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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로 즐기는 미술관 | 예술/문학/여행 2011-12-0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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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트, 도쿄

최재혁,박현정 공저
북하우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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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부제가 말하듯 이책의 주인공은 도쿄의 미술관들이다. 이책의 목적은 도쿄여행을 미술관을 돌아보는 것으로 잡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의 내용은 도쿄에 볼만한 미술관이 어떤 곳이고 그 미술관에서 볼 것은 무엇인가로 채워진다. ‘아트 도쿄란 제목만 보고 이책이 일본미술의 현황을 보여주는 책이라 생각하면 잘못이란 말이다.

 

그러나 솔직히 아무리 가까운 일본이라고 하지만 해외로 미술관 여행을 올 수 있는 독자가 얼마나 있을지”. 결국 이책은 많은 여행서들이 그렇듯이 좀처럼 여행을 못 가는 사람들을 위한 여행서가 되어버렸. 책 한권으로 여행을 한 것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가상여행서가 되어 버렸다는 말이다.

 

물론 종이뭉치가 실제 여행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책은 가상여행서란 말이 어울리게 잘 만들어졌다.

 

미술관을 간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미술관을 간다는 것은 단순히 미술품을 보러 가는 것만 말하지는 않는다. 거기에는 미술품을 모셔놓은 공간 자체가 포함된다.

 

예를 들어 오페라 공연을 보러간다고 하자. 평소에는 입지 않던 드레스코드를 따라 특별하게 차려입는다. 집안에서 음반으로 또는 DVD 영상으로 오페라를 즐길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인다. 공연장에 간다는 자체가 일상과는 다른 행위이기 때문이다. ‘특별한복장은 그 다름이 요구하는 것이다.

 

미술관은 그보다는 덜하지만 역시 일상과는 다른 무언가이다. 그 다름을 만드는 것은 미술관이란 공간도 포함된다.

 

물론 미술작품을 본다는 자체, 예술작품을 감상한다는 자체가 일상과는 다른 태도를 전제한다. 화장실 변기가 미술관 전시대에 놓이면 그것은 소변을 보는 용도가 아닌 감상을 위한 용도로 바뀐다. 같은 변기를 다른 태도로 대하게 만드는 것은 미술관이란 공간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미술관이 그런 힘을 갖는 것은 물론 미술관이란 제도의 힘이다. 그러나 그 제도가 힘을 갖게 하는 것은 미술관이란 물리적 공간의 힘이기도 하다. 저자들이 소개하는 미술관들 중 도쿄국립박물관의 호류지 보물관은 그 좋은 예이다.

 

일단 시야에 들어오면 압도적인 이미지가 이전의 기억을 모두 삭제해버리는 기묘한 힘을 가진 건물, 그 앞에 서면 재부팅되듯 잠시 움직임을 멈추게 될 정도다. 수많은 팬을 거느린 호류지 박물관은 결코 편안하다거나 안락함을 주는 건물은 아니다. 단정하다 못해 질서로 꽉 찬 공간은 오히려 끊임없이 미묘한 긴장감 속에 머무르게 한다. 건물 앞에는 연못이 지면과 같은 높이로 펼쳐져 있는데 너무나 반듯하고 평평해서 작은 바람의 움직임에도 파문이 도드라진다. 조그만 원에서 시작해 동심원을 그리며 커다랗게 퍼지는 물결은 보는 사람도 호흡을 가다듬게 만든다. 그렇게 숨을 맞추다보면 미약한 바람분 아니라 기의 움직임에도 반응하게 되는지 온몸의 신경이 눈에 보이지 않는 주파수를 잡아내는 안테나처럼 펼쳐진다. 그 순간은 건축가 다니구치 요시오가 이 건물을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지금의 도쿄에서 귀중한 가치가 되어버린 정숙, 질서, 품격을 느낄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미술관이 아니라 세속에서 멀리 떨어진 어떤 종교적인 건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은 건축가가 이곳에 소장될 보물 300여점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하고자 했던 마음 때문일 것이다.”

 

뒤샹이 변기에 이란 이름을 붙여 고가로 팔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미술관이란 공간이 갖는 힘 덕분이며 오늘날로 치면 찌라시에 불과한 우끼요에가 대접받는 예술이 되는 것도 그런 공간의 힘이며 그 공간이 구현하는 제도의 힘이다.

 

우키요에의 가치를 알아본 것은 일본보다 서양이 먼저였다. 우키요에가 그들 손에 들어간 것은 수출품인 도자기가 깨지지 않도록 우키요에에 싸서 보내졌기 때문이다. 포장지로 쓰였다는데서 알 수 있지만 에도의 우키요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미술품이라는 관념과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비교하자면 오히려 서점 한쪽에 한가득 쌓여있는 패션잡지 속 모델의 사진이나 개봉영화 광고전단지가 그들과 더 가깝다.”

 

실제 우끼요에의 내용은 당시의 대중문화의 중심었던 유곽과 가부키 극장이었다. 그리고 그곳의 소비자들이 그 장소에서 원하는 것이 그렇듯 우키요에의 내용은 현실과는 멀었다. “우키요의 원래 의미가 근심어린 세상(憂世)였다는 사실은 의외다. 실제 세계를 그렸던 우키요에의 매력이 현실을 긍정하는 힘이 아니라 현실을 살짝 부정해버리는 힘에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어차피 힘든 세상, 즐겁게 살아보지 않겠냐는 의미로 같은 발음의 우키요(浮世)로 바뀐 것이라 한다. 한지 앞을 볼 수 없는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이라면 약간 들뜬 채로 즐겨보자는 것이우끼요에의 미학이다.

 

그렇기에 불상이 실제 인간이 아닌 관상학적으로 이상화된 비현실의 인간을 표현하듯 우끼요에의 미녀는 현실의 미녀와는 상관이 없는 이상화된 미녀이며 그녀들은 쌍둥이 같이 동일한 얼굴로 그려졌다. 그 미녀들을 만나는 장소, 유곽 요시와라는 서로의 환상을 깨지 않기 위해 거짓이 진실인 세계, 현실의 계급관념이 힘을 잃는 가상세계였다. 돈으로 사랑을 사는 곳임에는 틀림없지만 어찌보면 멋과 풍류가 더 중요했던 세상, 거짓을 진실인 척 안아주는 건 가상세계 요시와라를 즐기는 약속이었다. 자신의 품에 안은 유녀가 상상 속의 이상향이었다면 그것은 우키요에를 통해 만나는 유녀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으리라. 어디까지나 상상이 현실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세계라면 그리고 자신이 환상을 쥐락펴락하는 주인이라면 그림 속 미인들의 얼굴이 같다 한들 별 문제가 없었으리라.”

 

환상을 파는, 환상을 보여주는 광고가, 패션사진이 예술이라 말해지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환상을 현실과 아무 상관없게 만들어주엇을 때 찌라시’-였던 우키요에는 미술관으로 모셔질 수 있었다. 예술은 현실과 무관한 존재일 때 예술일 수 있으니까.

 

그러나 그것이 미술의 고민이다. 골치만 아픈 무용지물. 현대미술에 대한 통념이다. 그런거 없어도 먹고사는데 지장없고 그런거 없어도 정신적으로 빈곤한 것도 아니다. 사실 무슨 의미인지 알 수도 없는 그런 골치덩어리 없이도 우리의 시각을 즐겁게 해주는 것들은 너무나 많다.

 

오카모토 타로는 미술은 그런 것이 아니라 생각했던 사람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텔레비전을 보고 자란 내 또래의 일본세대들은 오카모토 타로를 좀 이상한 아저씨로 기억한다. CF에서 예술은 폭발이다;를 외치며 범종을 울려대거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뭐냐 이건이란 유행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던, 일명 노려보는 눈알의 폭발아저씨’. 그런데 나중에 커서 알고보니 위대한 사람이었다고 반성조로 고백하는 타로의 팬들도 적이지 않은데 이해가 간다. 뭐가 그리 못마땅한 것인지 잔뜩 화가 난 표정의 그의 사진을 처음 대했을 때는 나 역시 좀 불편했다. ‘뭐 어쩌라고.’”

 

타로의 예술을 저자들은 분노의 미학으로 정리한다. 오사카 만국박람회의 태양의 탑을 만든 것으로 기억되는 타로는 당시 자신이 하고 싶은 건 못하고 다른 사람의 눈만 신경쓰는 일본인의 모습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과학의 발달로 삶은 풍족해지지만 질서와 규율에 묶여 빈곤한 일상을 보내는 왜소해진 현대인을 봤다. 고대에 만들어진 조몬 토기로부터 약동과 활력을 발견했던 타로는 만박의 테마인 인류의 진보와 조화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나섰다. ‘뭐가 진보냐, 조몬 토기의 뛰어남을 보라. 지금의 당신들이 만들 수 있겠느냐라고 도밯ㄹ적으로 질묺파고 자신을 죽이고 서로 친해지는 조화는 비루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에게 예술은 투명한 폭발, 분노였다. “타로가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것은 인간 자체, 그 어마어마한생명력이었다. 그 생명력에 맞지 않는 것에는                                                                                                                                                                                                                  타협하지 마라, 불협화음은 클수록 좋다. 타협하지 말고 화낼 것에는 투명한 화를 내라.’ 화를 내라는 그의 주문은 그의 예술 자체였다. 그 분노는, 비타협은 그리고 폭발로서 예술은 인산이 자신을 넘어서 세계로 우주로 무한하게 펼쳐나가기 위한 의지와 감정의 폭발이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투명하게 폭발해 무한대의 저편, 우주로 퍼져나가는 것, 타로의 대상은 언제나 우주였다.” 그에게 예술은 축제였다. 생명력을 옭아매는 규제와 절도, 합리주의에 묶인 일상을 뛰어넘어 환상을 체험할 수 있는 열광의 도가니.”

 

주택가에 자리잡은 그의 기념관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그 기념관을 찾는 관람객부터 남다르다. ‘그들에게는 어느 미술관에서나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조심스러움이나 작품에 대한 경외심 같은 게 없다. 다른 관람객에게 피해를 줄까 봐 줄을 맞춰 움직이지도 소곤거리지도 않는다. 대신 그 곳에서 웃고 떠든다. 마음에 드는 조각을 만져보고 그 위에 앉아보고 옆 관람객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태양의 탑으로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숨은 활기, 활력을 깨우고 싶었다는 타로의 바람대로 그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여기저기 사진촬영가능이라는 표지가 붙어있는 별난 미술관, 아니 미술관이라기보다는 흥겨운 유원지에서 보내는 화사한 비일상에 가깝다. 자신의 작품을 유리 케이스에 넣겠다는 말에 화를 내며 작품이 찢어지면 자신의 손으로 다시 이어주겠다던, 예술은 대중의 것이니 만지고 싶어하면 만지게 하라고 했던 타로의 말은 이곳 관람객들에게 여전히 큰 힘이다. 예술은 열도 빛도 무한적으로 주는 태양이 돈을 요구하지 않는 것처럼 평생 작품을 팔기 거부했던 오카모토 타로를 기념하는 이곳은 1970년 만박 이후에도 여전히 축제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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