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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화입마에 빠진 경제학 | 경제경영 2010-05-13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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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야성적 충동

조지 애커로프,로버트 쉴러 공저/김태훈 역/장보형 감수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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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과학계는 맑스주의의 가짜비급을 익히다 주화입마에 빠졌다." 어느 정치학자의 글에 나오는 말이다.

가짜비급이었는지 여부를 떠나 정치학자의 말대로 주화입마에 빠졌던 것은 사실이었다. 왜 그랬을까? 맑스주의의 저항할 수 없는 매력때문이었다.

다양한 분파가 있고 다양한 접근이 있기 때문에 뭉뜽그려 말할 수는 없지만 맑스주의의 기본논리는 '바보야 경제가 문제야'로 요약된다. 경제적 소유에 따른 계급이란 개념으로 사회의 모든 문제가 설명된다는 환원론 내지는 결정론이다.

오만잡다하고 복잡하기 이를 데없는 문제를 변수 하나로 설명이 가능하다니 이 아니 기쁠 수 없다. 문제는 세상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맑스주의의 한계는 바로 그 매력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치명적 유혹에 넘어간 한국의 사회과학계는 주화입마에 빠져 현실을 보는 눈이 멀어버렸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맑스주의가 속류 또는 부르조아들의 가짜 학문이라 부르며 증오해마지 않는 주류경제학 역시 마찬가지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Economics as Religion'이란 제목의 책이 기억난다. 밀튼 프리드먼의 시카고 학파를 공격하는 이책은 주류경제학을 과학이 아니라 종교라 비판했다. 왜 그런지 이유를 알기 위해 번역되지도 않은 그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야성적 충동'이란 케인즈의 말을 제목으로 삼은 이책 역시 마찬가지 내용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은 사회과학의 여왕이다. 경제학은 학문으로서도 졸업생의 취직에서도 여왕의 자리를 굳히고 있다. 경제학이 그런 지위를 차지한 이유는 사람들이 바라마지 않는 돈에 관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학이 학계에서도 여왕인 이유는 방법론에 있다.

고등학생 시절 경제학과를 갈까 생각하다 다른 과를 택했었다. 이유는 수학을 못했기 때문이다. 수학자보다 수학을 더 잘한다는 말을 듣는 경제학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경제학 논문을 보면 왠만한 수학지식으로는 이해는 고사하고 읽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러나 경제학이 원래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경제학 논문은 다른 사회과학과 마찬가지로 '썰'로 승부하는 학문이었다. 그러나 한계효용이론과 함께 경제학이 수학화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한계효용이론은 경제학의 혁명이라 할 수 있었다. 한계효용이론과 함께 경제학이 수학화되면서 경제학은 인문학이 꿈에도 바라마지 않는 '과학'의 지위를 갖게 되었고 인간사회를 자연세계처럼 수학적으로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경제학의 수학화가 가능했던 것은 한계효용이론의 인간에 대한 가정 때문이다. 적어도 시장에서는 인간행위가 특정한 형식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시장에서 인간은 자신의 행위가 가져올 손익의 결과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인간은 최소한 시장에서 거래할 때의 인간은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손익의 결과에 따라 설명할 수 있다.

문제는 인간은 시장에서 조차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아무리 이기적인 인간이라도 계산기처럼 손익관계만 생각하고 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아무리 경제학자라 해도 인간의 모든 동기가 수학으로 표현할 수 있는 손익계산만 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시장에선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책의 저자들은 시장에서조차 인간은 손익계산의 기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새삼스러울 것 없지 않은가? 경제학에 대한 다른 사회과학자들의 공격은 항상 그런 전제를 깔고 있었고 경제학 내에서도 행동경제학은 그런 문제의식에서 태어난 접근법이다. 이미 번역된 행동경제학 서적만도 많고 많다. 그러면 이책을 읽을 가치가 있는가?

결론만 말한다면 가치가 있다. 이제까지 나온 행동경제학 서적들은 미시경제학의 영역을 건드렸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이 그다지 신통한 설명력을 갖는다고 보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뭐 말은 맞겠지 그래서 뭔데(So what?)

이책은 바로 그 문제를 커버하려는 시도로서 미시경제학의 영역을 넘어 거시경제학으로 설명의 영역을 넓히려 한다. 그리고 저자들이 준거점으로 삼는 것은 거시경제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케인즈이다.

케인즈 이래 거시경제학의 핵심주제는 경기순환이다. 대공황이라는 재앙에서 태어난 거시경제학은 왜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가 그리고 그 사이클의 진폭을 줄일 수 있는가에 집중해왔다.

경기순환을 일으키는 팩터는 다양하다. 그러나 경기순환을 GDP의 증감으로 생각해보면 변수를 2가지로 줄일 수 있다. (기업의) 투자와 소비이다. 투자와 소비가 늘어나면 경제가 팽창하고 반대면 경제는 수축하면서 사이클을 만든다. 대공황이 일어난 이후 왜 공황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설명으로 당시 경제학자들은 케인즈의 승수개념을 받아들였다(수수효과에 대해선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니 여기선 설명 생략).

그러나 이책의 저자들은 승수효과의 이론적 근거가 되는 케인즈의 다른 핵심개념은 버려졌다고 지적한다. 바로 이책의 제목인 야성적 충동이다.

야성적 충동이란 개념이 버려진 것은 그것이 경제학의 합리성 개념과 대치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저자들은 케인즈의 진정한 공헌은 승수효과보다 인간의 경제적 행위에 비합리적인 동기가 있다는 것을, 그 동기를 경제학의 설명 프레임에 넣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들은 이책에서 케인즈가 원래 의도했던 대로 야성적 충동이란 개념을 사용해 어떻게 경제를, 특히 거시경제를 설명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려 한다.

경기순환의 예를 들어보자. 호황기에는 투자와 소비가 늘어난다. 투자를 하면 투자 원금을 회수하는 이상으로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며 미래에 더 많은 소득을 올릴 것 또는 적어도 지금처럼 소득을 올릴 것이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에 소비 역시 늘어난다.

케인즈는 이것을 자신감이라 말한다. 특히 자산시장에서 자신감은 더 중요하다. 자산시장은 가격이 오를 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시장이다. 왜냐하면 미래에 가격이 더오를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에 자산을 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물경제이든 자산시장이든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기대 또는 자신감의 합리적 근거는 없다. 사람들은 막연히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경기가 반전되어 불황이 오면 자신감은 반대방향으로 움직여 실제 펀더멘틀 이상으로 스윙한다. 그런 갑작스런 과잉반응 역시 자신감의 비합리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이야기 역시 자신감을 강화하거나 약화하면서 경기의 진폭을 증폭한다. 닷컴버블이 한창일 때 있었던 뉴이코노미라는 이야기도 그런 것이며 한국인의 부동산 불패신화도 그런 것이다. 그런 이야기들은 사실 근거가 희박한 것이며 그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 사람들 역시 근거를 충분히 따지지 않는다. 현실을 그대로 인식하기엔 인간의 능력은 부족하다.

그외에도 임금이나 가격이 결정되는 메커니즘에 대한 설명으로 공정성이란 비합리적 기준이 설명되며 도덕적 해이란 말로 널리 알려졌던 부패에 대한 설명, 그리고 프리드먼이 폐기했던 화폐착각이라는 현상에 대한 설명등이 이책에 등장한다.

이책은 그러한 비합리적인 심리를 근거로 경기순환, 중앙은행, 노동시장, 실업과 인플레, 저축률, 투자의 변동성, 자산시장 등을 설명하면서 주류경제학의 헛점을 어떻게 야성적 충동이란 개념으로 메울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이상이 이책에서 기대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이책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행동경제학의 거시경제학으로의 영역확장을 위한 시도이다. 그러한 시도로서 일단 이책은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책은 시도이다. 이책에서 완전한 설명, 가령 한권의 거시경제학 교과서에서 기대할 수 있는 내용을 바란다면 잘못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에 관심이 있다면 그리고 그 접근법이 어떤 가능성이 있는가를 알고 싶다면 읽어볼 가치가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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