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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파괴의 경제사 | 경제경영 2010-02-2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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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국가의 부와 빈곤

데이비드 S. 랜즈 저/안진환,최소영 역
한국경제신문사(한경비피)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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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껍고 무거운 책은 바로 그 두께와 무게 때문에 쉽고 재미있다.

국내서적에선 드물게 색인까지 갖추고 있고 방대한 참고문헌 목록까지 갖춘 이책은 본문만 800페이지에 육박한다. 그것도 요즘 유행하는 종이 크기에 비해 큰 글씨로 과대포장과는 거리가 먼 조판으로도 그렇다.

책표지에는 600년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책의 서술은 유럽의 중세 아니 로마제국의 멸망 이후와 이슬람권의 발흥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1000년을 훌쩍 넘어선다. 그것도 유럽과 미국에만 한정된 것도 아니고 세계경제사라고 부를 수 있는 범위를 갖는만큼 이책의 800페이지 분량은 오히려 적은 것이다.

대개 그만큼 내용이 방대해지면 주마간산격이 되어 깊이가 부족해지기 쉽다. 분량에 비해 다루어야 할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그만큼 긴 시간과 넓은 지역을 모두 이해할 만큼의 내공을 가진 학자가 드물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책은 그런 단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책은 천년의 시간을 압축적으로 제시하면서 시대의 요점을 명쾌하게 제시한다. 방대한 팩트를 단순명쾌하게 제시하는 책만큼 재미있는 것도 드물다. 2차대전에 참전했던 저자인 만큼 오랜 연륜에서 나오는 내공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저자의 내공은 복잡한 팩트들을 평평하게 다림질해서 알기 쉽게 다듬어준다. 그리고 이미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나이에 쓴 만큼 거드름도 잘 난 채할 필요도 없는 저자는 경제사에 관해 문외한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있다. 이책이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이책은 일반인들을 위한 교양서로만 쓰인 것은 아니다. 저자가 학자 그것도 저명한 학자인만큼 동료들에게 할말이 많을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저자는 유럽중심주의라는 구닥다리 신념을 가진 노물로서 요즘 유행하는 다문화주의 또는 탈유럽중심주의자가 된 동료들에게 할 말이 많은 것이다. 그리고 저자가 유행에 뒤졌다는 사실이 이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또 다른 이유이다.

불구경과 싸움구경은 언제나 재미있다. 그리고 논쟁하는 사람은 논점을 분명히 말하고 표현을 알기 쉽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논쟁의 기술이니까.

이책이 나온 1999년은 새천년을 바라보던 해였고 그런만큼 지난 천년의 역사를 특히 경제사를 돌아보는 책들이 많이 나왔다. 이책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다른 책들이 당시 학계의 유행에 따라 유럽중심주의에서 벗어난 논조를 가졌지만 이책은 퇴물이 된 유럽중심주의를 내세웠다. 그러나 이책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이책은 제목처럼 왜 지금의 부자나라는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가난한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저자의 답은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로 요약할 수 있다. 저자는 그말을 쓰고 있지는 않고 부자와 가난뱅이를 가른 이유는 문화라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가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혁신을 언급할 때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창조적 파괴로 보인다.

슘페터와 마찬가지로 저자는 경제성장의 동력은 혁신이라 말한다. 그러나 혁신은 언제나 파괴적일 수 밖에 없다. 코닥의 몰락은 창조적 파괴의 좋은 예이다. 북미의 필름 시장을 거의 독점했던 코닥은 60%의 마진을 자랑했지만 지금은 겨우 파산을 모면하고 생존에 급급한 처지이다. 코닥이 몰락한 것은 디지털 카메라라는 혁신이 나왔기 때문이다.

모든 혁신이 그렇지는 않지만 혁신은 현상태를 뒤엎는 경향이 있다. 바로 그런 혁신의 속성 때문에 슈페터는 창조적 파괴라는 말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혁신의 파괴력을 받아들이는 문화가 서구의 약진을 설명한다는 것이 저자의 요점이다.

저자는 왜 서구가 지금의 부를 이루게 되었는가를 제도에서 찾는다. 중세유럽의 봉건제가 창조적 파괴 즉 혁신이 가능했던 이유라는 것이다.

당시 중국과 이슬람권은 유럽보다 윌등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 동남아의 화교는 그 지역 경제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그들이 동남아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인의 문화가 경제적 성공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왜 본토에선 그런 성공이 없었는가? 저자는 제도 때문이라 말한다.

중국의 제국질서는 상공업의 성공을 용납할 수 없었다. 제국의 붕괴는 상공업의 번성과 그로 인한 부의 축적과 함께 시작되었다. 돈은 힘이고 그 힘은 언제나 정치적 힘으로 바뀔 수 있다. 상공업으로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면 기존의 제국질서는 흔들리게 된다. 유럽의 역사에서 부르주아 계층이 봉건귀족을 대신하게 된 것을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겉보기와 달리 중국의 제국질서는 허약하다. 물론 제국의 붕괴는 상공업의 뉴머니 때문은 아니지만 그 돈은 붕괴를 가속한다. 제국이 무너지고 그 폐허에서 태어난 제국이 억상중농 정책을 펴는 것이 당연하다.

상공업의 부가 통치질서를 뒤흔들 가능성 때문에 제국은 상공업을 통제하려 했다. 그러나 권력없는 부는 언제나 허무하게 끝나게 마련이엇다. 재산권이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 무슨 혁신이 일어나는가? 그리고 현상태를 뒤흔드는 것이 혁신의 본질인데 혁신은 억압되었다.

중국은 송나라 때 코크스 제강법을 알고 있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강철의 양은 19세기 유럽 전체의 생산량보다 컸다. 그러나 송이 망하고 그 기술은 잊혀졌다. 기계식 시계도 그때 만들어졌지만 그것도 잊혀졌다. 그리고 정화의 남해 원정은 중국의 항해기술이 천하제일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정화의 죽음과 함께 그 기술도 잊혀졌다.

지금까지 왜 그런 기술들이 잊혀졌는가는 수수께끼이다. 그러나 중국의 제도 때문이 아닐까 저자는 생각하는 것같다. 중국의 제국질서라는 제도는 중국의 경제가 수천년동안 일보 전진 이보 후퇴를 반복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슬람권 역시 별 다를 것이 없었다. 여기선 쿠란의 글자에 사지가 묶인 것이 원인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경전의 글자에 사회를 묶어두어야만 했던 사회는 혁신의 파괴성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세유럽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로마제국 이후 제국이 사라진 유럽에선 군주와 영주들이 서로 경쟁해야만 했고 이슬람과 달리 지상과 하늘을 분리해서 보는 기독교의 교리에다 종교권이 속세의 권력과 경쟁하던 시절에 혁신을 억누를 권력은 없었다. 그런 환경에서 혁신을 담당하는 부르주아라는 계층이 부를 쌓을 수 있었고 혁신의 파괴성은 (마지못해서이겠지만) 허용될 수 있었다.

저자는 전통적으로 서구학자들이 그랬듯이 일본이 유일하게 비서구권의 선진국이 된 이유를 바로 같은 맥락에서 설명한다. 유럽이 이슬람처럼 제국이 없기는 했지만 이슬람의 무정부상태와는 달리 재산권과 같은 기본적인 질서는 유지할 수 있었던 것처럼 도쿠가와 막부는 질서를 유지해주었다. 그러나 지방의 다이묘들은 일종의 기업과 같았고 그 기업들은 서로 경쟁관계에 있었다. 유럽의 중세 그리고 근세의 영지와 국가간의 경쟁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경쟁은 혁신을 조장한다.

저자는 그런 제도적 차이로 중세 이후 문명들의 격차를 설명하다. 그러나 제도만으로 모든 것은 설명되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슘페터가 창조적 파괴를 말하면서 기업가 정신을 말했듯이 저자는 제도가 갖추어져도 혁신을 담당할 기업가 정신이 없이는 경제성장이 가능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기업가 정신은 문화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혁신은 리스크가 있다. 창조적 파괴란 기존의 질서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자신도 파괴한다. 혁신의 대부분은 쓸모없이 잊혀진다. 그중 극히 소수만 1%도 안되는 소수만 살아남아 경제성장을 촉진한다. 그런 리스크를 떠안는 용기가 기업가정신이다.

그런 기업가 정신의 예로 유명한 것이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정신이다. 화교들에게서도 그런 정신을 찾을 수 있으며 일본의 조닌들에게서도 그런 정신을 찾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혁신을 받아들이는 기업가 정신과 그 정신이 실천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지금의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를 나누었다는 것이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이다.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그러나 이책의 미덕은 천년이란 시간과 세계라는 공간을 그 논지로 설명해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설명이 단순명쾌하고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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