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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로야

다이앤 리 저
나무옆의자 | 2019년 04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엄마의 딸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공감이 많이 갔던 [로야]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감사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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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60

그 순간 깨달았다. 부모가 되는 순간은 나의 부모가 어떠한 사람인지 명확히 알게 되는 순간임을. 부모 됨은 냉혹한 판결의 자리임을. 넘쳐나는 보상을 받게 될지 철저한 배상을 해 줘야 할지 판가름 나는. 나에게 내려진 판결문은 잔혹했다.

 

2019년 초여름 만난 <로야> 속 구절. 그대로 각인되어 떠오르고 또 떠올랐다. <로야>를 읽는 동안 계속 나를 마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읽고 나서 몇 번이고 리뷰를  쓰려할 때마다 리뷰가 아닌 내 이야기로 가득채울 것 같아 쉽게 써지지 않았다. 그래서 미루고 미루다 새해를 맞아  다시 읽고 리뷰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로야>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남편과 딸 아이와 지내고 있는 다이엔 리의 자서전 같은 소설이다.  하지만 작가만의 특수한 경험과 감정이 주가 아니라 부모의 딸로서, 또 한 아이의 엄마로서 공감할 수 있는 말들이 담겨 있었다. 소설이지만 허구 속에서 상상하는 느낌이 아니라 내가 아는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내 이야기인 것처럼 빠져들어 하나가 되었다. 

 

1. 부모를 마주하다.

 

<로야>에서 제일 공감이 되었던 부분이 엄마가 된 후 자신의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절실히 알게 되었다는 부분이었다. 나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p.67

 

종신형이다. 이것이 내가 받은 판결문이다.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내 안에 꽂힌 바늘이나 칼은 이제 목덜미까지 깊숙이 찌른다. 숙일 수도 없는 목을 책상 위로 떨어뜨린다. 백 년의 냄새가 난다. 고통은 고문이 된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었다. 

매년 연말 남편과 딸 셋이서 음악회를 다녀오는 주인공. 그런데 그 해에는 음악회를 다녀 오던 중 블랙아이스 때문에 차기 미끄러져 교통사고가 난다. 다행히 차만 크게 다쳤을 뿐 다들 무사했다. 하지만, 오직 주인공만이 겉으로는 외상도 없는데 온 몸이 너무 아팠다. 누가 만지기만 해도 고통스러울 만큼.

자상한 남편의 배려로 치료에만 전념하려 하지만, 나아질 기색이 없다. 보통은 큰 사고가 나면 엄마를 찾기 마련인데 주인공은 연락을 미루고 미룬다.  "솔직히 말해서, 엄마한테 얘기했다가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못들을까 봐, 그게 두려워서 못 하겠어. 이미 너무 아픈데 엄마가 나를 더 아프게 할까 봐, 겁나.(p.57)" 

엄마에게 전화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힘들었던지 빗속을 헤매고 다니는 꿈까지 꾸고 나서 겨우 전화를 해서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는 "아빠가 하늘에서 도왔네(p.66)"였다. 엄마를 때리고 딸과 아들도 때리던 술독에 빠져있던 그 아빠가 도왔다는 말에 주인공은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리고서 엄마는 터키 여행 상품 봐 둔게 있다며 "계좌는 똑같데이, 엄마 요가 간다(p.67)"라며 전화를 끊는다.

아빠는 주인공이 임신 3개월일 때 암으로 돌아가셨다.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와 장례를 치르고 나서 엄마가 손 놓고 있던 살림들을 치우느라 고생한다. 뭉친 배를 움켜지고 청소하는 그녀에게 엄마는 베란다도 정리해야한다 한다. 그러면서 매운탕이 먹고 싶다며 2인분을 시켜야해 평소에 못먹어 먹고 싶다며 매운탕집에 간다. 매운 것도 못 먹고 임산부라 더더욱 조심해야 하는 딸은 콩나물 반찬에 겨우 밥을 넘기는데 혼자 매운탕 2인분을 게걸스럽게 뚝딱하는 엄마였다.

p.199

내가 졸라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아니고, 내가 엄마를 낳은 것도 아니다. 엄마는 자신이 해야할 일들은 까맣게 잊고 내가 해야할 일들만 꼬치꼬치 따졌다. 의무를 저버리고 권리만을 챙기려 하는 엄마 앞에서 나는 권리엔 손도 못 대고 넘쳐나는 의무에 헉헉대야만 했다. 엄마는 여전히 가엽고 불쌍하지만, 엄마를 향한 나의 자비심엔 한계가 있었다. 한계가 있는 자비심은 인내심이다. 쌍방이 아니라 늘 일방인 관계에 염증을 느끼며 나의 인내심은 도전 받았다.

 

아빠에 대한 이야기는 1부 후반즈음에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주인공이 고등학생 때 친구 연주와  있다 자전거에 치이는 사고를 당한다. 연주가 택시부터 병원까지 함께 해 준다. 그저 형식적으로 쓰는 것인 줄 알고 아빠 연락처를 썼는데 정말 아빠가 오자 당황한다.

 p. 114

"친구가?"

철 냄새 사이로 행여나 술 냄새가 날까 봐 조마조마했다.

"네."

연주의 얼굴엔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결연함과 미안함이 가득했다. 내 울음 안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연주는 이렇게, 아빠를 본 최초의-또한 마지막인-친구가 되었다. 내가 숨겨 왔던 것의 유일한 목격자였다. 내가 숨기고 있는 것을 연주가 보지 못하기를, 만약에 봤다면 제발 묻지 말기를, 제발 아무말도 하지 말기를, 제발 모른 척해 주기를, 나는 바라고 또 바랐다. 

주인공에게 아빠는 감추고 싶은 존재였다. 동업하기로 한 사람이 배신하면서 집이 망하면서 아빠도 망가졌다. 열여섯살 때 일이었다. 아빠는 술을 먹고 엄마를 질질 끌고 다니며 때렸다. 그런 아빠의 모습에 "경찰을 부를 거야!"라고 소리친 주인공. "뭐라고? 경찰? 이게 죽을라고 환장했나!" 돌덩이 같은 아빠 손이 내 머리를 내리쳤고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p.169) 그리고 나서 아빠는 주인공의 공부방을 부숴버린다. 어려운 시간 동안 안식처 같던 공간까지 부숴버린 아빠였다.

 

주인공에겐 부모란,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 시절에도,  아이를 낳고 몸이 힘들어 산후 조리를 도와줄 이가 필요했을 때도 기꺼이 그 역할을 해 줄 아빠도 엄마도 없었다. "있었지만, 없었다."

 

p.249

동생과 내가 자신만의 가정을 이뤘을 때 빠져나온 울타리의 실체를 볼 수 있었다. 빠져나온 울타리는 허술하고 엉성했다. 당연히 경계가 명확하지 않았고, 안에 든 것은 다 빠져나가고 없었다. 저런 곳에서 우리가 자랐다는 사실이 각자의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부터는 고통이 되었다. 각자의 배우자와 자식에게는 우리의 고통을 어느 정도 감출 수 있었으나 우리 자신은 그때의 기억에서 놓여날 수 없었다. 타인에게 감출 수 있는 것은 정작 본인에게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2. 어린 나를 마주하다.

 

1부에서는 교통사고의 고통은 주인공이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잡아주지 않았던 부모에게 받았던 상처를 되살아났다면, 2부에서는 그 고통 속에 있던 어린 나를 마주한다.

 

 2부는 남편의 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주인공이 남편의 아버지를 바바준 어머니를 마마준이라 부르기에 여기서도 그 호칭을 쓰려고 한다. )

p.148

아버지가 되기에 적당한 나이는 있을지 모르나 아버지를 잃기에 적당한 나이는 없다.

 남편은 이란 출신으로 부모님은 계속 그곳에서 지내시고 있었다. 항상 남편이 자신의 가정을 이끌어가는 존재였는데 아버지의 죽음에 힘들어하는 남편을 위로하고 지켜주려 애를 쓴다. 바바준을 보러 가려고 비행기 티켓을 준비한 다음날, 바바준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를 받는다. 평소 바바준은 자신의 죽음에 불필요한 의식이 없기를 바랬다. 그런 뜻에 따라 장례식도 하지 않고 그저 지인들에게 식사 대접만 하기로 했고 남편도 이란에 가지 않기로 한다. 

매년 봄마다 가기에 이미 일 년 전 참석을 확정해 놓은 연주회가 다가 왔다. 바바준이 돌아가셨는데 음악회에 가려니 안 될 일 같았으나, 음악을 좋아했던 바바준이었기에 이 음악회를 가는 것이 그를 기릴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 남편의 동생 가족까지 함께 음악회에 참석한다. 바바준이 남편 돌 때 했던 넥타이를 메고 바바준을 모시는 마음으로 음악회에 참석한다.

 p.159

안단테 모데라토의 2악장이 연주될 때 난 바바준을 봤다. 바바준은 남편과 아이 사이에 앉아있었다(생략) 바바준을 바라보고 있는데 남편이 나를 바라봤다. 남편의 눈에 투명한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우리가 주고 받은 시선 안에 바바준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부활절 아침 남편 동생 가족들과 베이비백립스를 가져다 놓고 웃고 울며 바바준을 보낸다.

그러면서 차츰 주인공의 몸도 좋아지고 있었다. 마음에도 새살이 필요함을 느껴 카이로프랙터인 닥터 쿠션을 찾기로 한다. 출산 후 몸이 회복되지 않아 신랑이 수소문해서 가서 치료받은 곳이었다. 닥터 쿠션의 진료는 특이했다. 팔을 올리게 해서는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향하게 한 후 터치하면 팔이 움직이지 않거나 아래로 툭떨어지게 했다. 듣도 보도 못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세션 날, "여덟 살 때 뭔가 있었군요" 하며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열여섯 살 때 엄마와 아빠'를 기억하게 한다. 꽁꽁 감춰두었던 상처가 밖으로 터져 나왔다.

p.173

난 그 당시의 아빠도 그 이전의 아빠도, 아니 그 어떤 시절의 아빠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생략) 모호하지만 든든히 일반화할 수 있는 가부장적 아버지 안에 아빠를 숨기고 나를 숨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결국 숨길 수 없었다.

p.173 그 순간 올 것이 왔다는 느낌 내지 더는 안 되겠다는 느낌이 온 몸을 덮쳐왓다. 더는 숨을 수도, 도망칠 수도, 방어할 수도 없었다. 봇물 터지듯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생략) 변호해야 하는 아빠를 없애고 설명해야 하는나를 없앤 그곳에 여덟 살의 내가, 열여섯 살의 내가 있었다. 자그마한, 눈이 반짝이는, 채워지지 않아 늘 허기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해서 늘 답답한, 겁에 질려 울먹울먹하는, 어린아이가 있었다.

(생략)

지나간 시간 안에서 과거를 재해석했다. 재해석된 과거 안에서 나는 무참히 상처 입은 어린아이를 지웠고, 관용으로 가득 찬 어른을 세웠다. 그 어른이 아빠를 용서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과거는 해석을 거부한 채 시퍼런 눈을 뜨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의식이 어린 아이를 지우는 동안 무의식은 그 어린아이를 숨겨 주고 있었다. 

 

3. 나의 로야를 마주하다.

로야는 주인공의 딸 이름이다. 페르시아어로 '꿈'이나 '이상'을 뜻하는 예쁜 말이다. 주인공에게 지금의 가정은 말그대로 로야였다.

 p.127

늘 자진해서 보살피는 사람이다. 이기적이지 못해 마음껏 누리는 것을 겁내는 사람이다. 나는 그게 딱해서 나의 것을 없애고 그의 자리를 만들어 준다. 나 또한 마음껏 누리는 것에 서툴지만, 남편보다는 이기적이라 자진해서 보살피는 것은 가족으로 제한할 줄 안다. 그러니 내 안에 없앨 수 있는 자리가 남편보다는 많다. 남편도 나도 맏이로 태어나 자랐다. 우리는 자신을 없애서 타인을 즐겁게 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나고 자란 가족 내에서 나와 남편이 쓴 면류관엔 권리는 없고 책임만이 존재한다.. 서로 그것을 알아서 적어도 우리가 만든 가족 내에선 책임도 권리처럼 영광스럽게 대한다영광스러운 그것, 포괄적으로 정의하자면, 사랑이다. 

 

가족들에게서 보살핌을 받기보다 책임지는 역할을 해왔던 남편과 주인공은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둘 사이에 태어난 딸 로야에게 정성을 다하는 따뜻한 부모이다. 부모로부터 사랑 받지 못하면 그게 트라우마가 되어 자식에게도 못한다고들 하는데 이들은 자신의 가정을 사랑을 가득담아 든든한 보금자리로 만들어 냈다.

 

 p. 223

남아 있는 날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얼마가 됐든 흔쾌히 살아 낼 수 있고, 이들과 함께라면 꼭 살아보고 싶고, 내일이 끝이라면 사십구 일째에 태어나, 이들을 꼭 찾아서, 다시 이들과 살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유별나다고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고결하다고 생각했다. 자꾸자꾸 죽어도 자꾸자꾸 태어나 자꾸자꾸 이들과 사는 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이상적인 가정이있을까? 싶을 정도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자꾸자꾸 이들과 살 것이라는 말. 너무나도 예쁘고 아름담게 다가왔다.

 

엄마가 갑자기 바뀐 것도 아니고 어린 시절의 상처가 완벽히 아문 것도 아니지만, 지금의 가정 안에서 사랑으로 서로를 아끼고 새로운 로야를 찾는 모습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

p.278

 "당신과 나의 우주가 어긋나지 않아 다행이야."

"동감이야. 얼마나 많은 우연이 겹쳐야 어긋나지 않을 수 있는지, 헤아리기도 불가능하니까."

그와 함께하기 전의 세월이, 그와 함께한 세울이, 단순한 우연이 아님을 안다. 우연이라고 치부해 버리면 안 된다는 걸 안다. 흔한 존재가 고유한 존재로 남기 위해, 평범한 존재가 비범한 존재로 남기 위해, 미세한 존재가 거대한 존재로 남기 위해, 우연은 필연이 되고 그 안에서 우리는 행복하게 남는다. 남기 위해 죽고 죽은 뒤에 남는다. 로야가 남고 로야의 로야가 남는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남는다.

 

 

격하게 슬프거나 고통을 쥐어짜거나 하는 장면도 없는데 읽다 문득문득 눈물을 흘리는 나를 발견했다. 주인공의 엄마 정로로 무심한 엄마는 아니지만, 지금 엄마 대신 시어머니의 손을 빌려 육아를 하는 상황인지라 한 번 씩 엄마의 따스함이 그리워질 때가 많아 서글플 때가 있다. 이런 저런 사연도 있어 주인공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 같은 순간도 많았다. 아빠와의 이야기에서도 가족을 때리거나 술을 마시는 아빠는 절대 아니지만, 나 또한 자랑스럽게 아빠를 얘기할 수 없는 순간들도 많았기에 공감이 되었다.

나 역시 내가 자고 나란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나서야 그 실체가 좀 더 객관적이고 명확히 보이는 것 같았다. <로야>에서도 이야기했듯, 부모 역시 그러고 싶어 그런 부모가 된 것은 아님을 이해한다.

p.175

모든 아이가 그러하듯 그도 넘여졌고, 상처가 아물기 전 또 넘어지기도 했던 아이였다. (생략) 누구나 넘어진다. 나의 아빠도 나의 엄마도 한때 넘어져 울던 아이였다. 우는 아이가 제대로 위로받지 못하면 그 아이는 다른 아이를 울리기도 한다.

 넘어지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 숨기고만 자란 우리들이기에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또 누군가를 상처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었다. 더 늦기 전에 나의 아픔도, 내 남편의 짐도, 부모님의 아픔도 함께 털어내고 자꾸자꾸 또 같이 하고 싶은 사이가 되도록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시간이었다.

우리 모두의 '로야'를 위해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만든 가정에서 생겨난 존재. 딸 아이. 상처받고 컸던 우리 세대와는 다르게 사랑만 가득 주고 싶은 존재.  

p.272

 

태어나 보니 전쟁터였던 나와 남편의 근원지와 달리 로야는 자신이 낙원을 근원지로 가졌다고 호언장담한다. (생략) 자식이 주는 기쁨이 부모의 노고를 위로하는 것이라면 기쁨이 노고보다 커서 이 또한 빚인 것 같다.

 

주인공은 아이를 잃어버리는 꿈을 꾸며 생각하는 내용도 정말 공감이 갔다.

p.123

'엄마, 잠깐만.'

마음속으로 들은 말이었다. 그 뒤의 말이 '안녕'이었는지 '저기서 봐'였는지 모르겠다.

(생략)

내가 이뤄 낸 모든 것이 감쪽같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자력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 천운을 빌려 가까스로 이뤄낸 것을 순식간에 잃은 느낌이었다.

상상도 하기 싫지만, 정말 모든 것이 사라지는, 천운까지 빌려 얻은 것을 잃는 기분일 것 같았다.

 

우연히 발견한 아이의 노트에 적혀있던 부모로서는 아이가 의미를 담지 말고 지나가길 바랐던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p.132

우리한테서 멀리멀리 떨어져 있기를 바라는 것은 이미 우리 가까이에 와  있고, 부정이나 부인은 보호의 장막일 수 없으며, 신중의 밀도는 너무나 엉성하고, 아이 손이 내 손안에 있다 해도 아이 눈은 세상을 행햐 있고, 놓쳤다면 차라리 좋았을 그 손은 벌써 놓는 법을 알고 있었다.

p.133

부모가 특별히 무언가를 해 주지 않아도 아이 스스로 무언가를 특별하게 해내내는 모습을 볼 때 저 아이는 어디서 생겨났을까, 아이의 근원을 헤매는 낯선 황홀함을 느낀다. 사실 활홀함 속엔 내 능력의 경계와 한계가 어리둥절히 들어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영역에 있는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어 놓은 가능성의 경계와 한계가 거부감이나 저항 없이 스스륵 열리고 와르르 무너질 수 있음을 목격한다. 열리고 무너진 그곳에서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내가 함부로 손대선 안 되는 영역이었다.

마냥 어리던 아이가 자라가는 모습도 나를 당황하게 하기도, 나를 성장시키기도 하는 한 부분인 것 같아 공감이 갔다. 혼자 무언가를 하면 대견하다가도 나를 떠날 것 같은 불안감도 동시에 느껴지니 말이다. 그렇다고 아이만의 영역은 함부로 손을 대선 안된다는 이야기를 마음에 담아둔다.

 

또 공감이 갔던 표현이 있다.

 p.230

어찌 완벽하지 않은 아이가 있겠는가. 완벽하지 못한 부모더라도 그들의 아이는 완벽하다. 그러고 보면 모든 부모는 한때 완벽한 아이었다. 그 완벽한 아이에게 완벽하지 못한 부모가 있었다. 

완벽한 아이였던 우리들이 환경에 의해 상처를 받으며 크기도 했지만, 아이들에게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우리 아이의 아이 또  그 아이의 아이가 타고난 본연의 완벽함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게 말이다.

 

처음에는 엄마와의 갈등을 다룬 소설로만 생각했는데, 한 세대와 그 다음 세대, 또 그다음 세대까지 연결해 보는 긴 호흡이 필요한 소설이었다. 근원으로부터 지금의 나, 그리고 미래까지 연결하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너무 세세하거나 추상적인 묘사를 부담스러워 하는 편인데도 <로야>의 묘사는 빠져든다. 시간이 뒤섞여 있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데 <로야>의 시간에는 몰입이 된다. 나도 이 가정을 자꾸자꾸 다시 태어나도 함께하고픈 가정으로 만들어보겠다는 다짐을 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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