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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흘려 쓴 문장들을 흐르듯 읽으며 | 리뷰 2019-02-06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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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이제니 저
문학과지성사 | 2019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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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려 썼지만 '썼다'는 것 자체만으로 가치 있는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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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문학에 주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다. 소설보다 시에 대해서 더욱 그렇다. 문학적 소양에 대단한 자신감을 갖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나름대로 타당성을 갖춘 해석을 시도해보았다가 작가의 의도나 일반적인 해석과 완전히 동떨어진 결과에 이르게 되었을 때 느낄 부끄러움을 피하려고 미리 만들어놓은 방어 기제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시집에 대해서도 부러 아주 주관적인 시각을 취하려고 했다. 아무런 선입견도 만들지 않았고 말미에 붙여진 조재룡 문학평론가의 해설도 읽지 않았다. (리뷰를 다 쓴 다음에 읽을 생각이다.) 따라서 이 글은 어쩌면 '리뷰'라기 보다는 그저 내가 '흘려 쓴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꿈 같은 문장들이었다. 문장이 바람에 실린 구름처럼 가볍게 날아다닌다거나 마냥 황홀한 느낌을 풍긴다는 뜻은 아니다. 이제니 시인이 흘려 써내려간 실제로 내가 매일 (깊이 잠들지 못해서) 꾸는 꿈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룻밤에도 수십번씩 왔다갔다하는 렘 수면 동안 사람은 꿈을 꾼다. 꿈을 꾸는 동안 의식은 깨어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뛰어다닌다. 비일상적이고 비이성적이다. 그런데도 아무렇지 않게 느껴진다. 이곳에 있던 것이 다음 순간 저곳에 있더라도, 저곳에 있던 것이 다음 순간 그곳에 있더라도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된다.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에 적힌 모든 문장들은 비일상적이지만 그 비일상성을 꿈처럼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읽어나갔다. 아주 일상적인 단어와 평소에 거의 접할 일이 없는 비일상적인 단어가 한 문장 안에 자리잡고 있거나, 큰 무게감을 갖고 시작된 문장이 갑작스레 끝나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 문장이 왜 이 자리에 있을까, 일상성의 기준으로 보자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구성도 많고 심지어는 한 편의 시 안에서 '-다' 체와 '-습니다' 체가 혼용되기도 해서 때로는 큰따옴표가 없을 뿐이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그렇게 본다고 해서 두 사람이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 같지도 않다. 그 문장들을 분리해서 일일이 큰따옴표를 씌운다고 해도, 아직 꿈에서 깨어나지 않아 몽롱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처럼 보일 것이다.) 그때문에 책을 펼치고 처음 몇 편의 글을 읽는동안 혼란을 느꼈지만, 곧 일상성의 기준을 버리자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흘려 쓴 문장을 흘려쓴 문장 그 자체로 읽는다. '무엇'을 흘려 썼는지에 집착하지 않고 흘려 '쓴' 것 그 자체의 의미를 생각하며 읽었다. 꿈에서 불쑥불쑥 나타나는 모든 것들이 나의 무의식 안에서 중요성을 가지고 있듯 한 편의 글을 이루고 있는 목소리들은 그것이 그 자리에 놓여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게 느껴졌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왜 중요한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더라도 중요성 자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여러 문장들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게 상실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또한 꿈 속에서처럼 모호하게, 문장의 기저에 자리잡고 있어서 좋았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꿈 속에서는 상실이 특정한 사건이나 과도한 감정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상실 그 자체로 모습을 드러낼 뿐. 시인은 상실 그 자체에게 목소리를 담담한 목소리를 부여한 것 같았다. 오히려 그게 위로가 되었다.

 

 시를 읽는 동안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며 문장을 흘려 쓰는 일에 익숙해진 모양인지 (문학적 가치는 매우 상이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영 꿈결을 헤매는 것 같지만 결론은 짤막하다. 이제니 시인이 흘려 쓸 다음 문장들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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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평단 모집]『마음의 문을 닫고 숨어버린 나에게』 | 기본 카테고리 2019-01-15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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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방어가 심하면

행운이 뚫고 들어올 방법이 없다.


숨어버린 나를 이해하는 첫 번째 방어기제 수업


얼마 전 회사원A씨는 직장동료에게 놀라운 말을 들었다. 자신이 회의 시간에 비아냥거리며 시비 거는 듯한 말투를 쓴다는 거였다. 처음에는 회의를 하다보면 으레 생기는 의견 충돌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말이 오랫동안 A씨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같은 일이 반복되고 동료들과 사이가 멀어진 뒤에야 A씨는 회의 자리에서 자신의 아이디어가 무시당한다고 느낄 때마다 남들에게 이런 식으로 분풀이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노, 두려움, 증오, 질투, 초조함, 수치심 같은 강렬한 감정 앞에서 우리는 자주 방어적으로 변한다. 이러한 감정을 피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심리적 방어기제’라고 한다. 30년 경력의 심리치료사 조지프 버고Joseph Burgo는 《마음의 문을 닫고 숨어버린 나에게Why Do I Do That?》를 통해 단단하게 굳어버린 방어기제가 한 개인의 성격과 인간관계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자신의 방어기제를 점검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사람마다 서로 다른 방어기제 

나와 가까운 타인을 이해하는 핵심 KEY


상처받을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고 방어하는가. 인정하는가? 억누르는가? 고통이 클수록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불쾌한 감정을 의식에서 몰아내고 자기 안으로 숨어버린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환자들을 관찰하며 처음으로 ‘억압’이라는 방어기제를 발견했고 그의 딸 안나 프로이트는 방어기제를 다양한 유형으로 세분화했다. 《마음의 문을 닫고 숨어버린 나에게》는 억압, 부정, 전치, 반동형성, 분리, 이상화, 투사, 통제, 사고, 수치심 방어하기까지 모두 10가지 방어기제를 소개한다. 당신이 특정 방어기제에 자주 의존한다면 그 방어기제가 당신의 성격으로 굳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방어기제는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친구 관계에서

방어기제가 삶을 은밀하게 방해하는 순간들


습관적으로 격렬한 감정을 억압하거나 부정하는 사람을 상상해보자. 무던하고 차분해보일지는 몰라도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조차 분노를 표현하지 않을 것이다. 수치심을 나르시시즘으로 방어하는 사람은 어떨까. 모임에서 주인공이 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고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다가 어느새 따분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불쾌한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전치하거나 투사하는 사람은 어떨까. 애꿎은 데에 화풀이를 하거나 상대의 사소한 결점을 더 크게 비난하는 식으로 자신을 방어할 수 있다. 안나 프로이트의 저서 《자아와 방어 기제》에는 초인종을 사납게 울리고는 하녀가 늦게 나왔다고 화내는 소년이 등장한다. 이 소년은 사려 깊지 못하게 종을 크게 울렸다고 지적받을까봐 하녀를 먼저 비난했다. 친구나 연인 관계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 잘못을 지적받았을 때 인정하고 사과하기보다는 상대의 작은 결점을 찾아내서 더 크게 화낸 적이 있지 않은가?


도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방어기제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미성숙한 방어기제는 문제를 키우고 개인의 성장을 가로막고 인간관계를 망친다. 방어기제는 마치 내일은 없다는 듯 지금 당장 작동한다. 경솔하고 반사적이며 지금 이 순간의 고통을 피하기만 하면 그뿐, 그 뒤에 어떤 파장이 일어날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후회하고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면 자신의 방어기제가 무엇인지, 그로써 피하려는 고통이 무엇인지 점검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추한 모습과 피하고 싶은 고통까지 마주하게 되겠지만 카를 융의 말처럼 “고통 없이 거저 오는 자각은 없다.” 건강하지 않은 패턴에서 벗어나고 삶을 더 능동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숨어버린 나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 지은이 소개 ◆


지은이|조지프 버고 Joseph Burgo


30년 넘게 심리치료사이자 정신분석학자로 활동하고 있다. 정신역동 관점에서 개인이 무의식 속의 쌓여 있는 고름 덩어리를 인지하고 반복되는 불행한 패턴을 끊을 수 있게 돕는다. 조지프 버고 박사는 자신의 심리 상태를 알고 싶다면 특정 진단명을 찾아볼 게 아니라 자신이 반복적으로 피하는 고통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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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이제니 저
문학과지성사 | 2019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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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목소리의 시인, 이제니의 세번째 시집이 문학과지성사의 새해 첫 책으로 출간된다. 『아마도 아프리카』와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에서 삶의 수많은 결들을 문장으로 포섭해내고 “의미를 유보하는 과정 자체로 자기 시를 만”들어온 시인 이제니가 새롭게 선보이는 시집,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이 시집에서 시인은 문장들 사이사이로 문득 끼어드는 ‘어떤 목소리’로, 미처 다 말할 수 없는 무엇을, 지나간 자리를, 남겨진 자리를 환기시킨다. 그 모든 목소리들은 한 개인의 목소리이자 그 개인이 지금껏 겪어오고 건너온 모든 사람과 생의 목소리의 총합이기도 하다. 고백하고 독백하는 시집 속 문장들은 스스로 살아 움직이면서 입 없는 말, 지워나가면서 발생하는 말이 된다. 시인은 연약하지만 분명한 용기와 애도를 담아 가만히 받아쓴다, 자신 안에 있는 또 다른 누군가이자 자신 아닌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를. “오래오래” “가만가만히” 씌어진 61편의 담담한 목소리들을 하루에 한 편씩 읽어보길, 아니 ‘들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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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인간이 함께 나아온 길 | 리뷰 2018-09-02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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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재판으로 본 세계사

박형남 저
휴머니스트 | 2018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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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과 역사의 융합으로 나타난 법과 인간의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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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들어 나는 법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고 있다. 최근 재밌게 본 드라마의 영향도 있고 갈림길에 놓여있는 진로 문제 때문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최근 읽은 「정의란 무엇인가」와 「정의론」도 분명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리뷰어클럽 첫 도전이지만 운 좋게도 기회를 얻어 읽게 된 「재판으로 본 세계사」는 그런 생각들을 더욱 뻗어나가게 도와주었다.

 

 이 책은 재판 과정과 판결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조금 더 거시적으로 법 자체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충분히 볼 수 있을 것이다. 법은 인간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법을 만들어내고 개정하지만 동시에 법이 인간의 삶을 규율한다. 특정한 시대, 특정한 문화에 속해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그것을 법에 반영하지만 동시에 법이 그 시대의 정신과 문화를 능동적으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시대를 역행하는 법이 제정될 경우 다음 세대로 나아가고자 하는 시민들은 거세게 저항한다. 또한 시대를 앞서나가는 진보적인 법에 구 체제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저항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이렇듯 법은 법 체계 안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와 직접 격돌하고 논쟁을 일으키면서 그 사회를 퇴보시키기도, 진보시키기도 하며 형성되었다. 법과 인간의 오랜 상호작용은 수많은 인간의 궤적을 좇는 학문인 역사에 그대로 남아있으며, 저자는 그 중에서도 주목할만한 판결을 간추려 소개하면서 법와 인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고대 그리스 시대 소크라테스 재판에서부터 미란다 원칙('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으며…')을 만들어낸 1960년대 미국에서 진행된 재판까지 다양한 판결이 소개되어 있으나 기억에 남는 두 재판만을 소개하려고 한다. 1857년 미국에서 벌어진 드레드 스콧 재판과 1954년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벌어진 브라운 재판이다. 약 1세기 차이가 있지만 이 두 재판은 서로 맞닿아있다. 모두 인종차별을 내용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레드 스콧 재판은 법적으로 노예 신분을 벗어난 흑인이 백인과 동등한 시민권자인지, 그리고 노예제를 규제하는 법률은 위헌인지를 쟁점으로 했다. 놀랍게도 흑인은 (인종적 '열등함'과 미국 독립선언서에 명시된 의도 등을 미루어 보았을 때) 완전한 시민권자가 될 수 없으며 노예 소유를 금지하는 법률은 자유를 훼손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브라운 재판은 노예 제도가 철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분리하되 평등하게'라는 언뜻 그럴듯하게 들리는 기조를 바탕으로 인종차별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던 시기에 이루어졌다. 주요 쟁점은 공립학교에서 흑인 학생과 백인 학생을 분리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 즉 인종차별이 아닌지였다. 브라운 재판의 결론은 드레드 스콧 재판과 사뭇 달랐다. 공립학교에서 인종에 따라 학생을 분리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평등권에 위배되어 부당하다는 것이다. 유사한 문제를 다루고 있으면서 다른 결론을 내린 두 판결은 법이 시대 정신을 반영하고, 동시에 법이 사회를 퇴보시키거나 진보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저자의 전문성과 깔끔한 구성이 조화로운 책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각각의 재판이 현대 한국 사회에 줄 수 있는 함의를 논한 부분에서 때때로 어색함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물론 역사적 사건을 재조명하면서 현재 우리가 깨우쳐야 할 것을 끊임없이 고찰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필수적이다. 그러나 재판 설명 앞뒤로 덧붙여진 저자의 한국 사회 고찰이 가끔 피상적이거나 성급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책을 덮는 순간까지 유독 기억에 남는 문장으로 서툰 리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드레퓌스 사건이 조작되었음을 고발하는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에 포함되어 있다.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아무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전문적으로 법을 '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모두가 곰곰이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문장이다. 법과 사회가 끊임없이 부딪치고 서로에게 저항하며 과연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결국 역사는 진실과 정의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 투쟁과 성찰을 토대로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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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 리뷰 2018-08-25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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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저/김선욱 감수/김명철 역
와이즈베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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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라는 단어를 맞닥뜨렸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우습게도 《세일러문》이었다. 90년대 감성이 물씬 풍기는 이 만화영화를 떠올린 이유는, 수많은 악당들을 물리칠 때마다 주인공이 외치는 대사인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치 않겠다!'였다. 돌이켜 보면 꽤 괜찮은 논리를 갖춘 악당들이 많기도 했고, 또 다분히 삐딱한 어린이였던 나는 그 대사를 들을 때마다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네가 말하는 정의는 뭔데?'


 성장하면서 어린 시절 가졌던 수많은 질문들의 답을 차차 얻어나갔지만 그 질문의 답은 여전히 얻지 못하고 있었다. 만화영화의 주인공이 가지고 있었던 정의는 물론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정의, 나아가 일반적인 '정의'가 무엇인지 여전히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기나긴 의문에 답을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기 시작했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저자 마이클 샌댈이 하버드 대학교에서 오랫동안 강의해온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현재 대학생인 나로서는 구성 자체가 편안하고 익숙하게 느껴졌다. 저자는 적절한 무게감과 유머 감각을 가지고, 사례를 바탕으로 하여 다양한 정의론에 접근한다. 그 다양한 정의론이 각각 무엇인지 여기서 모두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저자가 그 모든 입장을 독자로 하여금 모두 기억―또는 암기―하게끔 의도한 것은 아니므로.


 저자가 설명하는 모든 정의론은 제각각 합리적인 논리와 빈틈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시한 벤담의 공리주의는 정량화를 통한 비교가 가능하다는 큰 이점이 있지만 다수의 행복을 위한 소수의 희생을, 결코 현대의 인간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을 정당화한다는 단점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질적 공리주의는 보다 높은 차원의 행복이 존재함을 주장하여 우리의 기본적인 윤리의식과 타협점을 마련하지만 공리주의의 근본을 흔들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공리주의와 사뭇 다른 방향을 취하는 칸트의 입장도 장·단점을 가진다. 보편이성에 근거한 원칙을 따르고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는 행위가 정당하다고 보는 칸트의 철학은 일견 완전무결해보이지만 우리가 직면하는 현실에 접목하면 금세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할 게 뻔한데도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하얀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정의롭다는 칸트의 입장은 우리로서는 완전히 수용하기 어렵다.


 앞서 예를 든 정의론 말고도 다양한 관점을 설명한 뒤 저자는 정의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그러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부합하는 깔끔한 답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그에게 있어 오늘날의 정의란 고정된 형태를 가진 어떠한 개념이 아니라, 다양한 의미를 가지면서 서로 경합하고 변화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었다.  (적어도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그랬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다. 기껏해야 한 세기 정도 되는 시간을 살다갈 나 자신에 대해서도 한 단어, 한 문장은 커녕 책 한 권으로도 정리하기 어려운데 인간이 이성을 가지고 사유를 시작했을 때부터 존재했을 정의라는 개념을 어떻게 간단히 정리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정의는 나와 아주 비슷한 맥락에서 성장해온 내 동생이 생각하는 정의와도 크게 다를 것이다. 사람들이 각각 가지고 있는 정의에 대한 관념은 적극적인 대화와 행동을 통해 충돌하고 경쟁하며 동화 및 흡수되기도 한다. 이렇듯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 정의만이 살아있는 정의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정의와 가장 맞닿아 있는 사람들―법조인, 경찰, 정치인 등―의 역할은 '~가 정의다'라도 결론을 내려주는 것보다 사람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정의에 대해 능동적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정의의 존재 자체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가지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이 책 또한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었던 그 의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려주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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