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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기원 | 인문/사회/역사 2012-02-26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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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토니 주트 저/김일년 역
플래닛(Planet) | 201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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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독재와 함께 하지 않을까? 확실히 그렇게 보였다. 1945년 연합국이 승리를 거둔 이후에도 이러한 우려는 가시지 않았다. 불황과 파시즘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 에서 떠나지 않앗다. 전후의 시급한 과제는 이 엄청난 승리를 자축하고 나서 전쟁 이전의 일상응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1914년에서 1945년 사이에 겪었던 경험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게 해줄 방법을 찾는 것이엇다.”

 

‘1984’는 전후 유럽의 분위기를 가장 잘 나타낸 작품이다. 48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아내를 잃고 자신의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오웰의 절망에서 태어났지만 개인적인 불행보다는 전체주의는 언제든 가능하다는 아마도 전체주의가 미래일 것이라는 절망이 더 컸다. “수백개 사단을 거느리고 동쪽에 버티고 있는 붉은 군대와 이탈리아와 프랑스, 그리고 벨기에에서 득세하고 있던 공산당과 노동조합.” 국무장관 마셜이 유럽을 방문했을 때 본 광경이다. “마셜 플랜은 2차대전 이후의 상황이 1차 대전 히우에 벌어졌던 사태들보다 더 나쁜 결말로 치달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의 산물이엇다.”

 

히틀러가 몰락하고 나서 한참이 지난 후에 그에 대해 평가해 달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일부 국외자들은 더러 최소한 그는 독일인들에게 일자리를 되돌려주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한 트탈린이 어떤 결함을 지니고 있었든 간에 최소한 그는 소련을 대공황으로부터 지켜 냈다는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기차가 제 시간에 맞춰 움직이게 만들었다는 무솔리니에 관한 농담조차 그 행간에는 다음과 같은 항변이 담겨 있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되었다는 거야?”

 

두번의 전쟁이 일어나기 전으로 문명을 되돌리는 일은 가능해보이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이 문제를 고민했던 사람은 바로 메이너드 케인스였다. 영국의 클레먼트 애틀리, 프랑스의 드골, 그리고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에 이르기까지 당대 혁신적인 법안의 통과를 이끌었던 일련의 정치가들과 마찬가지로 케인스 역시 천성적으로 보수주의자였다. 당대 대부분의 주요 정치 지도자들은 모두 케인스에게 매우 익숙했던 평화로운 시절에 태어난 노신사들이었다. 그리고 이들 모두는 충격적인 대격변의 시절을 겪은 자들이엇다.”

 

그러나 더 이상 그들이 젊은 시절을 보냈던 아름다운 시절(Belle Epoque)로 돌아갈 수는 없었고 그 시절의 가치를 그대로 되살리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전간기에 자본가들은 이미 스스로 자기 이익을 최선으로 지켜낼 능력이 전혀 없음을 분명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뭔가 달라져야 했다. 그리고 그일은 국가가 해야할 일이었다.

 

그 결과 아주 역설정인 상황이 벌어졌다. 당시에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불릴만한 변화들 덕분에 자본주의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전후 초창기에 정책 논쟁은 도덕적인 성격을 띠었다. 실업, 인플레이션, 그리고 농민들이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토지를 내팽개치고 극우정당으로 달려가게 만든 농산물 가격폭락 등은 단지 경제적 쟁점이 아니었다. 성직자에서부터 세속의 지식인에 이르기까지 당시 모든 사회구성원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공동체의 윤리적 일관성을 가늠하는 시금석으로 간주했다. 모두가 국가를 믿었다. 이는 전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불과 얼마 전에 경험했던 끔찍한 공포를 두 번 다시 겪고 싶어하지 않았고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의 자유를 제한하는데 기꺼이 찬성했기 때문이었다.”

 

이후의 한세대를 프랑스에선 영광의 30년이라고 불렀고 이 시절의 정점에서 맥밀런 수상은 이렇게 장담했다. “’이렇게 좋은 시절은 앞으로 다신 오지 않을거요.’ 그가 옳았다. 극단주의 세력이 다시 부상할지 모른다는 우려는 자취를 감추었다. 서양은 번영과 안녕의 황금시대에 들어섰다. 거품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편안한 거품에 파묻혀 과거에는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삶을 누렸고 희망찬 시선으로 미래를 기대했다.”

 

전후 사회민주주의의 기적은 보편주의란 마술에 의해 성취된 것이었다. 중간계급의 공포와 불만이야말로 파시즙ㅁ을 권좌로 불러들인 원동력이었다. 중간계급을 민주주의 지지자로 돌려세우는 일은 전후의 정치의 중요한 과제였다. 그리고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쉽지 않은 일을 해낸 것이 보편주의의 마술이었다. “중산층은 더 이상 소득에 견주어 혜택을 받지 않았다.” 이전에 복지란 중산층에겐 단지 돈만 내고 자신은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젠 무상교육에서부터 무료 혹은 저가로 제공되는 의료 혜택, 공공연금, 실업보험에 이르기까지 노동자, 빈민층이 누리는 것과 똑같은 혜태ㅑㄱ을 누렸다.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많은 부분들이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충당된 결과 유럽의 중산층은 1960년대에 이르면 자신들의 가처분 소득 수준이 1914년 이후 그 어트 때보다 높아졋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저자는 영광의 30년이 가능했고 무려 한 세대동안 잘 돌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고 말한다. 지적 혁명 때문이었다.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맹신과 사직인 이익 추구가 항상 공익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믿음은 완전히 끝장났다. 두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사람들 대부분은 일상생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불가피하다고 믿었다. 전시경제는 전쟁이란 목적을 위해 온 나라를 전쟁기계로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렇게 묻기 시작했다. 그러면 평화를 위해서도 같은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시장은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해 그 빈틈을 메워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특히 스칸디나비아의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사회주의란 분배의 개념이엏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규제받지 않는 경쟁이 낳은 결과에 분개햇다. 그들은 급전적 미래를 꿈꾸기보다는 더 나은 삶의 방식을 가능하게 해줄 가치들을 되찾으려 했다. 베아트리체 웹 같은 영국의 초기 사회민주주의자는 자신이 추구하는 사회주의를 공교육, 공중보건서비스, 의료보험, 공원과 운동장, 노약자와 실업자에 대한 공적지원 등으로 규정했다. 정부가 이러한 일들을 맏아야 한다는 생각은 전대미문의 것이엇다. 2차대전 이후 사회적 목적의 실현을 위해 재정을 운용하는 것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책임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영광의 30년은 그 자신의 영광 때문에 무너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영광의 30년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공동의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위해 국가가 나서야 된다는 합의였으며 국가에 대한 신뢰였다. 그러나 국가의 성공은 자신의 무덤을 팠다고 저자는 본다.

 

“1945년 이후에 태어난 자들에게 복지국가와 그 제도들은 과거의 딜레마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라 그저 일상적인 삶의 조건에 불과했다. 그들에게 복지는 지루한 일상 그 이상이 아니었다. 60년대 중반에 대학에 입학한 베이비붐 세대는 다른 시절을 겪어보지 못했다.” 복지국가의 합의는 중간계급의 동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전쟁 직후 그 동의의 이유를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들은 복지국가를 가능하게 했던 지적 혁명을 뒤집어놓았다. “위대한 이상을 품고 1960년대를 살아온 우리 세대는 결국 자유주의를 파괴해버렸다. 그것은 우리가 너무 지나치게 자유주의적이었기 때문이다그 세대의 일원인 케밀 파야의 말이다.

 

더군다나 영광의 30년의 성과 자체가 그 시절을 가능하게 했던 지형을 부수어놓았다. “중간계급에게 실제로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든지 간에 뉴딜의 개혁정책들과 스칸디나비아의 사회민주주의, 영국의 복지국가는 모두 육체노동자들과 농민들의 지지에 우선적으로 의존했다. 그러나 1950년대 내내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프롤레타리아는 지속적으로 파편화되면서 감소했다. 전통적인 공장 노동자와 광부, 그리고 운수업 종사자에 대한 좌파의 집착은 자동화와 서비스업의 부상, 그리고 여성 노동자의 증가로 더 이상 설자리를 찾지 못했다.”

 

정치기반이 흔들리는 가운데 중간계급도 변했다. “워싱턴에서부터 스톡홀름에 이르기까지 지난 시절의 개혁가들은 모두 정의, 기회균등 혹은 경제안정 같은 목적을 공유했고 이러한 목적은 공동의 노력으로만 달성할 수있다고 확신했었다. 지나치게 억압적인 하향식 통제와 조정이 가질 수 밖에 없는 수많은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은 이런 문제접들을 사회정의를 위한 비용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비용을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그러나 사회정의란 목적이 이미 이루어진 시절만 경험한 젊은 세대에게 그런 목적은 더 이상 호소력이 없었다. 대신 “60년대 세대를 하나로 뭉치게 만든 것은 모두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각자의 필요와 권리였다. ‘개인주의’. 즉 모든 사람은 사적 자유를 최대한 누리고 자신의 욕망을 어떠한 제한 없이 표현할 자유가 있으며 이 모든 권리는 사회에 의해 존중되고 제도화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점차 그 시대 좌파의 슬로건으로 자리잡았다. ‘네 멋대로 하라’ ‘감정을 해방하라’ ‘전쟁 대신 사랑을 하자이러한 목표들은 본질적으로 사적인 목표일 뿐 공익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크게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하다. 60년대의 정치는 사회나 국가에 대한 개인적인 권리들의 총합으로 전개되었다. 개인적 정체성, 성 정체성, 문화적 정체성 들 정체성의 문제가 공적 담론을 잠식했다. 이러한 정체성의 정치란 급진주의적 정치의 파편화와 맥이 닿아 있었고 다문화주의란 그럴듯한 모습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그 시절에 좌파가 된다는 것은 자기본위적인 자기개발적인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자신만의 관심사에 매몰된다는 것을 뜻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목표를 공유한다는 의식의 퇴조였다. 전후 수십년간 이어져온 합의는 붕괴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그러나 확실히 부자유스러운 합의가 사적 이해관계의 절대성을 둘러싸고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실상 그들의 감정은 사적 자유에 대한 열광과 공적 구속에 대한 짜증으로 확실히 나위너 있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새로 등장한 우파 역시 이와 똑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신자유주의란 통칭되는 우파의 탄생은 그들의 적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70년대 중반 이후 30년간 이어진 보수주의의 승리와 그로 인한 근본적인 변화들은 필연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일종의 지적혁명이 낳은 결과였다. 대략 10년 남짓한 짧은 기간동안 공적 담론의 지배적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기존 패러다임이 국가의 적극적 개입과 공동선의 추구였다면 새로운 세계관은 마거릿 대처의 악명 높은 명언으로 요약될 수 있었다. ‘사회 따위는 없다. 오직 개인과 가족이 있을 뿐이다.”

 

정부가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이고 사회따위는 없다면 국가의 역할 역시 다시 한번 조정자에 불과한 것으로 축소되어야 햇다. 이제 정치가가 할 일은 개인들의 삶에 최대한 간섭하지 않으면서 개개인이 자신에게 이로운 일을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엇다. 케인스식 합의와 비교해보면 사태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숭 있다. 케인스는 자본주의의 기능이 부자들이 더 부자가 되게 하는 수단을 제공하는 데 그친다면 그런 자본주의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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