만 일반 독자에게는 좀 길다. 많이)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면 이렇다. 그리하여, 어처구니 없게도 전쟁이 터졌다는 것. 그리고 그 전쟁의 여파는 영원히 계속된다는 것. 더 중요한 것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 누구 하나의 똑 부러지는 잘못이 아니기에, 그 하나를 붙들고 책임을 물을 수 없으며, 그러는 일 자체가 부질없다는 것.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국의 이익이라고 하는 지상명제가 있고, 돌아온 민족주의의 감성이 기승을 부리고 있고, 대내외적으로 평화의 수호자로 자처해야 하는 대의명분이 있고, 판단에서 실수를 할 여지가 많은, 자신만의 신념으로 무장한 지도자들이 있고, 고래로부터 굳건히 섬을 이루는 우중이 있고,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들어라 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기꺼이 그 일을 할 우국지사들이 쇠털같이 많이 있으니 말이다. 더욱이 이 모든 가치들이 이현령비현령이고 보니 참, 난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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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전적 불가지론에의 옹호 | 상식 넓히고 교양 쌓고 2020-02-17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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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농경의 배신

제임스 C. 스콧 저/전경훈 역
책과함께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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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의 ‘배신’이라는 꽤 감정적인 제목의 이 책은 머리말 및 서론이 꽤 길다. 이 기다란 서론에서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던 것이 사실은 틀렸을 수 있다는 결론부터 제시한다. 상식을 깨는 이야기를 정성 들여 들려준다. 틀렸다는 말은 차라리 부드럽고, 사실은 정반대였을 수 있다고 구구절절 설명한다. 농경과 초기 국가의 형성이 문명의 발전에 따라 자연 발생적이고 필연적이었으며 서로 선순환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저자는 ‘초기 국가 형성이 대체로 강압적 기획에 의한 것이었음이 입증된다면, 홉스와 로크 같은 사회계약 이론가들에겐 너무도 소중한 국가의 비전은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p50.)’라고까지 했다. 이 말이 사실이면 인류가 쌓아온 지식의 커다란 지각 변동까지 감안해야 하는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깨지라고 있는 이론이라지만 혼란스럽기는 하다. 홉스와 로크에 대해 꽤 강력한 신뢰를 지니고 있던 독자는 이쯤에서 ‘그렇다면 나를 설득해 보시오’라는 다소 반항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문명의 씨앗이라 할 불의 사용에 대한 저자의 주장 역시 ‘설득해 보시오’라는 말을 다시 강조하게 만든다. ‘우리가 순전히 불에 의지하고 있다는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불은 실제적 의미에서 우리를 길들였다. 이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는, 어떤 것도 불로 익히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생식주의자들이 한결같이 체중이 준다는 사실이다(p72).’라는 대목도 그렇고, 사람이 감자를 길들이는 만큼 감자도 사람을 길들인다는 식의 이야기는 몇 차례에 걸쳐 나온다. 불이나 감자를 의인화하는 듯한 표현이 좀 거슬린다 할까. 사실 이 책은 논문에 버금가는 내용과 문체를 갖추었으면서 감정적인 비유나 유머를 더러 섞어 넣었는데, 그런 부분들이 다소 어색하기는 하다.

그렇기는 해도, 농경에 최적인 조건을 갖춘 자연환경만이 인간을 모여 살게 만들었다는 서사를 반격하는 이야기에는 수긍할만한 요소들이 많다. 농경을 제쳐두고 그저 채집하기 좋은 곳이라서, 수렵하기 좋은 곳이라서, 교통이 편리한 곳이라서 정착 생활이 장기적 또는 단기적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은 클 것이다. 또한 농경처럼 끈질긴 노동이 필요한 일을 자발적으로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클 것이다. 그리하여 농경 및 농경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국가가 자연발생적이 아니라거나 문명의 진보와 비례관계에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소위’ 문명(국가)이 ‘소위’ 야만과 미개에 대해 우월하다고 여기는 우리의 관념과 실제는 아주 많이 다를 것이라는 주장도 상당히 설득적이다.

게다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의 와중에 이 책을 읽어서인지, 이른바 신석기혁명이라고 하는 기원전 1만년에서 기원전 5000년 사이, 인구가 거의 늘지 않은 이유를 전염병 때문일 것이라고 해석하는 부분에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당시에도 격리와 도피를 반복하며 살았던 흔적이 발견된다는 대목은 농경과 ‘모여 살기’가 인류에게 끼쳐온 수많은 작용에 대해 전반적인 재고를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역사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그 이전의 갑작스러운 인구 감소나 증발은 정치보다는 질병에 의한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p.142). ‘지구상에서 호모사피엔스, 돼지, 닭, 오리, 거위와 야생동물 시장이 대규모로, 가장 과밀하게, 역사적으로 가장 깊게 집중화되어 있는 중국 동남부 특히 광둥 지방이 조류인플루엔자와 돼지인플루엔자의 변종을 키워내는 배양접시가 되어 왔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p148)’라는 대목에서는 마치 지금의 상황을 내다본 것 같은 느낌에 ‘헉’ 소리까지 나왔다.

저자에 따르면 아주 오랫동안, 초기 강제 노역 농경 국가의 외부에는 사냥, 채집, 목축, 화전 등으로 살아가는 인구가 훨씬 더 많았고, 길러 먹는 곡식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야만인이라 불렸던 이들이 사실은 훨씬 더 건강한 삶을 영위했으며, 이들은 한 번씩 국가에 편입되었다가도 자주 국가를 벗어나곤 하였다. 왜냐하면 이들은 농경이라는 기나긴 노동에 묶이지 않았고(대신에 약탈이라는 쉬운 방법을 쓸 수 있었다), 전염병이 창궐하기 쉽도록 짐승들까지 옆에 끼고서 조밀하게 살지 않았으며, 곡물 위주의 여린 식생활을 하지도 않았고, 조세나 부역 등의 착취도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히려 농경, 가진 것 지키기(성벽 올리기), 수탈을 위한 기록 같은 것들에 매달리는 국가를 조련해가며 국가가 노동으로 쌓아 놓은 것들을 받아갔다. 초기 국가는 계속해서 형성되었다가도 쉽사리 분해되곤 했다. 한 마디로 사람을 붙들어 매는 매력이 없었던 것이다.

저자는 ‘국가 중심이 절정에 이르러 인구가 집결되어 있던 것은 문명의 승리인 반면, 이 인구가 탈중심화되어 더 작은 단위들로 나뉘는 것은 정치 질서의 좌절, 실패.(p.267)’라는 생각은 선입견이라고 잘라 말한다. 우리가 흔히 국가의 붕괴라 불러왔던 탈중심화는 오히려 정상적인 것이며, ‘정치 질서의 주기적이며 어쩌면 유익하기까지 한 재공식화라고 보아야 한다.(p.267)’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이 선입견은 기록자들이 남긴 자료의 시각에서 역사를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긍. 그러나 이쯤에서 책의 첫 부분에서 충격을 먹었던 독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농경과 국가 체계가 서로 발전적인 짝꿍이 아니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국가의 신화가 무너지기 시작한 지는 꽤 됐고, ‘문자’를 포함한 문명의 신화가 무너지기 시작한 지도 꽤 됐기 때문에 솔직히 충분히 해봄직하거나 해봤음직한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트렌드인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보기, 혹은 과연 좋기만 했을까 등등의 뒤집어 보기의 한 가지 사례쯤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나아가 농경 신화에 대한 반격이 꽤 근거를 갖추었다고 해도 그러니 그 반대다 라고 단정하는 것도 위험한 발상이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농경을, ‘우리 인류가 자연 세계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심과 실용적 지식의 축소, 식단의 축소, 공간의 축소, 의례생활의 축소를 나타낸다(p131)’고 단정하는 것은 다소 위험하게 느껴진다. 농경의 신화는 과장되었을지 몰라도 통으로 거짓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우리는 문명과 국가의 부상에 관한 역사 서사에 생기를 불어넣은 기초 용어들에 대해 호전적 불가지론자로 남아 있어야 한다.(p91)’는 저자의 의견에 더 큰 공감을 표한다. 독자로서는, 대개 불가지론은 사람들을 토론과 사유와 검증의 단계로 이끌며, 대체로 덜 위험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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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번역서 '뇌 좀 빌립시다' | 冊移野基 2020-01-2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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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좀 빌립시다!

뇌 좀 빌립시다!

칼린 베차 저/박은영

갈릴레오의 손가락, 루이 14세의 심장, 아인슈타인의 뇌 등역사적 인물들의 시신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미스터리!1832년까지 영국에서는 시체를 훔치는 것이 범법 행위가 아니었다. 실제로 할머니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가는 일은 중죄였지만, 할머니의 손가락을 훔치는 일은 범죄가 아니었다. 18세기와 19세기, 유럽과 미...









시체, 시체의 일부, 시체 도난, 시체의 일부 도난, 이런 이야기들만 곱씹으며 두 달을 꼬박 보냈더니 생각보다 더 책이 '예쁘게' 나왔다. 역사상 가장 흥미롭고, 기괴하며, 파란만장한 시체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내고, 작가가 직접 삽화까지 알차게 그려서 곁들였다. 저자들은 곧잘 삽화가가 자신의 글을 십분 이해하고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고 여겨 완성된 그림이 마음에 안 들기도 한다는데, 이분에게는 그런 애로사항이 없었겠구나 싶다. 자, 우리 모두가 궁금해 했던 아인슈타인의 뇌는, 그래서 지금 어디 있을까? 설마 몸에서 분리된 채 보관되어 있다고? '내 다리 내 놔라' 이야기는 <전설의 고향> 국한일까? 베토벤의 직접 사인은 뭐였을까? 그의 머리카락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궁금하면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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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로맨스가 깃들었다고? | 冊移野基 2019-03-27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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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요리책

헤밍웨이의 요리책

크레이그 보어스 저/박은영

헤밍웨이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소설 같은 요리책 “다른 모든 곳에서 로맨스가 자취를 감추었을 때 음식에 로맨스가 깃들어 있음을 발견했다.나는 소화 기능이 다하는 순간까지 로맨스를 좇을 것이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굉장한 식도락가이자 술꾼이었다. 게다가 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자신의 식...









헤밍웨이의 아버지는 먹지 않을 거면 동물을 잡지 말라고 아들에게 가르쳤다.

그것도 눈물이 쏙 빠질만큼 호되게 가르쳤다.

먹는 일에 대해 그가 남다른 탐미를 가졌던 것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적지 않았을 거라 여긴다.

아무튼 그래서 그는 사자를 사냥하고도 반드시 먹었다.

모르긴 해도 그에게 먹는 일은 엄숙하도고 쾌락에 가득 찬 이율배반적 행위가 아니었나 싶다.

다른 모든 곳에서 사라진 로맨스가 음식에 깃들었더라고 말하는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를 씹어먹듯이 읽은 경험을 가진 일종의 팬으로서,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로 번역한 책이다.

이 책에는 그의 자취를 따라 남은 많은 레시피들이 담겨 있는데, 팬이라면 한 번쯤 도전해볼만 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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