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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오고 나서 사랑에 빠지다, [한 번쯤 일본에서 살아본다면] by 나무 외 15인 | 기본 카테고리 2017-12-14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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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한 번쯤 일본에서 살아본다면

나무 등저
세나북스 | 2017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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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한 번쯤 일본에서 살아본다면>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16명 각각의 개성 넘치고 독특하며 도전적인 일본 생활 이야기를 보며 가슴이 벅찼다. 16명의 저자들은 정말로 남녀노소 다양한 분들이다. 공부를 하러 가고, 워킹 홀리데이를 목표로 가고, 쉬러 갔다가 뜻하지 않았던 길을 찾게 되고, 결혼까지 하고 정착하신 분들도 있다. '나는 어땠지?' 생각하며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서평을 못 쓰고 넘어갔는데, 개정판이 나왔다. 책이 좀 작아져서 문고판 같은 느낌이다. 한 손에 쏙 들어와서 좋다.

그렇게 일본에 대한 국민 감정이 안 좋음에도 불구하고 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 반하고 빠져드는 이유는 뭘까? 그건 바로 '국민 감정'와 별개인 개인 감정이기 때문이 아닐까? 이렇게 일본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정치/외교 이슈가 나오면 왕왕 싸울 것이다. 일본이라는 나라 전체를 '한국인'이라는 대표성을 가지고 바라볼 때 미워하지 않을 수 없지만, 한 개인으로 일본인 한 명 한 명을 만나 친구가 되고 마음이 이어지고 마음이 통할 때 그 사람의 추억의 장소가 되고, 추억이 되고, 혹은 이 순간 살아가고 있는 현재가 되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아무 생각 없이 여러 국적의 친구들이 모여 있는 곳에 괜히 앉아 있다가 나에게 너무나 잘해 줬었고 친하게 지냈던 일본인 도모코 언니가 "너네도 우리도 다 피해자. 나쁜 건 미국..."이라는 견해를 말하자 마자 내 머릿속의 퓨즈가 끊겼던 것 같다. 투표도 제대로 하지 않던 20대의 내가 무슨 애국자라고 영어로 했는지, 일어로 했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너네는 당할 만해서 당했지만 우리는 아니다"라는 취지로 쏘아붙였다. (평소 조용한 편인 나는 가끔 한 번씩 욱 한다.) 언니와의 관계는 그걸로 끝이었다. 도대체 내게 무슨 득이 있었던 걸까? 피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일본에 일본어 한 마디 못 하고 가서 어학을 공부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한국인 특유의 근면함을 인정받아 정직원이 되고 직업으로까지 연결된 저자들의 이야기가 특히 인상깊게 다가왔다. 그 용기, 대단하다. 처절했기 때문이라고 다들 겸손하게 말씀하고 계시지만 그런 상황이라고 해서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일본어는 우리 말과 어순이 같고 한자어를 일부 공유하기 때문에 일본어학교에서 열심히 하면 어느 정도 생활에 불편함 없이 구사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분들처럼 실제로 많은 손님들을 상대하며 생활 속에서 익힌다면 정말 살아있는 일본어를, 일본어다운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20년 가까이 일본어를 공부하고도 존경어, 겸양어는 들으면 다 알아도 내 입에서 내 말처럼 나오지 않는데 그건 그렇게 삶 속에서 익히지 않으면 쉽지 않은 것 같다.

한 번쯤 일본에서 살아보는 것 참 좋은 것 같다. 두 번쯤 미국에서도 살아봤고, 한 번쯤 일본에서도 살아봤는데 지리적으로 가깝고 문화적으로 가깝고 언어적으로 가깝다는 것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이 무척 크다. 18년 전, 다 큰 성인이 되어서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가는 건데도 공항에서 우리 엄마는 우셨다. 90년대 중반부터, 나보다 몇 년 위인 선배들부터 슬슬 유럽여행이나 어학연수를 많이 가기 시작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까지 보편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워낙 먼 곳이어서 걱정이 많이 되셨나보다. 그런데 그로부터 3년 후, 일본에 갈 때 "잘 갔다 와!" 그 뿐이셨다. 공항에는 오셨었나 기억도 안 난다. 여차하면 올 수 있고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라는 것이 나도 홀가분했고 가족들도 그랬나 보다. 미국에서는 유색인종이라는 것이 어쩔 수 없이 드러나지만 일본에서는 군중 속에 몸을 숨길 수 있어서 그냥 일반인으로 지낼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물론 스타일, 패션에서 한국 사람, 일본 사람, 중국 사람 다 분별해 낼 수 있다.)

책 속에서 나무 님이 언급하셨던 일본인들의 적당한 '무관심' 나도 참 좋았다. 내가 '한 번쯤', '잠시', '주변인'으로 지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본인들도 마음을 터놓고 나누는 사이가 되면 오히려 듣는 쪽이 들어도 되는 건가 싶은 감당하기 어려운 사생활에 대해서도 나눠준다. 아버지의 가정폭력, 남편의 우울증, 형제자매의 실종... 믿고 얘기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듣는 쪽에서도 무겁게 듣고 마음 속에 깊이 열쇠 채워 담아 놓는다. 사람 사는 곳 다 똑같다. 다만 무관심해야 할 거리의 사람들이 오지랍 넓히며 꼬치꼬치 캐묻고 간섭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헤아린다는 의미의 '察する'라는 단어가 있다. 일본인들의 기본적인 정신 중 하나인 것 같다고 느꼈다. 다른 사람을 헤아려서 대하는 것. 직접적이고 명확한 의사소통을 중시하는 서구식의 사고방식으로는 답답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헤아려서 대하는 것이 좋았고 편안함을 느꼈다.

16명의 저자들의 일본 생활에 대해 읽으며 나의 일본생활에 대해서도 돌이켜봤다. 도전정신 따위 애초에 없고 겁 많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두려워하는 유형이라 많은 것이 준비된 상황에서 갔다. 영어가 많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교환학생으로 가서 패닉 수준의 두려움을 경험했던 터라 일본에 가기로 결심하고 바로 능력시험 준비를 하여 1년만에 바로 1급 따 놓고 학교 어학당에 와 있던 일본 동생들(일본인으로 귀화한 재일교포 동생들)과 언어교환을 하며 감각을 익혔다. 일본에 갔을 때 이미 의사소통과 대학원 수업을 듣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상태였고 대학원에 소속된 연구과정 학생으로 숙식 모두 제공되는 기숙사에 묵었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일본에서 살며, 사람들을 만나고 공부를 하고, 20대의 가장 빛나는 시간을 보냈다.

미국에서 와세다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와서 같은 기숙사에서 지냈던 친구, 지금까지도 각별한 평생의 베스트 프렌드를 만났고, 같은 수업을 들었던 띠동갑 언니가 늘 있었던 도서관은 나의 쉴 곳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자원봉사로 일본어를 가르쳐 주셨던 여동창회 소속의 오카노 센세는 15년 전 이미 환갑이셨으나 의기투합하여 현을 넘나들며 차를 몰고 돌아다녔으며 11년 전, 내 결혼식에까지 와주셨다. 그 분이 계시는 가마쿠라는 내 마음 속의 영원한 고향 같은 곳이다.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는 초봄을 지나 벚꽃이 눈이 시리도록 흐드러지게 피면 벚꽃 찾아 우에노 공원과 신주쿠 교엔, 가마쿠라를 헤매고 다녔다. 봄이 무르익어 사쿠란보(서양 체리와 다른 체리)가 나올 때가 되면 항상 한 상자씩 사다가 방에서 뒹굴며 먹었다. 하코네에서는 수국이 양쪽 가득 피어 있는 길을 등산열차 타고 지나가고 아시노코 위에서 봄바람을 맞았으며 야외미술관을 누비고 다녔다. 유리카모메를 타고 빙빙 돌아가며 보이는 오다이바의 레인보우 브릿지를 취한 듯 바라봤다. 가을엔 억새밭이 보고 싶다고 오카노 센세를 졸라 시즈오카 현에 있는 억새밭으로 드라이브 가고 후지산 밑 가와구치 호수의 잔잔한 풍경을 바라봤다. 수업도 빼먹고 홋카이도로 날아가 후라노와 비에의 목가적 풍경을 마음에 담고 오타루에서는 <러브 레터>의 흔적을 찾기도 했다.

물론 20대의 고민이 없진 않았다. 진로와 불확실한 미래...

한국에 돌아와서는 치열한 삶을 다시 시작했다. 일본에서의 삶이라는 신기루에서 막 깨어난 느낌이었다. 일본에서 공부를 계속 하거나 일을 하며 정착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현실을 한국에 두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잠시 머무는 거처였기에 이렇게 애틋한 마음이 드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실제로 일본에서의 삶은 내게 미래를 여는 기회가 되어 주었다. 평범한 문과생이었고 외국어에 워낙 관심이 많아 영어를 열심히 했으나 백날 한다고 네이티브 되는 것도 아니니 외국어 하나를 더 해야겠다는 타산 하에 시작한 일본어는 의외로 나와 잘 맞았고 어느 정도 통번역을 할 수 있는 만큼이 되어 일본에서도 2주간 통역 경험도 쌓고 한국에 와서도 기회가 닿았다. 파란만장한 직장생활 속에서 두 번의 이직을 거쳐 정착했던 회사에서는 사장 면접에서 사장님이 직접 "입사해서 통역도 하면 되겠네."라고 하시고 실제로 입사하여 일본 기업과의 CEO 미팅 때 통역을 하기도 했고 일본에 가서 통역을 하기도 했다. 주 업무 외의 일이었기 때문에 힘이 들었지만 유익한 경험이었다.

추억에 잠기게 해 주는 책을 만나 사설이 길어졌다. 대리만족 제대로 한 것 같다. 아마 다시 일본에 간다면 너무 달라져 있어 이질감을 느낄 것 같기도 하다. 일본에 마지막 간 건 2010년, 도쿄에 마지막 간 건 2009년이다. 그래도 나의 20대의 특별하게 장식해 준 그 곳에, 도쿄에 꼭 다시 가보고 싶다.

책에 대해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중간 중간에 삽입되어 페이지 전체를 장식하는 몇몇 사진들의 해상도가 너무 떨어지는 것이다. 출판물에서 사진의 해상도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큰 아쉬움이 남는다. 차라리 페이지 중앙에 원래 크기대로 작은 네모로 사진을 넣었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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