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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rtz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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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 Review 2020-10-20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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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저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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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활발한 활동을 전개 중인 그로부터 완연한 병색을 발견하기란 힘들다. 아팠다. 과거형으로 그의 지난날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음은 행운이다. 완전히 자유로워진 건 아직 아니다. 주기적으로 병원을 오가며 몸 상태를 살펴야 한다. 재발의 가능성을 떠올릴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기도 할 것이다.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비로소 냉철해지는 게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책을 읽으며 했다. 예전부터 그는 글과 말로 먹고 살았으니 충분히 이성적인 사람이기는 했다. 허나 그를 모두가 마냥 예쁘게 바라보았던 건 아니다. 만인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세상에 그런 인물은 드물다. 절반 가량,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수가 나를 미워하고 반대한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그의 입장은 더욱 복잡했을 테다. 지난날 그가 적은 글이 일부에겐 허공을 떠도는 유령과도 같이 느껴졌을 수도 있다. 평은 각자의 몫이나, 적어도 나는 그에게서 진심을 느꼈다. 죽음을 노상 말하면서도 실은 삶을 갈망해온 내 자신의 처지가 자연스레 떠오르기도 했다. 살고 싶다는 말을 농담처럼 내뱉을 수 있는 처지가 그로서는 부러웠을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부여된 중압박을 부인해보고자 고심 끝에 농담이란 단어를 고른 것일 수도 있다.

그는 TV를 통해 자신의 삶을 공개한 적이 있다.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깔끔한 집은 오로지 그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자신의 모든 비밀이 깃든 집을 다른 이와 공유하는 건 물론 꺼려지기 마련이라지만 왠지 그는 더더욱 집 안에 누구도 들이지 않을 것만 같았다. 아팠을 때 이러한 그의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났던 모양이다. 약에 취하고 몸이 붓고. 스스로도 쉬이 받아들일 수 없는 모습이었으므로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 것이다. “아프다는 말이 자신을 더욱 아프게 만들까 두려웠던지 그는 이를 악 물었을 뿐 아무런 표현도 않았다. 항상 밝은 모습을 유지하는 사람의 이면에 지독한 우울이 숨쉴 때가 잦듯 강함으로 무장한 그의 내면은 끊임없이 요동쳤다. 마음을 열고 다른 이를 받아들였더라면 조금 더 수월했을지도 모를 나날들이 그렇게 지나갔다.

책에는 나락으로 떨어진 하루에 대한 기록이 등장했다. 천장과 땅이 자신을 향해 돌진하고, 마침내 그 사이에 눌려 존재감을 상실할 것만 같은 무기력에 빠져 허우적댔던 순간이었다. 결코 지나가지 않을 것 같았고, 내일을 기약하는 건 사치일 수도 있겠다는 확신마저 들었던 그날이 그에게 일종의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마침내 살고 싶어졌다.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그에게서 힘이 느껴졌다. 여성만의 전유물로 여겨온 요가를 시작했다. 각목이라도 되는 양 유연성이라고는 도통 모르는 몸이 의지에 반한 움직임을 선보일 때마다 자괴감이 들었다. 타협을 몰랐던 때 같았으면 무리해 몰아친 끝에 좌절하고야 말았을 것이다. 한없이 커진 욕심에 짓밟히는 일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겪는 바이기도 하다. 함께 요가를 시작했던 지인들이 일찌감치 떨어져 나간 것도 아마 그래서 였을 것이다. 그는 다른 선택을 했다. 전문 강사들이 주로 수강하는 시간대의 수업을 등록했다. 안 되는 동작을 될 때까지 연습했지만 결코 억지를 부리진 않았다. 요가 외의 순간에도 그는 예전과는 다른 태도로 임했다. 주로 평가하는 입장이었다. 직업이 그랬다. 성에 차지 않으면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할 줄 알았던 그는 더는 그리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힘든 일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듯 받아들여온 가시들이 실은 아프다는 사실을 부인할 필요가 없음을.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끝을 경험했기 때문에 감히 담을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갈망하는 것 역시 그랬다. 너무도 당연한 건 굳이 간절히 원치 않는다. 나에게 삶은, 적어도 지금은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이어지는 무언가에 불과했다. 밀어내도 결국에는 내 것이리라는 오만함에 기대어 이를 욕했다. 이미 망했다고, 희망이 없다고. 살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는 말도 살아 있을 게 분명했으므로 했다. 그는 알아버렸다.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이고 끝날 수밖에 없는 게 삶이다. 그 언젠가가 머나먼 미래가 아닌 지금 당장일 수도 있어 그는 다짐했다. 둥글게. 남은 물론, 특히 나 자신에게 아픔을 선사하지 않기로.

많은 영화 이야기가 등장했다.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배우들을 그리는 마음도 읽혔다. 예나 지금이나 그의 글엔 참으로 많은 게 담겨 있었다. 같았지만 참 달랐다. 그는 예전과 같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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