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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말하기 노트> 편집후기 | 책 그림자 사이로 2007-06-17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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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말하기 노트 

 

 

김재원(포럼 편집팀장)

 

   

<조선 지식인의 말하기 노트>는 옛사람들이 말하기와 대화에 대해 생각하고 깨달은 글과 말하기에 관련한 일화 등을 골라 싣고, 그 글에서 깨달은 소감을 짧게 단 책이다. 같은 콘셉트의 <조선 지식인의 독서 노트>,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에 이어 출간되었다.


편집자들이 흔히 책을 자식 같다고 하는데 나에게 이 책들은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이다. 책을 준비하면서 긴장도 되었지만 세상에 나온 뒤에는 독자들에게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 무척 궁금했다. 아마 첫 아이를 가진 엄마의 심정이 그런 것일까?

최근 몇 년 사이 일반 독자들을 위한 고전의 대중화 작업이 많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그 독자층은 좁고 얕아 소수의 독자, 단골 고객을 겨냥한 책들만 계속 출간되는 것이 현실이다. 포럼에서는 그런 일반적인 인문서 이미지에서 탈피한,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인문서를 기획하게 되었다. 현대어로 옮긴 고전 텍스트에 아포리즘을 결합한 새로운 구성으로 인문서 시장의 새로운 독자층을 만들어 보자고 생각한 것이다.


최근 경제경영서에서 우화 형식의 스토리텔링이 독자들의 관심을 받는 데서 착안, 우리 옛글을 좀더 많은 사람들이, 좀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장치로 아포리즘을 달았다. 독자를 가르치거나 감성을 자극하는 말랑한 말이 아니라 옛글에서 얻은 깨달음을 짧게 기록하여 생각거리를 던져주도록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유명 필자의 익숙한 글보다 새로운 필자의 참신한 글이 우리 의도와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하여 엄윤숙 선생님을 섭외, 아포리즘 작업을 의뢰했다. 고전연구회 사암의 한정주 선생님이 가려 뽑은 옛글에 엄윤숙 선생님이 멋진 글을 달아주셨다.

 

또한 제목과 표지 디자인 등도 같은 콘셉트로 이러한 기획 의도가 잘 드러나도록 했다. 이제까지 인문서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색감과 디자인으로 젊은 감각에 맞게 포장한 것이다. 출간 전 모니터링 결과와 출간 후 반응에서 과연 인문서다운 디자인이냐 우려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러한 반응이 이 책의 정체성에 대한 반증일 것이다.

 

고전연구회 사암은 고전의 대중화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모임이다. 포럼에서 이미 여러 권의 책을 냈으며, 앞으로도 더욱 활발한 활동이 기대되는 연구단체이기도 하다.   포럼과 고전연구회 사암의 새로운 시도, 인문서의 새 독자층을 이끌어낼 조선 지식인 시리즈에 대해 기탄없는 평가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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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권의 옥중 서간, 우리말 속 일본말 여행 | 책 그림자 사이로 2007-03-21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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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꾸와 오라이

 

 

 

 

 

 

고유진 (도솔오두막 편집팀장)
 

《빠꾸와 오라이》는 《야생초 편지》에 이은 황대권 선생의 옥중서간 모음이다. 황대권 선생 소개를 잠깐 하자면, 서울농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제3세계 정치학을 공부하던 중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서른 살인 1985년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사십 대 중반인 1998년까지 13년 2개월 동안 영어(囹圄) 생활을 했다. 삼십 대는 인생에서 뭔가 꿈꾸던 것을 실현하는 시기가 아닌가. 비록 옴짝달싹 못하는 수인이었지만 바깥세상에서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배움과 개안(開眼)의 시간으로 이 시기를 보냈다. 감옥은 선생에게 ‘대학’이었다. 생태, 어학, 노장사상, 그리고 대안사회 모색에 이르기까지 선생의 관심은 사람살이 전반에 걸쳐 있었다. 또 하루 한 통에 가까운 편지 쓰기를 통해 자신의 공부를 정리해나갔다.

 

이 책은 영어 생활을 한가운데인 1993년 상반기 안동교도소에 있을 때 쓴 편지 모음이다. 《야생초 편지》를 보면 1992년 10월을 지나면서 93년 5월까지는 편지가 끊겨 있다. 《야생초 편지》를 만들면서 7개월 동안에는 편지가 없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저절로 의문이 풀리게 되었다. 이 시기 선생이 집중했던 것은 바로 ‘우리말인 줄 알았던 일본말 목록 만들기’였던 것이다. 어느 날 선생은 일본책을 읽다가 ‘맘마’라는 단어를 보게 되었다. 우리말인 줄 알았던 이 단어가 일본말임을 알고 당신이 모르고 쓰는 일본말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졌다고 한다.
선생은 1700여 쪽에 달하는 일본어 사전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당신이 모르고 쓰는 혹은 일상적으로 쓰는 일본말이 얼마나 되는지 대학노트에 추려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단어들을 골라내기 시작하자 이 말을 쓰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고 일본말을 매개로 하여 동생에게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편지를 쓰게 되었다.

 

모찌, 오꼬시, 웨하스, 다마, 구루마, 난낭구, 빤쓰, 야구 빠따, 카스테라, 바리깡, 나시, 가마솥, 우와기 등, 이 책에는 육칠십 년대 일상에서 쓰던 일본말 240여개를 매개로 한 선생의 유년기, 청장년기, 그리고 감옥 생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일본말로 불리던 맛있는 음식 이야기를 쓰던 선생의 마음속은 어떠했을까. 사흘 굶으면 돌멩이도 삼킨다고 했는데…. 또 학교에 다녀오면 밤 열두 시 땡 칠 때까지 동네 골목을 누비며 노는 게 일과였다고 한다. 우리 전통놀이에 대해 한번 수집, 정리하고 싶을 정도로 수많은 놀이들이 기억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장껨뽕, 쌈치기, 다마치기, 보루바꼬로 이글루 같은 눈 벽돌집 만들기, 낚시 등 놀이에 얽힌 얘기들이 흥미롭다.

 

독자들은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감옥 안에서 시간이 얼마나 안 갔으면 그 두꺼운 사전을 다 읽을까. 물론 선생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였다면 이런 작업은 엄두조차 나지 않았을 것이다. 선생은 천칠백여 쪽이 넘는 사전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일본말로 얼룩져 있는 자신의 언어세계와 우리의 골곡진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쓰던 일본말은 많이 사라져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낯설기도 하지만 아직도 기계, 학문 등의 전문분야에서 일본말은 상당히 살아 있다. 또 일본에서 미국으로 외래어의 종주국이 넘어갔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쓰고 있는 상당수의 외래어가 내 정신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한번 질문해보자. 왜곡된 자신의 언어세계를 한번 관찰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육칠십 년대 풍경과 문화가 어린 아이의 시각으로 고스란히 담겨 있어 같은 세대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그보다 어린 세대에게는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풍경을 볼 수 있어 흥미진진하며, 덤으로 우리가 모르고 쓰던 일본말의 어원들을 파헤치는 재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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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마크에 반하다 | 책 그림자 사이로 2007-02-2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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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마크 lovemarks

 

 

 

공혜진 (서돌출판사 대표)

 

사랑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찾아온다.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다 연인이 되기도 하고, 존경심이 사랑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소개팅 자리에서 만난 데면데면한 사이가 평생의 동반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사랑의 클라이맥스는 ‘운명의 상대를 보는 순간 갑자기 그 사람을 제외한 주변의 모든 게 정지된 듯 느껴지고, 그 사람에게서만 빛이 나는’ 영화 속 장면 같은  매혹적인 상황이다. 그래서 수많은 드라마나 소설에서는 늘 두 주인공이 항상 우연히 만나 한눈에 반하고 사랑한다. 그런 사랑일수록 빨리 식는다고? 어떤 사랑이든 늘 이별의 위험은 따르게 마련이다.

 

영국 출장길에서 <러브마크>를 만났다. 비슷비슷한 책 표지의 비즈니스 서적 가운데에서 <러브마크>의 빨갛고 도도한 표지는 못 보고 지나칠 수 있는 얼굴이 아니었다. 마법에 이끌리듯 다가가 그 책을 여는 순간 나의 마음은 이미 설레기 시작했다. 그렇게 불과 몇 초 만에 나는 <러브마크>에 매혹당했다.

 

<러브마크>의 저자 케빈 로버츠는 세계적인 광고 에이전시 사치&사치의 CEO다.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늘 흰색만 입는 것과는 반대로 케빈 로버츠는 언제나 검은색 일색의 캐주얼 차림으로 전 세계를 돌며 업무를 보고 강연을 한다. 지금은 비즈니스계의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지만, 어릴 적 그는 고등학교를 퇴학당할 만큼 말썽쟁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는 정신을 차리고 P&G, 펩시콜라 같은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하다가 1997년 세계적 광고 회사 사치&사치의 CEO가 되어 적자에 시달리던 기업을 단숨에 흑자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또한 그의 마케팅 전략은 도요타 자동차와 P&G 같은 거대 기업의 매출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케빈 로버츠가 재작년에 한국에서 열린 세계신문총회의 연사로 초청되어 내한했을 때, <러브마크> 한국판을 낸 출판사 사장 자격으로 초대되었다. 각국에서 모인 기자들은 그에게 향후 비즈니스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해 질문했다. 그의 대답은 매우 단호했다.
“사랑받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될 것입니다.”

사랑받는 기업이라고?
케빈 로버츠가 처음 이 개념을 주장했을 때만 해도 많은 기업인들이 얼굴을 붉히며 당황했다고 한다.


‘기술력의 평준화가 이루어진 요즘에는 더 이상 제품의 성능이나 가격으로만 승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고객과 감성적 유대를 맺는 기업, 특히 감성 중의 최고의 감성인 사랑을 받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라는 그의 경영 철학은 지금에 와서는 많은 기업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하지만 사랑이 그렇게 호락호락한가? 전화기 너머로 114 직원이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외칠 때마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 여자에게 듣는 사랑 고백에 늘 당황한다. 그야말로 흔하디흔한 게 사랑이라지만 이건 좀 아니다 싶다.

케빈 로버츠는 <러브마크>에서 정말로 ‘사랑’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이성을 뛰어넘는 충성도’를 이끌어낸 수많은 브랜드들을 소개하고, 기업들이 어떻게 자신의 브랜드를 ‘러브마크’로 승화시켰는지 그 방법을 분석한다.

 

<러브마크>는 이미지가 많은 책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 책이 텍스트만 추리면 양이 얼마 되지 않는 것을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만약 <러브마크>가 값싼 재활용지에 깨알 같은 활자로 러브마크의 개념을 설명했다면, 그것은 노래하지 않고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과 다름없다. <러브마크>는 러브마크가 되는 방법을 이성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책 자체가 러브마크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가장 심오한 사람의 진실은 사랑을 명령하거나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랑은 그저 받을 수 있을 뿐이다. 권력과도 같이, 사랑은 줌으로써 받을 수 있다.”
우리 출판사도 갈 길이 멀다는 반성을 자꾸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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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트 코스는 힘이 세다 | 책 그림자 사이로 2007-01-09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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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희망의 인문학

얼 쇼리스 저/고병헌,이병곤,임정아 공역
이매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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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용우(이매진 편집자)

 

 

<희망의 인문학>은 편집자에게 많은 시련과 고난을 안겨 줬던 책이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힘 센 장사들 틈에서 워낙에 부대꼈던 탓이다. 이 역사(力士)들과 함께 했던 작은 역사(歷史)를 짧게 되짚어 볼까 한다.

 

1. 얼 쇼리스는 힘이 세다.
이 책을 출간하기 위해 역자들과 본격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건 2006년 1월 즈음부터였다. 마침 책의 저자인 얼 쇼리스 선생이 한국형 클레멘트 코스 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방문한다는 말을 듣고, 저자와 역자를 한 번에 모두 만나려는 ‘꿩 먹고 알 먹기’ 전략을 펴 역자들과 약속을 잡았다. 하지만, 이매진에 들어간 지 며칠 되지 않아 미처 명함을 준비하지 못해 말 그대로 ‘명함도 못 내미는’ 내게 역자들을 비롯한 행사 관계자들은 경계의 눈빛마저 보이는 것 같았고, 얼 쇼리스 선생도 몸이 좋지 않다고 해서 아무 성과도 없이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들으니 얼 쇼리스 선생은 출판사 대표를 직접 만나고 싶어했다고 한다. 클레멘트 코스를 위해서 그 책을 만드는 출판사 대표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려 했다는 것이다. 선생이 미국으로 돌아가신 뒤, 선생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선생이 <희망의 인문학>에 대해, 클레멘트 코스에 대해 가진 열정이 대단하다는 점을 매번 느꼈다. 선생은 편지를 거의 매번 이런 말로 끝맺었다. “클레멘트 코스를 위해 우리가 갈 길이 멉니다. 힘을 냅시다.”

 

2. 고병헌은 힘이 세다.
역자인 고병헌 선생도 진행 과정 내내 책에 대한 열정으로 편집자를 괴롭혔다. 간단히 일정을 조율하려고 전화를 걸었다가도 이야기는 거의 매번 책 내용에 대한 것으로 넘어갔고, 통화 시간은 항상 예상을 훨씬 넘기곤 했다. 또, 고병헌 선생은 신영복 선생께 직접 부탁을 드려 표지글씨와 추천사를 받아주기도 했다. 역자들이 이렇게 열의를 갖고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데 편집자가 제대로 받쳐주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내심 괴로웠다.
책은 준비한 지 1년여 만에 세상에 나왔다. 서평도 여러 곳에 실렸고, 그 덕분인지 예상보다 빨리 2쇄를 찍게 됐다. 역자인 고병헌 선생께 연락해 2쇄를 준비 중이라고 했더니, 기왕에 찍는 거 1쇄를 찍으며 부족했던 부분을 좀더 보완해보시겠다며 교정을 볼 시간을 달라 하셨다. 2주 뒤에 고 선생에게서 건네받은 교정용 책엔 거의 매 장마다 빨간 펜으로 표시가 되어 있었다. 책을 건네며 하는 말씀이, 책이 어렵다는 평이 많아 표현을 쉽게 바꾸고 주석을 추가하느라 손을 좀 봤다는 것이다. 이제 2쇄를 찍는데 필름을 완전히 새로 뽑아야 하는 판국이니 출판사로서는 손해라면 손해지만,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역자를 만난 행운에 댈 것이 아니다. 이 좋은 책을 더 많은 독자가 읽어주기만 한다면야 세 번이고 네 번이고 필름을 새로 뽑는 게 문제일까.

 

3. 이매진은 힘이 세다.
<희망의 인문학>으로 얻은 게 많다. 좋은 필자를 얻었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며, 좋은 책은 알아주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도 다시 느꼈다. 이매진은 독자들의 반응으로 힘을 얻었고, 좋은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안팎의 압력도 받고 있다. 힘이 세지긴 했지만 갈 길이 멀다. 이매진은 이제 클레멘트 코스에 교재로 사용될 만한 책들을 내려고 준비한다. 힘을 내려 한다. 클레멘트 코스도, 그리고 이매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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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을 변치 않는 마음만으로 벗을 사고 싶은 이들에게 | 책 그림자 사이로 2006-09-29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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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거문고 줄 꽂아놓고

이승수 저
돌베개 | 2006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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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희동 (돌베개 편집자)

 

“부르르, 부르르”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이 전화 받으라며 딴에는 온몸을 흔들어대며 요동을 친다.  폴더를 열자마자 대뜸 들리는 소리,
“뭐 하노? 마이 바쁘나?”
일상의 지루함과 건조함을 깨뜨리는, 눈물이 찔끔 날 만큼 낯설고 반가운 소리다.

 

내게는 ‘닭’이라는 썩 고상하지 않은 애칭으로 불리는 친구가 하나 있다. 어릴 적 사귄 친구가 허물없고 정겹다고 하지만, 우리는 대학 시절 처음 만났으면서도 시골(?)에서 상경한 탓에 비교적 순수함을 간직한 채 쉽게 의기투합할 수 있었다. 때로는 술에 취해 별것 아닌 일로 부둥켜안고 울기도 했고, 프랑스 월드컵 때는 ‘푸티’(1998년 프랑스 월드컵의 마스코트인 수탉으로 다소 방정맞게 생겼음) 인형을 선물하며 낄낄대기도 했으며, 군에서 제대했을 때는 ‘병장의 귀환’을 진심으로 감사하며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기도 했다. 지금은 비록 각자 가정을 가진 소위 ‘아저씨’가 되어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늘 가슴 한 켠에는 서로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을 쌓아가고 있다. 내가 <거문고 줄 꽂아놓고>의 초교를 처음 받아들었을 때 그 친구를 떠올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물론 요즘 같은 세상에 ‘우정’이, 그것도 옛사람들의 우정 이야기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적인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뜻밖이었다. 글을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갈수록 ‘닭’이 보고 싶어졌다. 1년에 잘해야 겨우 두어 번 보는 그 녀석 얼굴이 자꾸 떠올라 심란해졌다. 그리고 책을 진행하는 동안,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나와 같은 마음으로 친구를 떠올리게 될 거라 굳게 믿게 되었다. “딱딱한 역사 이면에 숨어 있는 내용도 아름답지만 이를 풀어가는 저자의 삶에 대한 통찰이 깊이 배어 있는 문장이 눈부시다”는 모 신문사의 서평처럼, 저자의 경험과 그 경험에서 우러나온 성찰이 오래도록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거문고 줄 꽂아놓고 홀연히 잠에 든 제
시문견폐성(柴門犬吠聲)에 반가운 벗 오는고야
아희야 점심도 하려니와 탁주 먼저 내어라

조선 후기 김창업의 작품이다. ‘거문고 줄 꽂아놓고’라는 제목은 이 시조에서 따왔다. 화자는 거문고 줄을 잘 골라놓고 솔바람 소리에 맞춰 새로 얻은 곡조를 타보기도 하지만 들어줄 사람이 없어 결국 거문고를 벽 한구석에 세워놓고 홀연히 잠에 들었다. 그때 사립문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 연주를 들어줄 손님이 찾아온 것이다. 너무 반가워, “점심상 올릴까요?” 하고 묻기도 전에 “술상 내오너라. 점심은 조금 있다가 먹자” 하고 부엌을 향해 소리친다. 찾는 이 없는 소박한 집의 낮은 적막하고 길다. 마치 보통 사람들의 삶처럼. 그 집은 손님이 찾아오면서 아연 활기를 띤다. 마찬가지로 우리네 삶은 한 사람의 지기(知己)를 얻는 순간 생동감으로 넘치게 된다.

 

혹여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한 친구도 없고, 남들에게 그러한 친구가 되어주지도 못해 이 책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염려 붙들어 매라고 전하고 싶다. 이 책에는 옛사람의 아름다운 사귐에 대한 동경과 오늘날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패거리 문화에 대한 비판은 있을지언정, 변변한 친구 하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조롱과 비난은 없으므로. 한편으로는 지루하고 무미하게, 다른 한편으로는 그저 앞만 보고 허덕거리며 살아온 우리의 슬픈 삶을 위로하고, 잠시 뒤돌아보며 숨 고를 수 있는 여유를 주려는 저자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으므로. 이 책이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지루한 일상의 적막을 깨는, 딱딱하게 굳은 마음을 ‘심하게’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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