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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로야

다이앤 리 저
나무옆의자 | 2019년 04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엄마의 딸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공감이 많이 갔던 [로야]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감사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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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60

그 순간 깨달았다. 부모가 되는 순간은 나의 부모가 어떠한 사람인지 명확히 알게 되는 순간임을. 부모 됨은 냉혹한 판결의 자리임을. 넘쳐나는 보상을 받게 될지 철저한 배상을 해 줘야 할지 판가름 나는. 나에게 내려진 판결문은 잔혹했다.

 

2019년 초여름 만난 <로야> 속 구절. 그대로 각인되어 떠오르고 또 떠올랐다. <로야>를 읽는 동안 계속 나를 마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읽고 나서 몇 번이고 리뷰를  쓰려할 때마다 리뷰가 아닌 내 이야기로 가득채울 것 같아 쉽게 써지지 않았다. 그래서 미루고 미루다 새해를 맞아  다시 읽고 리뷰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로야>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남편과 딸 아이와 지내고 있는 다이엔 리의 자서전 같은 소설이다.  하지만 작가만의 특수한 경험과 감정이 주가 아니라 부모의 딸로서, 또 한 아이의 엄마로서 공감할 수 있는 말들이 담겨 있었다. 소설이지만 허구 속에서 상상하는 느낌이 아니라 내가 아는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내 이야기인 것처럼 빠져들어 하나가 되었다. 

 

1. 부모를 마주하다.

 

<로야>에서 제일 공감이 되었던 부분이 엄마가 된 후 자신의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절실히 알게 되었다는 부분이었다. 나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p.67

 

종신형이다. 이것이 내가 받은 판결문이다.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내 안에 꽂힌 바늘이나 칼은 이제 목덜미까지 깊숙이 찌른다. 숙일 수도 없는 목을 책상 위로 떨어뜨린다. 백 년의 냄새가 난다. 고통은 고문이 된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었다. 

매년 연말 남편과 딸 셋이서 음악회를 다녀오는 주인공. 그런데 그 해에는 음악회를 다녀 오던 중 블랙아이스 때문에 차기 미끄러져 교통사고가 난다. 다행히 차만 크게 다쳤을 뿐 다들 무사했다. 하지만, 오직 주인공만이 겉으로는 외상도 없는데 온 몸이 너무 아팠다. 누가 만지기만 해도 고통스러울 만큼.

자상한 남편의 배려로 치료에만 전념하려 하지만, 나아질 기색이 없다. 보통은 큰 사고가 나면 엄마를 찾기 마련인데 주인공은 연락을 미루고 미룬다.  "솔직히 말해서, 엄마한테 얘기했다가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못들을까 봐, 그게 두려워서 못 하겠어. 이미 너무 아픈데 엄마가 나를 더 아프게 할까 봐, 겁나.(p.57)" 

엄마에게 전화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힘들었던지 빗속을 헤매고 다니는 꿈까지 꾸고 나서 겨우 전화를 해서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는 "아빠가 하늘에서 도왔네(p.66)"였다. 엄마를 때리고 딸과 아들도 때리던 술독에 빠져있던 그 아빠가 도왔다는 말에 주인공은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리고서 엄마는 터키 여행 상품 봐 둔게 있다며 "계좌는 똑같데이, 엄마 요가 간다(p.67)"라며 전화를 끊는다.

아빠는 주인공이 임신 3개월일 때 암으로 돌아가셨다.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와 장례를 치르고 나서 엄마가 손 놓고 있던 살림들을 치우느라 고생한다. 뭉친 배를 움켜지고 청소하는 그녀에게 엄마는 베란다도 정리해야한다 한다. 그러면서 매운탕이 먹고 싶다며 2인분을 시켜야해 평소에 못먹어 먹고 싶다며 매운탕집에 간다. 매운 것도 못 먹고 임산부라 더더욱 조심해야 하는 딸은 콩나물 반찬에 겨우 밥을 넘기는데 혼자 매운탕 2인분을 게걸스럽게 뚝딱하는 엄마였다.

p.199

내가 졸라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아니고, 내가 엄마를 낳은 것도 아니다. 엄마는 자신이 해야할 일들은 까맣게 잊고 내가 해야할 일들만 꼬치꼬치 따졌다. 의무를 저버리고 권리만을 챙기려 하는 엄마 앞에서 나는 권리엔 손도 못 대고 넘쳐나는 의무에 헉헉대야만 했다. 엄마는 여전히 가엽고 불쌍하지만, 엄마를 향한 나의 자비심엔 한계가 있었다. 한계가 있는 자비심은 인내심이다. 쌍방이 아니라 늘 일방인 관계에 염증을 느끼며 나의 인내심은 도전 받았다.

 

아빠에 대한 이야기는 1부 후반즈음에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주인공이 고등학생 때 친구 연주와  있다 자전거에 치이는 사고를 당한다. 연주가 택시부터 병원까지 함께 해 준다. 그저 형식적으로 쓰는 것인 줄 알고 아빠 연락처를 썼는데 정말 아빠가 오자 당황한다.

 p. 114

"친구가?"

철 냄새 사이로 행여나 술 냄새가 날까 봐 조마조마했다.

"네."

연주의 얼굴엔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결연함과 미안함이 가득했다. 내 울음 안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연주는 이렇게, 아빠를 본 최초의-또한 마지막인-친구가 되었다. 내가 숨겨 왔던 것의 유일한 목격자였다. 내가 숨기고 있는 것을 연주가 보지 못하기를, 만약에 봤다면 제발 묻지 말기를, 제발 아무말도 하지 말기를, 제발 모른 척해 주기를, 나는 바라고 또 바랐다. 

주인공에게 아빠는 감추고 싶은 존재였다. 동업하기로 한 사람이 배신하면서 집이 망하면서 아빠도 망가졌다. 열여섯살 때 일이었다. 아빠는 술을 먹고 엄마를 질질 끌고 다니며 때렸다. 그런 아빠의 모습에 "경찰을 부를 거야!"라고 소리친 주인공. "뭐라고? 경찰? 이게 죽을라고 환장했나!" 돌덩이 같은 아빠 손이 내 머리를 내리쳤고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p.169) 그리고 나서 아빠는 주인공의 공부방을 부숴버린다. 어려운 시간 동안 안식처 같던 공간까지 부숴버린 아빠였다.

 

주인공에겐 부모란,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 시절에도,  아이를 낳고 몸이 힘들어 산후 조리를 도와줄 이가 필요했을 때도 기꺼이 그 역할을 해 줄 아빠도 엄마도 없었다. "있었지만, 없었다."

 

p.249

동생과 내가 자신만의 가정을 이뤘을 때 빠져나온 울타리의 실체를 볼 수 있었다. 빠져나온 울타리는 허술하고 엉성했다. 당연히 경계가 명확하지 않았고, 안에 든 것은 다 빠져나가고 없었다. 저런 곳에서 우리가 자랐다는 사실이 각자의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부터는 고통이 되었다. 각자의 배우자와 자식에게는 우리의 고통을 어느 정도 감출 수 있었으나 우리 자신은 그때의 기억에서 놓여날 수 없었다. 타인에게 감출 수 있는 것은 정작 본인에게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2. 어린 나를 마주하다.

 

1부에서는 교통사고의 고통은 주인공이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잡아주지 않았던 부모에게 받았던 상처를 되살아났다면, 2부에서는 그 고통 속에 있던 어린 나를 마주한다.

 

 2부는 남편의 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주인공이 남편의 아버지를 바바준 어머니를 마마준이라 부르기에 여기서도 그 호칭을 쓰려고 한다. )

p.148

아버지가 되기에 적당한 나이는 있을지 모르나 아버지를 잃기에 적당한 나이는 없다.

 남편은 이란 출신으로 부모님은 계속 그곳에서 지내시고 있었다. 항상 남편이 자신의 가정을 이끌어가는 존재였는데 아버지의 죽음에 힘들어하는 남편을 위로하고 지켜주려 애를 쓴다. 바바준을 보러 가려고 비행기 티켓을 준비한 다음날, 바바준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를 받는다. 평소 바바준은 자신의 죽음에 불필요한 의식이 없기를 바랬다. 그런 뜻에 따라 장례식도 하지 않고 그저 지인들에게 식사 대접만 하기로 했고 남편도 이란에 가지 않기로 한다. 

매년 봄마다 가기에 이미 일 년 전 참석을 확정해 놓은 연주회가 다가 왔다. 바바준이 돌아가셨는데 음악회에 가려니 안 될 일 같았으나, 음악을 좋아했던 바바준이었기에 이 음악회를 가는 것이 그를 기릴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 남편의 동생 가족까지 함께 음악회에 참석한다. 바바준이 남편 돌 때 했던 넥타이를 메고 바바준을 모시는 마음으로 음악회에 참석한다.

 p.159

안단테 모데라토의 2악장이 연주될 때 난 바바준을 봤다. 바바준은 남편과 아이 사이에 앉아있었다(생략) 바바준을 바라보고 있는데 남편이 나를 바라봤다. 남편의 눈에 투명한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우리가 주고 받은 시선 안에 바바준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부활절 아침 남편 동생 가족들과 베이비백립스를 가져다 놓고 웃고 울며 바바준을 보낸다.

그러면서 차츰 주인공의 몸도 좋아지고 있었다. 마음에도 새살이 필요함을 느껴 카이로프랙터인 닥터 쿠션을 찾기로 한다. 출산 후 몸이 회복되지 않아 신랑이 수소문해서 가서 치료받은 곳이었다. 닥터 쿠션의 진료는 특이했다. 팔을 올리게 해서는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향하게 한 후 터치하면 팔이 움직이지 않거나 아래로 툭떨어지게 했다. 듣도 보도 못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세션 날, "여덟 살 때 뭔가 있었군요" 하며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열여섯 살 때 엄마와 아빠'를 기억하게 한다. 꽁꽁 감춰두었던 상처가 밖으로 터져 나왔다.

p.173

난 그 당시의 아빠도 그 이전의 아빠도, 아니 그 어떤 시절의 아빠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생략) 모호하지만 든든히 일반화할 수 있는 가부장적 아버지 안에 아빠를 숨기고 나를 숨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결국 숨길 수 없었다.

p.173 그 순간 올 것이 왔다는 느낌 내지 더는 안 되겠다는 느낌이 온 몸을 덮쳐왓다. 더는 숨을 수도, 도망칠 수도, 방어할 수도 없었다. 봇물 터지듯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생략) 변호해야 하는 아빠를 없애고 설명해야 하는나를 없앤 그곳에 여덟 살의 내가, 열여섯 살의 내가 있었다. 자그마한, 눈이 반짝이는, 채워지지 않아 늘 허기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해서 늘 답답한, 겁에 질려 울먹울먹하는, 어린아이가 있었다.

(생략)

지나간 시간 안에서 과거를 재해석했다. 재해석된 과거 안에서 나는 무참히 상처 입은 어린아이를 지웠고, 관용으로 가득 찬 어른을 세웠다. 그 어른이 아빠를 용서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과거는 해석을 거부한 채 시퍼런 눈을 뜨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의식이 어린 아이를 지우는 동안 무의식은 그 어린아이를 숨겨 주고 있었다. 

 

3. 나의 로야를 마주하다.

로야는 주인공의 딸 이름이다. 페르시아어로 '꿈'이나 '이상'을 뜻하는 예쁜 말이다. 주인공에게 지금의 가정은 말그대로 로야였다.

 p.127

늘 자진해서 보살피는 사람이다. 이기적이지 못해 마음껏 누리는 것을 겁내는 사람이다. 나는 그게 딱해서 나의 것을 없애고 그의 자리를 만들어 준다. 나 또한 마음껏 누리는 것에 서툴지만, 남편보다는 이기적이라 자진해서 보살피는 것은 가족으로 제한할 줄 안다. 그러니 내 안에 없앨 수 있는 자리가 남편보다는 많다. 남편도 나도 맏이로 태어나 자랐다. 우리는 자신을 없애서 타인을 즐겁게 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나고 자란 가족 내에서 나와 남편이 쓴 면류관엔 권리는 없고 책임만이 존재한다.. 서로 그것을 알아서 적어도 우리가 만든 가족 내에선 책임도 권리처럼 영광스럽게 대한다영광스러운 그것, 포괄적으로 정의하자면, 사랑이다. 

 

가족들에게서 보살핌을 받기보다 책임지는 역할을 해왔던 남편과 주인공은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둘 사이에 태어난 딸 로야에게 정성을 다하는 따뜻한 부모이다. 부모로부터 사랑 받지 못하면 그게 트라우마가 되어 자식에게도 못한다고들 하는데 이들은 자신의 가정을 사랑을 가득담아 든든한 보금자리로 만들어 냈다.

 

 p. 223

남아 있는 날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얼마가 됐든 흔쾌히 살아 낼 수 있고, 이들과 함께라면 꼭 살아보고 싶고, 내일이 끝이라면 사십구 일째에 태어나, 이들을 꼭 찾아서, 다시 이들과 살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유별나다고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고결하다고 생각했다. 자꾸자꾸 죽어도 자꾸자꾸 태어나 자꾸자꾸 이들과 사는 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이상적인 가정이있을까? 싶을 정도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자꾸자꾸 이들과 살 것이라는 말. 너무나도 예쁘고 아름담게 다가왔다.

 

엄마가 갑자기 바뀐 것도 아니고 어린 시절의 상처가 완벽히 아문 것도 아니지만, 지금의 가정 안에서 사랑으로 서로를 아끼고 새로운 로야를 찾는 모습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

p.278

 "당신과 나의 우주가 어긋나지 않아 다행이야."

"동감이야. 얼마나 많은 우연이 겹쳐야 어긋나지 않을 수 있는지, 헤아리기도 불가능하니까."

그와 함께하기 전의 세월이, 그와 함께한 세울이, 단순한 우연이 아님을 안다. 우연이라고 치부해 버리면 안 된다는 걸 안다. 흔한 존재가 고유한 존재로 남기 위해, 평범한 존재가 비범한 존재로 남기 위해, 미세한 존재가 거대한 존재로 남기 위해, 우연은 필연이 되고 그 안에서 우리는 행복하게 남는다. 남기 위해 죽고 죽은 뒤에 남는다. 로야가 남고 로야의 로야가 남는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남는다.

 

 

격하게 슬프거나 고통을 쥐어짜거나 하는 장면도 없는데 읽다 문득문득 눈물을 흘리는 나를 발견했다. 주인공의 엄마 정로로 무심한 엄마는 아니지만, 지금 엄마 대신 시어머니의 손을 빌려 육아를 하는 상황인지라 한 번 씩 엄마의 따스함이 그리워질 때가 많아 서글플 때가 있다. 이런 저런 사연도 있어 주인공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 같은 순간도 많았다. 아빠와의 이야기에서도 가족을 때리거나 술을 마시는 아빠는 절대 아니지만, 나 또한 자랑스럽게 아빠를 얘기할 수 없는 순간들도 많았기에 공감이 되었다.

나 역시 내가 자고 나란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나서야 그 실체가 좀 더 객관적이고 명확히 보이는 것 같았다. <로야>에서도 이야기했듯, 부모 역시 그러고 싶어 그런 부모가 된 것은 아님을 이해한다.

p.175

모든 아이가 그러하듯 그도 넘여졌고, 상처가 아물기 전 또 넘어지기도 했던 아이였다. (생략) 누구나 넘어진다. 나의 아빠도 나의 엄마도 한때 넘어져 울던 아이였다. 우는 아이가 제대로 위로받지 못하면 그 아이는 다른 아이를 울리기도 한다.

 넘어지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 숨기고만 자란 우리들이기에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또 누군가를 상처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었다. 더 늦기 전에 나의 아픔도, 내 남편의 짐도, 부모님의 아픔도 함께 털어내고 자꾸자꾸 또 같이 하고 싶은 사이가 되도록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시간이었다.

우리 모두의 '로야'를 위해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만든 가정에서 생겨난 존재. 딸 아이. 상처받고 컸던 우리 세대와는 다르게 사랑만 가득 주고 싶은 존재.  

p.272

 

태어나 보니 전쟁터였던 나와 남편의 근원지와 달리 로야는 자신이 낙원을 근원지로 가졌다고 호언장담한다. (생략) 자식이 주는 기쁨이 부모의 노고를 위로하는 것이라면 기쁨이 노고보다 커서 이 또한 빚인 것 같다.

 

주인공은 아이를 잃어버리는 꿈을 꾸며 생각하는 내용도 정말 공감이 갔다.

p.123

'엄마, 잠깐만.'

마음속으로 들은 말이었다. 그 뒤의 말이 '안녕'이었는지 '저기서 봐'였는지 모르겠다.

(생략)

내가 이뤄 낸 모든 것이 감쪽같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자력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 천운을 빌려 가까스로 이뤄낸 것을 순식간에 잃은 느낌이었다.

상상도 하기 싫지만, 정말 모든 것이 사라지는, 천운까지 빌려 얻은 것을 잃는 기분일 것 같았다.

 

우연히 발견한 아이의 노트에 적혀있던 부모로서는 아이가 의미를 담지 말고 지나가길 바랐던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p.132

우리한테서 멀리멀리 떨어져 있기를 바라는 것은 이미 우리 가까이에 와  있고, 부정이나 부인은 보호의 장막일 수 없으며, 신중의 밀도는 너무나 엉성하고, 아이 손이 내 손안에 있다 해도 아이 눈은 세상을 행햐 있고, 놓쳤다면 차라리 좋았을 그 손은 벌써 놓는 법을 알고 있었다.

p.133

부모가 특별히 무언가를 해 주지 않아도 아이 스스로 무언가를 특별하게 해내내는 모습을 볼 때 저 아이는 어디서 생겨났을까, 아이의 근원을 헤매는 낯선 황홀함을 느낀다. 사실 활홀함 속엔 내 능력의 경계와 한계가 어리둥절히 들어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영역에 있는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어 놓은 가능성의 경계와 한계가 거부감이나 저항 없이 스스륵 열리고 와르르 무너질 수 있음을 목격한다. 열리고 무너진 그곳에서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내가 함부로 손대선 안 되는 영역이었다.

마냥 어리던 아이가 자라가는 모습도 나를 당황하게 하기도, 나를 성장시키기도 하는 한 부분인 것 같아 공감이 갔다. 혼자 무언가를 하면 대견하다가도 나를 떠날 것 같은 불안감도 동시에 느껴지니 말이다. 그렇다고 아이만의 영역은 함부로 손을 대선 안된다는 이야기를 마음에 담아둔다.

 

또 공감이 갔던 표현이 있다.

 p.230

어찌 완벽하지 않은 아이가 있겠는가. 완벽하지 못한 부모더라도 그들의 아이는 완벽하다. 그러고 보면 모든 부모는 한때 완벽한 아이었다. 그 완벽한 아이에게 완벽하지 못한 부모가 있었다. 

완벽한 아이였던 우리들이 환경에 의해 상처를 받으며 크기도 했지만, 아이들에게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우리 아이의 아이 또  그 아이의 아이가 타고난 본연의 완벽함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게 말이다.

 

처음에는 엄마와의 갈등을 다룬 소설로만 생각했는데, 한 세대와 그 다음 세대, 또 그다음 세대까지 연결해 보는 긴 호흡이 필요한 소설이었다. 근원으로부터 지금의 나, 그리고 미래까지 연결하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너무 세세하거나 추상적인 묘사를 부담스러워 하는 편인데도 <로야>의 묘사는 빠져든다. 시간이 뒤섞여 있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데 <로야>의 시간에는 몰입이 된다. 나도 이 가정을 자꾸자꾸 다시 태어나도 함께하고픈 가정으로 만들어보겠다는 다짐을 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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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서 삶을 마주하다. | 인연 닿은 책-문학 2019-07-07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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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죽음 1,2 세트

베르나르 베르베르 저/전미연 역
열린책들 | 201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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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통해 삶을 진지하게 마주보게 한 책.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인만큼 마음껏 상상하는 시간이 되었다.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매력이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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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날 죽였지?>

 

<죽음>의 첫 문장이다. 작품 속 주인공 가브리엘 웰즈는 인기 있는 소설 작가이다. 자다 깨서 머릿속에 남은 책의 첫머리를 열어젖힐 단순하지만 두근거리는 첫 줄을 찾아낸다. 그리고 다시 머릿속에서는 다시 마지막 문장을 찾으며 극을 구성하려고 한다. <누가 날 죽였지?>와 <나는 왜 죽었지?>를 고민하며 작품을 계속 구성해 나간다. 그러다 자신의 후각이 마비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병원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자신의 우상 여배우 헤디 라마를 닮은 영매 뤼시를 만나고 나서야 자신의 죽음을 깨닫는다. 자신의 머릿속에 떠올랐던 질문은 소설 속 첫 문장이 아닌,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한국에 팬 층이 두터운 베르나르 베르베르. 책의 재미는 걱정도 하지 않고 예약 구매를 했다. 역시 그답게 책을 잡는 순간부터 2권까지 단 번에 읽을 수 있었다. 주인공이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작가여서 그런지, 그를 통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가로서의 고민, 어려움에 대해서도 느껴졌다. 그리고 영향력 있는 작가로서 죽음에 대해 그리고 삶에 대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풀어내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낄 수 있었다.

 

1. 죽었지만, 슬프지 않은..

 

죽음=슬픔. 당연한 공식이라 여겼는데, <죽음>에서는 죽음이 슬프거나 괴로운 느낌이 들지 않았다. 정작 누가 자신을 죽였는지도 모르는데도 극도의 감정으로 슬픔, 좌절, 분노를 내뱉지 않는 주인공. 가브리엘 웰즈는 자신의 죽음을 궁금해는 하지만, 자신의 죽음의 원인을 찾는 태도는 추리소설에서 범인을 잡는 정도의 궁금함과 비슷해 보였다.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마음껏 떠도는 상태도 즐기는 듯하다. 죽고 싶은데 죽지도 못하게 해서 괴로워했던 그의 할아버지 이냐스도 그러했다.

 

죽음=이별. 이 공식도 깨진다. 오히려 죽었기에 가브리엘은 할아버지도 만나고, 사랑스러운 여인 뤼시도 만날 수 있게 된다. 또 살아있을 때와는 다른 시각으로 주위 사람들도 돌아볼 수 있게 된다. 심지어 자신이 동경했던 작가들, 배우들, 유명한 인물들까지 만나고 그 상황을 충분히 즐긴다.

 

누가 자신을 죽였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영혼만 떠돌게 된 상황. 왜 죽었는지, 누가 죽였는지, 왜 그렇게 살았는지, 죽기 전에 해야만 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쪽에 조명이 떨어져있지 않다. 오히려 죽은 사후 세계도 '지금, 여기, 이 순간'으로 여기며 떠도는 영혼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을 즐기는 모습이 눈에 더 들어온다.

p.232

 

죽음은 무조건 부정적인 것과 연결 짓고 출생은 긍정적인 것으로 여기지. 하지만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정반대야. 죽음은 우리를 모든 육신의 고통에서 해방해 주는 거니까. 우리는 순수한 영혼이 되지. 가벼워지는 거야. 반대로, 곰곰이 따져 보면 태어나는 게 그리 조은 것은 아니야. (생략) 태어나 최소한 13년 동안은 가족과 선생님, 친구들에 의해 네 정신적 틀이 형성되니까.

 

p.232

 

저승에서 살다 보니 갈수록 그런 확신이 드는구나. 죽음은 해방인 반면 출생은 자신을 꽃피우기 힘든 억업적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라는 믿음이 확고해져. 결국 내가 진정 누구인지 깨닫지 못한 채 실패한 삶을 살 위험이 큰 거지.

 

환생을 거부하고 계속 떠돌고 있는 주인공의 할아버지 야나스를 통해서 작가가 생각하는 죽음과 탄생, 삶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가브리엘은 그들을 보며 권태야말로 떠돌이 영혼들에게 가장 큰 고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p.264 

 영매인 뤼시는 영혼들의 환생을 돕는 일도 한다. 괜찮은 조건으로 환생하는 것을 선택한 수 있는데도 떠도는 영혼으로 있는 것을 선택하는 이들이 있다. 가브리엘 역시 환생이 아닌 영혼으로 자유로이 사는 것을 선택한다. 죽음은 선택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라면 그 이후의 삶은 선택할 수 있다는 설정이다. 이는 읽는 사람들마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부분이다. 태어난 이상 누구에게나 죽음은 선택이 아닌 필수과정이다. 그 죽음을 너무 슬프게 고통스럽게 받아들이기 보다는 하나의 과정으로 보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 죽던 살던 그 과정을 잘 수행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 아닐까 한다.

 

2. 상상은 현실이 될 수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의 매력 중 하나는 '상상력' 넘치는 스토리가 아닐까? 두렵고 알 수도 없는 사후 세계를 마음껏 그려낸 <죽음>. 자유롭게 공간 이동을 하고, 다른 이의 몸에 들어가 보고, 유명 연예인을 훔쳐 보고 하는 정도는 이제 상상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에도 식상한 느낌이다. 이 정도 상상을 살짝 넘어 나폴레옹과 이야기를 나누고 아인슈타인을 불러내 상상을 초월하는 기계를 만드려고도 한다. 주인공 가브리엘은 자신의 소설에서 이러한 상상력을 담아내려 했고, 이것이 화근이 되어 죽음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 그가 죽은 이유는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상상력이 가공할만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p.287-288

'자네는 단순히 SF 소설 한 편을 썼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네가 수집한 자료와 자네의 상상력은 가공할 위력을 발휘할 거라는 얘기야. 진짜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 분야에 매몰되어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사이 자네는 해답을 찾아냈으니까.'

(생략)

'그냥 소설인걸요. 허구잖아요.'

'물론. 하지만 다시 말하네만, 누군가 자네의 공식을 테스트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다면, 분명히 자네 책에 나온 <불로장생의 샘> 연구소를 세우려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

 

실제로, 우리는 상상하면 현실이 된다는 것을 경험해 왔다. 또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가 세상을 바꾸는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상상에도 책임이 따를 수 있다는 메시지가 이 책에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글이라면 가상이라고 하더라도 책임감 없이 내놓아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 말이다.

 

3. 산다는 일

 

결국, 죽음을 이야기 하면 할 수록 사는 것에 대해 집중하게 된다. 책 첫 질문이 <누가 날 죽였지?>였다면, 마지막 질문이 <나는 왜 태어났지?>이다. 죽고 나서야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고, 주위 사람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가브리엘. 우리도 무엇인가를 잃고 난 후에야 소중한 것에 대해 되돌아 보게 되고 거기서 의미를 깨닫게 된다.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마주하기 전에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내게 주어진 사명과 소중한 것들의 가치를 알아가는 자세가 필요함을 책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죽음1.

P.71

 

영혼이 머무르고 싶게 만들려면 육체를 잘 보살펴야 한다.

 

p.265

이 육신이 전부인 줄 알았으니...

 

산 자들에게 소리쳐 경고해 주고 싶다. <당신들은 정신을 가진 육체가 아니라 육체를 가진 정신이다.>

 

죽음2.

 

P.9

 

살아 있음에 감사합니다.

육신을 가진 것에 감사합니다.

오늘도 존재의 행운을 누릴 수 있는 만큼 이에 부끄럽지 않은 하루를 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P.198

 

'체념하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인가요?!' 돌로레스가 반기를 든다.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은 해야겠지만 절대 자신의 힘을 과신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세계가 지금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데는 모종의 숨겨진 의도가 있으리라는 걸 기억하라는 말이에요. 실수 없이 앎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경험은 오랜 기간에 걸쳐 퇴적물처럼 쌓이는 거죠. 우리는 누구나 경험을 해봐야 해요. 그리고 나서 그 경험의 결과물을 확인해야 비로소 행동을 바꿔야겠다는 자각이 오죠. 그래야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요.'

 

P.301

주인공이 말하는 거야. <지난 삶으로부터 나는 무엇을 배웠나?>

 

살아 있음에 감사하라는 메시지, 세계가 지금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의미를 생각하라는 메시지가 마음에 남는다. 죽음을 이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면서도 무겁지 않게 생각할 수 있게 한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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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 인연 닿은 책-문학 2019-05-24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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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죽음 1,2 세트

베르나르 베르베르 저/전미연 역
열린책들 | 201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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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어버린 책. 죽음. 대중에게 인기 있는 작품을 쓰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뇌가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때론 진실보다 사랑이 중요하듯. 작품의 의미보다 재미가 더 가치 있을 때가 있는게 아닐까? 죽음을 이야기 하는데 슬프거나 안타까운 기분이 드는게 아니라 홀가분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게하는 글. 살아있음이 즐거운 일임을 느끼게하는 소설이었다.

고전을 아주 쬐금 읽고 이런 이야기는 우습지만, 계속 느끼는 점은 신이 인간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하고 있고 천재적인 이들이나 작가들이 그 메시지를 인간에게 전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작가로서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대목들이 있었다. 죽음을 종착지로 생각하고 두려워 하며 가지 말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라고 말이다. 그렇게 한 세대가 끝나고 또 새로운 세대가 생겨나고. 다만 함께 존재하는 다른 종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배려심도 가지고서 살아가라고. 너무 과거를 궁금해 하지도 말고 말이다.

결국 지금 살아있는 순간을 사랑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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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가 잠든 집/히가시노게이고 | 인연 닿은 책-문학 2019-04-23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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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수입일서]人魚の眠る家

東野 圭吾 저
幻冬舍 | 2018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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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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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기술의발전#브레인머신 인터페이스#뇌사#장기기증#죽음의 기준#부모의사랑#집착#기적#부부의의미#가족이란

 

이 중 하나만 해도 한 소설의 중심내용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집약된 이야기가 있었다. 게다가 어설프지 않고 탄탄하다. <인어가 잠든 집>을 읽으며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받는 감동과 또 별개로 이런 소설을 써낸 작가 히가시노게이고에 대해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소설 속 인물들이 적절하게 연결되면서도 막장 드라마처럼 경악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서 너무나도 예쁘게 연결지어진 느낌이다.

 

베스트 셀러에 당한 적이 많아서 서점 홈페이지에서 만났을 때도 담담히 외면했는데, 히가시노게이고의 작품이니 재미는 보장되겠다 싶어서 읽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전 정보 없이 책을 집어들었기에 더더욱 놀랍고 생각이 많았졌던 것 같다. '인어'가 뭘까 하는 궁금증도 컸는데 수영장 물에 빠져 뇌사상태가 된 6살 여자아이를 표현한 것이었다.

 

6살 여자 아이 미즈호. 우리아이도 6살 여자 아이이다 보니,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부모의 마음이 너무나도 절실히 와닿았다. 이제 다컸나 싶다가도 여전히 어리고 손이 가고 그래서 사랑스러운 6살. 애교도 넘치고 이제 부모의 마음도 헤아려줄 나이가 되어 공감대도 형성되는 나이. 그런 딸아이를 잃는다는 것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런 아이를 마주하고 있는 가오루코와 가즈마사에게 의사는 장기이식을 한다면 뇌사판정을 위한 절차를 밟게 되는데 어떻게 할지 선택하라고 한다. 뇌사판정 검사를 원하지 않는다 해도 아마 조금 있으면 심장도 멈춰서 장기이식도 불가능하게 되며, 아직 이런 상태의 사람이 원래대로 되돌아온 경우는 없다고 정보를 전달한다. 아이의 사고, 죽음이라는 현실도 와닿지 않는 상황에서 아이의 죽음을 선택하라고 한다. 그 장면을 읽으며 아이에게 큰 사고가 났는데, 아이는 죽는 것이 결정되어 있다는데, 단지 지금 뇌사로 죽게할지 심장은 뛰고 있으니 그 심장이 멎을 것을 기다릴 것인지 선택하는 이 과정.

 

우리 나라 소설이었으면 부모가 통곡하고 어쩌면 그런 말을 전달하는 의사와 한 판 싸우는 것이 자연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감정이 극단으로 가지 않고 차분하게 설명과 생각들이 오간다. 결국, 네잎 클로버도 양보할 정도로 착한 아이니, 장기이식도 분명 원할 것이라고 부모는 결정한다. 마지막 인사의 순간 '누나'라고 부르는 이쿠토의 목소리에 미호의 손이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이에, 엄마 가오루코는 미 미즈호는 죽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뇌사 판정검사를 철회한다.

 

가즈마사는 브레인 머신 인터페이스라는 뇌의 신호를 장치로 흘려보내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움직일 수 있는 기술을 계발하는 회사의 사장이다. 호시노라는 연구자에게 자신의 딸을 부탁한다. 그의 회사가 몸은 불편한데 뇌의 움직임으로 기계를 조작하는데 반해, 그의 딸 미즈호는 완전히 반대의 상황인 것이다. 몸은 정상이나 뇌가 죽어있다. 호시노는 기계의 힘으로  미즈호가 호흡도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하고 약간 움직일 수 있을 정도까지 만들어낸다. 그런 미즈호를 보는 것이 다들 편하지만은 않다.

 

뇌가 죽은 이를 움직이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시체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상황이다. 결국, 엄마의 자기만족이 아니냐는 단계로까지 흘러간다. 또 한 명의 여자아이가 등장하는데 그 아이는 미즈호와 반대의 상황이다. 심장이식이 필요한데 미국까지가야해서 엄청난 금액이 필요하다. 일본에서 해결하면 그정도의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이에 그녀는 분장까지 해가며 그 아이를 만나다.  그 아이의 부모는 뇌사인 아이가 있다면 장기이식 절차를 밟아야하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것이라 추측했다. 그렇지만, 그 아이의 부모도 뇌사 상태라고는 해도 그 역시 하나의 생명이기에 장기를 내놓으라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가오루코 와 가즈마사, 몇 번이고 그 선택의 순간을 떠올리며 옳았는지 고민한다. 어떤 선택을 했더라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임을 안다. 지금이라도라는 생각도 끊임없이 하고 아이가 살아있는지를 의심한다. 이쿠토의 입학식에 미즈호를 데려가 인사시킨 일로 이쿠토는 왕따를 당하게 되고, 결국 누나는 죽은 것이라며 반항가득한 이야기를 엄마에게 던진다. 이쿠토의 생일날 갈등은 절정에 달하고, 카오루코는 경찰을 불러 이 칼로 자신의 딸을 죽이면 살인인지를 묻는다. 이 극단적인 사건으로 가족들은 오히려 편안한 마음을 갖는다. 항상 마음 속 깊이, 미즈호의 죽음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그녀를 이대로 두는 것이 맞는가, 살아있는가에 대한 의심들이 어떤 형태로든 받아들여지는 모습이다.

 

결국 미즈호는 현실인지 착각일지 모르는 형태로 엄마에게 고맙다고 이제 떠나겠다고 인사하고서는 몸 상태가 급격히 떨어진다. 3년간 키도 크고 다른 큰 일없이 버티던 미즈호가 갑자기 그렇게 떠나버리려고 한다. 가오루코는 장례식까지 준비하며 덤덤히 그녀를 보낼 준비를 한다. 다만, 의사가 정한 뇌사판정 시간이 아닌 미즈호가 자신에게 인사한 그 시간이 사망시각이라 주장하며 말이다. 한 사람이 죽었다고 인정하는 시간까지 생각해보게 한다.

 

히가시노게이고 작품의 매력은 죽음, 사건 같은 어두운 면을 다루지만 그 속에 희망과 따스한 메시지를 전해준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이 작품 역시 책을 덮을 때는 뭔가 찝찝했던 기분에서 평온한 기분으로 바뀌어 있었다. 조만간 재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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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가구 1앤이 필요합니다. (빨간 머리 앤/루시모드 몽고메리) | 인연 닿은 책-문학 2019-03-25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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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빨간 머리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 저/김양미 역
인디고(글담) | 2018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예쁜 그림까지 더해서 읽는 재미가 최고인 '빨간 머리 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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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근깨 곱슬머리 빨간 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6살 우리아이도 어디서 들었는지 봤는지 이 책을 보더니 반갑다는 듯 이 노래를 부른다.

 

'엄마도 얘 알어?' '당연히 알지!', '아빠도 알아?' '알껄?'했더니

 

아빠에게 달려가 '아빠 머리 빨간 앤 알아?'를 묻는다.

 

아이 아빠도 '주근깨 곱슬머리~~'하며 노래를 부르니 어떻게 아냐고 놀라워 한다.

 

놀라워 해야하는 건 우리인 것 같은데 말이다.

 

이처럼 빨간 머리 앤을 모르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렵지 않을까?

 

어린 시절 만화 영화 속 한 장면으로도 남아 있고(솔~~~직히 만화나 애니를 안 본 나는 한 번씩 앤과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헷갈리기도....) 여러 상품에도 그림으로 나와있어 모르기 쉽지 않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이야기를 아느냐고 묻는다면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책은 그림이 너무 예뻐서 작년에 나오자 마자 구매하고서는 고이고이 모시다가

 

오디오 북을 마스터한 후에야 꺼내들었다.

 

오디오 북은 리뷰를 쓰기엔 구체적인 구절이나 단어들이 생각이 나지 않아 이 책을 꺼내들었더니 한 번 들었다고 술술 읽혔다.

 

인디고에서 나온 이 책이 아니었다면 다시 읽는 과정이 지루했을지도 모르겠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그림들에 마음을 뺴앗겼고, 오디오북을 들으며 상상했던 풍경들을 다시 떠올릴 수 있어서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오디오 북과 책으로 만난 빨간 머리 앤.

 

어릴 적 친구를 다시만나 새로운 면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 미안해질 정도였다.

 

특히 상상력 풍부하고 이야기 나누길 좋아하는 앤의 모습에서 우리집 꼬마가 자꾸 겹쳐졌다. 세상이 다 새롭고 때로는 별 것 아닌 것에 두려워 하는 모습들 그리고 그런 일들을 끊임없이 재잘거리며 내게 이야기해 주는 아이. 마릴라처럼 자꾸 가르쳐야한다는 생각에 아이의 밝은 모습을 마음껏 사랑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매슈 아저씨처럼 아이를 철저히 믿어주는 모습, 지켜봐주는 모습도 필요한데 말이다.

갑갑한 도시보다 상상할거리가 많은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마구 들고, 나의 소녀 시절도 떠오르곤 했다. 정말 힐링을 위해,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서 1가구 1 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만큼 기분 좋아지는 시간이 되었다.

 

<마음에 남는 구절들>

 

p.40

 

전 즐거운 일이 끝날 때면 늘 섭섭해요. 나중에 더 즐거운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아무도 장담할 수 없잖아요.

 

p.60

 

앤은 자신이 이곳에 산다고 상상했다. 여긴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곳이었다.

 

101

 

저도 무척 서툴렀다고 생각해요. 하지마 연습 한 번 못해 봤는 걸요. 처음 하는 사람에게 아주 잘하길 기대할 순 없잖아요. 안 그래요?

 

186

 

아, 정말 멋진 날이야! 이런 날엔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니? 아직 태어나지 않아서 이 기쁨을 맛보지 못하는 삶들이 안됐어. 물론 그 사람들한테도 좋은 날이 오긴 하겠지만 오늘 같은 날은 다시없을 거야.

 

338

 

가끔씩은 사소한 '칭찬'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육'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397

 

전 오늘 가치 있는 교훈을 새로 배운 거라고요. 전 초록 지붕 집에 온 뒤부터 실수를 많이 저질렀는데, 그 실수들은 하나같이 저의 큰 단점들을 고치게 해줬어요.

 

397

 

낭만을 완전히 버리지는 말아라. 앤, 조금쯤은 낭만적인 게 좋아.

 

412

 

아, 살아 있다는 것도,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너무 좋구나.

 

414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좋았던 건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었어요.

 

427

 

앤에게 있어 그 날들은 1년이란 목걸이에 꿰인 황금 구슬이 하나하나 빠져나가듯 흘러갔다.

 

432

 

다른 아이들이 크고 붉은 작약이라면, 그 옆에 있는 앤은 스스로 수선화라고 부르는 하얀 백합 같거든요.

 

443

 

제 글을 살펴보기 전에는 저도 그렇게 결점이 많은 줄 몰랐어요. 너무 부끄러워 다시는 글을 쓰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 정도였거든요. 하지만 스테이시 선생님은 자신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훈련을 쌓기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노력하고 있는 중이에요.

 

472

 

난 다이아몬드가 없 평생 위안 받지 못하더라도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긴 싫어.

 

507

매슈 아저씨는 너의 웃음소리를 좋아하셨고, 주위에 있는 즐거운 것들 속에서 네가 기쁨을 발견해 내는 걸 좋아하셨단다. 아저씨는 그저 먼 곳에 계실 뿐, 여전히 네가 그러길 바라실 거야. 우리는 상처를 치유하는 자연의 힘을 거부해서는 안 돼.

 

526

 

퀸스에서 돌아와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밤 이후로 앤의 꿈은 작아졌다. 하지만 앤은 발 앞에 놓인 길이 아무리 좁다 해도 그 길을 따라 잔잔한 행복의 꽃이 피어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정직한 일과 훌륭한 포부와 마음 맞는 친구가 있다는 기쁨은 온전히 앤의 것이었다. 그 무엇도 타고난 앤의 상상력과 꿈으로 가득한 이상세계를 뺏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길에는 언제나 모퉁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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