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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 요람에서 무덤까지 | 인문/사회/역사 2010-09-29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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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국

닐 퍼거슨 저/김종원 역
민음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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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을 건설하는 데 약 3세기가 걸렸다. 절정기에 대영제국은 세계 지표면의 25%를 차지했고 거의 같은 비율의 인구를 통치했다. 뿔뿔이 흩어진 몇 개의 섬만을 유품으로 남긴 채. 해체하는 데는 단 30년이 걸렸다."

이책의 질문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제국이였던 대영제국이 어떻게 300년 동안 만들어질 수 있었고 그런 제국이 어떻게 단 30년만에 해체될 수 있었는가? 이다.

대영제국의 시작은 모든 영광이 그렇듯이 허접했다. 대항해시대에 이웃나라들의 부와 영광을 구경만 해야 했던 영국은 가난하고 보잘 것없는 섬나라 촌구석일 뿐이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아메리카 대륙을 약탈하고 아시아의 부를 실어나를 때 영국은 스페인의 배를 해적질해 부스러기를 주워담는 수준에 만족해야 햇고 그들이 내버려둔 북미의 허허벌판에서 대구나 잡고 담배나 키우는 것으로 주린 마음를 달래야 햇다.

그러나 스페인 제국은 바로 그 영광의 광채 때문에 오래가지 못한다.

처음부터 스페인은 약탈 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나라였다. 레콩퀴스타라 불리는 국토회복운동이라는 것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고도의 시스템을 갖춘 이슬람 도시들을 약탈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들은 신을 진심으로 믿었고 기사도의 명예를 믿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그들의 약탈을 정당한 것으로 믿고 싶어하는 심리적 방어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본토에서 약탈 대상이 사라졌을 때 아메리카 대륙이란 행운이 찾아왔다. 잉카와 마야는 제국으로서 약탈하기 딱 좋은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 두 제국이란 희생자의 피도 다 빨린 후에 스페인 제국에게 남은 것은 몰락 밖에 없었다.

단명에 그친 스페인 제국과 달리 대영제국은 장수를 누렸다. 대영제국은 스페인 제국과 달리 정복과 약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건설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대영제국의 시작은 아일랜드 정복에서부터 시작된다. 아일랜드부터 시작된 영국의 식민지는 북미로 확대되었다. 아일랜드부터 북미까지 영국 식민지의 공통점은 스페인과 달리 국내에 넘쳐나는 인구를 수출하는 '백색역병'이었다는 점이다. 영국의 식민지는 말 그대로 '사람을 심은 땅'이었다.

미국이 독립하기 전까지 대영제국의 시스템은 서인도제도에서 설탕을 재배해 영국으로 수출하고 영국은 설탕을 유럽으로 재수출하며 북미 식민지는 서인도제도에 식량을 수출하는 삼각무역이였다.

삼각무역의 꽃은 설탕이엇다. 그러나 그 설탕은 노예의 피를 먹고 피어야 하는 꽃이었다. 노예를 조달하기 위해 영국은 포르투갈이 개척한 노예무역에 뛰어들어 최대의 노예무역국이 된다.

영국의 제국건설은 정복과 약탈에 기초한 스페인과 달리 영토국가의 확장이란 성격을 가졌다. 스페인은 약탈하기 위해 원주민이 필요햇다. 그러나 영국은 자국인을 옮겨 정치, 경제, 문화를 그 땅에 그대로 복제하는 식이었기 때문에 원주민은 경작을 위해 제거되어야 할 잡초일 뿐이었다.

약탈이 아니라 착실히 영토를 늘려가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식민지 건설은 오래 걸렸다. 그러나 그렇게 건설되었기 때문에 미국을 제외하고 당시 건설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는 오래도록 제국에 충실한 식민지로 남을 수 있었고 안정적인 제국의 기초가 만들어질 수 잇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제국의 땅은 만들어질지 모르지만 제국의 영광은 느낄 수 없었다. 당시 제국의 영광이란 광채는 아시아와의 교역에서 나왔다.

그러나 아시아 교역은 포르투갈을 누르고 교역망을 장악한 네델란드의 패권에 도전하는 힘든 작업이엇다. 영국은 네델란드와 전쟁까지 불사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해결은 간단햇다. 네델란드가 영국을 인수한 것이다. 오렌지공이 영국왕으로 즉위하면서 네델란드와 영국의 정치/경제는 통합되었다. 국은 인도를 네델란드는 인도네시아를 영역권으로 나누게 된다.

아시아에서 영국의 관심은 영토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건설해야 하는 북미와 달리 아시아에는 고도의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었고 영국이 할 일은 그 시스템에 자리를 만드는 일 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가 된 것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엿다. 무역권을 보호하기 위해 프랑스와 같은 유럽의 경쟁자는 물론 인도 내의 토착권력과 무력경쟁을 벌이다 지배권까지 얻게 된 결과일 뿐이다.

그렇게 얻게 된 식민지의 운영은 북미의 식민지와는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영국은 물론 선임자인 포르투갈, 네델란드의 무역은 기존에 이미 있는 아시아의 무역 네트웤에 참여하는 것이었지 네트웤을 건설하는 것은 아니었다.

기존의 제도와 세력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엇고 그런 관행은 영토를 얻게 되었을 때도 그대로 이어진다. 영국은 기존의 지배층과 협력해 통치하면서 존의 정치/문화를 그대로 인정하는 방식으로 아시아의 영토를 통치했고 아프리카에서 얻은 영토에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대응한다.

산업혁명이 일어날 무렵이 되었을 때 그런 식으로 조금씩 넓어진 영국의 영토는 어느새 사상최대의 제국이 되어 있었고 영국인들은 자신들이 진정한 제국이 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자각은 우월감과 자긍심이 된다.

19세기 영국은 노예무역을 금지한다. 당시까지도 노예무역은 여전히 수지맞는 장사였다. 그러나 제국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게 된 영국은 더 이상 더러운 장사를 하면서 자존심을 더럽히고 싶어하지 않게 되었다.

자부심 넘치는 제국은 자신이 우월한 것은 신의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하게 되며 사명감을 갖게 된다. 신의 선택을 받은 우월한 자신들은 세계를 이끌 의무가 있다고(백인의 의무) 생각하면서 제국건설의 실제 이익과는 그다지 관계없는 선교에 열을 올리게 되며 뒤떨어진 불쌍한 예속민들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한 우월의식은 긍정적으로 나타난다. 영국의 지배는 스페인이나 네델란드, 프랑스와는 달랐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지금까지도 프랑스혁명의 나라라며 자유,평등,박애의 나라라 떠벌리지만 그들의 식민지에서 그런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프랑스 제국은 정신분열증에 걸려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영국은 여건이 되는 한 자국에서와 비슷하게 통치하려 노력했고 다른 제국들보다 더 효율적이고 공정하며 부패와 거리가 먼 식민지 행정을 보여주엇다. 적어도 우월감은 책임감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한 책임감은 미국의 독립이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결과이기도 하다.

미국혁명의 구호는 '대표없이 과세없다'였다. 미국의 독립 이전 런던의 중앙정부와 미국 현지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경우가 많았다. 식민지의 의원이 런던의 의회에 참여하고 중앙에서 임명된 총통에 현지인들이 민주적인 견제를 할 수 잇다면 그런 이해관계의 충돌은 완화될 수 있었고 독립으로까지 발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혁명 당시 미국인의 1/3은 영국에 충성하는 왕당파엿고 이들은 영국정부보다 더 열심히 혁명군과 싸웠다.

미국 독립 이후 중앙과 현지의 이해관계 충돌이 완화될 필요가 잇다는 교훈을 얻은 영국은 이후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 등에 미국인들이 요구햇던 자치권을 부여하게 된다.

그러나 제국의 우월감은 부정적이기도 햇다. 19세기 당시 유럽과 마찬가지로 영국에선 과학적으로 백인이 더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골상학과 우생학이 유행한다.  영국에서 백인이 앵글로색슨으로 바뀌었을 뿐 내용은 마찬가지였다. 그런 터무니 없는 우월감은 제국의 원심력이 된다.

제국의 건설에는 막대한 인력이 필요하다. 그 인력은 잉글랜드의 앵글로색슨족에게서만 나온 것은 아니엇다. 오히려 제국의 군인, 상인, 행정인력의 대부분은 켈트족인 스코틀랜드에서 나왔고 아일랜드에서 나왔다. 당시 다른 유럽국가들과 달리 영국은 종교적/민족적 관용을 택했고 대영제국은 그 관용의 기초 위에 건설되엇다.

제국의 관용은 백인들 사이에서만이 아니었다. 1858년 빅토리아 여왕은 "유럽인들과 토착민들 간의 완전한 평등'을 선언했다. 그 선언 이전에도 이후에도 영국은 식민지 지배에 광범위하게 현지인을 채용했다. 영국이 인도에 파견한 영국인은 천단위에 불과했다. 방대한 영토의 통치는 인도에서 채용한 현지인 엘리트들에 의지했고 현지인으로 이루어진 군대에 의존했다. 제국의 통치는 현지 엘리트의 협력없이는  여왕에 대한 그들의 충성없이는 불가능한 과업이었다. 그러나 그 제국의 관용은 불완전했다.

저자는 불완전한 관용의 대표적인 예로 1880년 인도에서 일어난 '백인폭동'을 예로 든다.

당시 인도에서 영국인 치안관과 판사는 영국인과 인도인에 대해 모두 심판권이 있었지만 같은 직위의 인도인은 그렇지 못했다. 같은 시험을 통과했고 같은 여왕이 임명한 동등한 제국의 관리에게 그런 차이가 있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았다. 1880년 인도 부왕으로 부임한 리펀은 인종간의 권리차이를 없앤다.

그러나 인도 현지의 영국인들은 이에 반대해 대대적인 시위를 일으킨다. 그들은 '열등한' 인도인이 '우월한' 백인을 판단할 능력도 권리도 없다며 분노했다. 그리고 그들의 인종적 교만은 인도 엘리트들에게 영국이 자신들의 충성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깨달음을 주었고 이후 국민회의가 조직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대해 에이미 추아는 이렇게 말한다 "영국이 인도를 상실하게 된 것은 아일랜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관용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인도의 경우 영국은 수십년간 피지배민들 내부에 축적되어온 선의를 완전히 날려버리고 말았다. 1차대전 직전까지도 인도의 지도자들 가운데는 영국 왕실에 대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많았다. 1914년 간디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대영제국의 국민이다. 지금 영국 국민으로써 우리가 할 일은최선을 다해 영국을 지원하고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바쳐 싸우는 것이다.' 전쟁이 끝나면 캐나다를 비롯해서 '백인'들이 거주하는 영국의 다른 영토들이 누렷던 것과 같은 자치권이 주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허황된 꿈이엇다."

그러나 퍼거슨은 다르게 본다. 인도를 잃은 것은, 대영제국이 무너진 것은 제국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제국 외부의 문제였다고 저자는 본다 저자는 대영제국은 두번의 세계대전 때문에 무너졋다고 말한다.

대영제국의 비용은 그리 높지 않았다. 19세기 말 영국의 군사비는 GDP의 2.8% 수준이엇다. 그러나 영국이 자유무역이란 제국의 기초 위에서 얻은 이익은 GDP의 6.8%였다고 계산한다. 제국은 분명 남는 장사엿다. 그러나 그 비용과 이익이 제국의 누구에게 돌아가는가는 다른 문제엿다.

제국의 비용은 납세자들에게서 나왔다. 그러나 제국의 이익은 시티의 은행가들에게 돌아갔다. 납세자들의 돈으로 로스차일드가를 키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제국 곳곳으로 떠난 군인, 행정가, 상인, 탐험가 등에게는 영국에서보다 더 나은 수입이 돌아갔다. 그러나 그들은 본토인보다 더 낮은 세금을 낼 뿐이었고 대부분의 비용은 본토의 납세자에게서 나왔다. 물론 제국의 손익계산서는 제국의 영광이란 허상으로 가려질 수 있었다. 당시 쏟아지기 시작하던 영화는 제국의 영광을 선전하는 좋은 매체였고 전통적인 신문, 잡지도 그런 허상을 키웠다.그러나 그런 허상은 1차대전이 날려버린다.

그러나 지금에서야 비로소 나는 알게 되었다. 당신도 나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나는 당신의 수류탄과 총검과 무기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나는 당신의 나이와 당신의 얼굴과 우리의 공통점을 생각하고 있다. 용서해주게 전우여. 우리는 언제나 너무 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다. 왜 그들은 우리에게 당신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당신의 어머니가 걱정하고 똑같이 죽음에 대한 공포감을 가지고 있고 똑같이 죽고 고통스러워하는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주지 않는걸까? 용서해주게 전우여. 당신이 어떻게 우리의 적이 될 수 있겠는가?" '서부전선 이상없다'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말이다.

1차대전은 제국의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국민들의 전쟁이었다. 그러나 전쟁의 폐허만 남았을 때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 알 수가 없게 되엇다. 그들이 싸웠던 제국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엇다.

아일랜드의 독립은 바로 그런 자신감의 상실을 보여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것은 전간기에 몇번이고 되풀이하여 나타나게 될 유형이엇다. 비국교도의 사소한 폭동, 매서운 군사적 대응, 그 다음에 영국의 자신감 와해, 죄책감, 재고, 너절한 양보, 또 한번의 양보가 이어졋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시험 사례엿다. 실로 영국인들은 자신의 첫번째 식민지가 들로 나누어지는 것을 승인하면서 제국 전체에 신호를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결정타는 또 다시 독일로부터 왔다. 홀로 히틀러에 맞서면서 영국은 제국의 모든 자원을 동원했지만 역부족이엇다. 미국의 힘이 필요했다. 그러나 미국의 힘은 공짜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비용은 대영제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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